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 힐키야의 아들 예레미야는 기원전 7세기1 후반에 살았습니다. 그는 요시야 임금의 통치 때 예언직에 부름 받았는데, 그 당시에는 서른 살도 채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시절은 무척 슬픈 시기였습니다. 백성들이 우상숭배에 빠진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 므나쎄는 그의 생애가 끝날 무렵 회개했지만, 그의 아들 아몬에게 왕국을 넘겨주었습니다. 아몬의 통치 중에는 백성들의 도덕적 종교적 상황이 한층 악화되었습니다. 마침내, 요시야 임금은 첫 번째 종교개혁을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때 예레미야는 예언자로서의 자기 사명을 시작했고, 거룩한 도성을 점령할 때까지 설교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요시야의 개혁에서 예레미야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그가 개혁에 협력한 것은 확실합니다.
결국, 그는 여호아스와 여호야킨의 궁정에 영향을 미쳤고, 특히 예언자와 자주 상의한 치드키야가 통치기간 동안 영향을 받았으나 그에 대한 귀족들의 증오가 그를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칼데아인들이 예루살렘을 점령하자 감옥에서 해방된 예언자는 그달야 총독의 통치 하에서 미스바로 후퇴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달야가 음모의 희생자가 되었으며, 예레미야는 이집트로 피신해야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그곳에서 우상을 숭배하는 유다인들에 맞서 계속 예언을 했습니다. 유다인들은 예레미야가 끊임없이 책망하였으므로 그에게 돌을 던졌습니다.
열왕기 3권과 4권은 또 다른 작품을 구성합니다. 이는 독립적인 작품으로 다윗의 죽음과 함께 앞의 책에 연결되어 솔로몬의 통치 사건, 분열, 두 왕국 유다와 이스라엘이 갈라져 이스라엘 왕국이 멸망하기까지의 역사, 그리고 바빌론 유배에 이르기까지 유다 왕국의 역사를 설명합니다.
저자는 하느님께서 솔로몬과 유다와 이스라엘의 임금들을 처벌하겠다는 당신의 말씀에 충실하셨음을 보여주며, 마침내 선택된 민족의 유배와 함께 당신 뜻을 이루시려는 시도를 완성합니다.
“당신의 정의는 영원한 정의, 당신의
가르침은 진실입니다.”(시편 119,142)
오늘 우리는 교회가 교의신학에 포함된 진리와 “신앙”이라는 주제로 요약된 교리문답의 진리를 성경에서 어떻게 이끌어내는지 살펴볼 것입니다.
교의신학이란 무엇인가?
교의신학이란 우리가 믿을 수 있도록 어머니인 교회가 제안하는 교리와 진리에 대한|
학문입니다. 그 안에 모든 것의 시작이요 마침이신 창조주 하느님에 대한 모든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두 번째 위격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입니다. 이는 구세주의 삶, 구세주의 죽음과 부활, 구세주의 구원 활동, 따라서 구세주의 신비체인 교회, 교황권,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마지막으로 오심, 곧 최후의 심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더욱이 신학은 우리에게 성령에 대한 모든 진리를 가르쳐 주며, 성령의 성화 활동과 성령께서 구원의 열매를 사람들의 영혼에 어떻게 적용하시는지 알려줍니다. 또한 성사, 준성사, 전례 등에 대한 모든 교리를 설명합니다.
교회가 이 모든 진리를 이끌어내는 원천은 성경과 전승입니다.
모든 신학자는 그들이 쓴 교의신학 논문 심사에서 교회의 교의 다음으로 주요 증거로서 성경 본문을 제시합니다.
[중대 사안事案이 되는] 진리를 정의하기 위해 공의회에 참석하는 주교들이 모이는 홀 한가운데에 성경을 두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4* 이는 성경이 가장 중요한 진리의 샘이라는 것을 가리키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상징은 결정적인 진리가 성경에 담겨 있으므로 고개 숙여 온전히 확고하게 믿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모세, 다윗, 이사야, 예레미야 등과 같은 사람들을 일으키는 것에 만족하지 않으신 주님께 얼마나 큰 감사를 드려야 하는지요!
심지어 주님의 독생성자까지도 주님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에 만족하지 않으셨지만, 한결같이 무한한 사랑으로|
선포하신 우리 구원을 위해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진리가 성경이라는 책에 담겨 기록되기를 바라셨습니다. 성경은 교의신학과 교리문답의 가장 중요한 샘, 가장 명확하고 정확한 원천입니다.
따라서 거룩한 신학 연구에 있어 성경이 증언하는 바를 가장 중요하게5 여겨야 합니다. 다른 적합성이나 이성에 따른 증거가 중요하긴 하지만 이러한 사항은 이차적 노선에 있어야 합니다.
