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o Giacomo Alberione

Opera Omnia

Effettua una ricerca

Ricerca Avanzata

1. 새해를 위한 통회 - 사랑 - 청원의 마음*

1) 시간을 활용할 것 - 지은 죄에 대한 통회

  오늘 저녁에는 베들레헴의 동굴로 찾아가 아기 예수님과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와 성 요셉 앞에 겸손되이 무릎을 꿇읍시다. 그분들께 이 피정 동안 빛과 은총과 통회와 선한 의지를 우리에게 주시도록 기도합시다. 
지상의 첫 번째 대성당이 되었던 그 동굴에서 마리아와 요셉이 느낀 행복은 어떠하였겠습니까? 동굴의 구유는 유명인이 특별히 건축한 것도 아니고, 대성당이면 당연히 있어야 할 진귀한 장식도 없지만, 모든 아름다움과 모든 귀중함을 창조하신 분인 하느님을 아주 흡족하게 해드렸습니다.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Veniet ad templum sanctum suum Dominator.”1 예수님은 육신, 피, 영혼과 신성을 지니신 살아 계신 참된 분이십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고, 하느님 자체이신 분, 그 아드님을 관상하는 은총을 받은 그 첫날, 성 요셉과 성모님은 얼마나 위대한 신앙과 사랑의 행위로, 얼마나 아름다운 결심을 바치셨겠습니까! 겨우 몇 마디밖에 표현을 못하셨겠지만, 예수님과 요셉과 마리아의 마음이 얼마나 뜨겁게 타올랐겠습니까! 지금 우리 가까이 계신 그분들 앞에서 우리 모두 다음의 세 가지 정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오늘 저녁에는) 통회의 정情을.
  2) (첫 강의가 있을 내일 아침에는) 사랑과 감사의 정情을.
  3) (마지막 강의에서는) 겸손한 청원의 정情을.
오늘 저녁에는 통회의 정에 가득 잠겨봅시다. 우리가 통회해야 할 이유는 아주 많습니다. 1936년 한 해를 지내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죄, 얼마나 많은 잘못을 저질렀습니까! 우리 자신을 깊이 낮추어 주님께 용서를 청합시다!
그분이 우리에게 일 년을 주시면서 베풀어주신 은총을 헤아려봅시다. 우리는 그 한 해가 너무나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느끼면서, 매일매일 달력을 떼어냈고, 매일 편지 상단에 새 날짜를 기입했고, 시계는 계속 돌아갔고, 태양은 365 차례나 떠올랐다가 지곤하였습니다. 성인 한 사람을 탄생시키는 데는 하루로 충분합니다만, 우리에게는 365일도 부족한 것 같습니다. (착한 우도는 아주 짧은 시간에 성인이 되었습니다!2)
주님은 우리에게 시간을 주시면서 다른 모든 선물, 곧 은총, 영성체, 미사, 기도, 사도직 등, 모든 것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주님은 일 년을 생각없이 주신 것이 결코 아닙니다!
시간은 그 표면이 황금동전으로 덮여 흐르는 급류로 상징됩니다. 물은 흐르고, 또 흐르는 가운데 동전도 흘러갑니다. 부지런한 어부는 자신의 배 위에서 그물을 던져 많은 것을 끌어올리지만, 게으른 행인들은 행운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도 모르는 채 걷습니다.
그러나 지난 일 년 동안 이루어놓은 선행을 이제 합산하여 많은 공덕을 발견하게 될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

(통회로써) 한순간에 하느님을 얻을 수 있고, 그래서 천국에서 큰 영광을 받을 수 있는데, 곧 은총의 총합입니다. 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허락되는 선물이 아닙니다. 1936년을 시작한 사람 모두가 똑같이 끝맺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의 낫이 스치고 지나가 풀이 베어졌습니다!
시간은 큰 과제이기도 합니다. 어떤 영혼이 시간을 늘 잘 사용했다면 심판 때에 자랑스러울 것이나, 그렇지 않을 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많은 영혼이 짧은 시간에, 너보다 더 나쁜 조건에서 훨씬 더 앞으로 나아갔는데, 너는 내가 여러 해[年]를 주었는데도 성녀가 되지 못했구나!’
그러면 얼마나 후회가 되겠습니까!
시간이라는 그 큰 은총을 잘 사용할 줄 아는 영혼은 행복합니다! 죽음의 순간에 우리의 유일한 고뇌는 ‘나는 이제 회복될 시간이 없어. 시간이 그렇게도 많았는데!’라는 후회일 것입니다.
매년, 매월, 매일, 매 순간을 활용하지 못한 것은 큰 잘못입니다.
새해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연령에 따라 의무도 다양합니다. 일곱 살이나 열 살 된 어린이에게 요구되는 것을 스물다섯이나 서른 살의 젊은이에게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연륜이 깊은 사람들은 그만큼 선함이 드러나야 합니다!
성탄시기에 읽게 되는 복음구절을 묵상해봅시다.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랐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하여 갔다Et Jesus proficiebat aetate, sapientia et gratia apud Deum et homines.”3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Puer crescebat et conforttabatur et gratia dei erat cum illo.”4

