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키아 타르수스(사도 9,30)에서 태어난 사울이라고도 불리는 바오로는 벤야민 지파 태생의 유다인이며 기원후 초세기에 바리사이요 로마 시민이었고, 예루살렘에서 저명한 가말리엘(사도 5,34)의 교육을 받았으나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알 기회는 없었습니다.
열렬한 바리사이인 바오로는 초대 그리스도교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이 대단하여 스테파노에게 돌을 던진 사람들의 옷을 지켰고, 대사제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팔레스티나 밖에서까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습니다. 그러나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그를 기다리던 예수님은 박해자였던 그를 열렬한 사도로 변화시키셨습니다. 그때는 서기 35년 무렵이었고, 바오로는 서른 살 가량이었습니다.
이방인들의 회개라는 위대한 직무수행을 위해 공부하고 묵상하고 계시를 받으며 10여 년 동안 준비한 바오로는 45년에 동양의 대도시이며 당시 모든 민족들이 오가던 안티오키아를 출발지요 도착지로 삼아 선교여행을 시작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네 차례에 걸친 [선교] 여행을 했습니다. 때로 그가 지나가야 했던 지역은 험난했고, 특히 그의 복음선포 활동을 저지하려고 끊임없이 쫓아다니는 유다인들의 박해로 인해 위태로웠습니다.
이 선교여행 동안 성 바오로는 14편의 경이로운 서간을 집필했습니다. 이 서간들을 통해|
그는 여러 교회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며 현존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58년 성령강림절 무렵 예루살렘에서 투옥되었고, 카이사리아의 감옥에서 2년을 보내고 로마로 떠났습니다. 몰타에서 그가 탔던 배가 파선당했으나, 마침내 세계의 수도에 도착하여 2년 동안 머문 다음 네로 황제의 대리자들인 부루스와 세네카에 의해 재판을 받아 사면되었고, 63년에 자유를 되찾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그는 로마에서 복음을 선포했고, 아시아의 여러 교회를 보살피기 위해 로마에서 에페소 신자들에게, 콜로새 신자들에게, 필레몬에게,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습니다.
자유롭게 된 바오로는 사도적 여행을 계속했으며, 몇몇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프랑스와 스페인에도 갔습니다. 그는 다시 동양으로 돌아와 콜로새, 트로아스, 밀레토스, 크레타를 거쳐 마케도니아, 코린토, 데카폴리스에 갔다가 로마로 돌아갔습니다. 그가 어떻게 로마로 돌아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66년에 성 베드로와 함께 체포되어 혹독한 감옥생활 끝에 67년 비아 오스티엔세에서 (전승에 따르면 6월 29일에) 참수되었습니다.
성 바오로는 뛰어난 사도, 특히 이방인들의 사도입니다. 그는 로마인 세계를 모두 돌아다니며 30년 동안 집요하게 분노에 싸인 위협과 박해를 받았고, 이방인들의 증오와 유다인들의 박해를 받았으며, 고발당하고 중상모략을 받고, 매 맞고, 돌을 맞았으며, 배반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죽음의 문턱에서 도 복음을 전했으며, 그의 선교 여행은 피로 그 흔적을 남겼습니다. 그는 세상의 권력자를 자기 피로 붉게 물들이며 영광스럽게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 각 서간이 교의적이고 도덕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어 바오로 서간을 명확하게 분류하는 것은 사실 쉽지 않습니다. 서간마다 두드러진 요소에 따라 교의 서간, 도덕 서간, 사목 서간 등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바오로는 여러 차례 로마를 방문하길 바랐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제3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나서야 서양에도 그리스도를 전할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가 그토록 바라던 로마 교회 방문기회가 옵니다. 이를 위해 바오로는 로마 신자들에게 편지를 써서 스페인으로 가는 길에 로마에 들를 것이라고 전합니다. 이것이 바로 로마서를 쓰게 된 동기가 됩니다.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는 편지 그 이상의 내용을 지닙니다. 이는|
한 편의 논문입니다. 그 안에서 성 바오로는 이방인들 가운데서 펼치는 사도직을 정당화하며, 자기 설교의 요점을 펼칩니다.
