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o Giacomo Alberione

Opera Om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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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청빈

규칙과 거룩한 계명을 실천하여 얻게 되는 것을 일반적인 성화라고 부릅니다. 복음적인 성화는 더욱 완전한 것으로서 거룩한 서원 곧 복음적 권고인 청빈, 정결, 순명을 실천하여 얻는 것입니다. 이를 능가하는 영웅적인 성화가 있는데 이는 일반적인 수준을 넘는 것으로서 수도생활에서처럼 세상에서 규정들을 지키고 복음적 권고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얻는 것입니다.
수도서원을 했다고 해서 영웅적인 성덕에 도달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복음적 권고의 길을 통해 영웅적인 덕을 얻을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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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성되어 공적으로 영광을 받고 있지는 않을지라도 세상에는 규정과 계명들을 영웅적으로 실천한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성덕으로 부르심 받은 것에 대해 주님께 감사드립시다.
이제 복음적 청빈에 대해 묵상합시다.
복음적 청빈을 살라는 성소는 예수님을 더 가까이에서 따르는 부르심입니다. 곧 청빈의 덕으로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수도생활에 부름받은 사람은 이 성소가 특혜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사셨습니까? 그분이 탄생하시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까지 극단적으로 지내셨던 두 가지 중 하나는 베들레헴의 거친 동굴에서 몇 줌의 지푸라기가 깔린 구유 안에 누우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짚더미보다 더 딱딱한 침대입니다. 예수께서 취하신 가난은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분은 임종하는 이들이 받게 되는 당연한 도움도 받지 못한 채 돌아가셨습니다. 베들레헴에서 갈바리아까지 온통 가난한 삶이었습니다. 이집트로 피신하실 때의 극심한 가난, 나자렛 오두막에서의 가난, 그곳에서 매일 끊임없이 하신 노동은 여러분이 하는 일보다 더욱 힘든 것이었습니다. 공생활 중에 제자들이나 경건한 여인들이 제공하는 것을 받아들이시는 가난함, 때때로 필요한 것마저 결핍된 가난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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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고물에 기대거나 나무 밑에서 주무시면서 덮을 것도 없었으므로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극심한 가난을 사셨습니다.1 어느 성인이나 수도자들이 예수님과 닮은 극심한 가난을 살았습니까? 성 안토니오 아빠스나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도 예수님과 같은 가난을 살지는 않았습니다. 어느 누구도 예수께서 사랑하신 만큼 가난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가난의 형태는 외적인 사랑이 아니라 내적인 사랑에 달려있습니다. 곧 정신적인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가난의 정신이란 지상의 모든 것에서 이탈하는 것입니다.
이를 잘 실천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하늘에 시선을 두고 더욱 자유로이 모든 것을 버리는 사람입니다. 성 바오로는 경기장에서 달리는 사람이 가방이나 짐을 들지 않고 빨리 달리는 데 꼭 필요한 옷만 입는다고 말했습니다.2 가난을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가기 때문에 천국을 향해 더욱 빨리 달립니다. 많은 이들이 겸덕을 사랑하지만 자신을 낮추지 못합니다. 가난을 사랑하지만 결핍을 원하지 않고, 희생을 해야 할 때 하지 않으며, 가난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아 청빈을 거스릅니다. 예수님은 가난을 말로써가 아니라 모범으로 가르치셨습니다.
가난의 실천은 세상에 들어올 때부터 시작하여 떠날 때까지 하는 것입니다. 청빈에 관한 권고는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여러 차례 반복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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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4 제자들에게 “나를 따르라.”5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사도들이 관대하게 준비한 가난입니다. 사도들은 짐을 싸거나 친척들에게 인사하러 돌아가지 않고 곧바로 배를 버리고 그분을 따랐으며, 그리스도의 가난을 실천하는 데 참여했습니다.
