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알베리오네 신부와 데레사 메를로의 만남
데레사 메를로(테클라는 수도서원명이다)는 1894년 2월 20일 알바 (쿠네오 주의) 카스타니토Castagnito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1915년까지 그곳 자연 속에서 매우 고요하고 평화로운 농가에서 살았다. 알베리오네 신부와의 만남은 1961년 그녀의 전기에서 이야기하듯이 1915년 6월 27일, 알바 성 다미아노Damiano 성당의 제의방에서 이루어졌다. 그 만남은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약속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곧 그녀가 주님께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고자 길을 찾으려는 내밀한 갈망의 이끌림과 일 년 전에 창립된 남자 수도회 곁에 여자 수도회를 창립하기 위해, 성령께서 지목하는 사람을 분별해야 한다는 알베리오네 신부의 내적인 시급성의 재촉으로 이루어진 것이다.(참조: 당신 은총의 풍성한 부 225; 마에스트라 테클라의 노트 2 )
알베리오네 신부가 그 만남에서 데레사에게 제시했던 전망은 하느님의 새로움으로 가득한 미래를 ‘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실현은 군복을 꿰매는 여성 작업장에서 시작되었다. 여러 해가 지난 후, 마에스트라 테클라는 그때의 기억을 다음과 같이 단순하게 표현하였다. “그분이 나에게 지금은 작업장에서 일하지만, 후에는 출판을 위한 수도회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했다. 작업장엔 젊은 아가씨가 하나 있었고, 후에 다른 아가씨들이 오기로 되어 있었는데, 내가 원했다면 그들을 만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나와 동행했던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셨는데, 그후 어머니는 나를 15일 간 그곳에 두기로 하셨다.”(마에스트라 테클라의 노트 2,2 ) 데레사는 “믿었다”. 그리고 “그 15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라고 계속 쓰고 있다.
1915년에서 1918년까지 데레사는 알바에서 안젤라 보피Angela Boffi와 클레리아 칼리아노Clelia Calliano와 함께 살면서 작업장에서 일하다가 점차적으로 작은 서원으로, 교리문답서 제작으로, 기본적인 인쇄기 작동법을 배우는 일로 옮겨갔다.
1918년 12월 18일, 안젤라와 데레사는 ― 클레리아는 이미 10월에 세상을 떠났다 ― 3명의 어린 소녀들과 함께 교구 소식지 <라 발수사La Valsusa> 인쇄를 위해 수사Susa로 옮겼다. 그들은 동시에 어린 소녀들에게 중등과정을 가르쳐야 했다.
1922년 7월 22일, 알바에서 처음으로 9명이 수도서원을 발함으로써 성바오로딸수도회가 이루어졌다. 그 기회에 알베리오네 신부는 데레사를 새로 태어나는 수도회의 원장으로 임명하였는데, 데레사는 서원하면서 성바오로의 첫 여성 제자를 기억시키는 마에스트라 테클라라는 이름을 받았다. 교구 승인으로(1929년 3월 15일) 마에스트라 테클라는 “프리마 마에스트라”로 불리게 되었다.
데레사는 처음부터 모두에게 자연스런 준거점이 되었다가 1922년부터 마에스트라 테클라로 불리면서 “어머니”가 되었다. 그녀는 “단순성, 초자연성, 민첩성”(당신 은총의 풍성한 부 231) 이라는 고유한 색깔로 알베리오네적인 카리스마를 수도회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받아들이고 살아가도록 인도했다.
이러한 능동적이고 개인적인 참여로써 그녀를 성바오로딸수도회의 공동창립자로 여긴다.
II. 서신
1928년 이전에는 알베리오네 신부와 마에스트라 테클라 사이에 편지가 없었는데, 사실 그때까지는 서신왕래가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안젤라 보피Angela Boffi가 “지도자”의 역할을 맡았던 수사Susa에서의 시기를 제외한 이후 성바오로딸들의 공동체는 알바에서 현재의 성바오로 광장에 자리한 성바오로수도회에 인접한 건물에 살았다. 그러므로 알베리오네 신부를 직접 만났으며, 그분이 매주 공동체 평의회에 참석했으며 (참조: 회의록, 1924-1929년), 또 자주 묵상을 해주었다.
그러다가 분원들을 시작하는 수녀들을 동반하고 지원하기 위해, 마에스트라 테클라와 알베리오네 신부가 종종 알바를 떠나야 했던 시기인 1928년에 서신이 시작되었다.