특히 유다인들이 이의를 제기한 주요 논제에 대해 언급합니다. 이는 향후 그리스도교의 미래를 위해 매우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 의화 은총은 예전의 공로를 기반으로 하지 않으며, 유다인과 이방인은 물론 모든 사람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마련해 주신 것입니다.
의화는 모세의 율법 준수에 달려 있지 않으며, 선행을 통해 생생하게 살아 있는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에 달려 있습니다.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 이 서간은 특정 교회가 아니라 갈라티아에 흩어져 있는 여러 교회를 대상으로 쓰였습니다.
로마에 속하는 이 지방에서 성 바오로는 1, 2차 선교여행을 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갈라티아인들은 열정적으로 복음을 받아들였지만, 모세의 율법 준수와 회심한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요구한 유다인들에게도 귀를 기울였습니다. 적대자들의 위험한 음모를 알아차린 성 바오로는 자기 권위를 옹호하고 선동하는 유다인들에 맞서 참된 교의를 재정립하고자 이 편지를 썼습니다.
이 서간은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와 같이 근본적으로 교의적입니다. 의화는 모세의 율법, 곧 불필요하고 위험하기까지 한 율법 준수에 달려 있지 않고,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에 달려 있다는 논제를 옹호합니다.
이 서간은 성 바오로의 초상화입니다, 바오로의 생기 가득한 활력과 열의와 열정이 그 안에서 맥박처럼 뛰고 있습니다. 아버지다운 애정이 담겨 있으며, 추론자의 저력이 담겨 있습니다.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 성 바오로의 제자요 콜로새의 주교인 에파프라스는 수인이 된 바오로를 방문하기 위해 로마에 가서 아시아의 여러 교회, 특히 콜로새 교회를 위협하는 새로운 위험을 바오로에게 알렸습니다. 그 위험은 이미 영지주의의 창시자였던 거짓 유다인 박사들에게서 비롯된 것입니다.1
이러한 위험을 깨달은 바오로는 콜로새 신자들에게 이 편지를 썼습니다.
교의 부분에서 바오로는 하느님, 피조물, 교회와 관련된 그리스도의 은혜로움과 존귀함에 대해 말하면서 거짓 교사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참된 그리스도교 교의로 그들의 망상을 반박합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신성, 구원의 보편성, 구원받기 위해 필요한 그리스도교 교의를 탁월하게 역설합니다. 그는 유다인들의 율법 준수와 |
거짓 박사들의 고행 실천이 지닌 허무맹랑함을 드러내며 천사들을 지나치게 숭배하는 행위를 비난합니다.
도덕 부분에서 바오로는 그리스도인들의 의무에 대해, 특별하든 일반적이든 삶의 여러 단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성 바오로는 테살로니카에 발전적인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도시를 떠나라고 강요하는 유다인들의 모략으로 그곳에 돌아가지 못하게 되자 그는 티모테오를 보냈습니다. 코린토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받아들여진 그는 그 교회에 안부를 전하며 이 편지를 썼습니다.
이 편지는, 첫 인사말과 마지막 인사말을 제외하고는 역사적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 성 바오로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에 대한 자신의 올바른 처신을 상기시키면서 그들이 자신의 염려에 응답한 것을 칭찬합니다. 교의적이고 도덕적인 부분은 그들이 덕스럽게 되기를 권고하고, 심판과 관련하여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죽은 많은 사람에 대해 해명하며, 마지막으로 그들이 지닌 모든 의무를 완수하라고 권고합니다.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에서 성 바오로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러나 테살로니카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세상의 종말이 가까왔다고 이해했으며, 많은 사람이 더는 일하지 않아도 되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고 단정했습니다.
