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o Giacomo Alberi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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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문introduzione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모습을 갖추실 때까지Donec formetur Christus in vobis = DF」1는 10cm×16cm 판형의 110쪽에 해당하는 소책자이다. 짧은 장章으로 구성되었고, 각 장은 세 부분으로 구분하여 일련번호를 붙였으며, 각 부분은 종종 a, b, c (한글 번역본은 가, 나, 다)의 단락으로 세분되어 있다. 사용한 어휘는 당대의 신학사조나 영성을 반영한다. 문장은 대체로 간결하며, 라틴어 신약성경에서 주로 발췌했다.

1932년에 발간한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의 DF는 그다지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20여 년 전부터 차츰 그 진가를 재발견하게 되어 연구 대상이 되었으며, 영신수련, 양성 계획과 영성 모임의 기준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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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의 문체는 70년간의 역사(이 책은 2001년도 이탈리아 출판본을 번역한 것임-역주)를 반영하는데 언뜻 보면 특정 역사의 맥락과는 단절된 듯하다. 
늘 이탈리아에 살며 이탈리아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실제로 DF에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이유는 그 본문이 다른 맥락과 다른 사고방식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대하게 될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는 도전을 대면하게 된다. 곧 DF는 창립자의 삶과 실제로 어떤 관련이 있으며, 태동기를 살던 바오로가족의 체험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그리고 이제 위대한 카리스마가 담겨 있다고 평가되는 이 작품의 짤막한 여러 장章을 새로이 해석하고, 전후 문맥을 감안하여 읽어나갈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열쇠를 찾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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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질문과 또 다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이 책은 시작부터 다음과 같은 점을 전제조건으로 내세운다. 곧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모습을 갖추실 때까지Donec formetur Christus in vobis」가 알베리오네 신부와 바오로인 첫 세대가 걸어온 여정을 기억시킬 때 그 의미가 충만하게 드러나 바오로가족의 삶의 계획을 제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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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글로 쓰인 하나의 작품을, 그 안에 담겨 있는 여러 주제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토론 형식의 독서법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상호 연관이 없는 요점이나 내용을 함께 엮은 것으로 여겨서도 안 된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는 소박한 형태이긴 하나 지향하는 바가 뚜렷하고 영구적인 목표를 가진 문헌으로, 각 부분만 아니라 전체적인 구조가 잘 짜여 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모습을 갖추실 때까지Donec formetur Christus in vobis」는 카리스마적 역사의 빛 안에서 읽어야 할 바오로 정신의 윤곽을 격언 형식으로 소개하면서 바오로적 삶의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는 DF가 기도와 숙고로 받아들여지고, 특수사명의 풍요로운 모태이며 유효한 증언 형태로 수용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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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1932년에 출간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모습을 갖추실 때까지Donec formetur Christus in vobis」의 출판본(=DFst)을 소개하고자 한다. 작품을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한 자필원고(= DFms)를 포함한 공책도 있으므로, 그것이 어떤 것인지 소개하겠지만, 멀티미디어 수단을 활용하여 별도로 편집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최근에 출판본 문헌과 원본 자필원고를 합친 비평 편집본을 발간했는데, 이 책에는 연구서와 문헌에서 이미 인용하고 있는 가장자리 구분번호가 표시되어 있다.2이 책은 (전형으로 간주하는) 1932년 출판본을 본보기로 삼았으며, 구분번호에 기초하여 새로운 번호 매김 방식을 고안했다.3 
주된 의도는 새로운 세대의 바오로인들이 창립자의 이 작품을 읽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그리하여 이 책에서는 ‘입문Introduzione’뿐 아니라 주석 또는 각주에서 많은 정보를 제공하려고 애썼다. 
이러한 선택이 (작업의) 매우 긴 여정을 요구했지만 한편 사건을 연결하고 그 연결고리를 설명하기 위해 꼭 필요한 사항이 아니어도 그것을 찾아내는 과정은 유익한 여정이 되었다. 폭넓게 많은 인용을 제시하여 문헌의 원본을 쉽게 볼 수 없는 사람에게도 많은 도움을 주고자 한 것이다. 
또한 이 ‘입문’4의 단락 (또는 단락 모음)마다 번호를 붙이기로 한 것은 본문 쪽수와 연결할 수 있는 좋은 방도가 되고, 본문을 해당 맥락에 자리 잡게 하는 작업도 가능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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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고전 작품을 읽을 때처럼 주의력이 필요한데 본문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저자의 인품과 생각을 깊이는 것이 불가피하다. 
알베리오네 신부와 창립 초기의 바오로인 세대들은 성경적·복음적·신약성경적 메시지에서 영감을 받아 철저하게 살면서 ‘새로운 시대’의 필요성을 민감하게 알아차렸다. 창립자는 말년에 이르러 지나온 여정을 회고하면서 “하느님의 손길이 내 위에…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라고 밝혔다.
그러므로 성경의 범주에서 그리고 알베리오네 신부의 말씀에서 영감을 받아 이 책의 입문을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 전개한다.
1. 계약시기: “하느님의 손길이 내 위에…”
2. 성성의 책: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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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부각되는 다른 측면은 창립시기에 아주 많은 사람이 동참했다는 사실이지만, 알베리오네 신부는 모든 것에서 “하느님 영감의 유일한 경로”5 로서의 역할을 힘차고 절도 있게 수행했다. “그분의 모든 행동과 모든 말씀은 하느님의 사람, 곧 모든 것을 하느님 중심에서 생각하고 움직이며 판단하는 사람, 세상 것에 초연하고 완전히 하느님 안에 집중한 사람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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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창립자의 개인 여정과 창립 여정을 서술하는 일이중요하다. 이 두 가지 주제는 개인적·집단적 선택과 사명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성경적 표현을 통하여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내가 오늘 민족들과 왕국들을 너에게 맡기니 …세우고 심으려는 것이다.”(예레 1,10) 그리고 “너희는 나에게 사제들의 나라가 되고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탈출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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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내가 오늘 민족들과 왕국들을 너에게 맡기니…
 세우고 심으려는 것이다.”(예레 1,10)

여러 차례, 특히「당신 은총의 풍성한 부」(= AD)7 에서 알베리오네 신부는 당신의 성소 체험과 영적 체험을 성경구절을 인용하여 전달했다. 과거에 관한 그분의 회고 내용은 대부분 다른 문헌과 정보를 통하여 입증됨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알베리오네 신부의 증언을 단순히 역사적이거나 편집적 성격이 가미된 그분의 재해석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최대한 그분 자신의 구체적인 체험의 진솔한 표현으로 받아들인다. 
나아가 창립시기에 이룩한 활동의 모든 행보에 관해 그분이 의식해서 살피는 점에 주의를 기울이는 가운데 직접 창립자에게로 소급시킬 만한 확신이 서지 않는 경우에도 정기간행물 「선한 출판 협력자회Unione Cooperatori Buoni Stampa」(= UCBS)8에서 발췌한 문헌들을 공동체 생활에 대한 표현으로 사용하고자 한다. 이는우리를 창립자와 초기 제자들을 움직인 카리스마적 영감에 동화되고 또 전달하고자 하는 지향으로 이끌어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의 삶 자체, 곧 그분의 탄생부터 수도회 창립 초기까지 숙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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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아이였을 때 나는 그를 사랑하여…”(호세 11,1)

야고보 알베리오네는 1884년 4월 4일 포싸노의 성 로렌조San Lorenzo di Fossano에서 태어났고, 케라스코Cherasco라는 작은 도시의 인근 시골에서 성장했다. 
그의 유년기는 어머니 데레사 알로코Teresa Alloco, 초등학교 여교사 로사 카르도나Rosa Cardona 그리고 성 마르티노 성당의 분위기와 관계가 깊다.(AD 10-12) 
오늘날 제3세계의 소년과 별다를 바 없는 야고보 알베리오네는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매일 케라스코로 가는 오솔길을 달려 학교에 가곤 했는데, 가는 길에 다른 아이들과 함께 성모 경당에 들러 인사드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들을 지도한 프란치스코 마리아 파베르Francesco Maria Faber 교장 신부는 좋은 결실을 맺도록 아쉬움 없이 충분한 가르침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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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Fst984-85] 초등학교 1-2학년 때 로사 카르도나 선생은 그가 학교 생활을 즐기도록 도와주었고 삶의 방향에 대한 새로운 인식, 곧 사제 성소를 갖도록 해주었다.(AD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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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 알베리오네가 초등학교 3학년 때 토마스 랍비아Tommaso Rabbia 선생이 담임을 맡았으며, 그는 반에서 1등을 했다. 
요셉 리아우도Giuseppe Riaudo 선생이 담임을 맡은 4학년 때도 다른 네 명의 학생들과 함께 최고 성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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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진나시오ginnasio 1학년 때 조반니 바티스타 몬테르시노Giovanni Battista Montersino 본당신부와 함께 사제관에서 점심식사를 하곤 했다. 본당신부는 식사 후 커피를 마실 때 자주 문화 애호가들을 초대했는데 야고보 알베리오네의 선생들도 그 자리에 함께 했다. 
[DFst 17ss] 소년 알베리오네는 그러한 만남을 통하여 책을 좋아하게 되었고, 음악세계·문학세계·역사와 철학세계에 매료되었다.11 그뿐아니라 교회 현실에 깊이 통감하면서 교회 환경에 자연스럽게 젖어들었고, 미래를 향한 위대한 이상의 원천이요 그가 추진해나갈사상의 밑그림이 되었다. 곧 이러한 인물들과의 어울림이 바로 미래의 위대한 사도직의 영성적·문화적 여정의 출발점이 되어준 것이다. 
이러한 인물들은 소년 알베리오네 안에 실제적인 공부보다 더 깊은 배움의 의미 곧 학문을 향한 참된 매력을 키우게 했다. 또한 자기 자신을 성장시켜 나가기 위한 계기가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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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43ss] 이러한 개방적인 교회 분위기는 알베리오네에게 민감한 감성, 신중한 지성과 활발한 상상력에 대해 처음으로 깊은 의식을 갖게 하는 바탕이 되었다. 
반면 현실적으로 전혀 이해할 수 없던 브라Bra 신학교는 그에게 폐쇄된 공동체의 익명성을 사는 고통스러운 굴욕을 감수하게 했지만, 그는 거기에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알바 신학교의 문이 열리게 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알바 신학교를 매우 좋아하게 된 그는 성마르티노 본당에서 키운 삶의 추진력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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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13-16] 브라에서 ‘가지치기’를 당한 야고보 알베리오네는 알바로 오게 되었고, 새로운 내적 추진력에 의해 고무되고 있었다. “…심오하고 세련된 지성의 소유자로 철학적으로도 깊고 독창적인 상상력과 예리한 통찰력으로 사고하고 성찰하기를 좋아했다. 그는 늘 자신을 깊이 살피고자 했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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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57ss] 주님의 개입은 그리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았다. 세기가 바뀌는 밤 하느님의 영광이 그를 빛으로 감쌌고(루카 2,9 참조) 그를 초대하시어 당신과 친교를 맺게 하셨고,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갈라 2,20) 성체성사 안에 현존하시는 성자를 통하여 당신 사랑을 그에게 드러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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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83-85.93-95] 알베리오네는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마태 11,28)하신 친교 안으로 자신의 전인격이 감싸이는 것을 느꼈고, 교회와사회 현실에 대한 이해와 특히 시대의 요청과 ‘사제의 참된 사명’(ADds 15)에 대해 깊은 인식을 갖게 되었다. 스승께서는 그러한 친교를 통해 그의 정신과 마음을 열어주시고 특별한 사명을 위하여 그를 당신과 일치하게 하셨다. “반대자들이 이용하는 수단을 사용하면서 오늘의 사도가 되어야 할 의무에 대해 토니올로Toniolo 씨가 역설力說한 내용이 분명해지는 것 같았다. 주님을 위해 그리고 함께 살아갈 새로운 세기의 사람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행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의무를 깊이 느꼈다.”(ADds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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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극복하며 직무를 수행해야 했던 몇 년 후, 이 빛의 체험은 말할 수 없을 정도의 기쁨에 찬 새로운 도전의 원천이 되었다. “성체, 복음, 교황, 새로운 세기, 새로운 수단, 교회에 관한 파가누치Paganuzzi 백작의 가르침, 새로운 사도들의 필요성 등이 지성과 마음에 확고히 뿌리내리게 되었고, 그 후 모든 것이 언제나 그의 생각, 기도, 내적 활동, 열망을 지배하게 되었다. 교회와 새로운 세기의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조직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일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ADds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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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17ss.27-28] 야고보 알베리오네는 하느님의 시각으로 자신을 바라보면서 비로소 자신의 전 생애의 참된 토대를 찾게 되었다. 곧 자신의 한계를 알았고, 자신을 버리는 일이 없는 충실하신 스승이요 주님인 그분께 기쁜 마음으로 의탁해야 함을 알았기에 다음과 같이 힘있게 강조했다. “자신은 아무것도 아님을 명확하게 자각하였고, 그와 더불어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vobiscum sum usque ad consummationem saeculi) 하시는 말씀을 들었다.”(ADds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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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14-16.84] 주님께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은 사제직을 향한 여정에서 알베리오네 자신을 전적으로 봉헌하도록 이끌었다. 그는 자신이 부르심 받은 사명의 관점에서 자신의 전인적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은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자기 구원을 위해 그리고 더 풍성한 사도직을 위해 전인격, 곧 정신, 마음, 의지를 계발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계속 남아 있었다. 마치 그가 친구 보렐로Borello(1904)의 묘비에 기록하고 싶어한 것처럼.”(ADds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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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17] 젊은 날 알베리오네 신부의 이러한 체험이 DFst에, 특히 하느님 계획에 잘 들어맞는, 기쁨에 찬 깊은 탐구로 평가되는 정화의 길 부분에 반영되어 있다는 점을 여기서 미리 말해 두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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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55-56.63-64.88.95-96] 알바 신학교 양성 책임자들은 세기의 흐름에 대해 자주 다루었는데, 로마서 1장에서 영감을 받아 사회악에 대해 언급한 회칙 「타메시 푸투라Tametsi Futura14의 ‘구세주’에서 사용한 용어와 비슷했다. 그들이 교회의 생생한 활력에 대하여 말할 때의 어조도 이와 비슷했는데, 예를 들어 「가톨릭 문화La Civilta Cattolica」에서 활동과 회원 증가를 보이는 오래된 수도회들의 발전, 새로운 수도단체들의 출현, 여성 수도단체들의 증가, 새롭고 폭넓게 확산되는 여성 사도직과 평신도 사도직을 소개할 때 사용한 어조를 구사하였다.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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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40 74-78] 이러한 가르침으로 준비를 갖춘 알베리오네는 ‘거룩한 성체로부터 온’ ‘특별한 빛’을 느꼈다. 이 빛은 그에게 하나의 대 전환점으로서 사도 바오로의 회심과 유사한 대단한 변화를 일으켰을 뿐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도 깊은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생각으로 미래를 내다보고 있는 동안 그는 새 세기에 관대한 사람들이 자기가 느끼고 있는 것을 느끼리라는 것과, 조직에 가담함으로써 토니올로 씨가 수없이 되풀이한 것을 실현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결하시오. 적이 우리가 제각기 따로 있는 것을 발견하면 한 번에 한 명씩 우리를 넘어뜨릴 것입니다.’”(ADds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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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51] 알베리오네가 면학과 계속되는 숙고에서 이러한 생각을끊임없이 적용했다는 증언은 아주 많다.16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해 젊은 알베리오네의 응답방식을 확인시켜 주는 사례를 체사레 칸투Cesare Cantù의 「세계사Storia Universale」 정독에 대한 ‘공책Quaderno 36’17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그에게는 모든 것이 배움터였다.”(ADds 90)라고 확언할 만큼 그의 지적 갈망, 세계를 향한 그의 개방성과 기록 습관을 증명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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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52-54] 「나는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하여 창조되었다Sono creato per amare Dio」(= SC)18에 게재된 젊은 시절의 글에서 성경에 관한 9쪽 분량의 자필원고(SC 155-180 참조)를 찾아볼 수 있다. 이 내용은 매우 의미심장한데 알베리오네가 그전부터 이미 그의 주된 관심사가 된 “인류의 책… 거룩한 책”이라는 성경에 관한 작은 연구논문을 작성하기 위하여 ‘공책Quaderno 36’의 기록에서 많은 것을 취하고자 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배움터였다.”라는 그 언급이 기도와 말씀의 경청이라는 이 두 가지의 통합요소를 어떻게 아우르게 되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다음과 같이 장엄한 시작을 선포했다. “지성과 윤리, 개인과 사회의 일치를 이끄는 동인이요, 사고의 비가시적 영역의 동력인 마음의 정情을 다스리는 진정한 힘은, 모든 세기에 걸쳐 끊임없이 흐르면서 모든 나라로 퍼져나가는 말씀의 능력입니다. 인간이 말을 하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인간은 빈약한 몇몇 수단을 통하여 자신의 정신세계를 표현하고, 하느님은 당신 스스로가 무한하신 것처럼 무한한 수단을 통하여 이를 표현하십니다. 그분은 자연 안에 당신 말씀을 ‘새기며’ 말씀하셨고, 인간은 자연을 연구하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연구하게 됩니다. 마치 소크라테스가 그리스도를 알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이치인데 그것은 자연을 연구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자연에서 하느님의 진리를 직접적으로 그리고 적절하게 깨닫기에는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 토마스가 받아들인 테르툴리아노의 사상대로, 단순하고도 최상의 책인 성경이라는 책 안에 당신 말씀을 모아두심으로써 하느님은 인간의 능력에 당신을 맞추셨습니다.”(SC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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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51-52 80] 1954년경의 어떤 글에서 알베리오네는 자신의 여정에서 도움을 준 여러 사람을 나열했다. “1902년부터 내 삶의 여정에서 결정적으로 나의 방향을 잡아준 거룩한 분들이 계십니다. 길 진리 생명이신 스승 예수께 대한 신심에 대해서는 다누쏘Can. Danusso 신부님이 도움을 주셨고, 영적 양성과 지적 양성에서는 참사위원 키에사Can. Chiesa 신부님이 이끌어 주셨으며, 레Mons. Re 주교님께서는 현대주의(모더니즘)의 전반적인 위기에 대해 늘 확실한 인도자가 되어주셨고, 참사위원 프리에로Can. Priero 신부님은 교리·성체성사·토마스 철학·성경에 대한 사랑의 본보기를 보여주셨습니다. 계속해서 많은 분이 갖가지 도움을 통하여 확인시켜 주고, 믿게 해주었으며, 수정해 주었고, 이끌어 주셨습니다. 세 가지 신심이 빛을 발하여 수도생활이 확실한 길임이 더욱 분명해 보였습니다. 주님이 모든 것을 하신 것입니다.”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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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96-97] 「나는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하여 창조되었다」에서 알베리오네는 자신의 성소에 대한 하느님 섭리의 계획 속에 마리아의 보호가 어떻게 개입하게 되었는지 설명했다.(SC 129 참조) 내면의 불타는 열정에서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이러한 은총을 증언하도록 신속하게 삶을 방향지었다. 곧 저술 사도가 됨으로써 오늘날의 사도들 가운데 하나가 되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편집작업20을 시도한 다음 그의 첫 저서를 준비하는 일에 전념했다. 그 책은 은총의 동정녀 마리아에 관한 내용으로21 1906년에 초안 작성을 하였다.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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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나는 그와 사제직의 계약을 맺는다.
나의 열성이 백성 가운데 있다.(민수 25,11-12 참조)

[DFst 21-27] 주님에 대한 앎은 당신 백성을 짓누르는 위기와 악에 대하여 생생한 인식을 갖게 해준다. 옛 우상들과 새로운 우상들은 인류의 모습을 일그러뜨리는 적대감을 일으키면서 늘 다시 일어선다. 그런 가운데 젊은 알베리오네는 20세기가 시작되는 밤에 드린 기도의 의미를 매일 심화시켜나갔다. “이 세기가 성체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탄생되기를, 새로운 사도들이 법·학교·문학·출판물·관습을 쇄신하기를, 교회가 선교에 새로운 비약을 하기를, 사도직의 새로운 수단이 선용되기를, 참사위원 키에사 신부가 신학생들에게 해설한 레오 13세의 회칙에 담긴 위대한 가르침, 특히 사회 문제와 교회의 자유에 관한 가르침을 사회가 받아들이도록 기도했다.”(ADds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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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21-22] 야고보 알베리오네는 토리노 신학교로 전학할 수 있었지만, 가족 정신이 넘치는 알바 신학교에 남기로 했다. 알바 신학교는 학문의 발전과 시대의 요청에 맞추어 공부하고 참여하도록 이끌어 주었고, 강력한 사목정신·사회정신·전례정신에 뿌리내린 영성을 고취시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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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17.28.37.67] 알베리오네가 신학과정을 배우던 시기에 때마침 신학교의 새 성당이 건립되었다. 성당내부 장식이 알베리오네의 양성을 종합적으로 구성해 주었다. 모든 것이 삼위일체에서 비롯되었는데, 삼위일체는 성자의 오심과 성령의 은총을 통해 구원계획을 드러내었으며, 강생의 신비 안에 마리아의 역할이 주어졌다. 성체성사는 그리스도인 삶의 중심이다. 도시 명칭인 알바의 네 글자A-L-B-A에 복음사가의 형상을 새겨 복음을 제시했고, 참된 행복과 ‘십자가의 길’을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제시했다. 전례는 ‘찬미의 희생제사sacrificium laudis’로 표현했고, 하느님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주교의 직무, 마리아와 교회의 모습도 묘사했다. 성인들도 묘사되어 있는데 하느님 백성이, 특별히 신학생들이 성인들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모습이었다. 제단 뒤편 벽면에는 특별 신심을 불어넣기 위한 기도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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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84]  알베리오네는 지나온 여정을 숙고하는 가운데 섭리로 만난 두 사람의 존재를 인식했고, 그분들의 모범에 따라 직무를 수행하고자 노력했다. 한 사람은 조반니 바티스타 몬테르시노Giovanni Battista Montersino 신부였고, 다른 한 사람은 참사위원 프란치스코 키에사 신부였다.

그는 몬테르시노 신부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다가오는 거룩한 사제수품을 준비하면서 신부님께서 제 성소의 기초를 놓아주셨음을 다시 기억합니다. 신부님의 가르침·교리교육·영혼에 대한 열정을 본받으려고 합니다. 하느님께 대한 봉사에 제 삶을 영원히 내어놓고, 하느님의 영광과 사람들의 성화를 위하여 제 노고를 봉헌할 수 있는 행운을 갖는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신부님 덕분입니다. 그래서 저는 합당치 못함을 느끼면서도 제 마음은 기쁨으로 넘칩니다. 그 기쁨 안에서 제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에 당혹스러움을 느낍니다만, 신부님을 선한 목자로 세우시어 제 삶의 첫 걸음을 비추어주신 주님께 찬미를 드립니다.”25

야고보 알베리오네는 앞으로의 사제직을 특별한 인품을 지닌 프란치스코 키에사 신부에게 결속시켰다. 알베리오네 신부 자신이 생을 마칠 무렵 증언한 것처럼 실제로 그는 알베리오네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분께 지도받았고, 가르침과 정신을 받았습니다. 오랫동안 매일 여러 형태로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분의 삶은 탁월했고, 모든 덕에서 뛰어났습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과 모든 일에 열정을 쏟았습니다. 학식을 통하여 정신을 전달해 주신 스승, 귀감이 되시는 본당신부님이셨습니다.”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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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84-85.100] 사제수품의 순간, 야고보 알베리오네는 사제직의 고귀함을 영혼에 새겼고,27 몇 년 후 자신의 기획 작품 「사목신학 개요Appunti di Teologia Pastorale28에 그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사제는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사는 사람일 수는 없습니다. ‘나 -하느님’이라는 말을 좌우명으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사제는 절대적으로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일해야 할 필요가 있고 자신의 깃발에 ‘나 - 하느님 - 백성’이라고 써야 합니다.”(구분번호 1) “따라서 사제는 ‘학자dotto만’이 아니요, 단순한 ‘성인만’도 아닙니다. 오히려 ‘학자-성인’으로서 ‘사도’가 되기 위하여, 다시 말해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학식과 성성을 활용해야 합니다.”(구분번호 2) “교회의 의무와 자질을 다루는 책들도 지나치게 면학과 신심에 대해서만 길게 다룰 뿐 열정에 대해서는 아주 소홀히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열정은 사제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으로 사도만이 가지는 특별한 것입니다. 학문과 신심은 열정을 형성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일 따름입니다. 열정을 형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열정은 하느님께 대한 존경과 영혼의 구원을 강렬하게 원하도록 만드는 위대한 신심 정신에서 생깁니다. 사제로서 갖추어야 할 학문을 닦는데 필수불가결한 수단으로 쓰입니다. 한편 사제직을 수행함에 있어서 사제는 자신의 시간 전부 또는 거의 전부를 사람들에게 헌신하기 위하여 생존에 필요한 물질적 수단을 가져야 한다고 가정합니다.(구분번호 6)

35

[DFst 21-22.84-85] 이러한 정신으로 고무된 젊은 사제 야고보 알베리오네는 1907년 6월 29일, 사제수품 후 자신의 역동성을 드러냈다. 특히 나르촐레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본당의 보좌신부를 끝내고 알바 신학교의 영적 지도신부라는 중책을 받아들였을 때 더 그랬다.

도서관 사서 책임도 맡아 도서관을 쇄신시킬 방법을 모색했다. 전례 강의를 맡고는 다음과 같이 토로했다. “그리고 신학교에서 전례 교수, 제의방 책임자, 주교 의식을 담당했고, 의식서를 준비하는 임무를 맡아 언제나 교회의 기도를 교회와 더불어 한층 더 깊이 음미했다.”(ADds 72)

그는 사회정신이 깃든 모든 시도에 특별한 책임감을 느끼며 헌신했다. “섭리는 이를 위해 오랫동안 준비했다. 그것은 밀라노의 가톨릭 대학 창설을 위해 추진 위원회가 기부금을 모으는 일(1905-1906)이었다. 사회학 강연회, 신학과정 중에 그리고 그 후 사회학 연구, 장상의 배려로 참여한 사회문제에 관한 여러 집회, 사회활동과 조직을 위한 협력, 가톨릭 액션 회원들, 특히 마피Maffi 추기경, 토니올로Toniolo 교수, 파가누치Paganuzzi 백작, 레차라Rezzara 회계사 등과 관계를 맺었다.”(ADds 58-59)

36

[DFst 85.88] 그러나 무슨 일을 하든 알베리오네는, 세기가 시작되던 날 밤부터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던 하나의 구심점을 잡고 있었는데, 바로 그의 특별한 성소였다. 그의 성소는 그가 자기 친구에게 속내를 털어놓았듯이 보좌신부나 본당신부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내 주위에 젊은이들을 모아들일 생각을 하면 웃음이 절로 나…. 돈보스코처럼 많은 젊은이들을 말이야. 그들과 사도직 여정을 함께하기 위해서.”29

37

[DFst 76-77] 알베리오네 신부는 에이마르Eymard 방식의 네 가지 목적에 따라 검토하고 모든 일을 이러한 전망에 입각해 행했다. “참사위원 키에사에게서 흠숭하고 감사하며, 통회하고 청원하기 위해 천상 스승 곁에서 모든 것을 묵상과 기도의 주제로 변화시키는 것을 배웠다.”(ADds 68)

알베리오네는 그 자체가 목적인 자기 내면을 밝히는 것만 아니라, 자신을 전적으로 봉헌하는 관점에서 모든 것을 평가해야 할 필요성과 “새로운 임무에 임하도록 자신을 준비하라고 초대하는”(ADds 55) 것에 합당해야 함을 절감했다. 이것은 심각한 혼란을 야기하는 악의 분위기와 극도의 사회적·경제적·정치적 무질서에서 요청되는 것이었다.

38

[DFst 90-91] 알베리오네는 다양한 교회 사업 가운데 한 분야를 담당하면서 “가톨릭 신자 조직에서 수도자 조직으로 생각을 바꾸도록”(ADds 7) 그를 이끌어 준 빛에 대해 새로운 체험을 했다고 밝혔다. “1910년경 결정적인 첫 발을 내디뎠다. 한층 더 밝은 빛 속에서 저술가, 기술자, 프로파간디스타이되 ‘남녀 수도자’여야 함을 보았다….”(ADds 24)

그리하여 새로운 시도의 필요성을 깨닫게 된 것이다. 새로운 현실은 수도적 봉헌생활을 통하여 복음에 뿌리내리고 교회 조직에 완전히 스며드는 것이다.

39

[DFst 80] 바오로가족은 알베리오네 신부의 창립 카리스마를 목적으로 그가 가졌던 숙고의 능력과 식별의 노고를 아직도 충분히 드러내지 못하고 있던 것 같다. 그러므로 그분 여정의 두 가지 특징, 곧 알바 신학교에서의 영적 지도신부라는 직무와 영신수련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40

[DFst 11-12] 우리는 알베리오네 신부와 그의 숙고 능력, 연구와 문헌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아주 소중한 네 가지 수단을 가지고 있다. 곧 3개의 ‘노트Notes’30와 ‘색인 공책Quaderno di Indice’31이다.

이 ‘노트’와 ‘색인 공책’을 대조해 보면 특히 1908년부터 1914년까지 알바 신학교에서 알베리오네 신부가 제시한 묵상 과정을 재구성할 수 있는데, 얼마나 세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글로 옮겼는 지 알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알베리오네 신부는 자신이 실현한 사항에 관해서뿐 아니라 그의 신학생들이 이룩한 결과를 매번 평가하곤 했다. 그는 모든 양성 계획을 솔직하게 평가했고, 자신의 실천계획32도 다른 형제들의 계획33과 같았다.

41

[DFst 80] 교부들이 강조한 ‘영적 아버지’가 갖추어야 할 기본 조건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 사람이 있다. “누군가의 영적 아버지가 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본질적인 조건은 무엇보다 먼저 그 자신이 영적인 사람이어야 한다.”34 레 주교는 사제가 된 지 1년밖에 안 된 알베리오네 신부에게서 영적 부성父性의 카리스마를 발견한 것이다.

42

[DFst 20-27] 알베리오네 신부가 영적 지도 초기에 신학생들에게 제시한 두 가지 묵상 체계는 알베리오네 신부가 자신의 새로운 직무를 위하여 철저하게 준비했다는 점을 잘 드러내 준다.

나르촐레에서 신학교로 돌아온 지 일주일이 지난 1908년 10월 27일, 그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심화하기 위한 토대(믿음-희망-사랑)와 인격성숙을 위한 토대(이성-의지-마음)로서 묵상의 필요성과 묵상 방법에 관한 두 가지 가르침을 제시했다. 그리고 180각도로 개방되는 아주 중대한 계획을 두 줄로 요약해내고 있었다. 곧 사도직에 자신을 증여하기 위하여 또는 “다른 이들에게 선을 행하기” 위하여 하느님 계획에 합치되기를 바라면서 악을 근절하는 것이다. (“시계를 맞추는 것”)35

‘묵상 방법’에 관한 세 가지 사항36에서 묵상의 본질, 알베리오네 신부가 방향을 잡아줄 때 건네는 대화의 특징, 머릿속에 생각하고 있는 계획 실현에 관한 내용을 미리 명료하게 읽을 수 있다.

다음 날 행한 두 번째 묵상과 관련되는 이 세 가지 사항은, 알베리오네 신부가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의 감성적이고 구체적인 영성,37 성 이냐시오 ‘영신수련’의 역동적 영성에 대한 깊은 인식, 그리고 샤이뇽Chaignon38과 파베르Faber39의 영성 작품에 대한 심오함을 어떻게 인식하게 되었는지 확인하게 해준다. 성 알폰소, 스카라멜리Scaramelli, 스쿠폴리Scupoli, 그리뇽 드 몽포르Grignon de Monfort 등 얼마나 많은 영성작가들이 인용되고 있는지는 이 ‘노트’를 한번 훑어보는 것으로 족할 것이다.

43

[DFst 80] 알바 신학교 영적 지도신부로서의 알베리오네 신부의 활약에 대한 완전한 그림을 그리기에는 아직 미흡하다. 현재로서는 권위 있는 증언으로 충분할 것이다. 이 증언은 ‘추기경성Sacra Congregazione Concistoriale’에서 주어진 것인데 아직 출간되지 않았다.

‘추기경성’은 1911년 8월 29일자 공문 n. 704를 통하여 “신학교에 사도적 방문을 한 평의원의 소견 내용”을 레 주교에게 발송했다. 이 소견은 ‘칭찬할 만한’ 면과 ‘주의해야 할’ 요소들에 관한 두 번째 부분을 소개하고 있다.

‘칭찬할 만한’ 내용 중 세 번째 사항은 “영적 지도 임무를 잘 수 행하며, 신학생들에게 신심을 북돋아주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소홀히 하지 않는 훌륭한 영적 지도신부가 있다는 점이다.”

‘주의해야 할’ 사항들 가운데 D항은 아쉬움에 관한 사항으로, 알베리오네 신부에 관한 긍정적인 평가를 다음과 같이 추가로 덧붙여 놓았다. “D) ‘영적 지도’: 1) 영적 지도신부가 의심할 여지없이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모든 것을 하고 있지만, 영적 지도신부가 현재 하고 있는 9시간의 수업을 면제받을 수 있다면 영적 지도에 그만큼 더 도움이 될 것이다.”

44

[DFst 44-48] 알베리오네 신부가 열심히 전개한 직무수행이 그의 개인 사명에 관한 하느님의 뜻을 더욱 깊이 알아듣고 성취하려는 것을 방해하지는 않았다. “여름휴가 기간(1909년부터 1918년까지)에 어떤 수도회에서 대피정을 했다. 자유시간에는 각 수도회의 회원 모집과 양성 방법을 알기 위해 장상들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했다.”(ADds 36)

알베리오네 신부가 여러 가지 영신수련 과정, 곧 성 이냐시오 성당(Lanzo torinese: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지방 토리노 주의 자치 도시-역주)의 영신수련에 참석하는 이들에게 또는 알바 교구 사제들과 함께 한 영신수련에서 행한 강론 요지와 신학생들의 피정 기간 중에 한 강론 요점들을 LV03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묵상과 강의에 대한 스키마가 많지는 않지만 어느 과정에 속하는 내용인지 곧바로 분류하기는 쉽지 않다. 요점들이 ‘노트’에 나오는 일정한 순서를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LV03의 묵상과 강의 스키마들은 영신수련에 완전히 몰입한 알베리오네 신부가 하느님 뜻을 식별하는 데 기울인 노력을 보여줄 뿐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모습을 갖추실 때까지Donec formetur Christus in vobis」의 많은 사항이 자리 잡게 된 중요한 배경을 이룬다.40

45

[DFst 17-48.37-43] 특히 LV03의 15쪽이 “란초Lanzo의 성 이냐시오 성당 영신수련-1911년 7월 9-11일[?]”에 관한 표기로 시작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41 “사제의 목표”42에 관한 묵상 I의 여러 사항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4° 우리는 또 다른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제 예수입니다.” 마찬가지로 28b 쪽에 나오는 묵상 VIII의 제목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43이다. 아마도 1911년의 스키마일 가능성이 큰 이 묵상 스키마는 알베리오네 신부의 저서에서 길 진리 생명이신 그리스도에 관한 가장 오래된 묵상 스키마일거라는 점에서 특별히 중요성을 띤다.

46

[DFst 17.18.37.52.55.67.68.76] 1911년 10월과 1912년 말 사이 알베리오네 신부가 알바 신학생들에게 사도신경에 관한 연속 묵상을 제안했다는 점은 상당히 중요하다. 이 묵상은 ‘공책Quaderno 50’에 수록되어 있다.

첫 번째로, 아마도 알바 신학교 전체를 대상으로 1912년 1월 14일자에 행한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안에서”(pp. 75-83)라는 묵상은, 이제 겨우 생각해낸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라는 스키마를 전개한 것이라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그뿐 아니라 이러한 연속 묵상은「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모습을 갖추실 때까지」의 성부·성자·성령 신학에 대한 중요한 틀을 구성한다는 점을 주목할 것이다. ‘공책 52’에도 나와 있는 네 가지 목적인 미사의 희생봉헌에 관한 묵상들은 ‘공책 50’과 연결시켜야 하지만 성령과 교회에 관한 내용이 들어 있는 ‘공책 53’과도 연관시켜야 한다.44

47

[DFst 13-14] 길 진리 생명이신 그리스도에 관한 묵상 스키마는 알베리오네 신부의 식별 과정과 노력이 영신수련을 통해서뿐 아니라 팀 작업을 통해서 이루어진 시대적 요청에 대한 새로운 탐구 차원임을 생각하게 한다. 실상 알베리오네 신부는 많은 사람들의 기여를 독려했고, 특히 「사목신학 개요Appunti di Teologia Pastorale」와 「사제적 열의에 참여하는 여성La donna associata allo zelo sacerdotale」의 기획과 가르침을 위하여, 사제직무를 수행하는 형제들의 효과적인 숙고를 독려했다.45  “2년 동안 12명의 사제들과 함께 매주 회의를 하며 사람들을 돌보는 쇄신된 좋은 방법을 연구했다.”(ADds 83)

48

[DFst 37-40] 그 당시 하느님의 섭리로 엔리코 스보보다Enrico Swoboda의 「대도시에서 사람들을 돌봄La cura d’anime nelle grandi citta46이 이탈리아어로 번역되었는데, 이 작품은 시대적 요청에 대한 사목적 답변에 사회학적 지식을 적용한 혁신적인 예가 되었다. 또한 예수를 길 진리 생명이신 그리스도로 집약시킨 사목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는 코르넬리오 크리그Cornelio Krieg의 작품도 「사목학Scienza Pastorale47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이 작품들은 알베리오네 신부의 탐구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도록 기여했다. “바오로인 사도직의 사목적 특징으로 그는 두 분의 위대한 스승에게서 많은 것을 받았다. 곧 스보보다의 「대도시에서 사람들을 돌봄Cura d’anime nelle grandi citta」과 크리그의 「사목신학Teologia pastorale」 네 권을 2년에 걸쳐 읽고 또 읽었다.”48(ADds 84)

49

[DFst 37-38.49-50.51-52.74-78] 알베리오네 신부의 탐구에 더할 나위 없는 또 다른 기여는 코르넬리오 크리그의 「신학 방법론과 학술적 백과사전Enciclopedia scientifica e metodologia de le scienze teologiche」 번역서49 출간이다.

백과사전에 소개된 통합적 지식50, 양성 주기51와 방법론52에 관한 크리그의 가르침은 알베리오네의 인품과 작품 전체에 깊은 획을 그었다.

특히 DF에 관해서는 윤리신학의 세 가지 방법53에 대한 크리그의 가르침을 염두에 두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신비적 방법54에 관한 그의 숙고를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50

[DFst 14-16.40-41] 20세기로 넘어가는 밤의 체험이 알베리오네 신부의 영성 생활과 사명의 으뜸가는 원천을 이룬다면, 스보보다의 작품과 크리그의 작품은 성숙함과 방향 제시를 위한 결정적 요인이었음이 의심할 여지없다.55

51

[DFst 21-23] 그러므로 알베리오네 신부가 사제생활 초년에 어느만큼 열정적으로 부르심에 응답하려 했는지, 그리고 하느님께서 한걸음 한걸음 당신 계획을 향해 그를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확인할 수 있다. “활동과 기도는 정부·학교·법률·가정·계층 간의 관계, 그리고 국제관계를 회복시키려는 그리스도교 사회활동으로 방향지어졌다. 길 진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가 세계를 통치하시기를!”(ADds 63)

52

[DFst 37] DF를 읽을 때 알베리오네 신부의 이러한 여정을 염두에 두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조명의 길 해석에 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53

1.2 “너희는 나에게 사제들의 나라가 되고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탈출 19,6)

[DFst 18-19] 알베리오네 신부는 사건과 사람들을 통하여 많은 체험을 쌓아가며, 신학생으로서 그리고 젊은 사제로서 다양한 직책을 수행했다. 그가 지녔던 가장 확고한 자세는 하느님께서 몸소 가르쳐주시도록 자신을 내맡겼다는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자기 활동에 대해 많은 불완전함, 결점, 오류, 부족과 의심을 지니고 있으므로 이 모든 것을 하느님 자비의 손에 맡기고 인도하시도록 자신을 의탁해야 한다. 그는 결코 섭리의 손길을 강요하지 않았으며, 하느님의 표지를 기다렸다.”(ADds 45)

54

[DFst 19-20] 특히 영적 지도신부는 알베리오네 신부가 하느님의 행동 양식을 인식하도록 이끌어 주었고, 하느님의 역사하심에 응답하는 방식도 깨닫게 해주었다. 그가 말년에 지나온 삶의 여정을 회고하면서 분명하게 밝힌 것은 그 출발선상에 이미 신앙의 지혜가 있었다는 점이다. “섭리는 하느님의 일반적인 방법에 따라 작용했다. ‘힘차게 그리고 감미롭게fortiter et suaviter’, 곧 당신 목적에 따라 길을 준비하고 한데 모으며, 비추어주고 필요한 도움으로 감싸주며, 평화롭게 당신의 때를 기다리게 하고, 언제나 구유에서 시작하게 했다. 은총은 본성과 쉽게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럽게 작용하지만 분명 두 가지 모두를 사용한다. 다른 한편으로 하느님의 손길을 강요할 필요는 없다. 다만 깨어 있고, 인도하시도록 내어맡기며 여러 가지 임무 수행에 있어 정신, 의지, 마음, 육체적 힘을 기울여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충분하다.”(ADds 43-44)

55

[DFst 93-95] 알베리오네 신부가 자신을 “인도하시도록 내어맡기는 것”은 그 시대 출판의 배경이던 교회·사회적 환경 안에서 움직이려는 노력으로 실현되었다.

이러한 점을 ‘노트 LV01’에서 볼 수 있다. 여기에는 1913년 5월 “콘스탄티누스 대제 칙령”에 관한 그의 묵상 스키마가 담겨 있다.56  ‘공책Quaderno 61’(=Q061)에는 강의의 네 가지 요점이 있다. 곧 “콘스탄티누스 희년 - 고대 박해”(Q061, 15쪽); “콘스탄티누스 희년 - 현대적 박해”57(Q061, 16쪽); “희년 대사”(Q061, 18쪽); “콘스탄티누스 희년.”(Q061, 31쪽)58

56

[DFst 85] 이 문헌들은 알베리오네 신부가 수도회 창립을 위해 모든 것이 무르익었다고 느낀 시기에 관한 증언을 회상시킨다. “1913년, 염원의 실현을 향해 첫발을 내디뎠다. 철학과정에서 배운 역사, 특히 신학과정에서 배운 교회사는 여러 나라의 고통과 필요, 두려움과 희망, 특히 금세기의 필요성에 상응하는 일과 수단의 필요성을 아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두 개의 기도문을 작성했는데 하나는 이탈리아를 위해, 다른 하나는 다른 나라를 위한 것이었다. 이를 위하여 하나의 수도회를 일으켜 주시라고 주님께 청했다. 자카르도 신학생의 지도로 모든 신학생이 이 기도를 바쳤다. 마침 교회에서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평화 선언 1600주년을 거행하는 때였으므로 신학생들은 주님께 청하는 바를 더 잘 이해했다.”(ADds 101-102)

57

[DFst 44-48] 처음부터 알베리오네 신부는 몇 가지 기본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곧 식별과 승인에 복종하게 하는 하느님의 빛, 본성과 은총 사이의 충만한 통합 원칙에 따라 방향을 정할 것, 하느님의 때를 기다릴 것, 항상 구유에서 시작할 것, 시작은 점진적으로, 발전에 있어서는 만족할 줄 모르는 도전 정신으로 임할 것.

58

[DFst 88.93] 알베리오네 신부는, 하느님께서 먼저 드러내시어 끊임없는 정화작업과 빛을 찾게 하시는 가운데 그에게 책임을 맡기신 계획을 실행하기 위하여 때가 무르익었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지방과 도시의 사목자들 사이에서 사목자로서, 저술가로서, 설교가로서 이미 그 계획을 시작하고 있었다.

마치 이방인들 사이에 이스라엘처럼, 사도시대 교회처럼, 여정중에 있는 하느님 백성 사이에서 그는 사제직의 새로운 면모를 온전히 갖추었다. “글을 쓰는 사제와 그 글을 증가시키고 보급하는 기술적인 일을 하는 수사가 있다. 이것은 좋은 일이다. ‘여러분은… 임금의 사제단… 거룩한 민족이다.’”(ADds 41; 참조: 1베드 2,9)

59

1.2.1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Quærite… primum regnum Dei: 마태 6,33)

[DFst 85-92] 알베리오네 신부는 1908년부터 임박한 바오로가족의 시작을 염두에 두고 젊은 남녀를 찾아내어 양성하기 시작했다.(ADds 103) 그렇게 해서 주세페 자카르도가 초대받았고, 그는 자신의 성소를 명확하게 밝혀나가도록 끊임없이 자극받았다.59

알베리오네 신부의 성소 활동은 신중하고 항구했다. “그는 신학생들의 영적 지도와 교사 임무를 겸하고 있었으므로, 20세기 초에 교회가 직면한 절박한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기가 수월했다.” (ADds 107)

알베리오네 신부의 마음과 정신이 명확했지만 그것은 말보다 행동에서 훨씬 잘 드러났다. “한편으로는 사람을 최고의 완덕, 곧 복음적 권고까지 실천하는 사람들의 덕인 최고의 덕과 사도적 삶으로 공덕을 얻도록 인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도직에 더 나은 일치, 더 나은 안정성, 더 나은 지속성, 더 나은 초자연성을 부여한다. 하나의 조직을 형성하되 수도생활 조직일 것. 이 조직에서는 힘이 결집되고, 헌신은 전면적인 것이 되며, 가르침은 더 순수해질 것이다. 정신, 힘,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 백 배로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얻을 것이다.’(마태 19,29 참조)라는 하느님의 상급으로 만족하며, 교회를 위한 일에 자신을 봉헌하는 사람들의 단체. 그는 이러한 사람들의 일부는 순례하는 지상교회에 속하고, 일부는 승리한 천상교회에 속한다고 생각하며 매우 기뻐했다.”(ADds 24)

60

[DFst 93-97] 자격을 갖춘 사람들 그룹에 맡겼던 교구 출판이 위기를 맞는 순간, 주교의 동의를 얻어 「가제타 알바Gazzetta d’Alba」의 책임을 맡은 알베리오네 신부는 결정적인 한 걸음을 내디뎠고, 5개월 후에는 소유권을 확보했다.

분야를 선택하자 새로운 방향을 잡아 착수 계획을 싹틔울 준비를 했다.

때가 무르익자 여러 출판물을 발간하기 시작했다. 「가톨릭 문화La Civilta Cattolica」는 사회 재건사업의 일환으로 양서출판의 중요성을 언급하며60 출판의 위력을 부각시켰다.61 그리고 1914년 1월 24일, 알바 교구의 참사위원 프란치스코 키에사 신부는 보좌신부 조반니 보르냐Giovanni Borgna의 「시대의 제왕, 출판에 손을 뻗다Il Re dei tempi, Mano alla Stampa62를 승인했다. 알베리오네 신부의 방향을 잘 표현한 이 책의 제1부는 개종과 뒤이은 가톨릭 언론 출판계에서 맡은 책임 때문에 ‘새로운 사울’로 드러나는 루이지 베이요Luigi Veuillot의 인물상을 그리고 있다. 제2부는 출판의 위력을 칭송하고, 사람들이 느끼는 책에 대한 ‘목마름’을 소개했다.63 그뿐 아니라 출판을 ‘응급 대학’64 ‘영원한 영화’65 ‘침략’66 ‘외치는 소리’67  ‘공개 법정’68 ‘시대의 제왕’69으로 표현했다. 제3부는 나쁜 출판물을 ‘파괴자’로 묘사했다.70 제4부는 양서출판을 촉진해야할 시급성에 열정을 기울이도록 호소하면서 선한 출판을 ‘새로운 계명’71 ‘애덕 행위’72 ‘다시 살아난 성 바오로’73 ‘사도의 마음’74이라고 표현했다.

61

[DFst 93-97] 알베리오네 신부는 1914년 은총의 계획에 자신의 온 힘을 기울이면서 새로움의 특성을 잃지 않는 가운데 서서히 창립의 걸음을 떼어놓기 시작했다.

1) 복음화를 위해 출판의 속성인 사회적 힘을 지녀야 했으므로 전통적인 신학교나 공동체가 아닌 새로운 인쇄분야에서 구체적인 걸음을 시작했다. “10년 동안 교구 신학교의 영적 지도신부를 역임한 38세 가량의 신학박사 야고보 알베리오네는 사회활동 분야에서 일하도록 불림받았음을 느껴 1914년 이 도시에서 인쇄학교를 창립했으므로 나는 이 인쇄학교를 간단하게 구두로 승인했습니다.”75

2) 가톨릭 대학 같은 형태를 원했으나 지식보다는 실천적인 면에 주안점을 두었으므로 검소하게 인쇄학교와 작업장을 시작했다. “복음이 사람의 모든 지식에 깊이 스며들게 할 것. 종교에 관해서만 이야기하지말고 모든 것에 대해 그리스도인답게 말할 것. 신학 · 철학 · 문학 · 의학 · 정치경제학 · 자연과학 등을 아우르는 가톨릭 종합대학과 같이 모든 것을 그리스도교 방식으로 제시하고, 모든 것을 가톨릭교회 관점으로 방향지을 것.”(ADds 87)

3) 새로운 시대의 요청에 따라 남녀 사도들을 양성해야 한다는 열망이 컸으므로 남녀 수도자로 양성하는 것보다 수도회 특성에 따라 일에 대한 양성을 우선하여 어린 직공과 기능공을 키우는 것으로 시작했다. “수도회는 대중에게 ‘인쇄학교Scuola tipografica’로 알려졌지만, 수도회 내부에서는 신학자 알베리오네 신부가 고안한 ‘성바오로수도회Pia Societa San Paolo’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그는 양서 출판에 전적으로 헌신할 사제들과 평신도로 구성된 수도회 창립을 처음부터 확실하게 구상하고 있었다.”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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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8월 20일에 이미 결성된 케라스카Cherasca 광장의 첫 젊은이들과 다른 젊은이들이 빠르게 합류했다. 이들의 양성은 알베리오네 신부가 맡고, 지도와 서원 준비는 조반니 바티스타 베르노코Giovanni Battista Bernocco가 맡았다.

알베리오네 신부는 인쇄학교의 빠른 발전을 위한 결의에 차 있었고,77 이를 위해 「비오 10세의 작은 교리서Piccolo Catechismo di Pio X 」, 「사제적 열의에 참여하는 여성La donna associata allo zelo sacerdotale」, 「본당 신자를 위한 기도서La preghiera del Parrochiano78 등의 초기 작품 출간에 직접 참여했다.

63

학생들의 수가 급증하자, 알베리오네 신부는 인쇄소와 학생들을 수용할 수 있는 더 넓은 장소를 물색했다. 1915년 6월 15일에 케라스카Cherasca에서 시작한 여성 작업실Laboratorio Femminile은 몇 달 뒤에 아카데미아 가街, via Accademia 5번지로 이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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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행보에서 몇 가지 큰 어려움을 겪은 알베리오네 신부는 젊은이들에게 창립의 참된 의미를 확고히 심어주었다. 알베리오네 신부의 계획은 남성 수도자 줄기, 여성 수도자 줄기, 남녀 평신도 줄기, 이렇게 세 개의 줄기로 나누어 창립하는 것이었다.79

65

[DFst 85-88] 사적 서원예식에 관해 신학생 자카르도가 묘사한 글을 읽어보면 영성적으로 얼마나 강렬했는지 추측할 수 있다. “아주 굳건한 믿음으로 성령께서 빛과 힘을 주시도록 청하는 ‘성령성가’ (‘오소서, 성령이여, 창조자시여’: Veni Creator)를 불렀다. 신학자께서는 자리에 앉아 계셨고, 우리는 한 사람씩 그분 앞에 무릎을 꿇은 후 하느님께 우리를 봉헌했다. 신부님께서는 각자에게 응답하셨다. 동료들의 말할 수 없는 경탄, 그 모든 것보다 더 형언할 수 없는 우리의 느낌, 우리의 기쁨. 우리 모두는 한곳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고 온몸이 떨렸다. 장엄한 입장, 신부님의 말씀, 중대한 그 순간이 우리를 온통 사로잡았다. 우리는 이제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임을 느꼈고, 그분께 결속되어 있음을 절감했다. 자유롭게 당신의 것이 되어 그분을 위하여, 양서 출판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우리의 삶은 오직 하나임을 느꼈다. 우리는 우리끼리, 또 신부님과 견고하게 일치되어 있었다. 같은 학교 학생들이 아니라 단일한 유기체들로 일치되어 있었고, 웅장한 건물의 살아 있는 초석들이 된 우리는 당신의 가장 비천한 이들을 세상 한 가운데로 들어 올려주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을 흠숭했다. 이어서 ‘열렬한 열정으로 일어나자’(Sorgiam con impetuoso ardore: 천상교회를 바라며 성모님께 바치는 이탈리아 신학교의 전통적인 노래-역주)를 힘차게 불렀다. 우리는 그야말로 열정으로 충만하여 성 바오로와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께 드리는 기도를 바쳤다. 우리 신부님은 당신의 모든 아들들을 축복해 주셨다. 우리의 지향들, 염원들, 모두가 지니고 있던 선한 의지를 축복해 주셨다. 감미롭고 사랑에 넘치는 아버지의 자비로움으로 축복하시는 그분의 말씀과 모습은 하느님의 사람이 누리는 흡족함과 깊은 감동을 드러내셨다.”80

66

[DFst 54.67ss] 알베리오네 신부는 요한복음 17장을 연상시키는 수도회의 죽음과 부활의 파스카 여정을 회상했다. “창립에서부터 우리 수도회는 대단한 풍파를 겪었지만 항상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잘 유지했습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우리 수도회를 원하신다는 가장 확실한 표지가 되어주었습니다. 모두가 그리고 특히 제가 도둑으로 고소되기도 했지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여러분을 위해 내어놓았으니 제가 도둑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주교님께 소환되고, 수도회를 닫아야 할 심각한 위험도 겪었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구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로마에 탄핵 소환되기도 했지만 활력이 넘치는 주교님이 계시지 않았더라면 그 난관을 어떻게 무사히 넘길 수 있었겠습니까. 시장, 도지사, 군수에게도 해명하기 위해 종종 불려다녔습니다. 훌륭한 분들도 대부분 우리를 이해하지 못해 거룩한 분들이라 올바른 지향을 가지고 있었지만 수도회에 대해서는 나쁘게 말했습니다. 여러분도 수도회에 들어오기 전에 비판의 소리를 들었으리라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많은 이가 정말 어려운 상황에 맞서 싸워야 했고, 심각한 난관은 그들을 걸려 넘어지게 했습니다. 그러한 풍파는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었고, 오직 하느님만이 주인이심을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님께서 더 힘든 일을 우리에게 보내주시도록 청합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사명을 위해 하느님께 불림받았다고 느끼는 젊은이들이 있고, 그들의 성소는 날로 성숙되고 확고하게 다져지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느님 뜻의 가장 강력한 표지입니다. 저는 이러한 사실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이를 의심하지 마십시오.”81

67

알베리오네 신부와 그의 젊은이들이 죽음과 부활의 파스카적 분위기에서 생활한 것은 전쟁 때문이기도 했다.82 그는 전쟁의 적대감에 찬 이러한 기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여러 가지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위험을 거쳤다. 곧 일신상의 문제, 경제적 문제, 서신과 구두를 통한 고소 등 갖가지 위험을 겪었다. 성 바오로는 언제나 구원이었다.”(ADds 164) 덧붙여 말하기를, “초창기에는 알바의 사회주의자들이 여러 차례 인쇄기와 수도원과 신문을 불사르겠다고 협박했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소년들이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또는 너무 놀라지 않도록 깨어 지키는 일이 허다했으므로 잠을 자지 않고 밤을 새우는 일이 많았다.”(ADds 172)83

68

[DFst 19-20.61-63]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의 모범을 따른 알베리오네 신부는 사람 중심의 영성에 감명을 받았기에 더욱 하느님과 이웃을 향한 열정으로 가득 찼다.84 모든 일을 긴 안목으로 시작했으나 오래전부터 그랬듯이 지금은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한가운데 놓여 있다. 하느님께 굳게 신뢰하고 맡겨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85 알베리오네 신부는 이제 그의 소년들과 함께 수도회의 활력과 생명의 끈이요 샘이 되는 강력한 체험을 살게 된 것이다. 그 체험은 하느님과의 약속Patto 또는 계약Alleanza의 영성으로 드러난다.86

69

[DFst 63-65.85.88] 알베리오네 신부는 엄숙하고 감격에 찬 태도로 수도회의 삶과 사명이 근본적으로 하느님 뜻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했다. “여러분에게 들려줄 아주 중요한 말이 있기에 장백의에 영대를 걸쳤습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시장이나 왕은 중요한 공적 행위를 할 때 망토를 걸칩니다. 그처럼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잘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아주 단순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우리는 자주 선한 출판을 촉진해야 할 필요성에 대하여 이야기했는데 이제는 많은 이들이 출판을 위하여 일합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명예를 위해서, 어떤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서, 또 어떤 사람은 취미로 시간과 에너지의 일부를 쏟을 뿐입니다. 우리는 취향이나 명예, 벌이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출판 그 자체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선한 출판 수단을 통하여 하느님을 찾습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 하느님과 양서 출판에 자신을 전적으로 봉헌하려는 충분한 의식으로 자신의 시간, 자신의 재능, 자신의 힘, 자신의 건강 모두를 헌신하려고 결심한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오늘 저녁 제게 서원을 하겠다고 청한 이들은 모든 이들 앞에서 서원을 하게 될 것입니다. 저에게 서원을 청했던 다른 사람들도 이미 사적 서원을 허락받았습니다.”87

70

[DFst 67] 여기서도 알베리오네 신부와 초기 바오로인들의 체험을 부각시키기 위해 약간 보충하는 것이 좋겠다. 글로 표현된 이 체험은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모습을 갖추실 때까지」에 들어 있는 ‘일치의 길’을 숙고하기 위한 열쇠가 되어줄 것이다.

