요한 또는 요나의 아들인 시몬은 갈릴래아 벳사이다 출신입니다. 이미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던 그는 동생 안드레아를 통해 예수님을 만났고, 예수님은 그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을 붙여주셨습니다.
물고기의 기적 이후 그는 결정적으로 그리스도를 따랐으며 사도로, 사도들 중의 으뜸 사도로 지명되었습니다. 열두 제자 가운데 그는 언제나 첫 번째 사도로 기억됩니다. 그는 거룩하신 스승께 대한 큰 믿음과 열렬한 사랑을 지녔습니다.
자신의 믿음을 과신했던 그는 [예수님의] 수난 때 위기에 몰리자, 최후의 만찬에서 표명한 호언장담이 무색하게도 스승을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회개하여 새로운 마음으로 더 큰 사랑으로 자신의 잘못을 보속했습니다.
그는 성령 강림 이후에 앞장서서 대담하게 예수님의 이름을 전했습니다. 감옥에 갇혀서도 예수님을 증언하는 일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가 안티오키아에 가서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세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대 야고보가 순교한 다음 기적적으로 감옥에서 풀려난 그는 예루살렘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다.”고 사도행전은 말합니다.(사도 12,17) 이때 그가 로마로 갔고, 영원한 도시에 머물렀음을 로마의 성 클레멘스, 성 이레네오, 테르툴리아노와 성이냐시오 순교자와 같은 초기 그리스도인 작가들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가 또 다른 사도적 여행을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전승은 67년에 성 베드로가 순교했다는 것을 만장일치로 이야기합니다. 그의 축일은 6월 29일입니다.
성 베드로가 쓴 서간은 두 편입니다.
성 베드로의 첫째 서간. 아시아 지역에 흩어져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이 편지는 아마도 서기 63년에서 65년 사이에 로마에서 쓴 것 같습니다. 이때 로마 제국 전역에 네로 황제의 박해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서간은 그 박해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에 관련하여 조언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서간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들이 사랑 안에서 살아갈 것을 권고합니다. 그리고 권위와 관련하여 다양한 사회 규정에 따른 그리스도인들의 의무에 대해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원로들에게는 깨어 있을 것을, 믿는 이들에게는 원로들에게 복종할 것을 권고하며, 그리스도인다운 덕행을 권고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드높고 진지하게 표현된 단순한 교리와 실천 사항들은 환난 가운데 서로 위로하고, 믿음을 굳건하게 다지면서 독성죄와 거짓 가르침에 맞서 싸우고, 영원한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선행이 필요함을 역설합니다.
성 베드로의 둘째 서간. 4세기까지 전반적으로 인정되지 않았지만, 이 서간은 성 베드로가 쓴 것이 분명합니다. 성 베드로만이 쓸 수 있는 자신의 이름과 여러 세부사항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첫째 서간에 비해 글의 형식이 다르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는 성 베드로가 자신의 서간을 쓸 때 여러 필사자들과 함께했다는 사실로 설명이 됩니다.
둘째 서간은 67년 로마에서 보낸 첫 번째 서간과 같은 수신자들에게 보낸 것 같습니다.
사도들의 으뜸인 베드로의 유언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서간의 목적은 선행의 필요성, 자유를 방종으로 여기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인하는 이단자들과 맞서 싸워야 할 필요성을 가르치기 위한 것입니다.
이 서간은 성 베드로가 죽음을 눈앞에 둔 아버지로서 자녀들에게 마지막으로 진심 어린 권고를 하며, 첫째 서간보다 훨씬 강력하게 자신의 열렬한 정신을 드러내는 유언입니다.
“사랑하는 당신 계명을 향해 제 두 손
쳐들고 당신의 법령을 묵상합니다.”
(시편 119,48)
신심이라는 말은 기도, 덕행, 우리가 낮 동안 하는 선행 그 자체 등 경건한 실천 행위를 모두 일컫습니다.
성경이 신심의 샘이라고 말하는 것은 묵주기도를 암송하거나 성체를 모시는 것처럼 외적인 행위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모든 행위를 활기차게 하는 영(혼)을 뜻합니다. 이러한 영이 없다면 모든 신심 행위, 심지어 성찬례처럼 지극히 거룩한 행위일지라도 무척 아름답게 보이지만 생명이 없는 대리석 조각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순수한 사랑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겸손하게 기도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뉘우치며, 깨어 있는 마음으로 하느님을 향하는 영혼은 신심 깊은 영을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영은 입으로 말하는 구송기도나 외적인 선행에 있지않습니다. 그와 달리 우리 의지가 하느님의 뜻과 늘 하나 되려는 데에 있습니다.
