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요한의 첫째 서간. 성 요한의 첫째 서간은 넷째 복음(요한 복음)의 서문으로 쓰인 것 같습니다. 이 서간은 넷째 복음 내용을 요약해 줍니다. 따라서 이는 특정 교회들만을 위해 쓰인 것이 아니라 교회 전체를 위한 것입니다. 이 서간은 에페소에서 쓰였으며, 요한 복음의 입문으로 발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서간은 특히 유다교와 철학자들과 합세하여 구세주의 존엄성을 모욕하는 영지주의가 탄생한 소아시아와 관련됩니다. 그들은 하느님과의 일치는 그저 도덕적인 면에서의 일치일 뿐이라 스쳐 지나가 버린다고 하거나 삼위일체적인 일치를 아예 부정하기도 했습니다. 악의 원리에서 비롯되기에 본질적으로 악 자체인 육체와 하느님은 일치할 수없기 때문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인간에게는 그 어떤 구원도 필요하지 않다고 여겨 구원을 거부했으며, 오로지 교육과 영지(신비 차원에 대한 지식과 이해)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서간에서 성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하느님이시고 참 인간이시며, 중개자, 희생 제물, 은총과 용서의 원천이심을 확인하며 오류와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성 요한의 둘째 서간. 이 서간에는 성 요한이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고 길이가 짧으며, 모든 초대 교회에 알려지지 않았다 해도, 의심할 여지 없이 그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문체와 교리가 담긴 성 요한의 작품임이 분명합니다. 글을 쓰는 원로는, 사도들 가운데 살아남아 불멸하는 사람으로 여겨진, 존경받을 만한 에페소의 원로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랑의 사도는 이단자들을 강력하게 비난하며 교회에서 내쫓습니다.
이 서간은 선택받은 부인과 그 자녀들에게 보낸 것이지만, 우리는 그 선택받은 부인이 여성인지 교회인지 모릅니다. 그는 그 부인의 자녀들이 덕스럽게 살아가는 것을 기뻐하며, 믿음과 사랑에서 성장하며 이단자들을 경계하라고 권고합니다. 그는 곧 방문할 것을 약속합니다.
이 서간은 성 요한의 말년인 100년경에 에페소에서 쓰인 것이 틀림없습니다.
성 요한의 셋째 서간. 둘째 서간에서 언급된 내용이 셋째 서간에서도 언급됩니다. 둘째 서간에서처럼 셋째 서간에도 ‘요한’이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셋째 서간에서는 ‘원로’라고 일컫습니다. 1세기 말 에페소에서 쓰인 이 서간은 예전과 같은 이단자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고령이 된 사도가 개인적으로 쓴 편지를 보여주는 가장 아름다운 예입니다.
이 셋째 서간은 (부유하고 열심한 그리스도인) 가이오스가 복음의 일꾼들에게 베푼 환대를 칭찬하고, 디오트레페스라는 사람에 대해 경고하며, 데메트리오스라는 사람을 추천하려는 목적을 지니기 때문에 둘째 서간보다 더 개인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당신 말씀이 제 혀에 얼마나 감미롭습니까!
그 말씀 제 입에 꿀보다도 답니다!”
(시편 119,103)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이며 영혼의 양식입니다. 그 양식이 좋은 효과를 내게 하려면 올바르게 섭취해야 합니다.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는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매우 소중하며 놀라운 효과를 내는 살아있는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20일째 묵상1에서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갖춰야 할 자세에 대해 살펴보았는데, 이러한 자세만으로는 성경을 효과적으로 읽는 데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또한 성경을 구성하는 72권의 책을 읽기 위해 따라야 하는 순서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성경을 읽는 방법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세 가지 주요 방법을 언급하고자 합니다. 성경은 신학적 순서, 우리에게 익숙한 순서, 전례에 따른 순서에 따라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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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학적 순서. 이는 트리엔트 공의회가 제시한 순서에 따라 성경에 나오는 여러 책을 읽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창세기에서 시작하여 레위기, 탈출기 등으로 이어지며 묵시록으로 끝납니다. 이 방법은 가톨릭 출간 성경 발행본에 나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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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법은 평범한 교양인에게 권장되는데, 참된 지적 소양을 갖추고자 하는 사람들과 모든 학구파들이 이 방법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신앙이 무르익을 때 읽는 것이 더 좋다고 알려진「아가」는 따로 남겨 둘 수 있습니다.
