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o Giacomo Alberi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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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성경을 읽는 자세

성 마르코

사도행전에는 “마르코라 하는” 제자 요한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불렸는데, 예루살렘에 있는 그의 어머니 집에는 박해 시대에 형제들이 모여 살았습니다.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안티오키아의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모금한 것을 예루살렘의 형제들에게 전한 다음 요한 마르코를 데리고 갔습니다.
첫 번째 선교 여행 중에 마르코는 바오로와 바르나바와 함께했지만, 그는 고된 여정이 힘들어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공의회 이후 바르나바가 그 제자를 다시 데려가고자 했을 때 바오로는 이를 허용하지 않아, 두 사람은 서로 떨어져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마르코는 바르나바와 함께 키프로스로 갔지만, 그는 성 바오로와 조화로운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사실 바오로는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마르코를 자기의 협력자라고 부릅니다. 그 당시에 마르코 복음사가는 로마에 있었고, 얼마 동안 성 베드로와 함께 머물렀는데 요한 마르코는 바오로 사도에게 돌아와 그에게서 사명을 받았습니다. 이집트로 파견된 그는 그곳에서 알렉산드리아 교회를 세웠으며 그곳에서 순교하였습니다. 그 후(9세기)에 그의 시신은 베네치아로 옮겨졌으며, 그곳에 그의 이름을 붙인 유명한 대성당이 세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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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복음

교부들은 성 베드로의 조언과 그의 승인에 따라 로마인들을 위해 로마에서 쓴 두 번째 복음서의 저자가 성 마르코라는 사실에 만장일치로 동의하고 있습니다.
성 예레니모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로마에 있는 형제들의 요청에 따라 성 베드로의 제자이자 통역자인 마르코는 베드로에게서 들은 대로 짧은 복음서를 썼습니다. 그 복음서를 승인한 베드로는 이를 교회에서 읽게 했습니다.” 사실 두 번째 복음서에는 성 베드로의 설교의 요약임을 증명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성 마르코는 자신의 스승에게 바쳐진 모든 칭송을 생략합니다. 서술 방식은 성베드로가 했던 말을 동시통역자처럼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성 마르코는 자주 교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특정 상황을 추가하며 세부적인 내용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지만,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는 목격자를 자신이 본 그대로 전개합니다.
성 마르코의 복음서 저술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전통에 따르면 두 번째 복음서는 성 베드로의 설교를 기억하고 싶어했던 로마인들의 요청에 따라 쓰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 베드로의 설교의 주요 목적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힐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복음사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연과 마귀와 질병에 대해 행사하시는 권능을 강조하고 있어 마르코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기적들의 복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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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 상 20
성경을 읽는 자세

 

“제 눈을 열어주소서. 당신 가르침의
기적들을 제가 바라보오리다.”
(시편 119,18)

성경은 무엇보다 열렬한 정신으로 읽어야 합니다. 그 의미를 파악하고 중요성을 자세하게 살펴보기 위해 가장 강도 높은 목마름과 갈망을 지녀야 합니다.
성경은 큰 사랑으로, 자녀다운 사랑을 다해1* 읽어야 합니다. 성경은 하느님의 편지,2 곧 우리의 천상 아버지께서 보내신 편지입니다. 하느님은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으로 그 편지를 우리에게 주셨기에, 우리는 자녀다운 사랑을 다해 그 편지를 읽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이기에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받습니다. 모든 사람과 함께 머물면서 놀라운 일들에 대해 그들과 함께 이야기하고자 하신 하느님께서는 무엇을 하실까요? 하느님은 그들에게 긴 편지를 써서 교회에 맡기셨고, 교회는 충실한 우편배달부로서 모든 사람이 저마다 걸어가는 길에서 깨달음을 얻고, 언젠가 천국에 계신 하느님께 갈 수 있도록 그 편지를 사람들에게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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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하느님을 위해 어떻게 고행과 사랑을 해야 할지 모른다며 투덜거리는데 성경을 손에 들고 읽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는 하느님의 마음을 향한 가장 아름다운 흠숭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가 스승 예수님께 할 수 있는 가장 진실한 사랑의 행동은 우리가 스승 예수님의 학교에 가서 그분의 거룩한 가르침에 귀 기울이는 것입니다.
어떻게 흠숭해야 하는지 모른다고요? 성경을 읽으십시오. 반드시 긴 내용을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몇 구절만으로도 우리 영혼을 살찌우며 열렬히 사랑하게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비판이나 세속적 연구 목적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무엇보다 주님을 찾기 위해, 주님을 더 많이 사랑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성경을 읽어도 그 마음이 텅 비어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할 뿐 아니라, 성경을 읽으면서도 교만에 가려진 눈 때문에 메시아의 특징을 발견하지 못한 바리사이들에게 일어났던 것처럼 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메시아가 오셨을 때 바리사이들은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3 그들은 그분을 알아뵙지 못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죽음에 처하게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은 성경의 의미를 꿰뚫어보며 올바르게 해석합니다. 그들은 성경에 쓰인 글자 이면에 계신 주님을 알아뵙고,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이 사랑받으시도록 하는 방법을 깨닫게 됩니다.4*
역사는, 하느님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찾기 위해 성경을 읽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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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 대한 많은 예화를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그들은 겸손이 아니라 교만한 마음을 지니고 있어 결국에는 하느님 대신 악마를 발견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성경을 그릇된 지향으로 읽은 다음 저주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 * *

