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손자가 쓴 머리글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의심할 여지 없이 그가 바로 집회서2의 영감받은 저자입니다. 50장 27절에는 “엘아자르의 아들, 시라의 아들인 나 예수는 마음으로부터 지혜를 이 책에 쏟아 부었다.”3고 말합니다. 예루살렘 출신인 그는 지혜 연구에 평생을 바쳤으며, 지혜를 얻기 위해 심각한 많은 위험을 감수하는 긴 여행을 떠났는데, 마침내 그는 자신의 연구에서 풍성한 결실을 얻었습니다. 그는 성경에 대한 깊은 지식으로 인해 널리 알려졌으며, 바로 그 성경에서 참된 지혜를 얻었습니다.
거룩한 저자가 오니아의 아들인 대사제 시몬 2세에 대해 말하는 방식은 저자가 그와 동시대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따라서 우리는 집회서가 기원전 2세기에 쓰였고, 곧바로 저자의 손자에 의해 그리스어로 번역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집회서는 교회 초기에 교회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집회서”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어 본문에는 “시라의 지혜”라는 제목이 나옵니다. 사실, |
그는 독자들에게 지혜를 향해 나아가라고, 곧 모든 덕을 실천하라고 권고합니다.
이 책은 머리글과 결론 부분을 제외하고는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머리글에서는 지혜를 추구하라는 권고에 이어 지혜의 기원과 열매를 묘사하고, 지혜와 하느님께 대한 경외심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줍니다.
제1부는 교리적이며 참된 지혜와 덕의 실천이 무엇을 뜻하는지 제시합니다.
이와 달리 제2부는 역사적입니다. 창조주 하느님께 찬미가를 드린 다음 저자는 각각의 피조물을 묘사하면서 자연 속에서 하느님의 업적을 노래하며, 에녹에서 대사제 시몬에 이르기까지 위대하고 거룩한 사람들을 기억합니다.
결론은 지혜를 추구하고 하느님을 찬미하라는 권고를 거듭 반복하며 아름다운 기도로 마무리됩니다.
“당신 계명을 지키려 저는
지체하지 않고 서두릅니다.” (시편 119,60)
이달 초순에4 우리는 성경이 우리 지성을 비추어주는 참된 빛임을 묵상했고, 성경에 담긴 신비롭고 아름다운, 그리고 교회가 이를 거룩한 학문의 가장 큰 부분으로 이끄는 방식과 거룩한 책이 자연 과학을 밝히며 확인하는 길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습니다.
열 차례에 걸친 이 둘째 부분에서는 우리 의지가 어떻게 성경에서 모든 덕의 놀라운 귀감을 찾을 수 있는지 |
또 녹슬거나 영원히 좀먹지 않는 불멸의 재화를 얻게 하는 채찍질과 힘이 되는 모범을 어떻게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지 보게 될 것입니다.
이번에는 성경에서 신덕 가운데 첫째인 믿음이 어떻게 성경에서 솟아나는지 보도록 합시다. 다른 모든 덕이 수많은 말과 귀감을 통해 어떻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권고하는지 살펴봅시다.
오늘 우리는 대신덕의 첫 번째 덕목인 믿음이 어떻게 성경에서 솟아나는지 살펴볼 것입니다.
교리 문답에서 알 수 있듯이 믿음이란 “하느님이 계시하시고5 교회를 통해 믿도록 제안한 모든 진리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관찰할 때 모든 계시의 중심6은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인격입니다. 구약성경은 다가올 메시아에 대해 말하고, 신약성경은 이미 오신 메시아에 대해 말함으로써 우리가 구약성경이나 신약성경을 읽을 때면 우리 지성이 언제나 유일한 중심이신 거룩한 스승께 초점을 맞추게 합니다.
거룩한 복음서들이 설명하는 예수님의 변모는 가장 아름답습니다.
“엿새 뒤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는데, 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 그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원하시면 제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베드로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었다.|
그리고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이 소리를 들은 제자들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 채 몹시 두려워하였다. 예수님께서 다가 오시어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일어나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눈을 들어 보니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마태 17,1-8)
오, 참으로 거룩한 광경입니다! 우리는 중심7에서 변모되신 거룩한 스승 을 바라봅니다. 그분 위에는 구약의 율법과 예언자들을 대표하는 모세와 엘리야가 있으며, 그분 아래에는 신약성경을 대표하는 세 명의 사도들, 곧 믿음의 상징인 베드로, 사랑을 상징하는 요한, 그리고 세 가지 대신덕, 곧 믿음, 희망, 사랑을 실천에 옮긴 이를 상징하는 야고보가 있습니다.