서신은 발생하는 구체적인 필요들, 문제들, 열린 길들에 대한 직접적인 소통과 답변을 담고 있으며, 1963년까지 총 115통에 이른다. 그 중에는 아주 짧고 단순한 축하 메시지도 있다.
이 책은 단방향 서한집이다. 알베리오네 신부에게서 받은 편지만 있기 때문인데, 마에스트라 테클라는 당신의 책상 서랍에 이 편지들을 잘 보관해 두었다. 그러나 알베리오네 신부는 마에스트라 테클라의 편지들을 그렇게 보관해두지 않았으므로 단 3통만이 남아 있다. 짧은 메모(편지 53)와 알베리오네 신부에게서 받은 편지의 빈공간에 답을 적어서 다시 보낸 것(편지 86), 마에스트라 테클라가 영적 작업에 대한 결실을 적은 것에 알베리오네 신부가 당신의 승인과 지침을 첨부하여 되돌려 보낸 쪽지(편지 87)이다.
편지들은 타자기로 친 4통의 편지를 빼고는 손으로 쓴 것인데, 타자기로 친 편지 중 3통은 규칙과 훈육에 관한 것이고(편지 63, 85, 93) 다른 하나는 로마교구의 시노드와 공의회를 위한 기도 지향에 대한(편지 99) 것이다.
몇 통의 편지는 날짜가 없는데 여러 단서를 이용해서 시기에 따라 분류할 수 있었지만, 분명한 날짜 표시는 어려웠다. 그런 경우에는 연도만 표시했다.
1. 내용
서신은 문제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으나 무엇보다도 개인적 차원에서 식별하고 실현해야 할 하느님의 계획과 수도회의 계획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서신 전체의 주된 목적은 성바오로딸수도회를 위한 것으로, “스승 예수님께서 심으시고 키우시는 이 화초가 잘 자라고 피어나게 하기” 위해서다.(편지 26)
서신들은 알베리오네 신부가 영성, 사도직, 면학, 청빈이라는 네 분야가 유기적이고 조화롭게 발전해가도록, 수도회를 전체적으로만 아니라 세부적으로도 동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두 번째 목적은 “하느님의 뜻”을 매일 실현해 가는 가운데 하느님과의 깊은 일치를 이루도록 부르심 받은 마에스트라 테클라에 대한 영적 지도다.
문장의 어조은 근엄하지만 인간적인 따뜻함도 없지 않다. 알베리오네 신부는 프리마 마에스트라 개인과(편지 2, 11, 12, 18, 22, 70, 110) 딸들의 건강, 그들의 노고에(편지 7, 21, 24, 32) 대해 세심한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늘 허약한 자신의 건강에 대해서도 말한다.(편지 3, 25, 60, 67) 하지만 이런 요소들은 부차적이다. 오히려 인간적인 모든 동기에서(편지 19, 25, 59) 자유로운 결 정을 내리기 위해 죽음을 염두에 두면서까지(편지 19, 25 ,59) 회심, 빛, 은총의 필요와 주님과 그분 뜻에 대한 오롯한 탐구가 강하게 드러난다. 여기에서 이냐시오의 영향이 드러난다.(참조: 「영신수련」, 86)
2. 유형
알베리오네 신부는 양식화된 서신의 형태를 취하면서 분명함과 간결함도 보여준다. 서신의 도입부는 간결하여, 곧바로 목적을 드러낸다. 마지막 인사는 오직 기도 요청과 축복으로 만 이루어져 있다.
“영적 결심”에 대한 답변 역시 간결하며, 종종 다른 소식들 사이에 있는 것을 보게 되지만, 거기에 깃든 영적 깊이는 서술을 압도하며, 문학적인 표현에는 전혀 마음을 쓰지 않는다.
3. 가치와 구조
우리 견해로는 이 서신이 성바오로딸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비록 주제들이 아주 간결하게 다루어졌다고 해도 그것이 전 부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사실 서신과 회람들, 내부 회람지의 짧은 기사들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손으로 쓴 몇 안 되는 편지중 몇 통을 분석해 보면, “성바오로(의) 착실한 딸들”(전치사 “di ~<의>”를 계속 생략한 것이 흥미롭다.)이라는 특별한 제목이 없는 본문들은 마에스트라 테클라에게 보낸 지침들이다.