이러한 무질서를 해결하기 위해 성 바오로는 둘째 편지를 씁니다. 여기서 그는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해 말하면서 그리스도의 적인 무법자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오심이 실제로 가까이 다가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때가 불확실하므로, 그들은 믿음 안에서 인내롭게 지내야 했습니다. 그는 노동법을 염두에 두고서 게으름과 불순종을 피하며 미덕을 추구하라고 권고합니다.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는 팔레스티나의 히브리인들, 특히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성 바오로2의 한없는 사랑은 육으로 맺어진 형제들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교의 부분에서 바오로 사도는 고대 관습을 여전히 실천하는 사람을 단죄하기보다는, 옛 율법의 멍에에 매어 있는 사람의 어리석음을 지적합니다. 그는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신약성경의 저자이며 옛 율법을 전해 준 천사들과 모세보다 신약성경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신약성경이 구약성경보다 우세함을 증명합니다. 그러고 나서 구약성경은 신약성경의 실재를 드러내는 그림자로 결론을 지으면서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대해 언급하며 모든 면에서 히브리인들에 대한 절대적 우월성을 보여줍니다.
도덕 부분은 이러한 교의의 결론이며, 신앙과 선행의 필요를 느끼게 합니다.
“당신 말씀이 저를 살리신다는 것,
이것이고통 가운데 제 위로입니다.”
(시편 119,50)
어제 우리는 거룩한 복음이 어떻게 우리 영혼에게 구원이 되는 지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거룩한 복음이 악마와 육정과 세상에 맞서 어떻게 우리를 효과적으로 보호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I. 거룩한 복음은 악마에 맞서 우리를 보호합니다. 거룩한 복음을 지니고 다니는 것은 지극히 거룩한 성체, 곧 살아 계시며 참된 스승 예수님을 모시고 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영성체 직후 예수님께서 당신의 몸과 피, 영혼과 신성으로 우리 영혼 안에, 당신 진리 안에 실제로 현존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거룩한 복음을 지니고 다니는 사람들과 함께 계십니다.
복음은, 십자가와 같은 이미지일 뿐 아니라 예수님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하느님이시기에 복음은 곧 예수님 자신입니다. 따라서 매우 단순하고 불가분한 방식으로 진리이신그분이 현존하시는 곳에서는 그분의 선의와 전지전능하심 등으로 끊임없이 현존해야 합니다.
거룩한 복음을 지니고 다니는 사람은 훌륭한 동료와 함께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예수님과 함께 있습니다.
* * *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악마의 나라가 매우 방대했습니다. 거룩한 복음은 천상 스승께서 악마에게 사로잡힌 사람들 앞에 서서 비참한 노예 상태에 있는 그들을 어떻게 해방시켰는지를 알려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는 사탄의 나라가 계속 확장되고 있었지만, 기쁜 소식이 선포되자 점점 축소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은 그리스도인들이 악마에 사로잡힌 경우가 매우 드뭅니다. 그러나 선교사들은 이교도인들 가운데서 악마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많이 만납니다. 이러한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매우 간단합니다. 어둠의 왕자인 악마가 복음의 빛이 나타나자 달아난 것입니다.
악마와 복음이 서로 맞서는 한 화해는 불가능합니다.
이러한 진리를 이해한 거룩한 교회는 구마 의식을 통해 사제가 네 구절의 복음을 읽고 몇몇 시편을 암송함으로써 악령 들린 가엾은 사람에게서 악마를 쫓아내게 했습니다.
복음은 사탄이 선언한 적입니다.3*
II. 거룩한 복음은 욕정을 가라앉히며 둔화시킵니다.4* 인간의 마음은 원죄의 결과로 독사들의 굴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욕정이 하와의 가련한 아들을 뒤흔들었습니까!
무수한 여러 악의는 칠죄종(교만, 인색, 음욕, 분노, 식탐, 시기, 나태)을 따라다닙니다. 이를 염두에 둔 성 아우구스티노는 “실제로 인간은 파멸의 덩어리”라고 외쳤습니다.5
욕정이 끓어오를 때|
가슴에 복음을 대면 곧바로 큰 위안을 느낄 것입니다. 마치 신묘한 약처럼 가련하게 흔들리는 마음을 잠재워줄 것입니다.
