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성 요셉 성월을 지내고 있습니다. 그분은 근면과 침묵의 성인, 동정의 귀감이시며, 성가정의 훌륭한 가장이자 충실한 노동자시며, 아기 예수님의 보호자요,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의 지극히 순결한 정배이시고, 보편 교회의 조상이십니다.
교회가 성 요셉 축일에 바치는 성무일도서에서 “성실한 사람”1이라고 했습니다. 하느님이 맡기신 모든 사명에 아주 성실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분 안에서 하느님의 명령이 완전하게 실행되는 것을 보셨습니다.
순명해야 할 때는 ‘예’라고 말하는 동시에 곧바로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성 요셉은 펜에 비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펜을 사용하고 싶을 때 잉크에 적셔 곧바로 글을 씁니다. 펜이 ‘예’ 하고 말하기를 기다리거나, 펜에게 허락을 청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필요할 때 원하는 대로 펜을 사용합니다.
하느님은 말씀의 육화를 위해 성모님께 동의를 구하셨지만, 성 요셉께는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습니다. 때가 되었을 때 그에게 지시를 내리셨습니다. 성모님은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2라고 대답하셨지만, 성 요셉은 대답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를 의심하는 고통을 겪게 되었을 때, 천사에 의해 확신을 얻게 되
자 그는 즉각적으로 순명합니다. 베들레헴으로 떠나라는 명을 받았을 때에도 그는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와 함께 그곳으로 조용히 여행을 떠났고, 머물 곳이 없자 동굴에 거처를 마련했습니다.
하느님의 명령 앞에서 ‘아니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예’라고 말한 다음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순명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떠벌이고, 자신의 희생을 과시하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완전하게 완수한다는 지향을 지닌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그리고 …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행합니다. … 주님이 생각해 주실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동안 이미 받은 명령을 실행합니다.
천사가 성 요셉에게 말했습니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거라. 아기의 목숨을 노리던 자들이 죽었다.”3 그는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말씀에 곧바로 행동을 취했지만, 이 여행은 숲과 밀림 가운데를 걸어야 하는 힘든 여정이라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천사는 얼마나 머물러야 하는지도 말해 주지 않았습니다. 이집트에서 많은 시간이 흐른 다음, 천사는 성 요셉에게 다시 나자렛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했고, 순종적인 그는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이렇게 해서 구약의 예언들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지 않고 우리 자아를 앞세웁니까! 주님 손에 우리를 맡기고, 당신 섭리가 이루어지도록 합시다. 겸손하고 온순한 영혼들은 하느님께 선택받아, 그분의 손 안에서 위대한 일을 행하는 경이로운 도구가 됩니다.
사제는 말씀을 통해 빵을 주님의 몸으로 변화시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4 사제는 왜 이런 말씀을 되뇌입니
까? 사제는 그 순간 예수 그리스도의 입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느님이신 그분만이 이루십니다.
하느님의 뜻을 이행하기 위해 우리가 그분 손 안에서 많은 준비를 하며 온순해질수록 주님은 더 많은 구원의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하느님에게서 시작되고, 인도되고, 은총으로 강화되는 하느님의 사업이 더 온전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많은 일을 하지만, 주님을 위해 일하지 않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성인들은 이렇게 일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느님 손 안에서 늘 온순합니다. 외적으로만 아니라 내적으로도 온순합니다.
우리는 자주 잘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예, 그렇습니다. 착각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손 안에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분이 당신의 뜻을 드러내시고 우리가 그 뜻을 따를 때 잘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활동을 하느님 손에 맡겨야 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바퀴 사이에 막대기를 집어넣으면서도 잘 하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수레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은 우리의 잘못 때문인데도 수레에 대해 불평을 합니다.
그러므로 “당신 규정의 길을 제게 깨우쳐 주소서. 당신의 기적들을 묵상하오리다.”5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바로 우리가 지녀야 할 자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입장에서 바라봅니까? 그보다는 ‘내가 생각하고, 내가 행합니다. …’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루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하느님이십니다. 우리 모두 준비를 갖춘 펜처럼 됩시다. 우리는 펜을 들고 우리가 원할 때 글을 씁니다. 펜은 우리에게 ‘왜 나를 그 렇게 혹사시킵니까?’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펜을 내려놓을 때
우리에게 감사하라는 요구를 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자신을 주님 손 안에 있는 공과 같은 존재라고 했습니다.6 그 공은 펜처럼 온순합니다.
여러분은 성 요셉처럼 하느님의 종이 되십시오. 여러분은 주님 섬기는 것을 만족해하고 있습니까? 하느님을 섬기는 것은 여왕에게 봉사하는 것 이상으로 위대한 일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이행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우리 힘으로 이루려는 것은 잘못입니다.
성 요셉께 하느님을 참되게 섬기는 정신을 얻기 위해 “주님의 기도”를 바칩시다.
* 8절지에 인쇄된 다른 묵상에 비해 큰 활자로 번호를 붙여 인쇄된 묵상 pp.15-16). “5.목마르다!”의 각주에서 설명한 다섯 차례의 묵상이 포함되어 있다. 본문에서 추정해낸 날짜는 1937년 3월이다.
1 잠언 28,20(불가타).
2 루카 1,38 참조.
3 마태 2,20.
4 루카 22,19.
5 시편 119,27 참조.
6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면의 데레사(Teresa di Gesù Bambino e del Volto Santo, 1873-1897)가 1887년 11월 20일 언니인 예수의 아녜스Agnese di Gesù 수녀에게 보낸 서한 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