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o Giacomo Alberi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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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문INTRODUZIONE

성바오로딸들에게 하신 알베리오네 신부님의 강의 총 모음집은 제2차 세계 대전1940-1945 시기부터 출판을 시작하기로 하였다. 그러한 선택을 하게 된 동기는 다음과 같다. 이 시기에 알베리오네 신부님께서 하신 말씀들은 성바오로딸들의 양성에 특별한 영향을 주었는데 특별히 주석에 마음을 썼으며, 수집 작업이 그리 어렵지 않았기에 창립자의 묵상이 문서로 새롭게 출판되기를 바라는 자매들의 염원에 신속하게 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 시기에 하신 강의들은 독립된 것이 아니다. 이 강의들은 구두로 된 ‘선포’로서 창립과 함께 시작하여 거의 생의 마지막 시기까지 이어진 것이다. 그 긴 기간을 비슷한 시기별로 나누어 전쟁 시기의 것을 전체 시리즈의 한 부분으로 묶었다.

1. 정보 교류 시기 1915-1928년
2. 첫 확장 시기 1929-1933년
3. 첫 강화 시기 1934-1939년
4. 전쟁 시기 1940-1945년
5. 두 번째 확장 시기와 창립자의 첫 국제 공동체 방문 시기 1946-1949년
6. 쇄신 시기와 교황청 인가 1950-1955년
7. 성숙 시기와 공의회 1956-1969년

알베리오네 신부님의 강의에서 글로 쓰인 각주는 발견하지 못했다. 강의 내용은 시기별로 여러 자매가 책임감 있게 충실히 필기하여 얻은 열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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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알베리오네 신부의 강의 1940-1945년

1. 알베리오네 신부와 전쟁

1939년 9월 1일, 독일은 폴란드를 침공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된 것이다.
이탈리아는 1940년 6월 10일, 독일과 일본의 동맹국이 되어 전쟁에 휩싸이게 된다. 1943년 9월 8일, 무솔리니 정부가 무너지고 휴전에 서명하게 된다. 새로운 상황과 계약의 역전이 교대로 일어나게 된다. 이탈리아가 전쟁을 끝내고 자유를 찾기까지 무자비함과 잔혹함이 1945년 4월 25일까지 계속된다.
전쟁 상황은 창립자의 강의에 어떤 형식으로든 실존적 배경이 되었다. 루이지 롤포 신부는 알베리오네 신부의 전기에서 그의 영혼 상태를 잘묘사하였다.

“지대한 관심으로 국제적 흐름을 따르던 알베리오네 신부는 이탈리아가 전쟁을 시작한 데 대해 놀라지 않으셨다. […] 그날 그는 말을 아주 적게 하면서 생각하고 기도하며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지켜보고 계셨다. 전쟁이 일어난 첫날밤 공습경보가 들리고 캄캄할 때 공동체 회원들이 두려움과 놀람으로 소리지르며 피난처로 택한 지하실로 급히 뛰어가는 소란을 피우는 동안 그는 천천히 계단으로 내려와 1층 맨 첫 계단에 멈추어 서 계셨다. 그는 공습경보가 울리는 동안 침묵중에 마치 경비병처럼 내내 그곳에 혼자 남아 계셨다. 그리고 입구 가까이에 서서 검게 변한 하늘을 응시셨였다. […] 그런 다음 손에 묵주를 들고 아주 작은 소리로 기도하며 천천히 발걸음을 돌리셨다. […]
그의 생각은 수도 [로마]에 투하될 수도 있는 폭탄에 대한 두려움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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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에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지하실에서 불안에 떨고 있는 수백 명의 (남녀 바오로회원), 아마도 전쟁으로 충격을 받았거나 이제 곧 슬픈 결과를 가져올 이탈리아와 다른 나라에 있는 바오로인의 여러 공동체에 한정되지 않았다. 전쟁이 발발한 그날 밤, 어쩌면 이 전쟁의 참혹함에서 안전하게 지켜주신다면 같은 장소에 당신의 영광을 위해 대성전을 지어 바칠 것을 장엄하게 약속하면서 온유하신 사도의 모후 마리아의 손에 자신과 자녀들을 맡겼는지 모른다.”1

그렇지만 알베리오네 신부의 묵상 글에는 전쟁의 비극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처음부터 알베리오네 신부는 전쟁을 사도의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시련의 때라도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은 1941년 3월 피정 중에 성바오로딸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전쟁중이지만 올해 여러분은 사도직에서 발전했습니다. 수도회 초창기에 회원들이 매우 적었지만 사도직을 많이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전쟁 시기에는 세상이 더욱더 예수 그리스도와 하느님을 필요로 합니다.”2
창립자의 이 말씀 위에 성바오로딸들은 군인들, 피난민, 수감자들에게 ‘선한 출판물’을 가져다주며 모험을 감행했다.
전쟁으로 인해 달이 갈수록 모든 면에서 점점 더 황폐해졌다. 성바오로딸들도 배고픔과 추위, 병고, 사도적 힘겨움들을 매일 겪어야 하는 현실이 되었다.3
이런 상황에서 창립자 신부는 당신 수도회들을 강하면서도 부성적인 현존으로 고무하며 모두의 신앙을 지지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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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적 부담이나 피해망상 또는 실망에 빠지지 않고 신뢰와 평온함, 희망속에서 인내하도록 격려하였다.
여행이 가능한 한 로마에서 분원 자매들을 위한 대피정을 계획했는 데 알베리오네 신부는 거의 정기적으로 강의를 맡았다. 그런데 1942년부터 1945년 11월까지는 강의가 거의 로마 공동체에 한정되었다. 피정 코스가 축소되고 대피정에 대한 기록이 제한되며 강의를 들을 기회가 적어지고 정보를 받을 수 있는 채널마저 사라졌다. 1942년 4월부터 1945년 10월까지 내부 회람지 발행이 중단되었다. 그러므로 강의의 정확한 날짜와 주제를 알기 위해 다른 원천을 찾아야 했는데 그에 관해 귀중한 것은 프리마 마에스트라 테클라의 개인 수첩과 이 책의 문서화에 협력하고자 했던 다른 자매들의 메모들이었다. 그들에게 진실어린감사를 드린다.