~

예수님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덕과 사랑 안에서 성장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에게도 시간과 덕이 똑같이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성장했어야 하고, 특히 한 해 동안 순명 안에서 성장했어야 합니다! 모든 분원은 수도자의 정신으로 활성화되어야 합니다. 이 덕에 대해 성찰해봅시다. 우리의 순명이 더 즉각적이고, 더 신중하며 마음을 다한 순명이었습니까? 우리는 더 기꺼이 순명했습니까? 아기 예수님을 귀감으로 삼았습니까?
청빈 정신에 있어 진보했습니까? 시간을 잘 활용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수도회에 관한 일들을 잘 행하고, 지상에 우리 마음을 고착시키는 많은 밧줄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졌습니까? 우리는 정결 때문에 더 섬세하게 감각을 다스리고, 하느님께 한층 더 깊은 사랑으로 “온 마음을 다하여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도록 진보했습니까? 우리는 신앙에서, 희망에서, 사랑에서 진보했습니까? 우리는 더 깊이 믿고 있습니까? 우리는 시간을 하느님의 선물로 여기며, 슬프고 기쁜 일들 모두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까?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아름다운 천국을 믿습니까? 이웃사랑에 있어 진보했습니까? 우리의 모든 행동이 더 인내롭고, 더 섬세하고, 더 공정하다고 느낍니까? 우리는 좋은 귀감을 보여주며, 확고하고 관대합니까?
지성, 의지, 마음으로 하느님을 극진히 사랑한다고 느낍니까? 선한 모든 것을 사랑하고 죄를 미워합니까? 우리 안에서 모든 좋은 것이 매력을 불러일으킵니까, 아니면 우리를 차갑고 무관심하게 만듭니까? 우리는 예수님과 더 일치해 있습니까? 예수님께 손을 내밀면서 활동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루 중 영성체에 대해 생각하고, 묵상한 것을 숙고하고, 화살기도를 자주 바치고, 신령성체를 새롭게 할 때 주님과 일치하게 되고, 진정으로 그분을 위해 살게 됩니다. 우리는 그렇게 일치되어 있습니까? 자, 보십시오. 지성이 하느님을

~

찾는다면, 마음이 그분을 더욱 강력하게 열정적으로 사랑한다면, 우리 심장이 예수님의 심장 가까이에서 고동친다면 우리는 분명히 진보한 것입니다. 그 대신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청빈, 순명, 정결을 소홀히 했다는 사실을 보게 된다면, 신앙, 희망, 사랑을 소홀히 했다고 느낀다면, 우리 지성이 교리, 복음, 회헌에 대한 공부를 소홀히 하고 하느님을 알고자 하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더 퇴보하고 미지근해지고, 하느님 뜻에 일치하지 못했다고 느낀다면 더 겸손하게 통회해야 합니다! 통회, 보속, 결심! 이 세 가지 사항이 꼭 필요합니다.

ㄱ) 과거를 보속할 것. 성부께 당신 성자의 지극히 거룩한 고통과 상처를 바치면서, 우리의 모든 잘못을 기워갚는 미사에 잘 참례함으로써 보속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비록 하느님께 잘못한 것이 많더라도, 한 해 동안 범한 죄와 악행이 많더라도 놀라지 맙시다! 우리를 맞아들이기 위해 창에 찔리신 예수님의 성심, 그분의 거룩한 상처에 눈길을 돌립시다!
예수님께 신뢰를, 큰 신뢰를 둡시다. 그것은 내일이 그분의 거룩한 이름의 축일(예수 성명 축일)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내일은 우리 주님의 영명축일입니다!
하늘에 계신 성부께 이렇게 말씀드립시다. “주님, 저는 당신과 사람들에게 많은 빚을 졌습니다. 저의 수많은 잘못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과 함께 당신께 봉헌합니다.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제대 위로 옮겨진 갈바리아의 미사성제에 큰 신뢰를 둡시다! 거기에 대사를 보탭시다. 특히 영성체 후에 전대사를 얻기 위한 기도, “보십시오, 오 나의 사랑하올 좋으신 예수님Eccomi, o mio amato e buon Gesù”이라는 기도를 바칩시다.

