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딧기는 유다 임금 므나쎄가 바빌론의 포로가 되었을 때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들려줍니다.
네부카드네자르가 메디아 임금을 물리친 다음 소아시아, 메소포타미아, 아라비아를 정복하자 사람들은 모두 겁에 질려 항복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대사제 여호야킴의 선동을 받아 저항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아시리아인들을 이끈 대장군 홀로페르네스가 배툴리아를 포위하여 병거를 최소한으로 축소시켰을 때 배툴리아인들은 항복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때 신심 깊은 과부 유딧은 하녀와 함께 아시리아 진영으로 들어갑니다. 홀로페르네스의 호의로 그의 진영에서 머물던 유딧은 그의 머리를 잘라 배툴리아로 가져옵니다. 포위당한 사람들은 도망치는 적군들을 공격한 다음 진영을 약탈합니다. 여호야킴은 백성과 함께 유딧을 축하하며 위대한 승리를 기념하여 축제를 거행합니다.
하느님께 대한 신뢰가 가득한 이 작은 책은, 하느님께서는 회개하는 사람들을 결코 저버리지 않으심을 보여줍니다. 그 이야기의 여주인공은 유딧입니다. 유딧은 미덕과 강인함의 아름다운 귀감이요, 참으로 강인한 여성인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의 전형典型으로 존경을 받게 됩니다.
이 책의 저자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에스테르기는 역사서입니다. 이 책이 다루는 사건들은 키루스 칙령 이후 페르시아에 남은 유다인들에 대한 이야기로, 크세르크세스 1세 대왕(아하수에로)의 통치 기간인 485-465년 사이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크세르크세스는 그의 통치 3년차에 와스티 왕비를 폐위시킵니다. 와스티 왕비가 궁궐에서 베푸는 공식 잔치에 나오는 것을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크세르크세스는 왕궁에서 봉사하는 유다 사람 모르도카이의 수양딸 에스테르를 와스티 대신 왕비로 선택합니다. 수양딸이 어떻게 지내는지 살피고, 임금에 대한 음모를 밝혀 그 배후를 드러내기 위해 궁정을 자주 방문한 모르도카이의 행적이 연대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편 하만은 총독이 되어 유다인들, 특히 자신 앞에 무릎 꿇고 절을 하지 않는 모르도카이를 미워한 나머지 유다인들을 몰살하기로 작정합니다. 몰살 명령을 받은 다음 주사위를 던져 날짜를 정했는데, 그 명령이 내려지자 유다인들은 경악을 금치못했습니다. 그래서 모르도카이의 권유를 받은 에스테르 왕비가 임금에게 다가가려고 시도합니다. 임금은 그녀를 받아들여 하만과 함께하는 저녁 식사에 초대합니다. 그 다음 날에도 거듭 초대합니다. 하만은 모르도카이를 매달기 위해 말뚝을 세웠지만 크세르크세스는 모르도카이의 행적을 읽고 그를 존경할 것을 명령합니다. 에스테르가 연회를 베픈 자리에서 하만을 고발하자, 크세르크세스는 하만이 모르도카이를 위해 준비한 교수대(말뚝)에 그를 매달도록 명령합니다. 마침내 모르도카이는 총독이 되어 임금의 새로운 칙령으로 하만의 법령을 무효화하고 적군들에게 엄청난 복수를 하며 푸림절을 제정합니다.
품위있게 성장하여 박해받는 형제들을 잊지 않고 그들을 위해 중재하며 그들의 목숨을 구한 에스테르의 귀감은 참으로 고귀합니다!
이 책은 대부분 모르도카이 자신이 쓴 것입니다. 우리는 그에 대해 이 책에 쓰인 것 외에 다른 것은 알지 못합니다.
“당신의 가르침이 제 즐거움이 아니었던들
저는 고통 속에서 사라졌으리다.”