2. 총체적으로 본 형태-텍스트의 본성과 성격

알베리오네 신부가 1940년 1월부터 1945년 12월까지 전쟁 시기에 하신 강의들이다. 보관된 텍스트는 창립자의 말씀을 기록한 열매이기도 하다. 마에스트라 이냐치아 발라는 다른 자매들의 도움으로 기록한 것들을4 모으고 검토하는 책임을 졌다. 이 기록들은 다양한 모양을 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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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로 수집되었다.
- 타자 원고, 출판되지 않고 남아 있던 것들
- 낱장으로 되어 있는 한 가지 묵상이나 월피정 강의
- 대피정 중에 행한 강의를 수집한 책 「이것을 묵상하라Haec Meditare5는 제목의 두 번째 시리즈에 속하는 것으로 전쟁 시기의 강의를 모은 것이다. 그것은 시리즈 1, 2, 3, 5, 7로 되어 있다. 거기에 1941년도 대피정과 장상들에게 하신 특별 피정 코스가 포함된 강의 모음집이 포함된다.
이 시기의 강의는 알베리오네 신부가 다시 검토하여 출판하려고 했음이 거의 확실하다. 다시 검토했다는 점에서 신빙성이 있다. 또한 창립자의 글로 쓰인 주석이 없으므로 이 내용을 원전으로 여긴다.
총체적으로 본 형태는 다음과 같다.

가) 1940년도: 다양한 강의들로 전부 인쇄되었다.
- 14개의 강의나 묵상으로 내부 회람지에 인쇄되었다.
- 4개의 묵상이 낱장으로 인쇄되었다.

나) 1941년도: 특별히 풍부하던 대피정의 해로 다음과 같이 모았다.
- 「이것을 묵상하라」 Ⅱ/1에 있는 1941년 3월 대피정 때 행한 21개의 강의.
- 「이것을 묵상하라」 Ⅱ/2에 있는 1941년 9월 대피정 때 행한 14개의 강의.
- 1941년 10월 대피정 때 행한 23개의 강의. ‘1941년 10월 대피정’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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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가 본존되어 있다.
- 타자로 된 하나의 월피정 강의 원고.
- 내부 회람지에 인쇄된 3개의 묵상.

다) 1942년도: 양적인 면에서 강의가 가장 적은 해다. 서원誓願에 관한 3개의 묵상과 대신덕에 관한 것으로 매우 의미 있는 것들이다.
- 「이것을 묵상하라」 Ⅱ/2에 있는 1942년 3월 대피정에서 행한 8개의 강의.
- 타자로 된 하나의 묵상 원고.

라) 1943년도: 전쟁이 점점 더 비극적으로 치닫던 시기. 콘체티나 보르고뇨 수녀는 “밤의 공습경보와 무서움이 있었지만 1942년까지 로마에는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 그러나 1943년에는 경보와 위험한 상황이 자주 발생했습니다.”6라고 기억한다. 수업을 중단하고 여러 수녀와 수련자들은 더 안전한 집이나 알바로 이전해야만 했다.7 이런 상황에서 창립자 신부는 가능한 범위에서 성바오로딸들에게 영적인 배려를 계속한다. 강의록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묶었다.

- 「이것을 묵상하라」 Ⅱ/3에 있는 1943년 3월 대피정 때 행한 14개의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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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을 묵상하라」 Ⅱ/3에 있는 1943년 6월 대피정 때 행한 24개의 강의.
- 타자로 된 5개의 묵상 원고.
- 낱장으로 인쇄된 월피정 원고.

마) 1944년도: 폭탄이 투하되고 있는 오스티엔세 구역에 사는 것이 허락되지 않아 거의 피난 동굴에서 살게 되었다.8 알베리오네 신부는 성바오로딸들의 온 삶을 길 진리 생명이신 스승 그리스도 안에 중심을 두도록 초대하면서 새해를 축하하였다. 1월 6일 성좌에서 수도회의 칭찬교령Decretum Laudis을 받은 희망찬 소식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도록 초대받는다. 독일이 물러나고 미군이 로마에 들어왔다.(1944년 6월) 이탈리아 중앙 북부의 상황이 악화되고 외국에 있는 자매들의 소식이 없는 때에 이탈리아 남부 공동체들의 소식을 받기 시작하였다.
11월까지 알베리오네 신부의 강의를 받아 적은 것이 없다. 보관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 타자로 된 5개의 묵상 원고.
- 「이것을 묵상하라」 Ⅱ/7에 있는 1944년 11월 대피정에서 행한 16개의 강의.

바) 1945년도: 전쟁 후 5월 3일 이전의 기록이 없다. 물론 창립자가 말씀이 없었던 것 같지는 않다. 이때 하신 묵상에서 그분은 전쟁 중에 성모님의 끊임없는 보호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사도의 모후 성전 건축을 시작할 때가 되었음을 알렸다. 1945년의 강의는 다음과 같다.
- 타자로 된 하나의 묵상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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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을 묵상하라」 Ⅱ/5에 있는 10월 첫 주간에 관한 5개의 묵상.
- 「이것을 묵상하라」 Ⅱ/5에 있는 1945년 11월 대피정에서 행한 15개의 강의.
- 1946년 1월 「우리의 삶」(VN)에 인쇄된 하나의 짧은 묵상.
특별히 관심을 두고 하신 강의는 장상들, 사도직의 세 부문 곧 성바오로딸수도회, 스승예수의 제자수녀회, 선한목자 예수수녀회의 책임자들, 첫서원이나 종신서원을 준비하는 양성중의 젊은 수녀들을 대상으로 하였다. 