구약성경이 인물, 상징, 예표, 예언을 통해 메시아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게 하시어”(갈라 4,4 참조) 아드님으로 하여금 구약성경의 모든 예언과 (예형적) 인물이 실현되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메시아의 오심, 곧 메시아의 탄생과 삶, 구원 업적, 죽음과 영광스러운 부활에 대해 말하는 27권의 신약성경이 시작되었습니다. 더욱이 신약성경은 성령의 오심과 성화시키시는 업적에 대해 말합니다. 끝으로, 묵시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다시 오심에 대해 자세히 알려줍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중심에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올바른 지향으로 성경을 자주 읽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생생한 믿음을 갖게 됩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해|
얼마나 많은 업적을 이루셨는지 보게 될 것이므로 자신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모든 수단을 그분에게서 얻을 수 있도록 확실하고 평온한 믿음으로 그분께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경이 믿음의 대상인 예수 그리스도만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을 생기 있게 하고 성장시켜 주기 위해 위대하고 감탄할 만한 믿음을 지닌 여러 사람의 표양에 대해 우리에게 이야기해 줍니다.
여기에서는 아브라함이 보여준 놀라운 믿음의 귀감에 대해서만 살펴보기로 합시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외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셨기에 아브라함은 아들과 함께 길을 떠나 그를 희생제물로 바치러 산으로 올라갑니다.
하느님은 그에게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의 조상이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는데, 어떻게 외아들을 희생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실 수 있을까요? 그러나 성조 아브라함은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분 말씀이 헛되지 않을 것임을 확신하며 곧바로 하느님의 명령을 실행합니다. 그렇게 해서 아브라함은 바닷가의 모래처럼 수많은 사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귀감이 되는 이런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우리 믿음이 얼마나 생기를 얻게 되는지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와 같은 이야기를 좋아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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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신심으로 부지런히 성경을 읽는 사람의 생각은 일찌감치 거룩해지고, 판단과 추론이 거룩해지며, 짧은 시간 안에 초자연적인 것들을 갈망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 안에서 새 인간, 의로운 인간이 탄생합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히브 10,38)8 성경을 읽는 사람들은 성경을 읽지 않는 사람과 확연히 다릅니다!
이것을 한 번 느껴보십시오. 성경을 읽기 전에는 자신이 인간이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적인 생각이 여러 분의 머리를 가득 채우고, 원초적인 욕구와 애정이 여러분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은 다음에는 더는 여느 사람처럼 되지 않고 마치 신적인 존재처럼 됩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거룩해지고, 여러분의 갈망이 거룩해지며, 여러분의 욕망이 거룩해지고 초자연적으로 됩니다.
이에 대한 성 아우구스티노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당신이 지상적인 것을 사랑한다면 당신은 세속적이 되지만, 천상의 것들을 사랑한다면 천상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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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을 때 우리도 예수님을, 오로지 예수님만을 찾도록 합시다. 마리아와 요셉이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찾으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결국 그분들은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찾는다면 그분을 만나게 될 것이고, 그분은 분명 우리의 신앙을 활기차게 해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엘리사벳이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에 대해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고 믿으신 분”( 루카 1,45 )이라고 말한 바가 우리에게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 믿음이 살아있다면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에게서처럼 우리에게서도 주님의 기적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의 눈이 성경에서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는 데 익숙해지도록 합시다. 우리가 지극히 거룩하신 성체 안에 숨어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 영혼과 신성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을 관상하듯, 우리가 이제 하늘 나라에 계신 그분을 더는 신앙의 눈이나 희미한 거울로 비추어보지 않고, 성 바오로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얼굴을 맞대고 그분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귀감 – 성경의 순교자 성 펠릭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박해가 시작되었을 무렵 많은 그리스도인이 비겁해져 이교도들에게 성경을 넘겨 불태우게 했고,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자신이 지은 죄를 용서받게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아프리카 영사관에 있던 티바라의 주교 펠릭스는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끌려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형제들의 타락은 그로 하여금 깨어 있도록 자극하며 용기를 불러일으켰습니다.