~

ㄴ) 오늘과 내일 1936년 한 해에 걸친 양심성찰에 우리의 온 존재를 기울입시다! 더 굳건한 의지, 더 확고한 결심을 하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겸손하게 다음과 같이 말씀드립시다. “주님, 당신은 저에게 날수를 더해주셨지만, 저는 계속 배은망덕했습니다. 주님, 이토록 완고한 영혼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오, 한 번이라도 회개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하시니 이제 겨우 저의 궁핍을 깨닫고, 1937년에는 결코 그렇게 살지 않겠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주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성모님이 하시지 않은 말씀은 저도 하지 않으며, 행하시지 않은 행동은 저도 결코 행하지 않겠습니다.”
이 결심을 곧바로 오늘 저녁부터 시작합시다.

ㄷ) 새해를 거룩하게 보내기로 약속드립시다. 그 끝을 우리가 보게 될지 못 보게 될지 우리는 모릅니다. 어쨌든 우리에게 주신 시간에 대해 하느님께 결산보고를 해야 할 것입니다. 오로지 주님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다면 긴 한 세기가 주어진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937년을 위해, 깊은 겸손이 따르는 선한 의지를 지닙시다. 그런 다음 “이제 저는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 ‘저의 죄악을 제가 알고 있으며, 저의 잘못이 늘 제 앞에 있습니다peccatum meum contra me est semper.’5 저는 주님께 상처를 입혀 드린 그 사건, 그 장소, 그리고 동료를 늘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립시다. 지은 죄가 두 자루에 가득 찰 정도로 불어난 노년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울며 슬퍼한 성 베드로를 본받읍시다. 오, 완덕의 길을 지속적인 겸손의 정신으로 걷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때때로 영성생활에서 우리를 속이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덕이 없는 영혼을 칭찬하는 것은 그 사람을 더 중대한 죄에 빠질 위험에 처하

~

게 만드는 일입니다. 겸손하게 걸어갑시다! 우리 아버지 성 바오로께서 우리의 귀감이 되어 주십니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음을 압니다. 그렇다고 내가 무죄 선고를 받았다는 말은 아닙니다Nihil enim conscius sum, sed non in hoc justificatus sum.”6 주님께 상처를 입혀드렸는지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자신을 의인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저녁에 우리에게 죄를 사해 주시기 위해 당신의 작은 손을 뻗으시는 아기 예수님께 청합시다. 그분의 특별한 자비를 통해, 죽을 때까지 그분께 상처를 입혀 드리지 않도록 우리 마음을 지켜 주시기를 청합시다!

2) 하느님께 대한 감사의 의무

어제 저녁에 우리는 마음속에 간직해야 하는 겸손과 통회의 정에 대해 숙고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감사와 사랑에 관해 생각해봅시다.
우리는 지난 해에 우리 삶 전반에 주어진 모든 은혜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반적 은혜든 특별한 은혜든 우리에게 허락된 하느님에게서 오는 모든 은총을 숙고하기 위해 멈춰서는 것은 매우 유익합니다.”7 이러한 생각은 우리 안에 사랑의 불꽃을 일으켜줍니다. 우리는 그분이 오래 전부터 우리에 앞서 현존해 계심을 알고 있기에, “영원부터 나를 사랑하셨으니, 오 사랑의 하느님!” 하고 주님께 외치는 것입니다. 어린이는 엄마의 사랑을 잘 알지 못하기에, 엄마에게 감사할 줄도, 자신을 희생할 줄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자라서 모든 것을 알게 될 때 아이는 엄마의 사랑에 응답하게 됩니다!
우리는 어른이기에 감사를 느끼고 감탄해야 합니다. “그를 은혜로