성 바오로의 말씀처럼 “성경은 전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인 것으로, 가르치고 꾸짖고 바로잡고 의롭게 살도록 교육하는 데에 유익합니다.”(2티모 3,16) 무엇인가를 배우려는 목적으로, 또 나중에 가르칠 수 있으려면 먼저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과 이웃을 바로잡아 교정할 수 있으려면, 또 우리에게 의지하는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려면 먼저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더욱이 성경은 위로를 얻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그러므로 낙심하게 될 때마다 성경을 읽읍시다. 성경은 우리 영혼에게 가장 맛깔스러운 양식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신 빵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성경을 맛있게 먹읍시다. 날마다 물질적 인 양식이 우리 몸에 필요하듯이 영혼도 천상 양식으로 매일 양육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무엇보다 성성, 곧 모든 원수에 맞서 싸워 이기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기도하고 묵상하는 법을 찾아야 합니다. 성경은 영성체, 묵상, 미사, 양심성찰 등 모든 신심 실천에 가장 필요합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신심을 실천하는 이들이 완덕의 길에서 얼마나 많이 진보하는지 모릅니다! 성경은 삶의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며, 의심스럽고 불확실한 순간에 빛을 비춰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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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우구스티노가 말하듯이 성경은 “우리를 하느님께로 이끌고,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초대하고, 마음을 비추고, 혀를 정화하고, 양심을 따르게 하고, 영혼을 성화하고, 믿음을 굳건히 다져주며, 악마를 몰아내고, 죄를 미워하게 하고, 냉랭한 영혼을 따뜻하게 하고, 학문에 빛을 주고, 무지의 어두움을 몰아내고, 시대의 부패를 막아주고, 성령의 기쁨을 불러일으키며, 목마른 이들에게 마실 물을 줍니다.”5* 성 바오로가 “신심은 모든 면에서 유익합니다.”(1티모 4,8)6라고 신심에 대해 말한 것을 우리는 성경에 적용하여 말할 수 있습니다. 곧 성경은 모든 것에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 * *

