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의 대부분은 궁중 예언자 다윗에게서 기인합니다.
열왕기1 · 2 · 3권에 자세하게 묘사된 이 거룩한 임금의 다사다난한 삶은 의로운 사람, 지혜로운 임금, 참회자의 삶을 보여줍니다.
사울에 대한 책망을 이야기할 때 처음으로 성경에 기록된 다윗David1은 사울의 후계자로 축성되도록 주님께서 계획하신 사람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베들레헴의 이사이입니다.
하느님이 내리신 형벌로 사울 임금이 악령에 사로잡혔을 때 청년 다윗은 궁정으로 불려가 조화로운 선율의 비파를 타서 사울을 진정시켰습니다. 잠시 후, 우리는 그가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는 것을 봅니다. 이곳이 바로 하느님의 이름으로 무방비 상태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교만한 골리앗을 대적하여 죽인 곳입니다. 이 때문에 모든 군중이 기뻐했으나 사울은 다윗을 둘러싼 대중의 호의까지 의심하면서 갈수록 질투심으로 불타올랐습니다. 처음에 그는 자기 딸 메랍과의 혼인을 거절했습니다. 다윗이 필리스티아인들과 싸워 승리한 후에야 비로소 [둘째딸] 미칼과의 혼인을 허락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다윗이 출전하여 죽게 되기를 바랐습니다.
청년 다윗은 처남 요나탄과 친밀한 우정을 쌓았기에 요나탄은 분노에 휩싸인 임금의 창에서 여러 차례 그를 구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궁정에 머무르는 것이 안전하지 않음을 깨달은 다윗은 달아나야만 했습니다. 다윗은 광야를 헤매다가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피해다녔는데 사울이 번번이 뒤쫓아왔고, 다윗은 두 번이나 사울을 해치울 기회가 있었으나 관대하게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다윗의 추종자들은 갈수록 늘어났습니다.
필리스티아인들과의 전투에서 사울이 전사하자 다윗은 유다 임금으로 축성되었습니다. 그의 영광스럽고 행복한 통치는 자기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방해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하여 주님은 다윗이 지은 심각한 죄로 그를 벌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후일에는 그의 교만한 행위에 대한 처벌로 3일 동안 계속된 흑사병으로 백성 7만 명이 죽었습니다. 거룩한 임금은 자신의 부족함에 대해 울며 끊임없이 통회하였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가 하느님께 범한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 형벌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셨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머무실 합당한 성전을 짓고자 하였지만, 그 계획의 실현은 그의 후계자의 영광으로 돌아갔습니다. 다윗은 40년 동안 통치한 후 죽을 날이 가까워지자 자기 아들 솔로몬을 후계자로 택한 후 70세의 나이에 평화롭게 삶을 마감했습니다.
시편은 이스라엘 백성의 종교 찬가 모음입니다. 시편 가운데 많은 부분을 시인 다윗이 쓴 것으로 여겨 다윗 시편이라고 일컫습니다.
교회가 물려받은 시편은 회당의 기도서 역할을 했습니다. 150편의 시편 모음은 다윗 시대부터 에즈라 시대에 이르기까지 몇 차례에 걸쳐 수집되었습니다.
모든 시편을 다윗이 쓴 것은 아닙니다. 시편 제목만 보아도 모세와 느헤미야Nechemia2에 이르는 다양한 인물을 언급합니다. 유배와 회복 시편을 수집한 에즈라가 마지막으로 시편을 손질한 것 같습니다. 시편은 거의 모든 종류의 시에 고귀함을 부여하여 찬가, 감사, 기도, 경건한 묵상, 역사시, 교훈시, 참회시를 이룹니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그리스도에 대해 언급하며 웅장한 예언을 하는 메시아 시편입니다.
교회에서 사용하는 텍스트는「갈리아 시편」으로, 오리게네스의「헥사플라」(6개 언어 대조 성경)를 성 예로니모가 수정하여 불가타 번역본의 일부가 된 것입니다.
성무일도서의 혼이자 구약성경의 참된 신심의 정원인 시편은 농부, 사색하는 사람, 포도원지기, 목자들이 시편을 노래함으로써 각자의 일을 성화했던 순교자 시대와 교부 시대에서처럼|
그리스도인들의 기도서로 돌아와야 합니다. 시편에는 모든 영혼을 위한 찬가와 기도가 담겨 있으므로, 각자 자기 것으로 만들어 마음으로부터 암송하기가 수월합니다.
“당신 말씀은 지극히 순수하니 당신 종이
이를 사랑합니다.” (시편119,140)
성경 곧 가장 탁월한 책은 트리엔트 공의회가 거룩하며 하느님에게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정의 내린 72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사람들을 하늘 나라로 초대하며 그 길을 가르치기 위해 하느님께서 사람들에게 보낸 유일한 편지입니다.