~

운 복으로 맞으시고Praevenisti nos, Deus, benedictione dulcedinis! …”8 그렇습니다. 우리의 친밀한 벗이요, 영원부터 우리를 사랑하신 우리의 좋으신 아버지를 사랑합시다.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영적 은혜에 대해 그분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지난 해에 얼마나 많은 미사와 영성체를 하고 좋은 독서를 했습니까! 지극히 거룩하신 성체 앞에서 성체방문을 얼마나 많이 하고, 묵주기도를 얼마나 많이 바쳤습니까! 특히 더 초자연적인 400번에 가까운 미사에, 살아 계시고 참되신 우리의 예수 성심 안에서 받아 모신 영성체에, 헤아릴 수 없이 자주 우리 죄를 사해 주신 고해성사에 우리 눈길을 두어야 합니다. 1936년에 우리가 받은 영적 양성과 수도적 양성에 대해서는 무슨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이 보기에 아주 적은 것들입니까? 아, 여러분에게 성소를 주시면서 주님이 베풀어주신 것은 결코 적지 않고, 서원식 때 여러분의 마음과 생명을 받아주신 것도 결코 적은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진정한 총애로 여러분을 사랑하셨습니다!
지적인 은혜, 곧 강의, 특별 강의, 교리, 신학공부, 신심서적 독서 등에 대해서도 주님께 감사드리십시오.
하느님은 여러분의 지성을 합당하게 비추어주시기에, 우리 신앙의 원칙뿐 아니라 의무와 기도 또한 알게 됩니다. 모든 은혜는 실로 대단히 큽니다! 오, 우리는 오로지 빵과 쾌락만 알아듣는 세속적인 사람들과 같지 않습니다. 우리는 일시적인 모든 은혜에 대해서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아버지 하느님은 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 곧 먹을 것, 잠잘 곳, 입을 것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들의 백합과 하늘의 새들을 돌보시며9 섭리해 주시는 그 하느님이 당신 자녀들인 우리 또한 보살

~

펴주십니다.
우리가 지금 건강하다면, 우리가 병에서 치유되고 위험에서 벗어났다면 우리는 그분께 ‘감사합니다!’ 하고 말씀드려야 합니다.
특히 우리에게, 수도회에, 우리 가족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해 주님께 감사드립시다. 오, 그렇습니다. 주님은 친절하시고 사랑이 넘치시는 우리의 좋은 아버지십니다!491
네 가지 형태의 기도가 있습니다. 곧 흠숭기도, 감사기도, 화해기도, 탄원기도입니다. 성 암브로시오는 감사기도를 근본적인 의무로 여겼기 때문에 첫 자리에 두었습니다. 한편 우리가 주님께 감사드리지 않는다면 그분을 흠숭조차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감사기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하느님에게서 받은 것임을 깨닫는다는 의미입니다. “오직 한 분 하느님께 영예와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Soli Deo honor et gloria.”10 “그대가 가진 것 가운데에서 받지 않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Quid habes quod non accepisti?”11 감사의 의무를 어기는 사람은 민감하지 못한 마음을 보이는 것입니다. 감사는 친절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의 덕입니다. 모든 어머니는 아주 작은 일에도 아이에게 “감사하다고 말씀드려!” 하고 가르칩니다.
예수님은 열 명의 나병환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나병환자들은 지체 하나하나가 천천히 썩어 들어가는 병에 걸린 사람들입니다. 어제 저는 선교사 신문에서, 자신들도 그 병에 감염되고 몸이 변형된 채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사랑의 제물이 되기를 자처하여 800명에서 1,200명이 수용되는 나병요양소로 떠난 수녀들에 관한 소식을 읽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

몸을 보여주어라.” 그들이 가는 동안 몸이 깨끗해졌습니다. 그러나 열 사람 중 한 사람만이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드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12
자 보십시오, 예수님의 탄식을. 감사드려야 마땅한 일이 아니었습니까! 많은 사람이 음식을 대접받았지만, 몇몇 사람만이 감사를 드립니다. 많은 사람이 “주님의 기도”(특히 두 번째 부분)를 바치지만, 몇몇 사람만이 주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고,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셨으며, 생명을 지켜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리는 “하루를 봉헌하는 기도”를 바칩니다.
은총을 받기 전에 기도를 많이 하고, 성녀 리타13에게, 성 안토니오14에게, 또는 성녀 지타15에게 서약을 하지만, 받은 은총에 대해서 이 성인들과 주님께 감사를 더 많이 드려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합니까?
한 해의 마지막 날, 성체 앞에 다가와 “사은 찬미가Te Deum”를 바치는 사람들도 소수에 불과합니다.
어떤 이는 천상의 은총을 받았음에도 더 큰 은혜를 받지 못했다고 불평합니다. 그런 이들은 행인들에게 손을 내밀어 돈을 받지만 감사보다는 던져준 돈이 얼마인지만 바라보고 앉아 있는 걸인처럼 행동합니다. 자기가 번 동전이 너무 적다고, “50센트 밖에 안 됩니다.”라며