(시편 119,92)
성경과 관련된 신학의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오늘은 성경과 수덕신학에 대해 묵상합시다.
수덕신학이란 “평범하고 일반적인 방법으로 이루는 그리스도교적 완덕의 기술”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안타깝게도 사람들이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 학문입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예를 들어 역학, 물리학, 화학, 수학 등과 같은 자연 과학에 더 많은 가치를 두며 존중합니다. 이러한 학문은 한마디로 현재의 삶에 유용한 모든 기술을 뜻합니다. 현대인들은 훨씬 중요하고 고귀한 기술, 곧 영혼을 구원하는 예술에 대해 좀처럼 생각하지 않습니다.
수덕신학은 숭고하고 거룩한 학문으로, 창조주 하느님을 주인으로 모십니다. 그 목표는 영혼을 하늘 나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영혼을 구원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이처럼 아름답고 유용한 학문이 세상에 어디 또 있을까요? 분명 없을 것입니다. 사실 이는 이 지상의 인간이 지닌 주요 임무입니다.
인간의 모든 완덕은 하느님 사랑 안에 있습니다. 모든 학문이 하느님 사랑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헛될 뿐입니다. 수덕신학은 계명과 복음적 권고라는 평범한 길을 통해 영혼이 모든 것에 앞서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이끄는 매우 고귀한 목표를 지닙니다.
수덕신학의 임무는 인간이 자기 마음 안에 있는 악덕의 모든 뿌리를 뽑아내고, 그 자리에서 모든 덕이 피어나게 하는 길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영혼이 일상적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온유하신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이끄는 것입니다.
[다음 증언은 참으로 뜻이 깊습니다.]
“저는 성경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 믿을 수 없다고 여겼을 때 조차 아주 많이 사랑하던 이 거룩한 책을 나는 전에 없던 크나큰 공경심을 가지고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서서히 성경을 더 깊이 묵상할 수 있게 되었고, 더욱더 음미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독서는 저에게, 편협하고 광신적인 사람이 되게 하는 신심으로 잘못 이해된 편견에 기울어지지 않는 경향을 심어주었습니다. 이는 저에게 하느님과 사람들을 사랑하고, 정의의 나라가 더 오래 지속되게 하고, 죄악을 미워하고 사악한 사람들을 용서하는 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실비오 펠리코)1
완덕을 가장 열렬히 갈망하고, 성덕에 있어 늘 더욱 진보하기를 바라는 영혼은 주님을 더 사랑하는 방법, 곧 하늘 나라를 위해 더많은 덕을 쌓으며 더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수덕적인 책을 찾습니다. 이를 목적으로 한 영성 서적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 알폰소의 모든 작품은 바로 수덕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알론소 로드리게스 신부,2 알바레즈,3 성 이냐시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등이 저술한 책도 그렇습니다. 이들은 모두 영원히 잊히지 않을 이름이며, 그들이 쓴 작품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한 책들은 성경 주석서에 지나지 않지만 성경이 지속되는 한 지속될 것이며, 성경과 함께 독특한 통합을 이룹니다.
따라서 신학과 성경의 관계는 무척 가깝습니다. 사실 수행자들은 모두 성경에서 드높은 진리를 이끌어냅니다. 교회 초창기를 이끈 주요 서적은 오로지 수덕에 관련된 책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거룩한 복음이었습니다. 성 세라피온은 복음을 읽고 회심한 후 세상을 버리고 어깨에 소박한 아마포 천을 두른 채, 손에는 오로지 거룩한 복음서만 들고 사막으로 들어갔습니다.
성 파코미오, 성 바실리오, 성 베네딕토 같은 수도승들은 성경 외에 다른 수덕 관련 서적을 지니지 않았으며, 날마다 거룩한 복음서와 사도들의 서간에 나오는 구절만 읽어야 한다고 수도회 규칙서에 못박았습니다.