그러므로 출판 사도직의 본질적 요소로서 오로지 성경이 담기게 하는 것이 무척 중요합니다. 때때로 성경과 비슷한 무엇인가를 행한다 해도 성경 자체가 없다면 출판 사도직은 어떤 식으로든 지속될 수 없습니다.3
실제로 하느님은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시고, 사도들과 교황들은 하느님의 대리자로서 그 뒤를 계속 따라갑니다. 사제는 교황의 펜과 입과 손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출판 사도직은 하느님 활동의 연속입니다. 뿌리 없는 식물이 있을까요? 샘이 없는 시냇물을 본 적이 있습니까? 십자가 없는 성사가 있습니까? 시작하지 않은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요?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은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그 가지는 예수님에게서 멀어져 괴로워할 것입니다.|
그러한 가지는 권위와 힘과 공덕과 독자들을 잃어버립니다. 우리는 사명이 없는 사제직을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의 진리는 출판 사도직 안에 담겨 있습니다. 하느님은 모세에게 글을 쓰라고 명령하셨고, 그 이후의 모든 거룩한 저술가들은 모세에게서 내용을 가져와 확장하며 적용했습니다. 신약성경을 쓴 작가들은 우리에게 어둠과 성취된4 예언을 보여주었고, 하느님 아드님이 가져오신 진리와 은총의 신비를 드러냈습니다. 교회는 세상 끝날 때까지 사람들과 함께 머물러 성화시키며 유일하고 보편되며 결함이 없는 스승으로서 끊임없이 활동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과 신비 차원의 삶을 계속합니다. 사제들은 출판을 통해 그분의 가르침을 반영하고 전하며 굳건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출판 사도직이 주는 것은 바로 성경의 진리입니다. 출판 사도직이 역사적 사실을 통해 그 진리를 내어 주려고 투신하는 한, 그 진리 위에 교리와 도덕, 하느님을 공경해야 하는 경신례의 실천 사항을 쓰는 한 출판 사도직은 성경의 진리를 전해줍니다.
역사는 그림이 그려지는 거대한 캔버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위에 글을 쓰셨으며 또 쓰고 계십니다. 저술가들은 이를 읽고 사람들을 초대하여 이에 대해 묵상하고 읽고 식별하고 배우고 살아내며 구원 받게 합니다.
1) 주요 목표: 사실 출판 사도직의 주요 목표는 성경의 목표와 같습니다. 곧 하느님과 사람들의 영혼에 대한 진리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이는 영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성부로서의 하느님 활동, 성자로서의 하느님 활동, 성령으로서 하느님 활동이 계시되고 선포됩니다. 더욱이 영혼들에 대한 임무, 곧 거룩한 계명에서 복음적 권고에 이르기까지|
가장 드높은 덕에 이르기까지 전합니다. 그리고 계시가 우리에게 매우 풍성하고, 성도들의 어머니인 거룩한 교회가 권위 있는 스승이 되는 온갖 성화 수단이 있습니다.
2) 같은 목적: 하느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사람들의 영혼이 영원한 구원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출판 사도직은 인간의 이익이 아니라 오직 한 가지 보물, 곧 영원성을 지닙니다. 출판 사도직은 영원을 보장하며 이웃에게 그 영원을 얻어주고자 합니다. 이러한 영혼들은 그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신 예수님의 마음에 소중한 만큼 사랑스럽습니다.
3) 같은 수단: 성경과 출판 사도직은 같은 목소리, 곧 글로 쓰인 것을 활용합니다. 편집실의 가장 좋은 장식품은 복음사가들의 모습이 담긴 액자입니다. 신심의 가장 좋은 표징이자 목표는 “씨는 하느님의 말씀이다.”(루카 8,11)5라는 말씀이 쓰인 펼쳐진 복음서입니다. 몇몇 씨앗은 좋은 땅에 떨어져 최상의 열매를 맺습니다. 어떤 것은 삼십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또 어떤 것은 백 배의 열매를 냅니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주의 깊게 들으십시오.
바로 여기에 우리가 날마다 경건하게 성경을 읽어야 하는 필요성이 따릅니다. 교황 레오 13세, 비오 10세, 베네딕토 15세는 이처럼 성경을 읽는 경건한 실천을 무척이나 권했습니다.
비오 10세가 카세타 추기경Francesco di Paola Cassetta, 1841-1919 - 옮긴이에게 쓴 내용을 들어 봅시다.