~

슬프게 말했습니다.
그 정도면 훌륭합니다! 정말, 그 이상의 것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인정받음은 우리에게도 유리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다른 은총을 주실 것입니다! 1936년에 받은 은총에 감사하는 사람은 1937년에 더 풍성한 은총을 받을 것입니다. 수도원에 온 것을 감사하는 사람은 수도원에 머무는 은총을 받을 것입니다. 자신이 그럴 자격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성소의 은총을 받은 것에 무척 기뻐하며 주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리는 소년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신심과 사도직에서 큰 발전을 하였으므로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축복하셨습니다. 얼마나 자주 배은망덕 때문에 성소를 잃어버리는지 모릅니다! 수도복을 입는 착복식에 대해 감사하는 사람은 쉽게 수련기에 들어가고, 수련기에 대해 감사하는 사람은 먼저 유기서원기에 이르며, 그런 다음 종신서원에 이르고 마침내 영원한 서원에 이르게 되어, 예수님께서 그 수도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정배여, 와서 월계관을 받아라Veni, sponsa, accipe coronam!”16 오늘 영성체에 대한 감사는 내일 새롭게 영성체를 하게 해줄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빵에 대한 감사는 내일을 위한 빵을 얻게 해줄 것입니다. 
성 코톨렌고는 “하느님 감사합니다Deo gratias!”라는 말로 감사하지 않았을 때 얼마나 꾸짖었는지 모릅니다. 성인은 “감사가 불완전한 인간인 나를 이토록 기쁘게 해준다면, 예수 성심께는 얼마나 큰 기쁨이 되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식사 전 기도를 하지 않고 음식을 먹거나 식후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 영성체를 하고 황급히 성당을 나가는 사람도 꾸짖었습니다.

~

1936년에 받은 은총에 대해 감사드립시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뿐 아니라 지성, 의지, 마음을 위한 생명의 빵까지 주신 하늘에 계신 성부의 손에 애정을 표합시다!
셀 수 없이 우리를 죄에서 벗어나게 해주신 성모님의 손에도 애정을 표합시다! 거룩한 성체를 모셔들이고, 수호천사의 발에도 애정을 표합시다! … 강의 후에 “하느님 감사합니다Deo gratias”라고 인사하는 습관은 아주 좋은 습관입니다. 감사하다고 말할 때 여러분은 지혜롭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나는 아직 더 갖기를 원합니다.’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배은망덕은 주는 사람의 손과 마음을 차단합니다.
어떻게 우리의 감사를 하느님께 드러낼 수 있겠습니까? 미사성제에서 우리는 그분께 육신, 피, 영혼과 신성을 갖추신 예수님을 봉헌하면서 동시에 사제에게 봉헌합니다. 
미사 집전자는 하늘을 향해 잔을 들어 올리며 “나 무엇으로 주님께 갚으리오? 내게 베푸신 그 모든 은혜를. 구원의 잔을 들고서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네Quid retribuam Domino pro omnibus quae retribuit mihi? Calicem salutaris accipiam et nomen Domini invocabo.”17라는 기도로 성부께서 기꺼워하시는 합당한 감사를 드립니다.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성자에 의해 바쳐지는 제물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Hic est Filius meus dilectus.”18
여러분은 토빗 이야기를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긴 여행길에서 돌아온 토비야는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그 사람(성 라파엘 대천사)에게 품삯을 얼마나 주면 되겠습니까? 저를 건강한 몸으로 돌아오게 해주고 제 아내를 고쳐주었으며, 저와 함께 돈을 가져왔고, 또 아버지를 고쳐주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그에게 품삯을 얼마나 더 주어