71

[DFst 93-95] 앞서 다룬 주제에서 1918년 9월 29일에 이루어진 선한 출판 협력자회Unione Cooperatori Buona Stampa의 회규 승인을 하느님과 맺는 ‘계약’의 첫 결실로 여기는 것은 깊은 의미가 있다. 협력자회는 바오로적 사명을 위하여88 기도와 희사, 활동(저술, 양서 보급, 악과의 투쟁)으로 양서 출판에 기여하기 위해89 성 바오로의 보호 아래 결성되었다.90

72

[DFst 19-20.23] 어쨌든 「선한 출판 협력자회Unione Cooperatori Buona Stampa」 창간호가 ‘계약’의 파스카적 분위기에서 발간되었고(ADds 162-163 참조), 같은 맥락에서 마조리노 비고룬고 Maggiorino Vigolungo와 클레리아 칼리아노Clelia Calliano의 죽음이 있었고,91 이를 기념하는 예식에서 알베리오네 신부가 ‘어음’을 생각했다는 사실을 주목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 여겨진다. 어음에 관한 주제는 잠시 후에 살펴보려고 한다.

73

[DFst 63-64.93-96] ‘협력자회’ 회보는 오늘날 가장 소중한 원천 중 하나이고, 바오로가족의 초창기를 알기 위해 읽어야 할 좋은 자료다. 이미 표지에서 선보인 것처럼 복음화 활동92으로서의 양서 출판을 위한 열정을 보인다는 점에서 성 바오로와의 관계를 크게 강조해 준다.93 “말씀을 선포하십시오.”(Prædica verbum)94 “복음선포자의 일을 하시오.”(Opus fac evangelistæ)95 바오로가족이 ‘바오로 정신’96으로 물려받은 것은 이미 창립 초기에 충분히 표현되었다.97

74

[DFst 93-95] 회보에 실린 글들은 인쇄 사도직의 중요성, 창립 초기에 가졌던 이상,98 여성에게 적합한 사도직99이라는 생각을 계속해서 호소하고 있다.100

75

인쇄 학교 소개는 늘 같은 노선을 따른다. 남성은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단순 기술자들은 자격증을 취득하도록 하고, 학생 기술자들은 전문 교육을 받아 사회학 학위를 취득하도록 한다.101 여성 줄기 또한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학생들은 인쇄술을 배우고 초등 교사 자격증을 취득하도록 하고, 단순 인쇄기능공들은 인쇄술을 배우고 익히도록 한다.102 강사들은 창립을 도와주는 일보다는 회원들의 사도적 소질을 주의 깊게 살핀 다음 알려 주어야 한다.103

76

[DFst 19-29] 전쟁이 끝났으나 곧바로 수도회에 고요함이 찾아들지는 않았다. 여성 줄기의 공동체가 수사Susa에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으며, 적대적인 분위기가 여전한 상태에서104 라이노타이프를 구입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는데, 1918년 성탄 전야에 화재가 나서 놀라움이 극에 달했다.

77

[DFst 19-20.93] 평화를 되찾게 되었을 때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시기였다. 인쇄소에 화재가 발생한 며칠 후인 1919년 1월 6일, 알베리오네 신부는 당신의 젊은이들에게 하느님과의 계약을 제안했다. 그 다음날 “경애하올 신부님은 계약 내용을 읽으셨고, 원하는 사람은 마음속으로 되뇌게 했다.”105

어떤 내용이었을까? 자카르도 신부는 그의 일기에 마태 6,33에서 영감을 받은 내용임을 암시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는 이 복음구절을 1917년 2월 22일, 아직 알바 신학교의  신학생 시절에 처음으로 일기에 언급하며 인쇄 사도직에 연관시켰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106 1919년 3월 29일, 자카르도는 알베리오네 신부가 재정적인 문제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대답한 것을 인용했다.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를 찾아라.’(Ora quærite primum Regnum Dei)”107

78

[DFst 17.28.35.36.37.67] 물론 예수님의 이 말씀의 넓은 의미는 ‘성공의 비결’ 기도 안에서 잘 전해지고 있다. 방금 언급한 알베리오네 신부와 자카르도의 대화는 1920년 알베리오네 신부와 새 사제 자카르도 신부가 거행한 ‘계약Patto’에 포함된 ‘어음Cambiale’에 관한 설명이 되기도 한다. 이 어음에 “저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겠습니다.”(Quæro primum regnum Dei et justitiam eius)라는 의무사항에 사제 야고보 알베리오네와 사제 티모테오 자카르도가 서명했고, 성삼위께서 다음과 같이 화답하셨다.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성부, 성령.”(Hæc omnia adiicientur vobis… Jesus Christus, Pater, Spiritus Sanctus)

79

[DFst 15.67.96] 자카르도의 일기는 알베리오네 신부의 “먼저 하느님의 나라를 찾는다.”는 것이 인쇄 사도직에 대한 전적인 헌신 안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성성을 추구하는 것인지 그 의미를 깨닫게 해준다. 그뿐 아니라 10여 년 후 ‘계약’의 이러한 내용을 설명하기 위하여 그가 이 표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주목하게 해준다.108

80

수도회의 ‘계약Patto’ 영성은 토리노에서 코톨렌고Cottolengo가 창립한 “하느님 섭리의 작은 수도회Piccola Casa della Divina Provvidenza”의 정신을 인쇄 사도직에 적용한 것이다.109 곧 하느님 대전에서 사는 것이고,110 하느님의 나라를 찾는 것이며,111 모든 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Deo gratias’ 드리며,112 하느님 섭리에 감사하고113 매사에 죄를 두려워하는 것이다.114

81

[DFst 19-20.27-28.54.78-79.87-88] 알베리오네 신부의 이러한 특별한 신앙체험을 다음과 같은 표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때때로 시급하고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있었고, 모든 방책과 인간적 희망이 닫혔던 때도 있었다. 그는 기도했고, 죄를 멀리하며 청빈에 어긋나는 온갖 결함을 물리치도록 노력했다. 그러자 예기치 않은 해결책, 익명의 사람들이 보낸 돈, 융자 제공, 새로운 은인들과 그가 결코 설명할 수 없는 다른 일들이 일어났다. 해가 지나면서 분명히 파산할 것이라는 많은 사람의 예견, 미쳤다는 비난… 등이 사라졌고, 비록 힘은 들었지만 모든 것이 평화롭게 끝났다.”(AD166)

82

[DFst 13.85.95-96] 성성과 사도직115은 ‘계약Patto’을 통한 계약의 영성Spiritualita dell’Alleanza에 주안점을 두었다.116 모든 것은 이러한 정신으로 완수되었다. 성성은 알베리오네 신부의 걱정 가운데 첫 번째 관심사였다.117 “성소의 해”(1919)와 창립 “강화의 해”(1920)라는 두 가지 목표는 알베리오네 신부가 주력한, 새롭게 태동하는 성바오로수도회118를 위한 풍성한 결실의 시기를 가져왔다.

83

1.2.2 “나 너희와 함께 있다.”

[DFst 71-72.77-78] 새 성소자들의 필요성에 관하여 강조한 알베리오네 신부는 베르나차 가via Vernazza에 더 넓은 주거공간을 마련하여 1919년 5월에 젊은이들이 이곳으로 옮겼다.119 믿음은 선한 출판을 위한 수단과 성소자들을 배가시킬 것이다.120 기도생활에 대한 몇 가지 주제121와 매달 첫 주간 신심122에 대한 내용이 차츰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84

[DFst 93-95] 선한 출판 협력자회 회보는 본당신부들에게 본당주보123를 발행하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었고, 협력자들이 라이노타이프를 구입하기 위한 기금을 모으게 했고,124 본당마다 서적과 성물 위탁 판매소를 열도록 했다.125 도서관 촉진 활동126도 시작했다. “인쇄 학교 출판”(Edizione della Scuola Tipografica)127으로 홍보했지만, 나중에는 “인쇄 학교 출판사 -알바”(Scuola Tipografica Editrice-Alba)128라고 했다.

85

[DFst 85] 자카르도의 일기는 1919년 5월부터 성바오로수도회Pia Societa San Paolo라는 명칭과 함께 미래 바오로가족의 첫 씨앗인 “가족 형성”129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86

[DFst 84-85] 6월부터 수도회의 첫 사제수품을 위한 준비를 시작해야 했다. 주세페 자카르도는130 6월 22일 시종직, 6월 29일 차부제품, 9월 20일 부제품을 받았다. 알베리오네 신부는 병환이 깊어진 어머니를 간호할 수 있도록, 8일을 앞당겨 사제수품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주어 사제수품은 10월 19일에 거행되었다. 수도회 편의 준비를 위하여 알베리오네 신부는 10월 13일부터 20일까지 신학교에서 영신수련을 지도하는 동안 인쇄 학교 학생들에게 사제직의 고귀함에 대해 묵상하게 했다.131

87

1920년은 강화의 해로 특징지워진다.132 이제는 늘 염원해 온 대로 수도회에서 생활하면서 이미 가르쳐준 것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88

[DFst 93-95] 많은 기도와 기다림 끝에, 마침내 새 본부 건물을 위한 적합한 부지를 찾았으며133 건축에 필요한 업무를 분담했다.134 1920년 5월 30일, 알베리오네 신부는 「가제타 알바Gazzetta d’Alba」 책임을 자카르도 신부에게 맡기고, 신학교에서 맡고 있던 중책도 그만두었다. 주교에게 몇 명의 신학생이 수도회에 입회할 수 있도록 허락을 요청하는 기회에 인쇄 학교의 의미를 정확히 설명하는 편지를 썼다. “이미 여러 차례 말씀드렸듯이, 이 가족에 속하는 회원들은 특별 서원으로 자신을 주님께 봉헌함으로써 이 사명에 결속됩니다. 일부 회원들은 저술가 사제가 되려는 지향으로 신학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선한 출판이 사제 직무의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135

89

본부의 새로운 건축에 관해서 알베리오네 신부가 성찰과기도 안에서 그 계획을 어떻게 실현시켰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건물 배치에 관해 특별한 빛을 받았다고 보기 때문이다.136

90

[DFst 19-20] 선한 출판 협력자회 회보에서 하느님 섭리의 다섯 가지 길과 방법을 제시하면서137 인쇄 학교에 필요한 집을 위해 섭리에 신뢰한다며 협력자들의 관대함을 호소했다. 

새로운 사도직에 대한 호소에 사람들이 민감하게 반응하여 관대함이 넘치는 응답이 강물처럼 밀려왔다. 참여하는 방법에 대해 특히 실현하고 있는 행보를 활기 있게 하는 정신에 참여하고 싶다는 문의가 넘쳐났다.138

91

첫 수도원 건축은 1920년 6월에 시작되었다. 수도원 건물의 각 층은 준비된 기본설계에 맞추어 배정되었다. 1921년 4월, 세스토 산 조반니Sesto San Giovanni에서 구입한 인쇄기는 새로 지은 장소에 설치되었다.

92

[DFst 93-95] “강화의 해”에 앞서 언급했던 점진적인 설립의 원칙대로 실행해가던(DFin 62 참조) 준비 단계가 마무리되었다. 그와 같은 신중함 가운데 인쇄 사도직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사도직에서 오는 요청에 따라 수도회의 모습이 형성되어 갔다. 수도회는 새로운 성소와 하나의 사명 안에서 형성되는 모습을 지녀야 했다. “많은 사람에게 출판은 하나의 직업으로 간주되나 인쇄 학교에서는 출판을 ‘하나의 사명, 하나의 사도직’이라는 가치 있는 위치로 승화시켜야 한다.”139 더 정확하게 말해서 사제가 하듯이 선포해야 한다. “그러한 정신을 보존하고 양육시키는 것은 무엇보다 이 수도원에 근본적인 풍요로움을 베푸시는 섭리, 유일한 자본이며 최상의 선물인 섭리이다. 곧 하나의 사도직, 하나의 사제직이 되도록 지적, 윤리적 준비를 갖추면서 “출판을 사도직으로, 거룩한 사제직으로 여기는 것이다.”140 사제직 안에서 선한 출판의 저술가, 기술자, 보급자 역할을 하는 이들은 ‘추수할 것이 많다.’고 말해야 한다. 그것은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지역과 교구에서 새로운 요청이 잇따르고 있는데 이는 곧 시대의 요청이다. 각 지역과 교구에서 심각한 부족함을 느끼고 있다. 곧 선한 출판 사도들의 부족이다. 이 사명은 우리 모든 움직임의 영혼이요, 선의 위대한 현대 수단이요, 오늘날 사제 직무의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영혼들에게 참되고 풍성한 결실을 줄 수 있는 사제적 정신이 요청된다! ‘직업’으로 수행하는 것과 사도직을 실행하는 것은 아주 다르다! 이 때문에 ‘우리의’ 출판은 어디에서든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우리’의 저술가가 부족하고, ‘우리’의 인쇄기술자가 부족하고, ‘우리’의 보급자가 부족할 것이다.”141

93

[DFst 93-95] 이 사제직은 「만민에게ad gentes」(교회의 선교활동에 관한 교령/외방선교)에 나오는 선교사명의 사제직에 비견되고, 이 선교사제직에 여성들도 부름받았다. “믿지 않는 이들에게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서 그러하듯 선한 출판을 위해 여성 선교사들이 필요하다. 믿지 않는 이들의 지역에서 여성 선교사들은 남성 선교사들을 도와주고, 사제의 활동이 미치지 못하는 지역에서도 남성 선교사들을 보조해 준다. 선한 출판 활동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여성 본연의 임무가 많다. 많은 일 앞에서 젊은 여성들이 훨씬 더 일을 잘 해낸다. 다른 일에도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142

94

[DFst 78-79] 도전정신으로 가득 차 있던 알베리오네 신부는143 많은 의심을 받았다. 전쟁이 끝나자 알바 신학교로 돌아온 일부 신학생은 교구와 많은 마찰을 일으키면서 성바오로수도회로 적을 옮겼다. 수도회도 경제적인 피해가 컸고, 이러한 복합적인 상황은 수도원에 ‘폭풍’을 일으켰으며, 신뢰했던 친구들에게도 충격을 주었다.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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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78-79] 그 당시 이탈리아에 사회주의자들145과 파시스트들146의 열풍이 불어 닥쳐 그들 사이에 충돌을 빚었고147, 교회도 그 영향을 피할 수 없었다.148

알베리오네 신부와 인쇄소에 몇 차례 협박이 있었다는 것은 이미 말했지만 그러한 사건에 곁들인 일화가 있다. 우편으로 배달되던 신문들을 검은 셔츠단camicie nere(무솔리니가 이끈 파시스트 무장부대. 1919년 3월부터 검은색 셔츠를 입고 사회주의 정치 경제 노선을 파괴하기 시작함-역주)이 불태웠고,149 「가제타 알바Gazzetta d’Alba」 책임자 자카르도도 파시스트의 공격을 받았다.150

이러한 격동의 상황에서 인쇄 학교 소년들은 1920년 9월 초에 파업한 사회주의자들을 대신해서 토리노의 일간지 「일 모멘토Il Momento」의 인쇄 작업을 했다.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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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45-46] 이러한 위험에 직면하여 허약한 자신의 건강을 늘 걱정해야 했던 알베리오네 신부는 “중도에 방치될 위험을 안은 채 하나의 사명을 위해 사람들을 모집하는 일이 너무 무분별한 행위가 아닌지”(ADds 112) 스스로 질문을 던져야 했다. 그러나 “이 모두가 환상이 아닐까?”(ADds 113)라는 의문은 기도와 설명할 수 없는 몇 가지 체험을 통해서, 그리고 영적 지도신부의 말씀을 통해서 주저하지 말고 평화롭게 앞으로 나가라는 답을 얻었다.(ADds 11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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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39-40.46-47.49-50] 새로운 집으로 이사해야 할 중요한 때에, 이러한 ‘영적 번민’은 특별한 ‘꿈’을 통해 확약을 받았다. 꿈은 알베리오네 신부에게 수도회가 하느님의 일이라는 확신을 갖게 했다. 세월이 흐른 1938년 6월 1일에서 7일까지 알바에서 성바오로수도회의 연장자 사제들을 대상으로 영신수련을 지도하면서, 알베리오네 신부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내가 일을 쉬고 있던 어느 날, 수도원 건물 끝에 있는 바로 그 방(성 바오로의 집 건축 초기부터 프리모 마에스트로께서 사용하신 집무실)에서 본 것이 얼마나 선명한지 모릅니다. 천상 스승께서 거닐고 계셨고 그분 곁에 여러분 중 몇 사람이 있었는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나 너희와 함께 있노라. 여기서 비추기를 원하노라. 다만, 겸손하도록 애써라.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셨다고 생각되는 내용은 너희 죄를 뉘우치라….”(직역하면 ‘죄에 대한 고통을 가져라-역주’)152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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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39-40.46-47.49-50] 이 ‘꿈’의 정확한 날짜를 말하기는 어렵다.153 루이지 롤포Luigi Rolfo는 ‘아마 1923년 초 어느 달이 아니겠는가’라고 추정한다.154 가타리나 안토니에타 마르티니Caterina Antonietta Martini는 ‘확약의 은총’이라고 불린 이 꿈을 꾼 때를 알베리오네 신부가 7월부터 9월 초까지 베네벨로Benevello에서 심각한 ‘고통의 때’를 보내고 있던 시기로 본다. 어쨌든 1923년 제노바에서 성체대회가 거행된 9월 이전으로 보아야 한다.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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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39-40.46-47.49-50]  그렇지만 우리는 ‘꿈’이 그보다 훨씬 앞선 시기였을 것으로 보이는 몇 가지 증언을 확보하고 있다. 곧 성바오로수도회 질리Paolino Gilli 신부의 증언과 수도회 초창기부터 알베리오네 신부를 개인적으로 알고 지낸 에도아르도 보라Edoardo Borra 박사의 증언이다.

질리 신부는 다음과 같이 썼다. “인부들은 건축일을 하면서 계속 신학자의 지시와 명령을 받아 위치를 정했다. 건물의 주인격인 성당 자리에 대해 몇 마디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현관 층을 1층으로 셀 때 성당 자리는 3층에 있었는데, 건축 초기에는 프리모 마에스트로 집무실 위층이었다. 성당은 특별한 것은 없었다. 참석하는 사람들이 편하게 앉을 정도의 공간으로 충분했고, 세 개의 창을 통한 채광이 좋은 편이었다. 제단 위에 나무로 된 소박한 제대가 놓여졌고, 그 위에 성 바오로와 예수 성심과 성모님 성화를 걸었다. 성당 안은 항상 청결했다. 어느 날 아침 성당에 들어서자 감실 옆에 검정색 바탕에 두 줄의 금색 글씨가 붙어 있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나 너희와 함께 있노라. 나 여기서 비추겠노라.’ 그리고 얼마 후에 감실 아래쪽에 붙은 ‘너희 죄를 뉘우치라.’는 글귀를 보게 되었다. 신학자께서 며칠 동안 묵상을 지도하면서 설명해 주신 내용이었다.”156

알바의 유명한 의학박사 에도아르도 보라 교수는 알바에서 있었던 바오로 영성의 양성과정에 대해 아주 값진 증언을 했다. “알베리오네 신부가 작은 방에서 저를 맞아주셨는데, 그 방은 집무만 아니라 철제 침대가 있는 것을 보아 침실도 겸한 곳으로 보였습니다. 그분은 그 방에서 저를 환대해 주셨는데, 거기에는 책상과 작은 옷장도 있었습니다. […] 또 한 가지 아주 중요한 사실은 성당에서 그분과 만난 것입니다. 성당은 아주 작았는데 제대 위에 하얀 제대포가 깔려 있었고, 작고 소박한 감실 옆에는 성체등이 켜져 있었습니다. 몇 개의 장궤틀이 있어 그곳에 앉아 있던 저는 아주 특이한 것을 보았는데 아직도 제 머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감실 앞 제대 위에 두 장의 종이가 놓여 있었는데 한 장에는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적혀 있었고, 다른 한 장에는 ‘나 항상 너희와 함께 있노라.’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바로 이 좌우명, 알베리오네 신부의 삶의 원칙이 인쇄체로 아주 단순하게 종이에 쓰여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 문장이 ‘성 바오로 성당’ 중심제대 옆에 라틴어로 새겨져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Nolite timere) “나 항상 너희와 함께 있노라.”(Ego sempre voviscum sum)입니다. 저는 ‘성 바오로 성당’에 올 때마다 그 글귀를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제는 금으로 새겨진, 두 개의 웅장한 기념비처럼 된 글자가 그 두 장의 종이에 적혀 있던 것을 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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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39-40.46-47.49-50] 꿈의 시기에 관한 주제로 다시 돌아가서, 이 두 증언과 알베리오네 신부의 말씀에서 ‘이전ante quam’과 ‘이후post quam’라는 말을 찾아볼 때 이 둘 사이에서 꿈을 꾼 것임을 알 수 있다.

알베리오네 신부는 새 집의 ‘방’, 집무실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단언했다. 한편 질리 신부와 에도아르도 보라 교수는 “나 너희와 함께 있노라.”와 “여기서 비추기를 원하노라.”라는 글귀가 알베리오네 신부의 집무실 위층에 자리 잡은 성당에 이미 있었다고 증언한다.

따라서 ‘이전ante quam’은 첫 번째 성당에서 성체를 옮긴 날과 안뜰 중앙에 있는 두 번째 성당의 축복식 날인 1922년 6월 29일이다. ‘이후post quam’는 알베리오네 신부가 ‘꿈’의 체험을 한 장소인 새 집에 집무실을 마련한 시기다.

1921년 8월 10일에 베르나차 가`via Vernazza로 이전을 마쳤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지만, 질리 신부의 증언에 따르면 새 집의 입주는 훨씬 전에 시작되었다. 사실 7월 15일자 선한 출판 협력자회 회보는 새 집을 이미 방문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인쇄소를 1층에 설치했다고 하고, 게다가 2층 “계단 옆에 책임자 집무실이 있다.”고 표현하고 있는데 물론 신학자의 집무실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가능성을 종합해볼 때 알베리오네 신부는 이전 초기에 곧 7월 15일 전에 신속하게 집무실 이전을 한 것이다.

그런데 보라 교수는 여름에 알바에 갔었고, 그때 새 집으로의 이전이 막 이루어진 것으로 이야기했다. 땅이 몹시 고르지 않은 상태여서 다리로 쓰이던 나무판자 위를 건너가는 도중 물웅덩이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불편한 것들이 1923년 2월쯤에서야 협력자들에 의해 수습되었다고 하는데158 많은 사람이 드나들던 진입로가 몇 개월 동안이나 대책 없이 그렇게 방치되었으리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그가 처음으로 성 바오로 집을 방문한 것은 여름으로 보아야 하고, 다시 말해 이 시기는 1921년 7-8월 사이 또는 더 늦은 9월로 추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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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39-40.46-47.49-50] 그러므로 ‘확약의 은총’이 1921년 여름에 일어났다는 것, 곧 새 집으로 이사한 초기에 일어났다는 것이 더 타당하다. 이사는 알베리오네 신부를 두렵게 했던 ‘종합적인 주변 상황’을 만들어낸 사회주의자들과 파시스트들의 시선을 끄는 일이었다.

천상 스승께서는 알베리오네 신부와 막 태어난 그의 가족에게 당신을 계시하시면서, 수도회에 저항할 수 없는 하느님 가호의 인장을 남기셨다. “사회주의자들도, 파시스트들도, 세상도, 순식간에 공황에 빠진 채권자의 다급함도, 조난도, 사탄도, 정욕도, 너희의 온갖 부당함도…, [너희를 방해할 수 없을 것이다.] 오직 내가 너희와 함께 머물도록 죄를 지어 나를 내쫓지 마라. ‘나 너희와 함께 있노라.’ 곧 내가 원했고, 나의 것이며, 내가 양육하고, 가장으로서 나 자신도 가족의 일원으로 너희 가족과 함께 있다. 동요하지 마라! 많은 어려움이 있더라도, 오직 내가 항상 너희와 함께 머물도록 하라! 죄를 짓지 마라.”(ADds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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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63-65] 이러한 ‘확약의 은총’은 선한 출판 사도직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알리는 데 주력했던 「선한 출판 협력자회」 1921년 7월호의 본질적인 내용을 비추어 주었다. 이 회보는 바오로가족의 초창기를 잘 알려주는 기억할 만한 기록을 남기면서 새로운 사도직에 관해 아주 아름다운 글을 실었다.159

7월호 회보는 알베리오네 신부의 진정한 계획을 드러내주는 “하느님의 활동. 알바 인쇄 학교의 집”이라는 제목으로 장章을 시작했다. 곧 “이제 시작할 때이다.” “그때는 알바 인쇄 학교를 시작한 지7년이 된 1914년 8월로서 모든 준비, 수습, 견습을 위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목적에 맞는 건물도 마련되었고, 충분한 수의 사람들이 선한 출판을 위하여 ‘영혼’, ‘의지’, ‘마음’으로 하나의 사회,수도회처럼 서로 결속되어 있었다. 하느님 나라와 당신의 은총만을 찾을 때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이루시고 그르침 없이 행하시리라는 것을 어느 정도 깨달은 때였다. 학문과 예술 분야의 선생들은 이미 있었고, 주님께서 필요한 만큼 보내주신 좋은 성소자들도 있었다. …그러므로 이제 시작해야 할 때이다. 그 집은 “성바오로수도회Pia Societa San Paolo”라는 명칭을 가지게 되었고, 점차 준비기를 벗어나 남성 부문과 여성 부문으로 분리되었으며, 노동하는 사람과 일을 겸한 공부하는 사람으로 나뉘었다. 관심 있는 이들을 위하여 규칙서의 요약을 알려 주었다.”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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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49.59-61] 수도회는 ‘하느님의 업적’이다. “하느님의 나라와 당신의 은총을 찾을 때 하느님만이 모든 것을 이루시고 그르침 없이 행하시리라는 것을 조금은 깨달았다.” 스승 예수와의 만남이라는 체험에서 솟아나온 이 확신은 수도회 전체에 참된 성령강림의 불을 지폈다.

이것은 열두 사도들과 연관된다. 사도들 위에 “갑자기 하늘에서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사도 2,2) 처음 들려온 그 ‘소리’가 사도들의 영혼에 십자가의 고통 체험을 새롭게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거센 바람은 곧 불꽃 모양의 혀들’로 나타나 갈라지면서 사도들을 ‘성령으로 가득 차’게 만들었다.(사도 2,2-3 참조)

그 마지막 몇 개월 동안 겪었던 상황은 알베리오네 신부와 자카르도 신부가 성 바오로 서간 내용의 직접 주체가 되어 산 것으로 보게 된다.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주시려는 것입니다.”(2코린 4,7) 또 다음과 같은 표현도 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약함도 모욕도 재난도 박해도 역경도 달갑게 여깁니다. 내가 약할 때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2코린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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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85-86.91-92] 그야말로 폭풍 속에 있으면서 “하느님의 나라와 당신의 은총을 찾을 때 하느님 만이 모든 것을 이루시고 그르침 없이 행하시리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므로 알베리오네 신부는 자신의 생각에 빠져 있기보다는 하느님의 자비와 지혜의 표징 앞에서 수도회가 인준을 받아 교회 조직 안에 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했다. 이같은 목적을 위해 알베리오네 신부는 일치와 공동책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자카르도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수도회는 하나여야 한다. 부서장, 마에스트로, 고해신부, 신학자에 대한 신뢰, 도움, 기도의 긴밀한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 수도회에 장엄한 회헌을 주어야 하고, 이를 중대한 것으로 여기게 해야한다.”161 더 나아가 이렇게 쓰고 있다. “신학자께서는 지불에 대한 책임, 양성책임, 수도회 발전에 대한 책임을 함께 느끼고 나누기 위해 나이 많은 회원들을 모이게 하셨다. 수도회는 이미 형성된 집이 아니라 형성되어 가는 과정 중에 있는 것이다. 수도회는 이미 형태를 갖춘 것이 아니라 과정 중에 있는 것으로 여겨야 한다. 이제 더 많은 은총과 더 많은 덕성이 요청된다. 우리 편에서는 관대함과 전적인 헌신이 필요하다. 하느님께는 아무것도 감추어서는 안 되고, 아무것도 거절하지 말아야 하며, 온전히 공유해야 한다.”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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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사도시대가 되살아나다

[DFst 85-86] 새 집에서의 정착은 도착점이기보다는 오히려 하나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1921년 11월 23일, 성바오로수도회의 기원과 발전에 관한 짧은 보고서에서 알베리오네 신부는 레 주교가 거행하는 분원 축복식 날짜를 언급하면서 종신서원식과 성바오로수도회 회헌이라는 두 가지 사건을 연결했다. “기쁘게 나란히 이루어질 이 두 가지 감명 깊은 예식은 영신수련의 마지막 날인 10월 5일에 거행되었다. 장엄하게 현시된 예수님 앞에서 “오소서 성령이여Veni Creator”를 부른 다음 성바오로수도회 회헌을 든 이가 앞으로 나아갔고, 나이 든 14명의 학생들이 정결, 청빈, 순명, 로마 교황에 대한 충성의 거룩한 서원으로 결속되어 선한 출판 활동에 주님에게서 받은 모든 것, 자신들의 모든 지식, 건강, 활동의 봉헌을 엄숙하게 약속하고 책임을 다할 것을 선언했다. 감동적인 분위기에서 책임자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이 거룩한 서원을 받아들였고, 관대한 젊은이들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이 지상에서 백 배의 상급을 받을 것이고, 저 세상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게 되리라고 약속 했다. 서원양식은 다음과 같다. “지극히 거룩하신 성삼위와 원죄없이 잉태되신 사도의 모후, 성 바오로 앞에서, 서명자들은 주님께 받은 선물을 성바오로수도회에서 선한 출판 활동을 통하여 온전한 삶으로 봉헌하고, 매년 청빈, 정결, 순명과 로마 교황에 대한 충성의 거룩한 서원을 갱신합니다.”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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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85.91] 자신의 보고서를 끝맺으면서 알베리오네 신부는 하느님 사업에 큰 책임을 맡고 있다는 확신을 강하게 드러내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성바오로수도회는 주님의 가시적인 보호를 받고 있다. 주님께서 원하셨고, 주님께서 이끌어 주셨으며, 주님께서 현재 상태에 이르게 하셨다. 수도회는 남성 줄기의 회원 14명, 여성 줄기의 회원 8명의 서원자가 선한 출판 사도직을 위해 봉헌했다. 수도회에는 지성적으로, 전문적으로, 영성적으로 이러한 선한 매체를 만드는 수도자로서 헌신하기 위해 잘 준비된 남녀 학생들이 있다. 수도회는 참으로 유익하고 안정된 선에 대한 창안이 넘치고, 생계수단을 가지고 있으며, 아주 광범위한 선의 활동 분야를 열었고, 회원들은 (서원과 공동생활을 통해서) 자신의 성화와 영혼들의 구원을 통하여 오직 전 생애에 걸쳐 하느님의 영광만을 드높이려는 활기찬 열망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열망은 아주 오래전부터 그들 안에 간직되어 있었으며, 몇 년 간의 실습으로 효력이 검증되었다.”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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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44-48] 알베리오네 신부는 사도들의 체험과 온전히 하나가 되었다. 그는 1921년 12월 1일, 레 주교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성소의 내적 판단기준은 고해신부에게 있고, 외적 판단은 지혜, 성성, 학식을 갖춘 사람에게 맡겨진 문제입니다. 그러한 문제에 관해서는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 위해 권고되는 모든 수단을 사용했습니다. 1년-2년-3년-4년-5년 전부터 검토하고 기도하고 충고도 해왔습니다.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아직도 이러한 시험이 존재합니다. 오랜 기간에 걸쳐 가부를 결정했습니다. […] 그뿐 아니라 인쇄학교를 시작하기 전에 참사위원 알라마노 주세페Allamano Giuseppe, 코랄리아Coraglia 신부, 레포Reffo 신부, 마피Maffi 추기경, 시보나Sibona 신부, 참사위원 키에사 신부에게 설명하고 조언을 구했습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 이 분야의 사람들과 길게 이야기를 나누었고, 거명되기를 원하지 않는 덕망과 존경을 받는 다른 분들과도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 인간적인 판단기준에 상응하지 못한 경우 그 성소가 하느님의 뜻인지, 아니면 여러 길 중에 어떤 길이 적합할지 저는 모릅니다. […] 이렇게 보면 하느님께서 성바오로수도회를 원하셨다는 것을 확신하고 또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금세 해체될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들의 활동에 의구심이 들 때 했던 가말리엘의 충고가 적절하다고 여겨집니다.(사도 5,35-39 참조-역주) 곧 이러한 활동이 사람에게서 나왔으면 지속되거나 성장 할 수 없습니다. 저절로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에게서 나온 활동이라면 당신 영광을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오직 그리고 항상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존경하는 장상들, 서명자, 성바오로수도회 회원 모두의 완전한 뜻입니다.”165

108

[DFst 68-70] 사도직 활동의 시작에 관한 이야기는 알베리오네 신부에 게 의미 있고 감동스러우며 구체적인 것이었다. 또한 티모테오 자카르도의 일기에서 볼 수 있듯이 교황과 직접 연관된 문제였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표징이다. 메달의 앞면에는 성 베드로와 성바오로, 뒷면에는 교황님이 새겨져 있다. 오, 만일 그분이 하신 모든 말씀을 내가 기록하지 말아야 한다면, 아버지 신부님께서 교황님을 통해 우리를 성장시켜 주시는 부드럽고 확고한 사랑을 결코 묘사할 길이 없을 것이다. 신부님은 기회 있을 때마다 열정적으로 말씀해 주셨고, 차분하고 진지한 그분의 말씀은 무척 설득력이 있어서 항상 새롭게 귀에 쏙쏙 들어왔다. 그분은 매번 아주 유익하고 효과적인 말씀으로 우리 영혼을 감동으로 채웠다. 그분은 우리가 교황님을 사랑하기를 바라셨고, 그 사랑이 신학생들에게도 불어넣어지고, 사람들 가운데 생생하게 살아 있기를 원하셨다. 신학생들에게 아주 여러 번 당부하시길, 매년 적어도 한 번은 교황님에 관하여, 한 번은 선교에 관하여, 한 번은 선한 출판에 관하여 강론하라고 말씀하셨다.”166

교황을 만나기 위해 로마로 향한 성 프란치스코와 거의 같은 방식으로 알베리오네 신부는 1922년부터 레 주교가 성바오로수도회에 관하여 작성한 추천서를 수도회성에 제출하기 위하여 로마로 가는 여행을 했다.

교황 베네딕토 15세는 가톨릭 출판물 보급을 약속했고 격려해 주었으며 “국립 선한 출판회Opera Nazionale della Buona Stampa”를 제정했다. 알베리오네 신부는 이제 막 시작한 사도직에 대해 교황 승인을 얻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1월 2일부터 8일까지 우리의 책임자 신부님께서는 수도회를 위하여 로마에 계셨다. 교황성하의 개인 알현이 윤허되었고, 그분 생애의 마지막 기간 중에 알현하는 행운을 누렸으며, 그분의 축복을 우리에게 전해 주셨다.”167

1922년 1월 22일, 교황 베네딕토 15세의 별세는 수도회에 고통스러운 시련이었다. “교황께서 살아계시던 마지막 기간에 우리의 책임자 신부님은 이러한 사명을 생명처럼 껴안은 젊은 남녀들에 대해 말씀드렸다. 교황 베네딕토 15세께서는 기쁜 마음으로 이 소식을 반기셨다. 교황은 당신께 이 사실을 전하는 이를 감동어린 눈길로 바라보시며 넘치는 애정으로 그와 그의 수도회 전체, 그의 협력자 모두에게 축복을 내리셨다.”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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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43-44.49-50.95-97] 한편 수도회 안에는 사도시대가 되살아난 듯한 확신의 분위기가 감돌았다. 성바오로수도회는 선한 출판의 남녀 선교사들의 양성을 위한 신학교로 알려졌는데169 그러한 배경에는 사도시대가 기준이 되어 주었다. “그리스도교 초기는 그리스도교의 황금기였다. 복음의 다음 대목을 읽을 때면 늘 감명을 받아 열정적으로 읽게 된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배움터에서 그분께 ‘스승님, 저희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말씀드렸을 때, 또 군중이 천상 스승의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여들었을 때, 젊은이가 신뢰를 가지고 스승께 다가와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을 때. […] 사도들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주위에 모여 있는 광경은 매우 장엄하다. 성모님은 어머니요 스승이시며 사도의 모후셨고, 사도들을 비추셨고 이끄셨으며 기도하셨다. […] 처음으로 성령께 드리는 가장 중요한 9일 기도, 곧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께서 주관하신 사도들의 첫 그리스도교 성령강림절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 그뿐 아니라 성 바오로께서 복음전도 여행을 끝내갈 때, 아레오파고의 대가들이 그 당시 가장 큰 집회에서 새로운 사상을 설명하도록 그를 초대한 것에 대한 사도행전의 묘사는 깊은 감동과 교훈을 준다. 또한 그가 개종시킨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해질녘부터 한밤중까지, 그리고 새벽까지 그분의 말씀을 들으려고 머물렀다. […] 사도시대가 되살아났다.”170

110

[DFst 48-53.93-97] 성바오로수도회 남녀 회원들은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다. “사람들이 더 알고 깨달으려는 끊임없는 갈증으로 신문과 서적을 갈구한다. 어린이들, 성인들, 노인들도 이러한 매체를 요구한다. 지성인들과 육체노동자들도 요구하며, 선교지의 주교들과 선교사들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좋은 책들을 많이 기증해주기를 요청한다.”171

한편 다음과 같은 교회의 ‘절박한 명령’을 듣게 된다. “가톨릭 일간지를 창간하고, 선한 출판물을 보급하라! 오늘날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선한 출판을 필요로 하고 있다. 선한 출판 사도직은 축복을 받으리라!”172

그리스도교 초창기처럼 오늘날에도 새로운 사도들은 천상 스승께 가까이 다가가고, 사도의 모후에게 인도받으며, ‘가장 신속한 매체를 통해’ 복음을 선포하기 위하여 성 바오로가 한 것처럼 방향을 잡아나가며 응답을 드린다. “우리가 사도들처럼 먼저 스승께 일치해 있다면 구세주의 가르침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도직을 하면서 성장시켜야 할 신심이다. 사도의 모후 마리아께 대한 신심도 발전시켜야 한다. […] 사도의 모후는 새로운 사도들이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도록 인도하실 것이다. […] 오늘날 가장 심각한 종교·사회·정치 문제를 그리스도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힘쓰고 있는 모든 이들의 시선이 사도요 박사며 설교가, 이방인의 스승, 예수님의 수인, 성령의 기사인 성 바오로께 향하고 있다. 가장 신속한 매체를 통하여 선을 행하고, 대중에게 순수한 그리스도교 정신을 침투시키기를 열망하는 이들, 사도 바오로의 정신을 온전히 알고 그에게 간구하며 깊은 신심을 지닌 이들이 그에게로 향하고 있다. 성 바오로께 대한 신심은 이 사도직의 시대에도 이에 헌신하는 사람과 경건하게 그리스도교 삶을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 사이에 확장되고 확산될 것이다.”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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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48-51.52-53.93-97] 알베리오네 신부가 받은 영감의 풍요로운 원천은 젊은 시절부터 하느님 말씀의 빛을 받아 시대가 호소하는 바를 숙고하고 기도하는 것에서 온 것이다. “지성과 윤리, 개인과 사회와 연대하여 전 세기에 걸쳐 모든 나라에 유포된, 사고의 비가시적인 세계의 원동력이며 애정을 지탱해 주는 진정한 힘은 바로 말씀의 힘이다. 인간이 말하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SC 155) 말씀의 경청은 복음이 사도들과 제자들, 남자들과 여자들에게 둘러싸인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다는 깊은 확신을 알베리오네 신부 안에 뿌리내리게 했다. “교회 안에서 우리가 경탄해 마지않는 신앙과 열정의 숭고한 광경 가운데 하나는, 다른 무엇보다도 경이롭게 신앙을 전수하는 여성의 역할이다. 신앙과 윤리의 여성사도이다. —`예수님과 당신의 배움터 곁에서 우리는 당신의 가르침을 전하는 여성들을 찾아볼 수 있다. 비록 이들이 백성의 여왕들이요 귀부인들이며 가난한 여인들이고, 아내요 어머니 또는 딸들이더라도 이들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확산시키기 위하여 온 힘을 기울였다.”174 그러므로 남성들뿐 아니라 여성들도 사도직을 수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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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53-54] 여성의 역할을 뚜렷하게 부각시켜주는 복음 읽기 심화에 알베리오네 신부는 많은 작품을 이용했다. 여기서 우리는 그에게 많은 영감을 불어넣어준 두 인물을 떠올리게 된다. 그 중의 한 사람은 교회사175 분야의 권위자로 알려진 로르바흐R.-F. Rohrbacher176이고, 다른 한 사람은 조아키노 벤투라Giocchino Ventura177이다. 이어서 보겠지만, 알베리오네 신부는 이 두 저자의 작품을 알고 있었으므로 이 작품들을 읽도록 권유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113

[DFst 40-43.51-53.58-59.74-76.78-79.93-95] 특히 G. 벤투라에 대해서는 알베리오네 신부가 열정을 갖고 관심을 쏟던 여러 주제들 때문에 더욱 큰 매력을 느꼈다. 곧 하느님 말씀에 중요성을 둔 점, 그리스도 생애의 신비 묵상, 기도, 성체성사, 마리아 신심, 교회 교부들과 토미즘에 관한 계속적인 언급, 이성과 신앙의 관계, 복음화 활동과 사회생활에서의 여성의 중요성,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 등이다.178

114

[DFst 58-61.78-79.83-85.93-95.99-100] ‘마르타와 (마리아) 막달레나를 방문하신 예수 그리스도’179에 관한 강론에서 DF와 알베리오네 신부의 사상, 여자 수도회들 안에 부여한 방향성에서 관상의 삶과 활동의 삶이라는 복합적인 삶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성이 잘 드러난다. 기도라는 주제를 다룬 강론은 하느님께 대한 봉사의 조건과 활동, 기도의 필요성과 중요성, 그리고 그 상급 또는 ‘보상’에 대해 숙고하면서 성 바오로의 ‘위대하고 고귀한 꼭 필요한 한 가지 것에 대한 가르침’을 소개하고자 했다. “이제 여러분이 죄에서 해방되고 하느님의 종이 되어 얻는 소득은 성화로 이끌어 줍니다. 또 그 끝은 영원한 생명입니다.”(로마 6,22)

벤투라는 성성이 마르타와 마리아와 라자로의 집을 하느님 아드님께서 좋아하실 분위기로 만든다는 사실을 강조한 다음, 하느님께 대한 봉사가 되기 위한 첫째 조건으로 죄를 거부해야 하며, 활동이 하느님께 참된 봉사가 되는 여정을 논리정연하게 묘사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의지적으로 그분을 정신 안에 모시는 것은 신앙을 통해 그분께 이성적으로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그분을 도덕적으로 마음 안에 모시고 그분의 성화은총을 보존하는 것은 그분께 사랑을 통한 존경의 표시다. 그분의 거룩한 만찬 자리에서 친교를 나누면서 몸 안에 그분을 받아 모시는 것은 정결과 극기를 통해 몸으로 그분께 존경을 드리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것은 상징적으로 그분을 집 안에 모셔들이고 사랑을 통해 그분께 존경을 드리는 일이다.”180

115

[DFst 58-61.78-79.83-85.93-95.99-100] 벤투라는 마르타에게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해 교회 교부들이 설명한 세 가지 해석을 소개하는데 그것은 역사적 또는 문학적·수덕적·비유적 해석이다. 그의 역사적 의미와 수덕적 의미의 해석이 특별히 알베리오네 신부의 제안에 근접해 있지만, 여기서 비유적 해석 몇 가지를 되짚어보는 것이 유익하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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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58-61.78-79.83-85.93-95.99-100] 우선적으로 활동생활과 관상생활의 상징을 고찰해야 한다. “그 강의에서, 천상 스승께서는 영원한 행복을 보장하기 위하여 확실하고 필수적인 유일한 조건은 바로 모든 것 위에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 마르타는 우리가 이웃에 대해 가져야 하는 사랑의 모델이고, 마리아는 우리가 하느님께 대해 가져야 하는 사랑의 모델이다. 성 그레고리오와 다른 저명한 해석가들에 따르면, 마르타는 그의 성실함을 통하여 활동적인 삶을 표현하고 있고, 마리아는 그의 완덕 안에서 관상적인 삶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 그레고리오는 주님께서 마르타의 분주함을 질책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리아의 태도를 칭찬하신 것이라고 말한다. 곧 주님께서는 활동적인 삶의 공덕이 참으로 크지만, 관상적인 삶의 공덕은 그보다 더 크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 결국 진정으로 필요한 것, 곧 실천적이고 완벽한, 모든 이에게 전제되어야 하는 공덕은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맡기고, 하느님만을 바라보며, 그리스도인의 영혼이 사랑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로 퍼져 나가 그 신심의 열성이 모든 이의 필요에 뻗어나가는, 오직 그러한 삶이다.”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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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58-61.78-79.83-85.93-95.99-100] 특히 관상적 삶에 관한 고찰이 감동적이다. “인간적 비참함에 대해 유난히 예민하고 측은지심이 깊어 그 영혼들을 구원하기를 열렬하게 갈망하는 영혼들, 사람들 사이에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열렬히 갈망하는 영혼들, 위험과 악, 상실을 깊이 느끼며 인류와 교회의 운명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는 영혼들은 은수자들과 관상가들 가운데서는 발견되지 않는다.”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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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58-61.78-79.83-85.93-95.99-100] 기도의 힘에 관한 단락은 알베리오네 신부의 깊은 확신을 반영한다. 곧 기도가 사도의 활동을 풍요롭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느 날 당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마태 9,37-38) 세상이라는 광대한 밭에서 영혼들을 경작하고 수확해 교회의 곡물창고에 쌓는 훌륭한 주교, 사제, 선교사, 사도들을 양성하시는 분이 하느님의 영이라면, 그렇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기도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기도는 복음을 위해 일하는 일꾼을 증가시키고, 그들의 노고에 천상적 축복을 내려주어 많은 결실을 맺게 한다. 특히 결코 멈추지 않는 기도와 희생을 담은 온전한 관상적 기도는 면학과 노동을 함께 드높여 삶 전체가 아름다운 향기를 풍기며 하늘로 올라가고, 지상에서는 비참하고 추한 것들을 덮어주는 모든 도움과 은총을 이끌어낸다. 이러한 관대한 영혼들은 사람들에게 하느님에 대해 많은 말을 하지 않는 대신에 하느님께 사람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한다.”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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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58-61.78-79.83-85.93-95.99-100] 새로운 사도들은 세상 한가운데에서 관상적 삶을 살게 하는 은총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세상 밖 고대 이집트의 테베에서, 사막에서, 세상과의 모든 접촉과 관계가 단절된 수도원이 아닌 한 관상가들과 은수자들이 서로 마주치는 일이 없다고 확신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에도 그런 이들이 있고 또 그렇게 믿는 이들이 많다. […] 이들은 새로운 사도들이요, 복음의 새로운 선포자들이며, 뛰어난 사람들이기에 이들에게서 유익함을 얻는 인류는 그들을 깊이 존경한다. 그들은 세상을 두루 다니며 인류를 복음화하고, 매순간 새롭게 하고,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옛 사도들의 정신·삶·노고·기적·승리를 드러내며 영원토록 지속시킨다.”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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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58-61.78-79.83-85.93-95.99-100]  벤투라는 “구세주께서 […] 활동적인 삶과 관상적인 삶의 참된 모델이셨다.”는 점을 강조하며, 마르타와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께서 지상에서 충만히 실현하신 것에 대한 암시적 표현allegoria이며 표상을 이룬다고 했다. “복되신 동정녀께서는 주님을 그들의 집에 모셨던 마르타보다 더 행복하셨다. 동정녀께서는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이셨고, 천사들을 압도하는 순결함과 그 어떤 치장보다 아름다운 성성으로 꾸며진 당신 태중에 그분을 모셨다. 또한 마르타의 동생 마리아보다 훨씬 더 깊이 말씀을 묵상하고 받아들이신 하느님의 어머니께서는 영혼 안에 하느님의 말씀을 중단없이 고스란히 보존하시는 최고의 관상으로 기쁨을 맛보셨다.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Conservabat omnia verba haec, conferens in corde suo: 루카 2,19) ‘당신 안에 충만한 은총’을 온전하게 이루고자 하는 갈망이 두 자매 보다 더욱 컸던 사도의 모후는 주님의 승천 후 당신의 거룩한 신적 삶을 천상에 대한 묵상과 애덕 실천에 열정적으로 쏟으면서 믿는 이들을 위로하셨다. 또한 사도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이끌면서 교회 창립이라는 원대한 활동 안에서 당신의 격려와 충고, 기도로 사도들을 도우셨다.(Omel. VIII, Append. <강론 8, ‘부록’> 참조) 천사들은 물론이고 그 누구도 천사들의 여왕이신 마리아보다 ‘유일하게 필요한 것’의 가르침을 더 잘 이해하고 실현시킨 이가 없다. […] 마르타와 마리아의 비유와 표상도 엄밀한 의미에서 최상의 완벽한 삶으로 이루어진 것은 결국 구세주의 어머니 안에서다. […]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드님과 그분의 거룩하신 어머니의 학교에서 교육받은 사도들도 열정적인 삶의 모든 애덕 활동을 관상적 삶에 일치시켰다.”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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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68-69] 마르타와 마리아는 교회를 의미한다. “인간의 사랑이 하느님 사랑의 꽃피움이 되고, 그분 사랑의 반영으로 드러나는 것은바로 이 집에서다. 하느님께서 인간에 대한 사랑을 구체적으로 키우고 성장시켜 가는 것도 바로 이 집에서다.”186

122

[DFst 16.24-25.27-28.35-40.60-63] 하느님께 대한 봉사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관한 강론의 두 번째 부분에서187 벤투라는 마르타와 마리아의 이야기에 나오는 ‘필요한 한 가지unum necessarium’는 한 분이시며 세 위격이신 하느님을 가리킨다는 것을 성 아우구스티노에게서 영감을 받아 강조한다. 그의 글과 알베리오네 신부의 생각이 일치하는 부분들이 정말 많다. 특히 범형론(esemplarismo: 모형론 또는 예증주의라고도 번역한다. 신플라톤주의에 기반을 둔 것으로 성 보나벤투라의 사상에서 절정을 이룸-역주)의 길 진리 생명이신 스승 그리스도를 따름, 또는 하느님 모상에 따라 인간을 하나이며 셋으로 보는 인류학적 배경이 되는 내용에서 그 접점을 볼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으로 불리는 세 위격을 지니셨으며, 우리 영혼의 고유한 능력 또한 세 가지다. 곧 개념을 형성하는 능력 또는 자기 존재의 심오함에서 나오는 내적 언어, 자신의 고유한 말을 창출해내는 능력과 추론하는 능력, 그리고 의지의 능력이다.”188

123

189[DFst 53-54.63-64.68-69.83-84.85-88.93-97]  벤투라의 작품 「복음의 여성들Le donne del Vangelo」이 알베리오네 신부의 영성과 사상의 주요 노선과 유사하다는 점 외에도, 「가톨릭 여성La donna cattolica」이라는 작품에서 두 저자 사이의 역사적 일치점을 보게 된다.