3. 첫 원본 출판의 기준과 가치

출판되지 않은 자료들이 극소수이기 때문에 초판을 살펴보면서 편집자들이 세운 몇 가지 기준에 따라 확실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수집된 이 자료들을 보면 로마 이외의 지역에 있는 자매들에게 창립자의 생각을 전달하여 매일 묵상으로 양분을 취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필요성’에 의한 기준이 우선시된다. 편집자들은 연대나 정보의 기회를 언급하기보다는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에 우선권을 두었다. 그러므로 대체로 날짜를 생략하고 연도와 어느 달인지만 소개한다.
때로 1941년 3월 대피정(HM Ⅱ/1)에서처럼 두 개의 대피정 강의가 하나로 묶여지기도 한다. 어떤 경우엔 9월 대피정(HM Ⅱ/2)과 1941년 10월 (EM)의 것처럼 작업을 밝히지 않고 묶어 두었다. 또 어떤 경우는 「이것을 묵상하라」 Ⅱ/5의 마지막 5개의 묵상처럼 어느 대피정에도 속해 있지 않은 묵상들도 포함한다.
양성을 위한 경우에는 내부 회람지나 낱장으로 먼저 인쇄하도록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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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있다. 이런 묵상들은 나중에 다른 대피정 강의들과 함께 「이것을 묵상하라」에 삽입되었다.

자매들이 받아 기록한 것들은 보통으로 첨삭하거나 형식을 다듬기도 했으므로 일관적이지 않다. 다른 한편 조금 빈약한 것들도 있는데 특히 출판되지 않은 것들이 그러하다. 대피정 동안 보관한 묵상들은 보통 출판을 위해 모으도록 준비하고 제공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몇 가지 동기 중의 하나는 현장에서 직접 강의를 듣는 자매들뿐 아니라 후대의 자매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아무튼 수준들이 다양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몇몇 강의는 특정한 상황과 엮어져 있거나 부정적인 상황을 고치도록 지시했는데 아마도 강의를 듣는 자매들의 그룹 또는 수도회의 역사에서 있었던 일에 관한 것 같다. 그럴 때 창립자는 세세한 가르침을 제시하는데 그때의 상황에 있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하기가 힘들다. 어떤 강의들은 역사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으므로 카리스마적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체험한 점들과 고뇌와 동요를 반영한다.9 예를 들어 1941년에 하신 몇 번의 강의는 세 부문(세 개의 여자 수도회-역주)의 사도직 관계와 성바오로수도회와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다른 강의들은 사도적, 영적, 공동체적인 면에서 특별한 확신을 준다. 예를 들면 1941년 3월과 9월 강의,10 1942년 수도서원에 관한 것,11 영성과 사도직의 걸음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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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여정 중에 있는 수도회에 내린 교회의 가르침

창립자의 강의는 전쟁의 긴 기간을 성바오로딸들이 믿음으로 살아가도록 동반한다. 동시에 성바오로딸들이 고유한 신원을 확고하게 다지기까지 비춰주고 인도한다. 내용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도회의 창립 여정과 사도직의 발전에 관련된 요소들을 강조하는 것이 적절하다.

가정선교
성바오로딸들은 ‘선한 출판물’ 보급을 폭넓게 적극적으로 시작하는 중에 1929년 3월 15일에 교구 인가를 받았다. 그리하여 알베리오네 신부와 마에스트라 테클라는 가정선교 혹은 ‘침투하는 선교’의 본질을 밝히고자 하였다. 1939년에는 이러한 시도가 교계적 차원에서 순조롭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를 ‘초현대적’ 사도직으로 정의하면서 젊은 수녀들이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며 가정마다 방문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여긴 것이다.12
알베리오네 신부는 수도자성SCR 장 관 빈첸소 라 푸 마Vincenzo La Puma, 1874-1943년 추기경의 소환을 받아 ‘프로파간다’의 사목적 가치를 밝히고 설명하였으며, 추기경의 제안들도 받아들였다. 알베리오네 신부는 추기경에게 보내는 서신을 통해 회헌 몇 조항에 관해 재검토하려 했음을 보고한다. 프로파간다에 관한 회칙에 ‘현명함과 점진적으로’ 한다는 것이다.13 1940년, 알베리오네 신부는 성바오로딸들에게 회람지를 통해 성 바오로 서원의 목적을 모든 사도직 창안의 중심으로 제시했다.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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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1940년과 1941년 사이에 이탈리아 24곳에 새 서원을 열었는데 그중 몇 곳의 서원은 이미 진출한 아주 큰 공동체들 가까이 있었다.
2년 안에 이루어진 이러한 일은 알베리오네 신부가 강의 중에 우리 사명의 본질과 하느님께서 우리 사명을 원하셨다는 것을 강조했고, 사도직의 셋째 부분인 ‘가정선교’와 ‘서원’을 통한 보급에 특별한 관심을 주고자 한 바를 증명한다. 전쟁은 철저하게 재조명하도록 요청할 것이고, 후에 시대가 변하여 초기에 의심스럽게 바라보던 점들이 사목적으로 시급한 것으로 격려받을 것이다.

여성 수도회들의 힘든 여정
성바오로딸들과 스승예수의 제자수녀회 수녀들이 합병하여 ‘성바오로딸수도회’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교구 인가를 받는다. 거의 10년간 분원에서는 두 그룹이 같은 공동체에서 하나의 사도직을 수행하였다. 선한목자 예수수녀회 창립(1938년)으로 인해 수도회의 창립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선한목자 예수수녀회를 같은 수도회의 세 번째 그룹으로 여겨 가르침, 전례, 사목이라는 세 개의 사도직 부문으로 이해하게 된다.
1940년 초기, 창립자는 칭찬교령Decretum Laudis을 받기 전에 수도자성에서 성바오로딸수도회 내부의 모습을 더 확실하게 정의하도록 요청받은 대로 여성 수도회들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대면해야 했다. 그때 창립자는 하나의 계획을 약술했는데 이것을 1941년 7월 피정과 같은 해 10월 대피정 강의에서 볼 수 있다. 주된 요점들은 다음과 같다. 가) 세그룹 혹은 세 가지 사도직 부문의 목표는 1929년 교구 인가에 부응하는 하나의 수도회에 속한다. 나) 세 부문의 사도직은 유일한 총원장 프리마 마에스트라의 책임하에 세 명의 구별된 장상에게 속한다.15 다)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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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문은 고유한 수련소를 갖는다. 라) 세 그룹은 길 진리 생명이신 그리스도 안에 기초를 둔다. 마) 모든 여성 수도회의 사도직은 성바오로수도회에 종속한다.16
그러나 1943년과 1945년 사이에 3개의 구별되는 여성 수도회는 각기 고유한 사도적 목적과 모든 분야에서 자율성을 지니면서 회헌의 결정들이 무르익는다.