마에스트라 테클라는 이 편지들을 다양하게 활용하였는데, 회람지에 실릴 자신의 편지에 삽입하거나 내부 회람지에게 재하였다. 다른 이들은 그 편지들을 매우 개인적인 것들로 생각하였는데, 수도회에서 그의 역할이나 그녀의 영적 삶과 관련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던 편지들도 들어 있다.
알베리오네 신부와 마에스트라 테클라의 회람지와 연관되어 있는 이 서한집은 그 전체가 더욱더 빛을 발하며, 성바오로딸들에게 수도회 역사 안에서 하느님의 활동을 관상할 수 있도록 하고, 하느님의 모든 뜻을 살고 실현하기 위한 창립자 공동창립자의 고된 식별이 담겨 있는 소중한 영적 유산을 이룬다.
서신을 폭넓게 숙고해볼 때 적어도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시 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 탐색의 시기: 수도회 창립 시작부터 회칙의 최종 승인까지 (1953.3.15.) 확장된다. 서신의 본문을 따라가보면 이 시기는 가장 풍요로우면서도 고통스러운 시기로 드러난다. 시기에 따라 주요 요소가 다르게 나타나는 92통의 편지가 그것을 드러낸다.
― 1928–1933년은 분원 진출시기이다. 알바의 작은 교구 차원을 넘어 교회 현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시기요, 하느님의 빛을 탐색하는 시기로, 창립자의 한달 영신수련 피정 의 강력한 순간이 있었다.(편지 17, 20, 23)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기 위한 공동체 방문, 기도, 경청, 다양한 상황과 성바오로의 표양(편지 15)과 “계약”(편지 11)의 정신에 따른 삶의 심화를 고려하며 매일의 기도, 월피정, 특히 영신수련 피정을 이 시기에 특별히 중요시하며 강화한다.(편지 24,29)
― 1934–1936년은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 가난을 생생하게 체험한 시기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위해 일하기 때문에”(편지 43) 주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인식도 자라난다. 한편으로는 회칙에 따라(편지 45) 신중하고 정확하게 관리하며 일하라고 요청한다.
― 1937–1942년은 수도회의 정체성에 대한 식별이 이루어 지는 시기이다. 교의적·전례적·사목적이라는 세 차원의 사도적 목적을 지닌 단일한 수도회인가, 아니면 세 개의 수도회 인가?(편지 53,54) 이 식별을 통해 성바오로딸들의 사도적 목적이 더욱더 출판 사도직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편지 63)
― 1940–1948년은 전쟁과 전쟁 후의 시기이다. 서신에는 마에스트라 테클라와 수녀들의 건강(편지 67, 74), 양성(편지 70), 저술과 편집 시도와 함께 사도직 재개(편지 67, 68)를 위한 염려가보인다. 또한 전쟁 중에 당신의 자녀들을 지켜 주신 사도들의 어머니이시며 여왕이신 마리아께 대한 감사와 그분께 아름다운 성전을 세워드려야 할 필요도 표현한다.(편지 67,70,75)
2) 강화의 시기. 1950년 이후. 특별히 1953년 이후의 서신은 다른 색조를 띈다. 더 간결해지고 더 뜸해진다. 테클라 성녀 축일에 대한 감사와 특별한 축하 인사 카드들이다. 이는 마에스트라 테클라의 영적 삶을 위한 본질적인 지침들이며, 지나온 길의 선함을 확증한다. “수도회는 모두 괜찮습니다. 주님이 보시기에도 좋을 것입니다. 프리마 마에스트라께서 수도회를 사랑과 기도, 모범으로 잘 이끌어 주셨기 때문입니다.”(편지 106 ) 서신에서 큰 안도감, 따뜻한 부성애, 교회 권위로 확증된 하느님 뜻 안에 있음을 느끼는 사람의 평화가 드러난다.(편지 92)
지침은 여전히 저술과 편집, 선교, 양성, 통솔에 관한이나, 창립자는 수도회 회원들의 영적 깊이에 대해 더 강조한다. 특별히 “천국”에 대한 호소가 강조되어 있다. 곧 완전한 일치가 이루어지고, 그 일치가 영원한”(편지 99 ) 천국을(편지 98,101,113) 향해 걸어가라는 것이다.