~

야 하겠습니까?”19
여러분은 주님께 무엇을 드리겠습니까? 거룩한 서약으로 그분께 바치는 삶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성부께 예수님을 봉헌하십시오. 마땅한 감사가 될 것입니다! 1937년을 잘 살아감으로써 여러분의 감사를 한 번 더 증명하십시오. 죄짓지 말고, 많은 공덕을 쌓으면서 더 섬세하게 금년을 보내십시오. 그분이 무척 좋아하시는 섬세한 사랑으로, 큰 사랑으로 주님을 섬기십시오. 죄에 대해서는 더 말씀드릴 것이 없지만, 섬세함에 대해서는 말할 것이 더 있습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섬세하십시오!
여러분이 받은 많은 은총, 빛, 영감, 특별한 은총, 성인이 되라는 초대, 공덕을 쌓고, 자신을 극복하도록 주신 많은 도움에 대한 감사로써 사랑을 일으켜 주시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그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있는 하느님의 은총이 해주신 것입니다sed gratia Dei mecum.”20 이렇게 함으로써 여러분은 더욱 부유해질 것이고, 여러분의 영혼은 영성의 길에서 진보하게 되며, 충만한 빛에 한층 더 다가설 것입니다. 사랑합시다. 예, 주님을 사랑합시다! 그분은 성녀 아녜스가 말한 것처럼 우리를 가장 먼저 사랑한 분이십니다!

3) 죽음

우리의 삶 전체가 죽음에 대한 준비입니다. 그것은 바로 매일, 매달 공덕을 쌓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복된 영원의 문턱에서 기다리고 있는 공덕을 다시 발견할 것입니다. 죽음의 순간은 일하는 시간이 아니라, 많은 것을 마무리하는 시간이라고 착각

~

해서는 안 됩니다. 살아 있을 때 공덕을 쌓은 것을 죽음에 이르러 그것을 가지고 떠나는 것입니다. 시간은 끝날 것입니다. 이때 등불을 밝힐 기름을 사야 하는 사람은 불행합니다!21 성경은 우리에게 준비하라고 당부합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Sint lumbi vestri praecincti et lucernae ardentes in manibus vestris.”22 금년을 우리 삶의 마지막인 것처럼 보내면서 죽음을 맞을 때, 모든 것이 우리를 위해 준비된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열정적인 상태에 있다면 복됩니다! 말보다 행동으로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을 드러내고, 그분 뜻에 우리의 뜻을 일치시킬 수 있을 때 우리는 행복합니다!
죽음에 관해 세 가지 은총을 청해야 합니다.
  1) 잘 죽기 위해 잘 사는 은총.
  2) 그러한 행보를 잘 하기 위해 하느님의 자비로 도움을 받는 은총.
  3) (주님께서 원하신다면) 갑작스런 죽음이 아니라 장기적인 준비와 가까운 준비 외에도, 가장 좋은 때를 허락받을 수 있는 은총입니다.
피정의 세 번째 강의는, 단순한 강의나 묵상이라기보다 하느님께 직접 선종의 은총을 간청하는 참되고 진지한 염경기도라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은총을 간청하는 미사는 미사경본 207쪽에 나옵니다. 입당송에서 “살펴보소서, 저에게 응답하소서, 주 저의 하느님. 죽음의 잠을 자지 않도록 제 눈을 비추소서. 제 원수가 ‘나 그 자를 이겼다’ 하지 못하게, 제가 흔들려 저의 적들이 날뛰지 못하게 하소서.”23라고 기도합니다. 이 입당송은 무시무시한 순간에 우리가 듣고 겪게 될 것을 들려주며 우리를 죽음의 침상으로 인도합니다. 주석가들은, 입당송에서 집전자는 하느님께 갑작스런 죽음에서 벗어나도록 청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