거룩한 복음 봉독에 관한 매우 아름다운 구절이 여기「그리스도를 본받아」에 나옵니다.
“오, 그리스도인이여,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대해 묵상하는 것이 그대가 하는 가장 큰 공부가 되게 하시오. 성경을 읽는 것은 능수능란한 웅변이 아니라 진리를 찾기 위한 것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는 성경이 쓰인 바로 그 정신대로 읽어야 합니다. 표현의 미묘함보다 성경의 유용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익을 얻으려면 겸손하고 단순하며 인내심을 가지고 성경을 읽으십시오. 성경을 아는 사람에게 그 내용을 전달하려 하지 마십시오. 지나친 호기심은 종종 성경을 읽는 데 방해가 됩니다. 우리는 단순하게 전달된 내용을 이해하며 살펴보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는 것이 참으로 영혼에게 유익하게 하려면 성경을 읽기 전 · 후에 기도해야 합니다.7* 그리고 최대한 존경하는 마음으로, 가능하면 두 손을 모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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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을 꿇은 후 “오, 주님, 말씀하소서. 당신 종이 듣고 있나이다.” 하고 주님께 말씀 드린 다음 성경을 읽으십시오. 성경을 읽은 다음에는 미사 때 사제가 복음서를 봉독한 다음 입맞춤을 하도록 교회가 규정한 것처럼 애정과 사랑의 표시로 거룩한 본문에 입맞춤 하십시오. 더욱이 자신이 읽은 내용에 대해 짧게 묵상하고 하루를 위한 실천적 결심을 해야합니다.”
성경을 읽는 것을 규칙으로 삼아 이를 충실히 따릅시다.
15분씩 거룩한 복음을 읽는 사람들에게 성 레오 13세는 교황청 대사(1898년 12월) 개정안을 다음과 같이 승인했습니다.
하루에 한 번, 300일 대사
한 달에 한 번, 하루 중 어느 때나 15분간 성경 봉독을 하는 사람에게 주는 전대사.
조건 : 고해성사, 영성체, 교황의 지향에 따라 바치는 기도.
성 비오10세8는 1903년 8월 28일 성 예로니모 수도회9의 모든 회원이 거룩한 복음을 전하는 경우 성 예로니모 축일(9월 30일)이나 팔부 축제 동안 어느 날이든 전대사를 받도록 허락했습니다. 그리고 거룩한 복음사가인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9월 21일, 4월 25일, 10월 18일, 12월 27일) 축일에는 300일의 속죄기간을 통한 대사10*를 내렸습니다.
이는 사람들의 영혼이 날마다 성경을 읽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양식으로 만드는 일을 교황들이 얼마나 마음 깊이 원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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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감 – 성 코톨렌고.11 성 코톨렌고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는 온 생애에 걸쳐 끊임없이 신앙을 실천하였기에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12라는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성 바오로의 서간 말씀을 그에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믿음, 그러나 드높은 믿음”이라고 그 자신이 말했듯이 그는 매우 높은 단계의 성덕에 도달했으며,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선행의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코톨렌고는 어린시절부터 본당신부님의 주일 강론에 많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를 직접 보는 행운이 있었던 사람은 누구나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가 강론에 몰두한 나머지 자기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자기 방을 성당으로 꾸민 후, 들은 강론을 자신의 설교대에서 다시 반복하는 것을 듣는 것은 정말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고 합니다!
사제가 된 그는 미사 때 거룩한 복음을 봉독하는 순간이 되면 마음이 불타올라 말씀에 힘을 주어 천천히 또박또박 읽음으로써 모든 이가 말씀을 잘 알아듣게 했습니다. 봉독 후 그는 전례에서 규정한 대로 미사 독서 경본을 높이 들고 그 위에 입맞춤을 하곤 했는데, 미사를 도와주던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다 알 만큼 성경에 대한 애정이 넘쳤고, 열렬했습니다. 복음에 입맞춤할 때면 자기 입술로 그 말씀을 너무 세게 누른 나머지 마치 목마른 이가 물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참으로 그는 신비로운 음료를 거룩한 복음에서 빨아들였고, 하느님과 이웃 사랑에 흠뻑 취하여 열렬하게 자선 활동을 펼쳤습니다.
그가 ‘작은 집Piccola Case’을 세웠을 때부터 이미 성경에 대한 그의 사랑이 입증되었습니다. 그는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이 세운 수도회 외벽에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희망과 확신을 불러일으키는 말씀을 새기게 했고, 내벽에도 하느님의 말씀을 걸어 두게 했습니다.
거룩한 미사와 영성체를 통해 성체를 모시기 위해 준비해야 했던 모든 이에게 그는 자신이 바란 신심의 귀감을 보여주기 위해 때때로 그 자신이 성체를 분배했습니다. 그가 사람들을 준비시키는 동안 그는 주님의 수난과 지극히 거룩한 성체성사 제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구약과 신약에 나오는 말씀을 읽게 했습니다.

작은 희생 : 미사나 성체조배 때 성경 구절을 읽고 묵상한 다음 실천적 결심을 할 것을 제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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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가 [#](모세의 노래 계속)