교황청의 첫 인가: ‘칭찬교령’
강의는 수도회의 교황청 인가라는 바오로인들의 또 하나의 사건에서 영향을 받게 된다. 1941년 1월 교황청은 안젤리코 알렉산드리아Angelico d’Alessandria, 1899-1984년 신부에게 위임하여 사도적 방문을 하게 되는데 바오로가족의 남녀 공동체를 동시에 방문하는 것이었다.17
이 방문에 어떤 회원의 현명하지 못한 경솔한 행동으로 교회법적으로 좌절될 수 있는 일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다. 1941년에 다루었던 주제는 그 당시 활력과 엄격함이 넘쳤으며, 오직 자신의 수도가족에 대한 책임을 느끼는 힘든 수고로움으로 교회 앞에 수도회의 모습을 정확하게 보여주려는 아버지를 이해하게 하는 것이었다.18 그 열매는 1941년 5월 10일 성바오로수도회, 1943년 12월 13일 성바오로딸수도회가 성좌의 ‘칭찬교령’으로 완전한 인가를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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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출판의 실제

1. 출판 기준

수집한 강의의 각 텍스트와 구성에 대한 검토는 자체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창립자의 생각을 정확하게 읽는 데 도움이 되도록 내용을 채택하고 엄격한 기준을 따르면서 출판할 수 있도록 자극했다.
  가) 대피정 강의들은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기록 순서를 따랐다.
  나) “여러 가지 묵상Meditazione varie”이라는 제목으로 이미 출판된 것들과 타자로 된 원고를 종합하였다. 그 대신 단편적인 것들이나 지나치게 사소한 기록들, 우연한 상황에 관련된 것들, 두드러지지 않은 내용들은 제외시켰다. 연구 결과 알베리오네 신부의 것이 아니라고 여겨지는 묵상들은 제외시켰다.
  다) 주석에 밝힘으로써 겹치는 몇 가지 내용은 제외시켰다.
  라) 각 대피정과 “여러 가지 묵상”의 묶음마다 안내글을 삽입했다. 안내글에는 가능한 한 날짜, 장소, 대상, 주제, 원천과 대피정의 목적을 밝혔다. 검토하면서 연도순에 따라 여섯 부분으로 나누었다.

2. 원천

알베리오네 신부는 이때 55-66세에 이르는, 인간적으로 충만에 이르는 성숙기였다. 젊은 시절에 한 풍부한 독서가 그의 삶에 깊이 뿌리내려 굳건하고 안정적으로 잘 통합되었다. 그는 무엇보다도 프란치스코 키에사(1874-1946) 신부의 묵상을 통하여 동시대 신학 유산에 동화되었다. 그의 묵상들은 퍼지는 빛처럼 그의 인간학적 차원의 현실과 영적 삶의 관망에 침투하였다.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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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자는 말로 통교를 할 때 그의 가족의 영적 성장과 사도적 성장을 꾀하였는데, 그의 생각이 확실히 신학 유산에서 받은 것이라고 생각할 때도 그러했다. 거의 항상 원천을 기억하여 있는 그대로 인용한다. 생각의 실마리들이 어떤 작품에서 올 수도 있지만 그 내용을 성바오로딸들에게 어떻게 적용하며, 공동체와 사도직에서 그것을 어떻게 살아낼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여 표현한다. 한 장章을 예로 들자면 바오로인들의 성소와 사도직에서 성체와 하느님 말씀은 떼어 놓을 수 없다는 것을 밝히는 좋은 기회로 쇼타Chautard의 저서 「내적 삶은 모든 사도직의 혼La vita interiore anima di ogni apostolato」을 인용한다.
알베리오네 신부의 배경을 염두에 두면서 40년대에 행한 강의의 세세한 원천을 서로 조화된 세 가지 차원에서 연구하였다.

가) 교회의 유산: 당대 교회의 유산이 성바오로딸들을 양육한 빵이었다. 전례적 삶과 하느님 말씀, 성좌의 가르침, 영성 작가들, 신중하고 깊은 수덕과 신비를 다룬 것들이다. 사말四末과 축일, 강력한 전례시기에 관한 풍부한 묵상들은 대부분 미사의 본기도와 성무일도 독서에서 빛을 받은 것이다. 하느님 말씀을 자주 반복하는 것은 영적 해설이나 주해서에서 받은 것이 아니라 마치 ‘교훈’처럼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와 얻게 된 것으로서, 이것을 말로 전할 때 권위와 확신을 갖고 전하게 되는 것이다.
나) 출판의 선정: 알베리오네 신부는 바오로가족 10년간의 초창기에 세상에 주어야 할 메시지의 유형을 복음과 교회의 변하지 않는 가르침에서 얻는다. 자주 인용한 책들은 교부들과 교회 박사들의 것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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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들은 성바오로딸들이 번역하거나 출판하였다. 이렇듯이 강의, 영적 생활과 공동체 생활, 특별히 바오로 출판사를 갖고 행하는 사도적 삶이라는 구성 요소들이 서로 자극을 주고받았다.

