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바오로는 콜로새서 3장에서 많은 영혼의 특별한 선물을 열거한 후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 주는 끈입니다.”1라고 덧붙여 말합니다. 사랑은 가장 훌륭한 길로서, 간곡히 요청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는 길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는 영혼들을 섬세하게 대하신 온전한 모범을 우리에게 남겨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사랑을 가져오셨습니다. 그분이 오시기 전에는 이기심과 복수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 아드님께서 천국을 떠나 당신의 피조물 사이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동정 마리아의 지극히 순결한 품에서 인간 본성을 취하여 “우리 가운데 사신”2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 인간을 위한, 우리 구원을 위한 것입니다.3 육화는 위대한 사랑의 활동입니다. 무슨 이유로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으며, 갖가지 곤궁과 결핍상태에서 지내셨습니까? 그것은 오로지 사랑 때문에, 사람들이 두려움 없이 그분께 다가갈 수 있도록 아기가 되셨습니다.
공생활 전체가 사랑에 대한 가르침과 모범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예
수님은 죄인들과 함께 얼마나 많은 고통을 느끼셨으며, 이해력이 더딘 제자들을 인내로 대하셨습니까! 그분은 잃어버린 어린 양을 찾아 나서는 착한 목자이십니다. 당신 제자들의 섬세한 스승이시며 어린이들의 친구이셨습니다.
예수님은 특히 고통을 당하심으로써 우리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어,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셨습니다.4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의 쓰디쓴 잔을 받아 마시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심은 사랑의 위대한 배움터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몇 번의 친절을 베푸는 것으로는 사랑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고통을 당하면서, 또 희생하면서, 기도하고 사랑하는 이를 위해 생명을 바치면서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관상을 더 하고 싶다면 그분의 열린 늑방을 바라보십시오. “사람을 무한히 사랑하신 심장이 여기 있습니다.”5 그분 사랑의 흔적을 우리 기억 속에 항상 남기기 위해 예수님은 성체를 우리의 음식으로 남겨 주셨습니다. 이는 하느님 사랑의 극치입니다!
2. 사랑은 대단한 공로를 가져오는 것이므로 실천해야 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선량함의 표지이며, 거룩한 준비자세입니다. 참으로 사랑한다면 이기심은 밖으로 사라지고 그 자리를 덕이 차지합니다. 이웃을 이익이나 개인적인 관심 없이 사랑한다면 완전한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듯이 하느님께 기쁨을 드리고자 영혼들의 이익을 위해 침묵으로 사도직을 한다면 완전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며, 하느님 사랑의 순수함에 드높여진 사람이라는 표지입니다. 공로를 얻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일해야 합니다. 개인 안에 하느님의 은총이 존재할 뿐 아니
라 그 은총에 응답하고 자신을 맡긴다면 사랑이 존재하며 공로가 증가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랑은 가치롭고 큰 공로가 되지 않겠습니까?
3. 사랑을 훈련하는 실천적 방법
개인 안에 참된 사랑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까? 그 사람 안에 인내와 부드러움이 있는지 시험해 보십시오.
인내는 성인을 만드는 덕입니다. 고통을 당하면서도 남이 눈치채지 않도록 미소와 온화함으로 고통을 감춘다면 완전한 사랑을 지닌 것입니다. 공동체에는 인내를 단련할 기회가 항상 있습니다. 성 바오로는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6라고 우리에게 권고합니다. 공동체에는 자연적인 다양한 경향과 성격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고쳐주고 모든 것을 보완합니다. 사랑은 인내로 과실에 대해 함구하며, 반감과 호감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사랑은 작은 불평들과 지나친 야심을 견디어 냅니다. 사랑은 단죄하지 않으며, 나쁘게 판단하지 않고, 나쁘게 말하지 않으며, 복수하지 않고, 반대를 받는다고 해서 선을 행하는 일을 멈추지 않습니다.
사랑의 두 번째 특징은 부드러움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7
사랑은 모욕적이거나 화를 내지 않으며, 온화하고 부드럽고 관대합니다. 사랑은 사랑스럽게 대답하고, 부주의하여 알아듣지 못했거나 이해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같은 것을 세 번 네 번 반복하여 대답해줍니다.
사랑은 고집을 부리지 않고, 자기의 이론을 더 낫게 여기지 않습니다.
사랑을 잃기보다는 진리를 침묵하는 것이 낫습니다. 온유함은 달콤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셨듯이 지혜롭고 부드러워야 합니다.
속상하고 짜증이 날 때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후회나 위기를 피하기 위해 침묵을 지키거나 짧게 대답하는 것이 좋습니다. 의무감에서 나무라게 될 때는 “화가 나더라도 죄는 짓지 마십시오.”8라는 말을 기억하십시오. 그렇지만 어렵습니다. 가능하다면 침묵을 지키는 것이 낫습니다. 교정도 사랑으로, 사랑의 동기로 해야 합니다.
착한 사람에게 착하고 부드럽게 대하기는 쉽지만, 어려운 성격을 지녔거나 선과 사랑을 남용하는 사람에게는 쉽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 스승의 모범을 기억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수님도 당신의 선하심을 남용하는 사람과 당신의 뜻을 오해하는 사람 모두에게 온화하게 참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때로 강하셨지만, 항상 침착하셨습니다.
단지 교만한 자들을 거슬러 여덟 가지의 “불행하여라”9라는 무서운 말씀으로 그들을 깨우쳐 고치고자 하셨습니다. 책망하시면서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처신하셨으며, 격정에 의한 질책이나 교정이 아닌 사랑으로 행하셨습니다.
* 내부 회람지 1940년 11-12월호 2-3쪽에 게재된 묵상. “프리모 마에스트로의 묵상”이라는 제목이었는데 이는 “애덕” 이라는 내용과, 글자체가 다른 “애덕을 거스르는 죄”라는 두 가지 제목의 텍스트를 실은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별도의 묵상이라고 생각한다. 프리마 마에스트라의 수첩 3번과 대조해 볼 때 1940년 11월에 있었던 대피정 묵상이었음을 알수 있다. 제목은 보완된 것이다.
1 콜로 3,14.
2 요한 1,14.
3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
4 갈라 2,20.
5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에게 계시하신 예수 성심.
6 갈라 6,2.
7 마태 11,29.
8 에페 4,26 라틴어 원문: “Irascimini et nolite peccare.”
9 참조: 루카 6,24-26; 11,37-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