정녕 그들은 소견이 없는 백성이며
슬기가 없는 자들이다.
그들이 지혜롭다면 이것을 이해하고
자기들의 끝이 어떠할지 깨달을 터인데.
그들의 바위께서 그들을 팔아 버리지 않으신다면
주님께서 그들을 넘겨주지 않으신다면
어찌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을 수 있으며
두 사람이 만 명을 도망치게 할 수 있으랴?
우리 원수들이 스스로 판단을 내린다 하더라도
정녕 그들의 바위는 우리의 바위와 같지 않다.
그들의 포도나무는 소돔의 포도나무이며
고모라의 밭에서 나온 것.
그들의 포도는 독 포도여서 송이마다 쓰기만 하다.
그들의 포도주는 뱀의 독, 독사의 무서운 독이다.
“그것은 나에게 간직되어 있지 않느냐?
나의 보고 안에 밀봉되어 있지 않느냐?
그들의 발이 비틀거릴 때
복수와 보복은 내가 할 일,
멸망의 날이 가까웠고
그들의 재난이 재빨리 다가온다.”
당신 백성의 힘이 다함을,
노예도 자유인도 남아 있지 않음을 보시고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의 권리를 옹호하시며
당신의 종들을 가엾이 여기시리라.
주님께서 말씀하시리라.
“그들의 신들은 어디 있느냐?
그들이 피신처로 삼던 바위는 어디 있느냐?
그들이 바친 희생 제물의 굳기름을 먹고
그들이 따라 바친 제주를 마시던 것들이 아니냐?
그것들에게 일어나 너희를 도와 달라고,
너희의 피난처가 되어 달라고 하여라.
이제 너희는 보아라! 나, 바로 내가 그다.
나 말고는 하느님이 없다.
나는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나는 치기도 하고 고쳐 주기도 한다.
내 손에서 빠져나갈 자 하나도 없다.
나는 하늘로 손을 들어
나의 영원한 삶을 두고 맹세한다.
내가 번뜩이는 칼을 갈아
내 손으로 재판을 주관할 때
나의 적대자들에게 복수하고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되갚으리라.
내 화살들이 피를 취하도록 마시고
내 칼이 살코기를 먹게 하리라.
살해당한 자들과 포로들의 피를 마시고
적장들의 머리를 먹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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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들아, 그분의 백성에게 환호하여라.
그분께서는 당신 종들이 흘린 피를 갚아 주시고
당신의 적대자들에게 복수하시며
당신 땅과 당신 백성의 죄를 풀어주신다.(신명 32,28-43)

독 서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에 떨어져 발에 짓밟히기도 하고 하늘의 새들이 먹어 버리기도 하였다. 어떤 것은 바위에 떨어져, 싹이 자라기는 하였지만 물기가 없어 말라 버렸다.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한가운데로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함께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 그러나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 자라나서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하고 외치셨다.(루카8,5-8)

 

기 도

만물의 주 하느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모든 민족들 위에 당신에 대한 두려움을 펼치소서. 이민족들을 거슬러 당신의 손을 들어 올리시고 그들이 당신의 권능을 보게 하소서. 그들 앞에서 저희를 통하여 당신의 거룩함을 드러내셨듯이 저희 앞에서 그들을 통하여 당신의 위대함을 드러내소서. 주님, 당신 말고는 어떤 신도 없다는 사실을 저희가 아는 것처럼 그들도 알게 해 주소서. 새로운 표징을 보여주시고 다른 기적을 일으켜 주소서. 당신 손과 오른팔의 영광을 드러내 보이소서. 진노를 일으키시고 분노를 쏟아 부으시어 적을 쳐부수시고 원수를 없애소서. 시간을 재촉하시고 정해진 때를 기억하소서. 사람들이 당신의 위대하신 업적을 헤아리게 하소서. 분노의 불꽃이 살아남은 자마저 사르고 당신의 백성을 학대하는 자들이 멸망하게 하소서.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다.” 고 말하는 적의 통치자들의 머리를 부수어뜨리소서. 야곱의 모든 지파들을 모아들이시고 처음처럼 그들 각자에게 상속 재산을 나누어 주소서. 주님, 당신 이름을 지닌 백성을 불쌍히 여기시고 맏아들로 대우해 주신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의 성소가 있는 도성이요 당신의 안식처인 예루살렘에 자비를 보이소서. 당신 위업에 대한 찬미로 시온을 채우시고 당신 영광으로 당신의 성전을 채우소서.13 당신께서 한처음에 창조하신 이들을 증언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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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당신의 이름으로 선포된 예언들을 성취시켜 주소서.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보답을 주시고 당신의 예언자들이 옳다는 것을 드러내 주소서. 주님, 당신 백성에 대한 호의로 당신 종들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이 세상 만민이 당신께서 영원하신 주 하느님이심을 깨닫게 하소서.(집회 36,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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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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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Nemo potest sensum Scripturae sacrae cognoscere, nisi legendi familiaritate, sicut scriptum est: Ama illam et exaltabit te: glorificaberis ab ea, cum ea fueris amplexatus.” [“기록된 바에 따르면, 성경을 열중하여 읽지 않고서는 아무도 성경의 의미를 알 수 없다. 성경을 사랑하라. 그러면 성경이 그대를 들어 높일 것이다. 그대가 성경의 품안에 머물러 있으면 성경은 그대를 영광스럽게 할 것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2 이 주제에 대해 성 아우구스티노를 인용하는 이탈리아주교위원회(CEI)의 사목적 주석에서 이렇게 강조한다. “다가온 우리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편지를 보내 주시어 그 [천상] 도시의 성경 말씀이 우리에게 다가오게 하여 우리에게 집으로 돌아가려는 갈망이 타오르게 한다.” 우리는 이러한 편지들을 “열정적이고 지적이며 기도와 순종하는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교회 생활 안에서의 성경」, 14항 참조)