교황 알렉산데르 6세는 (영적) 아들이었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에게 시편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매우 신심 깊은 크리스토퍼는 이를 받고 무척 기뻐했으며, 언제나 소중한 보물처럼 지니고 다녔습니다. 그는 곤경에 처해 낙담하게 되면 늘 시편을 읽곤 했습니다.
영혼이 흔들릴 때마다 시편에서 큰 위로를 받았고, 특히 투옥되었을 때는 큰 위안을 얻었습니다.
거룩한 복음은 욕정의 강력한 진정제입니다!6* 마음은 그 열망 속에서 드높아지고, 어려움 속에서 굳건해지며, 어둠과 투쟁 속에서 평온하고 고요해집니다.
교회 역사에 따르면, 많은 그리스도인이 거룩한 복음서를 늘 지니고 다녔으며, 많은 순교자가 그들의 목에 거룩한 종이를 매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고 에우세비우스는 말합니다.
동정녀 세실리아는 언제나 거룩한 복음서를 가슴에 품고 다녔다Virgo semper in corde suo, Evangelium ferebat.고 성무일도는 명시적으로 말합니다. 복음서는 참으로 큰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성녀 로마나는 그 복음서의 감탄할 힘으로 남편과 며느리, 황제에게 저항하는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그러나 황제는 그녀의 강인한 끈기를 보고 사형에 처했습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성모 마리아는 사랑하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으로 인해 몹시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했을 때 어디서 힘을 얻었을까요? 성모님은 어떻게 해서 낙심하거나|
실망하지 않았을까요! 성모님은 무척 어렸을 때부터 성경을 읽고 사랑하는 법을 배워 구세주께서 고통을 받고 죽으셔야 했지만 사흗날에 다시 부활하여 당신에게 힘과 용기를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III. 또한 복음은 세상의 위험에서 우리를 보호합니다. 세상이란 하느님에게서 나오지 않고, 하느님을 따라 활동하지 않으며, 지옥의 영에 따라 활동하는 모든 것을 뜻합니다.
젊은이는 천상 스승께서 더 완전한 삶으로 자신을 부르신다는 것을 느껴 ‘예’ 하고 대답하며 거룩한 부르심을 따르고 싶어하지만 친척과 친지들한테서 비롯된 어려움에 직면하면 성소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세상이 주는 위험입니다. 우리는 세상일에 얽매이지 않고 저주받지 않기 위해 신중해야 합니다.
영원한 구원이 우리에게 그토록 소중하다면, 우리는 복음 말씀으로 악마의 말에 맞서야 합니다!
복음 봉독은 모든 위험과 온갖 거짓말에 맞서 빛을 비추며 힘을 줄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말한 것처럼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Vivus est enim sermo Dei et efficax, et penetrabilior omni gladio ancipiti.”(히브 4,12)
* * *
결실: 모든 가정과 학교에, 각계각층의 사람들 사이에 거룩한 복음이 놓이도록 할 것.7 거룩한 복음은 예수님을 떠오르게 하는 이미지일 뿐 아니라 진리이신 예수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니고 다니는 복음 때문에 우리의 죄로 인한 많은 불행이 우리에게 닥치지 않게 됩니다.
귀감 – 가경자 콘타르도 페리니.8 그는 학생들의 뛰어난 귀감입니다. 그는 법학을 공부하면서 교회를 변호한 변증법 교수이며, 여러 대학교에서 가르치면서 세상 한가운데서 살던 성인입니다.10
그는 밀라노 베카리아 학교에서 연구 과정을 훌륭하게 수행하면서 동료 학생들이 레크리에이션에 쏟는 시간을 유익하게 보내게 하려고 마음을 썼습니다. 성경을 원문으로 읽을 수 있기를 갈망한 그는 암브로시오 도서관장 체리아니 몬시뇰에게 히브리어를 배우고 싶다는 원의를 드러냈습니다. 박학한 고위 성직자는 기꺼이 받아들여 산스크리트어와 콥트어의 기초요강으로 히브리어와 시리아어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의 동료이자 친구인 파올로 마펠리 백작은 성경을 강독하는 페리니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 그는 성경 공부를 아주 좋아하여 성경을 히브리어 본문으로 읽었고…, 타르수스의 바오로에 대해 매료된 그는 학생 때 이미 열정적으로 낭송했던 성 바오로 서간을 외워서 알고 있었습니다.”