알베리오네 신부는 「사제적 열의에 참여하는 여성」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톨릭교회 안에서 여성의 역사는 상당히 흥미로운데, 이 문제를 다루는 저술가가 있다는 것은 축하할 일이다.”190 여기서 벤투라를 언급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많은 희망의 동기 외에 다음과 같은 동기가 더 있다. 여성은 바로 우리들이고 또한 그리스도인이다. 이 점은 우리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된다. 벤투라는 현세를 이렇게 묘사한 다음, 교회는 가톨릭 여성에게 하나의 사도직, 곧 세상을 회복시키는 사명을 맡길 것이라고 했다.”191

알베리오네 신부는 「가톨릭 여성」의 첫 권에 대해 언급했다. 저자는 성경적 고찰에서 시작하여 현대 세계의 문제점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으로 조망하는 제1부에서 “가톨릭 측면에서 여성에게 관심을 가질 필요성”을 소개하고, 제2부에서는 “교회 창립에서 여성의 협력”을 이야기한다.

여섯 개의 장으로 구성된 제2부는 알베리오네 신부의 생각을 심화시키는 데 특별히 중요한 요소임을 보여준다.192

124

[Idem] 벤투라는 세 번째 장에서 사도 바오로의 협력자로서 활동한 여성들, 곧 리디아, 프리스카, 에우오디아와 신티케(필리 4,2 참조-역주)를 다루고 있다. 포이베의 활동은 알베리오네 신부에게 특별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성 바오로가 그리스에서 로마인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전달하는 임무를 남성이 아니라 포이베라는 한 여성에게 맡겼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편지는 복음에 대한 첫 주석서이자 그리스도교 교의를 해설한 걸작이다. 성 바오로는 그 편지 말미에 로마 신자들에게 이 여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의 자매이며 켕크레애 교회의 일꾼이기도 한 포이베를 여러분에게 추천합니다. 성도들의 품위에 맞게 그를 주님 안에서 맞아들이고, 그가 여러분의 도움을 필요로 할 경우 무슨 일이든 도와주십시오. 사실 그는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의 후원자였습니다.’ […] 교회의 일꾼은 무엇보다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포이베가 로마에 간 것은 세속적인 일이 아니라 영적인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와 같은 행보는 이 여성이 그리스도교의 후원자요 코린토에서 성 바오로의 후원자였음을 드러내주고, 교회 안에서 중대한 일들을 맡아 사도와 함께 사도직을 수행했다는 점을 표명해 준다.”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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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em]  제4장은 성녀 테클라의 삶을 소개한다. “테클라는 성 바오로가 동양에서 사도직을 수행할 때 가장 많이 도와준 여성이다.”194 테클라는 탁월한 방식으로 성 바오로에게 협조했다. “성 암브로시오는 그녀를 ‘사도의 벗, 사도들의 동료’라고 불렀다. […] 부유하고 관대한 동정녀인 그녀는 사도가 아시아에 머물던 기간내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사도의 직무를 도왔기 때문이다. 성 바오로가 그 지방에서 성공을 거둔 것은 대부분 그녀 덕분이다. ‘테클라의 순교자적 행전’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성녀 테클라는 성 바오로가 말씀의 능력을 통하여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께 이끈 것처럼 그녀의 뛰어난 재능과 달변, 부유함, 사교성을 통해 그리고 항구하고 열정적인 신앙과 성성을 통해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께 회심시켰다.(그녀의 불타는 신앙과 거룩한 삶은 많은 이들을 그리스도께 개종시켰다.<Cujus fidei ardore et vitæ sanctitate, multi Christum conversi sunt: 로마 「성무일도서」 7월 23일 본문에서>)”195

테클라는 교회의 교부들에게서 “사도들을 도우면서 그들의 직무에 대한 노고와 영광을 나누어 받은” 많은 여성들 가운데 가장 큰 찬사를 받는 여성이다. “테클라는 여성들 가운데 성 바오로의 가장 훌륭한 여제자, 하느님의 어린양의 첫 번째 흠없는 신부, 그분 성혈의 첫 번째 싹, 그분 은총의 첫 번째 기적, 그분 권고의 첫 번째 실행자, 신앙의 첫 번째 증거자, 18세기 동안 순교와 덕의 길로 그녀를 뒤따른 수많은 탁월한 영혼들의 기수였다. 성 암브로시오만 아니라 성 아우구스티노,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니사의 성 그레고리오와 다른 교부들 또한 성녀 테클라의 영광을 기리면서 특별한 찬사를 바쳤다. 이와 같이 테클라는 교회의 경이롭고 영광스러운 인물들 중 첫 번째로 교회의 존경과 영광을 받으며 사도시대를 가장 아름답게 장식한 인물이다.”196

126

[Idem]  사도시대의 여성 직무에 대한 이러한 열정적인 소개는 알베리오네 신부가 오래전부터 키워온 계획과 그의 영혼에 강한 반향을 일으켰다. 1922년 초 알베리오네 신부와 전체 수도회가 ‘다시 살아난 성 바오로’가 되라는 부르심을 느꼈다. 곧 기쁨으로 복음을 살고 복음을 전하는 남성과 여성들로 ‘오늘날 살아 있는 사도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6월 29일, 티모테오 자카르도 다음으로 세 명의 첫 사제들이 수품되었고, 그날 저녁 성 바오로께 봉헌된 새 성당을 축복했다. 앞으로 이 성당은 수도회 회원들과 알바 사람들에게 “성바오로수도회가 천상 스승께 대한 신심, 사도의 모후이신 마리아께 대한 신심, 사도 성 바오로께 대한 신심…을 전하는 주요 신심의 터전”197이 될 것이다.

127

[Idem] 다음 날 이러한 목적으로 참사위원 프란치스코 키에사 신부와 함께 새 사제들의 첫 미사로 성 바오로 축일을 장엄하게 거행했다. 키에사 신부는 성무일도 저녁기도를 바칠 때 다음과 같은 내용을 언급했다. “수도회를 상징하는 성 바오로 성화와 칼·책·철필을 설명하면서 스보보다 몬시뇰의 ‘성 바오로께서 오늘 다시 오신다면 주교직 수행을 계속하셨을 것입니다.’라는 말씀과 케틀러 몬시뇰의 ‘성 바오로께서 오늘 다시 오신다면 저널리스트가 되셨을 것입니다.’라는 말씀을 결합시키면서, 선한 출판의 사명은 본질적으로 사제의 사명이라고 했다. 곧 선한 출판의 사도들이 되기 위해서는 사제여야 하는데, 그것은 오늘날 선한 출판의 사도직이야말로 사제직과 사제적 열성을 가장 효과적이고 섬세하게 수행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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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em]  프란치스코 키에사 신부가 사제직에 대해 강조한 그의 가르침은 알베리오네 신부가 구상한 계획의 주축인 인쇄 사도직의 사제적 열의에 참여하는 여성이라는 내용과 완벽하게 일치되었다. 사실 알베리오네는 알바 신학교에서 양성 받던 초기부터 “여성을 쾌락의 도구와 생산 도구로 비하시키는”(SC 159) 문화를 극복하고 ‘여성의 존엄성을’ 되살릴 힘이 성경에 내재되어 있다는 깊은 확신을 지니고 있었다.

알베리오네 신부는 성바오로수도회 창립 후 여성 줄기를 창립할 준비로 1921년 12월 22일, 수도회의 첫 분원 개설을 위해 시市에 건축허가를 요청했다. 1922년 5월부터 건축 작업이 급속도로 진행되어199 같은 해 9월 10일 성바오로딸수도회가 새 건물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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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em]  끊이지 않는 건축 작업, 사도직, 새로운 남녀 회원들의 증가, 점점 자치형태로 가려는 경향, 이런 가운데 수도회 안에 넘쳐나는 활력을 일일이 묘사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알베리오네 신부는 다른 사람들과 책임을 분담했지만 모든 일에 동반해야 했고 온전히 하느님 뜻에 응답드리기 위하여 긴 시간 하느님 앞에 머물러야 함을 강조했다.

130

[Idem] 수도회 전 회원이 1922년 7월 16일 주일부터 7월 22일 토요일까지 영신수련을 위해 모였다. 참사위원 키에사 신부와 우고 미오니Ugo Mioni 몬시뇰이 피정강론을 맡았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Unione Cooperatori Buona Stampa」는 성바오로딸수도회가 긴 창립과정을 마침내 완전히 끝냈음을 알렸다. “1922년 7월 22일은 성바오로딸수도회의 역사적인 날이다. 7년 동안의 시험기, 드러낼 수 없었던 활동, 겸손한 희생, 끊임없는 기도, 도외시되는 기간을 끝내고 7월 22일 토요일 영신수련 주간을 마친 후, 큰 걸음을 내딛는 공개적인 [사적] 서원을 통해 하느님과 선한 출판 사명에 영원히 결속된 ‘성바오로딸수도회Pia Societa delle Figlie di San Paolo’로 선언했다. 그들도 남성 줄기처럼 일반적인 세 가지 서원에 로마 교황께 대한 충성이라는 네 번째 서원을 첨가했다. 첫 번째 그룹은 아홉 명이었다. 이제부터 이들이 확장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201

아홉 명의 성바오로딸들은 “사도의 모후이신 마리아의 눈길 아래 성 바오로 사도의 인도에 따라 천상 스승의 삶을 살기 위하여 선한 출판 사도직에 전 생애를 바쳐” 헌신할 것을 약속했다.202

알베리오네 신부는 오랫동안 심사숙고하며 계획한 대로 데레사 메를로에게 ‘사도들의 동료’였던 테클라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면서 수도회의 총장으로 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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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Vivit vero in me Christus: 갈라 2,20)

[DFst 39-40.57-58.63-64.88-89.93-95.99-100] 알베리오네 신부는 책임을 분담했지만,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활동을 함께 실현하기 위해 자신과 긴밀한 친교를 이루도록 모두에게 요청했다. 그는 자신의 영명축일을 연기하여 1922년 7월 30일 주일에 지내면서 강력한 말씀을 통해 성소적 도약의 기회가 되게 했다. “신학자께서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기셨다. 유일한 근심거리는 우리가 성인이 되기 위해 너무 적게 일했다는 것입니다. 유일한 걱정거리는 성인이 되기 위해 일하는 것이며, 유일한 열망은 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축일과 주일 기도는 우리가 성부를 향한 신심에 한 걸음 더 나아가도록 해주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우리를 가장 아름다운 성소로 이끌어 주시고, 지지해 주시고, 자양분을 주셨습니다.”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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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39-40.57-58.63-64.88-89.93-95]  알베리오네 신부 자신이 그렇게 살았고 공동체에 제안했던 열렬한 영성생활과 성성에 대한 탐구는 1922년 영신수련 때 기록한 복자 티모테오 자카르도의「 일기Diario」 3쪽에서 잘 드러나는데, 첫 결심에서 빛을 받아 자신의 임무에 대한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다. “주 예수님, 사도의 모후이신 마리아와 성 바오로의 전구를 통하여 당신은 저에게 극진한 자비와 무한한 사랑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저를 그리스도교 신자, 사제, 수도자가 되게 하시어 선한 출판 사도직을 통해 저를 당신께 아주 가까이 있게 하셨습니다. 오! 당신의 사랑이 얼마나 무한한지, 그리고 저의 아무것도 아님이 얼마나 엄청난지요! 사랑은 사랑을 요구합니다. 주님, 당신은 저의 모든 것을 원하시니 당신께 모든 것을 드립니다. 저는 당신의 것입니다, 오 예수님. 마리아의 손길을 통하여 모든 것이 당신 것이옵니다. ‘주님께서는 제가 받을 몫이옵니다.’(Dominus pars hereditatis meæ: 시편 15,5 참조) 이제 저는 당신의 삶을, 당신의 삶 전체를 성 바오로처럼, 지극히 거룩하신 성 마리아처럼 살고 싶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Vivo… iam non ergo, vivit vero in me Christus) ‘사실 나에게는 삶이 곧 그리스도이십니다.’(Mihi vivere Christus est: 필리 1,21 참조) 제 결심은 이렇습니다. 저 자신에 대한 사랑을 끊임없이 낮추고 하느님께 대한 사랑, 완전한 애덕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204

133

[DFst 39-40.57-58.63-64.88-89.93-95] 수도회는 여러 성소의 정체성에 대해 분명하게 의식하고 있다. “모두가 사제적 사명을 위한 성소, 애덕의 수녀들을 위한 성소를 계발할 필요성을 이해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선교사들과 선교 수녀들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나는 모든 사람이나 많은 사람이 아니라, 오늘날의 선한 출판을 위한 참되고 거룩하고 고유한 성소자들, 그러니까 필요성을 느끼는 합당한 소수의 사람들이 필요하다. 참된 수도자인 사제, 저술가, 보급자, 인쇄기술자들이 필요하다. 참된 수녀인 선생, 저술가, 보급자, 인쇄기술자들이 필요하다. 선한 출판을 위한 남녀 수도자들의 필요성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가슴 벅찬 현실이며, 시대의 흐름을 잘 느끼는 영혼들의 숨결이고, 교회의 필요성을 잘 느끼는 마음의 숨결이다.”205

이러한 역사적 순간을 ‘선한 출판의 때’라고 보았다. 수도회 회원들은 자신들이 파견된 진정한 사도의 계승자, 배달부, 책임을 전수한 사람임을 자각했다. “‘너희는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Eritis mihi testes)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에게 유다, 갈릴래아, 세상 끝까지 나의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신 것을 따라 열 두 사도와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그리스도교의 증인이 되었다. 사도들의 뒤를 이은 교회 박사들은 저서를 통하여 증인이 되었고, 수도자들은 거룩한 수도생활을 통하여 증인이 되었다. 현대의 성인들은 그리스도교적 교육을 통하여 증인이 되었으나,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으뜸가는 증언을 하는 것은 선한 출판이다. 신문은 빈민가로 파고들고, 박사의 연구실로 침투하며, 상업전단지 사이에 끼여 시골 농부를 찾아가고, 국회의원석과 총리의 책상 위에 놓이기도 하고, 왕좌 앞에 놓여지기도 하여 정치를 움직이고 여론을 형성하며, 양심을 형성한다. 훌륭한 저술가들의 잉크는 순교자들이 흘린 피와 맞먹는 가치를 지닌다. 오늘의 성인들, 가톨릭 활동가들, 사제들, 주교들, 교황들은 선한 출판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설파하고 그 시급성을 강조하며 이러한 사명에 충실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역설한다. 구세주의 ‘세상 모든 이를 가르쳐라.’(euntes, docete omnes gentes: 마태 28,19 참조)는 말씀은 새로운 오류, 새로운 사회상황, 새로운 과학 발전, 새로운 인류의 삶에 가장 적합한 형태로 모든 이에게 설교하라는 천상 스승의 명령으로서, 이것은 오늘날 선한 출판의 형태를 취하게 된다. 또한 모든 시대의 요청에 대한 이러한 교회의 적응, 새로운 악에 대항하는 효과적인 새로운 방어수단, 복음화 수단을 만들어내는 교회의 풍요로움은 경이로움과 성스러움의 표시이며, 교회의 승리와 영원성을 보장해 주는 특징이다.”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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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57-58.63-64.88-89.93-95]  선한 출판 협력자회 회보 12월호는 “한 해를 마감하며”라는 제목으로 기쁨과 놀람을 표현했다. “한 해를 보내면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선한 출판을 위해 우리는 많은 일을 했습니다. 그 때문에 하느님 앞에서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이 해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인데 많은 복음의 씨앗을 뿌렸다고 하지만 게으르게 씨를 뿌린 이는 이 해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 대신에 선한 출판을 통하여 건전한 사상과 생각의 씨앗을 널리 뿌릴 수 있었던 이는 최상의 수확을 이룬 해일 겁니다. 우리는 몇 가지 작은 일을 했습니다. 수도회는 작년보다 100명의 회원이 더 증가했고 작은 성당이 건립되어 매일 여섯 대에서 일곱 대의 미사가 거행되고 많은 기도가 바쳐졌습니다. 수도회 건물의 다른 부분도 완공되어 236명을 수용할 만한 공간이 생겼습니다. 1921년에는 50여종에 불과했던 본당주보가 이제 100여종이 되었고, 「가제타 알바Gazzetta d’Alba」의 발행부수도 증가했으며 기술적인 면에서도 많이 향상되었습니다. 가벼운 독서 전집도 30권에 이르고, 수덕 서적 전집도 12권에 달합니다. 50만부 이상의 교리서가 이탈리아 전역으로 발송되고, 호교론 서적 전집도 증가했습니다. 인쇄기는 매일 300쪽가량의 서적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고, 서원에서는 매일 평균 2,000부 이상이 보급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오직 하느님 덕분입니다! 우리는 쓸모없는 종들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해야 할 일에 더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우리는 아직 모든 것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200명이 아니라 20만 명을 위해 일하고 있을 겁니다! 글을 쓰고 인쇄하고 보급할 사람이 부족합니다! 협력자들이 8,000명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는 기도하고 도와주며 선한 출판물을보급할 80만 명이 필요합니다. 「가제타 알바」는 우리 교구의 4만가정의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대중 도서관은 건전하고 쉽게 읽을 수 있는 교육적인 서적을 시급하게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는 나쁜 서적들에 맞서기 위해 우리가 걸어가야 할 여정은 아직 멀기만 합니다.”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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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57-58.63-64.88-89.93-95] 수치로 나타난 ‘사업목표’208와 결산보고서, 성소자 급증209은 선한 출판을 통한 복음화의 절실한 필요성에 따른 성장 국면을 보여주었다. 선한 출판을 통한 복음화의 긴박한 필요성은 새로 선출된 교황 비오 11세의 회칙 「모든 사태Rerum omnium」에서도 강조되었다. 이 회칙에서 새 교황은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를 저널리스트의 주보성인으로 선포했다.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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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9-16.23.27-28.39-40.54-56.59-60.63-64.70-72.95-96.99-100]211

 반면에 알베리오네 신부는 1923년 자신의 인간적·영적 여정에서 대단히 의미 있는 시기를 살았다. 1921년 꿈에서 스승 예수와 만나는 체험 후 질병은 그를 ‘꾸밈이 없는 신앙’의 신비로운 여정을 살도록 이끌어 준다. 한편으로 수도회 창립이 하느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분명한 표징이 되어주었으나 생명의 심각한 위기를 겪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은 오로지 신앙에 의지하고 하느님께만 신뢰를 두게 했다.

알베리오네 신부는 7월부터 9월 초까지 베네벨로Benevello 본당신부의 호의로 그곳에서 지내며, 로욜라의 이냐시오가 전쟁에서 부상당한 후 생애 최후를 대면한 것과 아주 비슷한 체험을 했다. 성이냐시오는 자신을 3인칭으로 표현하면서 삶의 체험을 이야기했다. “계속 악화되어갔다. 음식을 먹을 수 없었으며 생애 최후를 예견케 하는 다른 증상들이 나타났다. 성 요한 축일, 의사들은 그가 살아날 가망이 없다며 고해성사를 보도록 제안했으므로 그대로 따랐다.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대축일 전야에 의사들은 오늘밤 안으로 호전되지 않으면 죽을 것이라고 했지만 주님께서는 성 베드로에게 신심이 깊은 환자가 그날 밤에 회복되기를 바라셨다. 그의 건강은 점차로 호전되어 갔는데 며칠 후 의사는 위기를 벗어났음을 알렸다.”212

이냐시오는 회복기 동안 영신수련의 원천이 될 회개의 강력한 첫 시기를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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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em] 한편 알베리오네 신부는 영적 여정의 초기에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주 심오한 신비체험의 선물을 받았다. 이 선물의 직접적인 도구는 이냐시오의 영신수련이었다는 것을 베네벨로에서 그를 간호하던 안젤라 데레사 라발로Angela Teresa Raballo 수녀가 증언했다. “신학자께서는 더 이상 미사를 드리지 못하셨고 성무일도도 바치지 못하셨습니다. 15일 동안 침대에 누워계시면서 영성체도 침대에서 하셨습니다. 저는 그분이 가지고 계신 성 이냐시오의 영신수련서를 그분께서 “오늘은 그만하면 됐습니다. 내일까지 충분합니다.”라고 말씀하실 때까지 매일 읽어드렸습니다.”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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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em] 알베리오네 신부는 1923년 상반기에 코톨렌고Cottolengo의 하느님 섭리의 작은 수도회Piccola Casa della Divina Provvidenza에서 영신수련을 했다. 그곳은 심신 장애인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는데 그도 죽음을 앞둔 고립의 형벌을 받는 외로운 이들과 비슷한 처지에 있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고, 계속해서 열이 오르고 있었습니다.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내가 눈물을 흘리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왜 울어요? 내 자리에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올 것이라는 것을 모르세요!’ 그분은 평소에도 자주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병이 더 심해져 공동체를 떠나야 할 때에는 토리노의 코톨렌고로 가서 내 생애를 마치겠습니다.’”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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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em] 알베리오네 신부는 시작한 사업이 하느님 사업이라는 확약을 받은 그때, 하느님께서 그에게 생명을 바치도록 요구하고 계심을 느꼈다. 아브라함과 계약을 맺으신 후 약속의 아들인 외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시험을 통해 새로운 아브라함을 일으키신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알베리오네를 시험하셨다. 그에게 자기 자신만 아니라 모든 것을 완전히 포기하도록 종용하시며 전적인 신뢰를 내보이도록 부르고 계셨다. 그것은 전적으로 자신을 내맡기는 수동성의 체험으로 은총의 기쁨을 경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이 신비로운 심오함 안에서 오직 하느님께만 ‘네’라고 응답하기를 바라시는 스승 예수께서는 그가 마음에 품고 있던 모든 것을 아셨다. 하느님의 심오함 안에서 그를 당신의 배움터로 이끌어주시고 가르치시고자 그에게 손을 내밀어 잡아주셨다. 하느님께서 야고보 알베리오네와 영원한 계약을 확정하실 때가 온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야곱처럼 그도 병마와 맞서는 긴 몇 주간을 하느님과 싸우도록 초대된 것이다. 성령에 인도되어 오직 그렇게 해야 모든 일에서 하느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당신의 진정한 영광을 찾고 평화를 얻을 수 있으며, 여태껏 살아온 여정을 통합하여 온전히 복음을 전하는 일에 헌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베네벨로는 바로 시나이 산이고, 알베리오네 신부가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이 원하신 수도회의 얼굴을 찾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그는 건강이 회복되자마자 회헌 초안을 작성하는 데 몰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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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em] 긴 고통의 기간을 지내면서 알베리오네 신부는 자신과 수도회에 맡겨진 사명의 시급함과 아름다움에 젖어들었다. 또한 사도 바오로의 말씀에 영감을 받아 십자가의 지혜와 그에 대한 증거의 가치를 철저하게 받아들였다. “내가 생각하기에, 하느님께서는 우리 사도들을 사형 선고를 받은 자처럼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과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슬기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약하고 여러분은 강합니다. 여러분은 명예를 누리고 우리는 멸시를 받습니다. 지금 이 시간까지도, 우리는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매 맞고 집 없이 떠돌아다니고 우리 손으로 애써 일합니다.”(1코린 4,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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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em] 알베리오네 신부는 시작한 사업이 결정적인 나락에 이르렀음을 알게 될수록 오로지 하느님 권능에 모든 것이 달려 있고 그것에만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온갖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 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으며,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고, 맞아 쓰러져도 멸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2코린 4,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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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em] 알베리오네 신부는 자신도 성 바오로처럼 복음 때문에 십자가에 매달렸다는 것을 알았다. “알베리오네 신부는 의사에게 더 이상 자신의 병이나 치료에 대해 묻지 않았다. 그리고 건강할 때보다 더 많이 일하기 시작했다.”215 주님께서는 알베리오네 신부에게 사도 바오로와 특별한 만남의 강력한 체험을 허락하시는 동시에 이 기간을 집중적인 훈육기간으로 삼으셨다. “프리모 마에스트로의 치유도 성 바오로의 덕택이었다.”(ADds 64 참조)

알베리오네 신부는 창립 40주년을 맞아 이러한 치유에 대해 분명히 밝히며 성 바오로께 대한 충만한 경이와 감사를 드렸다. 성바오로께서는 “지금도 이해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설명할 수조차 없는 육체적이고 영적인 개입을 통해 이 가족을 만드셨다.”216

이 기간을 회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 가지 다양한 위험을 겪었다. 사람 문제, 경제 문제, 서신과 구두를 통한 고소 등. 매일매일 위태롭게 살았으나 성 바오로는 언제나 구원이었다. …해가 지나면서, 분명히 파산할 것이라는 많은 사람들의 예견, 미쳤다는 비난… 등이 사라졌고, 비록 힘은 들었지만 모든 것이 평화롭게 끝났다.”(ADds 164. 166)

143

[DFst 63-64.77-78.95-97] 알베리오네 신부가 병 중에 있을 때도 수도회는 ‘주요 신심들’217 곧 성체이신 스승 예수께 대한 신심,218 사도의 모후께 대한 신심,219 모든 회원이 처음부터 각별한 신심을 지녔던220 성 바오로께 대한 신심221을 굳혔다.

144

[DFst 93-95] 선한 출판의 사도 수녀들, 곧 복음선포자로서의 여성들의 부제직분도 같은 열정으로 소개되었다. “사도직의 상당 부분이 바로 여성의 몫이므로 사도들은 ‘여성 부제들’을 결성했다. 구세주 예수님 곁에, 또 사도단의 보조자로 ‘신심 깊은 여성들’이 있었다.

복음선포 사명은 남성에게만 예외적으로 주어지는 사명이 아니다. 하느님께서는 선교사들을 돕기 위하여 수녀들을 일으키시고 그들을 보내주신다. 위대한 사명, 위대한 사도직 성소는 교회에서 다음의 두 줄기 안에서 보완된다. 이제 출판의 때가 도래했고, 출판 사도직 시대가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선한 출판 사도들을 일으키신다. 또한 선한 출판의 수녀들도 일으키셨으니, 이들은 하나의 자리가 아니라 오늘날의 하느님 자비와 섭리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222

145

[DFst 42-43.52-53.74-75.93-95] 창립자가 병고에서 회복된 후 가장 우선권을 둔 주요 사항은 각 가정과 학교에 복음서 보급에 힘을 기울이라는 것이었다. 「성바오로San Paolo」[= UCBS] 11월호에 알베리오네 신부가 1리라짜리 복음서를 기획하여 선한 인쇄 사도직이 복음서를 출판하고 보급하는 일에 매진하도록 했다는 기사를 실었다. “우리 신앙의 원천에 친근하게 다가가도록 하자! 복음서에서 샘물이 솟아오른다. 복음서에는 가르침이 있고, 복음서에는 기적이 있으며, 복음서에는 천상 스승의 가르침과 표양이 담겨 있다. 복음서는 그리스도교의 모든 것이다. 교회는 복음서에 토대를 두고 있으며, 교회의 생명은 살아 있는 복음서에 있다. 성인들 모두는 당신이 가르치신 바를 모두 행하셨던 천상 스승의 복음을 살아간 이들이며, 육화된 이들이다. 사도들과 교부들은 복음을 증언했고, 박사들과 신학자들은 복음을 수호하고 설명했다. 사제들은 복음을 설교하고, 복음에서 힘을 얻는 선한 출판은 사람들의 마음에, 가정에, 사회에, 정치에 복음을 침투시키는 가장 신속한 수단이다.”223

각 가정에 복음서를 전해야 한다는 과제의 동기는 다음의 힘 있는 표현이 잘 설명해 준다. “성체이신 예수께서 빵의 옷을 입고 우리 마음에 들어오시듯, 말씀이신 예수는 종이옷을 입고 각 가정에 들어가시어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 손에 들려져야 한다.”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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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93-97] 1923년 12월, 수도회는 ‘본당의 직무수행 곁에서’ 복음화를 위한 사목을 돕는 ‘진취적인 수도회’로 소개되었고, 하느님 섭리에 대한 신뢰가 새롭게 강화되었음을 보여주었다.

대중 복음화 사업의 밑그림을 소개하기 전에, ‘기존 사업들의 발전’과는 ‘다른 사업들의 채택’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성바오로수도회는 선한 인쇄 사도직을 위해 적절한 시기에 탄생했고, 하느님께서는 수도회가 자신의 때를 살아갈 수 있도록 자비와 은총을 베푸셨다. 성바오로수도회는 보살핌이 필요한 어린아이들을 위한 탁아소나 교육기관이 아니라, 선한 출판의 사도들과 선교사 양성을 위한 신학교다. 성바오로딸수도회도 마찬가지다. 상업적인 이익을 내는 인쇄소가 아니라, 저렴한 가격의 책을 만들어내는 출판사이다. 이러한 특이함이 큰 성공을 이루는 비결이다.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할 장소를 찾을 때처럼 많은 것을 준비해야 할 필요가 있는 ‘무엇보다도 진취적인 수도회이다.’ 기존 사업들은 발전할 것이나, 하느님의 섭리가 인도해 주시는 대로 다른 사업들을 채택할 것이다. 성바오로수도회는 본당 직무수행 곁에서 봉사하기 위해 본당신부들 가까이 있어야 한다. 이는 신자들의 복음화에 선한 출판이 제 역할을 다하도록 사제들을 돕기 위함이다. 이러한 효과적인 사업의 때가 바로 지금이다. 교구의 대중 교육을 위한 ‘주간지’, 하느님께 출판을 기꺼이 허락해 주십사 기도하는 ‘천 대의 미사 단체’, 가정에 본당신부의 강론과 신앙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이탈리아 전역에 ‘본당주보’ 보급을 위한 활동, 독서에 목마른 많은 영혼에게 구원의 목초지가 되는 ‘이동도서관과 대중도서관’ 활동, 신심을 심어주기 위한 ‘위탁 판매소’, 하느님 앞에서 인간의 품위를 훼손하고 악으로 인도하는 암에서 이탈리아를 정화시키기 위한 ‘반 신성모독’ 활동, 대중에게 복음서를 보급하기 위한 ‘성경회’.

오, 아직 개척해야 할 영역이 얼마나 넓은지!… 모든 협력자는 이러한 선을 완수하도록 이에 참여해야 하고, 모든 노력을 다 기울여야 한다.”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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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85] 1923년 말, 「선한 출판 협력자회」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이라는 제목의 짧은 글에서 수도회의 기획을 소개했다. 곧 알베리오네 신부의 완전한 회복을 알리고, 영성의 세 가지 기점 곧 스승 예수, 사도의 모후, 성 바오로에 대해 확고하게 짚어주었다. 또한 새로운 기획 가운데 성경회에 대한 각별한 언급과 성 바오로께 봉헌된 성전건립에 대한 언급이 주의를 끌었다. “성바오로수도회의 여러 사업은 스승 예수, 사도의 모후, 사도 바오로의 은덕으로 번창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성경 분야, 천 대의 미사 단체, 본당 주보 활동, 교구 주간지, 반 신성모독 활동, 도서관 총연합, 양서와 성물 위탁 판매소 등이 진행중인데 가장 시급한 세 가지 필수적인 것을 순서대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적어도 100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성바오로딸수도회를 위한 독립된 건물 마련 ② 성 바오로께 봉헌된 아름다운 성당 건립 ③ 인쇄지 생산을 위한 제지공장 마련입니다. 성바오로수도회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필요 사항의 시급성을 잘 알 것입니다. 그래서 겸손하게 우리의 훌륭한 협력자들에게 우리와 함께 기도하고 같은 생각으로 활동하도록 초대하는 바입니다.”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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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36.39-40] 알베리오네 신부는 병마로 쓰러졌다가 베네벨로에서 신비스럽게 치유되는 과정에 이어, 스승 예수와 만나는 체험에서 계약의 필요성을 깊이 느꼈다. 수도회에서 그의 현존은 훨씬 강력해졌고, 매일 용기 있는 창안을 제시했으며, 체험에서 솟아나온 그의 가르침은 길 진리 생명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통합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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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36.37-38] 수도회의 고유한 모습(= 성성의 책)은 생명의 책(= 계약시기)에서 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은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모습을 갖추실 때까지Donec formetur Christus in vobis」에서 부드럽고도 심오한 방식으로 표현된다. 이 책은 지금까지 설명한 ‘삶의 체험’과 연결되어 있고, 앞으로 설명하게 되는 해석에서 다시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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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

[DFst 10.37-38.63-64.95-96] 1923년 “성바오로수도회 전체 역사의 발자취”(Cenni storici della Pia Societa San Paolo)에서 성 바오로와 스승 예수께 봉헌된 달에 관한 소중한 정보를 찾아볼 수 있다. “수도회는 매달 첫 월요일을 성 바오로께 봉헌한다. 초창기에는 6월의 반은 예수 성심께 대한 신심을, 반은 성 바오로께 대한 신심을 행하다가 6월을 온전히 성 바오로께만 바치는 것으로 바뀌었다. 스승 예수와 그분의 성심인 성체께 대한 신심은 1월에 바친다. 신학자는 성 바오로 성월을 위한 고찰을 기록하셨으며, 그 내용은 매년 묵상과 독서로 사용되었다.”227

발간된 자카르도의 「일기Diario」에서 1918년부터 6월을 성 바오로께 바친다는 정보를 찾아볼 수 있지만, 스승 예수 성월에 관한 것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알베리오네 신부의 성 바오로 성월을 위한 ‘고찰’에 관해 조금씩 언급한 정보는 아주 중요하다. 자필로 쓴 공책228을 말하는데 자카르도가 이 자료를 바탕으로229 “성 바오로께 바치는 달”230이라는 제목으로 발간한 것이다.

알베리오네 신부의 자필원고는 수도회 초창기로 거슬러 올라가게 하지만 “성 바오로께 바치는 달”이라는 출판본에는 길 진리 생명이신 스승 예수께 대한 언급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UCBS) 회보 1923년 12월호에 게재된 짧은 기도는 요한 14,6이 수도생활에 얼마나 큰 자리를 잡게 되는지 말해 준다. 이것은 1924년의 글에서 더 밝히 보게 된다. “길 진리 생명이신 아기 예수님, 저희의 열망에 자비를 베푸시어 저희가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위해 일하는 은총을 허락하소서. 당신의 자비로 선한 출판 활동과 모든 선의 매체가 풍성해지기를 바라나이다.”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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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39-40.77-78] 선한 출판 협력자회(UCBS) 회보 1924년 1월호는 “월중 소식”에서 스승 예수 성월에 관해 정확한 소식을 전한다. 그 내용은 “확약의 은총” 체험을 상기시켜주는 동시에 길 진리 생명이신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분명히 설명한다. “‘스승 예수 성월’. 우리는 이 성월을 1월에 거행한다. 한 달 동안 묵상과 예수님과의 영적 일치, 성체조배를 한다. 성월의 실천과 특징은 성체 안에 계신 스승 예수님을 방문하는 것이다. 성체흠숭, 감사, 화해와 보속, 예수님의 표양을 따를 수 있도록 청하고, 천상 스승께서 주시는 가르침과 은총을 청하는 탄원기도를 드린다. 그분은 우리 가운데 계신다. 그분은 거기에서, 곧 성체로부터 비추기를 원하신다. 천상 스승이신 예수님은 인도하는 길이시요, 비추어주는 진리이시며, 거룩하게 하는 생명이시다. 천상 스승께 흠숭을 드림으로써 훌륭한 이들이 얼마나 많이 배출되는지!”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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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37-38.77-78] 이 소식은 길 진리 생명이신 스승 예수께 봉헌된 첫 달에 알베리오네 신부가 강론을 했다는 사실과 이에 대한 티모테오 자카르도 신부의 요약 내용을 우리가 보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이 요약은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모습을 갖추실 때까지Donec formetur Christus in vobis」와 많은 부분이 일치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첫 번째는 DF의 구성과 유사하게 매일의 주제가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것이고, 세 번째 부분은 통상적으로 성체방문에 할애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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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37.77-78] 그러나 접점 부분은 스승 예수 성월 내용과 DF의 “조명의 길”이다.

첫째 날은 성월 전체에 대한 서론부분에 할애하고 있다. “1) 1월은 천상 스승께 봉헌한다. 우리는 그분을 제대로 방문할 줄 모르니, 그 방법을 배워야 한다. 2) 길 진리 생명이신 예수가 스승의 표양과 거룩하게 하시는 분으로서 주제가 된다. 3) 우리는 온 힘을 다해 그분의 배움터에 나아가야 한다.”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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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40-49] 길이신 예수께 관한 묵상에 9일을 할애했다.234 2일. 나를 따르는 사람(Qui sequitur me); 3일. 자신을 버리고(Abneget semetipsum); 4일. 겸손한 마음(Humilis corde); 5일.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Subditus illis); 6일. 나는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Veni ut vitam habeant); 7-8일. 그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Ut faciam voluntatem ejus); 9 일. 그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Ut faciam voluntatem ejus <나는 언제나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한다.quæ placita sunt ei facio semper>); 10일. 기도(In orati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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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49-54] 11일째부터 22일째까지 특히 참행복 주제를 통하여 소개된 진리이신 예수께 드리는 묵상을 했다.235; 11일. 그들을 가르치셨다(Docebat eos); 12일.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Ecce mater tua…); 13일. 추종자들(Subditus),236 얼마나 많은 권한을 가졌는지(Tanquam auctoritatem); 14일.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Beati pauperes spiritu); 15일.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Beati mites…); 16일.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Beati qui lugent…); 17일.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Beati qui esuriunt…); 18일.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Beati misericordes…); 19일.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Beati mundo corde…); 20일. 행복하여라, 하느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들…(Beati qui audiunt…); 21일.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Beati pacifici…); 22일. 행복하여라, 박해를 받는 사람들…(Beati qui persecutionem…).

특히 11일째 묵상 중의 3번이 부각될 만하다. “예수께서는 여기 성체 안에 계신다. 그분은 여기서 비추기를 원하신다. …천상 스승을 찬미하자. …우리를 가르쳐주셨음에 감사드리자. …우리 힘으로 하고자 했음을 용서 청하자. ‘투쟁하고, 기도하며, 사랑하는 법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신다.(Doce nos pugnare, orare, amare …)’”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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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54-63] 생명이신 예수께는 23일째부터 30일째까지 바쳐드린다.238 이 기간의 첫 번째 묵상은 계속되는 주제들을 장엄하게 열거하고 있다. 전체를 인용해 보는 것이 흥미로울 듯하다. “23일. 생명을 얻기 위하여(Ut vitam habeant). 최후의 만찬 설교에서 예수께서는 토마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Ego sum via, veritas et vita) 아버지께 가기 위해서 나에게 손을 내밀 필요가 있다. 1) 스승 예수께서는 거룩하게 하시는 생명이시다. 요한복음서의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는 예수께서 생명이시라는 관점임을 보게 된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다…(in ipso vita erat…), 니코데모와 나눈 대화에서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생명을 얻게 하셨다…’(ut omnis qui credit vivat…),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habeat vitam æternam…) 사마리아 여인과 나눈 대화에서는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l’acqua salientis in vitam æternam) 나중에 중풍병자에게 하신 말씀에서는 ‘아들은 생명을 가졌다…’(filius habeat vitam…), 생명의 말씀…(verba vitae…). 선한 목자에 관한 말씀에서는 ‘나는 생명을 얻게 하려고…’(ut vitam habeant…). 다른 성경말씀도 인용된다. 2) 은총의 초자연적 삶, 부활의 삶, 성소의 성숙된 삶… 3) 우리와 함께 계시고 여기서 비추기를 원하시는 예수님 방문.”239

이어지는 날들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24일. 은총과 충실의 삶-성 티모테오; 25일. 부활의 삶-성 바오로의 회심; 26일. 마리아를 위한 삶; 27일. 나를 먹는 사람(Qui manducat); 28일. 나에게 머무는 사람…(Qui manet in me…); 29일.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Sic orabitis); 30일. 폐막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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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37-38] 지금까지 살펴본 자료는 수도회가 스승 예수 성월에는 길 진리 생명이신 그리스도 중심으로 방향지워짐을 보여주는데, 이는 선한 출판 협력자회(UCBS) 회보 1924년 2월호에서 확인된다. “수도회는 천상 스승께 1월을 봉헌했다. 예술적인 그림으로 그분의 성심을 표현했고, 그분께 드리는 제대도 빨리 마련되도록 기도드리자. 천상 스승께서는 최후의 만찬을 행한 다락방에서처럼, 성령강림에서처럼 당신 곁에 가족 모두를 모으셨다. 하늘에서 당신 아버지의 만찬에 함께할 수 있기 위해 모두가 당신 곁에 함께 있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천상 스승께서는 다음과 같이 우리를 가르치셨다. 그분은 표양을 주시고, 일으켜 세우시는 ‘길’이시다. 예수님의 삶은 얼마나 거룩한가! 그분은 비추시고, 우리가 믿고 행해야 할 바를 말씀해 주시는 ‘진리’이시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그분께서 비추어주지 않으신다면 인간의 지혜는 무지요 어리석음뿐이다! 또한 그분은 믿고 행할 은총을 주시는 ‘생명’이시다. 거룩하게하고 부활시키며, 공로를 증가시키고 성소를 확고하게 다져주시며, 변화시키는 생명이시다. 그 생명이 없다면 우리는 죽은 목숨이다. 천상 스승께서는 성모님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신심을 당신 표양으로 보여주시고 가르치시며, 성모님을 당신 은총의 보고로 삼으셨다. 우리는 모든 것을 천상 스승의 충만함에서 얻는다. 이 성월은 흠숭의 시간으로 끝을 맺는다. 천상 스승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고, 당신 집에 계신다. 감실에서 비추기를 원하시는 그분은 당신 가족과 세상을 비추신다. …경의를 표하는 가장 기본적인 실천은 지극히 거룩하신 성체방문, 성체 안에 계신 천상 스승을 방문하여 흠숭·감사·화해와 보속·탄원기도를 바친다. 아침에 젊은이들은 짧은 성체조배를 한다. 천상 스승께서는 우리에게 조만간 시작될 지속적인 흠숭이라는 다른 은총도 가져다주실 것이다.”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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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52-54.85] 죽음의 위기에서 회복한 알베리오네 신부는 성바오로수도회라는 명칭 아래 전체 회원과 함께 하느님께서 주셨고 확약해 주신 사명을 향해 계속 전진했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UCBS) 회보 1924년 2월호는 네 가지 중요한 소식을 언급했다. ‘이방인’의 선교를 지망하는 지원자들을 위한 집 마련에 대하여,241 성경회 회규에 대한 스키마,242 “예수님처럼 영혼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243와 스승예수의제자수녀회 창립.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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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52-53.76-79]알베리오네 신부의 수도회 구상은 앞서 말한 것처럼 사도시대의 구체적인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곧 스승 예수의 사명에 참여하는 남성들과 여성들의 수도회이다.

이제 창립의 새로운 한 걸음을 내디딜 때가 왔다. 수도회는 성체이신 스승 예수님 안에 굳건히 자리 잡을 것이고, 예고한 대로 “성체 찬미laus eucharistica”245라는 특별한 표현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베네벨로에서 특별한 체험을 한 후 알베리오네 신부는 1923년 11 월 21일, 수도회의 젊은 여성들 중에 오르솔라 리바타Orsola Rivata 와 메틸데 제를로토Metilde Gerlotto를 천상 스승의 집 ‘임무’를 위하여 따로 있게 했다. 1924년 2월 10일, 성녀 스콜라스티카 축일에 스승예수의제자수녀회라는 새로운 수도가족이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246 선한 출판 협력자회(UCBS) 회보는 같은 해 3월 25일 주님 탄생예고 대축일에 있었던 8명의 ‘스승예수의제자수녀회 수녀들의 착복식’을 언급하고 있다.247오르솔라 리바타는 하느님 섭리의 스콜라스티카Scolastica della Divina Provvidenza라는 수도명으로 책임을 맡게 되었다.248 알베리오네 신부는 「복음의 여성들Le donne del Vangelo249이라는 책을 통해 그녀를 준비시켰다. 벤투라Ventura가 언급하지 않은 스콜라스티카 성녀와 이 책은 현시점에서 사도 시대를 살아간다는 전체 수도회의 구상과 일치했고,250 이 새로운 가족의 특수사명에 대한 방향설정에 유용했다. “성바오로딸수도회는 천상 스승의 복음에 봉사한다. 강의를 하고, 글을 쓰며, 보급하고, 인쇄를 한다. 스승예수의제자수녀회는 천상 스승과 그분의 직무자들을 돕는다. 곧 성체흠숭, 성당 일, 가사, 자수, 바느질, 요리를 한다. 후자는 초기부터 수도복을 착용하나 전자는 그렇지 않았다. 성바오로딸수도회는 청원기와 수련기를 거친 수도자들이다. 서원식에서 새로운 수도명을 받았고 종신서원을 한 그들은 ‘마에스트라Maestre’로 불린다. 스승예수의제자수녀회는 착복식때 새로운 수도명을 받고 사적 서원을 하며 ‘수녀Suore’라고 부른다.”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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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85-91] 1924년, 성바오로수도회는 다음과 같은 수도단체로 소개되었다. “본회는 신문, 잡지, 정기간행물, 도서관, 서적, 본당주보 등의 선한 출판을 통하여 그리스도교 삶과 사상을 전하고 자신의 성화를 목적으로 공동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수도단체다. 성바오로수도회에는 평신도만 아니라 사제들도 입회할 수 있다. 수도자들의 통상적 의무, 곧 완전한 정결, 청빈, 순명을 정해진 규칙에 따라 공동생활의 의무와 함께 준수한다. 선한 출판 사도직을 위하여 여러 가지 일을 수행한다. 한편 개인 양성, 선한 출판 사도들의 양성을 위해 지원자들에게 다양한 분야가 개방되어 있다.”252 전체 수도회는 항상 다음과 같은 순서로 나열된다. 성바오로딸수도회, 스승예수의제자수녀회, 사명을 위한 출판 분야, 젊은 학생 분야, 노동 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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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91-92] 선한 출판 협력자회 회보 1924년 8월호에 수도회 ‘10주년’을 기념하는 감동어린 기사가 실렸다.

“수도회는 1914년 8월 20일 성 베르나르도 축일에 문을 열어 1924년 8월 20일 10주년을 맞는다. 이 동안 하느님의 은총이 얼마나 풍성히 내렸는지!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계획이 육화되고, 확약되며, 전해졌다. 우리는 이날을 깊이 감사드리며 기념한다. 이날 협력자들 모두가 감사의 기도 안에서, 활기찬 사랑의 표현 안에서 하나로 일치되기를 바란다. 주님께서 이들에게 크나큰 자비를 베푸셨다! […]

하느님의 자비가 이룩한 업적. 첫 두 명의 학생이 100명 이상으로 증가했다. 수도회 곁에서 젊은 여성들의 줄기가 성장했고, 스승예수의제자수녀회 공동체가 탄생했다. 성 바오로 주위에서 공로를 쌓고선행을 실천했던 이들처럼 마음을 다하여 희생을 바치고 기도하는 1만 명 이상의 협력자들이 모였다.

수도회 명칭이 정해지고, 형태와 구조를 갖추었다. 교황청은 수도회의 현존과 사명을 승인했고 전대사의 보화를 열어주셨다.

하느님의 섭리는 건물, 정원, 밭, 인쇄기와 사도직의 여러 분야를 허락하셨다. 선한 출판의 이상은 하느님께서 인간들의 끝없는 배은망덕, 반역, 인간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당신 영을 통하여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다스리게 하는 것이다. […]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사랑 넘치는 당신 품 안에 가족을 껴안으신다. 성바오로수도회의 주인, 주보성인, 수호자는 성 바오로 사도이시다. 성인께서는 천상 스승의 정신과 삶을 탁월하게 사신 분으로 천상 스승의 복음을 사람들과 세상에 널리 전하셨다.

사도들의 모후 마리아는 어머니시요 보호자이시다. 그분께서는 구세주를 나으셨다. 특히 수련자들은 그분께 봉헌되어 ‘마리아의 종들’이라 불린다.

첫째가는 신심은 천상 스승께 바쳐진다. 그분은 길 진리 생명이시다. 수도회 사제들도 마에스트로라고 부른다. 스승 예수께 지속적인 흠숭을 드리며, 그분께 봉헌된 청원자들은 ‘천상 스승의 제자들’이라 불리고, 스승예수의제자수녀회 수녀들도 마찬가지다. 성령께 매일 기도한다. 다른 주요 신심은 성 요셉, 수호천사, 연옥영혼께 드리는 신심이다.

사람들을 믿거나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수도회는 하느님 뜻에서 생겨났다. 나머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어리석은 것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찬미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가장 놀라운 찬미는 보이지 않는 데에서 이루어진다. 성소를 위한 협력자들의 숨은 희생인데 이러한 것은 사람들이 이룩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당신 사랑으로 행하신 일이다. 늘 하느님의 뜻이 인도하고 지탱해 주신다. 모든 것을 오직 하느님을 위해서 해야 한다. 인간적 시각에서 하느님의 뜻을 저버릴 때 삶의 모든 풍요로움은 사라지고, 모든 것은 무미건조하게 될 것이다.

그 누구도 사람과 사람에 의해 주어지는 유산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유산은 영원하신 하느님, 그분이 우리의 몫이다.

수도회의 첫 번째 목적은 회원들의 성화다. 곧 하느님 마음에 드는 것, 모든 면에서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 죄를 미워하는 것, 그분께 잘 봉사하는 것, 무엇보다 그분의 뜻, 그분의 영광, 그분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이것을 전하고 설교해야 한다.

양성을 위한 으뜸가는 책은 성 이냐시오의 영신수련서이다.

오늘날에도 수도회의 으뜸가는 일은 성소자 식별과 그들을 돌보는 일이다. 선한 출판은 오늘날 다른 무엇보다 더 많은 사람들, 성소자들을 필요로 한다.

여기서 신학자가 가장 섬세하게 열정적으로 마음을 다해 하는 일들이 드러난다.

사도직이 중요하다. 선한 출판, 아무 출판이 아니라 복음서 출판, 하느님을 보여주는 출판, 복음 주석서 출판, 하느님 계시를 대중화하는 출판이다.”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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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91-92] 수도회가 걸어온 지 10년이 지날 때 ‘바오로인’254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또한 남녀 바오로인 모두를 위하여 수도회의 방식에 따른 양성을 강조했다.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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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9ss.52-53.93-95.104-106] 1924년 12월 31일, 알베리오네 신부는 협력자들에게 애정어린 인사를 곁들인, 네 번의 ‘하느님께 감사Deo gratias’와 여섯 번의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는 글을 보냈다.256

첫 번째 ‘하느님께 감사’가 성 이냐시오의 영신수련을 통한 것이라는 사실이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하느님께 감사! 유일하고 고갈되지 않는 가장 순수한 원천이신 천상 스승에게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선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를! 성 이냐시오의 영신수련 정신으로 하는 창조된 목적에 대한 묵상은 우리 삶의 모든 여정에 살아 있는 빛을 섬광처럼 비추어 주었습니다. 나는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살아 있는 동안 적어도 한 번 영신수련을 잘 행할 수 있는 은총을 주시도록 기도드렸습니다. 이 얼마나 큰 은총입니까!! 우리 중 많은 사람이 이미 그 은총을 받았습니다.”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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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52-53.63-64.89.91-92.93-95] 수도회 정신에 대한 표현에는 복음서와 성 바오로의 서간과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의 영신수련서가 명시되었다. “세 권의 책, 이 책들은 협력자들에게 영적 목초지가 되어주어 정신과 생명을 풍성하게 해줄 것이다. 성바오로수도회도 이 세 권의 책이 양성의 토대이므로 각자는 역량에 따라 이것을 사용해야 한다. 천상 스승은 ‘길 진리 생명’이시요, 표양이시며, 빛이요 은총이시다. ‘복음서’는 천상 스승의 책이다. 복음의 진리는 인간들의 사상이 아니다. 복음의 가르침은 삶으로 체득된 가르침이고, 하느님의 생명이므로 가장 강력한 효력을 지닌다. 복음 말씀은 그 말씀을 이해하게 하는 은총과 실천하게 하는 은총을 담고 있다. 복음을 봉독하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걸어간다. ‘성 바오로 서간’은 사도의 영혼과 마음을 형성해 준다. 예수님의 마음을 닮은 사도들, 확고한 사도들, 거룩한 사도들, 풍요로운 사도들, 시대의 사도들을 형성해 준다. 뿌릴 씨를 공급해 주며, 파종한 밭이 수확물을 낼 수 있는 경작비결을 가르쳐준다.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의 영신수련’은 놀라운 영적 힘을 지니고 있다. 인간의 생명을 참된 기초 위에 세워주고, 하느님을 향하도록 방향을 잡아주고, 삶에 의미를 준다. 영성생활을 조직하게 이끌고 풍성한 결실을 맺으며 영성생활을 살아가도록 가르친다.”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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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52-53.63-65.91-92.99-100] 선한 출판 협력자회 회보 1925년 3월호부터 첫 자리를 차지한 주제들은 “알바의 새로운 성 바오로 성당”, “선한 출판의 성당”, “성 바오로 성전”이었다. 그 글은 새 성전이 담고 있는 길 진리 생명이신 스승 예수를 중심으로 하는 수도회의 영성을 설명했다.259

“선한 출판을 위해 일하는 선교사들의 성당은 수도원 건물들과 연결되어 일체를 이룬다. 일반적으로 성당 옆에 교리실들이 있는 것처럼 교리교육을 위한 사무실들이 있으며, 성바오로수도회와 성바오로딸수도회 건물이 연결되어 있다. 성당에서 선한 출판의 선교사들이 교육과 훈련으로 준비를 갖춘다. 어린 선교사들은 하느님 나라를 알리는 글을 쓸 것이다. 성당 안에 현존하시는 길이요 진리이며 생명이신 천상 스승께서는 당신의 광채를 발하신다. 이 광채는 수도회 원장들의 마음과 정신과 입을 통하여 출판 사도들을 양성시킨다. 수도회의 펜, 인쇄활자들은 인쇄를 통하여 책으로만 들어져 영혼들을 비추고 인도하며 활기차게 만든다. 그 책을 가지고 선한 출판의 선교사들은 선교지역으로 떠나게 될 것이다.”260

회보의 글은 성당 건물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음을 알리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이고 있다. “성당은 대중에게 개방될 것이고, 특히 고해성사를 편안하게 볼 수 있도록 할 것이다. 현시된 예수님 앞에서 밤낮으로 지속적인 흠숭을 드리게 될 것이다. 특히 길 진리 생명의 중심이 될261 성바오로수도회가 영적 봉사를 하기 위해 이 성당이 필요한 것이다.”262

1923년 말부터 1925년 중반에 이르는 동안 수도회의 삶과 활동에서 길 진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어떤 방식으로 중심이 되시는지를 폭넓고 깊이 있게 확증해 주는 글들이 감탄을 자아낸다. 이 점은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모습을 갖추실 때까지Donec formetur Christus in vobis」를 읽는 동안 늘 염두에 두어야 할 매우 중요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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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모습을 갖추실 때까지”
(Donec formetur Christus in vobis: 갈라 4,19)

[DFst 39-40] 1924년, 우리는 스승 예수의 달에 관한 다음과 같은 말씀을 찾아볼 수 있다. “길 진리 생명이신 예수님은 모범, 스승, 성성에 있어 중심이 되실 것이다.263 “먼저 행동하고 가르쳐라(Coepit facere et docere): 건설적인 길과 비추는 진리”264 “천상 스승께서는 거룩하게 하시는 생명이시다.”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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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39-40.61-62] 길-모범-건설하고, 진리-스승-비추며, 생명-성화-거룩하게 하는 이 세 가지 명제의 대구법parallelismo은 그리스도의 구원적 기능의 열쇠가 되는 요한 14,6의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266

그리고 이것이 바로 길 진리 생명에 대한 첫 번째 설명이 되고, DF 노선의 전체적인 전망을 이러한 관점에서 보게 해주는 프란치스코 키에사 신부의 세 작품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Gesu Cristo Re 」,267 「스승 예수Gesu Maestro」,268 「나는 생명이다Ego sum Vita269를 이해하는 데 열쇠가 된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Euntes ergo, docete omnes gentes, baptizantes eos in nomine Patris et Filii et Spiritus Sancti, docentes eos servare omnia quaecumque mandavi vobis: 마태 28,18<우리말 성경은 마태 28,19-20>)

이 말씀 안에 하느님 나라의 삼중적 권한이 담겨 있다. 곧 ‘교의적’ 권한을 나타내는 가르쳐라docete, ‘성사적’ 권한을 나타내는 세례를 주라baptizantes, ‘법적’ 권한을 나타내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servare omnia quaecumque mandavi vobis)27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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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37-38.40-41] 키에사 신부의 저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Gesu Cristo Re271는 1925년, 성년을 끝낼 무렵에 반포된 그리스도 왕 대축일 제정에 관한 교황 비오 11세의 회칙 「콰스 프리마스Quas primas」에 대한 주석으로,272 길이신 그리스도의 구원 역할의 법적 효력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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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37-38.60-61.65] 특히 회칙의 서두는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영감을 주었다.