수덕신학이 모든 가톨릭 전통을 통해 주석되고 설명되며 지지를 받는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참된 원천은 언제나 성경이 될 것입니다.
만일 제가 성경을 수덕적인 교재로 삼으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잘못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방식이 아닌, 오류가 없는 우리 어머니인 교회의 정신과 가르침에 따라 성경에서 진리를 이끌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수덕학 이론을 이
해하고 이끌어내려면 먼저 수덕신학에 관련된 글을 읽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의 실천La pratica di amar Gesù Cristo」, 4「그리스도를 본받아L’Imitazione di Cristo」, 5「영적 일기Il Diario Spirituale」, 6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의「증언Il Teotimo」7을 비롯한 여러 책을 읽어야 합니다. 그러한 책들을 읽은 다음 성경을 펼친다면 우리는 그 안에서, 그 모든 아름다움 안에서 우리가 영성 서적에서 읽고 배우는 모든 진리를 찾게 될 것입니다.
수덕의 첫 번째 스승인 하느님은 우리에게 보낸 편지에서 수행자들이 보여준 매우 아름다운 귀감을 언급하면서 여러 면에서 완덕을 향해 우리를 가르치며 자극하십니다.
아벨, 요셉, 야곱, 에즈라, 룻, 유딧 등과 같은 훌륭한 귀감은 우리 영혼에게 얼마나 많은 선을 행하는지 모릅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모든 원로와 예언자들은 우리가 성덕에 이르도록 촉진하는 귀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약성경에서 발견하는 수덕신학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아름다운 구절은 수덕생활의 가장 완벽한 귀감인 천상 스승 예수님의 삶을 폭넓고 깊게 설명하는 말씀 안에 있습니다.
특히 네 복음서를 읽을 때 우리는 그분의 온 삶이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끊임없는 사랑의 행위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무척 사랑하신 나머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에게 배워라.”(마태 11,29) 하고 당당하게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사도 바오로가 예수님의 목소리를 들은 다음|
모든 것에서 천상 스승을 본받으려고 노력했기에, 마침내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가 “바오로의 마음은 곧 그리스도의 마음”이라고 서슴없이 고백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사도의 삶은 곧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삶이었습니다. 성 바오로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은 것처럼 여러분도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1코린 4,16)라고 말합니다.
이 얼마나 거룩한 성덕과 완덕의 모델입니까! 그렇습니다, 오, 예수님, 당신을 따르며 본받는 사람은 성인이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성경이 어떻게 모든 수덕신학의 원천이 되는지,8* 그 정신과 혼은 무엇인지, 그 방법과 우리가 받게 될 상에 대해 어떻게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지, 선에 이르는 길에서 우리를 가로막는 수많은 원수들을 어떻게 경고하는지 등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언급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좁은 공간에서 어떻게 그 모든 것을 말할 수 있을까요? 저는 여러분이 오로지 한 가지 일을 하기를 초대합니다. 곧, 거룩한 복음서를 손에 들고 성 마태오 복음 5장을 펼쳐 예수님이 말씀하신 산상 설교를 읽으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 구절, 곧 여덟 가지 참행복에서 여러분은 수덕신학을 요약하는 개요를 얻게 되며, 모든 영성 서적의 기초를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완덕을 갈망하는 영혼은 그 목마름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맑고 깨끗한 물을 그곳에서 얻게 됩니다.
이성과 정서에 파묻혀 죽지 않고 참되고 살아있는 수덕 정신을 지니려면 이에 관련된 글을 읽은 다음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바로 그때 가장 아름다운 대리석 조각은|
그 영혼 안에 전달되는 생명과 따뜻함을 얻게 됩니다.
이제 주님께서 성덕을 갈망하는 영혼들을 참된 생명의 근원인 성경으로 이끌어 주시도록 기도합시다.
귀감 – 푸아티에의 성 힐라리오. 성 힐라리오는 성 아타나시오를 비롯해 다른 여러 사람들과 함께 가톨릭 교회를 아리우스주의9의 심각한 위험에서 옹호한 교회의 수호자 가운데 한 분입니다.