예수님은 집을 떠나실 때 아무것도 청하지 않으셨으며, 짐 보따리나 가방을 챙기지 않으신 채 떠나셨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예수님을 찾아 나설 때 예수께서 다 마련해 주신다는 믿음을 갖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의 아버지께서 들에 핀 꽃과 공중의 새들을 먹여주시거늘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6 하느님은 가난의 정신을 참으로 사랑하며 당신을 신뢰하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주십니다.
수도회는 아무것도 없이 태어났을 때처럼 자기의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서원을 했기 때문에 청빈 정신으로 살아야 합니다. 수도서원이 심판의 날 고발당하는 데 이용되지 않고, 오직 하느님만을 찾았다는 시험에 통과하는 데 사용되도록 잘 살아야 합니다. 가난을 참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가난을 짐처럼 견디는 것이 아니라 공로와 영원한 상을 받기 위한 주요 수단으로 여겨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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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을 참으로 사랑하기 위해 지상의 것에서 이탈한 만큼 하느님께 대한 믿음, 희망, 사랑과 천상 지혜와 성령의 선물이 풍요로워진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관계나 작은 소유를 포기하거나 허락을 청하며, 시간을 잘 사용하고자 애를 쓰면 성령과 영적 은총, 하느님의 지혜, 복음적 행복, 성령의 열매가 풍성해지며, 천국에서는 빛나는 영광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는 곳이 가난할수록 천국에서 지낼 곳이 아름답게 단장될 것입니다.
청빈에는 부정적 측면과 긍정적 측면의 실천이 있습니다.
부정적 측면의 실천은 소유권의 자유로운 관리를 포기하고, 미각의 극기 등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은 부족하게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난에 결코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의식주를 공동으로 하며, 소소한 결핍에 기꺼이 적응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베들레헴의 극심한 가난을 어떻게 대처하셨는지 보십시오. 그분은 요람이 아니라 구유를, 푹신한 요가 아니라 약간의 볏짚을, 거룩하신 갓난아기의 옷이나 기저귀가 아니라 성 요셉의 거친 외투를, 난로가 아니라 짐승들의 입김으로, 깨끗한 방이 아니라 짐승과 함께 마구간에서 지내셨습니다. 마구간도 그들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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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간 주인이 동물들을 들이기 위해 쫓아낼 수도 있었습니다. 필요한 것들이 아주 절실한 상황에서도 부족한 대로 지내셨습니다. 그러한 경우 우리는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몰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구세주께서 어떻게 돌아가셨습니까? 입고 있던 옷마저 모두 벗어야 했습니다. 침대가 있었습니까? 십자가의 형태로 두 개의 나무가 놓여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임종자에게 필요한 위로마저도 없었습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께서는 땀을 닦아주시거나 갈증으로 타는 입술을 적셔줄 한 모금의 물도 건넬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의 가난 정신은 어느 지점에 이르렀는지 십자가 아래에서 숙고합시다.
청빈의 긍정적 측면의 실천은 무엇인가를 실제로 행하는 것인데, 이는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더 나은 결실을 위해 사도직 시간을 잘 활용하고, 거룩하게 이루어지도록 합시다. 아무것도 아쉽지 않게 마련해 주시는 하느님을 신뢰하면서 우리가 사용하는 것들을 잘 활용하도록 합시다. 사도직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기부금을 청합시다. 우리의 가난이 어디까지 이르렀는지 살펴보고, 우리의 마음이 방향을 잃어 어떤 작은 것들에 애착하고 있지는 않는지 성찰합시다. 외적인 측면보다 내면적인 측면을 성찰합시다. 진정 천국과 예수님을 위해 가난을 사랑하고 그분의 사랑을 위해 결핍까지도 원하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예수님의 가난 정신을 더욱 가까이 본받기 위해 거룩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구세주의 생애를 자주 숙고하여 “와서 나를 따르라.”7는 소리를 듣고 따른 섬세한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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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태 8,20.

2 1코린 9,25 참조.

3 마태 16,24.

4 루카 14,33.

5 마태 16,24.

6 마태 6,26-33 참조.

7 마태 1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