다) 성바오로딸들을 위한 권장 도서: 상당히 많은 출판물 중에 창립자는 몇 가지 작품을 선택했는데, 특히 영적이고 신학적인 양성에 관한 것들을 묵상과 영적 독서로 권하였다. 그는 강의 중에 성바오로딸들의 교육을 위해 해설을 덧붙이곤 했다. 이 모든 것의 목표는 ‘참된 바오로 회원이 되기 위해서’였다.20 거듭 제안하는 책들은 1939년도 내부 회람지에 이미 잘 제시되었다. “복음, 성경, 성 바오로 서간, 프리모 마에스트로의 책들, 성 알폰소,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 이냐시오, 로드리게즈 등의 책들이다.”21
이런 현실에서 저자들과 소책자들은 몇몇 대피정의 배경이 되었다. 저자들 중에는 성 알폰소의 영향이 드러나는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의 실천과 영적 일기Pratica di amar Gesú Cristo Diario spirituale」(알폰소 학파)이며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의 「신심생활 입문La Filotea」과 「신애론Teotimo」, 성 이냐시오의 「영신수련」, 성 줄리아노 에이마르의 「대성전」처럼 성체를 소개하는 책들이 있는데 성체 안에 계신 스승 예수님이 모든 덕행을 가르치신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준주성범」을 자주 인용한다.
소책자들 중에서 탕꿰리A.Tanquerey의 「간추린 수덕 신비 신학Compendio di teologia ascetica e mistica」을 많이 다루게 된다. 성바오로딸수도회와 성바오로수도회가 준비한 출판을 예로 들자면 쇼타의 「모든 사도직의 혼L’anima di ogni apostolato」이다.22 두 권으로 된 보드농Beauden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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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작품 「고해성사의 점진적 실천Pratica progressiva della confessione」도 언급하는데 알베리오네 신부는 이 책의 엄격한 방법론에 대해 비판한다.23 이런 저자들과 동시에 성 아우구스티노와 성 베르나르도, 예수의 성녀 데레사와 성인 교부들의 일화에서 풍부하게 정신을 길어낸다. 창립자는 이들의 것을 아주 풍부하게 인용한다. 성바오로딸들을 성인들의 배움터와 교회의 성화에 이끌고자 하는 창립자의 심려를 볼 수 있다.24 이런 의미에서 창립자가 특별히 가치 있게 여기며 권고하는 전기는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성녀 젬마 갈가니,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 통고의 성 가브리엘, 성 요셉 베네딕토 코톨렌고, 성 요한 보스코, 성 요셉 가파쏘 등이다.
대피정 중에 이들의 작품들을 염두에 두었으며, 전쟁이 끝날 무렵 모든 공동체가 공통된 영성을 위해 이들을 성장의 수단으로 삼도록 권고하였다.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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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전체적인 문체와 언어

강의록의 문체를 한 가지 특징으로 한정해서 보기는 어렵다. 말로 전달하는 것이어서 즉흥적이고 자연스럽다. 게다가 받아 적은 사람의 유형에 따라서도 새롭게 느껴진다. 그러나 창립자의 모든 표현에서 그가 바오로적 성소를 키우고 성장하게 할 책임으로 영적 자녀들의 그룹과 교류하는 부성적 권위와 사랑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강의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 곧 수련자, 서원자, 장상들에게 전달한 것이다.
때로 창립자는 친히 자매를 맞아들이고 늘 용기를 주면서 바오로적 삶에서 요청되는 어려움과 즐거움을 가르치면서 바오로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하도록 한다. 특히 권위직에 있는 이들은 회원들이 특별한 성소를 이해하고 살도록 인도하는 책임을 창립자와 나누었다. 그는 때로 엄하고 단호하기까지 한 자세로 대화하는 아버지였다. 전면적으로 일관성을 요하며, 타협과 인간적인 공명심이라든가 그 어떠한 형태에서든 자유로운 분이다. 주저함이 없으며 수도회의 걸음이 전반적으로 분명하지 않을 때도 망설임이 없다. 그러한 엄격함이 특히 1941년도 강의에서 잘 드러난다. 그렇지만 그의 강의에는 대체로 교리적, 교육학적 언어가 잘 드러나는데 가르치는 사람의 마음에서 솟아나와 앞으로 나가도록 자극하며 새로운 시야를 열어 준다.

4. 영성의 샘: 살고 선포해야 할 그리스도 신비의 전체성

알베리오네 신부의 풍부한 강의를 검토한 결과, 살고 선포할 그리스도 신비의 전체성이 공의회 이전의 신학과 윤리주의를 무시하지 않는 수덕신학 위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강의의 기본 흐름이 그리스도의 인격이라는 핵심으로 수렴된다. “예수께서 우리 안에 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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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우리가 그분의 지체라고 한 성 바오로의 표현대로 우리의 영혼과 수도회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세울 것”이란 말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원대한 목표이며, 적극적으로 수도서원을 살게 하는 것으로, 교회 안에 존재하는 바오로적 정체성의 핵심인 것이다. “에이마르B. Eymard는 자신의 문장에 ‘성체적 삶’을 넣었고, 성 도미니코는 자신의 모토를 ‘진리’에, 성프란치스코는 ‘사랑’에 두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수도회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면적으로 재현하는 것입니다. 이 전체성 위에 바오로가족의 모든 가지들은 일치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전면적으로 재현’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26
길 진리 생명이신 그리스도의 신비는 사랑의 노선과 바오로적 축성봉헌생활과 사도적 삶의 상황에서 실현되는 영적 여정의 목표이며 샘이고 여정이다. 1941년 대피정에서 행한 “성삼께서 영혼 안에 충만히 사시는 데 성화가 있습니다…”라고 특별히 규명한 대로 그리스도 중심과 성삼위적 발전 단계는 뜻깊은 일이다.
가) “천상의 아버지는 ‘초심자’에게 참된 스승이 누구인가를 가리키십니다. 초심자는 천상의 아버지를 두려워하며 그분에게서 상을 받기를 기대합니다. 영혼은 길 진리 생명이신 스승을 향합니다. 복음 봉독과 예수님의 생애를 좋아하고 그분을 알게 하고 사랑하게 하려는 갈망을 지닙니다.”27
나) “‘진보자’는 책을 볼 때 그 안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발견하지 못하면 더는 맛을 느끼지 못합니다. […] 진보자는 예수께서 자신을 전부 소유하시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지성, 의지, 마음을 가지시기를 갈망합니다. 죄를 피하려는 것뿐 아니라 예수님의 삶을 살고자 합니다. 모든 것에서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변화의 무한한 작업이 이루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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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다) “최종적으로 일치 단계에 이른 완성자 단계가 있습니다. […]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시고 참된 영적 유기체를 형성하시도록 내맡깁니다.”28

5. 반복되는 역동성들

여러 장을 처음 볼 때는 당대의 문화를 모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힘과 생명력과 바오로적 성소의 비약, 끊임없이 걸어가라는 강한 초대가 넘친다. 이 강의들을 단순히 읽을 뿐만 아니라 묵상하고 또 다시 묵상할 용기를 갖고 본다면 내용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게 되며, 사도적 양성 관점에서 스승 예수님을 따라 복음화에 그리고 전면적으로 하느님께의 봉헌에 수렴되는 역동성이 발산됨을 깨닫게 된다.