이 순서에 따라 하루에 15분을 할애하면 2년 만에 우리는 평범한 주석이 달린 성경을 전부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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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리에게 익숙한 순서. 이는 많은 수덕 신학 저자가 권고하는 순서입니다. 이는 거룩한 웅변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아우디시오2가 무척 선호하며 권장한 것입니다. 이는 신약성경 전체를 먼저 읽습니다. 아우디시오가 말했듯이, “신약성경에는 구약성경의 모든 사제직과 모든 율법은 물론|
구약성경의 발전과 완성, 온갖 그림자, 모든 인물, 모든 예언이 담겨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유다의 선지자들이 쓴 글을 에워싼 어둠을 없애는 빛을 비추어주기 때문입니다. 타볼산에서의 변모 사건에서 예수님의 얼굴에 환히 빛난 광채는 모세와 엘리야의 얼굴에 반영되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무엇보다 성경의 사고방식을 갖추도록 도와주는 가장 쉽고 적합한 역사서를 읽은 다음 교훈서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난해한 예언서를 읽으라고 권고합니다.
가장 많이 권장하는 이 방법은 매우 유용한 것입니다.
네 복음서를 먼저 읽지 않으면 이사야의 예언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거룩한 복음을 읽은 다음 예언서를 읽을 때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됩니다. 단어와 모든 구절에 신비로운 의미를 담고 있는 예언서는 신약성경에 나오는 내용과 관련됩니다.
실제로 신약성경의 역사서인 네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먼저 읽습니다.
교훈적인 책들 곧 성 바오로, 성 베드로, 성 요한, 성 야고보, 성 유다와 같은 사도들이 쓴 서간 전체를 읽고.
예언서인 묵시록을 읽습니다.
그런 다음 구약성경의 역사서인 창세기, 탈출기, 레위기, 신명기, 여호수아기, 판관기, 룻기, 임금들에 대한 네 권의 책(사무엘기 상∙하권, 열왕기 상∙하권 -옮긴이), 역대기 두 권, 에즈라기, 느헤미아기, 토빗기, 유딧기, 에스테르기, 마카베오의 두 권의 책을 일고.
교훈서 또는 지혜서인 욥기, 시편, 잠언, 코헬렛, 아가, 지혜서, 집회서를 읽은 후.
예언서인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애가, 바룩서, 에제키엘서, 다니엘서와 같은 대예언서와 열두 소예언서들을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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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전례에 따른 순서. 교회가 정한 순서로서, 모든 사제는 이 순서를 따라야 합니다.
완전하고 지혜로운 스승인 교회는 사제들이 거룩한 미사를 드리며 성무일도로 기도하는 가운데 날마다 조금씩 주요 성경 구절을 봉독하게 됩니다. 모든 사제는 죄를 마음 아파하는 가운데 성경 구절을 읽을 의무를 지닙니다. 의식적으로 이를 소홀히 하는 사람은 대죄를 범할 수도 있습니다.
바로 여기서 성경을 읽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지, 교회 사제들이 하느님께서 그 큰 사랑과 지혜로 준비해 주신 식탁에서 양분을 얻는 것이 교회에 얼마나 중요한지 드러납니다! 성경을 읽지 않으면 그 누구도 영혼들의 착한 목자가 될 수 없습니다. 성경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영혼들의 목자가 목초지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유익한 목초지로 양들을 이끌 수 있겠습니까?
때문에 교회 초창기에 사제 서품을 받으려면 시편 전체를 암기해야 했고, 성경의 모든 책을 매우 잘 알고 있어야 했습니다! 성경에 대해 알지 못하면 사제로 서품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믿는 이들 편에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신자들은 자신의 목자인 사목자가 올바른 길을 가고 있으며, 신자들의 영혼이 바라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면서 그 뒤를 충실하게 따라가야 합니다.
실제로 우리는 날마다 읽어야 할 구절을 세부적으로 여기서 다 언급할 수는 없습니다. 개괄적으로 몇 가지만 언급하는 것으로 만족합시다.