이것은 하나의 은총일 수 있는데, 착한 영혼에게는 마지막 순간에 즉각적인 준비가 허용될 것입니다.
죽음은 두 가지 의미에서 갑작스런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곧 윤리적인 것과 물리적인 갑작스런 죽음인데. 전자는 두려워해야 합니다! 방탕과 죄 속에서, 또는 미지근하게 살아가면서 고해성사를 미루다가 죽음을 당하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최악의 불행입니다! 죽음이 다가왔을 때, 정상적인 상태에서 지은 죄에 대해 통회를 하고 대사를 얻어야 합니다. 그리고 쌓은 공덕이 있어야 합니다.
제때에 모든 것을 예견하지 못한 사람은 불행합니다! 어떤 고통을 받겠습니까! 그래서 공덕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공덕을 쌓았다면 죽음은 갑작스런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공덕을 쌓지 못했다면 우리가 100년을 산다 해도 죽음은 갑작스레 덮치는 것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언제나 준비된 사람은 행복합니다! 
복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Videre, vigilate et orate.”24 이 세 가지 동사는 세 가지 규칙이요, 세 가지 권고요, 세 가지 경고입니다.
이제 주의 깊게 본기도, 서간, 복음을 읽어봅시다. ‘잘 사는 사람만이 잘 죽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본기도: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 인류에게 건강과 영생의 선물을 주셨으니, 당신 종들인 저희를 가엾이 보시고 당신께서 창조하신 영혼들을 위로해 주시어, 그들이 이 세상을 떠날 때 천사들의 손을 통해 아무런 죄의 흔적도 없이 창조주이신 당신께 나설 수 있는 공덕을 쌓을 수 있게 해주소서. 우리 주 …”
서간은 산 이들과 죽은 이들, 의인들과 죄인들의 심판관이신 하느님 앞에 서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켜줍니다.

~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우리 가운데에는 자신을 위하여 사는 사람도 없고 자신을 위하여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셨다가 살아나신 것은, 바로 죽은 이들과 산 이들의 주님이 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대는 왜 그대의 형제를 심판합니까? 그대는 왜 그대의 형제를 업신여깁니까?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사실 성경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살아 있는 한 모두 나에게 무릎을 꿇고 모든 혀가 하느님을 찬송하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저마다 자기가 한 일을 하느님께 사실대로 아뢰게 될 것입니다.”25 
복음: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리고 그날이 너희를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여라. 그날은 온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들이닥칠 것이다.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26
우리 앞에 심판이 주어집니다. 매 순간 깨어 기도해야 하고, 준비해야 하고, 잠들지 말며, 뒤로 미루지 말아야 합니다! 아, 누가 알겠습니까! … 1936년에도 수많은 사람이 영생으로 넘어갔고, 우리의 친애하는 자매들도 떠났습니다. 1937년에는 누구 차례가 되겠습니까? 누가 떠나게 될런지요? 이것은 하느님의 비밀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일하고, 뒤로 미루지 않고, 주의하고 있도록 늘 불확실한 상태에 우리를 놓아두십니다. “이제 밤이 올 터인데 그때에는 아무도 일하지 못한다 Venit nox in qua nemo potest operari.”27 

~

주의력이 부족한 영혼은, 생애 마지막에 이를 때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낭비하다가 내일을 위한 과제를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는 마에스트라에게 그 일을 하게 해달라고 청하면서 울먹이지만, 마에스트라는 ‘아닙니다. 이제 시간이 없으니, 자매도 쉬러 가세요!’라고 말할 것입니다.
기도문을 읽어봅시다. “당신께 기도드리오니 오, 주님, 저희 생애의 마지막 순간을 위하여 저희가 당신께 봉헌하는 성체를 받아주시어, 성체를 통하여 저희의 모든 죄가 사하여지고, 이 삶에서 당신 섭리로 시험을 겪었으니 다가올 영원한 안식을 얻게 해주소서.” 
영성체 때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주 하느님의 위업을 칭송하며, 들어가 오로지 당신의 의로움만을 기리렵니다. 하느님, 당신은 제가 어릴 때부터 저를 가르쳐오셨고 저는 이제껏 당신의 기적들을 전하여 왔습니다. 늙어 백발이 될 때까지 하느님, 저를 버리지 마소서.”28
끝으로 주님께서 마지막 순간에 우리를 도와주시도록 청합시다. 그 순간 악마가 우리를 파멸시키려 하더라도, 유혹에 넘어가게 내버려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오 전능하신 하느님, 이 성사로 당신 은총을 통해 마땅히 견고해지는 당신의 인자하심에 의지하여 당신의 종들인 저희가 청하오니, 저희가 죽을 때 원수들이 저희를 꺾지 못하게 하시고, 당신의 천사들과 더불어 영생으로 넘어가는 은공을 얻게 해주소서. 주님께서는 …”
악마는 늘 노리고 있는데, 우리는 잠자고 있어야 하겠습니까? 아, 무관심이나 미지근함 속에 잠들어 버리지 않는 자매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늘 활동적이고 깨어 있으며, 자신을 극복하기 위해 계속 일하고, 하느님의 뜻을 완수합니다. 휴식을 취하러 가면서도 그 시간을 유용하게 사용할 줄 알고, 졸음과 심장의 박동까지 주님께 봉헌합니다.