사도적 역동성: 알베리오네 신부의 모든 강의에서 사도직은 영적 추진력처럼 모든 것을 수렴하는 농축된 도유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이 기간에 행한 묵상에서 직접적으로 사도직에 대해 많이 다루지는 않았다 해도 사도직에 관한 것이 늘 드러난다. “출판 사도직은 생명을 요구합니다.”29 출판 사도직은 하느님께서 성바오로딸들에게 베푸신 가장 귀한 선물이다. “사도직은 우리의 성화를 위해 큰 도움이 됩니다.” 사도직은 ‘교회의 직무’에 참여하는 것이며 “교회를 직접적으로 섬기는 것입니다.”30 성바오로딸들은 이해받지 못하더라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이 사도직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으로서 이에 대해 그분께 보고를 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도직을 수행하고 가르친 사람은 하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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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나라에서도 큰 사람이라고 불릴 것입니다.”31 사명을 수행하면서 우리 자신을 성화한다. 사도직에서 이루어지는 것들은 단순한 활동이 아님을, 곧 사도직에 관한 총체적인 안목을 지녀야 한다. 알베리오네 신부는 기도와 모범, 활동, 인쇄 사도직이라는 용어를 통해서 이 총체적인 면을 고유하게 표현한다. 다양한 차원을 동시에 살아야 하는 것이다.32

인간학적 역동성: 창립자는 인간학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지성, 의지, 마음, 육신, 전 인격을 하느님께 향하고 은총에 개방하는 것을 말하며 몇 가지를 강조하고 있다. 지성, 의지, 마음에 뿌리박은 죄와의 투쟁과 온 인격으로 은총에 저항하는 것에서33 지성, 의지, 마음을 정화해야 하며,34 지성, 의지, 마음으로 하느님과 완전한 일치에 이르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35 이 모든 것을 위해 내면의 진실성, 곧 ‘올바른 지향’을 지녀야 한다. “수도회 안에서 올바른 지향에 대해 매우 섬세하고 계속적으로 마음 써야 합니다.”36

종말론적 전망에서 본 영적 역동성: 아주 광범위한 부분이다. 알베리오네 신부는 바오로적 영성의 특징을 끊임없는 성장의 역동성과 영원한 삶, 천국의 관점으로 발전을 추구하면서 고전적 수덕 노선에 배치한다. 그리하여 다음 몇 가지 차원을 취한다.
  가) 죄와의 투쟁, 어떻게든 드러낸다.
  나) 내적 올바름에 기초를 두고,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와 성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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께 대한 신심에 기초를 둔 강력한 영성생활.
다) 하느님 말씀과 복음적 덕에 대한 사랑, 성바오로딸들이 지니게 되는 특징적 덕인 단순함, 온유함, 투명함에 대한 사랑.
라) 그리스도 중심 사상을 강조한 복음적 권고에 대한 긍정적 안목.37 정결의 삶은 포기보다 사랑의 선택으로 온 존재를 주님께 바치는 것이다. 이런 긍정적 시야를 “미래의 삶을 위한 관습, 규칙”38 으로 여기기를 바란 것이다.
마) 신학상의 열심한 생활. 믿음, 희망, 사랑에 관한 묵상이 자주 반복된다.

성사적 역동성: 이는 이 시기의 강의 중에 크게 부각되는 또 하나의 주제이다. 영적 유기체는 세례성사에 바탕을 두며, 이 안에서 거룩한 삶이 주어지고 성사들로써 계속 양육된다. 화해 혹은 고해성사를 강조하며, 미사성제와 이에 대한 특별한 경신례를 강조한다. 미사성제는 하느님 안에서 변화와 사도직의 원천으로 지속적인 학교가 된다.39

성삼위적 역동성: 성삼의 거처가 되게 하는 세례성사의 깊은 의미에서 출발하여 아버지의 자녀가 되는 것,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것, 성령으로 성화된다는 성삼위적 차원이 여러 묵상에서 강조된다.40 성부, 성자,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를 위해 끊임없이 활동하시어41 우리의 변화를 실현하신다. “성삼께서 영혼의 성화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시며, 성삼에게서 거룩한 삶을 얻게 됩니다.”42 성삼의 역동성을 특별히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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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의 길에서 강조한다. “영혼은 전면적으로 예수님의 마음 안으로 들어가고, 자신의 가장 내밀한 곳에 이르러 그곳에 성삼께서 거처하시게 됩니다. 세 위격과 지속적인 친밀한 만남을 이루고 자주 천상 아버지의 무릎에 머리를 기대는 감미로움을 맛보게 됩니다.”43

6. 독서를 위한 열쇠

5년이라는 세월에 이루어진 150개가 넘는 창립자의 강의를 맛보기 위해 독서를 위한 열쇠를 밝히는 일이 쉽지 않지만 세 가지 점을 제시하겠다.
가) 각 대피정 강의에서 수집한 독서 : 대피정 강의 앞에 원천과 보다 의미 있는 가르침들을 부각시키면서 간단하게 안내글을 삽입했다.
나) 이미 앞에서 명시한 대로 반복되는 역동성에 따라 전체적인 맥락으로 보는 영적 독서를 한다. 진보를 위해 자극하며 서로 연결되는 모든 역동성을 염두에 둘 것이다.
다) 주제별 혹은 주요점을 보는 독서 : 그리스도론, 교회론, 마리아론, 종말론, 사도적 노선 등 특별한 노선을 따르면서 독서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창립자에게 가까이 다가가 자녀다운 마음으로 경청하며,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말씀에는 우리가 늘 탐구해야 할 우리 정체성이라는 지극히 귀한 보물이 담겨 있다.

