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유다는 유다 이스카리옷1과 다른 사람입니다. 그의 성은 ‘타대오’로서 ‘칭찬, 고백’을 뜻합니다. 또한 성 마태오 복음의 그리스어 원본에 나오는 ‘레베우스Lebbeus’라는 단어는 ‘독창성과 지성’을 지닌 사람을 뜻합니다.
그는 성 소 야고보, 예루살렘의 성 시몬, 그리고 요셉이라 불리는 사람과 형제인데, 그들은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 마리아의 자매인 마리아와 클로파스의 자녀들입니다.
이 사도는 거룩한 스승에게 소중한 사람입니다. 피로 맺어진 유대 관계를 넘어 세상에 대한 경멸, 열정, 활력으로 가득한 열의를 지녔기 때문입니다. 그가 사도들 그룹에 합류하기 전까지는 그에 대해 복음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습니다. 유다는 승천과 성령강림 이후에 사도들 그룹에 합류하여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끄는 교리를 전했습니다. 그는 유다, 사마리아, 이두메아, 시리아, 그리고 메소포타미아에서 설교했다고 합니다. 거룩한 이 사도는 62년, 자기 형 성 야고보가 순교한 다음 예루살렘에 돌아와 그곳 교회를 이끌게 될 사람으로 성 시몬이 선출되도록 도왔습니다.
그가 죽은 장소와 시간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고, 그의 축일은 10월 28일입니다. 성 유다는 한 편의 서간을 남겼습니다.
이 서간은 성 베드로의 둘째 서간과 많이 유사합니다. 그러나 두 서간 중에 어느 것이 앞선 것인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두 서간이 거의 동시대에 쓰였기에, 시기와 범위와 목적이 유사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 유다의 문체가 더 좋습니다. 내용은 중복되지 않으며, 문체 면에서 볼 때 유다 서간이 더 일관적입니다.
그는 교만하고 음란한 거짓 교사들을 강력하게 공격하여 그들에게 가혹한 형벌을 가하며 위협하는 한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신앙을 굳건히 하고 자기 의무를 다하도록 권고합니다.
이 서간은 65년경 디아스포라 유다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쓴 것으로 보입니다.
“당신 자애에 따라 저를 살려 주소서.
당신 입에서 나온 법을 지키오리다.”
(시편 119,88)
오늘 묵상은 “성경과 출판 사도직”이라는 주제를 계속 다룬 9일과 19일3 묵상과 연결됩니다.
ㄱ) 하느님께서 사람들에게 성경이라는 값진 선물을 주신 동기는 사랑입니다. 사실 하느님은|
“생명을 사랑하는 주님Deus qui amas animas”(지혜 11,26)이라고 일컫습니다. 출판 사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출판 사도를 사도직으로 이끄는 동기 또한 사랑입니다.
“사랑은 저를 감동시켰습니다. 사랑은 저에게 말하게 합니다.”4
사랑은 사도의 마음에 타오르는 거룩한 불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불꽃Ignis, charitas 그 자체이십니다. 불꽃은 활활 타오르면서 팽창하는 경향이 있고, 본성적으로 열을 내어 따뜻하게 합니다.
그리고 선은 그 선을 전하고자bonum est diffusivum sui5 합니다.
성인들은 천국을 바라지만 결코 그들 자신만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성 바오로는 자기 제자들에게 “여러분이야말로 우리의 영광이며, 기쁨입니다.”(1테살 2,20)6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해 출판 사도는 가장 높은 설교대에 올라갔습니다. “목청껏 소리쳐라. 나팔처럼 네 목소리를 높여라Clama, ne cesses, quasi tuba exalta vocem tuam.”(이사 58,1)
* * *
ㄴ) 출판 사도직의 효과는 성경의 효과와 같습니다. 곧 참된 신적인 내적 힘을 지닌다는 것입니다. 교부들과 교회 박사들은 거룩한 성경을 읽음으로써 빛과 동기를 받아 성인이 되어 영혼들을 구원하려는 갈망으로 불타올랐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노, 성 이냐시오, 성 안토니오 아빠스, 성 베네딕토,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성경을 읽음으로써 계명을 온전히 준수했을 뿐 아니라 복음적 권고와 가장 높은 완덕에 이르는 새 삶을 증거했습니다. 모든 성인과 모든 사람은|
성경을 읽음으로써 용기, 정의, 예지, 이웃 사랑과 같은 덕을 이끌어냈습니다. 이는 신적 힘을 지니고 있으므로 모든 사람 안에서 성사적으로 작용합니다.