대림 시기가 시작되기 전 몇 주 동안, 곧 11월 한 달 동안, 교회는 에제키엘, 다니엘,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디아, 요나, 미카, 나훔, 하바쿡, 스바니야, 하까이, 즈카르야, 말라키와 같은 예언자들의 예언서를 읽게 됩니다. 그리고 대림 시기가 시작되면 메시아에 대한 가장 훌륭한 예언, 가장 많은 예언을 한 이사야 예언서를 읽습니다.
성탄 시기와 주님공현대축일 전·후에는 로마 신자들, 코린토 신자들, 갈라티아 신자들, 에페소 신자들, 필리피 신자들, 콜로새 신자들, 테살로니카 신자들, 티모테오, 티토, 필레몬,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성 바오로 서간을 읽습니다. 성탄 시기가 끝난 후 칠순 주일과 사순 시기3가 시작되면 교회는 창세기를 읽습니다. 창세기에는 아담과 하와의 죄와 그 죄에 대한 처벌 이야기가 나옵니다.
수난 시기가 다가오면 예언자 예레미야의 애가를 읽습니다.
파스카 이후, 교회는 원죄 없는 어린 양의 승리를 언급하는 묵시록을 읽도록 하면서 성 야고보, 성 베드로, 성 요한, 성 유다의 서간을 읽습니다.
이렇게 해서 성령강림 이후 연중 시기 여정이 펼쳐지면서 여러 역사서와 지혜서가 함께합니다. 7월 한 달 동안은 왕들에 대한 네 권의 책(사무엘기 상·하, 열왕기 상·하), 8월에는 네 권의 지혜서, 곧 잠언, 코헬렛, 지혜서, 집회서를 읽습니다. 9월에는 욥기, 토빗기, 유딧기, 에스테르기처럼 좀더 쉬운 역사서를, 마지막으로 10월에는 마카베오기를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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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떤 순서로든 성경을 읽을 수 있습니다. 성경을 아무 곳이나 펼쳐 첫 구절을 읽을 수도 있습니다. 이는 박학다식한 성 알폰소가 사용한 방식인데, 그는 이 방법이 매우 효과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유용하고 효과적인 방법은|
교회가 제시하는 방법, 곧 전례에 따른 방법입니다. 이 방식을 따르는 사람은 분명 성덕과 지식의 여정에서 놀라운 성장을 합니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한 8,12)4
귀감 – 단테 알레기에리. 단테의 이름은 그의 주요 작품, 곧 그의 작품에 탄복한 후대 사람들이 “거룩한Divina”이라는 형용사를 붙인 불멸의 “희극Commedia”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고 「신곡Divina Commedia」은 중세 때 단테가 성경에 부여한 흠숭으로, 특히 그의 성경 연구에 대한 증언이기도 합니다.
사실 알레기에리가 그토록 성경 구절을 자주 인용한 것은 아마도 성경에 매우 익숙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시에 구약과 신약에서 발췌하여 성경 구절을 인용했으며, 많은 부분 성요한과 에제키엘이 본 묵시적 환시에서 가져온 지상낙원에 대한 장엄한 상징을 인용했습니다.
그가 성경과 관련하여 인용한 여러 성경 구절이 널리 알려져 오늘날에도 우리가 흔쾌히 사용하는 구절들이 많습니다.
주석을 통해 말했듯이 그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교회의 가르침과 안내를 따르라고 권합니다.
그대들은 신약성경과 구약성경을 지니며
그대들을 이끄는 교회 목자가 있으니
그대들의 영혼 구원에 충분하지 않은가!5
그리고 이단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 성경 진리의
이미지들을 일그러뜨리는 칼과 같은
어리석은 사람들도 그랬지요.6
단테가 쓴 이 시는 6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매우 찬란한 후광으로 둘러싸여 가톨릭대학교 교재 가운데 첫 자리를 차지합니다. 이는 우아한 시어詩語의 옷, 곧 거룩한 복음과 가톨릭 신학 가운데 가장 숭고한 진리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작은 희생 : 이 책 끝부분에 나오는 “성 바오로께 바치는 주간기도”를 바친다.
모든 민족들아, 손뼉을 쳐라.