~

악마는 우리가 죽는 순간에 자기 힘을 갑절로 늘릴 것이고,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잘못한 일이나 충분히 이루지 못한 일 때문에 절망에 빠지도록 유혹할 것이며, 오만에 빠지도록 유혹할 것입니다.
제발, 여러분이 죽어가는 사람을 도와주었다 해도 오만해지는 위험에 놓이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당신은 좋은 사람이니 용기를 내십시오.”라고 하지 말고, “십자가를 바라보고 희망하십시오!”라고 말하십시오. 오, 성 루이지처럼, 삶을 통틀어 단지 두 차례 소죄를 범했다 해도 울며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아, 만일 우리가 하느님의 상처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면!
영혼을 겸손으로 이끌어주십시오. 죽음의 순간에 겸손의 감정, 인내의 감정, 십자가, 성심, 성사에 대한 신뢰를 부추겨주십시오.
우리는 그 통회의 침상에서 마지막까지 잘 견딜 수 있도록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신덕송, 망덕송, 애덕송을 바쳐주는 보살핌을 받아야 합니다. 신학에서는, 인내의 은총이 가장 얻기 힘들고, 그 어떤 성인도 합법적으로29 공덕을 쌓을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늘 그 은총을 청합시다!
이제 선종하기 위한 은총을 얻기 위해 “성모송” 둘째 부분을 세 차례 바칩시다.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가 갑작스레 죽기를 원하신다면, 적어도 우리가 은총 상태에 머물거나 열심한 순간에 있을 때, 예컨대 영성체 후에 그렇게 되기를 바랍시다. 우리 중에 제일 먼저 죽게 될 사람을 위해 “주님의 기도”를 바칩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

~

* 세 차례의 강의를 통한 월피정. 1월 1일에 한 다른 묵상과 함께 16절지에 인쇄되었다(pp.1-12). 왼쪽 위에는 G.D.P.H.라는 모토가, 중앙에는 “월피정(1937년 1월)”이라고 적혀 있다. 피정은 로마에서, 1936년 12월 31일에 시작하여 1937년 1월 1일에 끝났음을 본문에서 알 수 있다. 강사는 “프리모 마에스트로”로 되어있다. 피정 동안 했던 세 차례의 묵상 제목은 “강의”라고만 되어있다. 추가된 제목은 이어지는 등사본의 제목과 같다.

1 말라 3,1. 

2 루카 23,39-43 참조.

3 루카 2,52.

4 루카 2,40.

5 시편 51,5.

6 1코린 4,4.

7 S. Francesco di Sales, 「신애론Filotea」, parte III, cap. 5 참조.

8 시편 21,4 참조.

9 루카 12,24.27 참조.

10 1티모 1,17.

11 1코린 4,7.

12 루카 17,11-18 참조.

13 Rita da Cascia(1381-1457)는 로카포레나(페루지아)에서 출생했으며, 혼인하여 자녀를 두었지만, 아우구스티노수도회 수녀가 되어 카시아의 수도원에서 살았다.

14 Antonio da Padova(1195-1231)는 리스본에서 출생하였으나 프란치스코 작은 형제회의 수사가 되어, 1227년부터 이탈리아에서 살았다. 그는 탁월한 강론가요, 교회학자이다.

15 Zita(1218-1272)는 만사그라티 (루카Lucca)에서 출생하였으며, 12살 때부터 죽을 때까지 부유한 가정의 하녀로 살았다.

16 “오너라, [그리스도의 신부여]. 주께서 너를 위해 마련하신 화관을 받아라.” 로마 성무일도서, 동정녀 공통 제2저녁 기도, 성모의 노래 후렴.

17 시편 116,12-13.

18 마태 3,17; 17,5.

19 토빗 12,2-3 참조.

20 1코린 15,10.

21 마태 25,10 참조.

22 루카 12,35.

23 시편 13,4-5 참조.

24 마르 13,33.

25 로마 14,7-12.

26 루카 21,34-36.

27 요한 9,4.

28 시편 71,16-18 참조.

29 de condig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