출판 사도직에도 같은 덕이 내재합니다. 1) 출판 사도직의 내용은 진리이신 하느님 또는 하느님-진리입니다. 2) 출판 사도직의 목적은 지성을 치유하여 영원한 선으로 마음을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3) 출판 사도직의 기원과 설립을 통해서.
사도직은 언제나 이러한 힘(덕)을 지니지만, 특별히 출판할 때는 성경을 인용하여 해설하고 적용합니다. 성사와 준성사와 기도가 지닌 모든 힘은 거룩한 미사의 희생 제물, 곧 갈바리아에서 비롯됩니다. 이처럼 거룩한 샘에서 더 많은 것을 길어낼수록 사도직은 더욱 효과적입니다.7*
마찬가지로 출판 사도직 전체, 곧 정기 간행물과 도서는 성경과 예수님의 설교와 복음이 지닌 힘으로 그 효과를 발휘하며, 복음 자체에서 끌어내고, 접근하고, 변호하고, 반응하고, 열렬히 소망하며 복음을 적용하는 만큼 더 큰 효과를 냅니다.
ㄷ) 거룩한 작가들은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하느님께 의탁합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 정신입니다. 더욱이 그들은 주님, 곧 하느님의 영광과 사람들을 위한 평화를 목표로 합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올바른 지향이 들어갑니다. 효과를 위해 필수적인 두 가지 요소는 사도가 먼저 자신을 거룩하게 하는 것과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기도 정신과 올바른 지향은|
신적 은총의 조건입니다. 이는 “나는 하느님께 의탁하며 하느님을 목표로 한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으로, 이는 정의, 진리, 질서입니다. 하느님과 인간에 대해 인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철학과 신학, 수덕과 경험, 교회와 공의회는 이러한 원칙들을 선포하는 데 일치합니다. 다만 이론적인 부분을 제외하고는 믿음과 일치하기를 바라고 또 느껴야 합니다. 기도가 사도직에 앞서고 동반하며 따르게 하십시오. 글쓰기와 출판과 보급을 결정하는 동기가 올바른 지향이어야 합니다.
* * *
특히 복음과 성경 보급은 출판 사도직의 본질적 활동으로 남아있어야 합니다.
이를 잘 수행한 출판 사도는, 이 직무의 핵심 부분을 완성한 것과 같습니다. 성경 없이 행해지는 것은 모두 충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을 바탕으로 한 작업이 필요합니다. 이는 그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과제는 모든 가정에 복음을 가장 영예로운 자리에 모시게하는 목표를 세우고, 한데 모인 온 가족에게 가장이 복음을 읽고, 승인된 주석으로 이를 유익하게 설명하며, 안내를 받게 하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복음을 읽게 할 것. 하느님은 최상의 교육자이시며, 예수 그리스도는 본성적으로, 직무상으로, 그리고 소명에 따른 참된 스승이십니다. 순수함과 단순함을 지닌 어린이의 영혼은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셨다.”(루카 10,21)8는 거룩한 가르침을 받아들이기에 가장 적합합니다.
유치원에서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모든 학교에서 성경을 읽게 하십시오. 유일한 스승이신 그분을 제외시키는 학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교회에서 성경을 읽게 할 것. 적어도 주일에는 복음을 읽게 하십시오. 그리고 가능하다면 설명을 덧붙이십시오. 사순 시기에, 성체조배 시간에, 저녁기도 시간에, 가톨릭 액션에서 성경을 읽게 하십시오.
개인적으로 읽고 묵상할 것. 특히 묵상 가운데 하게 되는 성찰은, 거룩한 생각과 마음속으로 파고들어 결심을 이끌어내도록 도와줍니다. 특히 전문가, 예술가, 공무원, 관공서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성경을 읽도록 하십시오.
귀감 – 오리게네스. 그는 교회에 풍요로움을 지대하게 기여한 작가입니다. 그의 전기작가들은 그가 쓴 작품이 6천 권이 넘으며, 그 가운데 주요 작품은 성경을 다루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가 아주 어렸을 때9 그의 아버지 성 레오니다는 오리게네스에게 성경 구절을 외우도록 하였으므로, 그는 성경을 잘 습득하여, 어떤 구절을 물어도 한 음절도 틀리지 않고 곧바로 암송할 수 있었습니다.