Ⅲ. 일러두기

1. 수집된 강의는 원본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했다. 내용의 원천을 직접 언급할 수 있도록 이미 인쇄된 대피정 강의들의 표제를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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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으며, 본문 가장자리에 쪽 번호를 매겼다. 원본에 대한 언급은 본 입문introduzione의 주석과 각 대피정 안내글에도 사용되었다. 여러 묵상들, 타자로 된 원고, 내부 회람지나 낱장으로 인쇄된 것들은 연도별로 아라비아 숫자를 사용하여 로마자로 번호를 매긴 대피정 강의들과 구별하였다.
2. 텍스트에 손을 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원본에 없었거나 관련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될 때 제목을 넣었다. 간소화를 위해 우선적으로 대문자를 통일하였다. 반복 형식을 적용하면서 강조하려는 이중 모음 (예를 들어 principii는 princìpi로 martirii는 martìri로 고쳤다.) 부족한 요소들, 예를 들어 번호가 누락되었을 경우에는 삽입하였고, 덧붙일 필요가 있을 경우에는 [ ] 대괄호를 넣어 밝혔다. 어떤 단어들은 통일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시대적 관례를 반영하기 위해서였다. 예를 들어 “obbedienza e ubbidienza(순명)”, “eucarestia e eucaristia(성체)”, “divozione e devozione(신심)” 등이다 라틴어 원문은 그대로 두고 각주로 처리하여 번역하였다.(번역본에서는 라틴어를 대부분 각주로 처리함-역주)
3. 인쇄 상의 오자나 확실하게 철자가 틀린 것은 수정하였고, 의심스러울 때는 각주를 달았다. 문법상의 불일치는, 예를 들어 성性, 수數가 일치하지 않는 것은 수정하였다. 의문이 느껴지는 약어를 해결했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호들, 예를 들어 너무 많은 콜론들을 고쳤다. 직접화법 문체일 때는 따옴표를 제거하였다.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 ”) 부호를 그대로 두었다. 인용구는 큰 따옴표(“ ”)를 사용하였다.
4. 대피정 입문에 번호가 없을 때는 0번을 매겨서 다른 강의들의 번호를 그대로 보존하도록 했다.
5. 정보를 주는 성경 각주, 상황, 사실, 인물, 원천 등에 관련된 역사적 각주에는 특별히 마음을 썼다.
6. 독서가 수월해지도록 성경적, 분석적 지시사항과 영명축일,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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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원천을 표시하는 연대적인 것 등에 각주를 달았다.
7. 작품 인용은 다음과 같이 표시했다. FSP + 연도 + 본 책의 쪽 번호.(예: FSP 40, 97) 연구하기 위해 원본을 언급해야 할 때는 입문에서 말하는 기준을 사용할 수 있다. 제목과 시리즈 번호(HM Ⅱ,) +(/) 와 책 번호+ 강의 + 판면 좌우 여백에 쓴 쪽 번호.(예: HM Ⅱ/1, Ⅹ, 25)
8. 성경 주석과 라틴어 텍스트의 이탈리아어 번역본은 CEI 「예루살렘 성경」을 사용하고, 때로 의미가 요청될 때 불가타본을 사용했다. 「준주성범」은 1992년 바오로딸 출판사에서 발행한 책을 사용하였다. 다른 원천에 대한 인용은 그 배경을 감안하여 가능한 대로 바오로딸 출판사 책을 사용하였다.

국제 영성 비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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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L. Rolfo, Don Alberione, 알바 1974년, p.309.

2 HM Ⅱ/1, ⅩⅩ . 121-122.

3 C. Martini, 「성바오로딸 수도회 역사FSP. Note per una storia」, 이창욱, pp.376-388 참조.

4 1994년 로마, A. Damino, Bibliografia di don Giacomo Alberione, 1982년 편지 참조. 바오로가족의 역사적 문서 출판 11쪽에서 마에스트라 이냐치아는 확실하게 말한다. “1) 프리모 마에스트로의 강의 기록은 내가 받아 적은 것이다. 그분의 말씀을 온전히 받아 적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그분은 천천히 말씀하셨기 때문에 거의 다 받아 적었다. 2) 나는 아무 노트에든 빨리 받아 적었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내용을 유지하면서 출판하기 위해 준비하였다. […] 여러 가지 책 제목은 내가 선택했다. 로마에서 인쇄한 것들은… 수집한 내용의 제목은 성 바오로가 티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편지 「이것을 묵상하라Haec Meditare」(그 당시에는 라틴어로 된 제목을 좋아했었다)에서 따온 것이다. 이 작업을 시작했을 때 몇 권은 프리모 마에스트로께서 검토하셨다. 이 작업에 그분이 항상 동반하셨다는 것을 덧붙이고 싶다.

5 수집한 것을 두 개의 시리즈로 출판하기로 계획했다. 첫 시리즈(HM Ⅰ)는 네 권으로 되어 있는데 1939년에 착수한 것으로 그 전해에 행한 월피정 강의에 관한 것이고, 1947-1949년도 것은 성바오로수도회 다른 사제들이 한 것이다. 두 번째 시리즈(HM Ⅱ)는 1941년에 시작하였는데 1941년부터 1948년까지 창립자께서 행하신 대피정 강의를 모은 것으로, 여덟 권으로 되어 있다. 네 번째 것은 1932년에 행한 두 번의 대피정 강의를 모은 것이다.