사도 성 바오로가 가르치는 것처럼 신심은 모든 것과 모든 사람에게 유익합니다. “신심은 모든 면에서 유익합니다Pietas ad omnia utilis est.”(1티모 4,8)|
신심은 죄없는 어린이들을 도와 그들이 언제나 순수하게 합니다. 젊은이들에게 도움이 되어 그들 삶의 매우 민감한 단계인 청소년 시기에 겪게 되는 위기를 극복하게 합니다. 어른과 노인, 주인과 하인에게도 유익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신심은 하느님의 은총 안에 살아가며, 선종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요소입니다.
신심은 번영과 불행, 풍요와 불행, 잘 사는 것과 잘 죽는 것에도 도움이 됩니다. 신심은 언제나 필요합니다. 사람들을 도와 굳건하게 하는 하느님의 은총이 인간에게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 * *
신심의 덕은 주로 감실과 성경이라는 두 개의 샘에서 솟아납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두 번째 샘에 집중하여 묵상할 것입니다.
다마스쿠스의 성 요한1은 영혼의 구원에 “거룩한 성경을 아는 것보다 더 유익한 것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카시오도루스2는 “거룩한 책은 그리스도인에게 최상의 이로움을 준다.”고 단언했습니다.
신심의 영은 영적 독서라는 자양분을 지닙니다. 수덕의 모든 대가들은 영적 독서를 권장하며 높이 평가합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영성 서적이 자신의 기쁨이라고 하면서 그중에서도 가장 큰 기쁨을 주는 것은 성경이라고 했습니다.
“묵상에서 제가 온전히 몰두하는 것은 복음입니다. 저는 복음에 서 저의 가엾은 영혼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이끌어냅니다. 저는 그안에서 언제나 새로운 빛, 신비롭게 숨어 있는 의미를 발견합니다.
저는 제 경험을 통해 하느님 나라가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 알고 있습니다.”라고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3는 썼습니다.
영적 독서는 완덕의 길에서 빠르고 안전하게 진보하고자 하는 사람, 영성 서적을 안내인으로 삼는 사람에게 필수적입니다. 영적 독서로 가장 많이 권장되는 책은|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 알폰소, 올리에Oliér,4 성 이냐시오, 아빌라의 데레사, 스쿠폴리5가 쓴 책입니다. 이 모든 책은 참으로 훌륭합니다만 역시 사람의 [작품]입니다. 이 모든 것 위에 하나 더 있는 것은 다른 모든 것의 원천인 성경입니다. 성경은 영적 독서를 위한 최고의 책입니다. 성경은 모든 수덕적인 저자들이 가르침을 얻는 가장 명쾌한 원천이며, 그들이 쓴 책들은 그 거대한 바다에서 흘러나오는 개울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영혼을 인내로 이끄는 책 가운데「욥기」보다 더 좋은 책이 있을까요?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영혼을 불태우는 기도로 이끌기위해「아가」보다 더 효과적인 책이 있을까요?
이를 인식한 탁월한 교황들, 특히 비오 10세, 레오 12세, (현) 교황 비오 11세는 성경, 특히 복음을 날마다 읽으라고 강력하게 권고합니다.