“오래전부터 창조된 만물 가운데 최상의 탁월함을 나타내기 위해 그리스도를 왕으로 호칭했다. 실제로 그분은 그러한 양상으로 ‘인간의 지성을’ 다스리신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그분의 생각이 고차원적이고 그분의 지력이 방대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분이 진리 자체이시고, 인간들은 순명으로 그분에게서 진리를 길어내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분은 ‘인간의 의지’를 다스리시는데 이는 하느님 의지의 거룩함에 상응하는 인간적 의지의 순수함과 복종이 이루어지고, 가장 고귀한 것들을 향해 불타오르도록 당신의 영감으로 우리의 자유의지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함이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는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에페 3,19)을 통하여, 그리고 당신의 온유함과 선하심의 매력을 통하여 ‘인간 마음의 왕’으로 인식되신다. 사실 인간들 중 그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만큼 많이 사랑받고, 앞으로도 그만큼 많이 사랑받을 사람은 없다.”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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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40-41.44-45.48-49.51-54.60-61] 프란치스코 키에사 신부는 ‘그리스도 왕국의 영역’에 세 장章을 할애했다.

곧 정신, 마음, 의지에 관해서이다. 그리스도 ‘왕국의 확장’에도 여러 장을 할애하여 다루었다.

DF를 잘 알기 위해서는 특히 이러한 내용을 기억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안에 자리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274 곧 ‘지성에 자리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275 ‘의지에 자리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276 ‘마음 안에 자리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277 ‘우리 몸 안에 자리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278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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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16.44-45] 지성, 의지, 마음과 몸을 인간 전체의 표현으로 보는 시각은 「생명의 열쇠La Chiave della vita279에서 다시 채택되고 발전된다. 이 책을 DF의 한 장章을 할애하여 다룰 만큼 알베리오네 신부에게 소중했던 이 내용은 바오로 영성280을 위해 아무리 강조해도 충분치 않을 것이다.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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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39-40.49-50] 모범esempio-비추임illuminare-거룩하게 함santificare이라는 세 가지 명제는 알베리오네 신부의 간청을 받아 저술한 프란치스코 키에사 신부의 「스승 예수Gesù Maestro」에서 길 진리 생명이신 그리스도라는 표현처럼 단순하고 매력적인 방식으로 전개된다.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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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49-50] 저자는 ‘머리말’에서 작품 구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본서는 세 부분으로 나뉜다. 1부는 스승의 ‘필요성’에 대해 다루고, 2부는 예수님을 ‘참된 스승’으로 보여주며, 그분 가르침의 ‘능력’, ‘방법’, ‘내용’을 설명하고, 3부에서는 천상 스승의 가르침에서 유익한 점을 이끌어내는 ‘방식’을 알려 준다.”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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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Fst 49-50.51-52] 제1부에서는, 6개의 장章, 저자가 이름 붙인 ‘단상들letture’에서 키에사 신부는 참된 스승과 우리 인간적 본성에 의해 요청되고, 제자로서 필요성을284 깨달아야 할 스승의 존재에 대해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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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39-40] 제2부는 19개의 단상으로, 참된 스승 예수님의 빛, 모범, 거룩하게 하시는 분으로 삼중적 역할, 곧 길 진리 생명의 세 가지 명제를 여러 가지 관점에 비추어 전개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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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4개의 단상은 예수의 본성과 소명을 통한 참된 스승, 필요한 스승, 보편적 스승이심을 다룬다. 이어서 스승 예수님의 탁월한 능력에 관한 세 가지 단상 중 두 개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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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39-40] 그 첫 번째에서 예수님의 ‘능력’이 소개된다. 곧 진리 길 생명에 상응하는 지식scienza, 귀감esemplarita, 사랑carita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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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51-52] 스승 예수님의 첫 번째 능력은 지식이다.(나는 진리다Ego sum veritas: 요한 14,6)285 “스승의 일반적인 자질에는 세 가지가 있다. 지적, 윤리적, 교육적인 능력으로 그중에서도 지적 능력은 ‘지식’에 집약되어 있다. 스승은 모름지기 지도자여야 한다. 곧 교의와 지식을 가르치고 전달해야 한다. […] 예수님의 첫 번째 능력, 곧 지식이 어떠한 것인지 살펴보자. 가르쳐야 할 ‘진리’에 대한 지식, 지도해야 할 ‘제자들’에 대한 지식, 활용해야 할 ‘방법론’에 대한 지식이다.”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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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52-53] 여기서 스승 예수님의 방법에 관한 숙고를 부각시켜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가르쳐야 할 진리와 지도해야 할 제자에 대한 지식 두 가지에서 필수적인 또 다른 지식, 곧 방법에 대한 지식으로 넘어간다. 공부를 많이 한 박식한 연구가들이 있다. 그런데 그들의 지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해야 할 때는 평균 이하의 수준을 드러내고 만다. 왜 그런 것일까? 가르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야 할 길인 ‘방법’을 모른다는 것은 제자의 지성에 진리를 전달하는 길을 모른다는 것이다. 이렇게 상품을 목적지까지 도달시킬 방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최악의 상황에 있는 것이다. 그 대신에 방법을 잘 아는 사람은 신속하게 그리고 쉽게 가장 난해한 진리도 이해시킬 수 있게 된다. 이제 천상 스승이신 예수님 안에서 이미 앞서 숙고한 두 가지 지식과 가르침의 방법에 관한 지식을 살펴보기로 하자. 이 방법에 대한 지식은 고도의 신중함과 실천으로 충만한 지식이요, 우리로서는 그 깊이를 꿰뚫어볼 수 없는 무한한 지식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최소한의 지식이라도 우리에게 어떤 아이디어를 주기에 충분하다. 가르치는 방법이 시기·장소·방식·사람들을 선택하게 한다.”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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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48-49] 키에사 신부는 스승 예수님의 윤리적 능력에 포함되는 그분의 삶의 모범을 보여준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준 것이다.”<Exemplum dedi vobis>: 요한 13,15) “윤리적 삶의 으뜸으로서 인간 본성을 완벽하게 아시는 예수님은 모범을 첫 자리에 두신다. ‘모범’이야말로 당신 구원 사업의 첫 번째 표현이기 때문이다. “먼저 행동하고 가르쳐라.”(Coepit facere, et docere: 사도 1,1-역자 직역).” 그뿐 아니라 그분의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는 우리가 닮아야 할 표본이다.”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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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37-38] 키에사 신부는 그 자체로 다른 능력들을 함축하고 있는 천상 스승의 또 다른 윤리적 능력을 언급하는데 그것은 곧 사랑이다. “이 사랑은 빛이다. 특히 이 빛은 사랑 때문에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당신 사명을 완수하고자 하신 그분을 에워싼 빛이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우리 구원자이신 하느님의 호의와 인간애가 드러난 그때”(Benignitas et humanitas apparuit Salvatoris nostri Dei: 티토 3,4)라는 성경 말씀에 관하여, 곧 인간 예수보다 예수의 호의가 먼저 나타남에 주목한다. 태양이 본 궤도에 오르기 전의 동틀 녘이나, 여명에 자신의 빛을 발산하기 시작하는 것처럼 우리 구원자 예수님도 당신의 인격을 드러내시기 전에 호의의 광채를 발산하기 시작하시는 것이다. 스승 안에 사랑의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또 예수께서 ‘말씀’과 ‘활동’을 통한 당신의 가르침 안에서 이 능력을 어떻게 실행하셨는지 살펴보자.”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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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37-38] 키에사 신부는 스승 예수님의 능력에 관한 두 번째 단상에서 드물게 사용되지만 그분의 가르침을 효과적으로 표현해 주는 ‘즐거운 교육terpetica’과 ‘유연한 교육’(plastica pedagogica)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를 좋아한다. “지적, 윤리적 능력 외에 스승에게 필요한 자질은 ‘교육적’ 자질인데, 이것은 가르침의 방식이나 방법에 속하는 것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종교 교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종교 교사에게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곧 ‘가르치다ut doceat, 기쁨을 주다delectet, 감동을 주다moveat’이다. 이 단어들은 모든 스승에게 속하는 세 가지 교육적 자질을 정확하게 표현해 준다. ‘가르치다ut doceat’는 여기서 ‘교수법’의 기술을 일컫는다. ‘기쁨을 주다ut delectet’, 곧 ‘즐거운 교육laterpetica’은 배움을 좋아하고 흥미를 가지게 하는 기술을 말한다. ‘감동을 주다ut moveat’는 성격을 형성시키는 최상의 기술로서 ‘유연한 교육plastica’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천상 스승의 ‘교수법’을 숙고할 것이고, 또 그러한 교육의 중요성과 예수께서 어떻게 이를 복음적 은유와 비유에서 실천하셨는지 살펴볼 것이다.”290

프란치스코 키에사 신부는 즐겁고도 점진적인 시각의 역동적 진리 길 생명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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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49-51] ‘진리’에 상응하는 지성의 조명을 혼인적 용어로 소개하고 있다. “지성의 조명은 교육보다는 최상의 가치와 관련된 것이다. 창조주 하느님께서 다른 모든 것보다 제일 먼저 ‘빛이 생겨라.’(fiat lux)라고 말씀하시면서 빛을 창조하신 것처럼, 교육받는 자의 영혼 안에 그 무엇보다도 먼저 빛을 비추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진리의 가르침으로 이루어지는데 지성과 진리는 신랑 신부와 같다. 창조주에게서 영원히 혼인으로 일치되도록 운명지어졌으므로 서로가 서로를 끊임없이 계속 찾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원하던 혼인이 성사되는 과정에 힘들고 어려운 탐정소설 같은 여정이 나타난다. 인간 지성이 적법한 수준에 이르러 박사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고를 치러야 하는가! 숫자에 대한 지식에서 수학교수가 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노고가 따르는가! […] 지성이 단 하나의 진리에 결합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곧 두 개의 숫자를 더하는 방식처럼 지성과 진리의 결혼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 ‘교수법’은 그러한 결합의 어려움을 감소시키고 시간을 단축해 준다.”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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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40-45.48-49] 프란치스코 키에사 신부는 ‘길’에 상응하는 예수님의 ‘즐거운 교육terpetica pedagogica’을 소개한다. “스승에게 필수적인 교육학적 자질의 두 번째 요소가 바로 이것이다. 곧 학생들에게 즐거움과 흥미를 주는 기술이다. 성 아우구스티노가 말하는 ‘기쁨을 주는 것ut delectet’이다. 스승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이러한 기술이라면, 학교가 지성의 교육을 하면서 의지의 교육에도 마음을 써야 한다는 것에 대해 이해하기 쉬워질 것이다. 전자든 후자든 가장 중요한 것은 흥미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그 자체로 힘들고 어려운 덕을 의지가 쌓아가도록, 덕에 대한 감탄과 존경을 촉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기술의 참된 목적이 바로 이것이다. 진리를 아는 것과 이를 실천하는 것 사이에는 큰 심연이 놓여 있다. 오비디오(Ovidio: 라틴계 시인)는 ‘나는 무엇이 더 좋은 가를 알고 인정하지만, 나쁜 것을 추구하게 된다.’(Video meliora, proboque, deteriora sequor)고 말했다. 이 기술은 이러한 심연 위에 다리를 놓아 의지가 쉽게 통과할 수 있게 만든다. 바로 이 때문에 교육적 측면에서 도움이 되는 책들은 단순한 법령들의 책이 아니라 예술적으로 쓰여진 책들이다. […] 더 나아가 순수한 ‘교육’만을 이야기한다고 해도 의지가 기쁘고 흥미 있게 앞으로 나가도록 해줌이 필요하다. 모든 것이 의지에 달려 있다. 의지는 학교에 다니면서 열심히 참여하고, 주의를 기울이고, 사고하고, 창안을 내고, 어려움을 극복하게 한다. 선의를 지닌 학생을 내게 보내줄 때 여러분은 성공적인 결과를 얻을 것이다. 이 때문에 교육서적들은 다양한 연령의 학생들이 보이는 ‘흥미’에 관해 많이 이야기하고, 호감을 느끼고 좋아하는 현대적인 학교로 만들기 위해 많은 수단을 활용하고 있다. 곧 교육이 쉬워지도록 흥미를 유발시키고 즐겁게 해주려 노력한다. 이것이 바로 즐거움을 주고 흥미롭게 하는 ‘즐거운’(terpetica: τέρπω에서 유래함) 기술인데 이처럼 자연스럽고 꼭 필요한 이것은 천상 스승에게서가 아니면 심어질 수 없다. 어떤 교육자들보다도 훨씬 더 인간 본성의 밑바닥까지 아시는 그분은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신적 방식으로 이 기술을 이용하셨다. 또한 지도하는 방식, 교의의 본질, 이를 보증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똑같이 하셨다.”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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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54-58.59-60] 프란치스코 키에사 신부는 처음부터 인격형성에 관한 고찰을 매우 중요시하면서 ‘생명’에 상응하는 ‘유연한 교육plastica pedagogica’을 소개했다. “참된 학교 교육은 교육 목표인 인격을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인류의 선을 진지하게 돌보는 일에 전념하는 모든 이들이 열망하는 이상이다. 의지가 인간 능력의 여왕인 것처럼, 인격형성은 교육이 도달해야 하는 최고봉이다. 인간의 참된 가치는 여기에 달려 있다. 인격은 덕성이기 때문이다. 선한 의지 없이는 어떤 좋은 자질도 악인이나 정신이상자의 손에 들린 총기처럼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완전함에로 불림받았다. ‘하느님의 뜻은 바로 여러분이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Hæc est voluntas Dei, sanctificatio vestra: 1테살 4,3) 의지의 완전함이 우리 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아무도 누군가가 아름답지 않고, 건강하지 않고, 튼튼하지 않고, 박식하지 않고, 고상하지 않고, 부자가 아니라고 해서 비난할 수 없다. 이러한 것은 그의 의지에 달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덕스럽지 못하다면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덕성은 우리의 자유의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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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사 신부는 예수님의 배움터에서 양성받은 사도 바오로와 베드로, 순교자들과 성인들을 소개하면서 예수님은 초자연적 수단과 더불어 자연적 수단을 소홀히 하지 않으셨음을 ‘유연한 교육plastica pedagogica’에 대한 설명에서 짚어준다. 알베리오네 신부는 이 자연스러운 교육 방법에 깊이 공감했다.294

“‘유연한 교육plastica pedagogica’은 기계가 벽돌이나 기와를 찍어내고 금속상을 찍을 때처럼 모든 형태를 기계적으로 동일하게 찍어내는 ‘플라스틱 산업plastica industriale’과는 다르다. 유연한 교육은 자유로운, 살아 있는 존재와 함께 그들의 본성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하는 것이다.

살아 있는 존재는 지적이고 자유롭고 본질적이고 내재적인 원칙을 통해 활동하며, 스스로 추구하는 목적을 향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러한 존재를 형성한다는 것은 그를 완전하게 형성해감을 의미하는 데, 모든 행동들이 알맞게 고려되어야 한다.

살아 있는 이성적 존재는 성 토마스가 말하는 것처럼, 내부에 있는 ‘형태forma’와 외부에 있는 ‘목적fine’이라는 두 가지 요소로 설명되는 본질적 원칙을 가지고 있을까? 교육자, 조물주는 이 ‘형태forma’가 훨씬 더 생기 있고 활발하도록 늘 돌봐주어야 하고, 형태가 그 자체로 충분하다면 활력을 불어넣어야 하지만, 형태가 부족하다면 잠재력을 보충할 필요가 있다. 그 다음 ‘목적fine’은 매력을 증가시킬 수 있는 요소들로 둘러싸이도록 해야 하나 아주 명확하고 분명하게 목적을 알도록 해야 한다.

그러고 나면 자유로운 존재가 목적을 위해서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까? 자유를 막는 장애들을 무너뜨리고, 의지력을 한층 더 강화시키고 촉진시키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도전과 용기로 자신의 목표를 향해 질주할 수 있도록 말이다.

다시 말해 지성적이고 자유로운 존재가 자기 자신에 대한 충분한 의식을 가지게 되었을 때, 또 그 어떠한 종류의 장애도 받지 않는 독립적 존재가 되었을 때 항구하고 효과적으로 힘을 기울여 목적을 실현해가는 습관을 지니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었을 때 그 존재는 자신의 윤리적 ‘인격carattere’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천상 스승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행하신 것이다.

✽✽✽

교육자의 직무를 다음과 같은 두 구절로 집약시켜 볼 수 있다.

‘현명한 교육자의 법은 이것이다.

자극하고, 행동하도록 놓아두며, 인도하고 고쳐준다.’

첫 번째 요소는 ‘자극’이다. 행동하도록 격려해 주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진리의 가르침으로 진리의 아름다움을 보게 함으로써 당신 모범을 통하여, 말씀에 귀 기울이는 사람에게 하신 약속을 통하여, 기적의 힘을 통하여 자극하셨다.

참행복 설교에서 영혼들에게 하신 그 누구도 능가할 수 없는 자극을 보라! 청중의 영혼에 타오른 불길이 어떠했던가!

그러나 예수께서는 언제나 자유를 존중하셨다.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si vis ad vitam ingredi: 마태 19,17) “나를 따라야 한다.(qui vult venire post me) 등.

당신을 부인하는 성 베드로도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셨다.’

예수께서는 당신 제자들을 ‘인도하셨다.’ “바리사이들의 누룩을 조심하라.”(Cavete a fermento Phariseorum: 마르 8,15)

예수께서는 ‘고쳐주신다.’ 베드로가 잘못을 저지른 다음 그리고 예수께서 죽음에 이르는 길로 가시는 것을 말리려 들었을 때 그를 교정해 주신 것처럼. 야고보와 요한이 (그들의 청을 거절한) 사마리아에 하늘에서 불을 불러내려 살라 버리고자 할 때라든가, 다른 많은 상황에서 그들을 교정해 주신 것처럼.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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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58-63] 프란치스코 키에사 신부는 이 단상에서 마지막으로 예수께서 적용하신 가장 중요한 교육수단인 은총에 대해 말하면서 기도와 성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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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37-38] 프란치스코 키에사 신부는 스승 예수의 능력에 대해 이야기한 다음 그분의 가르침을 다룬다. “마지막 단상에서 우리는 천상 스승의 ‘능력’을 숙고했다. 이제 그분의 가르침 내용을 고찰할 단계로 넘어갈 차례다. 그 내용은 어떤 것일까? 여기서 눈에 띄는 규칙을 살펴보자. “모든 것은 목적을 향한다.”(In omnibus rebus respice finem) 예수께서는 무슨 목적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는가?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알려 주시기 위함이다.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사람이 되셨다.”(Propter nostram salutem descendit de coelis et incarnatus est) 그러니까 예수께서는 인간들에게 구원에 ‘필요한’ 모든 진리를 가르쳐 주셔야 했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 진리는 지성, 감성, 의지로 이루어진 인간 전체와 관련되며, 스승의 가르침은 바로 이러한 능력을 충족시켜 주는 것이다. 그분은 지성을 위한 ‘지식scienza’을, 의지를 위한 ‘윤리morale’를, 마음을 치유하고 굳건하게 하기 위한 ‘기술arte’을 가르치신다.”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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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43-45] 여기서 키에사 신부의 저서 「스승 예수Gesù Maestro 」의 모든 가르침을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모습을 갖추실 때까지Donec formetur Christus in vobis 」를 숙고하기 위해 이 작품의 다른 부분들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프란치스코 키에사 신부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관한 단상의 세 가지 명제, 곧 진리 길 생명이라는 스키마를 지식, 윤리,297 구원의 수단으로 소개한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관한 다섯 개의 단상이 뒤를 잇는다. 곧 참되고 쉽고 효력 있는 말씀으로 소개하는 그분의 살아 있는 말씀, 사도들과 제자들을 선택하심, 교회를 세우심, 복음, 스승의 현존이다. 두 번째 부분은 예수님의 교육magistero 효과에 관한 단상으로 끝을 맺는다.

책의 세 번째 부분은 스승 예수의 가르침 앞에서 갖게 되는 우리의 의무에 대한 것이다. 곧 거룩한 강론을 자주 듣고, 복음서를 봉독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수용해야 할 의무, 예수님의 가르침 또는 권고를 알아듣고 예수님의 표양을 살아야 할 의무, 말을 통한 가르침으로 스승 예수께 협력하고, 출판 매체(저술가들을 양성하고, 서적을 출판하며, 서적을 보급하는 일)298를 통해 스승 예수께 협력할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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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52-54.74-78]

말씀과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와 항구하게 일치하여 살아가는 수도회는 키에사 신부의 저서 「나는 생명이다Ego sum Vita」를 심화하기 위한 자료로 삼았다. “복음은 하느님 말씀이다. 말씀Verbo이신 예수님, 성부의 말씀이신 예수님은 가르치는 말씀으로 복음 안에 현존하시고, 양육하는 음식으로 성체 안에 현존하신다. 태양이 빛과 열을 내는 것과 같이, 복음과 성체는 예수님의 서로 다른 두 가지 현존방식이다. 1927년 6월 30일, 알바에서 열린 복음대회에서 복음서를 제대 위 두 개의 촛불 사이에 모셨던 것은 아주 적절했다. 성바오로수도회도 제대 위에 성체를 현시했던 것처럼 넓은 인쇄소 한 편에 복음서를 모셔놓고 그 앞에 등을 밝혀 놓았다. 성당 제대에도 촛불을 켜고 성체와 복음서를 지속적으로 현시했다. 테르툴리아노 교부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복음에 대해서 성체께 드리는 흠숭과 동일한 경외심을 지녀야 한다. 예수께서는 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생명이다.(Ego sum vita)

이 말씀의 심오함은 우리 생애의 모든 시간을 다 바쳐도 그 의미를 꿰뚫기에는 부족하다. 특히 삶의 요구들이 최고 수준에 이르고자 하는 이 시대에 예수님의 신적 삶과 지고의 본질에 우리의 눈길을 더욱 밀접하게 고정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유익하고 적절한가! 그분은 하나의 삶이 아니라 생명 자체이시다. 우리가 이 생명을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살아가기에 이른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더 이상 요청할 것이 없다.”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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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55] 키에사 신부는 자신의 저서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이 책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첫 부분은 일반적인 생명에 대해 언급하고, 두 번째 부분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삶이 초자연적이기를 바라신다는 점을 설명했다. 곧 그분께서 어떻게 우리의 생명이신지, 그 생명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 그 생명의 효과·수단·결실은 무엇인지를 설명했다. 마지막 세 번째 부분에는 우리 각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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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11-12.46-47] 「나는 생명이다Ego sum Vita301의 내용에서 DF와 만나는 사항들을 짚어가면서 볼 때, 키에사 신부의 저서가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모습을 갖추실 때까지Donec formetur Christus in vobis」에서 제시된 배경·노력·결실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프란치스코 키에사 신부가 갈라 4,19에 기초한 삶의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는 것으로 그치기로 한다.

“예수께서 우리 안에서 자유롭게 숨 쉴 수 있을 때, 우리 안에서 당신 심장의 ‘고동’이 규칙적으로 뛸 때 우리는 우리 안에 머무시는 ‘생명의 빵’으로 양육된다! 예수께서 우리 안에 사실 뿐 아니라 매일같이 성장하고 발전되어 완전히 그분이 형성되실 때까지,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모습을 갖추실 때까지’(donec formetur Christus in nobis) 머무시기를! 오, 많은 행운을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이것은 어떤 영혼들만의 특권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특권을 누리도록 초대받았다. 우리 모두는 성인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뜻은 바로 여러분이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hæc est voluntas Dei, sanctificatio vestra: 1테살 4,3)”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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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9-13.104-106] 키에사 신부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Gesù Cristo Re」, 「스승 예수Gesù Maestro」, 「나는 생명이다Ego sum Vita」라는 세 권의 저서 덕분에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모습을 갖추실 때까지Donec formetur Christus in vobis」에서 말하는 내용의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는 넓은 시야를 갖게 되었다.

자필원고 사본은 192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 시기는 알베리오네 신부가 수도회 회원들 가운데 연장자 대상으로 1927년 10월 11일부터 1928년 5월 23일까지 “우리의 삶을 방향짓기 위한 묵상 코스 또는 연장된 영신수련Corso di Meditazioni o Esercizi prolungati per orientare la nostra vita”을 시작하는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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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9-13.17.37.67.104-106] 묵상은 보통 일주일에 세 번 했다. 이러한 사실은 마에스트라 테클라 메를로의 공책 B2.5, B2.6과 마에스트라 데레사 라발로의 공책 n. 18, 19, 20에 꼼꼼하게 잘 기록되어 있다. 이 메모들은 때때로 순서가 다르게 적혀 있긴 하지만 알베리오네 신부의 자필원고 공책에 들어 있는 기본적인 세 부분, 곧 정화의 길Via Purgativa, 조명의 길Via Illuminativa, 일치의 길Via Unitiva로 나뉜 DF의 장章들임을 확인할 수 있다.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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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9-13.104-106] DF의 자필원고 공책이 1927년보다 앞선 것인지 질문해 볼 수 있지만, 아직은 이러한 가설을 확정지을 충분한 요소가 부족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공책의 메모가 알베리오네 신부 자신의 내밀한 체험과 직무에서 체득한 긴 여정의 결실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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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9-13.17.37.67.104-106] DF에서 언급하는 중요한 테두리는 당연히 이냐시오 ‘영신수련’의 틀을 따르고 있지만, 알베리오네 신부가 자신의 견해로 고유하게 재해석한 것이다. 알베리오네 신부는 이러한 테두리 안에서 수련기를 연장된 영신수련 코스, 그것도 단기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계속되는 영신수련이라고 생각하기를 좋아했다.3041927년에 승인받은 성바오로수도회 「규칙서Regole」의 수련기에 관한 열 번째 조항이 이를 잘 드러내고 있다. “수련기는 세 가지의 큰 길, 곧 정화의 길, 조명의 길, 일치의 길을 거쳐야 하는 시기이다. 성 이냐시오의 영신수련에 관한 저서를 영신수련의 길고 고요한 과정으로 삼고, 제자(Discepolo: ‘수사’를 칭함)의 영신수련과 마리아의 종(Servo di Maria: ‘수련자’를 칭함)의 신심생활을 위해 저명한 저자들의 해설서와 성 이냐시오의 영신수련서로 영적독서 (또는 교육)을 하고 성체를 흠숭한다.”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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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9-13.104-106] 1927년 3월 12일 남성 줄기가 교구승인을 받은 것처럼 알베리오네 신부가 결정한 ‘연장된 영신수련 코스’가 여성 줄기의 교구인가를 위한 직접적인 준비가 되기를 희망했다.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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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83-92] 성바오로딸수도회가 인가를 받은 다음 알베리오네 신부는 수도생활의 양성을 강화시켰다. 1929년 10월 28일부터 알베리오네 신부의 수도생활의 모든 과정에 대한 기록이 보존되어 있다.307 이 기록은 DFst 83쪽 이하에 소개된 생활 상태, 서원, 수도 성소 등에 관한 내용을 더 넓게 보게 해준다.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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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85] 이 시기에 수도회의 양성은 남녀 회원들이 놀랄 만한 속도로 성장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투신하고 있는 활동에도309 놀랄 정도의 큰 성과를 거두게 했다. 1926년 1월 중순에 남성 줄기와 여성 줄기로 구성된 로마 분원이 설립되었는데 얼마 후 “인쇄 사도직 협력자회UCAS” 회보에 로마에 입성한 ‘두 가족’에 대한 소식이 실렸다. 1927년 베네딕토수도회 소유의 “성 바오로 포도원Vigna San Paolo”을 매입하여 1929년 초 그곳에서 성바오로수도회와 성바오로딸수도회와 스승예수의제자 수녀회 수녀들이 함께 있게 되었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UCBS 회보는 로마의 토지매입 소식을 전하면서 처음으로 바오로가족이라는 명칭을 붙였다.310

그러는 사이에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에도 설립이 뒤를 이었다. 토리노(1926 FSP), 살레르노(1928년 11월 5일 FSP), 바리(1928년 11월 15일 FSP), 베로나(1928년 11월 19일 FSP), 산프레(1928년 12월 10일 PD), 칼리아리(1929년 2월 5일 FSP).

선한 출판 협력자회UCBS 회보는 알바 모원 건물과 여러 공동체의 사진을 실었고,311 창립 13주년 기념호에는 “알바에서 보는 선한 출판 사업회의 작은 비전Una piccola visione dell’Opera della Buona Stampa in Alba”을 소개했다. 곧 9개의 중요한 시설이 한 장의 사진으로 소개되었다.

① 성 바오로 새 성전 건설자재 창고 ② 성 바오로 성당 ③ 성 바오로 집 ④ 하느님 섭리의 집 ⑤ 사도의 모후 집 ⑥ 성 요셉 집 ⑦ 스승 예수 집 ⑧ 벽돌 가마 ⑨큰 뜰.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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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형상 급속도로 진척되고 있던 성 바오로 성전 건립에 관심이 집중되는 동안 새로운 사업들313과 영적인 면모들도 소개되었다.

201

[DFst 52-53.93-95] 스승 예수 축일이 자리 잡으면서 복음서 보급을 위하여 본당에서 거행하게 된314 복음대회Congressi del Vangelo와 긴밀한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볼로냐 대회(1925년)315와 밀라노 대회(1926년)316이후 세 번째 복음대회가 1927년에 알바에서 성바오로수도회 개최로 이루어졌다.317 성바오로수도회는 이 기회를 통해 대형 도서 전시회도 준비했다.318

202

[DFst 63-64.95-96] 여러 달에 걸쳐 인쇄 사도직 협력자회 회보에 새 성전의 스테인드글라스 사진과 그에 대한 설명을 실음으로써319 성 바오로에 관한 가르침을 심화하고 강화시켰다. 6월을 성 바오로께 봉헌하도록 권고했고,320 “바오로 정신”이라는 표현을 널리 사용하고,321 주간 신심을 소개함으로써322 수도회의 바오로 영성 소개는 정점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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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63-64.95-96] 성 바오로 축일은 알바 시민들이 모이는 기회가 되었으며, 선한 출판 협력자들의 대대적인 참여의 계기도 되었다. 며칠동안 계속되는 기회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비탄Dramma di Cristo”(1925년과 1926년),323 “위대한 왕의 전령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San Francesco d’Assisi L’araldo del Gran Re”(1926년),324 “마리아 막달레나Maria di Magdala”와 “돌아온 탕자Il Figliuol Prodigo”(1927년)325 같은 연극 공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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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63-64.95-96] 1928년에는 성 바오로 성전 축성식과 관련하여 성 바오로 축일을 10월 28일부터 11월 4일까지 한 주간 동안 장엄하게 거행했다. 이때 9명의 부제가 수품되었고, 51명의 젊은 학생들과 많은 수의 소년들의 착복식이 있었다. 매일 일반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미사가 봉헌되었고, 젊은이들을 위한 3일 피정이 있었다.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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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93-95] 이러한 모든 시도들에서 바오로적 사도직 탄생이 교회 공동체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됨을 확인하게 된다. 이전에 내걸었던 “양서와 성물 보급 센터Centri di diffusione di libri buoni e oggetti religiosi”라는 단순한 이름에서 “선한 출판 협력자회 본당 분과Sezioni Parrocchiali dell’Unione Cooperatori Buona Stampa”가 생겨남으로써 인쇄 사도직의 근간을 이루는 튼튼한 토대를 구축하게 된 것이다.327 이것은 성바오로수도회 「규칙서」에 제시된 목적을 효과적으로 이루게 했다. “인쇄 사도직은 가톨릭 사상을 설명하고 수호하며 보급하고 개인·가정·학교·법·국가를 그리스도화로 이끈다.” 가톨릭 사상을 개인·가정·사회·국가적 삶에 적용한다.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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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52-53.93-95] 「인쇄 사도직 협력자회Unione Cooperatori Apostolato Stampa」(= UCAS)라는 새로운 명칭을 붙인 회보에 통상적인 기사 외에 여러 구체적인 기획329과 더불어 인쇄 사도직을 이론화하여 학술 논문식으로 주제를 전개하였다.330 이 주제들에 대해서는 「인쇄 사도직Apostolato Stampa」에서 폭넓게 다루고, DF에서는 요약하여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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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96-97] 사도의 모후 마리아께 대한 신심은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 「아디우트리쳄Adiutricem331에 대해 언급하면서 더 심화된 것을 1929년 4월호부터 「인쇄 사도직 협력자회」(UCAS)에 여러 차례 연재함으로써,332 그리고 티모테오 자카르도의 저서333를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 누구보다 바오로적 카리스마를 잘 소화시킨 자카르도 신부의 저서는 수도회 영성과 사도직을 완벽하게 통합하여 지속적으로 되새기게 함으로써 이를 잘 입증하고 있다.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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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88] 알베리오네 신부는 1928년 마지막 몇 달간 수도회 여성 줄기의 승인을 받기 위해 집중적으로 일하면서 남성 줄기의 외관도 완성시켜 갔다.

1927년에 승인된 「규칙서」에 따르면 성바오로수도회는 ‘스승들Maestri’이라는 사제들과 ‘Signori’ 라는 평신도 협조자들로 구성된다. 일정한 시험기를 통과한 젊은이들에게는 ‘제자들Discepoli’이라는 호칭이 주어진다. 한 증언에 의하면,335 알베리오네 신부는 1928년 10월까지 늘 ‘기능공들Operai’ 이라고 소개되던 평신도 협조자들에게 ‘천상 스승의 제자들Discepoli del Divin Maestro’이라는 이름을 제안했다고 한다.336

알베리오네 신부와 자카르도 신부가 주고받은 편지에서 ‘경건한 제자들Pii Discepoli’의 수도복에 관해 의견을 나누었음을 볼 수 있다. “두 가지 묵상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장 중대한 죄, 가장 자주 범하는 죄, 가장 묵상을 많이 하게 되는 죄, 가장 뻔뻔스럽고 대담한 죄는 나쁜 출판물로 인한 죄입니다. 경건한 제자들은 극기, 기도, 겸손한 노동, 서원, 죽음의 옷(어두운 색)을 통하여 보속행위를 하는 영혼들입니다. 이들은 예수회 평신도복 형태의 검정 수도복을 입고 복음과 십자가의 상징을 지니게 됩니다. 착복식은 성 바오로 축일에 하게 될 것입니다.”337

「인쇄 사도직 협력자회」는 1929년, 장엄하게 거행한 성 바오로 축일을 소개했고, 창립자의 의도가 담긴 천상 스승의 제자들에 관한 몇 가지 흥미로운 정보도 제공해 준다. “성 바오로 축일을 6월 29일에서 7월 7일까지 한 주간에 걸쳐 지냈다. 많은 기도와 은총과 축복이 넘치는 완벽한 종교 축제였다.” 그리고 6월 29일에 있을 6명의 사제수품식과 7월 1일에 있을 성바오로딸수도회의 서원식, 그 다음날 있게 될 스승예수의제자수녀회 서원식에 대해 알리면서 기사는 계속되었다. “7월 3일 수요일 ‘제자들’(젊은 기능공들)의 착복식이 감격스럽게 치러졌다. 그들은 이 복된 날을 위하여 기도와 침묵 속에 숨겨진 덕을 끊임없이 실천하며 오랫동안 준비해왔다.

착복식 전에 신학자께서 예식의 의미를 설명해 주셨다. 천상 스승의 제자들은 성바오로수도회 평수사들이다. 신학자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록 실행면에서는 마지막이지만, 지향에 있어서 첫째가는 이들은 우리에게 아주 소중합니다. 사실 1909년부터 시작된 우리 수도회 창립에 대한 첫 생각은 악한 출판물의 죄를 보속하기 위해 자신을 모두 내놓을 사람들을 모으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기도와 희생을 바쳐온 우리에게 오늘 주님께서는 일곱 명의 첫 그룹이 악한 출판물을 통하여 범하게 되는 많은 죄를 보속하기 위해 세상에 대한 죽음과 주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의미에서 수도복을 입기 위하여 제대 앞으로 나오는 은총을 허락하였습니다. 이들은 특별히 경건한 삶과 극기생활을 통하여 숨겨진 덕을 지속적으로 실천함으로써 죄를 보속하고 자신들의 힘을 출판 사도직에 쏟을 것입니다. 그들의 기본 신심은 충실하게 미사성제에 참여하고,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는 것입니다. 이들이 사도직의 결실을 풍부히 맺고 많은 덕을 쌓기를 기원하며, 당신의 제자들이 많아지고, 그들이 당신께서 원하시는 제자들이기를 천상 스승께 기도 드립니다.’”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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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55-56] 이러한 보속자의 사명은 1928년 5월 10일에 발표한 보속에 관한 교황 비오 11세의 회칙 「자비로우신 구세주Miserentissimus Redemptor」에서 특별한 위로를 받았다.339 알베리오네 신부는 며칠 후 이 회칙을 ‘연장된 영신수련Esercizi Prolungati’340에 인용했고, 프란치스코 키에사 신부는 몇 달 뒤에 저술한 책에서 회칙에 대한 깊고 폭넓은 주석을 했다.341

이 회칙은 알베리오네 신부가 언급한 구세주 그리스도에 대한 부분에 깊게 스며 있으므로 DFst의 “구세주 예수”(nn. 55-56)부분을 읽을 때 곧바로 이 회칙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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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85] 제자들(수사들)의 첫 착복식에 대해 「인쇄 사도직 협력자회」에 실린 “부르심의 때”에 관한 기사에서 새로운 모습의 수도회, 곧 두 계층(학생들과 평신도 협조자-제자들)으로 구성된 남성 줄기와 두 부문(성바오로딸수도회 수녀들과 스승예수의제자수녀회 수녀들)으로 구성된 여성 줄기의 목적과 수단, 정신을 소개했다.342

211

[DFst 88] 「인쇄 사도직 협력자회」 1929년 9월호는 성소사목에 관한 기사를 계속 게재하면서343 성바오로수도회(여성 줄기를 포함) 학생들의 통계를 알렸다. 이탈리아 32개 주에서 입회한 총 인원은 이미 900명에 달하고 있었다.344

212

[DFst 88] 「인쇄 사도직 협력자회」 10월호는 천상 스승의 제자들Discepoli del Divin Maestro(수사들)의 성소를 소개했다.345 수도회는 앞으로 몇 년 동안 지속될 DF의 인격형성에 관한 제안을 통해 완전히 달라진 인간상을 형성하여 자리를 잡아갔다.

213

알베리오네 신부는 수도회 정신에 따른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통합된 형태가 이루어지기를 바랐다. 이러한 과제는 30여 년 동안 모든 검토 작업과 계획을 서로 소통하는 가운데 통합 형태를 심화시킨 프란치스코 키에사 신부에게 맡겼다.

214

이러한 의미에서 “수덕적 일반 원칙과 신학의 연관성에 대한”346 안내서라 할 수 있는 「수덕 입문Introduzione all’ Ascetica347 저술은 우리를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었다.

215

[DFst 36] 프란치스코 키에사 신부는 모든 영성생활의 과제인 갈라 4,19을 반복하여 설명하였다. “은총의 활동은 우리 안에 여러 가지 모습으로 표현된다. 은총은 우리 안에 완덕의 나라, 성화의 나라, 덕의 나라, 하느님 사랑의 나라, 성령의 나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를 확장시킨다고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모습을 갖추실 때까지donec formetur Christus in vobis’ 우리 안에 예수님의 생명을 확장시킨다고 한다. 곧 모든 것이 우리 안에 그리스도교 덕의 나라를 정착시킬 것이다.”348

216

[DFst 17.28.37.67] 알베리오네 신부는 자카르도 신부에게 보낸 1928년 11월 4일자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참사위원 키에사께서 우리에게 신학강의를 해 주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349 1929년 1월 10일에 다시 그 이야기를 꺼냈다. “부활 무렵에 하느님께서 원하신다면 참사위원 키에사께서 신학강의를 시작하실 것입니다.”350 9월에는 더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참사위원 키에사의 신학을 우리 주교님께서 검토중이십니다.”351 마지막으로, 날짜가 명기되지 않은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청했다. “성체방문 때 참사위원 키에사의 강의록을 읽어보십시오. 시간, 힘, 돈을 투자할 만큼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면 신부님께 말씀해 주기 바랍니다.”352

이 편지는 키에사 신부의 「신학강좌Lezioni di Teologia」에 대한 알베리오네 신부의 관심을 입증한다. 알베리오네 신부에게는 이 신학강좌가 수도가족을 위한 바오로 정신에 대한 신학적 언급의 마침표를 찍는 것과 같았다.

사실, 4권으로 된 이 신학 과정은 알베리오네 신부에게 DF 최종 원고 작업의 틀을 마련해 주었는데 특히 성부, 성자, 성령에 관한 신학 부분이 그러했다. 여기서는 「신학강좌」와 DF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자세히 논할 수 없으므로,353 본문을 보면서 가장 의미 있는 접점에서 내용을 상기하는 정도로 그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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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st 70-71] 프란치스코 키에사 신부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는 더 많은 발전을 가져왔다. 그가 「신학강좌」에서 언급한 신학적 비전을 성직자 양성에 적용한 열매로 「성직자 양성의 일치를 위하여Per l’unita nella formazione del Clero354라는 작품이 나왔다.

그는 여기서 양성을 전 인격의 통합작업으로 보았다. 교황 비오 11세가 1929년 12월 31일자에 반포한 회칙 「천상 스승Divini illius Magistri」에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모습을 갖추실 때까지”(donec formetur Christus in vobis)라는 바오로적 원문을 상기시키면서 그리스도교 교육 목표가 바로 이것임을 천명한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그리스도교 교육의 고유한 목적은 하느님의 은총을 통하여 참되고 완전한 그리스도인을 양성하는 것이다. 곧 세례성사로 다시 태어난 이들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말하는데 사도 바오로의 생생한 표현은 다음과 같다. ‘나의 자녀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모습을 갖추실 때까지 나는 다시 산고를 겪고 있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생명’이시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초자연적인 삶을 살아야 하며,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의 몸 안에서 드러나야 하므로’ 자신의 모든 활동에서 그 생명을 드러내야 한다. 따라서 그리스도교 교육은 감성적이고 영성적이며, 지적이고 윤리적이며, 개인적이고 가정적이며, 사회적인 모든 인간 생명의 환경을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그 생명을 약화시키려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의 모범과 가르침을 따라 생명을 향상시키고 관리하며 완벽하게 하기 위해서다.”(「가톨릭 문화La Civilta Cattolica」, anno 81°, vol. I, quad. 1911, 1930년 1월 25일, pp. 225-226)

이같은 노선에서 키에사 신부는 역사의 길, 심리학의 길, 이성의 길, 신앙의 길, 하느님 사랑의 길을 선택하는 다섯 가지 통합 방식을 고찰했다.

키에사 신부는 이 단계들 중 끝에서 두 번째 단계에 도달했을 때 신앙의 통합 또는 신학적 종합으로 충분하지 않고 사랑 안에서 통합이나 신비적 종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단독으로 취한 신앙은 아직 영성생활의 정점에 오르지는 못한다. 사도 바오로께서도 ‘그러므로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Nunc manent fides, spes, charitas, maior autem horum est charitas)라고 하셨다. 인간의 모든 능력의 여왕인 의지를 성화하는 사람은 인간 영혼이 오를 수 있는 최정점에 도달한 것이다. 사랑하지 않고 믿을 수는 있다. […] 그러나 사랑 안에서 참된 모든 통합이 일어나고 종합이 이루어진다.”355

218

[DFst 12.39-40] 키에사 신부의 신학적 비전에 전적으로 공감한356 알베리오네 신부는 “나의 자녀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모습을 갖추실 때까지 나는 다시 산고를 겪고 있습니다.”(Filioli mei, quos iterum parturio, donec formetur Christus in vobis: 갈라 4,19)라는 사도 바오로의 표현에서 따온 지침, 곧 그리스도 안에서의 통합을 그의 수도가족의 양성 목표로 제시했다.

219

[DFst 52-53.85.93-95] 1930년대 초, 미래에 바오로가족으로 불릴 이 수도가족의 인쇄 활동은 계속적으로 확장되어 갔으며,357 회원수도 증가했고,358 그에 따라 새로운 분원 설립도 늘어났다.359 1931년에는 다른 대륙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360

이 책은 카리스마 유산을 담은 하나의 작품이라기보다 삶 자체에서 태어난 책이라는 점에서 더 뛰어난 삶을 촉발시킬 수 있는 핵심적인 ‘양성 지침서ratio formationis’이다.

그렇기 때문에 알베리오네 신부는 자신의 양성 계획 원고가 완성되었을 때 제목을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모습을 갖추실 때까지Donec formetur Christus in vobis」라고 했다.361

Donec formetur 는 다른 많은 책들을 포함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곧 성성에로의 부르심에 맞갖도록 유일한 목적 달성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알베리오네 신부와 바오로인 첫 세대의 삶이 담긴 풍요로운 문헌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일상적 ‘메모들’의 모음집처럼 단순하게 읽을 것이 아니라, 이 책이 지닌 바오로적 성성의 진가를 맛들이며 숙고해야 할 것이다.

로마, 2000년 12월 31일

안토니오 F. 다 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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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G.D.P.H.,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모습을 갖추실 때까지Donec formetur Christus in vobis」, 프리모 마에스트로의 묵상집, Pia Societa San Paolo,Alba-Roma 1932. - 창립 초기의 많은 작품에서 G.D.P.H (Gloria Deo, Pax Hominibus: ‘하느님께 영광, 사람들에게 평화’) 약호는 저자의 이름을 대체하는 것으로 활용되었다. 이 책 231쪽에 실린 원서 출판본 표지 참조.(DFst 3)

2 G. Alberione,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모습을 갖추실 때까지Donec formetur Christus in vobis」, 비평 편집본 a cura di A. Damino, Edizioni Paoline, 1985.

3 이 비평 편집본에서 DFcr의 약호를 사용한다는 점을 이 기회에 밝혀둔다. DFcr, DFms, DFst의 구분번호 대조표를 이 책 359-362쪽에 소개한다. 

4 입문Introduzione’에 대한 인용들은 DFin으로 표기하고 그 뒤에 해당되는 구분번호를 덧붙였다.

5 G.T. Giaccardo, Diario, 1913-1925 1942-1946, pagine scelte, Edizioni Centro Spiritualità Paolina, Roma, 1996, 19 novembre 1917, p. 92.

6 상동, 3 gennaio 1919.

7 이 문헌은 자필원고(= ADms)와 타자원고(= ADds) 두 가지 형태를 보존하고 있다. 파소티(E. Pasotti) 신부와 조반니니(L. Giovannini) 신부가 엮은 1985년판 편집본은 두 가지 형태의 통합을 시도했다. 콜라크라이(A. Colacrai) 신부와 스가르보싸(E. Sgarbossa) 신부가 엮은 1998년판 편집본은 타자원고에서 시작했다.

8 비록 많은 구절들이 「바오로인의 봄La primavera paolina」(=PP) (a cura di Rosario F. Esposito, Roma, 1983)에 수록되어 있지만, UCBS에서 직접 인용하는 방법을 따랐다. 이 책 ‘입문’에 인용된 본문들은 「바오로인의 봄」의 내용색인(1257쪽 이하)과 인명색인(1279쪽 이하)을 통해 찾아볼 수 있다.

9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Donec formetur」의 출판본(1932)은 약호 DFst 로 통일했고, 구분번호가 뒤따른다. Dfin 5 참조.

10 G. Barbero, 「사제 야고보 알베리오네, 인간 - 이상Il sacerdote Giacomo Alberione, un uomo-un’idea」, Vita e opere del Fondatore della Famiglia Paolina(1884-1971), Edizioni dell’Archivio Storico Generale della Famiglia Paolina, Roma 1991, pp. 73 이하 참조.

11 메르체데스 마스트로스테파노(Mercedes Mastrostefano, FSP) 수녀는 이 기간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케라스코의 저명인사 세 분은 알베리오네 신부님의 신학교 동기 에르네스토 페루아(Ernesto Ferrua) 신부님의 부친인 음악가 조반니 페루아(Giovanni Ferrua) 교수, 시인이자 수학가 바르톨로메오 리날디(Bartolomeo Rinaldi) 교수, 역사가 조반니 바티스타 아드리아니(Giovanni Battista Adriani) 교수였습니다. 세 분 모두 진나시오(Ginnasio)에서 가르쳤으며, 성 마르티노 본당 몬테르시노 (montersino) 신부님의 친구였습니다. 알베리오네 신부님은 진나시오를 1년밖에 다니지 않았는데 브라의 신학교로 옮겼기 때문입니다. 알베리오네 신부님이 초등학생이었을 때 몬테르시노 신부님과 함께 식사를 하곤 했는데 이제 함께 식사를 할 수 없게 되자 그분을 사제관으로 초대했다고 합니다. 식사 때에는 본당 신부님과 주세페 콜롬바라(Giuseppe Colombara) 보좌 신부님, 숙모 안젤라와 조카 빅토리아(Vittoria)가 함께 식사를 했다고 합니다. 몬테르시노 신부님은 거의 매일 세분의 저명인사를 사제관으로 초대하여 커피를 마시곤 하셨는데 그와 관련하여 알베리오네 신부님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저에게 책에 대한 사랑을 새겨주신 그분들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음악, 문학, 역사, 철학 등에 관한 그분들의 대화가 저를 매료시켰습니다. 저는 그분들에게서 책과 독서에 대한 가치와 기쁨을 배웠습니다. 본판테(Bonfante, 나중에 케라스코 교육감이 됨)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의 글도 받아보았습니다.’ 어린 알베리오네는 유명 인사들 앞에서 기가 질리기는 했지만 매우 행복했다고 덧붙였습니다.”

12 F. Torbidoni, 「자필원고에 나타난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의 필체학적 소고Un ritratto grafologico del giovane Giacomo Alberione come resulta dai manoscritti (1900 -1907)」, in AA.VV., 「알베리오네 신부를 알기 위하여, 전기를 통한 법적 문서Conoscere Don Alberione (1884 -1907), Strumenti per una biografià」, Edizioni del Centro di Spiritualita Paolina, Roma 1994, p.315.

13 최근의 연구에서 알베리오네 신부의 젊은 시절의 저서를 통하여 그분의 확고함을 확인할 수 있다. “교류분석 상담(Analisi Transazionale 또는 의사교류 분석상담<TA=transactional analysis>은 부모-자녀간의 의사소통과 상호교류 방법을 개선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1950년 미국의 정신의학자 에릭 번이 창안한 심리상담 치료법-역주)에서는 삶의 초기(존재론적 모방시기)에 인간은단 한 마디로 정의내릴 수 있는 자기 삶의 계획을 수립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성년이 되는 때와 그 후로 이러한 삶의 계획을 수립하게 되는데, 중요한 생의 전환기마다 수정하거나 확정짓거나, 또는 단지 일부분만 확정지으면서(존재론적 계획단계: Palinsesti esistenziali) 계획을 재정립한다. 야고보의 존재론적 모방시기는 ‘Dopo’(후에)라는 말로 정의내릴 수 있다. (참된 행복과 사랑은 다만 죽음 ‘후에’ 오는 것으로, 현재 나에게 속한 짧은 삶을 통하여 나는 강하고 관대해야 할 것이고, 크게 되기 위하여 잘 처신해야 할 것이다.) 사춘기 마지막에 이르러 모방적 삶의 선택도 ‘Dopo’로 요약될 수 있지만, 이는 길고 고된 작업에 대한 상급으로 비쳐진다.”(M. T. Romanini, 「알베리오네 신부의 청년기 작품들에 대한 교류분석 상담의 해석학적 독서Lettura ermeneutica analitico-transazionale degli scritti giovinili di Don Alberione」), in AA.VV., 「알베리오네 신부를 알기 위하여…Conoscere Don Alberione (1884 -1907), Strumenti per una biografia」, Edizioni del Centro di Spiritualità Paolina, Roma, 1994, p. 246) 그의 글에 대한 연구 결과, 젊은 알베리오네는 “…자신의 성소에 대한 감정을 억제했음이 분명하고, 선택한 일과 이루어야 할 일의 결과와 의미를 주의 깊게 분석했음에 틀림없다.”(F.Torbidoni, 「필체학적 소고…Un ritratto grafologico…」, o.c., p. 315)

14 R. F. Esposito, Tametsi Futura e la notte eucaristica del secolo, Società San Paolo, Casa Generalizia, Roma 2000, pp. 320 참조.

15 R. Ballerini, 「19세기 말엽 가톨릭 사상Il Cattolicismo cadente il secolo XIX」, in 「가톨릭 문화La Civiltà Cattolica」, Serie XVII, Vol. V, Quaderno 1166, 21 gennaio 1899, pp. 170-175 참조.

16 G. Barbero, Il sacerdote Giacomo Alberione …, o.c., pp. 114 이하 참조.

17 알베리오네 신부의 자필원고, ‘공책Quaderno 36’, a cura del Centro di Spiritualità Paolina, 1993. 이 공책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는 유익한 보조 자료들은 다음과 같다. Guido Gandolfo, Per un primo approccio alla lingua di Alberione nei manoscritti, in AA.VV., Conoscere Don Alberione (1884-1907), Strumenti per una biografia , Edizioni del Centro di Spiritualità Paolina, Roma, 1994, pp. 145 이하; Angelo Colacrai, 「하느님과 역사. 학생 알베리오네(1901-1907)의 프로필 Dio e Storia. Un profilo dello studente Alberione (1901 -1907)」, in Ibid., pp. 165 이하 참조.