그후 그는 사도직을 하면서 파비아 대학, 메시나 대학, 모데나 대학, 파르마 대학에서 계속 가르치면서 거룩하게 살았습니다. 교회는 1931년 2월 8일자 교령으로 그를 가경자로 선포하고 시복 심사를 시작했습니다.
작은 희생 : 오늘 유혹과 어려움을 만날 때 나는 내 가슴 곧 “복음 말씀은 우리 죄를 씻어준다Per evangelica dicta, deleantur nostra delicta.”는 복음 말씀을 간직한 심장에 손을 얹겠다.
영원히 살아 계신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그분의 나라도 찬미받으소서.
그분께서는 벌을 내리기도 하시지만
자비를 베풀기도 하시고
땅속 가장 깊은 곳 저승으로 내려가게도 하시지만
그 무서운 파멸에서 올라오게도 하신다.
그분의 손을 벗어날 자 아무도 없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민족들 앞에서 그분을 찬양하여라.
그분께서 너희를 그들 사이에 흩으셨지만
바로 그곳에서 당신의 위대함을 너희에게 드러내셨다.
그분께서는 너희의 불의 때문에 벌을 내리시지만
너희 모두에게 자비를 베푸신다.
이제 그분께서 너희에게 해 주신 것들을 보고
소리 높여 그분을 찬양하여라.
의로우신 주님을 찬미하고
영원하신 임금님을 높이 받들어라.
나는 내 하느님을,
나의 영혼은 하늘의 임금님을 높이 받들며
그분의 위대함을 즐거이 알린다.
사람들은 모두 예루살렘에서
그분께 말씀을 올리고 그분을 찬양하여라.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아,
그분께서는 네 자녀들의 행실 때문에 벌을 내리시지만
다시 의인들의 자녀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리라.
예루살렘아, 주님을 올바로 찬양하여라.
영원하신 임금님을 찬미하여라.
네 성소가 다시 기쁨 속에 지어지리라.
그리하여 그분께서 대대로 영원히
모든 유배자를 네 안에서 기쁘게 하시고
고통받는 모든 이를 네 안에서 사랑하시기를 빈다.
(토빗 13,2-10)9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군중을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절개 없고 죄 많은 이 세대에서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이들 가운데에는 죽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자기 나라에 오는 것을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마르 8,34-38; 마태16,28)
제 생명의 주인이신 아버지 주님, 그들의 음모에 저를 넘기지 마시고 그들 때문에 제가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해 주소서. 누가 제 생각에 채찍질을 하고 제 마음에 지혜로운 교훈을 |
내려 제 잘못을 그냥 두지 않고 저의 죄악을 그냥 넘기지않도록 도와주겠습니까? 그리하여 제 실수가 불어나거나 제죄가 넘쳐 나지 않게 되어 적대자들 앞에서 제가 넘어지지 않고 제 원수가 넘어진 저를 보고 즐거워하지 않게 해 주겠습니까? 또 누가 당신의 자비에 대한 희망이 그들에게서 멀리 있도록 해 주겠습니까? 제 생명의 하느님이신 아버지 주님, 저에게 오만한 눈길을 허락하지 마시고 제게서 욕망을 멀리하여 주소서. 식욕과 색욕이 저를 지배하지 말게 하시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욕정에 저를 넘기지 마소서.(집회 23,1-6)
1 그리스어 ‘그노시스’(gnosis: 지식 또는 인식)에서 유래한 이 용어는 로마,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지중해 분지의 여러 지역에서 2-3세기에 널리 퍼진 철학적 종교적 흐름을 나타내는 그룹을 지칭한다. 1945년, 나그함마디, 곧 이집트 북부의 영지주의 통합 도서관에서 영지주의 복음서를 발견할 때까지 학자들은 그 본문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으며, 영지주의 이론 연구의 출처는 리옹의 이레네오와 같은 그리스도교 저자들 편에서 겪은 혼돈에 담긴 설명과 인용으로 구성되었다. 영지주의의 증언은「예수 그리스도의 지혜La Sofia di Gesù Cristo」나「요한의 외경Apocrifa di Giovanni」과 같은 몇몇 외경 복음서를 거론하며 예수님은 오로지 몇몇 사도나 선택된 제자들과 몇몇 추종자에게만 계시하셨다는 교의를 주장하고 있다.