“거룩한 복음을 읽고 묵상하는 것은 매우 건전한 활동으로, 신적인 모든 힘, 곧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대한 이야기로 우리를 이끕니다. 우리를 성화되게 하는 수단으로서 이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없을 것입니다.”
모든 이는 항구하게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특히 출판 사도는, 성 아우구스티노가 말하듯 눈먼 사람을 이끄는 또 하나의 눈먼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그 누구보다도 많이, 그 누구보다도 먼저, 그 누구보다도 항구하게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거룩한 책을 읽는 사람은 거룩한 언어를 선택하고, 거룩한 언어를 말하며, 거룩한 효과를 얻습니다.
만일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면 많은 설교와 책과 훈화는 더 많은 효과를 낼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어떠한 피조물도 감추어져 있을 수 없습니다. 그분 눈에는 모든 것이 벌거숭이로 드러나 있습니다. 이러한 하느님께 우리는 셈을 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히브 4,12-13)
날마다 성경을 읽는 사람은 참되게 하느님 말씀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성경은 경건하게 읽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성경이 쓰인 시대와 같은 정신으로, 성경에 귀 기울여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온전히 따르길 바라는 자녀들의 마음으로 읽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를 영적 독서로, 성체방문 때 묵상하며 깊이는 수단으로, 묵상을 위한 주요 독서로, 모든 영적 필요와 사도직의 필요, 그리고 사회적 필요에 대한 자문을 구해야 할 거룩한 신탁으로 여겨야 합니다.
귀감 – 루이 뵈이요. 루이 뵈이요Louis Veuillot, 1813-1883 - 옮긴이는 프랑스 가톨릭 언론계의 영광으로, 굴하지 않고 교회의 권리를 옹호한 사람이며, 교황청의 순교자입니다.
그는 교황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정부의 탄압을 받은 전투적인 가톨릭 신문 <우주 L’Univers>를 몇 년 동안 이끌어갔습니다.
그는 거룩한 복음을 몇 차례 읽고 묵상한 다음 경건한 독서와 묵상의 결실로 |
천상 스승 예수님께 대한 따뜻한 사랑이 가득 담긴 전기「예수님의 생애 Vita di Gesù」를 썼습니다.
그는 언제나 거룩한 복음서를 자기 몸에 품고 다녔습니다. 그는 관에 들어갈 때 자신이 쓴「예수님의 생애」를 놓아 달라는 유서를 남겼습니다.
다음은 저명한 가톨릭 기자의 무덤 비문에 쓰인 그의 유서 내용입니다.
제 옆에는 제 펜을 놓고
제 심장 위에는 제 유일한 자랑이신 그리스도를 두고
제 발 밑에는 이 책을 놓아주세요.
그런 다음 친구들이여, 관을 평온히 닫아주세요.
마지막 기도를 마치면 제 무덤에 십자가를 심으십시오. 관대하게도 비석이 나에게 주어진다면
“나는 믿었습니다. 이제 나는 천국에서 봅니다.”라고 써 주십시오.
여러분은 이렇게 말해 주십시오.
“그는 잠들어 있습니다.
마침내 그는 진솔하면서도 어려운 일을 마쳤습니다.”
또는 이렇게 말해 주십시오.
“그는 잠에서 깨어나
어느 날 자신이 그토록 꿈꾸었던 것을 바라봅니다.”
저는 제 예수님 안에서 희망합니다. 거기 많은 사람 가운데
저는 제 믿음에 얼굴을 붉히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날 아버지 앞에 섰을 때
그분 또한 저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구노6는 이 유서 내용이 너무나 아름다워 노래로 만들고자 했으며, 마침내 그 유명한 “마지막 기도”를 작곡했습니다.
작은 희생 : 이 책의 끝 부분에 있는 ‘거룩한 작가들의 호칭기도’를 암송하며, 출판이 성경의 거룩한 가르침에서 언제나 영감을 얻도록 하십시오.
“제 마음이 주님 안에서 기뻐 뛰고
제 이마가 주님 안에서 높이 들립니다.
제 입이 원수들을 비웃으니
제가 당신의 구원을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처럼 거룩하신 분이 없습니다.
당신 말고는 아무도 없습니다.
저희 하느님 같은 반석은 없습니다.
너희는 교만한 말을 늘어놓지 말고
거만한 말을 너희 입 밖에 내지 마라.
주님은 정녕 모든 것을 아시는 하느님이시며
사람의 행실을 저울질하시는 분이시다.
용사들의 활은 부러지고
비틀거리는 이들은 힘으로 허리를 동여맨다.
배부른 자들은 양식을 얻으려 품을 팔고
배고픈 이들은 다시는 일할 필요가 없다.