다음은 비오 10세가 1907년 1월 21일 카세타 추기경6에게 보낸 편지에서 언급한 내용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재건하려고 결정한 바로 그때, 신자들에게 그저 자주가 아니라 날마다 거룩한 복음서를 읽는 습관을 들이도록 안내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복음 봉독이야말로 대망의 재건에 도달하도록 하고, 또 그 길을 정확하게 보여주며 인도합니다.”7
마찬가지로 그의 가장 훌륭한 후계자인 베네딕토 15세도 성예레니모회8 총원장이었던 카세타 추기경에게 글을 쓰면서 거룩한 복음을 읽지 못하는 것은 오늘날 그 사회에서 일탈하게 되는 원인이라고 말합니다. “직접 경험을 하는 것은 그 경험에 대해 말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가르쳐 줍니다.|
오늘날 사회의 일탈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교의 활동이 이 사회 안에서 심각하게 잊혀져버린 데서 비롯되는데, 사람들은 더는 그들의 일상생활을 위한 영감을 거기서 얻으려 하지 않습니다.” 교황은 이처럼 강력한 악에 대해 슬퍼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유주의에 의해 길을 잃은 가정에서 복음 봉독이 일상적으로 실행되도록 혼신을 다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직접 성예로니모회를 위해 효과적으로 일하는 총원장이 되길 바랐고, 1914년 10월 8일 두 번째 교황 문헌을 반포하면서 괄목할 그 효과를 언급했습니다. 교황은 그 수도회가 “그 자체로 매우 훌륭하고 그분을 몹시 기쁘게” 한 것을 치하했습니다. 그는 거룩한 복음을 읽고 공부하며 묵상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거룩한 복음 그룹Gruppi del Santo Vangelo”을 추인하며 적극 추천했습니다. 이는 현 교황 비오 11세의 활동을 통해 오늘날에도 거룩한 모임을 하며 폭넓게 진보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모든 도시와 마을에서 그리스도교 신심이 주는 위안을 다시 일깨우게9 된 것은 바로 거룩한 복음에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신심은 우리 안에 있는 거룩한 생명이기에 그 샘에 가까이 갈수록 우리가 얻는 물은 더 깨끗하고 신선할 것입니다. 영성 서적은 복음에서 더 많은 것을 길어낼수록 영혼에게 더 효과적으로 도움이 됩니다.
여러분은 수덕 신학과 영성생활에 대해 많은 것을 듣거나 읽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손에 성경을 들고 펼쳐 본다면 그 안에서 참된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는 진리를 전부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영성 서적은10 성경에서 비롯되는 기원과 생명과 따뜻함을 주는 햇살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영혼이 미지근하면|
영적 따스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다시 말해 그는 신심의 영을 지니지 못합니다. 그가 성경을 받쳐 들고 읽게 하십시오. 그러면 곧바로 마음이 거룩한 열망으로 타오르며, 그의 지성은 거룩한 빛으로 비추임 받고, 그 빛은 의지를 통해 활기찬 결심을 맺게 할 것입니다.
“영혼의 세계에서 복음은 태양이며, 그 뒤를 따르는 모든 인간 피조물은 행성이요, 그 행성의 위성일 뿐입니다.”(파피니)11
바로 그곳, 거룩한 복음에서 예수님의 사랑스런 마음이 맥박처럼 뛰고 있습니다. 얼른 가서 그 마음 안에 머물러 쉬도록 합시다.
그분은 우리를 따뜻하게 하며,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를 우리가 깨닫게 해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 베르나르도가 다음과 같은 의미 깊은 말을 한 까닭입니다. “제가 무엇을 읽거나 글을 쓴다 해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읽거나 쓰지 않는다면 그 어떤 책도, 그 어떤 글도 저를 만족시키지 못할 것입니다.”
성경 구절을 읽고 묵상할 것을 제안하는 구일기도나 삼일기도는 가장 효과적입니다. 때로는 한 문장이나 짧은 구절만으로도 영혼을 미지근한 상태에서 열렬하게 변화시키기에 충분하며, 참으로 많은 사람에게 일어난 것처럼 죽었을지라도 되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 전형적인 예는 성경말씀을 통해 회심한 성 아우구스티노입니다.
참으로 많은 책이 있지만 중요한 책은 성경입니다. 우리에게 성경을 읽고, 그 가르침을 내면화하라고 말씀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어느 날, 주님은 에제키엘에게 “사람의 아들아, 네가 보는 것을 받아먹어라.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집안에게 말하여라.”(에제 3,1 이하)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언자가 그 두루마리를 먹으니 “꿀처럼 입에 달았다.”고 에제키엘은 말했습니다. 이이야기를 통해, 날마다 성경을 읽은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를 본받도록 합시다. 그러면 우리는 자양분을 많이 얻어 |
우리 영혼은 선善의 여정에서 더 굳건하고 튼튼해질 것입니다.
