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소에는 유리한 점과 부자유스러운 점들이 있습니다. 유리한 점이란 그곳에 사는 모든 사람을 볼 수 있다는 것이고, 한편 모든 서원자가 양성중인 사람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부자유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수도생활에 일가견이 있는 모든 이들은 이러한 점이 부자유스럽다는 것을 말하면서 유념하라고 당부합니다. 사실 이 점에 관해 생각해 봐야 합니다. 어린 자매는 모방을 잘 하는데 가르침보다 모범을 통해서 더 많이 배우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건설적인 사람으로 규칙 준수를 잘 해야 합니다.
자매들이 청원소와 수련소에서 살 때는 규칙을 준수하며 사는 것이 쉽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양성소에서 먼저 수도서원 준수의 시험기간을 갖고, 서원한 후에는 실제로 잘 살아야 하는 임무를 받았기에 더 잘 지켜야 합니다.
서원한 것을 충실하게 지켜야 합니다. 특히 순명서원을 잘 살아야 합니다. 수도생활은 완덕의 삶이므로 더욱 많은 희생을 바치는 삶이기 때문에 (작은 허락을 청하고, 꼼꼼하게 규칙을 지키는 등) 희생할 일이 생기더라도 침통해 하지 말고 모든 면에서 기쁘게 살아야 합니다.
성당에서나 사도직 터에서 시간을 잘 이용하며 진보함으로써 좋은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휴식시간과 좋은 대화, 건설적인 삶으로 좋은 표양을
보일 것입니다. 애덕을 실천하고 서로 간에 참아주고 사랑하며, 식탁에서나 그 어디에서든 좋은 표양을 보여야 합니다.
좋은 모범을 보이는 것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언제 어디서나 해야 할 설교와 같습니다.
자주 자문합시다. “내가 규칙을 지키듯이 다른 사람이 지키고, 내가 일하듯이 다른 이들이 일한다면 공동체가 잘 되어가는 것일까? 공동체에 열정이 있는가? 공동체에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마음이 느슨해져서 얼마 지나면 수도자라고 말할 수는 없고 기숙사에서 공동생활을 하는 착한 여인들처럼 되어 자기 취향과 독특함을 지니고 살게 됩니다. 우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수도자입니다.
지금은 눈에 띄지 않는 것이 많지만 하느님의 심판 때에는 지금 우리가 판단하는 것과는 매우 다른 것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자주 죽음에 이르러서야 후회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옳았다고 믿었는데 이제 다시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아야겠다.”고 죽음의 순간에 생각한다면 하느님의 심판 때에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발견하지 못하는 것을 그때에는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에 대해 충분히 주의하지 않습니다. 그때 가서 마음속의 모든 느낌과 머릿속의 모든 생각, 판단, 경솔하게 의심하는 것, 너무나 인간적인 구실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마음 안에 얼마나 많은 성향이 자리하는지 모릅니다!) 이것들은 덕과는 반대되는 것이기에 자주 다른 사람에게 숨기고 싶어 합니다. 지성을 성화하고 싶다면 언제나 거룩하고 올바르게 생각해야 합니다.
지성뿐 아니라 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심판 때에 주님은 헛된 원의, 질투, 교만과 애덕, 인내, 순명, 온유함 등을 거스르는 모든 감정을 전부 드러내 보이실 것입니다. 때로는 예수님과 함께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데 마음이 온전히 예수님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영성체
로 예수님을 모시지만, 마음에서 자라나는 나쁜 감정들로 인해 슬픈 상태로 잠자리에 들게 됩니다. 저는 지금 6계명을 거스르는 점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 생각에 여러분이 이 지점까지 이르지는 않았지만 어떤 덕을 거스르고 주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행하게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서원한 것을 잘 지키고 진보하고 더욱 잘 준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신학교와 전 세계의 가톨릭 교회법에서는 웰메흐르쉬1에 대해 많이 이야기합니다. 이분은 교회법의 전문가이십니다. 그분은 78세가 되셨어도 편지(강의나 직무상 편지)를 쓸 때 원장님께 열어 보였습니다. 그는 어떤 수련자보다도 규율을 잘 지키고 철저하였습니다.
어린 자매들을 책망하거나 설교하기보다 좋은 표양으로 교육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요구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는 그들에게 기대하는 대로 하고 있습니까? 서원 후 위기를 겪게 되고 종신서원 후에도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이런 유혹을 이겨내야 합니다. 마음이 느슨해지는 경향을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수도서원은 서원허락을 받고 그날부터 지켜야 할 사항이지만, 계속 진보를 해야 하므로 생의 마지막 날에 이르러서는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잘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많은 말로 가르칠 것이 아니라 행실과 모범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어린 자매들은 좋은 모범을 보게 되기 때문에 훈화나 경고, 교정이 많이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에게 말씀하시기 전에 당신의 모범으로 가르치셨습니다.2
아주 이상한 생각을 지닌 사람이 있습니다. 서원한 후에는 더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정말 이상한 유혹이어서 잘 깨
어 있어야 합니다. 서원한 후에는 특히 서원한 바를 잘 지켜야 합니다. 분명한 일입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필요한 많은 은총을 주시어 당신의 거룩한 자비를 베푸시도록 기도합시다.
여러분에게 큰 상이 기다리고 있음을 항상 기억하십시오. 그러나 상을 받는 것은 수도생활을 시작했다는 데 있지 않고 충실하게 의무를 지켰는가에 달려있습니다.
* 16쪽으로 게재된 강의. 원제목은 프리모 마에스트로가 바올리네에게 하신 훈화(Riservato alle Paoline. Conferenza del Sig. Primo Maestro)이다. 언급한 날짜는 2월 16일이다. 누구의 글씨체인지 알 수 없지만 ‘1941’년이라고 쓰여 있다. 그 당시 칭찬교령을 허락하기 위한 목적으로 안젤리코 알렉산드리아 교황청 순시자가 방문중이었기 때문에 교회법에 따른 수도회 내부를 조정할 필요성에서 그렇게 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강의가 1940년에 로마에 대피정(2월 16-24일) 하러 온 서원자들에게도 해당된다는 가정도 할 수 있다. 이때 첫서원을 준비하기 위해 수련자들도 참석했다는 것이다.(내부 회람지 1940년 1월호 4쪽 참조) 두 번째 가정이 더 타당하다.
1 P. Arturo M. Teodoro Wermehersch S.J.(1858-1936).
2 사도 1,1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