2 이 책(LS)에서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는 성 바오로의 친서로 간주된다. 학자들은 이 서간이 성 바오로의 친서라는 사실을 문제 삼는 몇몇 사실을 보여준다. “바오로 서간”으로 간주되는 다른 13편의 서간과 달리 히브리서에는 바오로의 이름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이 문헌에는 또한 바오로가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인사 양식도 나오지 않는다. 히브 13,23에서는 티모테오와 함께 익명의 저자가 대상자들에게 직접 언급한다. “우리의 형제 티모테오가 풀려났음을 알려드립니다. 그가 빨리 오면 내가 그와 함께 여러분을 만나보게 될 것입니다.” 이 구절은 편지를 쓴 사람이 바오로라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로마 16,21, 1코린 4,17과 16, 10, 2코린 1,1과 19, 필레 1,1과 19, 1테살 1,1과 3,2. 6, 2테살 1,1에서, 그리고 디모테오 전 · 후서와 필레 1장에서 바오로는 티모테오를 자신의 협력자, 형제, 영적 자녀라고 부른다. 그러나 히브리서는 그리스도의 사제직이라는 주제를 새롭고 독창적으로 다루면서도 바오로의 생각을 담은 위대한 생각들이 나타나지 않는다. 히브리인들의 교사는 알렉산드리아의 교육 문화(그리스 헬레니즘)와 그리스어(칠십인역) 성경에 대한 완벽한 지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바르나바 또는 아폴로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에는 우리가 바오로의 사상이 이 서간에 미친 영향을 볼 수 있는데도 이는 바오로의 친서가 아니라고 간주한다.
3* “성경 읽기에 참여하십시오. 옛 원수(악마)가 당신이 성경에 몰두해 있는 것을 보면, 마치 무장한 적 앞에서 도망치듯 달아납니다.”(성 베드로 다미아노) [그는 988-1072년 사이에 살았다.(어떤 이들은 그가 1007년에 라벤나에서 태어나 1072년 2월 22일 파엔차에서 선종했다고 한다.) 엄격한 참회와 기도의 사람으로 알려진 성 베드로 다미아노는, 극심한 도덕적 타락으로 고통받는 교회의 정화와 쇄신을 더 효과적으로 장려하기 위해 주교와 추기경이 되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는 단테 알레기에리의 피난처이기도 한 폰테 아벨라나에서 깊은 관상과 고독한 삶을 살았고 전례, 신학, 도덕에 대해 중요한 저술을 남겼다.]
4* “성경에서 위안을 얻지 못하는 깊은 관상, 불명예, 재난은 없습니다. 그 어떤 위로나 조언이나 다른 치료법으로도 도움을 받지 못합니다.” [빌라노바의 성 토마스는 1486년 스페인 빌라노바에서 태어났다. 철학을 전공하고 아우구스티노회에 입회했다. 사제로 수품된 후 원장이 되었다. 발렌치아 대주교로 임명된 그는 온 세상에 선교사들을 파견했으며, 특히 페루에 복음을 전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주교관에 고아원을 만들었고, 청소년 사목에 전념했다. 그는 무슬림의 위협에서 교구를 보호했으며, 예수봉헌신학대학을 설립했다. 훌륭한 설교자로서 그는 말보다는 모범으로 많은 사람을 개종시켰다. 동정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학적 깊이는 성 베르나르도에 비견되며, 1550년에 선종했다.]