선하신 하느님 아버지의 편지가 쓰인 성경을 원어로 읽고 싶어하는 열렬한 열망을 지니고 있던 그는 그리스어, 히브리어, 산스크리트어, 라틴어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그의 끈질긴 의지로 인해, 그리고 하느님 은총의 도움으로 그는 성경을 온전히 알게 되어 나중에는 그의 주요 작품인「헥사플라」10를 집필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웅장한 작업은 히브리어 본문과 그리스어 본문을 한눈에 보고, 그 히브리어 본문과 그리스어 본문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도록 6개의 열로 나누어 배열합니다. 첫 번째 열에는 히브리어로 된 히브리어 본문이 제공됩니다. 두 번째 열에는 그리스어로 된 같은 히브리어 본문이 제시됩니다.11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열에는 각각 아퀼라, 심마쿠스, 70인역, 테오도시우스가 그리스어로 번역한12 내용이 있습니다.
이 위대한 박사는 성 요한 복음에 주석을 달면서, 이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성 요한처럼 천상 스승의 가슴에 기대지 않고, 또 예수님에게서 직접 마리아를 어머니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이 복음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오리게네스도 성 아우구스티노처럼 완덕의 길에서 진보하기 위한 주요 수단은 성경을 읽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성경의 의미를 잘 이해하려면 성경을 가장 완전하게 아시는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오리게네스는 계속 이렇게 말합니다. “성경 공부는 우리에게 주님의 덕을 실천하는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예수님과 예수님의 덕에 대해 알게 하며, 그분의 계명과 가르침을 알게 하여 우리를 완덕의 산꼭대기에 안전하게 도달하게 할 것입니다.”
작은 희생 : 이 책 끝부분에 첨부한 지극히 영광스러운 사도(기도서 263쪽 “가톨릭 출판물을 위하여)께 바치는 기도를 통해 출판 사도직에 부름 받은 모든 이가 성경에서 진리, 길, 생명을 끌어내는 법을 배운다.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이야기하고
창공은 그분 손의 솜씨를 알리네.
낮은 낮에게 말을 건네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네.
말도 없고 이야기도 없으며
그들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지만
그 소리는 온 땅으로,
그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가네.
그곳에 해를 위하여 천막을 쳐 주시니
해는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 같고
용사처럼 길을 달리며 좋아하네.
하늘 끝에서 나와
다시 끝으로 돌아가니
아무것도 그 열기 앞에서 숨을 수 없네.
주님의 가르침은 완전하여 생기를 돋게 하고
주님의 법은 참되어 어수룩한 이를 슬기롭게 하네.
주님의 규정은 올발라서 마음을 기쁘게 하고
주님의 계명은 맑아서 눈에 빛을 주네.
주님을 경외함은 순수하니 영원히 이어지고
주님의 법규들은 진실하니 모두가 의롭네.
금보다, 많은 순금보다 더욱 보배로우며
꿀보다 생청보다 더욱 달다네.
당신의 종도 이에 주의를 기울이니
이를 지키면 큰 상급을 받으리이다.
뜻 아니한 허물을 누가 알겠습니까?
숨겨진 잘못에서 저를 깨끗이 해 주소서.
또 오만한 자들에게서 당신 종을 보호하소서.
그들이 제 위에 군림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러면 제가 결백해지고
커다란 죄악에서 깨끗해지리이다.
주님, 저의 반석, 저의 구원자시여
당신 앞에 드리는 제 입의 말씀과
제 마음의 생각이 당신 마음에 들게 하소서.(시편 19편)
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말재주로 하라는 것이 아니었으니,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사실 성경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지혜롭다는 자들의 지혜를 부수어 버리고 슬기롭다는 자들의 슬기를 치워 버리리라.”
지혜로운 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율법 학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 세상의 논객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느님께서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은 것으로 만들어 버리지 않으셨습니까? 사실세상은 하느님의 지혜를 보면서도 자기의 지혜로는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복음 선포의 어리석음을 통하여 믿는 이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속된 기준으로 보아 지혜로운 이가 많지 않았고 유력한 이도 많지 않았으며 가문이 좋은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있는 것을 무력하게 만드시려고, 이 세상의 비천한 것과 천대받는 것 곧 없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어떠한 인간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가 되시고, 의로움과 거룩함과 속량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자랑하려는 자는 주님 안에서 자랑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1코린 1,17-31)
기 도
아, 당신께서 하늘을 찢고 내려오신다면! 당신 앞에서 산들이 뒤흔들리리이다.