18 G. Alberione, 「나는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하여 창조되었다Sono creato per amare Dio 」, a cura di G. Barbero, Edizioni Paoline, 1980.

19 G. Alberione, ‘수첩Taccuini’, n. 2.

20 G. Barbero, Introduzione, in G. Alberione,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께 바치는 꽃다발Mazzo di fiori a Maria Santissima」, Edizioni Archivio Storico Generale Famiglia Paolina, n. 4, Roma, 1981 참조.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께 바치는 꽃다발」에서 젊은 알베리오네는 다음과 같은 작품의 내용을 베끼는 수준에 머물렀다. “…성 마르코의 로사 백작 부인의 책…. 그 책의 구조와 사상뿐 아니라 비록 나름대로 축소시키기는 했지만 그 책의 표현까지 따랐고, 내면의 감정이 느끼는 대로 수정하기도 했다.”(상동 p. 5) 지역 성당에서 같은 이름으로 많은 공경을 받고 있는 브라(쿠네오)의 꽃의 성모님(la Madonna dei Fiori)을 연상시키는 「꽃다발Un Mazzo di fiori」이라는 작품의 제목 때문에 이같은 결정을 했음이 분명하다.

21 G. Alberione, 「케라스코의 은총의 복되신 동정녀(마리아) 기념-존경 La B. Vergine delle Grazie in Cherasco (La Madonina) Memorie - Ossequi, Alba, Tip. Albese di N. Durando, 1912, 136 p., 8 ill., 15,5cm.

22 Lavori vari, n. 4 참조. 바오로 영성 센터에서 재구성하여 보관하고 있는 미출간 노트.

25 1906년 4월 26일자 편지. G. Barbero, 「사제 야고보 알베리오네…Il sacerdote Giaccomo Alberione …」, o.c., pp. 135-136 참조.

26 G. Alberione, Istruzione I, in 「완전한 하느님의 사람이 되기 위하여Ut perfectus sit homo Dei」, Mese di Esercizi Spirituali, aprile 1960, Vol. IV, Quarta Settimana, E.P., Ostia(Roma), 1962, p. 7. 상동, 한 권으로 된 책 참조: G. Alberione, Ut perfectus sit homo Dei, Mese di Esercizi Spirituali, aprile 1960, Edizioni San Paolo, 1998.

27 케라스코의 성 마르티노 본당에서 첫 미사(1907년 6월 30일)를 집전할 때 행한 강론에서 젊은 사제가 예수님의 초대인 “모두 나에게로 오너라”(Venite ad me omnes) 하신 말씀을 인용한 것이 의미심장하다. 이 말씀은 세기를 가르던 밤에 그에게 깊이 새겨진 말씀이다. “영적인 은총이 주어졌습니다. 예수께서는 많은 병자를 치유하셨고, 슬픔에 잠긴 많은 이를 위로하셨으며, 의혹에 찬 많은 이를 깨우치셨고, 많은 약한 이를 강하게 만드셨습니다. 과부들, 고아들, 가난한 이들, 노인들, 젊은이들, 부자들과 가난한 이들 모두가 그분에게 모여들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모든 이를 위한 은총을 지니셨고 그분의 권한과 자비가 무한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venite ad me omnes qui onerati et laborati estis et ergo reficiam vos) 잘못이나 결점 때문에 슬픔에 잠기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기 때문에 또는 물질적으로 가난하기 때문에 슬퍼하는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원기를 북돋아주고 너희를 위로해 줄 것이다.”(Q007)

28 G. Alberione, 「사목신학개요-젊은 성직자를 위한 사제적 직무 해설Appunti di Teologia Pastorale-Pratica del Ministero Sacerdotale per il giovane Clero」, Cav. Pietro Marietti Editore, Torino, 19152.

29 G. Barbero, Il sacerdote Giaccomo Alberione …, o.c., p. 154 참조.

30 A. Damino, “(1914년 이전) 알베리오네 신부 자필 공책Quaderni autografi di Don Alberione (anteriori al 1914)”, in 「우리의 프리모 마에스트로 알베리오네 신부님 알기Conoscere Don Alberione nostro Primo Maestro 」, Informazioni dell’Archivio Storico della Famiglia Paolina, n. 3 - novembre 1981, pp. 9-18 참조. 이 세 권의 노트는 ‘여러 가지 일’(Lavori vari)로 분류되었다. ① 묵상 스키마(Schemi di meditazioni), 1912-1954 (LV01), p. 187; ② 묵상 스키마와 지침(Schemi e indice di meditazioni), 1908-1912 (LV0 2); ③ 영신수련 스키마(Schemi di esercizi spiritual), 1909[?]-1913 (LV03).

31 알베리오네 신부는 자신의 강론에 대한 ‘색인 공책’을 만들었다. 이러한 자필 공책이 수십 권에 달한다.

32 ‘공책’(Quaderni)에서 알베리오네 신부는 “나는 믿습니다”(Io credo)에 관한 두 번째 묵상 내용에 이어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였다. “곳: 신학교, 때: 1911년 10월 29일 - 좋았음, 준비: 부족, 소요시간: 30분, 어투: 잔잔함, 효과: 만족스러움”(G. Alberione, Quaderno 50, p. 23) 「사목신학 개요Appuniti di Teologia Pastorale 」에서 알베리오네 신부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이러한 것들을 메모하면서 복음선포자(강론가)는 하나의 규범을 가지게 될 것이고, 어쩌면 그러한 강론을 되풀이해야 할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 경우에는 결점을 보완하고, 좋았던 점은 지속시켜야 할 것이다.”(o. c., p.258)

33 예를 들면, “신학생 대상 영신수련 - 1911년 10월 - 강론: 주스타(Giusta) 신부 S.J. - 적용면에서 실천적인 면이 부족. 전체적으로 크게 좋아하지 않았음. - 결실이 부족함 - 진지하게 숙고하도록 하지 않았음. 영신수련의 참된 정신에 들어가지 못했음.”(LV03, p. 30“) 신학생 대상 영신수련 - 1912년 6월- 강론: 라티니(Latini) 신부와 마리오(Mario) 신부(선교회). - 적용면에서 매우 실천적임 - 많이들 좋아함 - 많이 숙고하게 했기 때문에 풍성한 결실을 얻음.”(상동, p. 30)z신학생 대상 영신수련 - 1913년 10월 - 강론: 체루티(Cerutti) 신부 - 실천적이고 치밀함.”(상동, p. 25b)

34 Irenee Hausherr, 「영성으로 이끄는 영적 지도Direction spirituelle chez les spirituels orientaux」, in AA.VV., 「영적 지도Direction spirituelle」, in 「영성사전Dictionnaire de spiritualite 」, fasc. XX-XXI, 1956, col. 1015.

35 묵상에 관하여 - 1908년 10월 27일.

필요성 -

ㄱ) 하느님의 은총을 방치하지 않도록(믿음 - 희망 - 사랑)

ㄴ) 타고난 선물을 방치하지 않도록(이성 - 의지 - 마음)

ㄷ) 악을 근절하기 위하여 (시계를 맞추는 것)

ㄹ) 다른 이들에게 선을 행하기 위하여.”

36 묵상 방법

미리 주의하면서-

1° 자료(책)나 강사를 판단하지 말 것.

2° 묵상하는 데 유익한 사항이 있다면 주저 없이 말한다.

3° 영신수련은 다음과 같이 할 것이다 - 정화의 길, 죄를 미워할 것 - 조명의 길, 예수 그리스도의 덕 - 일치의 길, 상급.”(LV0 2, p. 1)

묵상의 필요성에 관한 ㄱ)과 ㄴ) 사항은 각각 묵상 방법의 1°과 2°에 상응하고, ㄷ)과 ㄹ) 사항은 3°에 상응한다. 이 일곱 가지 사항이 DFst에서 폭넓게 발전된다.

37 LV03의 말미에서 알베리오네 신부는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의 영성”에 영감을 받은 식별과 묵상의 56가지 주제 색인을 작성했다.

38 P. Chaignon, 「기도의 실천으로 성화된 신부 또는 사제들을 위한 묵상 코스Il prete santificato dalla pratica dell’orazione ossia Corso di meditazioni pei sacerdoti 」, Voll. I-III, Venezia, 1907

5 .

39 F. G. Faber, 「영적 삶에서의 영혼의 진보Progressi dell’anima nella vita sprituale」, Cav. Pietro Marietti, Torino, 1872.

40 예를 들어 “Istruz. X Imitare G.C.”(강의 10.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기 위한 가르침, pp. 31a-31b)는 “여러분은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하고, 완전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성성을 살아야 합니다.”(Sancti estote, estote perfecti)라는 부제를 달았으며, 다음과 같이 끝맺는다. “…매일 아침 예수 그리스도의 표양을 취하고, ‘그분을 묵상하고’, 마치 화가가 어떤 위대한 모델을 그려내는 것처럼 일상에서 그분을 우리 안에 옮겨 놓도록 노력해 가면서 그분을 본받을 것.”(Donec formetur Christus in vobis, exemplum dedi vobis… Vita Christi manifestetur in corporibus vestris.<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모습을 갖추실 때까지, 여러분에게 본보기를 주십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은 여러분의 육체 안에서 드러납니다> <성 바오로>)” - DFst 44 이하.

41 이 코스가 3일 이상 지속된 것으로 추측된다. 강의 III의 17b쪽에 소개된 스키마가 묵상 VII의 27쪽에 다시 나오기 때문이다. 사실 주제들은 다시 연결된다. 예를 들어 입문의 두 번째 사항에서 설명된 자비에 관한 주제는 하느님의 선하심에 관한 묵상 VII에서 전개되고 있다.(p. 27) 알베리오네 신부는 이 피정 집에서 1909년 7월과 1910년에 피정을 했다. G. Barbero, Il sacerdote Giacomo Alberione .., o.c., n. 14, p. 175 참조. 묵상 VIII은 그 자체로“1912년, 사제들 대상의 영신수련 - 알바 신학교”와 연관된 것일 수 있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이 묵상은 1913년 이전으로 여겨진다. 

42 이 묵상은 DF에서도 채택된 주제들을 소개하고 있다. “당신을 알게 하소서(Nosce te ipsum) = 제가 저를 알고, 당신을 알게 하소서에 의해 향상된다.(noverim me, noverim te<DFst 17 참조>) … 우리는 어디에서 오는가?… […] 우리는 누구인가?… […] 우리는 누구에게 필요한 이들인가? 다른 이들을 구하기 위한 이들이요, 그들을 통해 우리 자신을 구하려는 이들이다.”

43 예수 그리스도는

‘길’ = 왜냐하면 당신의 인간성을 통하여 신성으로 가기 때문이다 - (우리는 그분에 의해 구원된다 - 인간성은 신성의 속성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 ] –

우리는 당신의 거룩하신 인간성에 대한 신심도 가져야 한다.

‘진리’ = 왜냐하면 우리가 진리를 전달했기 때문이다.

‘생명’ = 그분처럼 사는 사람은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Vivo ego jam non ego vivit autem in me Christus)

44 Donec formetur 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성경 저자의 성령에 관한 묵상을 다룬 1912년 3월 31일자 ‘공책Quaderno 53’의 첫 번째 묵상 시작부분을 여기에 인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성령을 믿습니다.” 성경. 1. 성령께서는 세례성사 때 우리에게 믿음, 희망, 사랑의 덕을 주신 분이십니다. 지혜, 통찰, 의견, 용기, 지식, 효경, 경외심의 은혜가 그분에게서 옵니다. 주님께서 산상설교에서 선포하신 여덟 가지 복음적 행복이 그분에게서 옵니다. 성 바오로께서 묘사한 성령의 12가지 열매가 그분에게서 옵니다. 그분에게서 영감이 주어지고, 그분에 의해 영혼의 완전한 성화가 이루어지고, 그분에 의해 교회는 무오성과 무류성을 지니게 됩니다. 성령에 대하여 합당하게 말씀드리기 위해 여러분에게 이 모든 사항들을 설명해야 하지만,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활동 중 이 한 가지에 대한 강의를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 이것은 특별히 중요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가장 깊고 다양한 연구 대상이 됩니다. 곧 성경에 대하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만일 제가 한 구절이라도 성경을 읽도록 자극할 수 있다면 저는 성령께 감사드리며 행복해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강론을 위해 치르는 노고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성경이란 무엇인가? 2° 성경의 아름다움에 대한 언급. 3° 성경에 대한 우리의 의무는 무엇인가”(p. 3) 

45 G. Alberione, 「사제적 열의에 참여하는 여성La donna associata allo zelo sacerdotale」 Per il clero e per la donna, Alba, Scuola Tipografica “Piccolo Operaio”, 1915, pp. 342.

46 E. Swoboda, 「대도시에서 사람들을 돌봄La cura d’anime nelle grandi citta」, Studio di Teologia Pastorale, 독일어 제2판, B. Cattaneo의 이탈리아어 번역, F. Pustet, Roma 1912, pp. 392.

47 C. Krieg, 「사목학Scienza Pastorale」. 4권으로 된 독일어 「사목신학」 I권을 수석사제 Antonio Boni의 허가를 받아 번역함.

48 알베리오네 신부는 C. Krieg에 관하여 특히 다음 작품을 언급하고 있다. C. Krieg, 제1권, 「특별한 영혼에 대한 사목Cura d’anime speciale」, Cav. Pietro Marietti Editore, Torino, 1913, pp. 652. 참조. A. F. Da Silva, 「알베리오네 신부의 삶과 작품과 사상의 중심인 길 진리 생명이신 그리스도Cristo, Via, Verita e Vita centro della vità, dell’opera e del pensiero di don G. Alberione」, in AA.VV., 「알베리오네 신부의 그리스도 중심 사상의 유산L’eredità cristocentrica di don Alberione」, Edizioni Paoline, Cinisello Balsamo (Milano), 1989, pp. 241 이하.

49 C. Krieg, 「신학 방법론과 학술적 백과사전Enciclopedia scientifica e metodologia de la scienze teologiche」, Libreria eccl. Editrice Cav. Ernesto Coletti, Roma, 1913, pp. 392.

50 지적 욕망은 백과사전의 두 가지 형태에 근거한다. 곧 분류에 따라 정리된 요점을 기초로 작성한 정식 백과사전과 체계적으로 설명된 과학 백과사전에 근거한 것이다. 두 가지 형태는 각기 나름대로 긴 역사를 거치면서 조화롭게 발전했으며, 두 가지 다 심리적 법칙에 부응한다. 정식 백과사전은 학술적 인식의 총합이 한층 높아짐으로써 자료를 집대성한 백과사전에 의해 조금씩 발전되었다. 이러한 학술적 인식은 이를 정확하게 정리하여 체계적으로 조직하도록 이끌었다. 특히 18세기 중엽 이후 자료를 집대성한 lessici (용어 사전) 옆에 더욱 풍부한 백과사전이 존재하게 되었고, 이러한 작품들은 거의 모든 학문과 예술 부문들을 포괄하며, 명확성과 종합성이 두드러질 뿐 아니라, 세부 학문들 간의 연관성을 만들어내고자 했다. 다시 말해 인간의 모든 지식의 유기적 체계를 통합한 것이라 하겠다.”(상동, p. 10)

51 고전 시대에는 ‘교육받은’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서, 특히 그리스인은 백과사전적 지식을 보유해야 했다. 다시 말해 합법적인 학교 교육을 받아야 했다. 과정(κύκλoς)을 수료한 사람은 전문가나 학자는 아니지만 교양있는 사람(ὲγκύκλoς), 곧 παιδεωτός로 인정받는다. 이런 교육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람은 교양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ἀκύκλoις나 ἀπωιδεωτός [ἀπαίδεωτoς?]). 그는 과정을 통한 교양(παιδεία ὲν κύκλω)을 지니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스어 κύκλος는 둥근 원이나 주기적인 운동을 지칭하며, ‘지식 영역’을 나타낸다. 일정한 법칙에 따른 통상적인 지식은 하나의 원형을 형성하고 그 원 중앙에 근본적인 사상이 있기 때문이다. 자유인 교육(παιδεία ὲλευθὲρα)에 반대되는 하위 단계에는 기술 교육(τέχναι <βάναυσoι>)이 있는데, 이것은 그리스인들의 인식대로라면 완벽한 자유인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순전히 기계적 기술을 가리킨다. 상위 단계에는 고등 학문이 있다. 그리스인들에게는 오직 우수한 사람들만이 학식 있는 자들이고, 그들만이 진정한 인간이었다. 이러한 자들이 최상의 자리에서 철학적인 특별한 문화를 이루어나갔다.”(상동, p. 13)

52 백과사전에 대한 안내서 역할을 하는 것으로서, “이중의 과제를 수행한다. 곧 백과사전은 도입기능과 지침기능을 수행하는 것이어야 한다. […] 신학이나 법학 같은 각각의 학문은 그 중심에 있는 풍부한 개념으로 지식 곧 인식의 닫힌 원을 형성하고, 여러 부문처럼 근본적인 개념(principium, ὰρχή: 시발점, 기원)에서 광채를 발산하도록 촉발하며, 중심으로 되돌아오는 여러 부분 또는 여러 부문을 형성한다. 특별한 부문들은 함께 전체(totum) 곧 한 학문의 전체성을 형성한다. 그리고 유일한 원칙 (또는 개념)에서 내밀하게 결합되어 있으며, 그 안에 유일한 중심이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이 신학에서 하느님에 대한 관념과 법학에서 법의 개념이 근본적인 개념 (또는 전반적인 관념)을 구축한다. 이제 백과사전은 한 학문의 근본적인 관념을 당연히 부각시켜야 하고, 그러한 관념에서 각 부분이 어떻게 연유하는지 알려 주어야 하지만 이러한 물리적인 부분들을 다루거나 전개시키지는 않아야 한다.”(상동, pp. 4-5) “그러나 백과사전은 ‘실천적인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 백과사전이란 주어진 학문의 연구를 위한 ‘안내자와 지도자’가 되고자 하기 때문이다. […] 따라서 백과사전에는 방법론 역할을 하는 또 다른 기능이 있다. 다시 말해 학자에게 그가 어떻게 학문의 세계에 들어가야 하며 어떻게 그 내용에 동화될 수 있는지, 올바른 길을 가르쳐 주고, 목표를 향해 가장 잘 이끌 수 있는 수단을 알려 주는 기능이 있다. 이러한 점이 백과사전의 실천적 측면, 또는 ‘교육적-예비적’ 측면이다. 그렇기 때문에 백과사전은 이론적으로 가르치려 하고 가르쳐야 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직업과 삶은 물론이고 연구로 이끌어주고 실천적으로 준비시켜야 한다. 백과사전은 우리에게 학문의 본질과 다른 부문들과의 결합을 알게 해주고, 이러한 방향에서 우리가 어떻게 그 학문의 영성적 내용을 동화시키며, 언젠가 실천적 삶에 구체적으로 옮길 수 있음을 보여주는 논리적 방법론이 된다. 방법론으로서의 백과사전은 학문에 대한 연구를 어떻게 준비하고 관리하며 추진해야 하는지 알려 주어야 하고, 학자의 연구가 풍요로워지기 위해 어떻게 사상과 독창적인 관찰을 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어떤 마음과 의지를 지녀야 하는지 제시해야 한다.”(상동, pp. 6-7) 

53 윤리신학은 삼중의 과제를 완수해야 한다. 이 요소는 특히 윤리법에 대해 다룰 것을 요청한다. 이는 역사적으로 발전된 세 가지 방법과 일치하는데, 이 방법은 윤리 개념과 그에 대한 설명이다. 곧 ‘사색적’(학술적) 방법, ‘신비적’ 방법, 그리고 ‘실천적-결의론적’ 방법이다. 윤리에 관련한 이러한 세 가지 접근 방식은 윤리의 활동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세 가지 길과 일치한다. 신약성경의 법칙에서는 영원한 생명이 우선 ‘진리에 대한 앎’(요한 17,3)에 달려 있고, 그 다음으로 ‘계명을 지킴’(마태 19,17)에 달려 있으며,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룸’(요한 6,57)에 달려 있다. 한 가지 지침 또는 다른 지침을 받아들이는 것에 따라서 윤리의 이론적 설명은 다른 성격을 띠게 된다. 따라서 학문을 다룸에 있어서는 한 가지 방법 또는 다른 방법만 예외적으로 신봉하지 말고 세 가지 길을 재결합시키고자 해야 한다. 사실 이 세 가지는 상통하고 상호 의존되고 통합되기 때문이다. 물론 윤리 영역은 탐구와 설명에 관해 상술한 세 가지 방법에 대한 현명하고 분별 있는 조화를 요구한다. 한쪽만 강조하며 편파적으로 다루는 것은 이탈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예외적으로 사색적 방법에서 생명과 실천은 충분히 고려되지 않게 되고, 결의론적 방법에서는 윤리의 기본법이 쉽게 쇠퇴하고 약화되거나 망각되기 때문이다.”(C. Krieg, 「신학 방법론과 학술적 백과사전Enciclopedia scientifica e metodologia de le scienze teologiche」, Libreria eccl. Editrice Cav. Ernesto Coletti, Roma, 1913, pp. 310-311)

54 ‘신비적’ 방법은 ‘최상의 목표’, 다시 말해 하느님께 대한 높은 지식과 열정적인 내밀한 사랑을 통한 ‘하느님과 영혼의 일치’라는 측면의 윤리적 생활 원칙과 계명을 염두에 둔다(신비적 일치).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윤리사상은 본질적으로 ‘덕행 사상’으로 드러나며, 실제적으로 ‘수덕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다시 말해 덕을 실천하기 위한 학문처럼, 또는 그러한 윤리 실습의 학문으로 나타난다. 그리하여 은총의 내밀한 삶이 받아들여지고, 덕의 실천과 완덕을 향해 촉진되고 인도되는 것이다. 여기서 윤리는 원칙적으로 덕스러운 그리스도교적 삶과 완덕을 실현하기 위한 모든 계명을 실천하는 것으로 소개된다. 이러한 내용은 무엇보다 먼저 영혼의 내적 삶, 다시 말해 하느님 안에 숨겨진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Mortui enim estis et vita vestra est abscondita cum Christo in Deo: 콜로 3,3) 하는 인간의 삶을 촉진하기 위한 매개행위를 부각시킨다. 이는 무엇보다 먼저 우리를 그리스도교 완덕의 세 가지 단계에 오르도록 안내해 준다. 곧 ‘정화의 길’(속죄행위를 통한 정화), ‘조명의 길’(영성적 윤리적인 최상의 개념), 그리고 ‘일치의 길’(관상과 그와 유사한 수단을 통한 하느님과의 일치 단계)로.”(C. Krieg, Enciclopedia scientifica …, o. c., p. 311)

55 그리스도의 사목 직무와 직무의 구분.

1. 사목신학은 그리스도의 구원 직무에 대한 학문이다. 또는 비유 명제 §109에 의하면, 교회의 지체를 통하여 완성하는 그리스도의 사목 기능에 대한 학문이다. 교회생활에 대한 이러한 표명은 사목신학의 대상을 형성해 준다. 주님께서는 위대한 생명 활동(opus Dei, 하느님의 일: 요한 4,34; 17,4), 곧 구원(σωτηρίσ, sõteria) 사업을 완수하셔야 했다.–이것이 그분의 ‘사명’이었다–이 구원 활동에 세 가지 그룹으로 나눌 수 있는 복합적인 기능이 속한다. 이 기능들은 소위 그리스도의 직무(officia, munera)로서, 이 세 그룹이 함께 단 하나의 ‘활동’(opus) 또는 ‘직무’(officium)를 구성한다. 주님은 자신을 삼중적인 속성으로 세상에 소개하셨다. 그분은 ἀλήθεια`(aletheia: 진리), ζωή`(jõe: 생명), ὸδός`(hodos: 길)로 자처하셨다(요한 14,6). 사도들의 작품들은 그분을 λογός`(로고스, 말씀), ἀρχιερεύς`(archiereus: 대사제), λειτουργός`(leiturchos: 봉사자, 전례를 뜻하는 liturgia가 이 말에서 파생됨-역주), 그리고 ἀρχηγός`(archegos: 인도자, 창시자, 통치자), 또한 모든 속성을 포괄하는 ἀρχιποιμ`ήν(archipoimen: 으뜸 목자, 1베드 5,4)로 불렀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구세주(σωτήρ, sõter)[당대의 그리스 신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분류했다. ① κήρυξ καί Διδάσχαλος(keryks kai didaschalos: 선포자요 선생님) ② ἀρχιερεύς(archiereus: 대사제) ③ βάσιλεύς(basileus: 왕)]께서는 다음과 같은 활동을 하셔야 했다.

ㄱ) 영원한 ‘진리’를 계시하심. 이를 통하여 사람들이 하느님에 대한 순수한 앎을 다시 얻을 수 있기 위함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선 하느님의 초자연적 계시를 인류에게 절대적이며 최상의 형태로 드러내셨다. 이 때문에 이성은 오류의 결박에서 풀렸다.

ㄴ) 인류의 ‘죄’를 속죄하셨고, 적개심을 통하여(에페 2,14) 인류를 짓누르던 죄의 결과로 주어진 벌을 상쇄시킴. 이는 인류를 하느님과 화해시키고 그분과 새로이 활발한 관계를 맺도록 하기 위함이었다.–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멋진 서간의 지배적인 근본 사상–이러한 일은 그리스도 덕분으로 이루어졌다.

ㄷ) 인간의 약한 의지를 굳건하게 하기 위하여 인류에게 생명의 ‘새로운 법’을 가져다 주심.

구원의 삼중적 역할을 통하여 주님께서는 길 진리 생명이라 하시며 삼중적 인 영적 필요성을 대면하셨다. 그러므로 삼중적 직무를 통하여 그러한 행위의 유기적 복합체를 나타내게 된다. 이는 그분이 하느님의 권고로 인간-하느님을 실현하셔야 했고, 교회는 봉사자들을 통하여 오늘날까지 이를 따르고 있다. 이것이 사목 대상이다.”(상동, pp. 326-327)

56 전개될 사건 앞에서 알베리오네 신부가 느낀 고뇌와 사고의 전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묵상 스키마를 분석하는 것이 대단히 유익하리라 생각된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칙령 -

1°온 세상이 축제를 지내는 중이며, 앞으로 훨씬 많은 축제를 지낼 것임에 틀림없다.

2°이교인 세계 - 거짓 우상들을 숭배했다.

비윤리적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다 - 박해

설교 금지

콘스탄티누스의 업적 - ‘십자가’ 출현

‘칙령’ - ‘십자가’ - ‘성전’ - ‘상속 능력’

행렬 - ‘표현의 자유’ -

‘노예 해방’

‘비윤리성 금지’ -

‘여성’ - ‘황제’ -

자유 - 동등성 - 형제애 -

성찰 - 감사 - 예수 그리스도의 힘

힘낼 것 - 끝났다고 믿지 말 것 - 순교 -

일할 것 - 거룩한 교역자가 되기 위하여 훌륭하게 처신할 것,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고 사랑하게 할 것.

3°기도를 통하여, 희생을 통하여 - 활동을 통하여 얻어야 할 자유가 하늘에 나타난다.”(LV01, p. 21)

57 자필로 쓴 29줄의 스키마에 대한 배치를 재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본문을 매끄러운 형태로 소개하고 해석하기 어려운 19째줄“( 이탈리아어였음!!?”)의 부연설명은 생략했다. “콘스탄티누스 희년 - 현대적 박해 -

1° 콘스탄티누스 축제의 목적은 감사 - 또는 현시대를 위해 배워야 하는 목적도 있다. 박해자들이 바뀌었고 - 처벌이 바뀌었지만 본질은 늘 같다 - 오히려 악이 교활해졌다. -

2° 박해 - :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리교육을 ‘반대하는 위정자들’ - 십자가형 – 종교적 결합 - 교황들 - 주교들 -

중상모략을 통한 ‘출판물’ - 교의를 날조함으로써 - 그들이 무시하는 - 성직자에 대한 불신을 퍼뜨림으로써 - 외설내용의 출판을 통하여…

프리메이슨 = 교회에 반대 - 사회주의 - 투표를 중히 여김 - 불건전한 오락을 통하여, 연설을 통하여, 여성도 끌어들이려고 찾아다님. -

승리의 징조들 -

영국에서는 - 32명의 신앙고백자들 - 그리고 고위층 사람들 -

미국에서는 - 매년 2,500명의 지성인들이 회개한다.

중국에서는 - 그리스도교에 길을 열었다. -

일본에서는 - 가톨릭 대학 -

독일에서는 - 중심적 역할을 하는 가톨릭 신자들이 증가한다. -

프랑스에서는 - 학교와 대학에서 기쁨의 분위기가 일고 있다. - 루르드 -

오스트리아에서는 - 성체대회

이탈리아에서는 - 레오 13세께 -

수단 -

  1. a) 모든 이들의 열성 - 가정에서 여성들의 열성도 - 종교를 수호하는 것이다. …종교는 여러분의 것이다. 건강은 의사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달려 있는 것처럼; 생명, 자금이 여러분의 것이듯.
  2. b) 국민일치 운동 -
  3. c) 학교 내 교리교육 - 국민 카드, 프랑스 - (칭송할 만한 일) 교리수업에 보내는 일
  4. d) 나쁜 출판물에 대항함 - 유행에 대항함 - (국민 - 출판 - 성직자)… 그리고 사제들의 신문!

이의 제기. 그러나 사제들이 그렇게 말한다. …따라서 반대로 행할 필요가 있는가? - 살인하지 말라고도 하고 - 자신을 죽이지 말라고도 한다. -

3° 중용의 시기는 끝났다 -.”

58 신학생 자카르도(Giaccardo)의 비망록에서(종종 그는 Giaccardi라고 서명했다) 이 주제에 관한 강론의 요점을 찾을 수 있다. Ch. Giaccardo Giuseppe, 「강론, 기도, 강의, 묵상 요점Spunti di prediche, panegirici, istruzioni, meditazioni」, n. 19, sunto CLXVIII e CLXX 참조.

59 11세의 자카르도가 알베리오네 신부를 만난 일과 사제에 이르는 자신의 성소 여정에 관해 비록 분명하게 이름들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Unione Cooperatori Buona Stampa 」, anno VII, n. 5, 1924년 5월 15일, pp. 3-4. - 자카르도는 신학생으로서 자신의 여정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1. 신학교에 들어왔다. 가제타(Gazzetta)에 대한 열정에 불탔고,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좋은 서적들을 통하여 가정에 선을 베풀고 싶었으나 게으름과 인간적 자만심 또는 지나친 신중함이 그것들을 실천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2. 진나시오 마지막 학년과 인문계 고등학교: 가톨릭 액션에서 일하려는 열망, 출판과 가톨릭 액션에서 일하기위하여 빨리 자유롭게 되기를 바랐다. 나중에 보좌신부나 본당신부가 되어서도 이 분야에서 일하기를 바랐다. 사실 한 본당에만 국한된 분야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출판이 자신의 분야임을 강하게 느꼈다. 교회, 교황님에 대한 참된 승리 안에 있는 사랑, 생기 있는 신앙이 더욱 생생해진다. 신학자에게 출판활동은 아주 중요한 일처럼 보인다. 나는 사도직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확신하게 되었으며, 나의 사도직이라는 것을 한층 깊이 느끼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주 강하게 이끌렸지만 과연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살레시오회, 예수회 또는 선교회. 3. 신학자와의 관계. 출판일을 하는 사제들에 대하여 내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분은 인쇄소를 세우셨고 나는 그분이 가시려는 방향을 곧바로 알아차렸으나 그분은 그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내게 말씀하시지 않았다. 나는 그 인쇄소를 직접 보고 싶다는 열망이 일었으나 내가 바라는 일은 아니었다. 나를 회원처럼 여기셨다 = 나는 원하지 않았다. 나에게 그러한 일을 하는 사제들이 있어야 할 필요성을 말씀하셨다. = 걸림돌이 되었다. 나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씀하셨다. 어려움에 대해 말씀드리고 그분의 수업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는 동안 나는 그분의 회원임을 느꼈다. 바로 내 분야라고 확신하게 되었고 아주 강하게 이끌렸다. 확신의 나날, 설득의 나날이었고, 출판, 수도회, 신학자, 그분에 대한 강한 이끌림의 나날이었다. 왜 내게 말씀하시지않을까 = 현재 느끼시는 것을. 4. 사도직과 수도회의 필요성에 대해 확신한다! 내 분야다. 열망. 동기 = 열망. 시기는? 교만과 사명?”(G.T. Giaccardo, 「일기Diario …」, o. c., pp. 278-279) 고등학교 첫 해에 자카르도는 알베리오네 신부님의 강론 요점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I. ‘현대 사회’는 수준이 아주 낮다. 1° 사회주의자들은 그들의 노동조합을 통하여 노동자들과 농부들을 장악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느님, 교회, 사제들에 대한 증오를 퍼뜨려 그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도록 선동한다. 2° 우리 편에 고위층, 지식층, 부유층이 있지만 그들은 사치, 쾌락, 오락에만 관심을 쏟는다. 우리는 ‘늑대들 사이에 사는 양 떼’(agni inter lupos)다. II. 그럼에도 사회를 변혁하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고, 우리는 사회를 변화시킬 것이다. 1° 지적 수단을 통하여: 출판물을 보급하고 활용한다. ㄱ) 지성적으로: 짧고 신선하며 중요한 기사를 보낸다. ㄴ) 윤리적으로: ① 우리의 신문에 찬사를 보낸다. ② 좋지 않은 것이 있을 때 책임자에게 알린다. ③ 잘한 일이 있을 때 책임자에게 축하를 보낸다. ㄷ) 재정적으로…”(G.T. Giaccardo, 「영신수련을 위한 소책자Libretto per I Santi Spirituali Esercizi」, 1913년 6월, XIX, 미 발간)

60 “그러므로 사회 재건사업은 단순히 악을 파멸시키는 활동이 아니라, 선을 건설함이다. 다시 말해 악한 출판물을 선한 출판물로 대체시키는 일이다. 곧 출판 분야의 자본주의적 지배와 파괴적인 힘에 맞서 그리스도교 문화의 순수한 원천에서 길어낸 새로운 생명 문화의 건전하고 활기찬 힘을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 사회의 기원과 발전의 근간이 되는 그리스도교 원리만이 유익한 모든 근본을 침식시키는 현대적 배교의 폐해를 저지하고 압도할 수 있다.”(A. Pavissich, 「출판, 위대한 힘La stampa grande potenza」, o. c., pp.407-408)

61 A. Pavissich, 위의 책, in 「가톨릭 문화La Civiltà Cattolica」, anno 64°, vol. 1, quad. 1502, 1913년 1월 18일, pp. 129-140; 상동, anno 64°, vol. 1, quad. 1504, 1913년 2월 15일, pp. 398-408.

62 G. Bogna, 「시대의 제왕, 출판에 손을 뻗다Il Re dei tempi, Mano alla Stampa 」, Premiata Scuola Tipografica Michelerio, Asti 1914, pp. 114.

63 50년 전에는 ‘읽는 사람이 누구인가?’라고 물었다. 그러나 이제는 ‘읽지 않는 사람이 누구인가?’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우리 시대의 필수사항이다. 독서 없이는 우리 사회가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꿰뚫듯이 알고 싶어한다. 사람들은 아침마다 일어나 간절하게 신문을 기다리고, 새로운 정치사건, 놀라운 주식 소식, 경제 동향, 연애사건, 바다 건너 여러 대륙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사건을 탐욕스럽게 모조리 알고자 한다.”(상동, p. 28)

64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은 유행을 지탱해 주는 힘이요, 저널리즘을 키워주는 열정이기도 하다. 새로운 것의 선전원인 신문은 하루 만에 낡은 것이 되어버린다. 신문의 범위는 한계가 없다. 신문은 모든 것에 대해 말한다. 종교와 정치적 움직임을 도맡고, 학교, 시장경제, 사건에 관해 논쟁하면서 연극에 대해서, 재난과 범죄, 농업경제와 국내경제에 대해서, 스포츠에 대해서 말한다. …한 마디로 자연, 문화, 세상을 포함한 모든 것의 주변을 맴돈다.”(상동, p. 29)

65 “많은 이들에게 매일 흥밋거리를 제공해 주는 이러한 현대의 발명을 누가 모르겠는가? 그 누가 짧은 시간에, 몇 분 만에 스크린을 스쳐가는 복잡하게 얽힌 장면들을 못 보겠는가? 신문도 그와 유사하다. 왜냐하면 신문은 우리에게 우주의 격동적인 동요, 하늘과 땅, 바다와 그것을 이루는 요소들, 국가와 인류의 급격한 변화를 끊임없이 상세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상동, p. 30)

66 “[신문은] 궁궐로 올라갔다가 빈민가로 내려가 공장지대로, 주택가로 침투하며, 학교, 지식인들의 식탁에 놓이거나 공직자들 사이를 내달리고, 거리와 광장을 누비고, 철도를 통해 지방으로 달리고 사회의 모든 계층을 점유하며 지성인들을 설득하고 여론을 형성한다.”(상동, p. 31)

67 이 장(章)은 인용근거를 밝히지 않고,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II(1919), n. 7, p. 7에 전체적으로 인용되었다. “로제거(Rosegger)는 다음과 같이 썼다.

‘오, 출판이여, 그대는 웅변가요, 우리 시대의 위대한 설교가다. 그대가 열정적으로 하는 말은 삽시간에 나라 전체에 울려 퍼진다. 그대는 음식점에서, 카페에서, 승합차에서, 기차에서 그리고 개인에게 모든 광장에서 설교한다. 많은 사람이 함께 모인 곳에서 그대는 그들 가운데 서서 설교를 한다. 그리고 그대의 말은 설교대에서처럼 한 마디도 사라지지 않는다. 열렬한 독자의 기억에 새겨지지 않더라도 지면에 인쇄된 것은 남겨져 눈길을 주는 이에게 열심히 설교한다. 그렇게 그대는 쉼 없이, 휴식 없이 매일매일 외친다.’ 출판은 국민 모두를 위한 영적 요소의 보편적 제공자다. 출판물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영혼의 유일한 양식이다. 그의 판단은 수백만의 ‘신경’(Credo)을 형성한다.”

68 “신문이 나오면 수백만 개의 손이 그 신문을 잡고, 수백만 개의 눈길이 그것을 읽는다. 신문은 그들의 지성과 그들의 마음을 지배한다. 자기의 생각을 씨 뿌리고 풍요롭게 만들며, 자기 뜻에 따라 활동의 결실을 거둔다.”(상동, p. 31)

69 “많은 이들이 왕이라는 이름을 지워버리기를 바라는 우리 시대는 막강한 새로운 권력의 황제, 곧 출판의 황제를 감수해야 한다. 출판은 ‘시대의 제왕’이다. 그 어떤 계층이나 조건도 예외를 두지 않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신비스럽고 마술적인 권력을 행사한다. 세상은 혼자서 움직이지 않는다. 신문은 모두를 조종한다.

시간과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신문은 시대의 제왕이다.

매일, 매시간 그리고 동시에 10곳, 100곳, 1000곳, 어디에서든 자신의 명령, 자신의 법을 들려주는 신문은 시대의 제왕이다.

현재, 과거, 미래를 장악하고 있는 신문은 시대의 제왕이다.

세월이 흐르고 교육과 문화가 발전될 때 그 권력은 더욱 성장할 것이므로 신문은 시대의 제왕이다.

1842년 파리 프리메이슨 비밀결사 집회에서 유다인 프리메이슨 크레미외(Cremieux)가 외친 호소는 옳았다. “형제들이여, 황금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아십시오. 출판이 모든 것입니다. 출판을 소유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여론의 주인이 될 것입니다. 곧 나라 전체의 주인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 사실상 프리메이슨은 프랑스와 다른 많은 국가의 주인이 되었다.

우리도 이 점을 인식하자. 출판은 모든 것이다. 출판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출판이 시대의 제왕이다.”(상동, pp. 40-41)

70 “전쟁보다 훨씬 더 무서운 파멸이다. 페스트보다 훨씬 더 무서운 재해다. 굶주림보다 훨씬 더 무서운 재앙이다. 이처럼 무서운 파멸은 무엇인가? 나쁜 신문이다.”(상동, p. 45)

71 저자는 프라이부르크 가톨릭 대회에서 루이지 윈드토르스트(Luigi Windthorst)가 연설했던 내용을 인용한다. “선한 출판을 도와야 합니다!… 보십시오, 이야말로 위대한 사도직입니다. 최고 권위자가 적절한 기회라고 생각되면 교회의 규범으로 확립해야 할 만큼 필요한 현대의 사도직입니다.”(상동, P. 78)

72 “사랑, 지고의 사랑이다. 천상 스승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 “모든 사랑이 빵이 되는 것은 아니다.” […] 델라메어(Delamaire) 몬시뇰의 표현에 따르면 굶주림 중의 가장 혹독한 굶주림은 “진리에 대한 배고픔”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이들은 행복하다. 신문이 우리의 정신을 오류에 빠지게 할 위험이 있더라도 우리는 진리의 승리와 사회 구원을 향해 달려 나갈 것이다. 우리의 돈을 좋은 신문 창간과 운영에 쓰는 대신 아무것도 아닌 일에 쓰거나 또는 좋은 사업이지만 결실이 없는 것에 쓴다면 우리는 불행할 것이다. 이 점을 유의하고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사업, 현대 세계를 위해 가장 필요한 사업은 바로 출판 사업이다. 출판을 돕고 지지하는 것이야말로 사랑을 활짝 꽃피우는 행위다.’”(상동, p. 83)

73 “마곤차(Magonza)의 대주교 케틀러(Ketteler) 몬시뇰의 표현이 세상 곳곳으로 퍼졌다. ‘만일 성 바오로께서 오늘 이 세상에 다시 오신다면 저널리스트가 되셨을 것입니다.’ 나 또한 이 말을 굳게 믿는다.”(상동, p. 97) 출처의 표시 없이 한 장(章)을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II, n. 5, 1919년 5월 5일, pp. 5-6에 전재했다. “‘살아 돌아온 성 바오로’라는 마곤차의 대주교 케틀러 몬시뇰의 표현은 이렇게 세상 곳곳으로 널리 퍼졌다.

사실 성 바오로는 무엇을 했는가? 하느님의 말씀을 도처에 뿌렸다. 그 목적을 위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넓은 장소와 잘 알려진 곳을 택했다. 유다 회당을 찾아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했고, 아테네의 아레오파고에서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했다. 아그리파 법정에서, 에페소의 디아나 대극장에서, 로마의 감옥에서도 그렇게 했다.

만일 성 바오로가 ‘작은 회당에서뿐 아니라 백성 전체가 들을 수 있고, 온 세상이 들을 수 있는 강단이 있습니다. 시리아, 팔레스타인, 아시아 전체, 이집트, 그리스, 이탈리아에서도 들을 수 있는데, 그대는 이 강단에서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십자가를 설교하며, 백성들을 정의와 진리로 이끌 수 있습니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가정해 보자.

성 바오로는 곧바로 다음과 같이 물었을 것이다. ‘그런 강단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곳으로 가겠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알자마자 그는 그곳을 차지하여 마치 기둥 위에서 수행하는 고행자들처럼 결코 그곳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강단이 성 바오로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존재한다. 곧 좋은 신문이다. 신문이 바로 인류의 강론대이다. 교황 레오 13세가 지칭했던 ‘영원한 사명’이다.”

74 저자는 10가지의 ‘하고 싶은 것’ 또는 인쇄 사도직의 전망에 관한 내용을 싣고 있다. 그 첫 번째를 여기에 옮겨 본다. “‘내가 하고 싶은 것’ 훌륭한 가톨릭 신자가 되고 싶다는 염원이다. 나의 많은 친구들이 그러하고, 아주 열성적인 가톨릭 신자들과 용감한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열렬하게 바랐던 것처럼 나도 그렇게 원한다. 이들은 선한 출판물 보급에 열정을 다하는 좋은 표양으로 나를 열광시켰다. 어느 프랑스 신문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예전에 수도원 문 앞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스프를 나누어주던 방식으로, 오늘날에는 성당 문 앞에서 가톨릭 신문을 나누어 주면 좋겠다.’”(상동, pp. 106-107)

75 G. F. Re, “성바오로수도회 교구 설립 승인 요청을 위해 교황청에 보낸 공문서”(Lettera ufficiale alla S. C. dei Religiosi chiedendo il nulla osta per l’erezione della SSP in congregazione religiosa diocesana), 31/12/1921. G. Rocca, 「성바오로수도회 형성기<1914-1927>La formazione della Pia Società San Paolo (1914-1927)」, Appunti e documenti per una storia, Roma 1982, pp. 562-563 참조.

76 G. F. Re, “Lettera ufficiale alla S. C. dei Religiosi…”, 31/12/1921, 상동, p.563 참조. “작은 노동자 인쇄학교”(Scuola Tipografica Piccolo Operaio)라는 명칭은 이 단체의 참된 의도를 설명하게 될 적절한 시기를 기다리면서 택한 것이었다. 이 점에 관해서 창립 40주년이 되던 해에 있었던 알베리오네 신부가 한 증언이 흥미롭다. “1914년 작은 집과 인쇄소에 소년들을 모집하여 일을 시작했을 때 심상치 않은 사건이 생겼다. ‘다른 인쇄공들의 생계를 위협한다.’는 내용의 진정서가 교회 권위기관과 관할 당국에 접수된 것이다. 이에 대해 교회기관은 ‘모든 사람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합니다.’라고 답변했으나 사회기관은 ‘생사의 문제이다. …이를 지켜볼 것이고 불법이라면 폐쇄할 것이다.’라고 답했다. 그래서 아주 작은 규모로 시작할 필요가 있었고, 어떤 소리도 새나가게 해서는 안 되었다. … ‘작은 노동자 인쇄학교’라는 명칭 아래 모든 것을 숨겨야 했다. 구유처럼 우리는 언제나 오직 하느님의 ‘작은 일꾼들’이어야 했다. 세상에도 그렇게 보이고,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원수들, 거짓 스승들이 이용하는 거대한 수단들 앞에서도 그렇게 보여야 했다.”(G. Alberione, “40주년에 즈음하여 바오로 전시회 방문객들에게 행한 인사말”<Nel quarantennio, Saluto ai visitatori dell’esposizione paolina>, Alba[20.08.1954]) FSP는 ‘Fascicoli 1954’에서 이 강론 시기에 관한 정보를 전해준다. “1954년 7-8월호「SP」 pp. 1-3; RA[Regina Apostolorum], 1954년 8월호, pp. 1-3에 게재. CISP, pp. 145-148; CVV 212에 재수록되었다. 이 본문은 1954년 8월호 RA에서 발췌했다. 녹취록이 있는데 여러 출판본은 날짜가 기록되지 않았으나 녹취록에는 알바: 1954년 8월 20일이라는 날짜가 들어있다.”

77 베르노코(G. B. Bernocco) 신부의 증언이다. “젊은 신부는 내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열정에 넘쳐 구체적으로 자신의 활동 계획을 설명했다. 그의 모습과 목소리에서 오랜 기간 구상한 일을 실현하는 열의와 열정이 보였다.”(G. Barbero, Il sacerdote Giaccomo Alberione …, o. c., pp. 229-230 참조)

78 G. Barbero, Il sacerdote Giaccomo Alberione …, o. c., p. 233 참조.

79 G. Rocca, 「양성…La formazione…」, o. c. pp. 551-552에 나온 「성모승천대축일 문헌Documento del giorno dell’Assunzione 」, 1916 참조. 신학생 자카르도가 1917년 10월 19일 그의 일기에 쓴 내용이 의미심장하다. 지면 관계상 한 부분만 인용한다. “신학자께서 알아들을 수 있는 학생들에게 설명하신 이유는 그들이 미래에 대한 목표를 직접 세우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1˚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수도회는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수도회를 포함한 수도단체가 될 것이다. 이 중에서 첫 번의 두 수도회는 수도서원을 한다.

특히 첫 수도조직은 남성 수도회이고 학생들과 기술자들로 구성된다. 학생들은 사회학을 전공하며 일부는 이곳에 머물게 되고, 사제직을 희망하는 이들은 수품될 것이다. 박사, 사제, 학자들과 일반 학자들이 기획, 편집을 담당하고 신문에 기고하고 강연회를 주관하고 유지하는 일을 맡는다. 인쇄 기술자들은 인쇄, 식자와 조판, 정기간행물 발행, 기술 분야의 책임을 맡는다. 첫 남성 수도회는 시작되어 이미 서원한 학생과 기술자들이 있다. 두 번째 여성 수도회도 시작되었다. 여성 수도회의 임무는 출판하고, 글을 쓰고, 교리를 가르치고, 그리스도교-사회 활동에 협력하는 것이다. 남녀 협력자들을 포함한 세 번째 수도 계열이 교회법에 따라 빨리 설립되기를 바란다. 이들은 물질적 정신적 도움을 통한 조언과 프로파간다를 해야 하고 수도회 정신으로 잘 양성되어야 한다. 이 세 번째 수도 계열도 이미 존재한다.

조직: 수도회는 한 명의 총책임자를 두어 그가 제시하는 지침과 규범을 모두가 따라야 한다. 각 정기간행물의 책임자를 둔다. 나이든 학생들을 위한 수련소를 마련한다. 수도회는 이탈리아 전역에, 더 나아가 유럽, 그리고 세계로 확산될 것이다.

목적: 양서 출판과 신문 잡지. 전 세계의 정기간행물은 우리들의 모든 수단을 다한 물질적·정신적인 도움을 받을 것이다. 우리의 투쟁은 악마의 모든 세력, 특히 프리메이슨에 대항함으로써 교회·교황·그리스도교 문화를 승리로 이끌 것이다.”(G.T. Giaccardo, Diario …, o. c., pp. 79-81 참조)

80 G.T. Giaccardo, Diario …, 1917년 12월 8일, o. c., pp. 105-106. 마찬가지로 여성 계열을 위한 노력도 사적 서원을 통한 봉헌생활 여정에서 계속 동반되었다. C. A. Martini, 「성바오로딸수도회 역사Le Figlie di San Paolo, Note per una storia」, Roma, 1994, p. 96 참조.

81 자카르도의 일기에서 인용한 알베리오네 신부님 말씀. G.T. Giaccardo, Diario …, 1917년 12월 8일, o. c., pp. 104-105 참조.

82  1918년 4월 29일. 자카르도는 굶주림의 심각한 문제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드러냈다. “비가 계속 내린다. 배고픔이 우리를 괴롭히는 데 한 몫을 한다. 전쟁, 기근, 페스트는 항상 연결된 세 자매다. 지금 하느님은 우리를 내려치시며 벌하신다. 밑바닥까지 내려갈 필요가 있다. 전쟁이 끝나더라도 하느님백성의 자녀들을 상처 입히는 채찍질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전쟁을 원한 사람들은 멀찍이 달아나 흰 빵을 먹고 있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무사히 빠져나가게 두지 않으실 것이다.”(G.T. Giaccardo, Diario …, o. c., p. 201)

83  자카르도의 1917년 11월 29일자 「일기」에서 이 부분에 관한 내용을 정확하게 찾아볼 수 있다. “오늘 저녁 식탁에서 신학자께서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시대상황이 아주 심각하고, 더 이상 먹을 것도 구하지 못할 정도로 위중한 상황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영화관과 극장에서 지내는 무분별한 이들의 삶에 적극적으로 맞서야 한다. 국방상황과 정치상황, 경제상황과 사회상황도 심각하고, 종교상황 또한 심각했다. 이탈리아는 1,000년을 넘기지 못할 시점에 와 있다. 도지사는 주보에 실린 복음을 검열할 정도이고, 공무원들은 악의 물결에 휩쓸려 허우적거리면서도 그런 상태를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프리메이슨에게서 오는 중압감이고, 그들은 사제들에게 그 대가를 치르게 하려고 했다. 곧 교회를 향한 대항이 아주 강력했다. 성 바오로 시대에도 거론된 적이 있었으나 잠잠했었다. 지금은 검열이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하느님께서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밑바닥까지 떨어지도록 놓아두신다. 이 모두가 교회의 대 승리를 위한 것이지만, 먼저 많은 고통의 나날을 거쳐야 할 것이다. 로마 문제는 이탈리아의 가시이지만, 로마만 죄인이 아니다. 온 유럽이 죄에 빠졌다. 선한 출판의 사명은 재건하고 활력을 주는 것이다.”(G.T. Giaccardo, Diario …, o. c., p. 95)

84 자카르도는 1918년 3월 19일자 일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우리 신부님의 성격은 특별하지 않다. 오히려 평범했다. 그분은 우리에게 기도와 신앙을, 이와 더불어 배려, 근면, 노동, 민첩함, 생명, 기쁨을 지니라고 권고하셨다. 환상이 아니라 실제로 국가적·정치적·개인생활의 심각한 상태에 직면하게 하면서 현실적으로 교육시키셨다. 우리에게 그 정신을 주시기를 원하셨다. 곧 겸손, 자연스러움, 단순함을 강조하셨다.”(G.T. Giaccardo, Diario …, o. c., p. 194)

85 경애하올 신부님께서 묵상 중에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내 근심거리는 단 두 가지입니다. 내가 아직 충분히 선하지 않다는 점과 여러분이 아직 충분히 거룩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이 두 가지가 나의 근심이고 다른 걱정은 없습니다. 다른 모든 것은 그 자체에서 오는 것이므로 아무것도 아닙니다. 수도원을 무너뜨릴 지진이 발생한다고 해도 수도회는 다시 세워질 것이고, 세상 모든 중요한 나라마다 퍼져나가고 세기에 걸쳐 지속될 것입니다. 이 일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곧 하느님께서 이렇게 하시기를 원하시고 꼭 필요한 것인데 우리가 그 섭리를 방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정신이 더 강력하고 우리가 더 거룩한 성인이라면 얼마나 더 많은 주보가 보급될지, 우리의 신문에서 얻는 이익이 얼마나 크고 풍요로울지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G.T. Giaccardo, Diario …, 1918년 2월 15일, o. c., p. 191)

86 자카르도는 1918년 3월 12일자 일기에 알베리오네 신부의 짧은 강론을 옮겨 적었다. “… 그러므로 주님과 단순하고 분명한 약속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 저는 많은 것을 알아야 하지만 저에게 공부할 시간은 조금밖에 없습니다. 저는 조판과 인쇄일을 해야 하는데 주님께서 원하실 때, 원하시는 바를 조판하고 인쇄하고자 하오니, 저에게 지식을 주십시오. 이는 확고한 신뢰에서 나오는 계약입니다. 무지했던 사도들은 성령을 받은 후 세상이 놀랄 만큼 지식인들을 혼란에 빠트리면서 모든 인간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위에 불꽃으로 내려오시는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방식을 택하셨습니다. 곧 우리가 배우고 있는 것을 더 빠르게 배우게 하실 뿐 아니라 훨씬 많은 것을 얻도록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공부한 것을 잘 적용하게 하실 것입니다. 다른 이들이 세 시간을 배우고도 쉽게 잊어버리고 적용하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한 시간 안에 배울 것이고, 또 삶에 적용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그러한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나는 두 명의 젊은이가 그와 같은 신앙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6개월 걸린 것을 한 달 안에 이루어내는 체험을 했습니다.‘나는 공부를 안 했고 배우지 못했어.’라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공부를 못했지만,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문법을 배우지 못했지만 다른 것을 배웠고, 다른 사람들보다 아는 것이 부족하지만 30년 후에 두고 보십시오. 이러한 신앙이 수도회 정신의 핵심이며, 새로운 정신, 새로운 수단을 갖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근본정신, 기본원칙 중의 하나는 많은 공부 없이도 배울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없을 때 삶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비웃음을 받을 겁니다. 이러한 믿음이 핵심이라는 것을 머릿속에 잘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성 바오로는 하느님을 위해 일했으므로 하느님께서 그를 먹여주셔야 하고, 자신은 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느님께 봉사하는 사람은 봉헌 예물로 살아 갈 권리가 있습니다.(qui altari deservit, de altari vivere debet) 우리에게 있어서
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위해 일해야 하고, 많은 것을 알 필요
가 있습니다. 우리는 일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음식은 주님께서 생각하십니
다.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뿐만 아니라 지성과 마음의 양식까지 마련해 주십
니다. 우리는 그분을 위하여 일하고, 그분의 것으로 살아야 하며, 그분에게
속한 자로 살아갈 권리를 가집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말하
는 것처럼 살아갈 것이 아니라, 수도생활이 요청하는 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공부를 조금밖에 하지 않는다고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대답해 줍시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힘만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이 있으므로
우리의 몫과 하느님의 은총이 두 몫을 합니다.”(G.T. Giaccardo, Diario…,
1918년 3월 13일, o. c., pp. 195-196)

87 자카르도 신부가 인용한 알베리오네 신부의 말씀이다. G. T. Giaccardo, Diario …, 1917년 12월 8일 , o. c., pp. 103-104 참조.