세 가지 결론
1. 신학과 교리문답을 연구하고 설명할 때 첫 번째 예例가 있는 첫째 증거는 성경에서 가져와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아기 예수, 청년 예수, 성인 예수의 삶은 얼마나 아름답고 효과적일까요? 이는 모든 덕을 드러내는 놀라운 거울입니다! 아브라함, 유딧, 룻, 나오미, 토빗, 욥 등의 삶도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어떻게 교화하며 위로하는지요! 그들의 삶은 신학적이고 근본적이며 도덕적인 덕을 설명하고 가르치는 데 매우 효과적입니다.
2. 우리가 알다시피 성경 말씀은 그 어떤 저자도 지닐 수 없는 감미로운 기름부음과 같은 특별한 힘을 지니기에 성경에서 말씀을6 길어 올리십시오. 사실 성경 말씀은 하느님의 입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성경에 미리 기록된 것은 우리를 가르치려고 기록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에서 인내를 배우고 위로를 받아 희망을 간직하게 됩니다.”(로마 15,4)
성인들과 위대한 사람들의 말도 가치가 있지만 첫 번째 저자는 언제나 하느님이심을 기억합시다. 이에 대한 모델은|
세네리 신부7인데, 그는 자신의 설교와 글에서 오로지 성경 말씀만을 인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혼의 만나8를 보십시오.
3. 신학 교사나 교리교사 또는 성경에 나오는 예와 비교해 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떻게 죄에 빠지는지 설명해 보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죄 짓는 기회에 자신을 빠지게 하여 저주받은 뱀과 무분별하게 대화를 나눈 하와의 경우가 좋은 예입니다. 성경에서 우리는 모든 덕을 설명해 주는 적절한 예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 모든 예는 매우 효과적입니다.
그 모든 것의 결론은 무엇일까요? 바로 이것입니다. 가장 칭찬할 만한 것은 신학과 교리문답을 공부할 때 그 본문에 포함된 진리와 관련된 예에 대한 말씀, 성경 구절, 인용구를 여백에 기록하는 사람들의 습관입니다. 그들의 연구와 설명은 특별한 관점을 갖게 하며, 연구가 끝날 무렵 성경을 읽고 몇 가지 예를 추가하는 매우 간단한 방법으로 모든 주요 교리의 진리를 설명하는 방법을 파악하여 거룩한 결실을 얻게 될 것입니다.
성경을 읽는 것이 우리 영혼에 효과적이고 유용한 것이 되게 하기 위해 자세한 비평적 역사적 주석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성경 본문을 주어진 거룩한 신학적 진리나 교리문답의 진리에 적용시키는 데 사용되는 몇 마디 말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누군가를 자극하여 사람들의 영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만한 주석을 만들어내도록 기도합시다.
귀감 – 천사적 (박사) 토마스 아퀴나스. 토마스 아퀴나스는 가톨릭 교회에서 탁월함과 위대함의 선구자, 곧 대단히 훌륭한 박사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는 흠잡을 데 없는 삶으로 천사 박사라고 불렸고, 비오 11세는 그를 “학문의 안내자, 학교의 천사”로 선포했습니다.
어린시절에 그는 몬테카시노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베네딕토회 사제들한테 서간은 물론 그리스도인 덕목의 실천과 성경에 대한 사랑을 배웠는데, 이는 나중에 그 유명한 파리 대학교에서 연구하며 교수로서 가르치는 주제가 되었습니다.
그는 공부를 마칠 즈음 나폴리로 가 도미니코회 사제들을 알게 되었으며, 도미니코 수도회에 들어가려는 열망이 타올랐습니다. 마침내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어려움을 극복한 후 파리로 건너가 성 대 알베르토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신학교수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새로운 스승의 박학다식한 강연과 교수법과 명료한 설명에 매료되어 그를 존경하는 학생들이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그런데 성 토마스에게 있어 특별한 점은 무엇이었을까요? 그의 전기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토론은 그 당시 그의 활동에서 지극히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의 신학적 가르침의 토대는 성경이었다. 그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넘나들며 설명했다.”
그가 가르친 첫 3년 동안 언급한 책은 이사야 예언서와 성 마태오 복음서였습니다.
어느 날, 성경의 한 구절을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 그는 예수님께 설명을 받기 위해 확신에 찬 마음으로 단순하게 거룩한 감실 앞에 나아가 엎드려 절하였다고 합니다.