티바라 시의 행정관인 막닐리아누스는 펠릭스 주교를 붙잡아 교회에 속한 성경을 포기하라고 헛되이 명령했습니다. 그는 그러한 잘못을 하기보다 자기 몸을 불태우는 것이 더 낫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막닐리아누스는 그를 카르타고 총독에게 안내했고, 총독은 그당시 아프리카에 있던 행정관 지사에게 보냈습니다. 펠릭스가 자신의 신앙을 솔직하고 자유롭게 고백하자 화가 난 그는 펠릭스를 비좁은 감옥에 가두어 무거운 쇠사슬에 짓눌리게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고는 9일 후, 그를 황제 앞에 세우기 위해 배에 태워 이탈리아로 보내라고 지시했습니다. 배 밑창에 있던 성인은 먹거나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은 채 4일을 보냈습니다. 마침내 배는 아그리젠토에 이르렀습니다. 시칠리아의 그리스도인들은 펠릭스가 지나갈 때 영예롭게 생각하였습니다. 펠릭스가 베노사에 있었을 때, 그의 쇠사슬을 풀어주며 성경을 가지고 있는지 말하도록 강요받자 그는 ‘예’ 하고 대답했지만 성경을 절대로 넘겨주지 않겠다고 항의했습니다.
이처럼 그의 항구함을 굴복시키지 못한 것에 절망한 지사는 그를 참수형에 처하라고 했습니다. 처형 장소에 도착한 펠릭스는 자기에게 자비를 베푸신 하느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그는 303년, 56세의 나이에 목숨을 앗아간 처형을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작은 희생 : 누군가를 초대하며, 성경을 구입하여 날마다 읽게한다.
온 세상아, 하느님께 환호하여라.
그 이름의 영광을 노래하여라.
영광과 찬양을 드려라.
하느님께 아뢰어라.
“당신께서 하신 일들 얼마나 경외롭습니까!
당신의 크신 능력에
원수들도 당신께 굽실거립니다.
온 세상이 당신 앞에 엎드려
당신께 노래하게 하소서.
당신 이름을 노래하게 하소서.”
너희는 와서 보아라, 하느님의 업적을.
사람들에게 이루신 그 행적 경외로워라.
바다를 마른 땅으로 바꾸시어
맨발로 건너갔다네.
거기서 우리는 그분 안에서 기뻐하네.
그분께서 당신 권능으로 영원히 다스리시며
그분의 두 눈은 민족들을 바라보시니
반항자들은 대들지 마라.
백성들아, 우리 하느님을 찬미하여라.
그분을 찬양하는 소리 울려 퍼지게 하여라.
그분께서 우리 영혼에 생명을 주시고
우리 발이 흔들리지 않게 하셨다.
하느님, 당신께서 저희를 시험하시고
은을 단련하듯 저희를 단련하셨습니다.
저희를 그물에 걸려들게 하시고
무거운 짐을 저희 허리에 지우셨습니다.
사람들이 저희 머리 위를 밟고 가게 하시어
저희는 불과 물을 지나야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저희를 넓은 곳으로 이끌어 내셨습니다.
저는 번제물을 가지고 당신 집으로 들어가
당신께 저의 서원을 채우오리다.
곤경 중에 제 입술이 말씀드리고
제 입이 아뢰었던 것을 채우오리다.
숫양을 태우는 향연과 더불어
기름진 번제물을 당신께 봉헌하오리다.
소와 염소들을 바치오리다.
하느님을 경외하는 모든 이들아
와서 들어라. 그분께서 내게 하신 일을
내가 들려주리라.
그분께 내가 입을 열어 부르짖었지만
내 입술 밑에는 이미 찬미 노래가 있었네.
만일 내 마음속에 죄악이 들어 있었다면
주님께서 들어주지 않으셨으리라.
그러나 정녕 하느님께서는 들으셨네.
내 기도 소리를 새겨 들으셨네.
내 기도를 물리치지 않으시고
내게서 당신 자애를 거두지 않으신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시편 66,2-20)
아, 어리석은 갈라티아 사람들이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모습으로 여러분 눈앞에 생생히 새겨져 있는데, 누가 여러분을 호렸단 말입니까?
나는 여러분에게서 이 한 가지만은 알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율법에 따른 행위로 성령을 받았습니까? 아니면, 복음을 듣고 믿어서 성령을 받았습니까? 여러분은 그렇게도 어리석습니까? 성령으로 시작하고서는 육으로 마칠 셈입니까? 여러분의 그 많은 체험이 헛일이라는 말입니까? 참으로 헛일이라는 말입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성령을 주시고 여러분 가운데에서 기적을 이루시는 분께서, 율법에 따른 여러분의 행위 때문에 그리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복음을 듣고 믿기 때문에 그리하시는 것입니까?
이는 아브라함의 경우와 같습니다. “그가 하느님을 믿으니 그것이 그의 의로움으로 인정되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사는 이들이 바로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하느님께서 다른 민족들을 믿음으로 의롭게 하신다는 것을 내다보고, “모든 민족들이 네 안에서 복을 받을 것이다.” 하는 기쁜 소식을 아브라함에게 미리 전해주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사는 이들은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습니다.