88 자카르도는 1918년 9월 30일자에 그 전날의 일을 다음과 같이 썼다. “신학자께서는 우리에게 수도회의 세 개의 줄기에 대해 설명하셨다. 곧 남성, 여성, 협력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마지막에 `언급한 이 협력자회는 다른 것에 비해 더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다른 두 수도회는 이미 안정을 얻어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 단체, 곧 선한 출판 협력자회가 출범했습니다. 피정 동안 저는 회규를 작성하여 하느님께 드렸습니다. 그후 그 단체를 주교님께 소개하자 주교님께서 기꺼이 승인하셨을 뿐 아니라 당신이 첫 번째 회원이 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잘 출범하게 된 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신부님은 그 회규 내용을 우리에게 설명해 주셨다. ‘선한 출판을 위하여 특별한 기도와 희사, 또는 일하고 글을 쓰고 싶은 모든 이들이 입회할 수 있습니다. 시작이 전부가 아닙니다. 후에 어려움, 비난, 방해, 좌절의 때가 올 것입니다. 마치 숲속에서 배를 움직여야 하는 것 같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십시오. 기도합시다. 성 바오로께는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분께서 맡아주실 것이고, 새 협력자회가 풍부한 열매를 맺게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하여 열렬히 돕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30년 후에 오늘 저녁에 제가 말씀드린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30년 뒤에.’”(G.T. Giaccardo, Diario …, 1918년 9월 30일 , o. c., pp. 233-234)

89 G. Rocca, La formazione …, o. c., pp. 551-552.

90 자카르도 신부는 1918년 1월에 “성 바오로의 회심”이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삶의 계획을 세웠는데, 알베리오네 신부가 선한 출판 협력자회에 제시한 세 가지 사항, 곧 기도, 희사, 활동을 실천방법으로 세웠다는 점이 흥미롭다.(G.T. Giaccardo, Diario …, 1918년, o. c., pp. 124-125 참조)

91  “1918년 10월 25일. 어제 저녁 신학자께서는 선한 출판 협력자회 회보를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 대전에 가져다 놓고 성체강복을 거행하셨다. 우리 모두는 그 곁에 무릎을 꿇었다. 존경하올 신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우리의 선한 출판을 도와줄 이 회보가 처음으로 발간되었으니 주님의 축복을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우리는 이 회보가 아름답고 적합하도록 우리의 모든 힘을 다해 일했지만, 하느님께서 축복해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의 노력은 아무런 가치가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축복이 깊이 스며들 때큰 결실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축복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시면서 클레리아가 임종 직전에 남긴 마지막 말도 들려주셨다. …선한 출판에 필요한 협력자들을 일으키는 것이 하느님께는 아주 쉬운 일일 것이다. 그분은 말씀 한 마디로 하늘을 만드셨고, 물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들, 창공을 나는 새들이 생기게 하셨으며, ‘모든 피조물의 으뜸’인 인간을 창조하셨다. 우리는 선한 출판 사업을 일으키는 것이 위대한 기적이라는 사실을 깊이 확신하고 모든 것을 하느님께서 하시리라는 것을 믿으면서 평온하게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 편에도 필요한 것이 있다. 1.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Quærite primum regnum Dei et iustitiam eius) 그러면 나머지는 다 주어질 것이다. 오직 성성과 하느님의 영광만을 추구해야 한다.

  1. 하느님만 신뢰하고 우리의 힘을 믿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하느님께 나 혼자 하도록 놓아두시라고 말씀드리곤 한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물러나시고 우리는 머리를 다치는 상처를 입는다. 하느님께는 두려울 것이 하나도 없지만 우리의 자애심을 두려워하신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좋게 만드시고 늘 ‘보시니 좋았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잘못한 것을 볼때, 우리 자신에게 빠져 있다는 표지임을 바로 깨닫고 자문해야 한다. 나는 무엇을 했는가?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얻게 되는 하느님의 은총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겸손과 기도가 필요하다.”(G.T. Giaccardo, Diario …, 1918년 10월 25일, o. c., pp. 237-238)

92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이달 25일 가톨릭교회는 성 바오로의 회심 축일을 거행한다. 사울은 태동하던 그리스도교를 없애버리려던 원수였다. 그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찾아내 감옥으로 보내기 위하여 군인들과 함께 살기를 내뿜으며 다마스쿠스를 향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은 그를 도시의 성문 앞에서 쓰러뜨렸고,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히브리인들과 다른 민족들과 군주들과 왕들에게 내 이름을 알리도록 내가 그를 선택했다. ’사울은 바오로가 되었고, 사도들의 으뜸이 되어 모든 사도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교회로 불러 모았다. 교회는박해자 대신 새로운 생명을 얻었으므로 이 날을 맞아 이렇듯이 큰 축제를 거행하는 것이다. ‘양서 출판의 날’로 장엄하게 지내는 본당들도 있고, 또는 죄인들의 회개를 위한 특별한 예식, 특히 사울처럼 자신들의 재능, 받은 교육, 사회적 지위를 교회, 그리스도의 대리자, 종교에 대항하는 데 쓰고 있는 사람들의 회개를 위한 예식을 거행하는 본당들도 있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에 가입한 모든 회원은 이날 그러한 목적으로 영성체하도록 초대된다. 미지근한 삶에서 열렬한 삶으로 회개할 수 있도록 청하자. 가톨릭 저술가들에게 올바른 정신과 힘이 주어지도록 청하자. 불경한 저널리스트들의 회개를 청하자. 성 바오로 9일 기도가 잘 바쳐지기를!”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II, n. 1, 1919년 1월, p. 2)

93 “사도 바오로는 어디에서든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그 당시 유명한 지역을 두루 다니면서, 십자가의 깃발 아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불러 모았다. 그의 넘치는 열정은 내면에서 솟구쳐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사도 바오로가 선한 출판의 수호자로 선택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오늘날 그 어떤 보급 수단도 출판물, 특히 신문보다 더 보편적이고 효과적인 것은 없다. 이 때문에 기자들이 비록 자신의 편집실 안에 갇혀 있지만 그들은 자신의 작품을 널리 퍼뜨리고 자신의 말을 세상 끝까지 이르도록 한다. ‘만일 성 바오로께서 오늘 다시 오신다면 저널리스트가 되셨을 것입니다.’라는 케틀러의 말이 의미 없는 빈말이나 어쩌다가 표현된 말이 아니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II, n. 1, 1919년 1월, p. 4)

94 2티모 4,2.

95 2티모 4,5.

96 “성 바오로의 정신은 그분의 삶, 그분의 서간, 그분의 사도직에 의해 드러난다.”(ADds 94)

97 전쟁 이전 시기의 면학 방향은 본질적인 것을 추구했고, 초기교회에 대한 지식에 주의를 기울였다. 고대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교를 선호하는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었다. 모던니즘과 프로테스탄트 분야에서 비정상적인 것들이 많이 드러나고 있었으나 선한 결실이 오히려 넘쳐흐를 정도였다. 이러한 선한 결실 가운데서도 가장 월등한 것은 사도 바오로의 삶, 활동, 가르침에 대한 더욱 방대하고 심오한 인식이었다. 그뿐 아니라 (자연적인 귀결로서) 이 위대한 이방인의 설교가에 대한 공경을 대중화하고 더욱 실천적인 공경이 되게 하려는 염원이 생겨났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II, n. 1, 1919년 1월, p. 4) “‘성 바오로 신심.’ 보노멜리(Bonomelli) 몬시뇰은 사람들은 교회의 특출한 성인들 중 많은 이들에 대해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맞는 말이다. 사실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순교자 성 이냐시오 등에게 기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만일 성 바오로께서 이 세상에 베푼 선을 안다면, 특히 이방인의 후손들인 우리에게 얼마나 큰 선을 베풀었는지 안다면! 그분의 생애와 업적이 잘 묘사된 서간을 읽는다면 그분께 훨씬 많은 기도를 드릴 것이고, 그분을 훨씬 더 사랑할 것이며, 그분을 훨씬 더 본받으려 할 것이다. 그분에게서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근간이 되는 두 가지 덕을 배울 수 있다. 곧 예수께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 우리가 성심껏 거행하는 6월 30일 성 바오로 축일은 위대한 사도를 알리기 위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그분의 상본을 보급하고 선한 출판 수호자인 그분께 간구하자. 또한 적어도 한 번 성 바오로의 서간을 설명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일부 본당에서는 5년, 또는 6년마다 미사 강론 때 복음 대신 서간을 신자들에게 설명해 준다. 미사 독서는 거의 성 바오로의 편지에서 발췌된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II, n. 6, 1919년 6월, p. 2)

98 선한 출판 협력자회 회보는 매번 출판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몇 가지를 인용해 보기로 한다. “세상은 여론에 지배되고, 이 여론은 저널리즘에 의해 형성된다.”(Pavvissich,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I, n. 2, 1918년 11월 28일, p. 2) “오늘날 대중은 매일 신문을 읽을 뿐 자기 의견을 내거나 자신의 삶을 규제하지 못한다.”(레오 13세,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II, [n. 2?], 1919년 [2월과 4월 사이], p. 3) “저를 믿으십시오. 저는 주교이지만 출판 발전에 우리의 총력을 다 기울여야 할 필요성 때문에 신문 창간을 위해 성전 건립을 늦추려고 합니다.”(Card. Mercier,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II, [n. 2?], 1919년 [2월과 4월 사이], p. 7)

99 ‘근본적인 생각.’ 바로 다음과 같은 것이다. 선한 출판은 오늘날 참된 사도직이요, 기도의 사도직 다음으로 사도직 중의 으뜸이다. 참된 사도직이므로 ‘상업적인 사업’이나 ‘직업’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사도의 영혼, 정신, 마음을 갖도록 해야 한다. 곧 다음과 같은 것이 필요하다. 인쇄 사도직에 헌신하는 이들은 기도하는 사람, 희생하는 사람, 사회적 덕을 갖춘 사람, 굳은 확신을 가진 사람, 교육을 받은 사람이어야 한다. 교회의 적들의 가면을 벗길 수 있도록 종교의 진리를 설명하고 윤리와 교의를 수호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유주의나 이단을 위해 일하거나 이익과 명예의 유혹에 빠지지않고 인쇄에 종사하는 좋은 일꾼들을 필요로 한다. 거룩한 사도직, 신앙심으로 일하는 일꾼들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과 경쟁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능력을 갖춘 일꾼들이 필요하다. 덕과 학식을 갖춘 기술자들, 저술가들이어야 한다. 시급한 출판 활동에 자신을 봉헌한, 영혼과 마음이 일치된 가족이있을 때 가장 바람직하다. 기술자들과 저술가들로 구성된 이러한 가족은 출판활동에 자신들의 모든 힘을 쏟겠다는 거룩하고 엄숙한 약속을 통해 결속된 사람들이어야 한다. 협력자들은 이러한 활동에 기도, 희사, 활동으로 도움을 주어야 한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II, [n. 2?], 1919년 [2월과 4월 사이], pp. 2-3)

100 ‘여성의 새로운 사명.’ 위대한 출판 사도직에 여성이 제외될 수 없다. 오히려 출판은 여성에게 가장 높은 사명이고 잘 맞는 분야이다. 살레시오회 회원들이 하는 일을 지켜보면 이러한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수녀들이 인쇄소에서 일하는 것을 세 곳에서 목격했다. 모두 훌륭하게 일하고 있었다. 저술보다 인쇄하는 수녀들이 더 많았다. 얼마 전에 어느 추기경께서 수녀들에게 신문 제작을 해보도록 권고했다. 1. 교사, 우편, 전보 사무, 판매 등의 일을 하는 여성들이 있고, 여성에 관한 기사를 쓰고, 독자 답변, 여러 기사를 쓸 수 있도록 교육 받은 여성들이 있다. 2, 많은 여성들은 우리의 신문, 종교 잡지를 촉진시키고 정기구독자를 모집하는 일을 하고 있다. 또한 보급과 도서관 사서일을 하기도 한다. 3. 많은 여성에게는 무익한 낭비보다 희생하는 역량이 더 크다. 4. 선한 출판물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젊은 여성들은 고아원, 요양원, 병원, 선교회 수녀들보다 훨씬 훌륭한 활동을 하는 것이다. 인쇄 활동을 하는 수녀들은 여러 면에서 남성들보다 훨씬 잘 하고 있다. 5. 그뿐 아니라 여성들은 선한 출판을 위해 기도하고, 성체를 영하고, 묵주기도를 바치고, 협력자회에 가입하여 이 회를 더 널리 알릴 수 있다.” (「선한출판 협력자회」, anno I, n. 2, 1918년 11월 28일, p. 2)

101 젊은이들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단순 기술자와 학생 기술자들이다. 첫 부류는 인쇄기술을 익히고 학교, 노동, 신심 실천을 하도록 시간을 배정한다. 두 번째 부류는 노동을 적게 하고 공부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단순 기술자를 위한 정규 수료 과정은 5년이다. 이 과정을 이수하면 자격증을 받고, 필요할 때 그들에게 적합한 책임을 맡긴다. 학생 기술자를 위한 과정은 8년이고 (Faenza의 교황청 대학) 사회학 학위를 받는다.공부를 끝내지 못해도 인쇄 기술을 배웠다는 매우 유리한 이점이 있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II, [n. 2?], 1919년 [2월과 4월 사이], p. 2)

102 “‘인쇄 학교의 여성 부문.’ 출판 활동에 여성이 투입되는 것이 새로운 일은 아니지만 이러한 현상은 우리 시대에 큰 발전을 가져왔다. 소녀들은 조판과 인쇄, 제본, 발송, 글 쓰는 일을 했는데 소년들과 남성들보다 많은 일을 훨씬 쉽게, 훨씬 잘 해냈다. 이러한 활동을 더 원할하게 하기 위하여 알바 인쇄 학교 여성 부문이 발족했다. 이 여성 부문은 긴 준비 작업을 거쳐 자체적으로 가동할 수준에 이르렀으므로 교구에서 신문과 인쇄를 맡기고, 주교가 숙소를 제공하기로 한 수사(Susa)로 진출했다. 여성 부문의 목표도 남성 부문의 목표와 같다. 곧 선한 출판을 돕고 촉진하는 것인데 단지 다른 점은 젊은 남성들이 사회학 학위를 준비하는 반면, 젊은 여성들은 (공부하기를 원할 때) 초등학교 교사 자격증을 준비했다. 문의할 일이 있을 때 알바에 있는 신학자 알베리오네 신부에게 또는 수사에 있는 마에스트라 보피 안젤리나(Boffi Angelina)에게 문의하기 바란다. 참고사항: 알바의 인쇄학교 여성 부문은 아카데미아 가에 서원을 열었다가 현재는 문을 닫았다. 아직 지불해야 할 어음을 가진 사람은 인쇄학교 남성 부문 「가제타 알바Gazzetta d’Alba」 편집부에 문의하기 바란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I, n. 2, 1919년 1월 1일, p. 8)

103 ‘중대한 실책이다.’ 인쇄학교를 자선과 요양 사업을 하는 수도회와 혼동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인쇄학교는 근본적으로 선한 출판 활동에 헌신하는 단체이므로 입회하기 위해서는 ‘좋은 성향을 지닌 훌륭한 젊은이어야 한다.’ 경제적 여유가 있고 교육 수준이 높고 사려깊은 지성의 소유자라면 어렵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제외되지는 않는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II, [n. 2?], 1919년 [2월과 4월 사이], p. 5)

104 자카르도 신부는 1919년 12월 26일 (일기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여러 가지 나쁜 의도가 인쇄소에 폐해를 가져왔다. 신학자께서 두 명의 젊은이와 인쇄소에서 주무시고 계셨는데 어제 저녁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간적인 수단도 유용한 것이다. 지혜가 지붕 위에서 아래로 얼마나 많은 것을 제시하는가. 나는 그 이외의 것에 대해서는 아주 평온한 상태다.’ 분명히 수호천사가 그분을 지켜주었다. 이러한 말씀이 나에게 많은 위안을 주었고, 이러한 일들이 나의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마음의 집착에서 멀어져야 함을 알았다. 나중에 이 일들을 놔둬야 할 경우가 오더라도 나는 괴로워하지 않을 것이다. 섭리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 게 하지만 보호하고 성장시키신다. 오, 하느님의 섭리여! 어제 저녁에 비로소 나의 삶에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선거 주간에 나를 죽이려는 위협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길에서 밤을 보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보호해주셨다.’”(G.T. Giaccardo, Diario …, 1919년 12월 26일, o. c., p.287)

105 ‘1919년 1월 7일.’ 어제 저녁 경애하올 신부님께서 우리 모두가 주님과 계약을 맺도록 초대하셨다. 그분께서 맺으신 계약은 하나를 공부할 때 네 가지를 배운다는 것이었다. 오늘 아침 묵상 중에 그분은 우리에게 계약의 근본과 중요성, 조건, 초대를 반복해서 말씀하셨다. 그분의 말씀은 열정에 불타올랐고 확신에 차 있었으며 설득력이 있었다. […] 미사성제 중에 계약의 조항을 하나씩 바칠 때마다 동정녀 마리아께 바치는 호칭기도, ‘오소서 창조주시여’(Veni Creator), 주모경을 세 번 바쳤다. ‘성모송’을 바치기 전에 경애하올 신부님이 계약 내용을 읽으셨고, 원하는 사람은 마음속으로 그것을 되뇌게 했다.”(G.T. Giaccardo, Diario …, 1919년 1월 7일, o. c., pp.250-252)

106 “성체께 드리는 40시간의 기도는 나에게 유익했다.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이 말씀해 주신 다음의 성경구절은 구원이라는 측면에서 나에게 엄청나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복음을 전하여라…; 먼저 하느님의 나라를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Docentes eos servare omnia e… et ecce ego vobiscum sum; prædicate evangelium…; quærite primum regnum Dei et haec omnia…; non vos… sed ego elegi vos ut eatis) 이 성경구절은 선한 출판과 연관되는 것으로서 내 안에 더 강력한 기도의 정신을 일깨워주었다. 곧 생생한 신앙정신과 신학생들의 양성장이시며 성체이신 예수께 대한 신뢰의 정신, 곧 겸손과 희생에 대한 열정이었다. 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온전히 살고자 하는 열망이 일었다. 인쇄 사도직을 위한 나의 소명을 더욱 자명하게 볼 수 있었고, 아주 강하게 나를 감동시켰으며 더욱 불타오르는 열정을 느끼게 해주었다. 첫 선교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바탕을 둔 그리스도교 문화의 사도직을 그분께서 이제 우리에게 보내주신 것이다. 하느님과 인간 영혼들을 위해 나의 삶을 바치고 전적인 사랑, 전적인 성성과 겸손, 전적인 열정을 바칠 것을 확고히 하는 열망을 느꼈다. 선한 출판과 내 삶의 희생을 하느님의 가르침과 그분께 대한 열정으로 바칠 것을 약속하고 싶은 열망에 불탔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십자가 위에 계신 하느님께서 기꺼워하시도록! 이러한 열망에 덧붙여 영성적인 것만 아니라 육체적인 작은 희생과 극기도 바치고자 했다.”(G.T. Giaccardo, Diario …, 1919년 1월 7일, o. c., pp. 42-43)

107 알베리오네 신부와 신학생 자카르도 사이의 대화 내용이다. “백의의 사제회(Bianchi) 광고 팸플릿 대신 서원 광고를 해야 합니다. 더 많이 해야 합니다. 잠시 말을 끊었다가 계속했다. 더 많이 할 때 사람들에게 더 큰 이익이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를 찾아라.’(Ora quærite primum regnum Dei)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알베리오네 신부가 계속해서 말했다. “본질적인 것에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회계 업무에 있어서도 본질적인 것, 단순한 것에 유의하십시오. 여러분이 훨씬 발전하게 되었을 때, 현대적인 정확한 회계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잘 할 것입니다. 지금은 본질에 주의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와 비슷한 이런 수도회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책임자들, 전문가들… 등이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만일 그렇게 시작하려고 했다면 우리는 수도회를 결코 시작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G.T. Giaccardo, Diario …, 1919년 3월 19일, o. c., pp. 261-262)

108 1962년 9월 16일, 알베리오네 신부는 스승예수의제자수녀회 수녀들에게 마태 6,24-33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첫 번째로, ‘무엇보다 하느님의 나라를 찾으십시오.’ 그러면 그 결과로 성성과 다른 것들이 뒤따를 것입니다. ‘곁들여 받을 것이다.’(adiicientur vobis) 그것이 사도직입니다. 곧 흠숭을 통하여, 사제적 봉사를 통하여, 전례를 통하여 하느님 나라를 찾는 것입니다. 그러나 각 개인을 위하여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먼저 성성입니다. 먼저, 하느님 나라는 우리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거룩해야 하고, 그 다음에 하느님 나라가 온 땅 위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면 나머지 모든 것은 덤으로 주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을 것이다.’(et omnia adiicientur vobis) 이러한 비유는 대단히 물질적인 것입니다만 정육점에서 고기를 살 때 정육점 주인이 뼈를 덤으로 주는 것과같다고 하겠습니다.”(G. Alberione, Alle Pie Discepole del Divin Maestro, Roma, 1986, n. 164, p. 166)

109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특별한 믿음을 요구하신다. 다른 이들과는 구별되는 믿음이다. 이러한 믿음은 수도회의 토대이다. 믿음을 가진 수도회는 성공할 것이다. 믿음을 갖지 못한 사람은 이루지 못할 것이고, 다른 이들에게 방해가 될 것이다. 의도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도 믿음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어떤 것들은 신학자께서도 의도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믿음의 시련이 있을 수 있다. 일을 할 때는 보지 않고서도 믿을 뿐 아니라, 반대되는 의견과 부딪치게 되더라도 믿어야 한다. 믿음을 살아야 하는 사람은 코톨렌고의 모범을 따라야 한다. 그가 작은 수도회를 아무 자원없이 시작하려 했을 때 사람들은 그를 미쳤다면서 아무도 그를 지지하지 않았지만 믿음이 기적을 일구어냈다.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하느님께서는 선한 출판을 원하시고, 선한 출판에 종사할 우리 수도회를 원하신다. 우리는 비록 공부가 부족해도 필요한 학식을 갖추게 될 것이고, 저술과 저널리스트에게 요구되는 지식을 갖출 것이며, 영적 지도를 받지 못해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신심을 지니게 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참된 성소자들을 보내주실 것이고, 우리 시대의 사람들이 선한 출판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활동에 필요한 기부금과 음식을 보내주실 것이니, 아무것도 모자라지않을 것임을 믿어야 한다.”(G.T. Giaccardo, Diario …, 1919년 3월 19일, o.c., p. 260)

110 가스탈디는 주세페 베네딕토 코톨렌고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기적으로 얻어진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주세페 안에 펼쳐진 천부적인 재능은 하느님께서 그 안에 얼마나 비범하고 특출한 계획을 세우셨는지 잘 보여준다. […] 젊은 시절의 그는 그와 같은 소중한 은혜를 깊이 인식하면서 ‘성인이 되고자’ 결심하고, 이를 확고히 했다. 그는 하느님께서 언제 어느 곳에서든 그를 지켜보신다는 진리를 깊이 통찰했다. 그가 어디에 가든 무슨 일을 하든 하느님께서는 그와 함께 계셨고 그도 늘 하느님 대전에 머물렀다. 그는 마음속에 그분을 새기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눈으로 보고 싶어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흔히 좌우명이나 신조를 적듯이 그는 이렇게 적었다. ‘하느님께서 나를 보고 계신다.’ 그의 공부방과 침실에 하느님의 계속적인 현존을 기억하게 하는 글귀를 쓴 종이를 붙여두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도 기억시키기 위하여 동료들이 잘 볼 수 있는 수도원 앞뜰 벽에 큰 글씨로 다음과 같은 글을 써붙였다. ‘하느님께서 나를 보고 계신다.’”(P. P. Gastaldi, 「성 주세페 베네딕토 코톨렌고의 삶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사랑의 기적I prodigi della carità cristiana descritti nella vita di San Giuseppe Benedetto Cottolengo」, Piccola Casa della Divana Provvidenza, Cottolengo, Torino, 1959, pp. 18-19)

111 “하느님께 철저한 신뢰를 두고 있는 가경자이신 아버지는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교회가 주님께 세속적인 것이라도 언제든 청할 수 있음을 보여주지만, 그러한 것을 청한다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 아닌지 두려워하게 됩니다. 잘못된 것에 홀려서 그런 것이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늘 많이 기도하지만, 기도 안에서 도움을 청하거나 구조를 요청하지 않았다. 그는 가까운 동료와 대화를 나누면서 이렇게 말했다. ‘작은 수도회(Piccola Casa)는 결코 물질적인 양식을 위해서 기도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먼저 하느님의 나라를 찾으라. 그러면 나머지 모든 것을 곁들여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와 같이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몫입니다.’

또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을 단죄하지 말고, 나에 관해서만 단죄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길을 갈 때 무엇보다 기도해야 하고, 먼저 하느님의 나라를 찾고(Quærite primum regnum Dei) 내 모두를 그분 손에 맡겨야 합니다.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분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아십니다.’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Scit pater vester quia his omnibus indigetis) ‘우리는 오직 그분을 만족시키는 일만 생각합시다. 그분께 기도드리되 전체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처음부터 성인이 아님을 알았기에 작은 수도회의 그 누구도, 적어도 공적으로 세속적인 특별 요청을 하지 않았고, 그 대신에 성인이 되기를 청했고, 청한 만큼 그렇게 숭고했습니다. 그리고 밤낮으로 수천 번 수만 번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기도를 되풀이해서 드렸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동정 마리아님, 저희를 거룩한 자 되게 하소서.”(P. P. Gastaldi, I prodigi della carità cristiana …, o. c., pp. 314-315)

112 “수도회에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은 섭리자이신 하느님이시다. 신학자께서는 코톨렌고의 작은 수도회가 하는 것처럼 ‘하느님께 감사Deo gratias’라는 표현으로 주님께 감사의 뜻을 드러내셨다. 그리고 크고 작은 일에 이러한 관례를 도입했고, 희사를 받을 때마다 ‘하느님께 감사’를 되풀이했다. 그뿐 아니라 가장 작은 것에 대해서도 감사드리는 것을 잊지 않았는데 이는 성바오로의 서간에 나오는 감사의 찬가에서 배운 것이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VII, n. 4, 1924년 4월 15일, p. 8)

113 바오로가족은 수도회가 태동될 때 ‘하느님 섭리의 작은 수도회’(Piccola Casa della Divina Provvidenza)를 완벽하게 따르고 있었다. 특히 코톨렌고의 시복 절차 중에 도미니코 보쏘(Domenico Bosso)가 증언한 ‘하느님께 감사’라는 표현을 그대로 사용했다. 그리고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하는 기도를 드리지 않고서는 결코 어떤 활동도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자주 ‘주님 안에서’(in Domino)를 되풀이했습니다. 작은 수도회가 이런 표현을 항상 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수도원과 여러 공동체에 거룩한 이름을 붙였습니다. 예를 들어 섭리, 하느님의 집, 희망, 믿음, 베들레헴, 사랑 등. 그분은 공동체들을 성인들의 보호 아래 맡겼습니다. 모든 작은 수도회를 신앙 위에 세웠습니다. 그는 다른 모든 이들과 함께 물질적인 양식과 영적 양식, 이 모두를 하느님에게서 받을 수 있도록 작은 수도회 안에 ‘하느님께 감사’를 정착시킨 것입니다. 모든 것에 대하여 오로지 ‘하느님께 감사’를 되풀이하고, 기부금이나 물건을 받았을 때에도 가경자께서는 통상적으로 ‘하느님께 감사’라는 답신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작은 수도회 안에서 ‘하느님께 감사’는 모든 가족의 심장 박동이었으며, 장상에게서나 동료에게서 받은 어떤 작은 것에 대해서도 ‘하느님께 감사’로 대답했는데 이 표현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교회의 공식 석상에서 어떤 설교가가 강론을 했든간에 가경자의 강론이 끝났을 때처럼 동료들은 그에게 ‘하느님께 감사’라고 화답합니다. 어떤 불행한 일이 발생했거나 또는 위에서 언급했던 것과 같이 가경자께서 교정해 주기 위해 잘못을 지적했을 때에도 이들은 ‘하느님께 감사’를 반복했습니다. 그분은 작은 수도회가 항상 주님 안에 머물면서 감사드리며 살기를 바라셨습니다. ‘주님 안에서’(in Domino)와 ‘하느님께 감사’는 작은 수도회의 심장이었습니다.” (「덕성에 관한 조사Recensio Virtutum」, pp. 19-20, (시성성, 가경자 하느님의 종 주세페 베네딕토 코톨렌고의 시복 시성에 관하여), ‘Nova Positio Super Virtutibus’, Romae, 1899.

114 그분[코톨렌고]은 작은 수도회의 초창기부터 죄에 대한 두려움에 관하여, 매시간 모든 사람이 이렇게 말하기를 바라셨습니다. 곧 ‘주님, 대죄에서 저를 구하소서.’(a peccato mortali libera me Domin)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죄에서 자유롭게 된 것을 보면 ‘주님, 모든 죄악에서 저희를 구하소서.’(ab omni peccato libera nos Domine)라고 바꿔 기도드리면서 각자 소죄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만일 무엇인가 그분을 거스르는 일이 생기거나 또는 하느님의 섭리가 도우심을 더디게 주시면 곧장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주님의 도우심을 지연시키는 아주 사소한 잘못이라도 범하지 않았는지 ‘양심성찰을 합시다.’ (원인을 곧바로) 하느님 안에서 찾았다는 것을 이야기해 주는 대목입니다. ‘성찰합시다, 내가 바로 잘못의 원인이요, 내가 바로 지체시킨 원인입니다.’라는 말을 그 어떤 말씀이나 교정보다 더 자주 했습니다. 가경자께서는 작은 수도회의 규칙으로 정해진 저녁 기도 때의 양심성찰과 더불어 어려운 상황 안에서는 모두가 자신을 살피면서 하느님의 섭리가 늦어지는 원인이 나 때문인가?라며 특별 성찰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의혹에 대한 요약, 제9번 요약문, 주님 안에서 영웅적 애덕에 대하여Summarium super dubio, Summ. Num. IX, De Heroica Charitate in Deum」, p. 401, (시성성, 가경자 하느님의 종 주세페 베네딕토 코톨렌고의 시복 시성에 관하여), ‘Positio Super Virtutibus’, Romae, 1896.

115 이 두 가지 언급은 성 알폰소와 쇼타르(Chautard)의 업적을 표현한 것이다. 이 두 성인은 알베리오네 신부의 묵상에 영감을 불어넣었다. “신심에 관한 영신수련만 아니라 금년의 모든 묵상과 영적 작업은 내적 삶의 성장을 위해 방향지워졌다. 존경하올 신부님은 제1부에서 「기도의 위대한 수단」을 읽고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 ‘사도직의 영혼’에 대해 말씀하셨다. 모든 9일 기도의 지향을 영신수련의 결정사항으로 하도록 정했고, 모든 강론도 이 점에 관해 결론을 맺는 것이도록 했다.”(G.T. Giaccardo, Diario …, 1919년 1월 17일, o. c., p.252)

116 1919년 1월 25일, 성 바오로 회심축일을 지내며 월피정을 했다. 자카르도는 존경하올 신부님의 말씀 중에 몇 가지는 오래도록 기억해둘 만한 것이라고 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 말에 주의를 기울여 주십시오. 귀를 활짝 열고, 마음이 잠들지 않게 집중하고, 깨어있으십시오.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열 배로 진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느냐구요? 주님께서 여러분을 가장 높은 단계의 성성으로 부르셨는데 그러한 성성은 여러분의 힘과 일반적인 은총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큰 성성입니까? […] 여러분은 거대한 산 바로 밑에 와 있습니다. 산으로 올라가십시오. 여러분의 지평은 무한하니, 곧 온 세상을 목표로 삼으십시오. 매끄러운 둥근 공을 편편한 대리석 위에 올려놓았을 때 공이 닿아 있는 그 한 지점에 공의 전체 무게가 실립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의 의식 위에도 백만, 삼백만, 천만 명의 영혼이 놓여 있음을 느끼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거룩해져야 하고, 일반 사제들보다 더 거룩한 성인 사제가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 천만 명을 구원하느냐 아니면 백만 명을 구원하느냐에 관한 문제입니다. 오늘 저녁 신학자가 우리에게 천만 명이라고 하다니 미쳤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한 명의 훌륭한 저널리스트는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고 말씀드립니다. 눈을 위로 향하고 저 높은 곳에 있는, 끝이 보이지 않는 큰 나무를 목표로 삼으십시오.

우리 수도회는 거대한 나무이고 여러분은 그 뿌리입니다. 지금 우리 수도회는 거대한 나무의 뿌리를 내리고 있는 중입니다. 아, 만일 여러분이 주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시는 곳인 여러분 내면 안에 있는 보화를 깨닫기만 한다면, 여러분은 생명이 넘쳐흘러 저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고, 주님도 가만히 계시지 못하게 할 겁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에워싸고 다음과 같이 말씀드릴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아직도 이것이 필요하고, 저것이 필요하니 한번만 더 그 은총을 제게 주시고….’ 그런데 여러분은 지금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겁니다. ‘신학자는 오늘 저녁 우리를 어디로 이끌려는 걸까?’ 나는 여러분을 완덕의 산으로 이끌려는 겁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거룩해져야 하는지깨달으십시오.”(G.T. Giaccardo, Diario …, 1919년, o. c., pp. 254-255)

117 “유일한 걱정거리는 바로 이것입니다. 제가 아직 충분히 선하지 않고 여러분이 아직 충분히 거룩하지 못하다는 점입니다. 나머지는 하수구에 빠트린 낡은 슬리퍼 정도로 하찮은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나를 사랑한다면, 여러분도 이러한 근심을 함께 느끼고, 통회하고, 수도회를 살리려고 애써야 합니다. 더 많은 겸손, 온순함, 도전 정신이 필요합니다. 모든 것이 저의 정신과 마음에 완벽하게 일치될 필요를 느끼는 여러분의 열정에 달려 있습니다. 이렇게 하십시오. 이러한 근심을 예수 성심께 대한 사랑 안에서 유일한 근심으로 받아들이고, 많이 기도하십시오. 천국에서 우리의 죄가 활동에 얼마나 큰 피해를 끼쳤는지 보게 될 것이고, 성성이야말로 지상에서 유일하고 참된 걱정거리였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웃어버릴 다른 근심 거리들보다 이러한 참된 근심을 제대로 지니지 못했던 것을 탄식할 것입니다.”(G.T. Giaccardo, Diario …, 1918년 2월 15일, o. c., pp. 191-192)

118 1919년 4월 13일부터 성바오로수도회에 대해서 점점 더 자주 언급하기 시작했다. 1919년 4월 25일, 1919년 5월 25일, 1919년 6월 30일, 1919년 8월 17일 일기도 참조 바람.(G.T. Giaccardo, Diario …, 1919년, o. c., pp. 263 이하 참조)

119 “며칠 전부터 존경하올 신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진리[= 신앙과 성성]에 대해 차근차근히 설명해 주셨다. 오늘 저녁에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 회보의 다음 호는 수도회를 조명할 것입니다. 이번 여름에 10여 명의 젊은이들을 받아들이려 합니다. 저는 여러분을 신뢰합니다. 기도 하십시오. 회보가 잘 받아들여져 결실을 맺고, 성소가 있는 젊은이들이 들어오고, 잘 양성되도록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은 확고한 선한 의지를 갖고 그들을 양성할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천천히 서둘러라’(festina lente: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좌우명. 모순어법 격언-역주)는 격언을 실천하고, 또 알고 있는 다른 일도 잘 실행할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G.T. Giaccardo, Diario …, 1919년 2월 21일, o. c., p. 259)

120 1919년 3월 19일 강론에서 알베리오네 신부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이러한 믿음이 오로지 하느님에게서만 주어진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얻고 유지하기 위해서 땀을 흘릴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인간적인 예견이 반대로 나타날 때 확고하게 믿는 것은 큰 공로가 되고 믿음을 얻게 해줍니다. 믿음은 시련을 거쳐야 합니다. 올해 안에 40명의 소년들이 입회할 것을 믿으시겠습니까? 의심하는 이가 없어야 합니다. 만일 한 사람이라도 의심한다면 39명만 들어올 겁니다. 1월에 두 번째 인쇄기 값을 지불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믿습니까? 만일 한 사람이라도 의심한다면, 천 리라가 부족하게 될 겁니다!”(G.T. Giaccardo, Diario …, 1919년 3월 19일, o.c., pp. 260-261)

121 1919년 6월 30일. 갱신서원에 앞서 알베리오네 신부는 “수도회가 왜 결실을 맺지 못 하는가”에 대해 몇 가지 숙고를 하도록 했다. “우리 사이에 충분한 사랑의 일치와 정신의 일치가 없기 때문이라고 보여집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악은 기도의 정신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데서 찾을 수 있으니 이 점을 해결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결정을 하려고 합니다. ‘모두가 적어도 15분간의 성체방문을 하도록!’ 존경하올 신부님께서는 이러한 해결책을 첫 번째 주요사항으로 말씀하시면서 차츰 사랑이 깊어짐에 따라 성체방문을 더 많이 하겠다고 청하여 성체방문을 매일 한 시간씩 하기에 이르러야 할 것이라고 하셨다. 그 후 17일이 지났는데 예외도 있지만 모두가 충실히 지켰고, 이러한 결정사항에 대해 모두가 매우 만족해했다.”(G.T. Giaccardo, Diario …, 1919년 6월 30일, o. c., p. 267)

122 수도회의 매달 첫 주간 신심은 다음과 같다. 월요일-성 바오로께 대한 신심. 선한 출판 협력자들을 위한 전례. 화요일-연옥영혼. 수요일-성 요셉. 목요일-수호천사. 금요일-성체성사, 예수 성심, 성시간. 토요일-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G.T. Giaccardo, Diario …, 1919년 9월 1일, o. c., p. 285)

123 “얼마 전부터 일간지와 주간지 곁에 본당 주보가 곁들이게 되었다. 본당 주보의 목적은 본당신부의 활동을 알리기 위한 것이다. 곧 본당신부와 신자들사이의 활발한 소통을 위하여, 또한 본당신부의 교육을 받을 수 없는 신자들에게 적절한 시기에 목자의 말씀을 전달해주고, 본당신부의 공지사항을 글을 통해서도 전해 주어 본당을 중심으로 하는 모든 교육 형태(유치원, 병원, 교리 등)가 유지되고 번영하도록 본당신부의 활동을 보완하는 것이다.

알바 교구에는 20여 개의 본당이 있지만 어느 본당신부도 주보발행을 시작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주보를 시작했고, 주보 운영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이에 발맞추어 알바의 인쇄학교는 모든 형태, 모든 크기의 주보를 인쇄하면서 원고료와 발송비 절감을 위해 일을 쉽게 할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간행물의 두세 쪽에 공통 주제를 싣고, 발송도 직접 담당하려고 한다. 견본과 견적을 내고 싶을 때는 알바의 인쇄학교에 문의하기 바란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VII, n. 5, 1919년 5월 5일, p. 2)

124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I, n. 2, 1918년 11월 28일, p. 3 참조. 1919년 6월호는 필요한 경비가 2,003,495리라임을 알리면서 다음과 같이 끝을 맺었다. “신뢰는 헛되지 않았다. 위에서 밝힌 것처럼 인쇄기 값은 완전히 지불되었다. 우리의 존경하올 주교님께서 인쇄기를 축성하시기 위해 직접 방문하셨다.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모든 일이 계속 잘 되기를 바란다. 주님의 더 큰 축복을 청하는 기도를 바치며, 우리 모두 심심한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G.T. Giaccardo, Diario …, 1919년 3월 5일, o. c., p. 259도 참조.

여기서는 16,500리라에 달하는 다른 인쇄기 구입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상동, 1919년 5월 30일, o. c., pp. 265-266 참조. 여기서 자카르도는 주교의 인쇄기 축성식과 라이노타이프 인쇄기에 ‘바올리나’라는 명칭을 붙인 일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125 ‘모든 본당에서.’ 모든 본당에는 서적과 성물 판매소가 있어야 한다. […] 선한 출판 협력자회 회원들은 각 본당마다 위탁 판매소를 열 수 있도록 특별히 초대받았다. 선한 출판물이 행할 수 있는 선을 그들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 위탁 판매소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을 다른 형태의 보급 방법은 없을 것이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II, n. 5, 1919년 5월, p. 6)

126 도서관 촉진 사업에 관한 짧은 기사를 인용한다. “‘도서관이 생겼다!!!’ 친애하는 선한 출판 협력자회 회원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협력자회 회원 상당수가 본당 전체 신자들의 윤리적 선과 특별히 특정 계층의 사람들을 위하여 작은 도서관 추진을 열망하고 있다. 그래서 인쇄 학교에 속한 서원은 영국에서 이미 실천하고 있는 방법에 따라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것이 분명한 서적들을 선별하여 아주 좋은 조건의 균일가로 공급하는 작은 도서관을 열고자 한다. 앞으로 젊은 여성들, 학생들, 노동자들, 농부들을 위한 다른 서적도 갖출 계획을 갖고 있으나 지금은 모든 계층의 사람들을 위하여 개방한다. 25리라짜리 25권을 갖춘 작은 도서관에는 가벼운 독서를 위한 5권의 책을 포함한 성인들의 생애를 다룬 책 5권, 교양서적 5권, 수덕서적 5권, 소설 5권이 있다. 50리라에 상당하는 50권 규모의 작은 도서관에는 가벼운 독서 10권을 포함한 성인전 10권, 교양서적 10권, 수덕서적 10권, 소설 10권이 갖추어져 있다. 100리라 상당의 100권 규모의 작은 도서관에는 가벼운 독서를 위한 20권의 책을 포함한 성인전 20권, 교양서적 20권, 수덕서적 20권, 소설 20권이 비치되어 있고, 200리라 상당의 200권 규모의 작은 도서관에는 40권의 소설을 포함한 가벼운 독서 40권, 교양서적 40권, 수덕서적 40권, 성인전 40권이 있다. 500권 규모의 작은 도서관도 개설할 준비를 하고 있다. 교양서적, 가벼운 독서와 교육용 서적, 소설 등을 구비한 이 도서관은 450리라면 충분하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II, n. 6, 1919년 6월, p. 2)

127 목록은 신문들(Gazzetta d’Alba, Torre di S. Stefano Belbo, Avvisatore Ecclesiastico Albese Astese Alessandrino Saluzzese), 약 15종의 본당주보, 5권의 서적, 서원과 제본소, 교리 전문서(3학급을 위한 그리스도교 가르침), 교과서(4학급에 대한)와 부활 카드 등이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II, [n. 2?], 1919년 [2월과 4월 사이], p. 8 참조)

128 알베리오네 신부의 서적 두 권을 소개했다. 「사제적 열의에 참여하는 여성」과 「선한 인쇄 사도직의 지원자 마조리노 비고룬고Vigolungo Maggiorino Aspirante all’Apostolato Buona Stampa」 그리고 참사위원 프란치스코 키에사 신부의 저서 「교리교사의 모델 에밀리아 몰리아Un modello di Catechista Emilia Moglia」를 발간했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III, [7월?], 1920년, p. 8 참조)

129 “경애하올 신부님은 당신 곁으로 성바오로수도회 회원들을 부르셨다. 수도회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고 우리를 책망하시며 근본적인 것에 대해 다시 말씀하셨다. 우리는 가족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선한 출판 사업도 우리와 함께 죽는다. 이 때문에 먼저 우리끼리 일치할 필요가 있고, 서로 사랑하고 도우며 많이 기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수도회의 정신을 잘 섭취해야 한다. 하느님을 위해 일하고, 정신을 드높일 필요가 있다. 신학자께서는 우리가 자발적으로 살아가도록 우리를 친절하게 대하지 않으시지만, 우리는 견뎌내야 한다. 가족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G.T. Giaccardo, Diario …, 1919년 5월 25일, o. c., p. 265)

130 자카르도는 1920년 6월 30일 사제수품 후 수도서원 때 바란 대로 서원명을 티모테오로 바꾸었다.

131 G. Alberione, LV01, p. 92 참조.

132 “1920년 2월 10일. 우리와 우리 후대에 도움이 될 주목할 만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러나 나는 잊었고, 아니 글로 쓸 시간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 더 맞다. 지난해를 성소의 해라고 했는데, 금년은 강화의 해다. 회원들은 신학자께서 1월 1일을 경축하면서 말씀하신 것을 기억할 것이다.”(G.T. Giaccardo, Diario …, 1920년 2월 10일, o. c., p. 288)

133 “우리는 집을 마련할 수 있도록 기도했는데 성 바오로께서 당신 회심축일에 우리에게 은총을 베푸셨다. 아주 좋은 위치에 있는 밭을 우리에게 알려주신 것이다. 하느님 섭리에 경탄할 뿐이다. 더 적합해 보이던 세 곳은 모든 계약이 허사가 되었고 그 대신 계획에 없던 이 장소가 우리에게 주어졌다. 사실 이 장소가 우리의 것이 되리라고 기대할 수 없었는데 하느님이 마련해 주셨다. 성바오로수도회의 모든 회원이 감실 안에 계신 예수님 발치에 모여 기도한 덕분이다. 이제 350,000리라의 채무를 변제할 수단을 찾아야 한다. 첫째는 믿음과 기도, 둘째는 성성과 선한 출판을 위한 근면한 노동, 셋째는 각자의 노동을 통해 적어도 자기 몫의 생활비를 벌도록 해야 한다.”(G.T.Giaccardo, Diario …, 1920년 2월 10일, o. c., p. 288)

134 “마에스트로: 선한 출판을 도우면서 선행을 할 착한 영혼들을 찾는 일; 토르콰토(Torquato): 섭리의 비밀스러운 길; 후원자: 선한 출판 협력자회와 서원의 매체들 곧 상본과 카드; 부책임자(Vice-Piazza): 주간지(Gazzetta) 정기구독, 복권…; 암브로시오: 서명. 신학자께서 모든 계획과 사업을 운영하신다. 법적으로 건축 등 계약사항을 살펴보아야 한다.”(G.T. Giaccardo, Diario…, 1920년 2월 10일, o. c., p. 288) 다음 기록에서 ‘보조자’는 코스타(Costa)였고 ‘부책임자’는 마르첼리노(Macellino)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9월 27일. 오늘 베르가모(Bergamo)에서 보조자 코스타(Assistente Costa)와 부책임자 마르첼리노가 도착했다. 이들은 사회학 첫 과정의 시험을 통과했다. 하느님께 감사!”(G.T. Giaccardo, Diario …, 1919년 9월 27일, o. c., p.286 참조)

135 G. Rocca, la formazione …, o. c., p. 559 참조.

136 “첫 회원 중 한 명이 1919년 11월 어느 날 창립자께서 갑자기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증언했다. ‘용기를 내십시오. 앞으로 우리는 큰 인쇄소와 아름다운 수도원을 지을 것이고, 성 바오로께 봉헌할 아름다운 성당도 건립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알바에만 머물지 않을 것입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창립자는 젊은이들의 교육 과정 중에 현재 수도회 건물과 성 바오로 성당이 있는 땅에 대해 처음 듣는 순간 신비로운 체험을 했노라고 고백했다. 그 순간 그는 이미 완성된 건물을 분명하게 보았는데 지금 우리가 보는 모습과 똑같았다.”(L. Rolfo, 「첫 행보I primi passi」(1914-1930), in AA.VV.,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Mi protendo in avanti」, Edizioni Paoline, Alba, 1954, p. 117) G. Alberione,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Mihi vivere Christus est」, Edizioni Paoline, Roma, 1972, n. 138 참조.

137 ‘무엇이 필요한가? 섭리를 기다리자.’ 백 명이 먹고 잘 수 있는 집이 필요하다. 현재 ‘인쇄 학교’는 46명을 수용하고 있지만 이 숫자는 조만간 두 배가 될 것이고, 앞으로 계속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것이 더 필요하다. 십여 대의 인쇄기(현재 ‘인쇄 학교’가 보유하고 있는 인쇄기의 수)를 둘 수 있어야 하고, 식자·인쇄·라이노타이프 식자·제본 기술자들, 발송자들, 교정자들이 편하게 일할 수 있는 작업장이 필요하다. 또한 편집실, 경리실, 응접실을 위한 공간과 공부방, 강의실, 주방, 식당, 성당 등도 필요하다. 충분한 수의 침대를 둘 큰 방, 젊은이들이 충분히 여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넓은 뜰, 현재 고기와 야채를 구입하는 데 드는 경비를 상당히 절감할 수 있게 해주는 밭-정원도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은 필요한 것을 그때그때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어느 시점에 와 있는가?’ 수도원 건물을 짓고 뜰과 밭으로 사용할 공간과 지금 필요로 하는 것과 가까운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만큼의 넓은 땅을 매입한 상태다. 물론 토지는 상당히 비쌌다. 오늘날 값이 오르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알바에서 찾은 땅은 ‘포르나체’(Fornace, 화로)로 불리는 지역이 포함되었고, 모레타(Moretta) 성당으로 가는 길 왼편의 ‘사보나 광장’(piazza Savona) 근처의 나무가 쭉 뻗어 있는 길의 경계선에 있는 곳이다. ‘다섯 가지 길.’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하느님의 섭리가 보내주시는 방법은 다양하다. ① 우리 인간으로서는 조금밖에 아니 거의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비밀스러운 당신의 방법이 있다. ② 서명 운동을 벌인다. ③ 서명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④ 복권 판매를 추진한다. ⑤ 선한 출판 협력자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III, n. 2, 1920년, pp. 3-4)

138 “[1920년] 6월에 굴착 작업이 끝났다. 7월 초반 15일간은 기초공사를 했고, 후반 15일간은 벽면 기초 작업에 소요되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9월 25일) 2층 철재 골조를 시작하려고 한다. […] 1층은 인쇄소와 창고로 사용될 것이고, 응접실로 사용될 방 두 개도 정해졌다. 특히 인쇄기를 설치할 장소는 충분한 높이에 길이가 20미터, 폭이 11미터 50이므로 10대의 인쇄기를 설치해도 인쇄기술자들과 보조원들이 일하기에 충분하고, 인쇄판과 종이 등을 운반할 수 있는 복도까지 갖추어졌다. 창문이 많아 통풍이 잘 되고 채광도 좋다. 위층 조판실에서 인쇄용 판을 내릴 수 있는 승강기도 설치할 수 있게 되었다. 인쇄 학교 학생들은 거의 매일 저녁 작업과정을 보기 위해 몰려와 하느님의 섭리를 찬미하고 은인들을 위해 기도했다. 인쇄 학교 건물을 지을 때의 ‘정신’은 다른 집들을 지을 때의 정신과는 아주 달랐다. 여기서는 마치 성당을 지을 때처럼 일한다. 선한 출판사에서는 진리의 말씀이 계속 나와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종이 위에 인쇄된 진리가 온 지역을 비추고 위로하며 선을 키우기 위해 전해질 것이다. 그뿐 아니라 이 건물은 선한출판의 사도들과 직공들의 신학교와 같은 장소가 될 것이다! 축복받은 땅이요 화원인 이곳에 심긴 묘목이 다른 많은 장소로 옮겨 뿌리내리게 될 것이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III, n. 7, 1920년 9월, pp. 3-4)

139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IV, n. 5, 1921년 7월 15일, p. 10.

140 상동.

141 상동, anno IV, nn. 3-4, 1921년 4월 10-15일, p. 2.

142 상동, anno V, 2, 1922년 3월, p. 4.