그의 많은 작품 가운데「신학대전Summae」두 권은 그가 박사라는 칭호를 얻기에 충분합니다. 성경에 대한 그의 작품은 대단히 주목할 만합니다. 사실, 앞서 언급한 이사야 예언서와 성 마태오 복음서 외에도 그는 아가, 애가, 욥기, 시편, 성 요한 복음, 성 바오로 서간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그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매우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이 증명해야 하는 신학적 진리 하나 하나에 대한 증거로 사용할 수 있는 적절한 본문 내용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탁월한 천사적 박사가 가장 높은 신학의 봉우리에 오를 수|
있었음은 상당 부분 성경에 대한 애착과 깊은 지식 덕분입니다.
작은 희생 : 오늘 나는 누군가에게 성경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여 그가 성경을 읽고 싶게 한다.
“주님의 업적들아, 모두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주님의 천사들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하늘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하늘 위 물들아, 모두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주님의 군대들아, 모두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해야 달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하늘의 별들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비와 이슬아, 모두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바람아, 모두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불과 열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추위와 더위야,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이슬과 소나기야,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서리와 추위야,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얼음과 눈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밤과 낮들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빛과 어둠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번개와 구름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땅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산과 언덕들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땅에서 싹트는 것들아, 모두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샘들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바다와 강들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용들과 물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들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하늘의 새들아, 모두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들짐승과 집짐승들아, 모두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사람들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이스라엘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주님의 사제들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주님의 종들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의인들의 정신과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거룩한 이들과 마음이 겸손한 이들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하난야와 아자르야와 미사엘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그분께서 우리를 저승에서 구해 주시고,
죽음의 손아귀에서 구원하셨으며
불길이 타오르는 가마에서 건져 내시고
불 속에서 건져 내셨다.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분께서는 선하시고
그 자비는 영원하시다.
주님을 경배하는 이들아, 모두 신들의 신을 찬미하여라.
그분을 찬송하고 그분께 감사하여라
그분의 자비는 영원하시다.(다니 3,57-90)
거룩한 것을 거룩하게 지키는 이들은 거룩한 사람이 되고 거룩한 것을 익힌 이들은 변호를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나의 말을 갈망하고 갈구하면 가르침을 얻을 것이다. 지혜는 바래지 않고 늘 빛이 나서 그를 사랑하는 이들은 쉽게 알아보고 그를 찾는 이들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지혜는 자기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미리 다가가 자기를 알아보게 해준다. 지혜를 찾으러 일찍|
일어나는 이는 수고할 필요도 없이 자기 집 문간에 앉아 있는 지혜를 발견하게 된다. 지혜를 깊이 생각하는 것 자체가 완전한 예지다. 지혜를 얻으려고 깨어 있는 이는 곧바로 근심이 없어진다. 지혜는 자기에게 맞갖은 이들을 스스로 찾아 돌아다니고 그들이 다니는 길에서 상냥하게 모습을 드러내며 그들의 모든 생각 속에서 그들을 만나준다.
지혜의 시작은 가르침을 받으려는 진실한 소망이다. 가르침을 받으려고 염원함은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고 지혜를 사랑함은 그 법을 지키는 것이며 법을 따름은 불멸을 보장받는 것이고 불멸은 하느님 가까이 있게 해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지혜를 향한 소망은 사람을 왕위로 이끌어 준다. 그러니 민족들을 다스리는 군주들아 너희가 왕좌와 왕홀을 즐기거든 지혜를 존중하여라. 그러면 너희가 영원히 다스리게 될 것이다.
이제 나는 지혜가 무엇이며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려주겠다. 너희에게 어떠한 신비도 감추는 일 없이 지혜가 생겨난 시초부터 자취를 더듬으며 그에 대하여 아는 바를 분명하게 드러내는데 진리에서 벗어나지도 않고 사람을 좀먹는 시기를 결코 길벗으로 삼지도 않겠다. 시기는 지혜와 자리를 함께할 수없기 때문이다. 현자가 많음은 세상의 구원이며 현명한 임금은 백성의 안녕이다. 그러니 내 말을 듣고 가르침을 받아라. 너희에게 득이 될 것이다.(지혜 6,10-25)
주님, 당신께서는 저를 아십니다. 저를 기억하시고 찾아 주소서. 저를 뒤쫓는 자들에게 복수하여 주소서. 당신 분노를 늦추시다가 저를 잃지 마시고 당신 때문에 제가 수모를 당하는 줄 알아주소서. 당신 말씀을 발견하고 그것을 받아먹었더니 그 말씀이 제게 기쁨이 되고 제 마음에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주 만군의 하느님 제가 당신의 것이라 불리기 때문입니다. 저는 웃고 떠드는 자들과 자리를 같이하거나 즐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를 가득 채운 당신의 분노 때문에 당신 손에 눌려 홀로 앉아 있습니다. 어찌하여 제 고통은 끝이 없고 제 상처는 치유를 마다하고 깊어만 갑니까? 당신께서는 저에게 가짜 시냇물처럼, 믿을 수 없는 물처럼 되었습니다. (예레 15,15-18)
[백면]
1 이 책「성경을 읽으십시오」에는 “12세기”라고 쓰였는데 이는 확실한 오타다.