III. 주요 골자
이러한 커뮤니케니션을 도식화하기 위해 주요 골자를 찾는 것이 어쩌면 주제넘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각각의 표현을 통찰하고 검토해보면 매우 의미있는 것들이 나타난다.
1. 창립자
창립자들은 “성령의 영감에 의해 움직이는” 이들이다.( 「완전한 사랑 1」) 알베리오네 신부는, 천상 스승께서 “당신이 심으신 수도회”(편지 26)를 인도하시고, “성바오로딸들과 출판 사도직에 대한 모든 계획”(편지 16)을 완성으로 이끄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성령의 은사를 받은 알베리오네 신부는 수도회성에 청원서를 제출하는 과정에서 성바오로딸수도회와 스승예수의제자수녀회가 “참으로 명백하게 두 개의 가족으로 분리되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음”(편지 9,9.1)에도 불구하고 단일한 수도회로 세워지게 되는, 교구 승인의 순간에 경험한 깊은 고통을 드러낸다. 선한목자예수수녀회가 창립될 당시에도 똑같은 식별의 고통을 겪는다.(편지 53, 54) 그때 그는 “은사와 십자가”(「상호관계」 12) 사이에 존재하는 긴밀한 “관계의 역사”를 살아가게 되는데, 이로부터 성바오로딸수도회, 스승예수의제자수녀회, 선한목자예수수녀회의 고유한 성소의 정통성이 아주 분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1932년, 한층 더 명확해진 자치권을 통한 확고한 발전 가능 성을 성바오로딸들에게 보장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알베리오네 신부는 자신의 영적 기쁨을 전한다.(편지 25,26 )
이와 같이 서한집은 알베리오네가 수도회의 아버지로서, 하느님 뜻의 중재자로서의 자신의 역할을 잘 알고 있었음을 보여준다.(편지 22) 곧 성소의 은총이 자라나도록 자신을 선물로 바치는 부성성: “우리는 그들에게 더 많은, 그리고 더 나은 기도, 표양, 조언으로 도움을 줍시다.”(편지 11) 하느님 계획의 전달과 온순함을 요구하는 중재: 사실 그분에게 순명함으로써 “성소를 살아가고, 그 성소 안에서 교회에 봉사하는 가장 큰 이점”(편지 59)을 지닌다.
그는 점진적으로 성바오로딸들을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인도한다. 곧 개인(편지 22)과 단체(편지 93, 95) 선교에로, 서원에 대한 올바른 의미에로(편지 36), 그리고 저술가 수녀들을 위한 집을 구상하면서 저술과 편집에 대한 올바른 의미에로(편지 67, 68), 풍요로운 결실을 맺도록 사도직을 위한 신학적 면학에로 (편지 29) 인도한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마음과 자신의 의지를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바꾸도록”(편지 10) 삶을 확고히 해 주는(편지 10) 그리스도의 신비를 살아가라고 역설한다.
이를 위해 성바오로딸들은 “천상 스승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심오한 해석자이며 그분을 가장 충실히 닮은, 가장 성실한 사도”(편지 98)인 성 바오로의 마음(편지 15 )을 늘 지녀야 한다. 성 바오로는 우리가 “올바른 길에 있도록 해 주시는 분, 곧 믿음, 희망, 사랑이라는 위대한 길에 있도록 해 주시는”(편지 89) 아버지(편지 57)이시다.
2. 공동창립자
서신은 알베리오네 신부가 수녀들에게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수도회의 지침을 마에스트라 테클라의 중재를 통해 전달한다.(편지 17, 20, 25, 29, 45, 49 등등) 프리마 마에스트라는 받은 지침을 풍요로운 선물이도록 시행하고, 또는 하느님의 뜻이 아직 잘 드러나지 않을 때에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더 깊게 식별하여 전달한다.(편지 53.1) 서신 전체에서 보면, 알베리오네 신부는 마에스트라 테클라가 성바오로딸들에 대한 하느님 계획에 함께하는 공동 참여와 공동 책임에 주의를 기울인다. 그는 그녀에게 모든 걸음에 대해 알려주고, 그녀가 나서기를 당부하며(편지 22, 42, 57 등등), 문제들과 창안들에 대한 그녀의 의견을 기다리며 (편지 4, 6, 7 등 등), 수녀들이 “선을 행하는 데 해가 되지 않도록”(편지 3) 사도직의 규칙을 주도록 위임하며, 다른 여자 수도회와 올바른 관계를 맺도록 책임을 맡긴다.(편지 9, 53, 54)
마지막 서신에서는 알베리오네 신부가 거의 사라지고, 딸들 앞에 “어머니”를 내세우며 그 뒤를 따르라고 한다. “성바오로딸들이 프리마 마에스트라에게 온순했기에 사도직이 이만큼 빨리 발전하고 성공을 거둔 것입니다.”(편지 115)
성바오로딸들에 대한 하느님 계획을 실현하기 위한 알베리오네 신부와 프리마 마에스트라 간의 긴밀한 협업은 영적 지도 관계로 변화된다. 이미 언급했듯이 서한집은 이러한 차원을 반영한다.