마치 불이 섶나무를 사르듯, 불이 물을 끓이듯 하리이다. 이는 당신의 적들이 당신 이름을 알게 하시려는 것이니 민족들이 당신 앞에서 무서워 떨리이다. 저희가 기대하지 않았던 놀라운 일들을 당신께서 하셨을 때, 당신께서 내려오셨을 때 산들이 당신 앞에서 뒤흔들렸습니다. 당신 아닌 다른 신이 자기를 고대하는 이들을 위하여 이런 일을 한다는 것은 예로부터 아무도 들어 보지 못하였고 아무도 귀로 듣지 못하였으며 어떠한 눈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당신께서는 의로운 일을 즐겨하는 이들을, 당신의 길을 걸으며 당신을 기억하는 이들을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죄를 지었고 당신께서는 진노하셨습니다. 당신의 길 위에서 저희가 늘 구원을 받았건만 이제 저희는 모두 부정한 자처럼 되었고 저희의 의로운 행동이라는 것들도 모두 개짐과 같습니다. 저희는 모두 나뭇잎처럼 시들어 저희의 죄악이 바람처럼 저희를 휩쓸어 갔습니다.
당신 이름 부르며 경배드리는 자 없고 당신을 붙잡으려고 움직이는 자도 없습니다. 당신께서 저희를 외면하시고 저희 죄악의 손에 내버리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 당신은 저희 아버지십니다. 저희는 진흙, 당신은 저희를 빚으신 분, 저희는 모두 당신 손의 작품입니다. 주님, 너무 진노하지 마소서. 저희 죄악을 언제까지나 기억하지는 말아 주소서. 제발 굽어보소서. 저희는 모두 당신의 백성입니다. 당신의 거룩한 성읍들이 광야가 되었습니다. 시온은 광야가 되고 예루살렘은 황무지가 되었습니다. 저희 조상들이 당신을 찬양하던 곳, 저희의 거룩하고 영화로운 집은 불에 타버렸고 저희에게 보배로운 것들은 모두 폐허가 되어 버렸습니다. 주님, 이렇게 되었는데도 끝내 참고 계시렵니까? 그렇게 잠잠히 계시렵니까? 저희를 이토록 극심하게 억누르시렵니까? (이사 63,19ㄴ-64,11)13
1 이스카리옷 또는 이스카리오테는 “키리욧(팔레스티나 마을) 사람”을 뜻한다. 기원이 불확실한 타대오(Thaddaios)라는 말은 히브리어(Lebbeo)처럼 ‘큰 마음을 지닌 용감한’ 사람을 뜻한다. 루카 6,16; 마태 10,3; 사도 1,13에 있는 사도들의 목록을 비교해 보면,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타대오는 동일 인물이며, 유다 서간의 저자일 가능성이 크다.
2 성경 주석을 다루는 학문적이고 대중적인 출판물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할 것. PCB,「교회 안에서의 성경 해석L’interpretazione della Bibbia nella Chiesa」, 1993, 36번.
3 p.97 이하와 p.191 이하 참조.
4 “Amor mi mosse, che mi fa parlare.” 단테 알레기에리,「신곡La Divina Commedia」, 연옥편, II, 72.
5 이는 플로티누스(203/5에서 약 270년까지 살았던 철학자)의 저술에서 가져온 신플라톤주의 격언이며, 5-6세기 시리아의 수사인 위(僞)디오니시우스 아레오파기테스(「천상의 위계De coelesti hierarchia」, 4)를 통해 토마스 아퀴나스의 저술과 스콜라주의가 등장했다. 플로티누스의 형이상학에서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분으로부터 나오는 현실의 발산 또는 외적 흐름의 과정이었다. 플로티누스는 이 발산에 대한 은유로 불꽃에서 방출되는 열, 눈에서 비롯되는 추위, 꽃의 향기, 또는 태양에서 퍼져 나오는 빛을 제공했다. 선한 것은 그 자체로서 좋은 것이라는 단순한 이유로 선은 자연스럽게 퍼져나간다고 그는 결론지었다. 완덕에 이른 존재는 그 완전함을 자기 것으로 간직하지 않고 표현함으로써 내적 활동의 외적 이미지를 자아냈다. 같은 개념이 오늘날 인터넷에서 자유롭고 자발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슬로건으로 채택되었다.
6 “Gaudium meum et corona mea.” 1테살 2,19 참조: “우리 주 예수님의 재림 때에 누가 과연 그분 앞에서 우리의 희망과 기쁨과 자랑스러운 화관이 되겠습니까? 바로 여러분이 아니겠습니까?”