힐라리오는 이교도 가정에서 태어나 이교도 교육을 받았으나이교도의 어리석은 이상에 만족하지 않고 진심으로 진리를 찾았습니다. 그는 “저는 깊이 생각할수록 영원하시고 전능하시며 변함없으신 분은 오직 한 분, 곧 하느님이심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이 제 지성에 떠올랐을 때 저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쓴 책을 손에 들고 읽었습니다.”라고 썼습니다.
그의 지성은 온전히 맑아져 신약성경을 읽자 그리스도교 신앙의 진리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로 하여금 교회 안에 들어가도록 이끌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복음사가들과 사도들의 저술, 특히 성 요한 복음의 원리는 제가 찾던 것, 감히 제가 희망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저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가 쓴 작품 가운데는 성 마태오 복음과 시편에 대한 주석, 신약성경에 관련된 구약성경의 특징에 대한 해설 등의 성경에 대한 책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는 그에게 교회 박사라는 칭호를 부여했습니다.
작은 희생 : “영광스러운 동정녀 체칠리아의 공로와 덕을 칭송하는 일화 가운데 체칠리아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자기 가슴에 품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도 여러분에게 이처럼 하라고 권고합니다. 영성생활을 함에 있어 이는 여러분에게 가장 필요하고 유용하며 높은 단계의 완덕에 나아가도록 이끌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성 보나벤투라)
주님, 저는 당신의 명성을 들었습니다.
주님, 저는 당신의 업적을 두려워합니다.
저희 시대에도 그것을 되살리시고
저희 시대에도 그것을 알게 해 주십시오
노여우셔도 자비를 잊지 마십시오.
하느님께서 테만에서 오신다.
거룩하신 분께서 파란 산에서 오신다.
그분의 영광이 하늘을 뒤덮고
그분을 찬미하는 소리가 땅을 가득 채운다.
그분의 광채는 빛과 같고
두 줄기 빛이 그분 손에서 뻗어 나온다.
거기에 그분의 힘이 숨어 있다.
흑사병이 그분 앞에 서서 가고
열병이 그분 발꿈치의 뒤를 따른다.
그분께서 멈추시고 땅을 흔드시며
그분께서 보시고 민족들을 떨게 하신다.
예로부터 있던 산들이 무너지고
처음부터 있던 언덕들이 내려앉는다.
그분의 길만이 영원하다.
나는 쿠산의 천막들이 환난을 당하고
미디안 땅의 천막 휘장들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당신께서 말을 모시고
승리의 병거를 모시니
주님, 강들에게 진노하시는 것입니까?
강들에게 화가 나셨습니까?
바다에게 분노하시는 것입니까?
당신께서는 활을 꺼내시어
시위에 화살을 메우십니다.
당신께서는 강줄기로 땅을 가르십니다.
산들이 당신을 보고 몸부림칩니다.
폭우가 휩쓸고 지나갑니다.
심연은 소리를 지르고
그 물줄기가 치솟습니다.
당신의 화살이 날아갈 때 번쩍이는 빛 때문에
당신의 번뜩이는 창의 광채 때문에
해와 달은 그 높은 거처에 멈추어 섭니다.
당신께서는 진노하시어 땅을 짓밟으시고
분노하시어 민족들을 내리밟으십니다.
당신께서는 당신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당신의 기름부음받은이를 구원하시려고 나오셨습니다.
악인의 집 지붕을 부수시고
그 집을 주춧돌에서 천장까지 발가벗겨 버리셨습니다.
숨이 있는 가련한 이를 삼키려는 듯이
그의 용사들이 기뻐 날뛰며 저희를 흩으려고 들이닥쳤지만
당신께서는 당신의 화살로
그들의 머리를 꿰뚫으셨습니다.