율법에 따른 행위에 의지하는 자들은 다 저주 아래 있습니다.
“율법서에 기록된 모든 것을 한결같이 실천하지 않는 자는 모두 저주를 받는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느님 앞에서는 아무도 율법으로 의롭게 되지 못한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 하였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믿음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그 규정들을 실천하는 이는 그것들로 살” 따름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스스로 저주받은 몸이 되시어,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해 주셨습니다. 성경에 “나무에 매달린 사람은 모두 저주받은 자다.”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복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다른 민족들에게 이르러, 우리가 약속된 성령을 믿음으로 받게 되었습니다.(갈라 3,1-14)
하느님, 당신의 이름으로 저를 구하시고
당신의 권능으로 제 권리를 되찾아 주소서.
하느님, 제 기도를 들으시고
제 입의 말씀에 귀 기울이소서.
이방인들이 저를 거슬러 일어나고
포악한 자들이 제 생명을 노리기 때문이니
그들은 하느님을 자기 눈앞에 모시지도 않습니다.
보라, 하느님은 나를 도우시는 분,
주님은 내 생명을 받쳐 주시는 분이시다.
저의 적에게 악이 되돌아가게 하소서.
당신의 진실로 그들을 멸망시키소서.
제가 기꺼이 당신께 제물을 바치오리다.
주님, 당신의 좋으신 이름을 찬송하오리다.
당신의 그 이름이 저를 구원하시어
제 눈이 원수들을 내려다보겠기 때문입니다.(시편 54,3-9)
1 원 텍스트 p.114와 p.115 사이에 “제2부”라는 부제가 달린 한 면에 이어 쪽수에 포함되지 않은 백면이 연달아 삽입되어 있다.
2 Ecclesiasticus 또는 Sirach 시라의 지혜.
3 집회 50,27. 불가타 번역본에서는 29절에 해당한다.
4 공동체에 효과적으로 설교한 성체조배 시간은 10시간이었지만 이 책에서는 30차례의 묵상이 제시되었음을 기억하자. 성바오로딸수도회에 보낸 회람에 제시된 것처럼 이 책의 새로운 구성은 알베리오네 신부가 승인한 것이다.
“G.D.P.H. |1933년 11월 22일, 알바| 착한 성바오로딸수도회,| 나는 죽음에 대한 여섯 차례의 성체방문과 천국에 대한 여섯 차례의 성체방문 내용을 인쇄하라고 성바오로딸수도회에 맡겼습니다. 성경 독서에 대한 성체방문 책은 이미 인쇄되었습니다.”(「여러분의 성소를 생각하십시오Considerate la vostra vocazione」, 34번)
5 「하느님의 말씀」6항은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과 인류 구원에 대한 당신 의지의 항구한 결정들을 계시로써 드러내 보이시고 전달하기를 원하셨다. 곧 하느님께서는 ‘인간 지성의 이해를 온전히 초월하는 신적 부유함에 인간을 참여하게 하셨다.’ 거룩한 공의회는 ‘만물의 근원이시며 목적이신 하느님께서는 인간 이성의 자연적 빛으로 창조물을 통하여 확실하게 인식 될 수 있다.’(로마 1,20 참조)는 것을 인정한다. 또한 ‘인간이 본디 하느님의 일들에 관해 이성으로 알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을 모든 사람이 현재 더 쉽게, 확실히, 오류 없이 알 수 있게 된 것’은 하느님 계시의 덕분이라고 가르친다.”
6 이 책에서 이 용어는 언제나 의미가 풍부하다. 예를 들면, 성경의 중심은 그리스도입니다.(p.118); 성경을 사랑하며 읽는 사람은 변방에 머물지 않고 중심에 도달합니다.(p.318) 이탈리아주교위원회의「사목 주석」이 후에 다음과 같이 말하는 내용과 이 확언들을 비교해 보라. “예수님은 성경의 중심이며 목표입니다. … 이 때문에 교회는 사도적 전통에 따라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경을 만나며, 이를 그분의 빛에 비추어 우리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유일한 계획으로 이해합니다.”(「교회 생활에서의 성경La Bibbia nella vita della Chiesa」, 2항) 그리스도 중심성은 성경을 해석하는 교회의 해석학적 원리다. 성경이 지닌 가장 깊은 의미를 이해하려면 “그리스도 안에서 성경을 읽어야” 한다.
7 스승 그리스도는 모든 상황과 표현에서 언제나 중심이시며 중심에 서 계신다. 성경에서 중심에 계신 분으로 제시되기 때문이다.
8 “Justus ex fide viv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