귀감 –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 성 치릴로는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옹호한 가장 유명한 박사이자 수호자이며, 천주의 모친이신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를 모독한 불경스러운 네스토리우스를 굴복시킨 승리자입니다. 성 치릴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심을 폭넓게 논의하고 증명했기에 강생의 박사라고도 불립니다.
431년 에페소 공의회가 소집되었을 때 성 치릴로는 첼레스티노 교황의 지명을 받아 교회 일치 공의회를 개회하고 주재했습니다.
첫 모임에서 성인은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에 대한 장엄한 설교를 하였는데, 성경의 여러 본문과 결합된 명확하고 간결한 논거를 통해 심오한 진리를 보여주었습니다. 모임이 끝난 후 198명의 주교들은 만장일치로 네스토리우스를 단죄하는 문서에 서명하고,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이심을 선포했습니다.
모든 전기 작가는 성 치릴로의 활기차고 담대한 성격에 대해 언급합니다. 그는 매우 깨어 있는 주교요 사목자였기에 주교 임기동안 자신이 돌보는 양떼 가운데 사나운 늑대가 처음 나타났을 때 자신에게 맡겨진 신자들을 안전하게 지키고 보호하며, 이단이 그들 가운데 침투하는 일이 없게 하는 방법을 알았습니다.
성 치릴로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원수들에 대항하는 그 뛰어난 학문(지식)과 힘을 어디서 얻었을까요? 분명 그 뛰어난 내용은 성경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는 성경을 매우 자주 읽었고, 그가 가장 즐겨 찾은 위안은 바로 성경 봉독이었습니다.
그가 쓴 가장 귀중한 작품은 열왕기, 시편, 잠언, 아가, 예레미야, 이사야, 에제키엘, 다니엘, 열두 소 예언자, 네 복음사가에 대한 주석서입니다.
그가 쓴 여러 작품 가운데 우리는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 마리아께서 참으로 하느님의 어머니이심을 증명하는 매우 아름다운 책을 기억합니다. 그 소책자는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께 주어진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최상의 성경 구절을 한데 모은 것에 불과합니다.
성모 마리아의 신학박사인 성 치릴로의 축일은 2월 9일입니다.
작은 희생 : 특별한 은총을 바란다면 삼일기도나 구일기도를 시작하여 날마다 복음 한 구절을 읽도록 합시다.
아, 구원을 베푸시는 이스라엘의 하느님!
정녕 당신은 자신을 숨기시는 하느님이십니다.
그들은 모두 함께 부끄러워하며 수치를 당하리라.
우상을 만드는 자들은 치욕 속에 물러가리라.
이스라엘은 주님께 구원을 받았으니
이는 영원한 구원이어라.
영원무궁토록
너희는 부끄러움도 수치도 당하지 않으리라.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하늘을 창조하신 분, 그분께서 하느님이시다.
땅을 빚으시고 땅을 만드신 분
그분께서 그것을 굳게 세우셨다.
그분께서는 그것을 혼돈으로 창조하지 않으시고
살 수 있는 곳으로 빚어 만드셨다.
내가 주님이다. 다른 이가 없다.
나는 숨어서도 이야기하지 않았고
어두운 땅 어느 구석에서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는 야곱의 후손들에게
“너희는 나를 혼돈 속에서 찾아라.” 하고 말하지 않았다.
나 주님은 의로운 것을 말하고 바른 것을 알린다.
민족들 가운데에서 살아남은 자들아
모여 오너라. 다 함께 가까이 오너라.
나무 우상을 떠받들고 다니는 자들과
구원을 베풀지 못하는 신에게 기도하는 자들은
지각없는 자들이다.
말해 보아라. 설명해 보아라.
함께 의논도 해 보아라.
누가 이것을 옛날에 들려주었느냐?
누가 이것을 예전에 알려 주었느냐?
나 주님이 아니냐?
나밖에는 다른 신이 아무도 없다.
의롭고 구원을 베푸는 하느님
나 말고는 아무도 없다.
땅끝들아, 모두 나에게 돌아와 구원을 받아라.
나는 하느님, 다른 이가 없다.
내가 나 자신을 두고 맹세한다.
내 입에서 의로운 말이 나갔으니
그 말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정녕 모두 나에게 무릎을 꿇고
입으로 맹세하며 말하리라.
“주님께만 의로움과 권능이 있다.
그분께 격분하는 자들은 모두
그분 앞에 와서 부끄러운 일을 당하리라.