마에스트라 테클라에게 영적 목표 탐구는 그녀의 근본 선택 실현에 관한 것으로, 1933년 “구원의 희년”이 시작될 때 다음과 같이 장엄하게 재차 표현한다.
“나는 성인이 되고 싶습니다.
나는 위대한 성인이 되고 싶습니다.
나는 빨리 성인이 되고 싶습니다.
나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과 함께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성찰노트 2)
그녀는 알베리오네 신부가 자신에게 하느님의 뜻을 전해 주는 분이라는 “영적” 확신을 지닌다. 이 때문에 그녀의 개방성과 온순함은 전면적이다.(편지 86.1, 87.2) 그러나 서한집의 내용은 한계가 있으므로 이러한 측면은 마에스트라 테클라 개인의 성찰 노트와 함께 비추어 보아야 한다. 그녀는 거의 매주 “영적 아버지”에게 받은 지침들을 ―다른 것과 함께― 기록해 놓았다.
이 지침들은, 매번 날짜와 지도자의 이니셜 “P.M.(프리모 마에스트로)”을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 정성스럽게 기록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서한집에 이 기록들을 모두 실을 수는 없었다. 마에스트라 테클라는 개인적인 만남이 가능하지 않을 때, 자신의 영적 계획을 적어서 알베리오네 신부에게 보냈고, 그는 거기에 자신의 확인과 지시를 덧붙였다. 마에스트라 테클라는 매우 소중히 여긴 그 몇 마디 말을 잘라서 성찰노트에 적은 영적 계획 옆에 붙이곤 하였다.
이런 조각들을 모아보면 모자이크가 완성된다. 알베리오네 신부는 하느님의 활동을 지극히 존중하는 가운데, 마에스트라 테클라의 영적 여정을 더욱더 “하느님과의 일치”(편지 58)에로 이끄시는 성령의 촉구에 응답하도록 동반한다. “겸손하도록 주의를 기울일 것, 곧 주님 안에서 어린이처럼 바랄 것.”(성찰노트 2)
겸손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성성에 대한 이 큰 열망에 따라 마에스트라 테클라는 “하느님의 자비에 완전히 자신을 내어 맡기기”(편지 20) 위해 점차적으로 자신에 대한 모든 확신을 벗어버리면서 자신의 길을 간다. 다음은 명시된 성장의 수단이다. 의식 성찰(편지 28), “모든 것을 지고의 사랑으로” 임하는 “조용하면서도 활동적인 사랑”(편지 30).
1941년부터 하느님과의 일치는 “단순함”과 “수동적”인 걸음에서 더욱 깊어진다.(편지 58) 마에스트라 테클라는 완전히 내어맡기는 가운데 머물면서, 깊은 어둠과 밤을 체험한다. 알베리오네 신부는 그리스도의 신비에로 나아가는 가운데 점점 더 성화를 향해 성장하도록 동반한다. 곧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산다는 것”(편지 75)과 충만한 믿음으로 예수님의 인도를 받는 것이다.(편지 78) “영혼 안에서 말씀하시고, 위로하시고 성회시키시는 그분의 지속적인 현존”(편지 75)을 맛보는 것, 예수님께서 우리를 당신이 좋아하는 모습으로 만드시도록 “그분의 섭리에 맡기는 것, … 특히 하느님의 참된 사랑 안에 맡기는 것”(편지 86)이다. “그분이 만족스러워하시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편지 101) “우리가 그분 안에 있고, 그분이 우리 안에 있게 될 것입니다.”(편지 110) “예수님의 사랑의 증거는 그분의 십자가”(편지 101)이므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 앞에 아무것도 아닌 우리 자신”(편지 107)을 봉헌하고, “빛 속이나 어두운 터널 속에서나(편지 101), 어둠 속에서도 평온히 지낼 수 있는 것(편지 106)”이다.
