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십자가 위에서 하신 예수님의 다섯 번째 말씀
우리는 하느님께 대한 거룩한 사랑 안에서 죽는 은총을 받도록 초대받았습니다. 임종자들의 수호자이신 성 요셉에게서, 지극히 거룩하게 이 세상을 떠나가신 성모님에게서, 특히 죽어가는 모든 이의 귀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거룩한 귀감에 따라 죽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부와 깊고 완전한 일치 안에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고통의 바다에서, 당신 사명을 온전히 완수하신 후 돌아가셨기에 진정한 귀감이십니다. 그 누구도 “다 이루어졌다Consummatum est.”1라는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재현해낼 수 없습니다. 그 의미는 내 사명은 성취되었고, 성부께서 나에게 원하신 모든 것을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죽는 순간, ‘주님이 나에게 바라신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죽음은 얼마나 위대한 일입니까! 천국을 보장받기 원하는 모든 영혼은 죽음의 순간에 이 말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성자께서는 인류 구원에 관한 성부의 염원을 아셨기에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2라는 자세로 자신을 봉헌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성부께서는 죄로 타락한 아담의 후손을 구원하기 위해 그분을 보내셨고, 천국에 갈 수 없는 이들 편에 서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시어 나자렛에서 사셨으며, 모든 면
에서 성부의 뜻을 실현하면서 당신의 가르침을 설파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당신 모범의 법을 남겨주실 때나 복음을 선포하실 때 “나는 언제나 아버지 마음에 드는 일을 한다.”3고 단언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뜻을 완벽하게 성취하시기 위해, 당신 생애의 마지막에는 아주 큰 형벌을 견디셔야 했습니다. 곧 당신의 수난으로 드러나는 겸손입니다.
우리는 겟세마니 동산에서 다음과 같은 부르짖음을 듣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4 그러나 그분은 마지막 한 방울까지 용기 있게 다 마시셨습니다.
그분은 겟세마니에서 카야파에게 인도되셨고, 그런 다음 빌라도에게, 그리고 헤로데에게, 다시 빌라도에게 인도되셨습니다. 가시관을 쓰셨고, 사형선고를 받으셨으며,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고 갈바리아로 가시어 그곳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로써 그분 안에서 성부의 뜻이 완전히 성취되었습니다.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늘에서 오셨고, 열두 사도를 뽑으셨고, 세상에 당신의 가르침과 성사를 남겨주셨으며, 지극히 거룩한 성체성사 안에 당신 자신을 남기셨습니다. 인간은 이미 열린 하늘과 구원에 이르기 위한 수단을 갖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은 죽어가는 이들에게 큰 위안입니다. 자신의 삶의 끝자락에 도달할 때, 지난 모든 세월을 되돌아보며 주님께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당신은 저에게 믿음을 주셨고, 제 안에 여러 은총을, 무엇보다 성소가 성장하도록 많은 수단을 주셨기에, 저에게 명령하신 모든 것을 완수하면서 저의 모든 역량5을 발휘할 수 있었으니, 이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영혼은 얼마나 큰 평화를 누리겠습니까! 혹시 세례성사 때 약속한 모든 것에 충실하지 못했습니까? 착한 영혼이 아니었습니까?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착한 영혼으로, 예수님에게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들을 것입니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6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죽을 때 보장받아야 할 위로입니다. 그때 ‘주님, 저에 대한 당신의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저는 당신의 원의와 당신의 열망을 채워 드리려고 노력했고, 모두 성취했으니, 이제 저에게 영원한 보상인 천국을 주십시오.’라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은혜로운 일이겠습니까!
한 주간 동안 자기 의무를 성실하게 완수한 다음, 주인에게 “한 주간이 끝났으니 저에게 보수를 주십시오.” 하고 말하는 선한 일꾼처럼 살아야 합니다. 성 바오로는 주님을 위해 많은 고난을 겪은 다음 그분께 받을 보상을 찬미가로 바쳤습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corsum consummavi, fidem servavi, in reliquo reposita est mihi corona justitiae.”7 그렇다면 과연 누가 죽음의 순간에 이런 상태에 놓일 수 있겠습니까? 우리 자신 안으로 내려가 우리 뜻이 하늘에 계신 성부의 뜻에 부합한지 성찰해봅시다.
삶에는 두 번의 중요한 순간이 있습니다. 신분의 선택과 죽음을 받아들여야 할 때입니다. 성소를 받아들이고, 하느님의 뜻을 모두 받아들이는 사람, 다가오는 죽음을 겸손되이 받아들이는 사람은 매우 큰 공덕을 이룬 사람입니다. “이제부터 주님 안에서 죽는 이들은 행복하다.”8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을 마음에서 내려놓고, 하느님의 일에서도
자신을 떼어놓은 사람은 행복합니다. 인간의 인정을 찾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준수해야 할 계명 외에 복음적 권고가 있습니다. 회헌을 사랑하고, 우리에게 주어지는 아주 작은 명령까지도 따릅시다. 우리는 우리 뜻대로 하기 위해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외부에서 주어집니다. 하느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말을 듣는 이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고, 너희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물리치는 사람이다.”9 교회의 교역자들에게 귀 기울이는 사람은 하느님께 귀 기울이는 것입니다. 인도하는 사람의 말을 듣는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심 서적에 머물지 말고 교회에 머물러야 합니다. 성령은 각 사람에게 직접 주어지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외적인 것에서, 영혼을 인도하는 사람을 통해 주어지고, 이에 순명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뜻을 이행했으므로 자기애의 제물이 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거룩한 성합을 바라보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을 바라보십시오. 예수님은 “다 이루어졌다.”는 말씀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성부의 뜻을 완수하셨음을 입증하십니다.
떠나시기 전에, “아버지, 저를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10 곧 “저에게 명령하신 모든 것을 이행했으니, 이제 제가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해드리도록 저를 영광스럽게 해주십시오.”1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금요일에 우리는 “주님, 제 삶의 끝자락에서 ‘저에게 행하도록 명령하신 모든 것을 저는 늘 행했습니다.’”라고 말씀드리도록 합시다.
* 8절지에 인쇄된 이전의 묵상에 비해 훨씬 긴 다섯 차례의 묵상이 포함돼 있다. “다 이루어졌다(pp.11-12).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pp. 9-10).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pp.12-13)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pp.14-15). “성 요셉, 순명의 귀감” (pp.15-16).
1 요한 19,30.
2 이사 6,8 참조.
3 요한 8,29 참조.
4 루카 22,42 참조.
5 마태 25,14-30 참조.
6 마태 25,21 참조.
7 2티모 4,7-8.
8 묵시 14,13.
9 루카 10,16.
10 요한 17,1 참조.
11 요한 17,4-5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