143 1921년 3월 6일, 자카르도는 다음과 같이 썼다. “성성에 관한 신학자의 말씀은 나의 영혼을 꿰뚫었고 나를 뒤흔들었다. 다시 결심하고 더 잘 기도해야 하겠다. […] 신학자께서는 뛰고 또 계속 뛰신다. 나는 그분의 뒤를 따라갈 능력이 없다. 아주 작은 것조차 그분을 따라갈 수가 없다!”(G.T.Giaccardo, Diario …, 1921년 3월 6일, o. c., p. 298)

144 자카르도의 귀한 기록을 살펴보자. “최근 수도원 안에 거센 폭풍이 일었다. 경제적 피해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자, 교회 권위기관은 신학자에게 몽상가라는 비난을 했다. 이것은 베차(Vezza) 본당의 비고룬고(Vigolungo) 신부와 베네벨로(Benevello) 본당의 브로비아(Brovia) 신부에게도 충격이었다. 그러나 신학자께서 제출한 수도회 결산 보고서에는 524,000리라가 흑자였다. 때마침 마피 추기경에게 우리의 진행상황을 상세히 기록한 편지가 피사(Pisa)에서 도착했다. 대리구장은 우리에게 알바에 남아 있기를 권했고, 주교님께서는 참사위원 키에사에게 누구보다 더 인쇄 학교에 호감을 갖고 있다고 하셨다. 이러한 것들은 본당신부님들이나 다른 사람에게 불신의 바람을 잠재우기에 충분했다. 언제나 좋으신 주님께서 당신의 지혜와 자비 안에서 우리에게 행운을 허락하신 것이다.”(G.T. Giaccardo, Diario …, 1921년 4월, o. c., pp. 298-299)

145 “새로운 악당 사회주의자는 이탈리아 도시를 피로 물들였다. 페라라(Ferrara, 이탈리아 북부 에밀리아 지방, 로마냐 주 도시-역주) 청사에는 최근에 치른 선거로 붉은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12월 19일 사회주의자들은 시립극장에서 벤티니(Bentini)와 니콜라이(Niccolai) 정당에 대항하여 볼로냐에서 벌어졌던 부당 행위에 대한 항의 집회를 열었다. 당국은 집회를 허락했고, 극장 안에서 모임을 가진 반대자들의 애국 시위도 금지시킬 수 없었다. 사회주의자들이 당국의 명령을 따랐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파시스트들과 민족주의자들은 무리를 지어 도시의 주요 도로를 달리다가 상가들이 밀집되어 있는 광장(piazza del Commercio) 모퉁이에서 붉은 깃발을 앞세운 정신병원 간호사 연맹의 사회주의자들과 마주쳤다. 시위대들은 서로를 제압하려고 밀어붙이다가 파시스트 한 명이 다쳤다. 그것을 기화로 길가 높은 성곽의 테라스에서 두 개의 횃불 가운데 서 있던 파시스트들을 향해 소총사격이 시작되었고, 이 기습공격에 많은 이들이 피해를 입었다. 희생자들이 많았는데, 파시스트들 가운데 3명이 죽고 20명 이상이 부상했다. 무고한 시민 1명이 죽고 적지않은 사람들이 다쳤는데, 그 가운데 마그리니(Magrini) 박사는 병원으로 후송되었다.”(Cronaca contemporanea, 12월 23일 - 1921년 1월 6일, in 「가톨릭 문화La Civiltà Cattolica」, anno 72˚, vol. I, quad. 1694, 1921년 1월 8일, pp. 180-181 참조)

146 “앞선 기사에서 비판했던 유혈충돌이 전국으로 이어졌고, 어떤 곳에서는 더욱 잔인한 폭력이 자행되어 증오심을 가중시켰다. 많은 경우 충돌은 파시스트들에 대항한 사회주의자들의 공격에 의한 것으로 보였다. […] 파시즘 우두머리들의 실토에 의하면, 사태의 시초는 사회주의자-볼셰비키-공산주의자들과 무정부주의자들의 횡포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되었음이 드러났다. 이들의 횡포는 도를 넘어 공공질서를 파괴하며 과격주의자들과 맞서 더 큰 폭력으로 번졌다. 파시스트들의 횡포는 부인과 함께 여행하다가 폭도들의 반항으로 기차에서 내려야만 했던 모딜리아니(Modigliani) 의원 사건과 며칠 전 피사 (Pisa)에서 있었던 폭력을 떠올리는 것으로 충분하다. 파비아(Pavia)에서는 마니(F. Mani) 의원이 노천 카페에 앉아 있다가 모욕을 당했고, 폭력을 피해 자택 2층 발코니에서 길로 뛰어내리는 상황이 벌어졌다. 파비아에서 알베르텔리(Albertelli) 의원은 공공 집회 장소에서 쫓겨나 집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기세등등한 파시스트들은 몽둥이를 들고 다른 정당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폭력을 휘둘러 만토바(Mantova)의 사회주의자 차놀리(Zanolli)도 공개적으로 폭력을 당했다.(Cronaca contemporanea, 1921년 4월 28일-5월 12일, in 「가톨릭 문화La Civiltà Cattolica 」, anno 72˚, vol. II, quad. 1702, 1921년 5월 14일, p. 371 참조)

147 “사회주의자들과 파시스트들 사이의 대결은 갈수록 격렬해져 시민의 평화와 질서를 파괴했다. 특히 사회주의자들은 번번이 폭력을 앞세워 결국은 서로를 폭력의 희생물로 만들어버렸는데 노예선의 노를 젓는 죄수와 선원 사이에서 벌어지는 폭동을 떠올리게 하는 이러한 상황은 이탈리아의 대도시만 아니라 중소도시, 시골마을에 이르기까지 문명국가에 어울리지 않는 광경을 연출했다. 최근 몇 주간의 짧은 기사들이 잘 말해 준다. 4월 6일 파도바에서 파시스트당 학생 하나가 노동자들에게 구타를 당하자 그 반발로 노동조합 건물이 화염에 휩싸이고 6명이 다쳤다. 며칠 뒤 파시스트 당원 하나가 레지오 에밀리아(Reggio Emilia) 역 철도원에게 구타당하자 그의 동지들이 노동조합을 습격하고 「정의La Giustizia」라는 사회주의 신문사에 불을 질렀다. 같은 날, 베네치아의 캄포 산티 아포스톨리(Campo santi Apostoli)에서 두 당원 사이에 난투극이 벌어져 경찰이 개입했고, 이에 대항하는 폭도들의 난동으로 한 명이 죽고 15명이 부상당했다.[…] 파괴행위는 매일 끝없이 이어졌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폭동, 난투, 총격, 방화가 타란토(Taranto)에서, 미네르비노 무르제(Minervino Murge)에서, 오르테노바(Ortenova)에서, 스피나촐라(Spinazzola)에서, 파르마(Parma)에서, 피아첸티노(Piacentino) 지방 산 다미아노(San Damiano)에서, 레냐고(Legnago)에서, 비아다나(Viadana)에서, 캄피텔리오 (Campitelio)에서, 지르젠티(Girgenti)에서, 네투노(Nettuno)에서, 아르콜레(Arcole)에서, 사르데냐 (Sardegna) 지방의 이글레시아스(Iglesias)에서, 토리노에서, 리보르노(Livorno)에서, 필리네 발다르노 (Figline Valdarno)에서 일어나고 있다. 나라 전체를 파괴하는 심각한 사태의 비극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Cronaca contemporanea, 1921년 4월 7-28일, in 「가톨릭 문화La Civiltà Cattolica」, anno 72˚, vol. II, quad. 1701, 1921년 4월 30일, pp. 275-277 참조)

148 “사회주의자들이 가톨릭 신자들에게 자행하는 극도의 횡포와 범죄행위는 갈수록 심각했다. 종교적인 모든 행사를 막기 위해서는 어떤 폭력 행사도 무방하다는 명령이 떨어진 것이 사실로 드러나는 사건인데 가장 최근의 비극적 사건은 8월 15일 주일에 시에나의 산 살바토레 수도원(Abbazia San Salvatore)에서 일어났다. 그날 수도원의 전통대로 성모승천 대축일을 기념하는 행렬이 있었는데, 참여한 이들 대부분이 여성들과 소녀들이었다. 사회주의 연맹도 같은 날 집회를 열고, 악명 높은 볼셰비키(레닌이 이끈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으로 다수파 또는 과격파라는 뜻-역주) 소속의 대의원이 사제들과 헌병(caribinieri: 국가군경찰, 일반경찰은 polizia이고 cabinieri는 우리 식으로 하면 특수경찰이나 특공대에 해당함-역주)들을 매도하는 과격한 연설로 집회에 모인 농부들을 선동하자 잔인한 폭도로 변한 집회자들은 신자들, 특히 사제들을 폭행했다. “본당신부를 향해 주먹질을 하다가 미친 듯이 몽둥이를 휘둘러 사제를 쓰러뜨렸다.” 성직주의 노선이 분명한 Resto del Carlino지에 실린 기사가 그 위급상황을 잘 말해 주고 있다. “무법자들이 수도원 성당으로 난입했다는 말을 듣고 헌병 사령관이 17명의 군인들을 이끌고 나타나자 사회주의 난동자들은 그들을 향해 돌을 던지고 총을 쏘아댔다. 두 발의 총탄이 군인 나자레노 치아로키(Nazareno Ciarrocchi)를 명중시켜 숨지게 했고, 헌병 부리지(Buriggi) 병장은 주먹에 맞아 쓰러졌다. 헌병들도 이에 맞서 병장을 쓰러뜨린 오비디오 사바티니(Ovidio Sabbatini)를 쏘았다.” 폭도들은 교회 안으로 들어가 피해 있던 신자들을 공격했고 작은형제회 소속 안젤리코 수사가 살해당했다. 끔찍한 육박전이 벌어지자 헌병들도 총을 들어 성당은 양편이 쏘아대는 총성으로 소란스러웠다. 폭도 두 명과 어린아이가 피를 흘리며 쓰려졌다. 헌병들은 일단 후퇴했다가 소총 부대의 투입으로 일제 사격을 시작했고 이에 맞서는 투석과 총격, 방화가 밤 10시까지 계속되었다. 그날의 난동은 8명의 사망자와 많은 부상자를 냈고, 많은 폭도들이 체포되었다. 사회주의자들은 이에 대한 항거로 늘 해오던 대로 총파업에 들어갔다. 이성을 잃고 잔인하게 날뛰던 그들의 난폭한 행동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Cronaca contemporanea, 1920년 8월 12-26일, in 「가톨릭 문화La Civiltà Cattolica 」, anno 71˚, vol. III, quad. 1685, 1920년 8월 28일, pp. 464-465 참조)

149 L. Rolfo, 「첫 행보I primi passi(1914-1930)」, in AA.VV.,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Mi protendo in avanti 」, o. c., p. 127 참조.

150 S. Lamera, 「하느님의 종, 자카르도 신부의 정신L` o spirito di don Giaccardo, servo di Dio 」, Edizioni Paoline, III edizione, s. d., p. 115 참조.

151 F. Barbero, 「사제 야고보 알베리오네…Il sacerdote Giacomo Alberione…」, o. c., p. 311 참조.

152 G. Alberione, 「‘신앙의 추구…’, 바오로인 사제들에게 남긴 프리모 마에스트로의 회고록Sectamini fidem…’, Ricordi del Primo Maestro ai Sacerdoti Sampaolini 」, Pia Societa San Paolo, Alba, p. 48.

153 F. Barbero, 「사제 야고보 알베리오네…Il sacerdote Giacomo Alberione…」, o. c., p. 362 참조.

154 “이 꿈을 꾼 시기는 1923년 초로 추측된다. 그때 창립자는 생명이 위험할 정도로 심각한 위기를 맞았는데, 주님의 음성이 들려준 말씀이 확신에 찬 삶을 시작하는 새로운 계기가 되어주었다는 점에 큰 주안점을 두셨다.”(L. Rolfo, 「‘알베리오네 신부’, 짧은 전기Don Alberione’, Appunti per una biografia 」, Edizioni San Paolo, 19983, p. 187)

155 C. A. Martini, 「성바오로딸수도회 역사Le Figlie di San Paolo 」, o. c., p. 129.

156 P. Gilli, 「나는 이렇게 기억한다, 수도회 역사Così come mi ricordo, Cenni sulla sroria della Congregazione 」, Alba, luglio 1995. 발간되지 않은 요약본은 CSP의 저자에게 전달되었다.

157 1995년 9월 13일, 정기간행물 팀이 일하는 알바 스튜디오(Auditorium degli Stabilimenti del Gruppo Periodici)에서 진행된 원탁회의의 비디오 카세트 녹취록을 옮겨 적는다. 참가자는 회계사 안토니오 부콜로(Antonio Buccolo), 에도아르도 보라(Edoardo Borra) 교수, 잔프란코 마지(Gianfranco Maggi) 박사, 피에로 레지오(Piero Reggio) 박사다. M. Buccolo, “창립자 알베리오네 신부와 그의 시대”, in 「바오로 협력자Il Cooperatore Paolino」, n.9, 1995년 11월, pp. 12-13 참조.

158 “초창기엔 마당을 정리해야 했다. 비가 오면 물웅덩이가 생겨 오랫동안 고여 있는 물 때문에 불편한 일이 많았다. 프리오카 시(市)의 젊은이 20여 명이 그 작업을 도와주기로 해서 어느 화창한 월요일 아침 두 대의 마차에 괭이, 곡괭이, 삽… 등을 싣고 도착했다. 이들의 선두지휘를 맡은 이는 수도회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코르세오 스테파노(Corseo Stefano) 씨였다. 마당 가운데 동산처럼 우뚝 솟은 부분을 헐어내고, 흙을 손수레나 마차로 날라다가 움푹 파인 곳을 메꾸어 마당을 3미터 이상 넓혔다. 그들이 자신들을 위한 것이었다면 그렇듯 열정적으로 투신하지 못했을 것이다. […] 작업은 금요일 저녁 늦게야 끝났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VI, n. 2, 1923년 2월 27일, p. 4)

159 이 기념비적인 글을 그대로 인용한다. “‘인쇄기 앞에서 숙고.’ 기계는 물질이다. 만일 인간이 영으로만 이루어진 존재라면 이러한 물질이 그리스도교 신자에게 어떠한 매력도 주지 못했을 것이다. 하느님의 작품인 물질로 구성된 기계는 창조주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놀라운 재능에 의해 만들어졌다. 강론대가 거룩한 설교가에게 거룩한 장소가 되듯이, 이 놀라운 기계도 소중하고 경건한 것이다. 세기에 걸쳐 들어 높여지는 지식과 사랑의 기념비적 작품인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성 바오로는 이렇게 설파했다. ‘믿음은 들음에서 비롯되고 들음에서 복음이 선포된다. 평화를 선포하고 행복을 전하는 이들의 발걸음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렇다면 복음을 전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인쇄기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인쇄기 앞에 선 선한 출판의 사도는 성 프란치스코가 형제인 태양을 보고 영혼 깊은 데서 찬가가 흘러나올 때 느꼈던 것에 못지않은 무엇인가를 느낀다. 사도의 생각이 종이에 옮겨지고 기계 속으로 들어가 무수한 독자를 살찌울 영성적 자양분과 영원한 진리를 담은 책이 되어 사람들에게 전해지니 그야말로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이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하느님의 지혜가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사도의 마음과 영혼 안에서 그 말씀을 양육하여 영혼 안에 살아 계시고, 육화하도록 용광로, 나선형 코일, 기어장치, 압축장치를 통하여 대량의 물질로 변화시켰다. 곧 종이의 몸을 취한 것이다. 이렇게 육화된 인쇄지는 다른 사람들, 다른 영혼들의 생각을 담아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어 사람들에게 전해져 서로만난 적 없는 저자와 독자의 생각과 감정을 교류시킨다. 그리스도교 신자 저자와 독자를 만나게 해주어 하느님의 진리는 세상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를 비추고 새로운 정신세계, 새로운 영, 새로운 마음을 얻는다. 선한 출판의 선교사는 사람들에게 선을 전달하는 사랑하는 인쇄기가 나쁜 출판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현대적인 신속한 인쇄기이기를 바란다. 자신의 작은 교회이기도 한 인쇄기를 사랑하는 그는 늘 청결하게 정돈하여 언제나 활기차게 작동하고 좋은 말씀을 잘 만들어내기를 꿈꾼다. 나는 늘 내 인쇄기 옆에 서 있고 싶다. 성인들의 성상을 보면 손에 자신을 성화시켜준 도구와 상징들, 표지를 들고 있는데 인쇄 사도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펜과 잉크병을 들고 있거나 힘차게 돌아가는 인쇄기 옆에 서 있으면 좋겠다.’ 사실 어떻게 하나의 화폭에 테르툴리아노가 가졌던 광대한 정신세계의 사상을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저자가 사용했던 잉크가 순교자들이 흘린 피만큼 값지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순교자들은 쇠창살 안에 갇혔다가 참수형, 화형, 십자가형을 당하거나 야수에게 던져지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렇다면 다른 성인들은 어떤가? 성 바오로는 자신의 서간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성 토마스는 펜을 쥐고 있는 모습으로, 도미니코 사비오는 오른 손에 종이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복음사가들은 진리의 성령께서 영감을 불어넣어주는 대로 양피지에 그것을 적고 있는 모습으로,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신심의 박사라고 알려지게 한 작품들 옆에 서 있는 모습으로, 성 대그레고리오는 ‘윤리서’를 집필하는 모습으로, 성 요한 베르크만스는 긴 묵상에서 탄생한 규칙서를 가슴에 품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선한 출판협력자회」, anno IV, n. 5, 1921년 7월 15일, pp. 5-6)

160 상동, p. 8.

161 G.T. Giaccardo, Diario …, 1921년 5월, o. c., p. 299.

162 G.T. Giaccardo, Diario …, 1921년 6월 19일, o. c., p. 299. 여기서 채택한 ‘완전히 공유해야 한다.’(comunarsi interamente)는 표현은 그와 비슷한 의미인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한다.’(essere, avere tutto in comune)는 표현을 대신하고 있다.

163 G. Rocca, 「성바오로수도회의 양성La formazine…」, Documento n. 31, o. c., pp. 569-570.

164 상동 p. 570.

165 G. Barbero, 「사제 야고보 알베리오네…Il secerdote Giacomo Alberione…」, o. c., pp. 319-320.

166 G.T. Giaccardo, Diario …, 1918년 2월 10일, o. c., p. 190.

167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V, n. 1, 1922년 2월 5일, p. 5.

168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V, n. 1, 1922년 2월 5일, p. 3.

169 상동, p. 7.

170 상동, anno V, n. 7, 1922년 8월, p. 4.

171 상동, p. 2.

172 상동.

173 상동, p. 4.

174 G. Alberione, Quaderno 39, 1909년 11월 29일, p. 15.

175 R.-F. Rohrbacher, 「교회사Storia Universale della Chiesa 」, 16 voll., Giacinto Marietti, Torino, 1869-18703.

176 G. Alberione, Quaderno 39와 R.-F. Rohrbacher, 「교회사Storia Universale della Chiesa 」, o. c., vol. IV, pp. 149ss 참조.

177 G. Ventura, 「복음의 여성들Le donne del Vangelo」, Giosuè Rondinella Editore, Napoli 1856’1875ò ID.(상동), 「가톨릭 여성La donna cattolica」, 3 voll., Carlo Turati, Milano - Dario G. Rossi-Geneva, coeditori, 1855; ID., 「하느님의 어머니, 인간의 어머니, 곧 십자가 아래 계신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La Madre di Dio Madre degli uomini ovvero La Santissima Vergine a piè della croce」, Roninella & Loffredo, Librai-Editori, Napoli, 19036.

178 F. Andreu, 「벤투라Ventura」, in 「영성사전Dictionnaire de Spiritualité」, vol. 16, fasc. CII-CIII, Paris, 1992, coll. 364-372 참조.

179 G. Ventura, 「복음의 여성들Le donne del Vangelo」, o. c., 제2부, pp. 24-77 참조.

180 상동, p. 34.

181 상동, pp. 41-42.

182 상동, pp. 42-43.

183 상동, pp. 43-44.

184 상동, pp. 44-45.

185 상동, pp. 45-46.

186 상동, p. 48.

187 상동, pp. 49-67 참조.

188 상동, p. 53.

189  이러한 참조 내용은 계속되는 단락(nn. 125-131)에서도 유효하다.

190 G. Alberione, 「사제적 열의에 참여하는 여성La donna associata allo zelo sacerdotale 」, o. c., p. 46.

191 상동, p. 24.

192 벤투라의 작품은 알베리오네 신부의 ‘과거의 여성 사도직’(Apostolato della donna nel passato)에 관한 것을 「사제적 열의에 참여하는 여성」, 1915, (pp.42ss)의 제1부 4장에 두도록 해주었다. 이것은 알베리오네 신부가 성녀 올림피아데(Olimpiade: pp. 49-50, 로마 16,15에 나오는 올림파스일 가능성이 크다-역주)에 관하여 쓴 것과 「가톨릭 여성La donna cattolica」, II vol., pp. 126 이하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비록 벤투라가 여성을 어머니로, 성녀를 수도자가 아니라 교회의 역할에 주안점을 두며 프랑스 교회 안에서 활동했던 여성들을 소개하는 데 주력했지만 「가톨릭 여성」은 알베리오네 신부사상의 폭을 넓혀주는 기점이 되었다.

193 G. Ventura, 「가톨릭 여성」, o. c., vol. I, p. 258.

194 상동, p. 259.

195 상동, p. 260.

196 상동, p. 263.

197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V, n. 7, 1922년 8월, p. 9.

198 상동.

199 상동, anno V, n. 4, 1922년 5월 6일, p. 8 참조.

200 G. Barbero, Il sacerdote Giacomo Alberione …, o. c., pp. 373-374 참조.

201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V, n. 7, 1922년 8월, p. 11.

202 C. A. Martini, Le Figlie di San Paolo …, o. c., p. 119 참조.

203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V, n. 7, 1922년 8월, p. 10.

204 G.T. Giaccardo, Diario …, 1922년 7월, o. c., p. 300.

205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V, n. 8, 1922년 9월 10일, p. 2.

206 상동.

207 상동, anno V, n. 12, 1922년 12월 23일, p. 3.

208   “‘사업목표.’ 1922년 성바오로수도회 인쇄학교에서 「가제타 알바Gazzetta d’Alba」 35만 부, 형태와 발행주기가 다른 ‘본당주보’ 48만 2천 부, 성직자를 위한 「사목생활Vita Pastorale」 12만 부, 크고 작은 교리서 15만 부, 2만 7천 부에 달하는 9종의 신심서적, 「이론과 실제Dottrina e fatti」 36,000부, 베르가모의 아테네 교황청 대학교(Pontificio Ateneo di Bergamo) 사회학 잡지 「균형잡힌 사회Armonie Sociali」 1만 2천부가 인쇄되었다. 소설전집 「집어서 읽어라Tolle et lege」와 「샘물Fons aquae」 6만 9천 부, 다양한 양식으로 된 11종류의 책 2만 7천 5백 부. 그뿐 아니라 7만 부의 달력, 7만 5천 장의 다양한 부활 카드, 7만 5천 장의 종교 전단지 등의 엄청난 인쇄물, 포스터, 기록부, 교리 카드. 그렇지만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나쁜 출판물과 맞서야 할 때 우리는 별것 아닌 미미한 존재에 불과하다! 성소자, 인쇄소, 도움이 필요하다.”(「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V, n. 12, 1922년 12월 23일, p. 4)

209 ‘성바오로수도회 전체 역사 자료’에서 알베리오네 신부의 창립 초기인1903-1904년과 1908년 신학교에 입학한 첫 두 젊은이에 대해 언급한 다음 수도회 학생들의 수적 증가를 소개했다. “8월 20일에 첫 학생이 들어와 새 가족에 기초가 되었다. 1915년 9명, 1916년에 14명으로 늘어났고, 1918년 25명, 1919년 35명, 1920년 42명, 1921년 90명, 1922년 172명으로 증가했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VI, n. 2, 1923년 2월 27일, p. 10)

210 상동, pp. 2-3 참조.

211 DFst에 연관된 이 숫자는 이어지는 단락들(nn. 138-143)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212 Ignazio di Loyola, 「자서전Autobiografia 」, n. 3. Id, 「작품집Gli scritti」, a cura di M. Gioia, UTET, Torino, 1977, p. 660 참조.

213   A. Raballo(Suor Teresa, F.S.P.), 「프리모 마에스트로 신학자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에 대한 회상 Memorie del Primo Maestro Rev. Teologo Giacomo Alberione」, Opera inedita G. Barbero, 「사제 야고보 알베리오네…Il sacerdote Giacomo Alberione …」, o. c., p. 359 참조.

214   A. Raballo(Suor Teresa, FSP), 상동. G. Barbero, 상동.

215 G. Barbero, Il Sacerdote Giacomo Alberione …, o. c., p. 360.

216 G. Alberione, 「성 바오로San Paolo」, 1954년 7월-8월, p. 2.

217 “작년[1922년] 6월 29일 저녁, 막 축복식을 마친 새 성당의 소성당에 성체를 모시기 위한 첫 행렬이 있었다. 금년 5월 1일 성모호칭기도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두 번째 행렬을 하여 사도의 모후 성화를 새 성당에 모셨다. 6월 1일 성 바오로께 봉헌된 성당에 모셔진 천상 스승이신 예수님과 복되신 모후이신 마리아 곁에 우리 수도회의 혼이자 주보성인이신 성 바오로를 모셨다.”(「선한 출판 협력자회Unione Cooperatori Buona Stampa」, anno VI, n. 6, 1923년 6월 21일, p. 7)

218 「선한 출판 협력자회」 1923년 6월호에 게재한 ‘성체성사 자료’라는 제목의 글은 초창기부터 그해 5월 30일까지 성체성사에 대한 수도회 영성의 발전과정을 다루었다. 곧 미사, 영성체, 성체현시, 지속적인 성체 찬미(laus perennis eucharistica), 성체조배, 짤막한 방문이나 인사. 특히 이 글의 처음과 끝부분은 의미가 깊다. “수도회의 천상 스승께 대한 신심은 감실에 집중되어 있다. 수도회가 아직 작고 회원들이 모두 어릴 때는 아침에 미사와 영성체를 위해 예수님 앞에 모이는 것으로 족했다. 그러나 수도회가 커지면 우리도 코톨렌고수도회에서 하는 것처럼 ‘지속적인 성체 찬미’를 바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린 회원들이 성장했기에 1917년부터 한 사람씩 성다미아노 성당에서 매일 성체조배를 하기 시작했다. […] [1922년] 7월 22일에는 다음과 같이 확정지었다. 성바오로수도회 회원들은 매일 자유로운 시간을 택해 ‘한 시간’의 성체조배를 한다. 수련자들은 매일 함께 ‘30분’ 성체조배를 한다. 평수사들과 학생들은 모두 함께 ‘20분’ 동안 성체조배를 한다. 성바오로딸수도회는 매일 ‘한 시간’의 성체조배를 하고 양성기 자매들은 ‘30분’을 한다. 수도회에서 결정한 규정대로 오후 2시부터 9시까지 성체조배를 한다. 아침에는 4시부터 8시까지 연속적으로 미사가 거행된다. 이렇게 하느님 은총 덕분에 처음 가졌던 꿈, 곧 ‘지속적인 찬미’(laus perennis)가 실현되었다. […] 반나절 동안 바치는 성체 찬미! 그것만 아니라 아침 시간과 오후 시간에도 자주 성체를 방문해 자비를 구함으로써 (성체이신) 예수님께서 아침 4시부터 저녁 9시까지 현시되기를 바랐다. 그렇다면 나머지 밤 시간은? 오 그 시간 또한 감실 안에 천상 스승께서 현존하시는 그분의 시간이다!”(「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VI, n. 6, 1923년 6월 21일, pp. 8-9)

219 수도회 초기 10년 동안 성화에 대한 공경도 발전을 거듭했다. “성 바오로의 성화는 수도회에서 가장 영예로운 자리, 곧 예술적 가치가 높은 모르가리(Morgari)의 예수 성심 성화와 무릴로(Murillo)의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 성화 사이에 놓여졌다. […] 첫 토요일만 아니라 토요일마다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께 [자신을 봉헌했고], 5월에는 마리아께 대한 존경의 표시로 꽃, 화관, 숙고와 묵상을 바쳤다. 첫 해부터 매년 5월 마지막 날에는 거룩한 시와 꽃, 기도, 성가의 신비스러운 조화가 이루어내는 감동적인 분위기 안에서 지냈다. 성모님께 대한 신심은 모든 사업의 발전, 성공, 악에 대한 승리, 가장 아름답고 숭고한 성성에 이르게 하는 지렛대가 되었다..” (「성 바오로」 [=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VI, n. 11, 1923년 11월 22일, p. 8)

220 1923년 2월호부터 “성바오로수도회의 역사적 발자취”(Cenni storici generali della Pia Societa San Paolo)를 게재하기 시작했다. 특히 6월호에 실린 ‘…역사적 발자취’의 설명이 흥미로운데 몬카레토 빌라(Villa Moncaretto)에서 마치니 가(via Mazzini)의 페란도(Perrando: [= 페라우도Perraudo]) 집으로 옮겨간 것을 이야기한다. 인쇄학교도 ‘작은 노동자’라는 명칭을 차츰 쓰지 않고 인쇄학교라는 명칭만 남은 것이 주목된다. 그 기사는 다음과 같이 끝을 맺었다. “페란도[= 페라우도]로 이전한 수도회는 이제 모습을 제대로 갖추게 되었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VI, n. 6, 1923년 6월 21일, p. 6) 7월호는 마치니 가에서는 알베리오네 신부를 중심으로 한 마음 한 정신으로 살았다고 전하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수도회 응접실의 아무 장식이 없는 벽에 성 바오로의 성화를 걸어두었다. 그곳이야말로 성 바오로 성당이 시작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바닥에 모두 무릎을 꿇고 아침기도와 저녁기도, ‘삼종기도’를 바치고 양심성찰을 했으며, 외출하기 전이나 돌아와서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성모송과 수도회의 고유 기도를 바쳤다. 수도원과 인쇄소에는 계속 등불을 밝혀두었으므로 마치 성 바오로께서 깨어 계시면서 수도회를 지키고, 축복하고 성장시켜주심을 보여주는 듯했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VI, n. 7b, 1923년 7월 20일, p. 7)

221 “수도회는 특별히 6월을 성 바오로께 봉헌했다. 성 바오로에 대하여 매일 두 번의 말씀을 듣고, 두 번의 방문으로 존경을 표했다. 성 바오로께서는 우리가 바쳐드리는 존경과 사랑에 대해 풍부한 은총으로 응답하셨다. 성 바오로께 대한 신심은 알바 전역으로 번졌고 다른 지방으로도 퍼져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성 바오로께 회개와 물질적인 도움을 청했고, 그것들을 얻었다. 성 바오로 성당에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고 성 바오로 상 앞에는 항상 촛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VI, n. 6, 1923년 6월 21일, p. 7) - 1923년 UCBS는 8월호부터 11월호까지 “성 바오로”라는 제목으로 성 바오로에 관한 논고를 실었다. “단테 형식의 바오로 신학”(Paologia dantesca)에 대하여 (San Paolo [= UCBS], anno VI, n 8, 1923년 8월 25일, p. 19), 또 성 바오로가 수도회 방식에 따라 신심을 키운 것처럼 보이는 성 바오로의 성체적 마음에 대해서도 다루었다.(「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VI, n. 7b, 1923년 7월 20일, p. 5) 전례력을 따라 서술한 “사도시대 바오로의 협력자들”에 관한 논고는 특히 흥미로웠다. 곧 성녀 테클라: 9월 23일(상동, n. 9, p. 5), 아레오파고의 성 디오니시오: 10월 9일(상동, n. 10, p. 3), 로마 주교 성 클레멘스: 11월 23일(상동, n. 11, p. 5), 성 필레몬과 성 아피아: 11월 22일(상동, n. 12, p. 8), 성 티모테오: 1월 24일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VII, n. 1, 1924년 1월 15일, p. 4), 성 티토: 2월 6일(상동, n. 2, p. 8) 등이다.

222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VI, n.7b, 1923년 7월 20일, p. 13.

223 San Paolo [= UCBS], anno VI, n 11, 1923년 11월 22일, p. 1.

224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VII, n. 1, 1924년 1월 15일, p. 12. 특히 ‘성경회’(Societa Biblica)에 대한 소개가 돋보인다. “‘성경회 분야’(Sezione Società Biblica): 복음을 보급해야 한다. 늦었지만 다시 한 번 해보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인 삶을 활기 있게 해주지 않으신다면 우리에게 그리스도인 삶이란 있을 수 없다. 어떤 놀라운 발명도 그런 삶을 우리에게 가져다줄 수 없다! 얀세니즘이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고유한 삶의 원천에서 멀어지게 했다. 곧 ‘성체성사에서 그리고 복음에서’ 멀어지게 하여 그리스도인 삶이 약화되었다. 장차 위대한 인물로 부각될 교황 비오 10세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이 두 원천에 다시 결합시켜주어 곧 개화기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신자들을 영성체로 다시 인도하여 큰 결실을 보였던 것에 비하여 복음의 대중화는 여러 차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같은 결과를 보일 수 없었다. 노동, 규율, 질서, 고통, 기쁨, 가난, 부유, 즐거움, 권위, 힘, 권리, 법률, 특히 최악의 상황인 개인과 국가 경제는 그 모두가 자연적이고 이성적인 세상의 절대적 원리로 여겨진다. 신뢰할 만한 제2의 요인에 이르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므로 복음에 관하여 개별적으로만 아니라 공적 보급활동을 통하여 어린이들과 어른들에게 크게 외치며, 복음이 존중되는 분위기를 만들 필요가 있는데, 사람들은 그대로 지나쳐버린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길이요 생명이며, 하느님 그분만이 그렇게 행하셨고 그렇게 말씀하셨다. 다른 것은 있을 수 없다. 이것은 우리에게 유일한 의무요 중대한 책임이다. 구원이 우리 손에 달려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이 임무를 맡기셨고, 이를 행하도록 우리에게 책임을 주셨다. 인내롭게 이를 행해야 한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눈앞에서 흐르는 피의 대가, 더 심해지는 윤리적 물질적 파괴의 대가, 파멸되어가는 영혼의 대가를 우리에게 요구하실 것이다. 우리는 무기력한 관객으로 있을 수 없고, 가벼운 신문기사거리로 지나쳐버리거나 탄식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우리는 사제요, 또 다른 예수 그리스도들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입장이라면 무엇을 하실까? 이것이 바로 복음서를 보급하는 이유다. 생각과 판단, 그리고 그것의 결과인 행동이 하느님의 정신과 일치되기 위하여, 우리 백성의 지성을 하느님의 정신에 다시금 접목시켜야 한다. 그러므로 더 빨리 성경회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상업과는 거리가 먼 성경회는 선을 실천할 수 있고, 무엇보다 복음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가 사람의 지성과 마음으로 내려오게 하여 그리스도인 삶을 다시금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소통하게 만든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VII, n. 8, 1924년 8월 15일, p. 11)

225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VI, n. 12, 1923년 12월 15일, p. 2.

226 상동, p. 13.

227 San Paolo [= UCBS], anno VI, n 11, 1923년 11월 22일, p. 8.

228 발간되지 않은 공책에 알베리오네 신부의 자필원고 68쪽과 자카르도의 자필원고 49쪽이 들어 있다. 많은 부분이 소실되었는데 넷째, 다섯째, 일곱째, 여덟째, 아홉째와 스물셋째 날에 관한 원고가 빠졌다.

229 A. Damino,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의 자서전Bibliografia di Don Giacomo Alberione」, Roma, 19943, pp. 31-32.

230 「성 바오로의 달 묵상과 독서Un mese a San Paolo, meditazioni e letture」, Pia Società San Paolo, Alba, 1925. 알베리오네 신부의 기록 일부를 자카르도 신부가 손질하여 완성시킨 것이다.

231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와 성탄대축일L’Immacolata e il Natale”, in 「선한출판 협력자회」, anno VI, 1923년 12월 15일, pp. 2-3 참조.

232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VII, n. 1, 1924년 1월 15일, p. 11.

233 “티모테오 자카르도 자필원고 공책”Quaderno manoscritto Timoteo Giaccardo), n. 6, p. 125.

234 상동, pp. 125-130 참조.

235 상동, pp. 132-150 참조.

236 아마도 이 묵상은 주일 미사 중에 했을 것이다. 따라서 아침 묵상 내용이다.

237 “티모테오 자카르도 자필원고 공책”(Quaderno manoscritto Timoteo Giaccardo), n. 6, p. 133.

238 상동, pp. 150-155 참조

239 상동, pp. 150-151 참조.

240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VII, n. 2, 1924년 2월 15일, pp. 11-12.

241 “따라서 ‘오는 가을’에 선교를 열망하는 젊은이들, 곧 비신자들 또는 이교인들을 위해 특히 출판을 통하여 일하려는 지향을 가진 젊은이들을 위해 성바오로수도회에 속한 집을 열게 될 것이다. 14명의 젊은이들이 이미 지원하여 이런 활동에 필요한 훈련을 받았다.”(G. Alberione, in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VII, n. 2, 1924년 2월 15일, p. 3)

242 “복음서가 더 많이 보급될 수 있기 위해 협력자들 중심으로 적합한 회규를 가진 협회를 만들었다.

① 본회는 성바오로수도회에 속한 선한 출판 협력자회의 “성경회”로 설립되었다.

② 성경, 특히 ‘복음서’가 대중에게 보급되도록 힘쓴다.

③ 회원은 1000리라를 한번에 지불하는 영구회원, 500리라를 한번에 지불하는 공로회원, 매년 5리라씩 지불하는 일반회원으로 구성되며, 회원은 활동으로 일주일에 한 번 영성체를 하고 개인적으로 신문 또는 다른 매체들을 보급한다.

④ 살아 있는 동안이나 죽은 후에도 성바오로수도회에서 봉헌하는 매년 천 대의 미사의 은총에 참여하고, 교황청에서 성바오로수도회와 선한 출판 협력자회 회원 모두에게 베푸는 대사를 받는다.

⑤ 매달 활동보고가 실리는 “선한 출판 협력자회” 회보를 받는다.

⑥ 봉헌금은 성경과 복음서의 무상 보급이나 최저가격으로 보급하기 위해 사용된다.

⑦ 사무실은 알바에 있는 성바오로수도회에 둔다.

현 회규는 주교의 승인을 받았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VII, n. 2, 1924년 2월 15일, p. 5)

이 회는 성 예로니모 1500주년을 맞아 성경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1920년 9월 5일에 반포된 교황 베네딕토 15세의 회칙 「위로자 성령Spiritus Paraclitus 」의 영향을 받았음을 기억해야 한다.

243 ‘예수님처럼 영혼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사람을 위하여.’ “주님, 오늘 미사성제를 드리는 사제들과 하나 되어 성체이신 예수님과 작은 제물인 저 자신을 당신께 봉헌합니다.

① 사회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세상에 널리 퍼져나가는 많은 오류와 나쁜 표양을 보속하고,

② 이 강력한 수단에 속거나 유혹되어 아버지 당신 사랑에서 멀어져가는 이들을 위해 당신의 자비를 구하며,

③ 이 수단을 사용하여 사람들의 정신과 마음과 행동을 이처럼 빗나가게 하면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가르침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의 회심을 위하여,

④ 아버지, 우리 모두가 당신의 무한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라고 말씀하시며 세상에 보내주신 그분만을 따르기 위하여,

⑤ 말씀이 사람이 되신 예수님만이 아버지를 알게 하고, 그분의 생명에 참여하도록 인도하는 확실한 길이며 완전한 스승이라는 것을 알고 전하기 위하여,

⑥ 교회 안에 사회 커뮤니케이션 사도직에 봉헌된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이 많아져 온 세상에 구원의 소식을 널리 전하기 위하여,

⑦ 저작자와 기술자 그리고 보급자들이 복음의 정신으로 슬기롭게 되어, 사회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증거하도록,

⑧ 사회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가톨릭 창안이 점점 증가하고, 인간적이고 그리스도교적인 참된 가치를 효과적으로 증진시키기 위하여,

⑨ 저희 모두가 자신의 무지와 연약함을 깨달아 겸손과 신뢰로써 생명의 원천으로 나아가, 당신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몸으로 양육될 필요성을 느끼도록 당신께 바치오니, 아버지, 모든 사람에게 당신의 빛과 사랑과 자비를 베푸소서.”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VII, n. 2, 1924년 2월 15일, p. 4)

특히 ⑤번에서 예수께서 완전한 스승이심을 분명히 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영혼을 비추시는 진리시요, 모든 거룩함의 귀감이신 길이시며, 성화은총을 주시는 참된 생명이시다.” ‘예수님처럼 영혼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사람을 위하여.’ (“바오로인의 봉헌기도”, a cura di A. Colacrai, Edizioni Arichivio Storico Generale Famiglia Paolina, n. 8, Roma 1985)

244 “‘스승예수의제자수녀회 수녀들.’ 16세 이상의 젊은 여성들로 구성된 알바(피에몬테 주)에 있는 여성 수도가족이다. 이들은 특별히 선한 출판을 통하여 ‘아버지의 나라 도래’가 실현되도록 성체 안에 천상 스승으로 계신 예수님에 대한 지속적인 흠숭에 자신을 봉헌했다. 사적 서원을 하고 수도생활 형태로 공동생활을 영위한다. 각자 매일 2시간씩 성체를 흠숭하고 다른 공동 신심실천과 공동 작업(바느질, 수선 등)에 전념하며 성바오로수도회 원장의 지도하에 수도원에서 생활한다. 성체신심이 뛰어난 젊은 여성들 가운데서 선택하며, 정신과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나이는 25세를 넘지 말아야 한다. 입회하면 필요한 것들을 제공받지만 처음 2년 동안 의복, 세탁 등의 비용은 자신들의 몫이다.(신학자 야고보 알베리오네)

‘스승예수의제자수녀회 수도원.’ 스승예수의제자수녀회 수녀들을 위하여 정원이 있고 50명의 젊은 여성들이 머물 공간과 세탁실, 작업실, 재봉실 등이 있는 곳을 찾았는데 이 집이 원래 갖고 있던 거룩한 이름을 그대로 살려 ‘천상 스승’(Divin Maestro) 집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스승예수의제자수녀회 수녀들이 어디서 생활하는지 묻는 이들에게 ‘천상 스승’(Divin Maestro) 집에서 산다고 대답하기 바란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VII, n. 2, 1924년 2월 15일, p. 28) - 이 외에 더 알고자 하면 최근 스승예수의제자수녀회에서 발간한 연구서들을 볼 수 있다. 특히 R. Cesarato, 「뿌리에서 살펴본 나무, 카리스마와 역사 사이에서 본 스승예수의제자수녀회L’albero visto dalle radici, Le Pie Discepole del Divin Maestro tra carisma e storia 」, Appunti, Fascicolo 1, Pro manuscripto, Roma, 1997; R. Cesarato -G. M. J. Oberto, 「뿌리에서 살펴본 나무, 카리스마와 역사 사이에서 본 스승예수의제자수녀회L’albero visto dalle radici, Le Pie Discepole del Divin Maestro tra carisma e storia 」, Appunti, Fascicolo 2, Pro manuscripto, Roma, 2000년 3월; AA.VV., 「성체, 사제직, 전례 봉사의 신비적 일치Eucaristia, Sacerdozio, Liturgia, l’unità come mistica del servizio 」, Atti del Seminario Internazionale sull’unità delle tre dimensioni apostoliche, Camaldoli, 1998년 2월 22일 - 3월 5일, Roma, uso manoscritto, 1998년 10월.

245 이 책 ‘입문’, n. 144의 각주 218 참조.

246 R. Cesarato, 「초기부터 1944년까지Dagli inizi al 1944」, in R. Cesarato - G. M. J. Oberto, 「뿌리에서 살펴본 나무…L’albero visto dalle radici…」, o. c., Fascicolo 2, p. 43 참조.

247 “6시 30분에 신학자 알베리오네 신부가 예식을 집전하면서 자매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었다. 미사 중에 ‘아버지로서 그들이 묵상해야 하는 바를 말씀해 주셨다.’ 전례는 진지하고 단순했으며 사랑과 기쁨이 넘쳤다. 참석한 자매들은 생기넘치는 열정으로 그때를 지냈다. 고유 예절에 따라 첫 착복식을 한 여덟 명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하느님 섭리의 스콜라스티카 수녀, 천상 스승의 안토니에타 수녀, 성 요셉의 마리아 수녀, 통고의 성모 데레사 수녀, 마리아의 안눈치아타 수녀, 예수 고통의 바올리나 수녀, 수호천사의 자코미나 수녀, 연옥 영혼의 마르게리타 수녀.”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VII, n. 4, 1924년 4월 15일, p. 24)

248 M. Ricci, 「마드레 마리아 스콜라스티카 리바타, 천상 스승의 충실한 제자Madre Maria Scolastica Rivata, fedele Discepola del Divin Maestro」(비매품), Roma, 1996년 2월 10일 참조. 오르솔라 리바타는 1897년 7월 12일 구아레네Guarene에서 태어났다. 아마도 알베리오네 신부가 구아레네에서 1910년 4월 10일 ‘(성 빈첸시오 페레리와 하느님 말씀의 중요성’에 관해), 1910년 10월 9일 (‘수호천사’에 관해서) 행한 강연회에서 그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녀는 1922년 7월 29일 알바의 성바오로딸수도회에 입회했다.

249 이 책 ‘입문’, n. 113 참조.

250 “스승예수의제자수녀회. 성바오로딸수도회에서 시작된 수도가족이다. 이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하여 기도하고, 선한 출판에 종사하는 사제와 수도자들을 위한 작업(바느질, 수선과 요리 등)을 하면서 주님께 드리는 지속적인 성체 흠숭에 봉헌하기를 원하는 젊은 여성들이다. 주님께 서원을 하고 특별히 매일 2시간씩 성체흠숭 기도를 한다. 고유한 수도복을 입는다. […] ‘스승예수의제자수녀회’ 명칭은 그들의 직무에서 온 것이다. 이들은 천상 스승을 향한 경건한 여성, 신심 깊은 여성들 가운데 첫 번째 여성, 곧 거룩하신 성모님의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흠숭하고, 성체 안의 그분께 위로를 드리며, 촛불보다 더 뜨겁게 타오르는 사랑으로 감실을 깨어 지키며, 선한 출판이 나쁜 출판물을 이기도록 천상 스승께 청하고, 나아가 성모님께서 예수님과 사도들을 위해 하셨던 직무와 봉사를 이들도 사제들을 위해 행한다. 이것이 바로 침묵 속에, 사랑 안에, 기도 안에서 겸손하게 살아가는 그들 삶의 모습이다. 성체성사의 광채를 드러내는 흰색과 성모님의 색깔을 연상시키는 하늘색의 수도복도 이들의 직무를 기억하게 해준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VIII, n. 9, 1925년 8월 20일, pp. 10-11)

251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VII, n. 11, 1924년 11월 15일, p. 20.

252 상동, anno VII, n. 5, 1924년 5월 15일, 표2에 실린 글.

253 상동, anno VII, n. 8, 1924년 8월 15일, pp. 1-2.

254 바오로인들은 새로운 이름을 수용했고, 새로운 증인, 새로운 옷도 받아들였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VII, n. 8, 1924년 8월 15일, p. 8)

255 “수도회에 어린 소녀들이나 성인 여성이 입회할 때 아기가 태어날 때의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며 받아들인다. 이제 바오로딸들의 으뜸 과제는 훌륭한 여사도들을 준비시키는 영적 양성이다. 새로운 입회자들이 늘어감에 따라 그들의 수호천사들을 찾고, 묘목처럼 그들을 키운다. 거룩한 묵상과 신심실천을 잘 하도록 가르침을 받는다. 미사성제, 영성체, 영적 독서, 묵주기도, 영적 작업, 아침·점심·저녁에 하는 양심성찰, 고해성사를 잘 하는 방법, 주님과 일치하는 법, 예수님의 표양을 가까이에서 따르는 법, 특히 그분의 순명·겸손·희생과 사랑의 정신을 본받는 법을 배운다. 또 어린 소녀들은 보조자에게, 성인 여성들은 수련장에게 자녀다운 신뢰로 자기 자신을 극복하며 마음의 순수함과 덕의 실천에 점진적으로 진보하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어려움, 결점과 덕성, 거룩한 열망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자신들의 영혼을 연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VII, n. 8, 1924년 8월 15일, p.22) - 이 기간의 안내서로 「성 이냐시오에 따른 특별 성찰 방법Metodo di esame particolare, secondo Sant’Ignazio 」(Alba, Pia Società San Paolo, senza data, pp. 54)이 발간되었다. 책 끝부분에 매일의 영적 작업에서 부족한 사항과 극복한 사항을 표시할 수 있는 주간 ‘표’를 실었다.

256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에서 열거한 임무 가운데 그리스도교 가정에 ‘복음서’ 보급과 1924년 10월 1일 발간된 어린이들을 위한 컬러 화보 주간지 「조르날리노Giornalino 」(만화잡지-역주) 보급에 대한 의무사항을 발견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선한 출판 협력자회」(UCBS) 10월호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대중 사이에 성경, 특히 ‘복음서’가 침투되도록 ‘성경회’(Società Biblica)에 보급을 제안했다. 그 결과 1년에 복음서 20만 부를 보급했고 통합 복음서, 가족을 위한 복음서, 어린이들을 위한 복음서, 성 바오로 서간과 다른 사도들의 서간, 주일 복음서, 성경 완본 등도 준비 중에 있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VII, n. 10, 1924년 10월 25일, p. 11)

257 한 출판 협력자회」, anno VIII, n. 1, 1925년 1월 20일, p. 1.

258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VIII, n. 1, 1925년 1월 20일, p. 9. 2월호는 ‘성바오로 서간’에 관한 글로 시작하며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우리는 원고 교정을 위해 로마에 도착하여 성 바오로 서간의 필사본을 검토했다. 번역은 분명하고 단순했고 각주도 풍부하고 생기가 넘치며 대중에게 적합한 아름다운 내용이었다. […] 성 바오로의 사명은 사회적, 종교적으로 높이 평가될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곧 이방인 대중을 위한 복음선포의 직무이다. 인류는 뿌리 깊은 선민의식에 의해 하느님의 백성(히브리인들)과 하느님 백성이 아닌 사람들(다른 모든 인간들)로 구분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두를 구원하기 위해 오셨고, 성 바오로의 직무도 바로 그러했다. 곧 모든 이가 구원받을 수 있음을 알리는 구원의 보편성을 설교하고, 하느님 백성이 아닌 이들을 하느님 백성에 접목시켜 하나의 백성이 되게 하는 곧 야생 올리브나무를 좋은 올리브나무에 접목시키는 일이었다. 그의 서간은 이러한 작업을 한다. 곧 ‘만물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하는 것이다.’ (instaurare omnia in Christo) 더 나아가 인간들이 천상적인 삶을 살도록 하여, 처음에는 나쁜 활동으로 기울어져 있던 몸의 지체들이 이제는 성령의 성전이요, 살아 있는 성체처럼 하느님께 봉헌되게 하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원죄로 말미암아 훼손된 본성이 하느님을 칭송하는 계속적인 찬미 안에서 하느님과 결합되게 하는 것이다. […] 부디 위대한 사도께서 이방 민족들을 이끌어 예수 그리스도께 접목시켜 그리스도의 영이 그들 안에 스며들고 그들의 생명이 온전히 되살아나게 만들기를 희망하자. 그리하여 인간이 또 하나의 하느님이 되어 추종자들과 비평학자들뿐 아니라, 그를 사랑하는 영혼들도 매료시키기에 이르고, 그들이 당신과 사랑에 빠져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십니다.’(vivo iam non ego, vivit vero in me Christus)라고 말할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을 향해 오르기를 희망하자.”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VIII, n. 2, 1925년 2월 20일, pp. 1-2)

259 성 바오로 성전은 성바오로수도회 건물(성전을 정면에서 바라보는 사람의 오른쪽)과 하느님 섭리의 집 건물(왼쪽) 사이의 사도의 모후 집과 나란히 있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UCBS) 1925년 8월호는 이 세 건물의 사진을 게재했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VIII, n. 9, 1925년 8월 20일, pp. 7-8)

260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VIII, 1925년 4월 1일, pp. 1-2. 이 회보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큰 축일의 여가시간을 교육적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영사기를 구입하여 부활절의 아름다운 저녁에 첫 상영이 있었다. 성세바스티아노, 성 아녜스, 성 타르치시오 등의 순교자가 등장하는 파비올라와 지오그래픽에 대한 영화를 상영했다.”(상동, p. 9) 다른 새로운 사도직 매체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기차, 전신기, 전화, 속기법, 라이노타이프, 윤전기, 전기 등. 하느님께서 당신 영광을 위하여 출현시킨 이러한 요소들을 부정한다면 우리에게 재앙일 뿐 아니라 사탄의 나라가 사용하도록 놓아두는 꼴이 될 것이다.”(상동, p. 24)

261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VIII, n. 9, 1925년 8월 20일, pp. 7-8. 복음서 보급을 위하여 스승 예수 대축일 미사 시간을 늘렸다. 베네벨로에서 거행했던 예식에 대한 설명을 보면 이해할 수 있듯이 복음서 축성식(intronizzazione)을 장엄하게 거행한 것이다. “제대의 성체현시대 좌우에 통합 복음서 두 권을 배치하여 ‘천상 스승’이 잘 보이게 했다. 이는 물질적인 복음이 성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비유(Parabola)[말씀?], 그분의 완성의 연장이라는 사상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VIII, n. 13, 1925년 12월 20일, p.20) 화제의 책은 「천상 스승Il Divin Maestro 」(Testo concordato dei Quattro Vangeli, con note, Società S. Paolo Editrice, Alba-Roma, 1925)이다.

262 「선한 출판 협력자회」에서 성 바오로 성전을 되도록 빨리 건립해야 할 필요성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보게 된다. 이탈리아 30여 지역에서 모여온 408명에 달하는 수도회의 많은 회원들을 위해서 필요했기 때문이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VIII, n. 9, 1925년 8월 20일, p. 1) 1925년 5월에는 「선한 출판 협력자회」 부록으로 4쪽 분량의 인쇄물을 발간했다. 협력자들과 벗들에게 수도회를 더 흥미롭게 소개하기 위해서였다. “이 가족은 두 개의 큰 줄기로 이루어진다. 내부인들은 복음서를 보급하고 기도하는 성바오로수도회 회원들로서 수도자들이며, 바오로딸들도 포함된다. 외부인들은 자신들의 일을 하면서 희사를 통해 수도회를 돕는 벗들과 협력자들이다. 경건한 제자들을 수녀라고 부른다. “경건한 제자 가족도 수도회 모태에서 탄생한 수녀들이다. 이들은 많은 수도단체처럼 통상적인 요청을 따르면서 수도회와 협력자 가족에게 하느님의 축복을 간청하기 위하여 성당에 현시된 성체 앞에 지속적으로 머문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VIII, 1925년 5월 10일, p. 1)

263 “티모테오 자카르도 공책 필사본”(Quaderno manoscritto Timoteo Giaccardo), n. 6, p. 125.

264 상동, p. 132.

265 상동, p. 150.

266 수도회에서 진리-스승-가르침, 길-모범, 생명-은총이라는 접근방식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알베리오네 신부는 1910년 알바의 신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심을 우리의 모범으로 삼고 따라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quos praescivit et praedestinavit conformes fieri imagini Filii sui) 그분은 우리에게 가장 드높은 완전한 덕의 모범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그만큼 훌륭한 스승이십니다. 우리에게 가르침과 표양을 주시고, 연약한 의지에 약이 되는 은총을 전달해 주십니다.”(G. Alberione, Quaderno 8, 1910년 6월 1일, p. 35) 티모테오 자카르도 신부도 1918년 9월 일기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기도를 마친 후 저녁 시간에 신학자께서는 젊은이들에게 마에스트로라는 호칭으로 나를 소개하셨다. 그리고 나에게 한마디 하라고 하셨다. 나는 준비가 안 된 상태였기에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말을 해야 했기에 ‘오늘 = 일 년 그리고 더 지난 후라면… 마에스트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순명하겠습니다. 우리의 마에스트로는 한 분뿐이십니다. 우리에게 말씀으로 또 신학자님을 통해서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예수님이 우리의 유일한 마에스트로이십니다.’라고 했다.” 같은 시기의 다른 글에서 자카르도 신부는 진리 길 생명의 삼중명제를 교의, 모범, 은총의 측면에서 언급하면서 마에스트로라는 용어는 특히 진리-교의라는 의미를 내포한다고 했다. “‘스승 예수.’ 1. ‘너희가 나를 ´스승님´이라고 부르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Vos dicitis me magistrum et bene dicitis quia ego sum): 교의를 통하여, 모범을 통하여, 기도를 통하여. 2. 신학자께서는 나를 마에스트로라고 부르게 하셨다. 나는 교의를 통하여, 모범을 통하여, 은총을 통하여 스승이 되어야 할 것이다. 3. 성찰, 결심, 기도.”“( 티모테오 자카르도 공책 필사본”(Quaderno manoscritto Timoteo Giaccardo), n. 68, schema LXX 참조.