7* “그러므로 나의 형제들이여, 성경을 읽으십시오. 눈먼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눈먼 사람의 인도자가 되지 않기 위해 성경을 읽으십시오. 성경을 읽으면 분명 무엇을 받아들이고 또 무엇에서 달아나야 하는지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십시오. 성경은 온갖 꿀보다 달콤하고 온갖 빵보다 감미로우며 온갖 포도주보다 더 맛들이게 합니다. 성경을 공부하면 신들 가운데 신이신 하느님께서 당신 사랑의 넓이, 영원의 길이, 그 위엄의 높이, 지혜의 깊이와 광대함을 지니고 계심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작자 미상. 성아우구스티노일 것이다]
8 “Revelasti ea parvulis.”
9 초기 급진주의에 사로잡힌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그리스어 사본을 매우 적은 금액을 받고 팔아버림으로써(하느님에 대한 지식이 아닌 것은 무엇이든 포기함을 나타냄) 극도로 엄격한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했다.
10 「헥사플라Exapla」는 오리게네스의 가장 중요한 작품 가운데 하나다. 이는 히브리어 본문과 다양한 그리스어 번역본이 6개의 열에 나란히 나타나는 구약성경 판본(서기 240년 무렵 편찬됨)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타깝게도 본문 비평 연구에서 인상적으로 파고들어간 작업을 드러내는 작품 가운데 일부만 남아 있다.
11 오리게네스는 예로니모와 함께 고대의 가장 위대한 “문학” 비평 주석가다.
그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필사본에서 발견한 다양한 판독이나 변형 상태에 대해 한없는 호기심을 지녔다. 그는 떠오르는 것을 메모한 다음 모든 것을 설명했다. 그러나 그리스어 본문은 사도들이 교회에 준 것이기에 그에게는 히브리어보다 중요했다. 본문의 문자적 의미는 그리스어 문헌에서 도움을 받아 히브리 사람들의 용법과 역사적 관습을 통해 정확하게 설명되었으며, 그는 또한 몇몇 라삐를 알고 있어 히브리어 해석본에서도 도움을 받아 설명했다. 오리게네스의 “문자적” 의미는 단어 또는 구절의 철학적, 어원학적 의미다. 한편, 문자적 의미를 통해 우리는 인간인 저자가 의도하며 표현하고자 했던 것을 드러낸다. 오리게네스는 자신의 문자적 의미(문자주의자 또는 문자를 고수하는 것) 추구 때문에 성경 본문에 존재하는 비유 언어(예를 들어, 비유와 은유)를 파악하지 못하는 위험성도 지녔다. 그럼에도 오리게네스는 성령의 영감을 받아 “영적” 의미를 알고 있었다. 바오로처럼 그는 구약성경 전체가 그리스도의 예언이나 모습을 드러내는 “형상” 또는 “우리에게 경고”(1코린 10,11)가 되도록 기록되었음을 받아들였다. 신약성경 주석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요컨대, 교회에서 성경을 읽는 데 많은 영향을 미친 오리게네스의 방법은 성경 전체의 삼중적 의미(「원리론De Principiis」, IV, 2 참조)를 예견했으며, 이는 세 가지 관점의 인류학, 곧 물질적(또는 문자적) 의미, 정신적(또는 도덕적) 의미, 영적(또는 신비 차원의) 의미에 해당한다. 앙리 드 뤼박(H. de Lubac)의「중세 주석Exégèse Médiévale」I / 1, 198-211은 카시아누스 수사(360-435)가 선포한 네 가지 의미의 교리를 오리게네스의 주석을 통해 거슬러 올라가 추적해냈다. 그 네 가지 의미란 문자적 의미, 역사의 중심으로서 그리스도의 약속으로 구성된 우화적 의미, 그리스도인의 행동과 관련된 비유적 의미, 하나의 체험을 만들어 내고 미래, 곧 영원한 선을 미리 맛보게 하는 영적 의미다.(p.40의 각주 7 참조)
12 이 책에는 마르티니 몬시뇰의「성경 번역」(p.81의 각주 8)과 예로니모의 불가타 번역본(pp.245-248)에 대한 암시가 있다. 알베리오네 신부에게 번역은 사목적, 사도적인 큰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이해 대해「하느님의 말씀Dei Verbum」, (하느님의 계시에 대한 교의헌장)은 적절하고 정확한 번역의 필요성을 재차 단언한다.(22항)
13 이 책 원서에서는 불가타 번역본을 따라 이사 64,1-12라고 명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