기뻐 소리치며 하느님께 환호하여라.
주님은 지극히 높으신 분이시고 경외로우신 분,
온 세상의 위대하신 임금이시다.
민족들을 우리 밑에,
겨레들을 우리 발 아래 굴복시키셨네.
우리에게 골라 주셨네, 우리 상속의 땅을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야곱의 자랑을.
하느님께서 환호 소리와 함께 오르신다.
주님께서 나팔소리와 함께 오르신다.
노래하여라, 하느님께 노래하여라.
노래하여라, 우리 임금님께 노래하여라.
하느님께서 온 누리의 임금이시니
찬미가를 불러라.
하느님께서 민족들을 다스리신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어좌에 앉으신다.
뭇 민족의 귀족들이
아브라함의 하느님 백성이 되어 모여 온다.
세상의 방패들이 하느님의 것이니
그분께서는 지극히 존귀하시어라.(시편 47,2-10)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그분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벗이 있는데, 한밤중에 그 벗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 그러면 그 사람이 안에서, ‘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 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루카 11,1-13)
주님, 기억하소서, 저희가 어찌 되었는지를. 바라다보소서, 저희의 치욕을. 저희 상속의 땅은 외국인들에게 넘어가고 저희의 가옥들은 이방인들에게 넘어갔으며 저희는 아비 없는 고아들이 되고 저희의 어미는 과부가 되었습니다. 저희의 물을 돈 내고 마셔야 하고 저희의 땔감도 값을 치르고 들여야 합니다.
죄를 지은 저희의 선조들은 이미 없는데 저희가 그들의 죄악들을 짊어져야 합니다. 종들이 저희를 다스리게 되었건만 그 손에서 빼내 줄 이 하나도 없습니다. 광야의 칼 앞에서 저희는 목숨을 걸고 양식을 들여와야 합니다. 굶주린 끝에 신열로 저희 살갗은 불가마처럼 달아올랐습니다.
저희 마음에서 기쁨이 사라지고 춤은 통곡으로 바뀌었으며 저희의 머리에서는 면류관이 떨어졌습니다. 오, 애통합니다. 저희가 죄를 지었으니! 이 때문에 저희의 마음은 괴롭고 이런 것들 때문에 저희의 눈은 어두워졌습니다. 폐허가 되어 여우들이 나돌아 다니는 시온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 당신께서는 영원히 좌정하여 계시고 당신의 어좌는 세세 대대로 이어집니다. 어찌하여 저희를 끝내 잊으려 하십니까? 어찌하여 저희를 영영 버리려 하십니까? 주님, 저희를 당신께 되돌리소서, 저희가 돌아가오리다. 저희의 날들을 예전처럼 새롭게 하여 주소서.(애가 5,1-4.7-10.15-21)
1 p.199 이하.
2 Guglielmo Audisio,「거룩한 웅변의 교훈Lezioni di eloquenza sacra」, 토리노 마리에티, 1858-1859. 토리노 왕실 출판사는 1846년에 이 작품의 2권과 3권을 발행했다.
3 주님공현대축일 시기가 지나면 칠순 주일(재의 수요일 전 셋째 주일)이 다가오고, 이어서 재의 수요일로 시작되는 사순 시기로 접어드는 한편, 부활절 이전 여덟 번째 주일, 곧 부활절 이전 50일이 된다. 칠순 주일은 부활절까지의 70일을 가리킨다. “칠순 주일과 사순 시기 동안 거룩한 어머니인 교회는 우리 각자가 자신의 비참함을 진지하게 고찰하여 우리 삶을 실제로 변화시키고, 우리 죄를 진정으로 미워하며, 기도와 참회로 속죄하도록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우리는 지속적인 기도와 우리가 지은 과거의 죄를 참회함으로써 하느님의 도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도움이 없다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헛되고 무익할 것입니다.”(비오 12세,「하느님의 중개자Mediator Dei」, 1947년 11월 20일)
4 “Qui sequitur me non ambulat in tenebris.”
5 단테 알레기에리(1265년 피렌체 - 1321년 라벤나),「신곡」, “천국편,” 5곡, 76-78행.
6 단테 알레기에리,「신곡」, “천국편”, 13곡, 127-129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