6 C. Borgogno, La comunità paolina nelle case di Alba e Roma, 국제 영성 비서국, 로마 1996년, p.59.

7 마에스트라 이냐치아의 기록은 시대적으로 더 가깝기 때문에 수도회의 사건들을 아는 데 도움을 준다. “3월에 철학과 신학 과정의 학교를 중단해야 했다. […] 5월 20일경 경보가 새로 울리고 공립학교를 닫으라는 지시에 앞서 우리도 학교를 닫기로 결정하였다. 7월 10일, 미군이 시칠리아에 상륙하였다. 7월 19일, 로마가 폭격을 당하지 않기를 희망했는데 실망하였다. […] 11시부터 14시까지 베라노Verano, 티브르티노Tiburtino 지역에 폭탄이 떨어져 형용키 어려운 재앙과 특히 상당한 희생자들이 생겼다.”(이냐치아 발라, Un po’ di cronaca del tempo di guerra, 노트 1, p.22)

8 아냐치아 발라, Un po’ di cronaca del tempo di guerra, 노트 2.

9 이 고통에 대한 것은 알베리오네 신부님 자신이 쓴 「당신 은총의 풍성한 부」에 기록한 귀중한 문서로 남아 있다. “1914-1944년에 이르기까지 근본적인 문제 때문에 언제나 한 가지 내적 고민이 있었다. 이것은 네 개의 바오로가족 수도회 사이에 정신의 일치와 함께 관리와 경영의 독립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고통이 따르는 갖가지 시험과 동요의 기간이 제법 오래 지속되었다.”(AD 131-132)

10 참조: HM Ⅱ/1-2.

12 교황청 순시자의 보고서 참조. C. 마르띠니, 「성바오로딸수도회 역사」, 이창욱, p.375 인용.

13 1939년 12월 14일, 알베리오네 신부가 빈첸소 라 푸마 추기경에게 보낸 편지. C. 마르띠니, 「성바오로딸수도회 역사」, 이창욱, 375쪽에서 인용.

14 CVV 86 참조.

15 마에스트라 테클라는 책임자가 분명하지 않은 채 구성된 세 그룹의 일치와 통솔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창립자에게 보고한 적이 있다.(LMT 53, 54 참조)

16 강의에서는 이 노선이 매우 엄격하게 보이지만 공적 회람지에는 훨씬 부드럽게 나타난다. 1941년 6월에 창립자는 여자 수도회와 남자 수도회의 관계에 대해 성바오로수도회에 글을 쓰면서 다음과 같은 방식의 실천을 언급한다. “1) 두 수도회는 운영과 관리에서 항상 실제적으로 정확히 분리할 것이다. 2) 두 수도회는 정신과 사도직의 방법에서 일치한다. 그러나 회원들에 관해서는 수도회의 책임을 맡은 사람들에 의해 실행된다. 두 수도회 회원들 사이에는 애덕으로 서로 존중하며, 정해진 규정 실행에서는 유효한 분리와 충실함이 있을 뿐이다.”(CISP, p.115 참조)

17 VPC 70 참조.

18 EM, 0, Ⅰ, Ⅱ, Ⅲ 참조.

19 프란치스코 키에사, La chiave della vita, Alba 1927, Introduzione all’ascetica, Alba 1929. 알베리오네 신부는 이 두 가지 책에서 자유롭게 이끌어내어 자신의 것으로 삼은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 HM Ⅱ/2, Ⅴ, 41.

21 내부 회람지, 1939년 8월호 p.1.

22 G. B. Chautard, L’anima di ogni apostolato, S. Sirito PSSP 이탈리아어본 출판, Roma 1941. 1941년 창립자는 성바오로딸들에게 “며칠 안으로 출간될 신간서적「모든 사도직의 혼L’anima di ogni apostolato」이라는 책을 영적 독서로 읽으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CVV 97)라고 쓴다.

23 「이것을 묵상하라」 Ⅱ/5, 92. 103 등. 알베리오네 신부는 우리 안에 예수님의 현존을 떠올리게 하는 보드농의 글을 특별히 높이 평가한다. 그는 조반니나 보파(M. Giovannina Boffa)에게 그의 저서를 보고 스승 예수에 관해 쓰도록 책임을 맡겼다. 「고해성사의 점진적 실천Pratica progressiva della confessione」 2권 p.331에서 영감을 받아 ‘우리 안에 살아계시는 예수께 드리는 신심’(1945년 11월 26일 편지 참조)이란 제목으로 한 장(章)을 삽입하도록 제안한다.

24 알베리오네 신부는 바오로적 사도직의 차원도 성화와 비견되어야 한다고 보는데 이는 교부들과 박사들에게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그들은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 예로니모, 성 아우구스티노, 성 대 그레고리오, 기아라발레의 성 베르나르도, 성 대 알베르토, 성 토마스 아퀴나스, 성 보나벤뚜라,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 알폰소 데 리구오리 등이다. 알베리오네 신부가 원한 알바 성 바오로 성당의 성 바오로 상 둘레에 있는 성상과 성화들, 로마 사도의 모후 성전의 성상과 성화들이 그의 사상을 대변해 준다.

25 VN 1945년 10월호 p.2.

26 1941년 7월 10일의 월피정.

27 대피정(EM), Ⅸ, 82.

28 EM, ⅩⅥ, 142.

29 참조: HM Ⅱ/1, ⅩⅩ , 123.

30 참조: HM Ⅱ/1, ⅩⅢ , 79.

31 FSP 40, 6.

32 참조: HM Ⅱ/2, ⅩⅠ, 66.

33 참조: HM Ⅱ/1, Ⅴ, 33.

34 참조: HM Ⅱ/1, Ⅶ, 46-47.

35 참조: HM Ⅱ/1, ⅩⅣ 84; HM Ⅱ/2, V, 33.

36 참조: HM Ⅱ/1, Ⅶ, 44.

37 참조: HM Ⅱ/2, 101-119.

38 참조: HM Ⅱ/2, 109 ; HM Ⅱ/1, ⅩⅡ, 74.

39 HM Ⅱ/1, 79-83 ; Ⅱ/3, 88이하 ; Ⅱ/7, 32-33.

40 EM, Ⅳ, 42.

41 참조: HM Ⅱ/2, Ⅳ, 26.

42 EM, Ⅳ, 42.

43 EM, ⅩⅩⅡ, 1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