아이 못 낳던 여자는 일곱을 낳고
아들 많은 여자는 홀로 시들어 간다.
주님은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시는 분,
저승에 내리기도 올리기도 하신다.
주님은 가난하게도 가멸게도 하시는 분,
낮추기도 높이기도 하신다.
가난한 이를 먼지에서 일으키시고
궁핍한 이를 거름 더미에서 일으키시어
귀인들과 한자리에 앉히시며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하게 하신다.
땅의 기둥들은 주님의 것이고
그분께서 세상을 그 위에 세우셨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당신께 충실한 이들의 발걸음은 지켜 주시지만
악한 자들은 어둠 속에서 멸망하리라.
사람이 제 힘으로는 강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주님이신 그분께 맞서는 자들은 깨어진다.
그분께서는 하늘에서 그들에게 천둥으로 호령하신다.
주님께서는 땅 끝까지 심판하시고
당신 임금에게 힘을 주시며
기름부음받은이의 뿔을 높이신다.”(1사무 2,1-10)7
이렇게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를 입어 이 직분을 맡고 있으므로 낙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부끄러워 숨겨 두어야 할 것들을 버렸으며, 간교하게 행동하지도 않고 하느님의 말씀을 왜곡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진리를 드러내어 하느님 면전에서 모든 사람의 양심 앞에 우리 자신을 내세웁니다. 우리의 복음이 가려져 있다 하여도 멸망할 자들에게만 가려져 있을 뿐입니다. 그들의 경우, 이 세상의 신이 불신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 하느님의 모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선포하는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우리가 선포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선포하고, 우리 자신은 예수님을 위한 여러분의 종으로 선포합니다. “어둠 속에서 빛이 비추어라.” 하고 이르신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을 비추시어, |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느님의 영광을 알아보는 빛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온갖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 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으며,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고, 맞아 쓰러져도 멸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 있으면서도 늘 예수님 때문에 죽음에 넘겨집니다. 우리의 죽을 육신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는 죽음이 약동하고 여러분에게서는 생명이 약동합니다.(2코린 4,1-12)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그는 증언하러 왔다. 빛을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빛이 아니었다.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요한 1,1-14)
1 다비드Davide: 이 이름의 스펠링은 아마도 서로 다른 출처로 인해 일관되지 않는다.
2 Neemia or Nehemia: 다양한 스펠링(이전 각주 참조).
3 출판 사도직과 성경 공부의 밀접한 관계는 이 책(LS)의 근본 주제 중 하나다(참조:pp.72 이하, 98 이하, 191-193, 289-294, 306, 317 이하) 이는 또한 앞서 출간된「인쇄 사도직」의 주제였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가르침의 노선을 따른다. “사람이 되신 말씀의 배필인 교회는 성령의 가르침을 받아 하느님 말씀으로 자녀들을 끊임없이 양육하기 위해 성경을 날로 더 깊이 이해하도록 힘을 다하고 있다. 따라서 교회는 당연히 동방과 서방의 거룩한 교부들과 거룩한 전례에 대한 연구를 장려한다. 가톨릭 성경 해석자들과 신학자들은 교도권의 감독을 받으며 서로 합심하여 적합한 방법으로 성경을 연구하고 해설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하여 가능한 한 말씀의 많은 봉사자들이 성경의 양식을 하느님 백성에게 풍성하게 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성경의 양식은 정신을 비추어 주고 의지를 강하게 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오르게 할 것이다. 거룩한 공의회는 성경을 연구하는 교회의 자녀들이 기꺼이 받아들인 과업을 교회의 감각에 따라 계속하도록 격려한다.” (「하느님의 말씀 Dei Verbum」, 23항)
4 이는 sensus plenior 또는 충만한 의미에 대한 것이다. 이 책 p.40의 각주 7의 3항을 보라.
5 “Semen est verbum Dei.”–이 책(LS)에 루카 17,11이라고 잘못 제시하고 있는 것을 바로잡았다.
6. 샤를 구노(1818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1893년 세인트클라우드에서 선종함), 한때 신학생이었던 그는 음악 외에도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1840년과 1841년에 머물렀던 로마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그는 프랑스 ‘산 루이지 데이 프란치시’ 성당에서 ‘채플 마에스트로’ 자격을 받기 위해 미사곡을 작곡하는 방법으로 팔레스트리나의 대위법 다성음악에 열중했다. 뛰어난 오페라 경력에서 그는 파리를 제외하고 비엔나와 라이프치히에서 성공했다. 그는 J.S. 바흐의 서곡을 기초로 작곡한 “아베 마리아”로 널리 알려져 있다.
7 이 책에서 열왕기 1권은 사무엘기 상권을 나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