이스라엘의 모든 후손들은
주님 안에서 승리와 영예를 얻으리라.”(이사 45,15-25)12
사실 나는 주님에게서 받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전해 주었습니다. 곧 주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 라.”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모양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사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당하게 주님의 빵을 먹거나 그분의 잔을 마시는 자는 주님의 몸과 피에 죄를 짓게 됩니다. 그러니 각 사람은 자신을 돌이켜보고 나서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셔야 합니다. 주님의 몸을 분별없이 먹고 마시는 자는 자신에 대한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가운데에 몸이 약한 사람과 병든 사람이 많고, 또 이미 죽은 이들도 적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잘 분별하면 심판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셔도, 그것은 우리가 이 세상과 함께 단죄받지 않도록 우리를 교육하시는 것입니다. (1코린 11,23-32)
“저희 조상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신 주님, 영원에서 영원까지 찬미받으소서. 주님, 위대함과 권능과 영화와 영예와 위엄이 당신의 것입니다. 주님, 정녕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고, 나라도 당신의 것입니다. 또한 당신께서는 으뜸으로서 만물 위에 드높으십니다. 부와 영광이 당신에게서 나옵니다. 당신께서는 만물을 통치하십니다. 당신의 손에 힘과 권능이 있으니, 바로 당신을 통하여 모든 사람이 위대함과 능력을 얻습니다. 저희의 하느님, 저희는 지금 당신을 찬송하고, 당신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합니다.
제가 무엇이며 제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 같은 예물을 바칠수 있었겠습니까? 모든 것은 당신에게서 오기에, 저희가 당신 손에서 받아 당신께 바쳤을 따름입니다. 당신 앞에서 저희는 저희의 모든 조상처럼 이방인이고 거류민입니다. 저희의 나날은 이 땅 위에서 그림자와 같고 아무 희망도 없습니다.
주 저희 하느님, 당신의 거룩하신 이름을 위한 집을 지어 드리려고 저희가 준비한 이 많은 것은 다 당신 손에서 받은 것으로 모두 당신의 것입니다. 저의 하느님, 저는 당신께서 사람의 마음을 살피시고 정직함을 좋아하시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저는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예물을 바쳤습니다. 이제 여기에 있는 당신 백성도 당신께 예물을 바치는 것을 보니 기쁩니다. 저희 조상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신 주님, 당신 백성이 마음에 품은 이 같은 생각을 그들이 언제까지나 지니게 해 주시고, 당신을 향한 그들의 마음을 굳게 해 주십시오. 제 아들 솔로몬에게 한결같은 마음을 주시어, 그가 당신의 계명과 법령과 규정을 지키며 그 모든 것을 실천하고, 제가 준비한 성전을 짓게 해 주십시오.”(1역대 29,10-19)
1 다마스쿠스의 요한(650년경-750년경, 사제, 교회박사). 저술가이며 연설가로 서교의, 주석, 윤리, 수덕학, 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당시의 움직임과 자기 이야기를 듣는 대중의 기대에 발맞춰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였다.
2 카시오도루스(490년 무렵 태어나 583년 무렵 선종함). 로마의 정치가이자 저술가인 그는 칼라브리아에서 외딴 시리아 출신의 상원 의원의 가족으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아버지는 동 고트 임금인 테오도리쿠스가 통치하던 행정 구역의 지사였는데, 카시오도루스는 아버지와 같은 경력을 이어갔다.
