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묵상에서는 주님을 더욱 사랑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합시다.
하느님의 사랑은 첫째 계명이며 다른 것들의 원리가 됩니다. 모든 계명이 여기에 달려있고, 첫째 계명을 잘 지키는 사람은 다른 계명들을 잘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주 자세히 보면 모든 법과 계명이 하느님을 향한 사랑, 오직 하나의 계명에 속해 있습니다. 이웃 사랑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데서 촉발됩니다.
1. 누가 하느님을 사랑합니까? 그분을 알고자 탐구하는 사람입니다.
첫째로, 주님을 사랑하는 영혼은 자주 주님을 생각합니다. 그는 특별히 마음을 드높여 하느님을 향하도록, 정해진 시간뿐 아니라 하루 동안 자주 생각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분에 대해 생각하고 그분에 관련된 것들, 그분을 섬기는 것 곧 그분의 뜻을 더욱 알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있는 곳에 여러분의 정신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정신이 자주 하느님께 향한다면, 아침에 (잠에서 깨어날 때 처음 떠오르는) 생각이 하느님이라면, 여러분 안에 인간의 사랑보다 하느님의 사랑이 우세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겸손하고 참된 연인은 공로가 되는 것이 아니라면 이 지상 것에 마음을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연인은 하느님 외의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른 이들이 자기를 존경하든 존경하지 않든, 일이 잘 되어가든 잘 되어가지 않든 중요하지 않으며, 모든 것에서 하느님을 모셔들이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의 연인은 강론이나 강의를 들을 때 하느님을 더 잘 알기 위해 몰입하며, 잘 기억하기 위해 받아 적고 다시 읽고 또 생각하곤 합니다.
성체방문 때나 묵상 때도 그렇게 합니다.
미지근한 사람은 거의 하느님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도할 때도 정신적으로 주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분심 속에 있습니다.
두 번째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분의 뜻을 행하는 데 온 힘을 기울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행하려고 애쓰는 사람이 하느님을 사랑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하느님을 참되이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를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그분이 바라시는 것을 연구하고, 그분의 뜻을 행하기 위해 섬세하게 온 마음으로 알려고 합니다. 이렇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분께서 표시해 주신 모든 의무와 그분의 뜻을 명확하고 분명하게 알고 받아들이게 되어 |
“오늘 나는 하느님의 뜻을 행하겠다. 아무것도 헛되지 않도록 마음을 쓰고 그분의 뜻을 실행하도록 주님께서 주신 귀중한 보물인 시간을 허비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세 번째로, 올바른 지향을 지닌 사람, 모든 활동에서 주님을 향해 있는 사람은 하느님을 사랑합니다. 이 지상의 것이 아니라 천상의 것, 피조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믿으면서 진실히 온 마음으로 그분의 사랑을 추구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참으로 마음이 주님을 향하고, 하느님이 아닌 것은 전부 없는 것으로 여기며, 언제나 천국을 얻기 위해 도움이 되는 것만을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자신에 대해 좋게 말하거나 나쁘게 말하거나 상관하지 않습니다. “오늘 내가 정말 공로를 쌓았는가? 성화에 더 나아갔는가? 어제 저녁보다 공로가 더 늘었는가? 혹은 공로 없이 하루를 보냈다고 적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만 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피상적으로 행하지 않고, 온 마음으로 하느님을 사랑할 것을 염려합니다.
(겸손과 사랑은 항상 하나이기 때문에) 주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겸손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나를 보신다는 것을 아는데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는가, 기쁘게 해드리지 못하는가?”를 생각합니다. 겸손한 사람,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 하느님의 것인지, 또 사도직만 아니라 하느님의 정신으로 사도직을 행하는지 깊이 살펴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성소의 선택에서도 하느님을 찾지 않고 외적인 것을 찾습니다. 이들은 어떤 신심의 자세를 지녔을지는 모르지만 내적 신심과 자녀다운 점이 부족하고, |
예수께서 바라시는 복음적 권고를 다른 이들에게 지키게 하면서 자신은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진정 사랑할 때는 외적인 것보다 내면을 중요시합니다. 겸손한 사람을 무게로 잰다면 외적인 것보다 내적인 덕의 무게가 더 무겁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분을 더 잘 알고 싶어 하며, 그분의 뜻을 행하고자 하고, 모든 것을 그분을 위해 하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있는 것 같습니까? 우리의 가장 큰 갈망이 하느님과 그분의 뜻을 아는 것입니까? 주님이 우리에게서 바라시는 것을 찾으려고 합니까? 주님을 향하고 있습니까? 깊이 보면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천국을 갈망하는 것은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공로를 쌓고 자신의 영혼을 풍요롭게 하는 것에 마음을 조금밖에 쓰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2.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세주이십니다. 지금까지 그 어떤 사람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까?
하느님은 우리의 유일한 지고의 선이신데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헛된 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음식으로 주셨는데, 어느 누가 이런 경지까지 우리를 사랑합니까? 그분은 당신의 제자들을 지극히 사랑하시어1 성체성사를 세우시고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분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누구를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이 아니라면 누가 세례 때에 은총을 주고 성령을 부어주었겠습니까? 하느님이 아니시라면 누가 여러분에게 부르심과 그에 응답하는 은총을 주었겠습니까?