1950년부터 마에스트라 테클라는 주님께 완전히 내어 맡기는 것 외에 다른 영적 계획은 가지지 않게 된다. 이런 내어 맡김은 1961년, 성바오로딸 모두가 성녀가 되도록,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께 자신의 생명을 바치는 것으로 드러날 것이다. “어머니이자 중재자”로서의 역할과 위대한 성덕에 대한 열망은 이렇듯 자신을 선물로 내어 주는 가운데 천상 스승을 닮아가는 것에서, 삼위일체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는 것에서 절정에 달한다.
IV. 소견
서신들은 연대순으로 번호를 매기면서 모아졌다. 수신인은 “좋으신 마에스트라 테클라”, “프리마 마에스트라”, “착실한 성바오로딸” 등등 다양한 표현으로 되어 있다.
그 가운데 33통의 편지에는 아무런 표시도 없다. 이 때문에 그것의 진위여부를 정하는 것이 몹시 어려웠는데, 서한집의 끝에 배치된 마지막 편지만 제외하면 수취인이 모두 마에스트라 테클라로 되어 있다. 다만 마지막 편지는 마에스트라 테클라와 수도회의 연결을 보여주며 딸들이 어머니의 발자취를 따라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보낸 사람에 관한 표현도 다양하게 적혀 있는데 가장 많은 것이 “마에스트로 알베리오네 드림”이다.
거의 모든 서신들이 약어로 시작된다.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이 JMJP(예수, 마리아, 요셉, 바오로 <82회>)이다. 그 가운데 GDPH(하느님께 영광 사람들에게 평화 <2회>)는 후에 바오로적 모토가 될 것이다.
사용된 편지지도 다양하다. 편지지 윗부분에 주소와 이름이 인쇄된(레테헤드) 것과 엽서와 그림, 쪽지 등이다.
편집자의 개입은 최소화하였다. 해독이 어려운 경우 짧은 소개말, 생략된 구두점 첨가, (약어 끝에 있는) 쓸모없는 구두점 삭제, 긍정적이지 않다고 여겨지는 이름의 생략, 보낸 사람이 지운 두 개의 문장 복구, 구문 수정 들이다. 불분명한 단어의 발음은 구별되는 부호로 표시했다.
손으로 쓴 것에서는 매번 마침표 뒤에 대시(-)가 따라온다. 다양한 내용일 때 줄이나 별표로 구분된다. 매번 우리는 출처를 설명하려고 했다. 문장 가운데 있는 대시는 생략했고, 꼭필요할 경우 첫 줄에 실었다. 별표나 선은 인쇄 문제로 인해 여백 공간으로 대체했다.
각주는 세 가지이다.
ㄱ) 출처의 성격과 상태를 드러내는 각주
ㄴ) 첨자로 표시한 연구자료
ㄷ) 아라비아 숫자로 표시된 역사적–문화적 각주
첫 번째 각주에서는 편지가 손으로 쓴 것인지 혹은 타자한 것인지, 종이의 종류, 크기, 글씨체, 삽화 등등을 보수했다. 그림 엽서에 실린 메시지의 내용과 레터헤드(윗머리에 수도회의 이름과 주소 등이 인쇄된 편지지-역주)의 내용이 바뀔 때마다 표시했다.
비평 자료에서 동일한 정보를 다루게 될 때 같은 주석을 참조하도록 동일한 첨자를 반복했다. 자필원고와의 차이, 실재 여부, 기호의 위치 그리고 소견들을 표시했다.
문화적 각주에서는 본문에 대한 더 나은 이해와 역사적인 배치를 위한 정보들을 실었다.
역사적인 부분을 위해, 역사기록 자료실을 맡고 있는 로렌자 빈니Lorenza Binni 수녀가 큰 도움을 주었다. 이외에 특별히 알베리오네 신부님과 마에스트라 테클라 가까이에 있었던 몇몇 자매들의 힘을 입었다. 그들은 날짜를 정하고 사건들을 명확하게 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 한 분 한 분에게 감사드린다.
Sr. 나탈리나 스파다Natalina Spada
Sr. 카타리나 마르티니Catarina Marti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