535년 그는 (교황 아가피토와 협력하여) 로마에 그리스도교 대학을 세우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537년 은퇴하여 신학 공부에 전념했다. 그는 칼라브리아에 있는 그의 가족의 땅(스퀼라체)에 비바리움(Vivarium)이라 불린 수도 공동체를 설립했는데, 특징적인 것은 수도승들의 지적 활동에 중요성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비바리움은 7세기 이후 살아남지 못했지만,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 서적을 보존하여 나중에 베네딕토회에 영향을 미친 수도생활의 모델을 창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카시오도루스는 서양 중세 문명의 창시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3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면(거룩한 얼굴)의 데레사라 불리는 가르멜수도회 회원인 데레사(1873-1897)는 1925년 5월 17일에 시성되었다. 비오 12세가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아이”라고 일컬은 데레사는 1997년 10월 19일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교회박사로 선포되었다. 데레사가 성덕에 이르는 “전적으로 새로운 작은 길”을 발견하게 된 것은 1894년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무렵 데레사는 “어머니가 제 자식을 위로하듯 내가 너희를 위로하리라.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이사 66,13)라는 예언자 이사야의 말씀을 만났다. “아! 이처럼 내 영혼을 기쁘게 한, 가장 부드럽고 조화로운 말씀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나를 하늘까지 들어 올릴 수 있는 승강기는 바로 예수님, 당신의 팔입니다! 이 때문에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나는 작은 자로 남아 있어야 하며 언제나 더 성장해야 합니다.” 데레사는 순수한 은총의 박사로서, 모든 것이 하느님 아버지께서 거저 주시는 사랑에 달려 있음을 보았다. 데레사의 또 다른 위대한 깨달음은 코린토 1서를 읽으면서 발견한 사랑에 있다. “사랑은 나의 성소의 열쇠를 찾아 주었습니다. 교회가 많은 지체로 이루어진 몸을 지니고 있지만, 그 모든 지체 가운데 가장 필요하고 가장 고귀한 부분이 부족하지 않음을 나는 알았습니다. … 교회가 마음을 지니고 있으며 그 마음은 사랑으로 타오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사랑만이 교회의 지체들을 움직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 사랑은 모든 성소를 포용하고, 사랑이 전부이며, 모든 시간과 장소를 품어 안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마디로, 사랑은 영원합니다. … 나의 성소는 사랑입니다.”(리지외의 데레사 고문서, Ms B, 전집, 3권, p.223 위에서 인용한 구절은 이 책(LS) 원본에서 다마스쿠스와 카시오도루스의 서로 다른 두 구절처럼 문맥과 관계없이 각주에 배치되었다. 우리는 그 내용을 이 책 본문 가운데 이 부분에 넣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4 장 자크 올리에(Jean-Jacques Olier,1608-1657, 파리). 사제, 생 쉴피스회 창립자인 그는 예수회 회원들과 함께 공부했고, 그의 영적 지도자는 올리에가 선종하는 순간에도 함께 있었던 빈센트 드 폴이었다. 올리에가 양성 받을 때에도 드러났던 예리한 성찰 능력과 섬세한 정서는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에 견줄 수 있다.
5 로렌조 스쿠폴리(Lorenzo Scupoli,1530년 오트란토에서 태어나 1610년 나폴리에서 선종함). 1577년 이래 은둔생활을 하는 테오티노 수도회 사제요 저술가로 활동한 그는 밝혀지지 않은 잘못으로 비난을 받고 고소당했으며, 1585년 총회 교령으로 평신도 수사로 좌천되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영적 대화Certamen spirituale」는 1589년 베네치아에서 익명으로 출판되었다. 1610년, 그가 선종하고 며칠이 지난 후 이 책은 처음으로 저자의 이름과 함께 볼로냐에서 발행되었는데 (이미 50쇄가 발행된 때였다.)「심전: 영적 전쟁Il combattimento spirituale」은 탄탄한 교리를 다룬 66개의 장에서 단순하고 실천적인 수덕적 방법으로 수행되는 “영적 전략 처방전”이다. 이 책은 자아부정을 바탕으로 하느님과의 일치로 완성되는 온전한 내적 완덕을 향해 독자를 이끈다.
6 프란치스코 디 파올라 카세타(Francesco di Paola Cassetta,1841년 로마에서 태어나 1919년에 선종함). 그는 로마 신학교에서 신학은 물론 민범과 교회법 박사 학위를 받았다. 1865년 8월 10일 사제로 수품된 그는 비그리스도인들에게 선교사로 파견되기를 바랐으나, 교회에 순명하여 로마에 머물러 젊은이들의 교육에 전념했다. 그는 주교로 수품되었고, 후에 비오 12세 교황이 된 에우제니오 파첼리에게 서품을 주었다. 그는 공의회성성(지금의 성직자성)과 교육성 장관, 성 로마교회의 사서였다. 추기경으로서 그는 가장 현대적인 형태의 가톨릭 활동을 열렬히 추진한 인물이었으며, 성 바오로의 흘러 넘치는 사랑을 자기 삶의 이상으로 삼았다. 그는 가족에게서 상속받은 많은 유산을 가장 가난한 선교지역을 위해 포교성성(지금의 인류복음화성)의 처분에 전적으로 맡겼다.