3 “Et sui eum non receperunt.”(요한 1,11)

4* “복음은 숭고한 힘을 지닌다. ... 성경이 말하는 방식은 모든 사람에게 접근할 수 있지만,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 깊은 곳까지 침투해 들어가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간직한 명백한 진리를 어떤 기교도 부리지 않고 절친한 친구처럼 무지한 사람과 박학다식한 사람 모두의 마음에 제안한다. … 복음적 가르침은 그 자유로움으로 숭고하다.”(성 토마스 아퀴나스)

5* 성 아우구스티노, 「설교」, 28.

6  “Pietas ad omnia utilis est.”

7* 이 책 맨 끝에 나오는 성경을 읽기 전과 성경을 읽은 후에 바치는 기도를 보라.

8 비오 10세는 1951년 6월 3일 비오 12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954년 5월 9일 성인품에 올랐다.

9 성 예로니모 수도회는 1902년에 설립된 자치 단체로 자체의 자금과 동료, 성직자, 평신도들의 기부금으로 운영되었으나, 마침내 교황청에 위임되었다. 이 수도회는 1902년 4월 27일, 후에 베네딕토 15세 교황이 된 제임스 델라 키에사 몬시뇰의 집에서 첫 모임을 가졌다. 수도회의 목표는 “이탈리아어 복음서의 출간과 보급을 촉진하고, 이탈리아어를 사용하는 모든 나라에서 보급 활동을 확장하는 것”이었다. 이 수도회가 보급하기 시작한 복음서 초판은 불가타 번역본을 바탕으로 같은 수도회 회원들이(Fr. G. 클레멘티, Fr. G. 메르카티, 평신도 노가라 씨) 쓴 간략한 주석을 넣어 만들어졌다. 1902년 11월에 119,702권이 보급되었으며, 같은 책이 1944년에는 516쇄나 재판되었다. 마침내 사도행전이 복음서에 추가되어 신약성경 전체가 나오게 되었고, 구약성경 전체를 현대 언어로 의역하는 것에 대해 고려하게 되었다. 수도회는 상업적 목적이 아니므로 언제나 저렴한 가격에 성경을 발행했다.

10* 이 대사는 다른 성경 책이 아니라 복음을 읽을 때만 받았다.

11 주세페 코톨렌고(Giuseppe Cottolengo, 1786년 5월 3일 - 1842년 여름). 복자 알베리오네 신부와 같은 쿠네오 주 브라 출신으로, 1917년 4월 29일 베네딕토 15세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고, 1934년 3월 19일 비오 11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그는 “선행의 천재’로 알려졌다. 토리노에 있는 “하느님 섭리의 작은 집”을 설립했고,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는 세 개의 수도회를 세웠다. 알베리오네 신부에게 있어 그는 섭리에 의탁하는 신앙의 모범이며, 본인이 창립한 수도회를 교회가 공식적으로 인가한 경우의 귀감이었다.(AD, 131-134항 참조)

12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로마 1,17) 사실 모세 율법이나 그 활동과 의식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의화에 이르는 것에 관련된 중요한 이 표현은 하바 2, 4에 속한다. 이는 또한 갈라 3,11과 히브 10,38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시점에서 적어도 바오로 학파에 속한 것처럼 보인다.

13 206번에서 209번으로 넘어간 것은 원본 pp.207-208이 예언자 요나와 미카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른 경우에는 본문 외의 페이지로 간주도어 이 부분이 계산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