2 열왕기 3,4권은 열왕기 상·하권을 말한다.
3 「교회 안에서의 성경 해석」에서 발췌한 내용을 새롭게 언급한 부분을 여기서 찾아볼 수 있다. “성경은 … 신학적 연구의 특별한 토대입니다. 과학적 정밀성과 정확성으로 성경을 해석하기 위해 신학자들의 주석 작업을 필요로 합니다. 그들 편에서 주석은 그들의 연구를 이끌어 ‘성경 연구’가 효과적으로 ‘신학의 혼’(계시 24)이 되게 해야 합니다. … 주석은 교의 신학자들이 두 가지 극단을 피하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이원론인데, 이는 교의적 진리를 언어적 표현에서 완전히 분리시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합니다. 다른 하나는 근본주의로, 인간과 신성을 혼동하여 인간적 표현의 우발적 측면조차 계시된 진리로 여깁니다. 이 두 극단을 피하려면 분리하지 말고 구별해야 하며, 끊임없이 주어지는 긴장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생각과 말은 동시에 하느님과 사람에 대한 것이므로 성경의 모든 것은 하느님은 물론 영감받은 저자에게서 나온 것입니다.”(38항)
4* “성전의 중앙 공간은 복음을 경배하기 위해 사용된다In medio consessus poni solitum erat in sancto throno venerandum Evangelium, in quod omnium vultus conversi errant.”(칼케돈 공의회)
5 “성경 해석은 그리스도교 신앙과 교회의 삶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 오늘날 남녀 모든 이를 위한 성경 본문의 해석 방식은 하느님과의 개인적 공동체적 관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이는 또한 교회의 사명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요한 바오로 2세의 문헌 「교회 안에서의 성경 해석」을 소개하는 글, 1993)
6 이 책에는 잠언의 “속담”(p.105)과 일반적으로 성경 독자(p.107)를 불태우는 “거룩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지만, 무엇보다 그러한 성경 구절들은 코톨렌고의 지시로(p.204) 토리노의 작은 출판사에서 인쇄되어 모든 곳에 전해집니다. 세속적인 위험한 말을 피하고 복음 말씀으로 대체하는 것은 우리의 영적 작업의 일부입니다.(p.237) 연구 또한 이를 목표로 했습니다. “이는 삶의 실천이 되어야 합니다. 세속적인 말을 하나씩 제거한 다음 우리 뇌에 그에 반하는 복음 말씀을 한구절씩 배치하고 쓰며 새기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기에 사람은 하느님이 되었다Factus est Deus homo ut homo fieret Deus.” 성체 방문에 임할 때마다 우리 머리에서 세속적인 말을 없애고 그 자리에 그에 반하는 복음 말씀을 새겨 넣으십시오. … 그렇게 하여 우리 마음에 살아있는 신들이 됩시다.”(RM 1934, 71-72) “참행복에 대한 말씀은 성 마태오 복음에서 반 페이지도 되지 않지만, 성경 전체가 이에 대한 주석, 곧 참행복을 전하는 끊임없는 권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인쇄 사도직 협력자회」, 1933;「바오로 영성」, 1962, p.281) “성 바오로는 온 마음으로 회심했습니다. 그는 자기 생각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우리도 마음속에서 우리 자신을 회심시키려면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날 복음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성 바오로의 회심La conversione di San Paolo」, 미국 성바오로딸들에게, 1946년 1월: EMC 1952, p.75)
7. 예수회 바오로 세네리 신부(1624년 네투노에서 태어나 1694년 로마에서 선종함)는 1679년 피렌체에서 발행한「사순절Quaresimale」로 자신의 명성을 빛내게 되었다. 이 작업을 통해 세네리는 널리 알려진 선교사인 시에나의 베르나르디노에 비견되었다.
8. 1년 동안 매일 읽도록 성인전에서 발췌한 기도와 묵상 모음. 이 책은 1683년 밀라노에서 처음 발행되었다. 정식 제목은「영혼을 위한 만나, 또는 기도하기를 바라는 사람을 위한 쉽고 유익한 피정La manna dell’anima, ovvero esercizio facile e fruttuoso per chi desidera di attendere all’orazione」. 토데로 발행본(1766-1768년, 베니스)은 같은 저자가 쓴 「동정 마리아의 신봉자Il Divoto di Maria Vergine」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