5 교회가 스스로 지옥을 선택한 사람들의 수를 명시하지 않았다면, 선택받은 소수의 사람들은 아마도 수많은 비난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아우구스티노는 이미 언급했다. 성 대 그레고리오와 여러 교부와 교회 박사들도 저주받은 사람들이 더 많다고 확언한다. 그가 여러 차례 자유 의지를 변호했음에도 아우구스티노는 아우구스티노회 수사인 루터의 지속적인 예정설에 이르렀다. 원죄 이후 인간은 저주받은 수많은 사람에게 속하므로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그 어떤 선도 행할 수 없게 되었다. 하느님이 원죄를 고려하지 않으며, 믿는 사람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바탕으로 할 때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믿음이다.
6* “복음은 정신과 마음에 영향을 미치는 신비로운 미덕과 무어라 정의 내릴 수 없는 효능을 지닙니다. 우리는 복음을 묵상하면서 하늘 나라를 관상할 때 그러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복음은 책이 아니라 장애를 모르는 힘을 받은 살아 있는 실재입니다.”(나폴레옹 1세) [1769년 8월 15일, 코르시카 섬의 아작시오에서 토스카나 출신의 부모에게서 태어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1821년 5월 5일 52세의 나이로 남대서양의 영국 식민지인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폐되었다.]
7 이에 대해 AD 136-145항을 읽으라. 여기서 알베리오네 신부는, “비오 10세는 신학생들에게 성경 공부를 의무화했다.”(137항)고 하며 “대중에게는 성경은 물론 복음서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특별한 사상도 있었다. 복음서를 읽는 것은 거의 비가톨릭인들이 독점했고, 그들은 복음서를 저마다 자기 생각대로 해석했다.”(139)고 말한다. 따라서 알베리오네 신부는 다음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곧 “교리서와 함께 모든 가정에 복음서가 들어가도록 할 것.”(140항) “복음서가 가톨릭의 모든 출판물에 영감을 주고 모델이 될 것.”(141항) “복음서를 흠숭하는 마음으로 간직할 것.”(142항) 복음 전파는 1902년부터 활동한 성 예로니모 수도회에서 영감을 받을 수 있다.(p.203의 각주 9 참조)
8 콘타르도 페리니(1859년 4월 4일 밀라노에서 태어나 마조레 수나에서 1902년에 선종함)는 1931년에 가경자로 선포되었고, 1947년 4월 13일 비오 12세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평신도 독신자였던 그를 사람들은 “성성과 학문의 별”
이라고 일컬었다. 그는 이 책(LS)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여러 대학의 교수였다. 그의 유해는 아고스티노 제멜리 신부의 주장에 따라 예수 성심 가톨릭 대학교 지하성당에 안치되었다. 페리니는 무엇보다 학문과 신앙, 문화와 종교를 조화롭게 일치시키려는 큰 소망을 지닌 이상적인 선구자였다. 국제적 문화 소양을 갖춘 사람으로서 (베를린에서도 공부한) 그는 가톨릭 교수의 모델로 추앙되었으며, “기도를 사랑한 사람”으로 유명했다. 그는 사회학자 토니올로와 탈라모에게 자극을 받아 “국제 사회과학 및 보조 학문 저널”의 존경받는 협력자로서 가톨릭 작가와 사회과학에 헌신하는 사람들을 연합시키려고 노력했다. “토니올로가 기록한 페리니의 이야기 가운데 저에게 가장 큰 감동을 준 것은 그의 탁월한 겸손이었습니다. 그의 교의와 선의와 미덕 또한 뛰어났습니다.” 페리니 교수는 그리스도의 약속을 신뢰하면서 두려움 없이 죽음을 동경했다. “오, 예수님, ‘이제 조금 있으면 나를 보게 될 것’이라는 당신의 거룩한 말씀은 참으로 감미롭습니다.”
9 번역본의 구절은 원본에 따라 번역된 불가타의 라틴어 원문과 일치하지 않으므로 “토빗기 13장”을 참조로 요약하여 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