하느님이 아니시라면 누가 여러분에게 희망과 항구함,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었겠습니까? 여러분을 부르시기 위해 누구를 사용하였겠습니까? 항상 하느님이 부르신 것입니다.
이런저런 방식으로 부르심이 드러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결국 부르시는 분은 언제나 하느님이십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대피정을 하였는데 여러분 안에서 누가 일을 하셨습니까? 당신의 통교를 통해 성령께서 일하신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할 것: 우리는 영원토록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에 의해 살아가든가, 그분을 사랑하지 않고 언제나 그분에게서 떨어져 있거나 할 것입니다. 이것이 복된 자들과 단죄받는 자들의 차이입니다. 복된 사람들은 항상 하느님을 추구하고 즐기지만, 단죄받는 사람들은 하느님을 찾지 않기 때문에 하느님에게서 떨어져 그분으로 채워질 수 없게 됩니다. 영원한 삶은 하느님의 완전한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기에 (첫째 계명을 지켜 다른 모든 이를 사랑함으로써) 하느님을 사랑하여 구원을 받고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아서 (첫째 계명을 거슬러 다른 모든 이들도 사랑하지 않기에) 단죄받을 것입니다. 사랑 혹은 단죄, 사랑하는 것 혹은 멸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진 신덕, 망덕은 사랑의 길을 준비하여 끝나고, 우리의 죽음으로 마감하지만 사랑은 영원히 지속할 것입니다.
하느님을 향한 사랑은 지상에서 하느님을 향하는 영혼의 긴장이며, 천국에서는 하느님의 즐거움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이제 실제적인 면을 보도록 합시다. 하느님께 봉헌한 후에 그분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가능합니까? 수도서원은 하느님을 더욱 사랑할 의무를 지는 것입니다. 모두가 그분을 사랑해야 하지만 수도자는 온 정신과 온 의지와 온 마음으로 사랑해야 하며,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시간을 낭비하여 헛되며 아둔하고 어리석은 처녀들과 같이 됩니다.
작은 일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사랑의 특별한 표지를 주셨다면 우리는 작은 일에서도 온전한 의지와 힘을 다해 그분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서원은 하느님께 마음을 온전히 드리는 것입니다. 아직도 마음이 경망스럽다면, 헛된 자애심으로 가득 차 있다면 수도생활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주님께 온전히 드리는 것에 마음으로 저항하고 있지만 다 드려야 합니다. 성당 안에 있을 때만 드리려는 마음이 아니라 우리의 전 생애를 다해 지속해야 합니다. 수도서원을 지킨다는 것은 다른 것들은 생각하지 않고, 온 정신과 의지와 온 마음을 다해 모든 사랑을 오로지 주님을 위해 바치면서 섬세하게 하느님의 뜻을 행할 것을 추구하고, 더욱더 사랑의 임무를 지니는 것입니다.
3. 열정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 곧 하느님의 동반자가 되고, 성사를 통해 일치를 바라고, 이를 자주 행하며, 예수님과 함께 있기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
이렇게 되기를 바라고 기뻐해야 합니다. 마음이 여기에 꽂히게 되면 더욱 푹 잠기게 되어 다른 것들에서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아가」에서 신부는 신랑의 짝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그를 찾을 때까지 밤낮으로 찾아다닙니다. 「아가」는 연인들의 책이며 하느님 사랑의 역사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분을 좋아하고 그분의 영광을 바라는 것으로 주님의 기도에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2 하고 기도하듯이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주님을 인식하는 데 이르며, 사람들이 은총으로 큰 완덕에 오르고, 모두가 하느님을 사랑하여 마음 한구석에라도 죄를 감추지 않는 모두의 성화를 고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연옥 영혼들의 해방을 바라며, 죄인들의 회개와 임종자들의 구원과 복음이 전파되며 개신교와 갈라진 종파들의 화해를 바라며, 하느님이 모든 이에게 사랑받으시기를 바라면서 야코포네 다 토디(Iacopone da Todi<1233-1306> : 이탈리아 사람으로 수도자, 시인, 복자. 결혼한 지 일 년 만에 부인이 죽자 프란치스코회 입회-역주)와 함께 “사랑받지 못한 사랑”(울부짖으며 기도했다는 말로 성 프란치스코의 외침과 통곡-역주)을 노래할 것입니다.
완전한 사랑에 대해 다시 봅시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주 천국을 향해 하느님께 찬미의 노래를 부르는 천사들과 성인들을 바라보며 성삼위를 관상하고 하느님께서 하신 일들을 기뻐하며, 사랑하는 분의 위대하고 거룩하며, 지고의 선이시고, 전지전능하신 창조주이시고, 우리의 최종 목적이심을 알고 즐깁니다.
그렇습니다. 종종 천국에 들어갈 갈망으로 그 진미를 미리 맛보기도 합니다. 모든 사랑의 대상이신 분을 영원히 소유하고자 자유로이 도약하기 위해 육신에서 분리되고 싶어합니다. 사랑의 사도인 성 바오로의 표현에 의하면 “나의 바람은 이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3
1 요한 13,1 참조.
2 마태 6,9-10 참조.
3 필리 1,23 라틴어 원문: “Cupio dissolvi et esse cum Chri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