벳사이다에서 제베데오와 살로메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대 야고보의 형제이기도 한, 겐네사렛 호수의 어부인 요한은 이미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를 부르셨을 때 그는 아버지와 형과 함께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사랑받는 제자로, 자기 머리를 예수님의 가슴에 기대고 있었으며, 갈바리에서는 마리아에 대한 아들의 임무로 예수님의 자리를 받아들이는 고귀한 소명을 받아들였습니다.
예수님의 승천 후에는 예루살렘 교회를 이끌던 베드로와 함께 지냈습니다. 그는 베드로와 함께 사마리아로 갔는데, 예루살렘에 자주 머물며 성모님을 도와드린 것 같습니다. 마리아가 세상을 떠난 뒤, 요한은 에페소로 가서 아시아 교회들을 이끌었습니다. 로마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로 끓는 기름 가마솥에 갇혔으나 아무 상처도 입지 않고 무사히 빠져나왔습니다. 그는 자신이 묵시록을 썼던 파트모스 섬으로 쫒겨갔다가 도미티아누스가 죽자 다시 에페소로 돌아가 거의 100세까지 살았습니다.
교부들은 성 요한이 네 번째 복음과 세 편의 서간, 그리고 묵시록을 썼다는 데 만장일치로 동의합니다.
교부들은 사도 성 요한이 1세기 말 노년기에, 에페소에서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아시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공관 복음보다 늦게 요한 복음을 썼다고 증언합니다. 교부들이 확신하는 바는 넷째 복음서를 분석함으로써 확인됩니다. 곧 공관 복음의 조화로운 일치 안에서, 공관 복음에도 실린 유용한 것이 요한 복음 본문에 많이 담겨 있음을 볼 때 요한 복음은 공관 복음을 완성해 준다는 것입니다.
넷째 복음은 저자가 히브리인임을 보여줍니다. 요한 복음은, 그가 팔레스티나에서 오래 산 히브리인으로서 사도단의 일원이었으며, 이스라엘 민족이 더는 단일 민족이 아닐 때 이방인들 가운데에서 이방인들을 위해 글을 썼음을 보여줍니다. 또 요한 복음사가가 목격 증인임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앞서 언급한 모든 사실과 더불어 그가 쓴 모든 증언에 비추어볼 때 그가 바로 사도 요한이 아닐 수 없음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이는 교부들의 증언이며, 한 세기의 논쟁을 거친 오늘날 그 어떤 엄격한 비평가도 세계 문학 작품 중에서도 초세기의 독보적인 이 책의 저자가 성 요한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숭고한 이 복음도 공관 복음의 소중한 화관이며, 사랑의 펜으로 쓰인 가장 아름다운 예수님 이야기입니다. 오직 요한만이 “천사들의 영역을 초월하여 곧바로 하느님께 가는”(아우구스티노)1 넷째 복음을 쓸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심장박동을 직접 느꼈고, 동정녀 어머니의 온유함을 감탄하며 천상 비밀을 받아들인 요한만이 넷째 복음의 경이로운 이야기들을 쓸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가슴에 귀를 대고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은 요한은 스승의 말씀을 오랫동안 묵상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 그 거룩한 말씀은 그의 마음에서 사랑으로 흘러나왔으며, 참으로 신비롭고 환한 빛으로 그 의미를 비추었습니다. 요한은 이와 같이 실제로 일어난 사실들의 영적 현장에 있었으므로 그리스도에 관하여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고, 공관 복음이 이에 관한 사실을 기록할 수 있는 영광을 차지하게 하였습니다. 반면 그는 요한 복음을 통해 공관 복음을 충만하게 하고 더욱 승화시켰으며, 공관 복음을 더욱 거룩하게 표현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요한은 하늘을 높이 나는 독수리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주님, 당신 구원을 애타게 그리는 이 몸
당신의 가르침이 제 즐거움입니다.”
(시편 119,174)
교회는 사제들이 성무일도에 포함된 성경소구를 읽기 전에 “복음 봉독이 저희를 구원하고 보호하게 하소서Evangelica lectio sit nobis salus et protection.”라는 아름다운 기도를 바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기도를 출발점으로 삼아 거룩한 복음이 우리에게 어떤 방식으로 구원이 되는지 묵상합니다. 우리는 거룩한 복음을 읽는 것이 바로 구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복음은 그 자체로 큰 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복음은 우리의 지향을 정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셋째, 복음은 영적 완덕에 이르는 유익한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첫째, 복음은 큰 공로입니다. 성경을 읽는 것은 거룩한 말씀의 계시와 강생에 참여하는 것이기에 위대한 성사라고 불립니다. 선행을 하고 자선 활동을 하고 싶어하지만, 그 수단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미사에 참례하고 싶어하지만 시간이 없으며, 공로를 쌓기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싶어하지만 능력과 건강과 시간이 부족합니다. 이러한 영혼들에게 성경을 읽게 하십시오. 그러면 그들이 하고 싶어하는 모든 선행을 보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늘 나라에 큰 공덕을 쌓을 것입니다. 모든 선행이 공덕이 된다면, 최초의 성사 가운데 하나인 하느님 말씀을 읽는 것은 얼마나 큰 공로를 세우겠습니까! 공로의 기회는 언제나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공덕은 하느님 말씀을 읽는 성사에 곧바로 따라옵니다.