당신께서는 거대한 물결이 출렁이는 바다를
말을 타고 짓밟으셨습니다.
그것을 듣고 내 배 속이 뒤틀린다.
그 소리에 내 입술이 떨린다.
뼈는 썩어 들어가는 듯하고
다리는 밑에서 후들거린다.
그러나 나는 우리를 공격하는 백성에게 들이닥칠
환난의 날을 조용히 기다린다.
무화과나무는 꽃을 피우지 못하고
포도나무에는 열매가 없을지라도
올리브 나무에는 딸 것이 없고
밭은 먹을 것을 내지 못할지라도
우리에서는 양 떼가 없어지고
외양간에는 소 떼가 없을지라도
나는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내 구원의 하느님 안에서 기뻐하리라.
주 하느님은 나의 힘.
그분께서는 내 발을 사슴 같게 하시어
내가 높은 곳을 치닫게 해 주신다. (하바 3,2-19)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이렇게 그들이 토론하는 것을 듣고 있다가 예수님께서 대답을 잘하시는 것을 보고 그분께 다가와,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 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그러자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그분은 한 분이시고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시니, 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 또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하고 이르셨다. 그 뒤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그분께 묻지 못하였다.(마르 12,28-34)
“저의 하느님, 너무나 부끄럽고 수치스러워서, 저의 하느님, 당신께 제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저희 죄악은 머리 위로 불어났고, 저희 잘못은 하늘까지 커졌습니다.
저희 조상 때부터 이날까지 저희는 큰 잘못을 저지르며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저희의 죄악 때문에 오늘 이처럼, 임금들과 사제들과 더불어 저희가 여러 나라 임금들과 칼에 넘겨지고, 포로살이와 약탈과 부끄러운 일을 당하도록 넘겨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잠깐이나마 주 하느님께서 은혜를 내리시어, 저희에게 생존자를 남겨 주시고, 당신의 거룩한 곳에 저희를 위하여 터전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저희 눈을 비추시고, 종살이하는 저희를 조금이나마 되살려 주셨습니다. 정녕 저희는 종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종살이하는 저희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페르시아 임금들 앞에서 저희에게 자애를 베푸시어 저희를 되살리셔서,|
하느님의 집을 다시 세우고 그 폐허를 일으키도록 해 주셨고, 유다와 예루살렘에 다시 성벽을 쌓게 해 주셨습니다.”(에즈 9,6-9)
1 이탈리아 애국자이자 작가인 실비오 펠리코(1789년 살루초에서 태어나 1854년 튜린에서 선종함)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통치 아래서 정치적인 문제로 투옥된 이야기로 유명하다. 이 이야기는 신앙과 그리스도인의 용서에 대한 고귀한 증언으로 여겨지는「나의 옥중기Le mie prigioni」에 잘 묘사되어 있다.
2. 스페인의 예수회 회원이요, 수덕신학 작가인 알론소(알폰소가 아님) 로드리게스(1538년 바야돌리드에서 태어나 1616년 세비야에서 선종함)에 대한 것이다. 그는 여러 해 동안 몬테레이 대학에서 윤리신학을 가르쳤으며, 그 후 30년 동안 수련장과 몬티야 학장을 역임했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작품은 1609년 세비야에서 출간된 세 권으로 된「완덕과 그리스도교적 덕의 실천Ejercicio de perfección y virtudes cristianas」이다. 그는 수도회의 여러 창립자, 그 중에서도 알베리오네 신부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3. 디에고 알바레즈 데 파스(1560년 톨레도에서 태어나 1620년 포토시에서 선종함)는 예수회 영성을 다룬 주요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페루 선교사, 철학, 신학, 성경학 교수로서, 그는 영성신학에 대한 세 권의 책, 곧 「악의 근절과 선의 촉진에 대하여De exterminatione mali et promotione boni」(1613),「평화의 추구 또는 기도의 연구에 대하여De inquisitione pacis seu studio orationis」(1617),「영적 삶과 완덕에 대하여De vita spirituali eiusque perfectione」(1618)로 명성을 얻었다.