7 알베리오네 신부는 여전히 이렇게 말할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 가운데 제기되는 모든 질문에 대해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재건하십시오Instaurare omnia in Christo.’라는 답 외에 다른 해결책은 없습니다. 구원이 바로 그러한 재건에서 비롯되지 않을까요?”(Pr 5, p.28. 1954년 5월 23일, 비오 10세 시성식을 기념하여 바오로인 공동체에게 한 강론) 1960년 4월, 아리차에서 열린 바오로인 피정에서 그는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유일한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 잘 알고 본받고 기도하며 선포하십시오.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이 통합되며 요약됩니다.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재건하십시오. 모든 것 안에서 항구하십시오. 여러분의 스승은 오로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십니다 omnia instaurare in Christo - In ipso omnia constant - Magister vester unus est Christus.”(「완전한 하느님의 사람이 되기 위하여」UPS II, pp.243-244) 며칠 전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의 아들은 첫 번째 건물(피조물)을 고치러, 다시 말해 인간성과 그 능력을 재건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를 위해 그분은 지성(그분은 진리이십니다)을 재건했고, 의지(그분은 길이십니다)를 재건했으며, 감정(그분은 생명이십니다)을 재건했습니다.”(「완전한 하느님의 사람이 되기 위하여」 UPS I, p.369)
8 p. 203의 각주 9 참조.
9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도덕적 영적 “깨달음”에 대한 예가 p.21에 소개된다. 여기서 알베리오네 신부는 복음을 한층 열심히 읽음으로써 얻는 깨달음에 대해 말한다.「교회생활 안에서의 성경La Bibbia nella vita della Chiesa」(1995, CEI) 9항은 이렇게 말한다. “종합적으로 우리는 성경을 바탕으로 한 깨달음의 세 가지 근본적 표징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곧 하느님 말씀의 근원에서 이끌어낸 근본적이고 내적인 믿음의 쇄신,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하느님말씀의 우선성을 의식적으로 긍정하며 받아들임, 그리고 성경이 지지하는 교회 일치 여정의 촉진입니다.”
10 “거룩한 책을 읽는 사람은 거룩한 언어를 취하고, 거룩한 언어를 말하며, 거룩한 효과를 냅니다. … 많은 설교, 많은 책, 많은 권고가 인간의 말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이면 더 효과적일 것입니다.”(1935년 1월 15일,「출판 사도직 협력자회Unione Cooperatori Apostolato Stampa」 1항, p.3) “장미수처럼 감성적인 신심을 조장하는 수덕주의 서적을 찾지 말고 복음, 곧 탄산수 같은 신심을 찾으십시오.”(1941년 6월, IA 1, p.34)
11 조반니 파피니(1881년 피렌체에서 태어나 1956년에 선종함). 그는 젊어서부터 틀에 박힌 연구에는 뜻이 없었고, 독서에 심취하였으며, 교의에 대한 열성적인 문화 조직가가 되었다. 실용주의에서 미래주의, 파시즘, 가톨릭교에 이르기까지 모험하며 돌아다닌 그의 모험적인 방황은 모든 확실성과 가치를 탕진한 세계에서 활동하는 지적인 그의 불안한 의식을 드러낸다.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그에게 깊은 의식성찰을 하게 하여 마침내 공적인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이러한 결말은 극렬한 무신론자 지성인이 회심하는 귀감으로 놀라운 호응과 공명을 불러일으키며 널리 알려졌다. 1921년에 쓴「그리스도 이야기La Storia di Cristo」로 그는 국제적 명성을 크게 얻었다. 그 생애의 마지막 몇 년 동안 그는 오랜 병고로 움직이지 못했고, 시력과 언어까지 상실했지만 학자요 저술가로서의 열렬한 활동을 앗아가지는 못했다. 이 각주에 실린 파피니에 대한 인용문은 본문에 넣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우리는 생각했다.
12 원래 이 책(LS)에는 이사 45,15-26로 되어 있다. 불가타 번역본에 나오는 이사야서 45장은 26절까지 있는데, 새 번역본은 25절까지 있다. 23절과 24절 내용이 23절에 포함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