둘째, 복음은 우리의 지향을 정화시킵니다. 성경과 죄는 공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읽는 거룩한 성경, 그 말씀, 숭고한 예화들은 그 안에 신비로운 힘을 지니고 있으며, 영혼을 지상의 것들에서 조금씩 이탈시켜 하늘 나라로 들어올립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예수님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2
우리는 또 다음과 같은 시편 말씀을 읽습니다. “사람들아, 언제까지 내 명예를 짓밟고 헛된 것을 사랑하며 거짓을 찾아다니려 하느냐? 너희는 알아라, 주님께서 하느님이심을. 그분께서 우리를 만드셨으니 우리는 그분의 것. 그분의 백성, 그분 목장의 양 떼이어라.”3 “‘주님의 집으로 가세!’ 사람들이 나에게 이를 제 나는 기뻤네.”4
영혼이 하늘 나라로 들어 높여지는 것을 느끼며, 하느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최상의 목표에 대한 아름다움과 감미로움을 맛봅니다. 추방된 인간도 긴 여정 끝에 고국으로 돌아갈 것을 고대하는 망명자로서 기뻐합니다
성경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에 계신 아버지, 천사들, 성인들과 일치합니다. 그는 천상적 열망을 지니며, 하느님과 축복받은 영혼들에 대해 생각하며 그들처럼 말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계속 죄를 짓는 것, 다시 말해 하느님과 적대 관계를 이루며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셋째, 거룩한 복음은 영적 완덕에 이르는 유익한 도움입니다. 오, 하느님 말씀이 주는 효과는 얼마나 많습니까! 인간의 담론과 글은 종종 좋은 효과를 내지 못할 뿐 아니라, 안타깝게도 때로는 나쁜 내용일 때도 있습니다. 죄인에게 충고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그는 그 조언에서 유익을 얻기보다 자신의 악으로 더 완고해집니다! 하지만 하느님 말씀은 놀라운 효과를 지닙니다!
책이나 충고는, 충고를 하거나 책을 쓴 사람의 성덕에 따른 힘을 지닙니다. 책은 그 저자가 주입한 만큼 더 큰 힘을 지닐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5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실천」,6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의 「필로데아」7 등에서 영혼들이 얻는 결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직접 쓰신 책이라면, 우리는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요? 이 책은 그 자체로 헤아릴 수 없이 큰 은총을 담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은총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바로 하느님의 책입니다. 하느님은 성경의 주요 저자이십니다. 성경은 영적 독서에 가장 적합하고 가장 유용한 책입니다. 성경에 관련된 다른 모든 신심 서적은 태양에 비교할 때 반딧불에 불과합니다.
성경 말씀은 예수님께서 거룩한 복음에서 말씀하신 신비로운 작은 겨자씨로, 싹이 트면 큰 나무로 자라나게 될 씨앗입니다. “씨는 하느님 말씀입니다Semen est verbum Dei.”8
그 씨는 길가에, 돌밭에, 가시덤불 속에 떨어질 수 있지만, 좋은 땅에 떨어지면 얼마나 많은 열매를 맺습니까! 복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9
그러므로 우리 영혼이 실망에 빠질 때, 은총과 빛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믿음을 갖고 거룩한 책으로 달려 갑시다. 그러면 우리가 바라는 것을 얻을 것입니다.
귀감 – 성 안드레아 아벨리노는 성경을 읽고 회심했습니다. 처음에는 란셀로트라는 세례명으로 불리던 안드레아 아벨리노는 루카니아 카스트로노보에서 태어났습니다. 매우 젊었을 때 문학을 공부하러 떠난 그는 그의 생애에서 가장 섬세한 시기를 여러 교양 과목을 공부하며 보냈습니다. 그런데도 그의 영혼은 불편하기만 했습니다. 성직자 민병대에 등록을 하고 지내던 그는 교회법과 시민법을 공부하러 나폴리로 갔습니다. 법학 공부를 마치고 교회 법정에서 소송 사건을 변호하는 데 힘을 쏟던 그는 한 사건을 변호하면서 거짓말을 하게 되었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는 중에 “은밀히 하는 말도 반드시 결과를 가져오고, 거짓을 말하는 입은 영혼을 죽인다.”10라는 성경 말씀에서 빛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기 잘못을 깊이 뉘우치며 곧바로 변호사직을 떠나 거룩한 신심 활동에 투신했습니다. 그는 수도 사제가 되고자 청원하여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는 수도생활에서 자유 시간이 주어질 때마다 기도와 성경 공부에 전념했습니다. 그의 전기작가들은 그가 시편을 낭송할 때 하늘의 천사들이 함께 노래하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고 합니다. 그는 제단으로 걸어나가 “저는 하느님의 제단으로 나아가오리다.”11라는 성경 구절을 선포하면서 공덕으로 가득 찬 가운데 선종했습니다. 교회는 11월 10일을 그의 축일로 기념합니다.