4 이 책은 “영원한 구원을 보장하고 완덕에 이르는 길을 걷고자 하는 영혼들을 위해” 1768년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가 쓴 작품이다. 알폰소 성인은 이를 “내가 쓴 작품 가운데 가장 신심 깊고 유용한 책”이라고 했다. 이 책은 516쇄가 발행되었다.(「거룩한 도서관Bibliotheca Sanctorum」, 제1권, p.853 참조)
5 이 책은 토마스 아켐피스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책이다.(p.226의 각주 5 참조)
6 「영적 일기- 탁월한 덕을 지닌 성인들과 인물들의 이야기와 실화 모음Diario spirituale. Scelta di detti e fatti di santi e di altre persone di singolare virtù」, 로마-알바: 성바오로수도회, 1927 (재판: 바리, 1956-1957). (참조: 이 책은 1775년 나폴리에서 익명으로 출판되었다. 2세기 후,「영성 사전Dictionnaire de Spiritualité」(“영적 일기Journal spirituel ”라는 항목 아래 나옴, 파리, 1974)은 바르나비테 B. 카날레가 쓴 것으로 1749년 밀라노에서 발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1월 1일 말씀은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의 것으로 “너의 과거는 모두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라. 다윗과 함께 ‘이제 나는 내 하느님을 사랑하기 시작했다.’고 말하라.
7 1616년 리옹에서 출간된「신애론Teotimo or Trattato dell’amor di Dio」은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영성의 걸작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주요 원천은 성경, 무엇보다 시편, 욥기, 예레미야, 아가와 성 바오로 서간이며, 또한 성 토마스 아퀴나스, 시에나의 가타리나, 제노아의 가타리나, 아빌라의 데레사다. 그 목적은 다음과 같이 서문에 분명하게 나와 있다. “나는 거룩한 사랑의 탄생, 발전, 타락, 활동, 특성, 장점, 탁월함 등에 대한 이야기를 단순하고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것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 책의 목적은 신심 깊은 영혼들을 도와 목표를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 책은 성모마리아방문수녀회와 관상생활을 하는 영혼들을 위해 특별히 저술되었다.
8* 비오 6세는 유명한 성경 번역가 몬시뇰 마르티니에게 이렇게 썼다. “당신이 그리스도인들이 거룩한 복음을 읽도록 효과적으로 촉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 판단은 매우 훌륭합니다. 복음은 내용이 가장 풍부한 출처로서, 모든 신자가 여기에서[원본에는 “da esse”가 아니라 “da essi”로 쓰여 있는데 이는 실수인 것 같다] 관습의 성덕과 교리를 이끌어내기 위해 활짝 펼쳐져야 하며 접근하기 쉬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몬시뇰 안토니오 마르티니(1720년 프라토에서 태어나 1809년 피렌체에서 선종함)는 피사에서 서간을 전공한 피렌체 대주교였다. 그는 란체의 비토리오 아메데오 추기경의 초대를 받고 교황 베네딕토 14세(1757년 6월 13일에 발표한 증거 문서)의 규정을 따라 불가타 성경을 이탈리아어로 번역하며 주석하는 일에 전념했다. 현대 언어로 번역된 성경은 거룩한 교부들과 박학다식한 가톨릭 작가들이 쓴 주석이 함께 담겨 있는 것을 우리가 읽을 수 있었다. 마르티니 몬시뇰(1771-1781, 나폴리)의 성경은 1778년 3월 17일자로 비오 6세의 증거 문서에서 승인되었다.]
9 이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이단으로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단죄되었다. 알렉산드리아의 사제 아리우스는 336년에 선종했지만 아리우스 논쟁은 4세기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으며, 그리스도교 교리에 대한 명백한 설명과 그 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