작은 희생 : 우리에게 거룩한 성경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면서 영광송을 열 번 바칠 것.
모든 민족들아, 손뼉을 쳐라.
기뻐 소리치며 하느님께 환호하여라.
주님은 지극히 높으신 분이시고 경외로우신 분,
온 세상의 위대하신 임금이시다.
민족들을 우리 밑에,
겨레들을 우리 발 아래 굴복시키셨네.
우리에게 골라 주셨네, 우리 상속의 땅을.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야곱의 자랑을.
하느님께서 환호 소리와 함께 오르신다.
주님께서 나팔 소리와 함께 오르신다.
노래하여라, 하느님께 노래하여라.
노래하여라, 우리 임금님께 노래하여라.
하느님께서 온 누리의 임금이시니 찬미가를 불러라.
하느님께서 민족들을 다스리신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어좌에 앉으신다.
뭇 민족의 귀족들이
아브라함의 하느님 백성이 되어 모여 온다.
세상의 방패들이 하느님의 것이니
그분께서는 지극히 존귀하시어라.(시편 47,2-10)
예수님께서 그곳을 떠나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 물러가셨다. 그런데 그 고장에서 어떤 가나안 부인이 나와,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예수님께서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제자들이 다가와 말하였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그제야 예수님께서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러나 그 여자는 예수님께 와 엎드려 절하며,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마태 15,21-28; 마르 7,24-30)
주님, 당신께서는 저를 아십니다. 저를 기억하시고 찾아 주소서. 저를 뒤쫓는 자들에게 복수하여 주소서. 당신 분노를 늦추시다가 저를 잃지 마시고 당신 때문에 제가 수모를 당하는 줄 알아주소서. 당신 말씀을 발견하고 그것을 받아먹었더니 그 말씀이 제게 기쁨이 되고 제 마음에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주 만군의 하느님, 제가 당신의 것이라 불리기 때문입니다. 저는 웃고 떠드는 자들과 자리를 같이하거나 즐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를 가득 채운 당신의 분노 때문에 당신 손에 눌려 홀로 앉아 있습니다. 어찌하여 제 고통은 끝이 없고 제 상처는 치유를 마다하고 깊어만 갑니까? 당신께서는 저에게 가짜 시냇물처럼, 믿을 수 없는 물처럼 되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돌아오려고만 하면 나도 너를 돌아오게 하여 내 앞에 설 수 있게 하리라. 네가 쓸모없는 말을 삼가고 값진 말을 하면 너는 나의 대변인이 되리라. 그들이 너에게 돌아올망정 네가 그들에게 돌아가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이 백성에게 맞서 내가 너를 요새의 청동 벽으로 만들어 주리라. 그들이 너를 대적하여 싸움을 걸겠지만 너를 이겨 내지 못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원하고 건져 낼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너를 악한 자들의 손에서 건져 내고 무도한 자들의 손아귀에서 구출해 내리라.”(예레 15,15-21)
1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노가 요한에 대해 쓴 중요한 주석서는 「요한 복음 강해Tractatus in Ioannem」(복음에 대한 124 차례의 설교와 첫 번째 서간에 대한 10차례의 설교)으로, 406년과 418년 사이에 구두로 전해지거나 부분적으로 받아 적은 것이다. 아우구스티노가 쓴 또 다른 주요 성경 주석서는「시편 상해Enarrationes in Psalmum」 또는 in Psalmos이다. 이는 그리스도와 교회 일치의 신비를 바탕으로 한 신학적·영적 작품이며, “온전한 그리스도Christus totus”의 소리기도,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일치에 대한 것이다.
2 마태 6,24.33.
3 시편 4,3; 100,3.
4 시편 122,1.
5 「그리스도를 본받아」는 수도회에서 시작된 작품으로 베르첼리의 제르송(카발리아의 제르세니오 조반니, 베네딕토회, 베르첼리의 수도원장이라고도 함) 또는 파리의 장 거슨(신학자이자 철학자–거슨, 샴페인, 1363–리온, 1429)이 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우구스티노회의 토마스 아 켐피스가 쓴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 이 책은 근대주의적 신심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6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의 실천Pratica di amar Gesù Cristo」, 18쇄, 치니셀로 발사모: 성바오로, 1999 참조.
7 「필로테아–신심 생활 입문」 3쇄가 나왔을 때 저자는 머리말을 다음과 같이 썼다. “이 책은 1608년에 제 손에서 나왔습니다. 제가 성경 말씀을 인용하는 것은 언제나 그 구절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는 성경 말씀이 사랑과 존경을 받을 만하기에 성경 구절을 통해 저 자신을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느님이 제 이야기를 들으실 때 여러분은 은총과 많은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8 루카 8,11.
9 마태 13,8.23.
10 지혜 1,11.
11 시편 4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