267 F. Chiesa,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Gesù Cristo Re」, Pia Società San Paolo, Alba, 1926.

268 F. Chiesa, 「스승 예수Gesù Maestro」, Pia Società San Paolo, Alba-Roma, 1926.

269 F. Chiesa, 「나는 생명이다Ego sum Vita 」, Pia Società San Paolo, Alba, 1927.

270 F. Chiesa,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Gesù Cristo Re」, o. c., p. 22.

271 1926년 9월 11일, 「가톨릭 문화La Civiltà Cattolica」에 이 책에 관한 서평이 게재됐는데, 여기에 전문을 인용한다. “참사위원 키에사 신부는 교황 비오 11세의 회칙 「콰스 프리마스Quas Primas」의 내용에 대해 30개의 단상으로 전개했다. 30개의 단상은 ‘10월 한 달 간 하루씩 읽도록 나누었다.’ 금년에는 10월 31일에 맞이하는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위한 최상의 준비가 될 것이다.” 착상이 아주 적절했다. 대개는 이 두 가지가 서로 잘 어울리지 않는데 저자는 이 착상을 곧바로 실행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성직자의 강론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이 책은 고유한 주제를 분명하고 적절한 형태로 전개하여 교회 가르침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성격의 책에서 24번째 단상 서두의 설명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생략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p. 239에 나오는 인쇄 오류‘( 죽음에 합치된 의지’[?])는 저자의 명쾌한 심리학적 분석을 애매하게 만든다.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에 대한 키에사 신부의 30개 단상은, 가톨릭의 모든 가르침을 그분의 빛과 결속시켜주는 이러한 특권이 얼마나 중요하지 말해준다. 이는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제공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 ‘그 나라의 일반 형태’, ‘그 나라의 조직적인 법률’, ‘통치 형태’, ‘그 나라의 확장’에 관한 17-21번째 단상에서 잘 볼 수 있다.”(La Civiltà Cattolica , anno 77°, vol. III, quad.

272 「가톨릭 문화 L a Civiltà Cattolica」, anno 77°, vol. III, quad. 1814, 1926년 1월 8일, pp. 97-126 참조.

273 F. Chiesa,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Gesù Cristo Re」, o. c., p. XI에서. 「콰스 프리마스Quas Primas 」에 담긴 이러한 내용이 알베리오네 신부에게 중요했다는 것은 마에스트라 테클라 메를로 수녀의 기록, 1926년 10월 31일자 그리스도 왕 대축일의 월피정에 영감을 주었다는 사실에서 추정할 수 있다.(Quaderno n. 4, inedito, pp. 5-6 참조)

274 “하느님의 나라는 세상과 사회와 가정으로 널리 확장되나 그 나라의 궁극 목적은 우리라는 것이 확실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안에서, 곧 우리 영혼 안에서, 우리 인격 안에서 다스리기를 바라신다.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Regnum Dei intra vos est) 감각적인 세상은 영혼만 못하다. 영혼은 정신이며, 정신 안에서 자유를 누린다. 하느님은 정신 안에서 당신 자신을 비유로 증명하신다. 정신 안에서 온 세상이 하느님께 돌아온다. 정신은 모든 것이 하느님에게서 온다는 것을 알고, 모든 것이 하느님께 향하게 할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작이자 마지막 목적이신 그분께 자유롭고 의식적으로 영광을 드린다.”(F. Chiesa,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Gesù Cristo Re 」, o. c., p. 234)

275 키에사 신부는 DF 해석에 도움이 되는 몇 가지 중요한 숙고 내용을 소개한다. 먼저 그가 본 영혼의 능력에 대해 테두리를 그린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는 무엇보다 우리 영혼 안에 확립되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단상에서 고찰해 보았다. 그러나 우리 영혼은 여러 가지 능력을 지니고 있다. 곧 지적 능력, 감성적 능력, 윤리적 능력이다. 이제 이 나라가 어떻게 우리 ‘지성’에 확립되어야 하는지 살펴보자.”(상동, p. 245)

그 다음 첫 단락에서 동물이나 식물, 레바논의 삼목이나 코끼리에게 기원을 주는 씨앗에 비유하면서 ‘관념의 중요성’에 관해 자신의 가르침을 다음과 같이 계속 전개해나갔다. “이 모든 것이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entelechia’(본질: 현실태, 완전태, 생명력 등으로 번역 가능-역주)라고 하고, 성 토마스는 ‘forma’(형상)라고 하는데, 곧 이 모든 것에 꼴을 갖추게 하는 생혼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만일 그러한 물질이 밀알의 생혼에 의해 형성된다면 밀이 될 것이고, 코끼리의 생혼에 의해 형성된다면 코끼리로 성장할 것이다. 씨앗의 진화를 이끌어 가는 주체는 생혼이다. 사실 살아있는 생명체의 다양성과 종(種)의 무한한 상이성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가? 물론 생혼에서 기인한다. […] 이제 필요한 것은, 생물학적 진화 안에 있는 생혼이요, 인간 역사 속의 관념이라고 생각한다. 알프레드 퓌에(Alfred Fouillée)는 「관념-힘에 관하여 Sull’idea-forza」라는 훌륭한 작품을 썼다. 아이뮤(Eymieu)는 그의 저서 「자신에 대한 지배Gorerno di se Stesso」에서 이를 활용하여 교육에 관한 사상을 훌륭하게 정립시켰다. 사상은 수세기에 걸쳐 항상 발전의 싹이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모든 ‘그리스도교 시대’는 당대에 널리 퍼져 있던 ‘그리스도교적 사상’에서 도래했고, 이 사상은 인류 깊숙이 침투하여 그 결실을 거두었다. […] 요약해서 다시 말하자면 사상은 씨앗이다. 그것은 마치 묘목을 얻기 위해 씨앗을 심는 것과 마찬가지로, 특이한 성격 형성을 위해서는 사상에서 시작할 필요가 있다. 교육은 훈련으로 시작해야 한다. ‘먼저 알지 못하면 아무것도 원할 수 없다.’(Nil volitum quin praecognitum)라는 속담처럼 알지 못하는 것을 판단하고 원할 수는 없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왕국은 지성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리스도교적 ‘삶’이 되기 전에 먼저 그리스도교적 사상이 있어야 한다. 사상이 없는 삶은 기초가 부실할 수밖에 없다.”(상동 pp. 245-247)

두 번째 단락에서 키에사 신부는 어디에서든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발견된다고 강조한다. 곧 ‘그리스도교적 사상’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성의 왕이시다. 하느님으로서 본질적인 진리이시기 때문이고, 그분 안에 모든 신적 지혜와 지식이 충만히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한다. 또한 그리스도교적 사상은 성경과 그리스도교 전통 안에서 발견되고, 교도권에 의해 해석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세 번째 단락은 가르침에 대한 연구와 경청을 통하여 그리스도교 사상을 알아야 하고, 반드시 보편적이고 확고하며 지속적이어야 하는 신앙을 통해 심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상동, pp. 247-253 참조)

276 “하느님의 뜻은 세 가지 기본적인 방식으로 드러난다. 곧 계명, 표양, 사건에서 드러나는데 첫 번째와 두 번째는 ‘표지’이고, 세 번째는 ‘허락’이다. […] 그렇다면 어떠한 계명들인가! 모든 것 위에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계명이다. 이웃의 생명, 명예, 물건, 명성을 존중하고,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헐벗은 자에게 옷을 주며, 원수를 용서하고, 우리를 공격하는 자에게 선을 베푸는 것 외에 복음에 담긴 다른 많은 선행이 있다. 예수님의 뜻에 속한 것들이다. 그러나 복음적 청빈, 완전한 정결 같은 것들은 명령으로서가 아니라, 가장 완전한 권고로서 따라야 한다. 하느님 계명에 대한 ‘순명’의 덕을 통하여 의지가 우리를 다스리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뜻은 ‘표양’과 더불어 드러나는데 예수님의 표양은 그분의 뜻을 드러내는 첫 번째 표현이다.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을 처음부터 다 다루었습니다.’(Coepit facere et docere: 사도 1,1) 얼마나 많은 표양을 보이셨는가! 베들레헴의 가난한 마구간에서 태어나심과 30년간의 삶 전반은 우리에게 겸손과 청빈과 숨은 생활을 사랑하라고 명하시는 그분의 가장 설득력 있는 표현이다. 그분의 40일 동안 단식에서, 계속 기도하시는 모습에서, 영원하신 당신 아버지와 일치를 이루심에서, 온유함과 인내와 관대함에서 표현되는 그분의 뜻이 얼마나 명료한가. 더 나아가 그분의 수난, 원수들을 위한 그분의 기도,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분의 죽음, 우리가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는가? 표양은 말보다 훨씬 분명하고 효과적이다. ‘말은 감동시키고, 표양은 이끌어간다.’(Verba movente, exempla trahun)라는 속담처럼 말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만’, 표양은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우리는 당신의 삶으로 표양을 주신 우리 구세주께 마땅히 감사를 드려야 한다! 말은 법을 실천에 옮길 때 불확실성을 보일 수 있으나 표양은 그러한 모든 그림자를 없앤다. 표양 안에 들어 있는 뜻은 예수님 삶의 ‘본받음’(모방)을 통하여 우리에게 전해진다. 마지막으로 허락(승인)의 의사는 ‘사건들’에서 드러난다. 여기서도 우리 안에 하느님 나라를 위한 영역이 얼마나 광대한가! 역사적 사건들, 우리 가족의 사건들, 우리 개인의 사건들 모두가 의사를 표현하고, 적어도 하느님의 허락을 드러낸다. 좋은 때나 나쁜 때, 풍성한 때나 빈곤한 때, 건강과 병고, 부유와 가난, 평화와 전쟁, 성공과 실패, 삶과 죽음, 이 모든 것은 우리 주위에서, 우리 안에서 일어나며, 우리 모두는 하느님에게서 그에 대한 깨달음을 받는다.”(상동, pp. 259-261)

277  “① ‘인간의 마음’. - 생리학적으로 인간의 심장은 주먹만한 크기의 근육으로 이루어졌고, 혈액 순환을 추진시키는 중심기관이다. 인간은 혈액에 의해 신체의 모든 부분이 지탱되기 때문에 심장은 인간의 몸을 양육하고 보존하는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심장, 마음은 ‘정서적 삶’(vita affettiva)의 중심이다. 마음 안에서 우리는 인간의 정서적인 미덕(virtu affettiva)의 여러 단계를 표현해 주는 다양한 층에 대해 고찰할 수 있다. 마음 가장 깊은 곳에 ‘경향’(tendenze)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이 경향들 가운데 첫 번째가 ‘행복’이다. 행복을 향한 이 경향은 불행과 불쾌로 이끄는 모든 것을 싫어하는 경향을 이끌어 낸다. 경향 위에 ‘성향’(inclinazione)이 있는데, 이 또한 경향이지만 훨씬 확정적이다. 행복을 향한 경향은 부유, 영예, 노동 등 이와 유사한 것에 대한 ‘성향’을 낳는다. ‘성향’은 지속적이고, 차분하여 일관된 성격을 띠는데 이 경향에 어떤 식으로든 마음의 기본과 중심이 되는 열정이 가중되고, 나아가 우리 안에 광대하고 종합적인 세계를 형성한다. 열정 위에 변화무쌍한 다양한 정서적 감정이 파동을 일으키곤 한다. […] ② 어떻게 ‘마음 안에 예수님의 나라를 건설할 수 있는가?’

-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마음을 얻기를 바란다면, 먼저 마음의 열쇠를 쥐고 있는 그가 좋아하는 것을 찾도록 해야 한다. 의지는 권리의 여왕이나 마음은 좋아하는 것으로 기울게 마련이므로 마음을 다스릴 때 그 사람을 다스리게 된다. 다행스럽게 의지가 마음을 통제할 수 있는데,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이러한 통제를 ‘기술적 통제’(dominio d’industria)라고 했다. 그렇다면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가능한가?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가능하다. 곧 참되고 강한 사랑 곧 하느님의 사랑이 마음을 차지하도록 함으로써 가능하다.

우리는 이미 위에서 12가지의 욕망을 살펴보았는데, 이 모든 것도 가장 일반적 계명인 ‘사랑’ 아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성 아우구스티노는 ‘사랑하라, 그리고 그대가 원하는 바를 행하라.’(Ama et fac quid vis)고 말한다. 하느님의 사랑이 마음을 지배한다면 우리는 두려움 없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원하는 바를 행하라’고. 선이 아니면 행하지 않을 것임을 우리는 확신하기 때문이다.”(상동, pp. 267-271)

278  “① ‘몸과 지체.’ - 인간은 몸과 영혼으로 이루어졌다. 영혼은 비가시적이며 정신적인 부분이고, 몸은 가시적이며 물질적인 부분이다. 물론 우리가 말하는 이 몸은 영혼과 합치된 몸, 살아 있고 활동적인 인간의 본질적 부분이다. 몸은 튼튼하거나 약하고, 건강하거나 병들 수 있고, 완전하거나 결점이 있을 수 있다. 몸은 영혼처럼 선용되거나 악용될 수 있다. 곧 덕의 도구 또는 악습의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지체’는 감각이 드나드는 문의 역할을 하므로 모든 인식은 감각에서 비롯되고, 모든 표현은 몸과 지체로 끝난다. 지체는 손과 발 그리고 몸의 모든 부분이다. […] 모든 지체는 감각이 있으며, 이 감각들은 의지에 의해 무제한 사용된다. [F. 키에사 신부는 눈, 귀, 혀, 입, 냄새와 맛과 촉각 등을 차례로 언급한다]. ② ‘왜 하느님 나라는 몸의 지체에까지 확장되는가.’ - 하느님의 나라는 모든 피조물에게 확장되는 것이므로 만일 몸의 지체가 영혼과 상관없이 오직 그 자체만 있다고 해도 하느님의 나라에 속하게 된다. ‘주님 것이라네, 세상과 그 안에 가득찬 것들, 누리와 그 안에 사는 것들.’(Domini est terra et plenitudo eius: 시편 23,1) 우리는 여기서 몸의 지체가 인간의 본질적 부분이며 불멸의 영혼에 속해 있다고 본다. 이러한 의미에서 몸의 지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인 나라로 기울게 마련인데, 이는 영혼을 창조하고 구원하고 거룩하게 하신 그분께 속하는 것과 같다. ③ ‘어떻게 하느님의 나라가 몸의 지체에 확장되는가.’ - 이것은 아주 단순하다. 몸의 지체를 우리의 뜻, 우리의 환상이나 쾌락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도구가 되게 하는 것이다. […] 유명한 말씀의 온전한 성취를 보게 되는 것이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Vivo autem iam non ergo, vivit vero in me Christus: 갈라 2,20) 이것은 무슨 의미인가?

몸의 지체를 비추기 위하여 ‘지성’에서 시작하여 ‘의지’로 이동하고 ‘마음’으로 내려간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 곧 우리 안에 예수님의 나라가 완전히 실현된 것이다!”(상동, pp. 279-286)

279 F. Chiesa, 「생명의 열쇠La chiave della vita」, Pia Società San Paolo, Alba-Roma, 1927. A.F. Da Silva, 「G. 알베리오네 사상과 작품, 삶의 중심인 길 진리 생명이신 그리스도Cristo Via, Verità e Vita, centro della vita, dell’opera e del pensiero di don G. Alberione」, in AA.VV., 「알베리오네 신부의 그리스도 중심적 유산L’erdità cristocentrica di don Alberione 」, o. c., pp. 253-254 참조.

280 1929년 2월 11일자 「가톨릭 문화La Civiltà Cattolica」는 긍정적인 서평을 했다. “피에몬테 주 교육청(Istituto Superiore di Magistero del Piemonte)의 요청을 받아 알바에서 개최한 교육 문화(cultura magistrale) 코스에 참가한 62명의 교사들은 지칠 줄 모르는 참사위원 키에사 신부가 대중에게 제시한 훌륭한 작품에 포함된 ‘다섯 개의 강의’에 대단히 만족해했다. 그리고 그들중 많은 이들이 출간 요청(p. VII)을 했는데, 이는 전혀 놀랄 일이 아니었다. 확고하고 심오한 가르침, 분명하고 접근하기 쉬운 형태, 감탄스러울 정도의 논리정연함에서 그보다 더 뛰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청중을 전혀 지루하지 않게 하면서 명상의 최고 경지에로 인도한다. 인간의 삶은 무엇이고, 삶에는 무엇이 있으며, 삶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인간 삶의 본질적 목적은 무엇이고, 또 초자연적 목적은 무엇인가?(pp. 1-48) 여기 이 지상에서 우리의 삶은 하나의 ‘준비’이다. 우리는 하늘의 삶을 준비해야 한다. 곧 신앙과 종교교육을 통해 지성의 준비(pp. 49-96), 하느님 법을 준수함으로써 의지의 준비(pp. 97-145), 덕과 은총의 수단을 통하여 아름답고 선한 감정을 가꾸어나감으로써 마음의 준비(pp. 146-195), 극기와 선의 실천을 통한 몸의 준비를 해야 한다.(pp. 196-258) 저자는 기술(arte)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그와 같은 훌륭한 작업의 뼈대로 우리의 지성이 삶에 지적인 견고한 기초를 다져주기 위한 명확한 이론적 개념을 지니게 만든다. 엑스광선에 비유된 행복을 예로 들 수 있다.(p. 54) 일부 인쇄 오류.(pp.3, 51, 65, 71, 76 등 참조) 그 외에도 ‘고유하고 본질적인 빛을 통하여 사물을 보는 상태’가 지성에는 ‘실행’ 대상이라기보다 ‘단념 대상’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p. 72)라는 빛에 관련된 표현(p. 58)의 일부가 부정확하게 보인다. 초자연적 삶은 인간 본연의 삶 못지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책은 우리 시대를 위하여 매우 적절하고 유익한 저서임에 틀림없다. 많은 이들이 이 작품을 읽기 바란다.” (「가톨릭 문화La Civiltà Cattolica」, anno 80°, vol. I, quad. 1888, 1929년 2월 11일, pp. 359-360)

281 「생명의 열쇠La chiave della vita」, in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모습을 갖추실 때까지Donec formetur Christus in vobis 」, Pia Società San Paolo, Alba-Roma, 1932, p. 16(DFst 16) 참조. 여기서는 프란치스코 키에사 신부의 「생명의 열쇠」와 알베리오네 신부의 생각이 일치한 점에 대한 요약을 짧게라도 소개할 여유가 없으므로, 의지의 준비에 관한 다음 구절을 인용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제 우리는 의지의 준비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이해할 차례다. 우리는 늘 동일한 원리에 입각해 있다. 곧 우리가 준비한다는 것은 ‘이제 우리가 하려고 하는 바를 지금 하는 것이다’. ‘지복직관’에 대해서 말할 때, 이것은 이 세상에서 우리의 지성을 하느님 안에 있도록 훈련시킨다는 의미인데 미래의 삶에서 마치 하느님 안에 있는 것처럼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다. 또 여기서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이기주의자로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것을 시작한다는 자명한 사실이다. 미래에 보게 될 복된 자들과 저주받은 자들의 구분은 현재도 보인다. 곧 자기 자신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이 있고, 하느님 안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 모든 면에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만을 하려는 사람들이 바로 자기 자신 안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삶의 길은 우리의 구세주요 모델이시며 길 진리 생명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길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먼저 표양을 통해 우리를 가르치셨고, 그 다음으로 말씀을 통해 가르치셨다. 우리가 따라야 할 길은 전혀 다른 길이다. 그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요한 6,38)”(F. Chiesa, La chiave della vita, o. c., pp. 128-130)

282 F. Chiesa, 「스승 예수Gesù Maestro 」, Pia Società S. Paolo, Alba-Roma, 1926.

283 F. Chiesa, 「스승 예수Gesù Maestro」, o. c., p. 1. 1927년 2월 20일자 「선한 출판 협력자회」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려준다.“ 1월은 스승 예수께 봉헌된 달이다. 매일 수도회 전체를 대상으로 스승 예수께 관한 묵상을 지도했는데, 그에 적합한 「스승 예수Gesù Maestro」를 자료로 삼았다.”고 하면서 책을 간략하게 소개했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X, n. 2, 1927년 2월 20일, p. 12) 1928년 9월 29일자 「가톨릭 문화La Civiltà Cattolica」는 「스승 예수Gesù Maestro」에 관한 서평을 다음과 같이 게재했다. “넘치는 열정으로 ‘선한 출판’의 사도직을 촉진시키고 있는 ‘성바오로수도회’가 참사위원 키에사 신부의 이러한 책들을 출판할 때 많은 이들의 호응과 협력을 받을 것이다. 「스승 예수Gesù Maestro」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기쁨을 가져다준 책이다. 이 책을 특히 예수님의 인도로 스승이 되도록 부르심 받은 사제들이 읽고 묵상하기를 바란다. 이 책은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확고하고 매우 분명하게 설명된 가르침은 성 아우구스티노의 「교사론De Magistro」에서 가져온 것으로 성 토마스 사상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최상의 개념을 일반적이고 일상적인 관계 안에서 객관적으로 세밀하고 명확하게 소개한 것이 놀랍다. 특히 논리적인 순서를 유지한 면이 부각된다. 저자가 각 장의 목차를 교의에 따른 주제별로 확장시켰더라면 훨씬 더 극찬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참사위원 키에사 신부는 우리의 인식 수단인 지성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하기 위하여, 성 토마스의 선명한 교의를 직접적으로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p. 46 이하) 때로 지나치게 비유를 많이 사용했다는 느낌도 받는데 예를 들면, 해와 달에 대한 유추(p. 46과 p. 278 이하)라든가 예수님과 전혀 관련 없는 스승들에 대해서는 그들의 가르침에 대한 역사적 대혼란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암시만 주는 것으로 끝나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다(특히 「짜라투스트라」, p. 57 참조). 종교사에 관한 세밀한 연구에서는, 구약성경의 스승들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는데 오히려 더 많이 거론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또한 일부 신조어들도 아예 배제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다. 예를 들면, ‘활용’(valorizzate: p. 9), ‘즐거운’(terpetica [세련된 표현!]: p. 193), ‘유연한 교육’(plastica pedagogica: p. 207).” (「가톨릭 문화La Civiltà Cattolica 」, anno 79°, vol. IV, quad. 1879, 1928년 9월 29일, pp. 73-74) UCAS에서 이 서평의 일부가 한 번 이상 게재되었는데 1928년 12월 15일의 12권 p. 9에 실렸다.

284 자연과 성경을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두 스승이라고 여기는 키에사 신부의 생각은 아주 흥미롭다.“ 테르툴리아노 교부는 참으로 천재적인 면모를 드러내 준다. 그는 인류 안에 새겨진 신적 스승에 대해 집약적인 설명과 그 목적을 부여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Praemisit tibi naturam magistra submissurus et prophetiam, quo facilius credas prophetiae, discipulus naturae. ‘(「육신의 부활에 대하여De Resur. Carnis」, c. 12) 그 내용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두 스승은 자연과 성경이다. 뛰어난 교육자이신 하느님께서는 쉬운 것에서 어려운 것으로 옮겨지는 마땅한 순서를 지키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그분은 당신의 다양하고 놀라운 자연 현상 안에서 인간들이 배우도록 먼저 자연을 보내주셨다. 그것은 인간들이 자연이라는 학교에서 가르침을 받아 훨씬 용이하게 성경의 가르침을 활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분의 말씀은 이러하다. ‘먼저 그대에게 자연이라는 스승을 보내고, 이어서 예언을 한 것은 그대가 보다 쉽게 예언을 믿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그대가 이미 자연의 제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같은 자연 앞에서 우리를 인도하고, 정확하게 해석하도록 도와줄 스승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특히 우리에게 가장 흥미로운 분야인 윤리적·종교적 진리 분야에서 스승이 필요하다는 의미다.”(F.Chiesa, 「스승 예수Gesù Maestro」, o. c., pp. 27-28) 이러한 개념들은 알베리오네 신부가 자신의 저서에 자주 인용한 것들이다.

285 1927년 11월 25일 금요일의 비망록은 알베리오네 신부의 지침에 관한 마에스트라 테클라 메를로의 기록을 보여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진리이다.(이 말씀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승 예수」를 읽을 것)”(미 발간, p. 102) 마에스트라 데레사 라발로 수녀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나는 길이다.’ 이 말씀이 지닌 가치를 숙고하기 위해서 수도회에서 출간한 「스승 예수」를 읽을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철학적·신학적·수덕적·사목적 측면 등 다양한 면을 다루고 있다.”(A. T. Raballo, “공책 19”(Quaderno 19), 미 발간, 1927년 11월 25일 금요일, p. 56)

286 F. Chiesa, 「스승 예수Gesù Maestro」, o. c., pp. 138-139.

287 상동, pp. 147-148.

288 상동, pp. 155-156.

289 상동, pp. 165-166.

290 상동, p. 179.

291 상동, p. 179.

292 상동, pp. 193-195.

293 상동, pp. 207-208.

294 G. Alberione, 「교육 방법Metodo d’educazione」, in Quaderno 40, 1911년 10월 17-19일, pp. 143-157 참조.

295 F. Chiesa, 「스승 예수Gesù Maestro」, o. c., pp. 213-215.

296 상동, p. 220.

297 “의지의 측면을 언급하는 여기서 ‘윤리’라는 용어를 우리는 폭넓은 의미로 채택했다. 말 그대로 윤리적인 면뿐 아니라, ‘수덕’과 ‘신비적’ 의미도 포함하는 것으로 본다. 이제 천상 스승의 가르침이 어떻게 이 세 부분으로 확장되는지 보기로 하자.”(F. Chiesa, 「스승 예수Gesù Maestro」, o. c., p. 235)

298 “ 출판에 대해 말할 때, 출판된 ‘복음서’에만 국한시켜서는 안 된다고 한 점을 주목해야 한다. 복음에는 스승 예수의 가르침이 담겨 있지만, 가르침이 모두 담겨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의 결론을 떠올려 보자.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이 밖에도 많이 있다. 그래서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하면, 온 세상이라도 그렇게 기록된 책들을 다 담아 내지 못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요한 21,25) ‘사도들의 서간’과 신약성경의 다른 책들을 모두 포함하는 성경 전체를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여겨야 한다. 선한 출판의 사도들을 양성하는 알바의 성바오로수도회의 현관에는 눈부신 빛을 주변에 발산하는 태양 그림이 걸려 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그 중심에 복음서가 있는데, 그 주변에는 출판되어 보급되고 있는 양서들과 잡지, 본당주보들, 단행본들, 조르날리노(Giornalino: 만화 주간지-역주) 등을 비추고 있다. 복음 정신을 전하는 양서들이 복음의 광채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태양 빛이 무지개 15,000개의 색깔을 모두 품고 있듯이, 복음의 빛은 모든 선한 출판물을 비추어준다. 그러므로 이 ‘선한 출판물’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되는지 주시한다면 우리는 곧바로 협력 방법을 알게 될 것이다. 선한 출판을 위해 세 가지 근본적 사항이 필요하다. 1) 사람들을 양성할 것. 2) 서적들을 출판할 것. 3) 서적들을 보급할 것. 보다시피 협력의 방대한 장이 열려 있다.”(F. Chiesa, 「스승 예수Gesù Maestro」, o. c., pp. 417-419)

299 F. Chiesa, 「나는 생명이다Ego sum Vita」, o. c., pp. V-VI.

300 상동, p. VI.

301 1927년 11월 29일 화요일 비망록에 마에스트라 테클라 메를로 수녀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무슨 뜻인가: Ego sum Vita (책).”(Quaderno n. 4, inedito<미 발간>, p. 107 참조) 마에스트라 데레사 라발로 수녀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전집의 마지막 책은 다음과 같은 제목을 붙였다. Ego sum Vita”(A. T. Raballo, Quaderno 19, 미 발간, 1927년 11월 29일 화요일, p. 60)

302 F. Chiesa, 「나는 생명이다Ego sum Vita」, o. c., p. 331.

303 F. Chiesa, 「나는 생명이다Ego sum Vita」, o. c., p. 331.

304 “영신수련은 수련자가 참된 수도자가 되기 위하여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수련기 동안 영혼은 주님을 향해 있어야 합니다.”(T. Merlo, Quaderno B2.5, 미 발간, 1927년 10월 11일 화요일, p. 3)

305 「규칙서Regole」, Pia Società San Paolo, 1927 참조. 같은 해인 1927년에 출판된 책들은 다음과 같다. P. Luigi Pincelli S. J., 「성 이냐시오의 방법에 따른 8일간의 영신수련 코스Corso di Esercizi Spirituali per otto giorni secondo il metodo di S. Ignazio」, 특별히 수도자와 사제들을 위한 편성(compilato per uso speciale dei Religiosi e Sacerdoti), 2 voll., Pia Società San Paolo, Alba, 1927. 그 다음 해 다음과 같은 작품이 출판되었다. L. Bellecio, 「성이냐시오의 방법에 따른 8일간의 영신수련 코스Corso di Esercizi Spirituali per otto giorni secondo il metodo di S. Ignazio」, tradotti e in alcuni luoghi compendiati dal Padre Antonio Bresciani (안토니오 브레샤니 신부가 번역하고 일부 지역에서는 요약본으로 출간됨), Pia Società San Paolo, Alba, 1928. A. F. Da Silva,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의 사상에 나타난 영신수련 여정Il cammino degli Esercizi Spirituaòi nel pensiero di Don Giacomo Alberione」, Centro di Spiritualità Paolina, Casa Divin Maestro, Ariccia, 1981, pp. 33 이하 참조.

306 스콜라스티카 리바타 수녀가 기록한 비망록에는“연장된 영신수련”(Corso di Esercizi prolungati)에 관한 것은 없다. 그러나 미 발간된 1928년의 공책에서 수도회의 여성 줄기들의 양성을 위하여 알베리오네 신부가 제정한 코스와 아주 유사한 주제를 찾을 수 있는데 DF 안에 간결한 형태로 담긴 내용과도 흡사하다. 예를 들어 “피정. 마에스트라 대상(Ritiro. Maestre) 4-28일”의 기록은 인쇄 사도직에 대해 언급하고 있고, 연장된 영신수련 코스 중  1928년 4월 16일에 있었던 내용과 흡사한데 스승예수의제자수녀회의 삶과 더 관련이 깊다. 특별히 주의를 기울였음을 감지할 수 있다. “예수께서는 사도들에게 행하셨던 것처럼 내게도 비슷하게 행하셨다. 사도들은 가난한 어부들이었고, 나는 가난한 농부였다! 그들은 그분의 사명이 무엇인지 알았을까? 인쇄 사도직에 대한 나의 입장도 마찬가지이다. […] 나는 다른 수도회에 있는 이들을 형제자매로 사랑하는 것만 아니라, 우리 사도직을 통하여 그들 모두를 껴안아야 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영광과 이웃에 필요한 선을 베풀기 위하여 다른 일들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 사도직은 다른 이들을 이해하고, 모두 함께 일하며 완성하기 위한 새로운 방식이 된다. 이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시대부터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이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그 방식은 새로운 것이다. 인쇄 사도직의 참된 의미를 깨친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우리는 아주 섬세한 이 사명을 위하여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행복한 영혼들이다. 기도를 통하여 출판이 선을 베풀도록, 그리고 출판일을 하는 이들이 거룩하게 그 일을 할 수 있는 빛과 은총을 얻도록, 또한 널리 보급하도록, 그로써 많은 결실을 맺을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의 존재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으나, 나는 이러한 큰 선을 실천하도록 선택되었다.”(SuorR Scolastica, Quaderno 1928)(미 발간)

307 주세피나 암브로시오 수녀(Suor Giuseppina Ambrosio)의 자필원고 공책, “강의 1-20 + 수도생활에 관한 월피정 Istruzioni I-XX + 1 Ritiro mensile sullo Stato Religioso”참조.(미 발간, 현재 바오로 영성센터에 보관됨)

308 특히 ‘길 진리 생명이신 스승 예수’에 관한 제18강의가 흥미롭다. 꽤 분량이 많은 단락을 인용해 보기로 한다. “우리가 천상 스승께 청해야 하는 큰 은총은 이런 것이다. 곧 항상 우리 성소에 충실할 수 있는 은총을 구해야 한다. 동시에 우리는 우리 출판물이 항상 사목적일 수 있도록 노력한다. 다시 말해서 교구 사제로서의 사목 정신으로 언제나 구원의 진리 안에서 글을 쓸수 있어야 한다. 여러분이 사목적인 출판물을 줄 수 있을 때 여러분은 진정으로 천상 스승을 사랑하는 것이 될 것이다. 사목적인 출판물은 화려하기보다 간결하고 명확해야 한다. 예수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셨고, 우리는 이 말씀이 담긴 출판물을 모든 이에게 전하고 영혼을 구원해야 하며, 모든 가정에 복음의 빛이 도달하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권하고 싶은 스승 예수께 드리는 첫 번째 존경의 표시이다. […] 길 진리 생명이신 스승 예수는 우리의 길이시다. 그 길로 가는 한 우리는 행복하고 잘 지낼 것이며, 우리 사도직 또한 축복받을 것이다. 우리는 이 궤도를 유지하고, 이 선로에서 이탈하지 말아야 하며, 다른 자유로운 길을 택하지 말고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드려야 한다. 길 진리 생명이신 스승 예수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당신께서 저희의 길이 되어주시며, 저희를 비추어주시고, 당신께로 인도해 주시며, 사랑으로 당신 가까이 머물도록 해주소서. - 스승 예수께 드리는 우리의 존경 - 실제로 여러분이 스승 예수께 드려야 하는 존경은 복음 다음에 두 번째로 해야 하는 교리에 대한 연구이다. ‘진리’ - 교리의 첫 부분은 신경, ‘교의’이고, 이를 통해 여러분은 진리이신 예수님을 경외해야 한다. ‘길’ - 두 번째 부분은 규칙과 계명과 덕, ‘윤리’이며 - 길이신 예수님을 흠숭하는 것이다. ‘생명’ - 세 번째 부분은 성사, 미사, 기도를 포함한다. 곧 생명이신 예수님을 흠숭하는 ‘경신례’이다. ‘나는 참된 생명이다.’” 이어지는 다음 강의의 결론에서 알베리오네 신부는 다음과 같이 확언한다.“ 수도생활은 가장 완벽한 방식으로 길 진리 생명을 사는 것입니다. 수련기 동안 수도생활, 서원이 향상되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고, 열정과 도전정신을 가지고 이를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G. Ambrosio, Quaderno 1929, 미 발간)

309 많은 사업 가운데 1927년 3월 14일에 시작한 스승 예수 성당 건립을 위한 알바 보르고 피아베의 굴착공사를 상기시킨다.

310   “‘중차대한 두 가지 소식.’ 신학자께서 그날 저녁, 곧 당신 축일 전야에 바오로가족에게 전달한 소식이다. - 그런데 어째서 큰 소식인가? - 이 소식에 비하면 다른 소식들이 … 작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자, 이것이 두 가지 소식이다. ‘첫 번째는 제지공장 건립을 위한 계약 완결. 두 번째는 로마 분원 새 건물이 들어설 토지매입.’ 수도회를 위해 이 두 가지 사건이 얼마나 중대한 것인지 더 말하지 않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회원들이 중차대한 이 두 가지 소식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벗들은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X, 1927년 8월 20일, p. 12)

311 상동, anno X, n. 3, 1927년 3월 20일, pp. I-XVI.

312 상동, anno X, n. 9, 1927년 9월 20일, pp. 8-9.

313 “토리노 검찰청의 허가를 받은 새로운 일간지가 최근 형제들의 큰 가족에 합류하여 성 바오로의 보호 아래 빛을 보게 되었다. 그리스도교 가정을 위한 참된 보화인 「성가정La Famiglia Cristiana」은 12쪽 분량의 주간지로서 특히 가톨릭 주간지가 없는 교구나 가톨릭 주간지를 갖고 싶어하는 교구를 대상으로 창간되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새로운 설교가에게 보급되어 많은 선한 결실을 맺도록 격려를 보낸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X, n. 9, 1927년 9월 20일, p. 14) 이 정기간행물 「성가정La Famiglia Cristiana」은 몇 달 뒤에 중단되었다가 1931년에 재탄생되었다.

314 “예수 그리스도는 스승이라는 칭호로 불리는 것을 선호하셨다. 사탄은 나쁜 출판물을 통하여 인간 지성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쫓아냈고, 마음과 열망, 활동을 나쁜 출판물로 가득 차게 했다. 스승 예수 축일은 복음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권좌를 지성으로 재확립하고 인간 안에, 삶 안에 복음을 채워나가려 꾀한다. 복음의 힘 있는 말씀으로 지성을 정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을 실현하려는 것이다. 다른 출판물들은 인간에게 미치는 힘이 아주 미미하기 때문이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IX, n. 1, 1926년 1월 20일, p. 11) 이 기사는 축일 홍보를 계속하면서 아홉 가지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315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VIII, n. 10, 1925년 9월 20일, pp. 12-13 참조.

316 상동, anno IX, n. 11, 1926년 11월 20일, pp. 8-9.

317 대회는 6월 30일에 개최되었다. “교황의 강복을 받으며 개최된 복음대회는 20여 명의 추기경과 대주교와 주교들이 참석했고, 피에몬테 교구 신자들과 성직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 교황 성하의 축전이 박수와 환호 속에서 낭독되었다. ‘교황 성하께서는 성바오로수도회의 꼭 필요한 출판-사도직 활동을 흡족해하시며 회원들과 복음대회 참가자들에게 충심으로 축복을 보내십니다. 가스파리(Gasparri) 추기경.’”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X, n. 7, 1927년 7월 20일, pp. 2-5)

318 상동, anno X, n. 7, 1027년 7월 20일, pp. 6-7.

319 “6월은 성 바오로 축일로 막을 내린다. 1월을 성심께 봉헌한 사람들은 6월을 성 바오로께 바친다. 성 바오로에 의해 성심의 사랑으로 인도되는 것이다. 성 바오로는 예수님의 수인(囚人)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사도이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으로 자신을 소모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살았다. 성 바오로께 대한 신심을 하느님께서 기꺼워하신다는 표지로 우리의 이름이 생명의 책에 기록될 것이다. 하느님 곁에 있는 위대한 성인들은 막강한 힘으로 우리를 도와 길 진리 생명이신 천상 스승께 훨씬 더 가까이 다가가고 그분을 따르게 해준다. 곧 모델로서의 길, 가르침을 통한 진리, 우리를 위해 기도하면서 우리에게 전해 주는 은총을 통한 생명이 되신다. 성 바오로는 길이시다. 성령께서는 그에게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처럼 여러분도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라는 말씀을 세 번씩이나 기록하게 했다.(참조: 1코린 11,1; 4,16; 필리 3,17 -역주) 성 바오로는 진리이시다. 그분은 스승이요 박사며, 복음을 ‘나의 복음’이라고 부르며 ‘복음 안에서 탄생했다.’(참조: 1코린 4,15; 갈라 4,19 -역주)고 말할 정도로 복음을 자신의 것으로 하여 전달한 분이시다. 성 바오로는 생명이시다.

그분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같기 때문이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VIII, n. 7, 1925년 1월 15일, p. 1)

320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X, n. 8, 1927년 8월 20일, p. 1.

321 “성바오로수도회는 수도회에 영감을 불어넣어주고 번영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보호해 주는 특별한 수호자들을 모시고 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한 매일의 특별 신심을 기르고 실천하며, 매달 첫날은 수도회 전체가 일치하여 장엄하게 거행한다. 따라서 그 달의 첫 주간은 첫 주간 신심이라는 명칭 아래 고유하고 가능한 행사를 조직한다. […] 여러 가지 신심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려고 한다. 수도회는 성 바오로 사도의 정신과 삶을 특징으로 삼는다. 성바오로수도회는 성인의 이름을 수도회의 명칭으로 정했고, 첫 번째 분원 경당에 성인의 이름을 붙였다. 건립 중인 성당도 성인의 이름을 붙일 것이다. 그로써 매달 첫 월요일을 성 바오로께 바친다. 두 번째로, 인쇄 사도직은 구별되지만 결코 기도의 사도직과 분리되지 않는다. 영혼 구원을 목표로 삼아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전까지 이 사명을 중단하지 않는다. 수도회는 나쁜 출판물 때문에 연옥에서 고통받는 영혼들에게도 관심을 갖는다.

따라서 첫 화요일은 연옥영혼들에게 봉헌한다. 인쇄 사도직은 물질적인 수단이 필요하다. 그런데 성 가정에 필요한 것을 공급하도록 선택받은 성 요셉보다 더 뛰어난 공급자는 없을 것이다. 인쇄 사도직은 보편적 사도직으로서, ‘보편 교회의 주보’에 의지하는 것이 당연하다. 나쁜 출판물은 불신앙과 교회에 대한 증오의 씨를 뿌리고, 종교적 신심 행위와 성사 등을 막아 수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준비 없이 적대감으로 죽음을 맞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한다. ‘임종자들의 보호자’에 대한 묵상을 통해 이러한 악을 개선하는 일은 선한 인쇄 사도들에게 달려 있다. 젊은 회원들은 죽음을 앞둔 이들을 위하여 십자군 연맹(S. Crociata)에 가입하여, 매달 첫 수요일에 그러한 목적으로 특별히 성 요셉께 기도드리고 그날을 경건하게 지낸다. 첫 목요일은 수호천사에게 봉헌된다. 모든 좋은 서적, 모든 좋은 신문은 하나의 천사와 같다. 인쇄기에서 나온 좋은 느낌의 영감자, 강한 결심의 지지자, 영원한 결실을 가져다주는 씨앗을 뿌리는 자로 곧 천사가 되어 찾아가는 것이다. 사실 많은 주보가 ‘천사’라는 명칭을 갖고 천사를 상징으로 삼는다. 지속적이고 조용하며 부드럽게 착한 수호천사라는 것을 암시해 주는 활동을 수행하며 현존한다. 게다가 글을 쓰는 사람은 글을 읽는 사람과 서로 알지 못하는 가운데 소통하는 것이지만, 글을 쓰는 사람의 천사와 글을 읽는 사람의 천사는 서로를 위해 씨앗을 심을 적합한 토양을 준비하고 최대한 소통을 용이하게 해준다. 인쇄 사도직은 스승 예수께서 시작하신 복음화의 계승이고, 천상 스승의 명령을 실행하는 것이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천상 스승께서는 영감자시요, 성장시키는 분이시며, 씨앗에 생명을 주고 싹을 자라게 하신다. 복음의 씨를 뿌리는 이를 지탱시키고 인도하신다. 그분께 첫 금요일을 봉헌하고 보속의 영성체, 곧 아홉 번에 걸친 매 금요일의 (미사와) 영성체를 하고(지금의 9일 기도 방식과 유사함-역주), 기도의 사도직에 대한 목적을 설명한다. 토요일은 마리아께 봉헌한다. 사도들은 어머니께 자신들을 맡기고 자신들의 풍요로운 사도직을 그분께 드린다. 마리아께서는 사도들의 모후이시고 선한 출판의 여왕이시다. 모든 거룩한 저술가들이 가장 아름다운 글을 봉헌하기 때문이다! 문학이나 세속 작품들은 마리아를 모델로 한 가장 아름다운 표현과 정교한 예술 걸작품을 창출해냈다. 복자 그리뇽 드 몽포르는 마리아께 대한 가장 완전한 신심을 보여준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X, n. 8, 1927년 8월 20일, pp. 10-11)

322 ‘알바 - 성 바오로 성전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은 성전 건축 양식의 조화와 경건함을 위하여 적합하게 배치되어야 한다. 따라서 전문적인 연구와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데 이 성전은 건축 양식, 스테인드글라스, 창틀, 그림 등이 모두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었다. 높이 달린 22개의 창문 가운데 ① 14평방미터의 반달형으로 된 스테인드글라스가 4개 있고 ② 정면 중앙을 향해 있는 8평방미터 가량 되는 달걀 형태의 스테인드글라스가 4개 있는데 거기에는 로마인들에게 보내는 성 바오로의 편지, 성 바오로의 회심, 성 바오로의 순교, 성 바오로의 영광이 그려져 있다. 나머지 창들의 스테인드글라스는 각 복음사가의 상징을 담고 있다. 곧 천사와 성 마태오, 사자와 성 마르코, 황소와 성 루카, 독수리와 성 요한. ③ 두 가지 크기로 된, 다시 말해서 6평방미터와 4평방미터의 네 개의 본채부분(아마도 나무 경계를 쳐놓은 제대를 에워싼 사제석?-역주) 위로 열 수 있는 바로크식 장방형 형태의 12개의 창문 장식에는 열두 사도가 그려져 있다. ④ 8평방미터의 반달형 형태로 된 두 개의 창문은 성당 입구의 양편 위에 위치하는데, 성 바오로의 두 제자 성 티토와 성 티모테오를 묘사했다. 성 티모테오는 성 바오로가 사제로 임명한 인물이고 성 티토는 그의 영혼에 “매일 공덕으로 충만하라.”(plenus dierum ac meritorum -역주)는 말씀을 받았다. 이런 것들을 통하여 언젠가 출판물을 통한 복음의 사도들이 될 젊은이들은 최고의 사도 성 바오로의 표양을 늘 지켜볼 것이다. 그리고 주님께서 택하신 열두 사도의 표양을, 우리에게 복음을 보화로 남겨준 복음사가들의 표양을 볼 것이다. 우리는 성 바오로에게서 마음의 회개, 서간 중의 걸작인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복음을 위한 순교에 이르는 노고, 정의의 월계관을, 다시 말해서 성 루카, 성 티토, 성 티모테오, 성녀 테클라 등이 따랐던 영원한 영광을 떠올린다. 이렇게 창문들은 이어지는 역사만 아니라, 하늘의 수호자의 표양을 따라 신학생들이 걸어가야 할 복음선포의 길에 보내주는 격려이며, 하느님께서 그들을 부르시는 길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사도적 삶이 교회가 부여한 사명과 은총의 시작이라고 여길 것이다. 성 티모테오는 거룩한 사제수품을 성 바오로에게서 받았기 때문이다. 또한 사도적 삶을 자신의 참된 목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성 티토는 지상에 제자들을 남겨둔 채로 하늘의 상을 받았다. 덕과 열정의 가장 뛰어난 본보기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뽑으셨고, 당신께서 권위, 권한, 특별한 선물을 주신 사도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현존은 지속적인 배움터가 될 것이다. 그뿐 아니라 복음사가들은 복음을 잘 이해하고, 살고, 모든 피조물에게 전할 은총을 우리에게 불어넣어준다. 성전은 인간에게 가장 가치 있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성전 건축양식은 조화를 이루고, 색채는 아름답고 적절했으며, 인물그림들은 생생하게 말하고 있는 듯 보이며, 각각의 고유한 위치를 잘 보여주고 있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XI, n. 8, 1928년 8월 31일, p. 11)

323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VIII, n. 8, 1925년 7월 20일, pp. 17-18.

324 상동, anno IX, n. 6, 1926년 6월 15일, pp. 2-3.

325 상동, anno X, n. 6, 1927년 6월 15일, pp. 1-3.

326 성 바오로 성전 축성식에 대한 보고서에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피정에 관한 작은 기사가 함께 실렸다.“ 영신수련은 단지 훌륭한 고해성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신분에 맞는 올바른 ‘선택’과 그리스도교 삶을 통하여 지속적이고 진지하게 하느님께 대한 회심을 쉽게 이끌어내기 위해서이다. 금년 ‘성 바오로’에서는 통상적인 내부 회원들을 위한 영신수련 외에 외부 젊은이들 대상으로 여러 종류의 피정을 계획했다. 젊은 여성들을 위한 세 차례의 코스에 참석한 210명의 젊은이들은 그리스도교 삶의 경건함에 호감을 느꼈고, 젊은 남성들을 위한 코스에는 60명의 젊은이들이 아주 진지하게 임했다. 참석을 못한 많은 젊은이들이 그와 같은 행운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으며, 많은 젊은 여성들은 자신들의 차례를 손꼽아 기다린다고 했다. 이제는 성인 남성과 여성들도 피정을 요청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만족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러한 피정에서 무엇보다도 적합하고 확고한 것을 얻을 수 있는 많은 유익이 어떠한 것인지 각자 보게 될 것이다.” (「선한출판 협력자회」, anno XI, n. 11, 1928년 11월, p. 2) 영신수련의 사목적 측면을 늘 염두에 두고 있는 알베리오네 신부는 1930년 피정의 집을 건립하기 위한 첫 발을 내디뎠다. A. F. Da Silva, 「알베리오네 신부의 삶, 활동과 사상의 중심인 길 진리 생명이신 그리스도Cristo Via, Verità e Vita centro della vita, dell’opera e del pensiero di don G. Alberione」, in AA.VV., 「알베리오네 신부의 그리스도 중심 사상의 유산L’eredità cristocentrica di don Alberione 」, o. c., pp. 282-283 참조.

알베리오네 신부의 이러한 계획이 교황 비오 11세의 회칙 「우리의 지성Mens nostra」에서 요청하는 ‘영신수련을 촉진시켜야 할 중요성과 유익함’에 대한 응답임을 입증할 수 있다. 이 회칙과 DF가 일맥상통함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다음 단락을 인용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그리스도의 참된 의미, 초자연적 정신, 거룩한 우리 종교의 본질이 수많은 장애와 장해물로 고통을 겪고 있다. 신앙의 이상적인 활기를 약화시키고, 그리스도적 사랑의 열기를 가라앉히는 자연주의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구원이란 ‘좋은 것들을 무색하게 만드는’(지혜 4,12) ‘헛됨의 유혹’으로 인간을 끌어내리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고독으로 인간을 인도한다. 그곳에서 영혼은 천상의 가르침으로 인간 존재의 참된 가치를 깨닫고, 하느님께 대한 봉사에 응답하며, 죄에 대한 두려움, 하느님에 대한 거룩한 경외심, 지상 것에 대한 헛됨을 느끼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요한 14,6) 분을 관상하면서 ‘옛 인간’(에페 4,22)을 벗어버리고, 자기 자신을 부정하며 겸손과 순명과 극기를 실천함으로써 그리스도를 옷 입어 마침내 ‘완전한 인간’에 이르는, 곧 사도가 말하는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페 4,13)에 다다르게 될 때까지, 더 나아가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라고 말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거룩한 신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열렬한 기도를 자주 바치는 가운데 기도를 통해 얻는 은총의 작용 아래 영혼은 신적 변화의 극치에 이른다.” (「가톨릭 문화La Civiltà Cattolica 」, anno 81°[1930], vol. I, quad. 1909, 1929년 12월 28일, pp. 10-11)

327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X, n. 1, 1927년 1월 20일, pp. 4-6.

328 「규칙서Regole」, Pia Società San Paolo, 1927, Prima Parte, La Pia Società San Paolo, art. III. 1927년 4월, 「선한 출판 협력자회」는 본당 분과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했다. 알베리오네 신부는 회규를 소개하기 전에 협력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성바오로수도회는 인쇄 사도직을 합니다. 다시 말해서 신문, 서적, 주보 등을 통하여 진리와 그리스도교 삶을 보급하는 활동에 전력을 기울입니다. 성바오로수도회는 하느님 말씀의 출판과 보급의 대중화와 하느님 말씀의 수호에 헌신합니다. 마치 사제들이 강론을 통하여 하듯이 말입니다. 수도회는 다음의 것들을 지향하며 일합니다. 사제-저술가를 양성하여 글을 쓰고 수도자들은 인쇄하고 보급을 합니다. 마에스트라-여성 작가와 수도자 여성 기능공들을 양성하여 출판-사도직을 통하여 성경과 전승 안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스승 예수께 긴밀히 결속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전하게 합니다. 이제 성바오로수도회에는 500여 명의 젊은이들이 있고 매년 증가 추세에 있으며, 출판-사도직에 전념하는 200명의 젊은 여성들을 교육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수도회는 본당에 협력자 분과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협력자들은 성바오로수도회의 정신과 목적을 가지고 출판 사도직에 협력하면서 살아갈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본당사제들과 신자들에게 아주 효과적인 도움을 주게 될 것입니다. 동시에 기도를 통하여, 활동을 통하여, 희사를 통하여 센터의 사업을 도울 것입니다. […] 출판 사도직은 성 바오로 사도의 편지들처럼 복음선포 곁에 성경이 있듯이, 오늘날 본당사제들을 위한 보편적인 교육 수단입니다.”(「선한 출판협력자회」, anno X, n. 4, 1927년 4월 20일, p. 5)

329 예를 들어 「가정 성경」의 발간을 알렸다. 사람들이 갖고 다니기 편하게 만든 축소판 성경은 가정과 학교 대상으로 곧, 부모와 자녀, 교사들과 학생들을 위해 거룩한 활동과 강의 또는 교육의 마르지 않는 샘이 되도록 제작되었다. “대중을 위한 것이므로 대중 라틴어 성경에서 번역하여, 교회가 바라는 대로 각주는 교부들이나 교회박사들의 주석, 또는 승인받은 교회 저술가들의 설명을 사용했다. 중요한 것은 「가정 성경」이 주간지에 연재된다는 점이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XI, n. 6, 1928년 2월 15일, p. 27)

330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하느님께서 출판-사도직을 원하신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XI, n. 6, 1928년 6월 30일, pp. 8-9) “하느님께서 출판-사도직을 직접 목적으로 곧 당신 가르침의 사명으로 맡기신다.” (「선한출판 협력자회」, anno XI, n. 7, 1928년 7월 31일, pp. 7-9)

331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X, n. 2, 1927년 2월 20일, pp. 4-5 참조.

332 T. Giaccardo, 「사도의 모후 호칭의 이유, 호칭에서 오는 은총, 호칭기도Regina degli Apostoli, le ragioni del titolo, i benefici del titolo, il culto del titolo」, Pia Società San Paolo, Roma, Alba, Torino, 1928. 알베리오네 신부는 책 소개 글 형태의 자카르도 신부에게 보내는 편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책에 설명된 사상, 생각, 느낌, 존경은 우리에게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함께 묵상했고, 연구했으며, 실천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이러한 요소들이 잘 정리되어 다른 이들을 위한 책으로 출판된 것은 유익하고 가치 있는 일이며, 분명히 마리아께서 기뻐하실 일입니다.”(G. Alberione, Alba, 1928년 3월 19일)

333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XII, n. 4, 1929년 4월 16일, pp. 6-7 참조.

334 자카르도 신부는 ‘출판의 여왕이신 마리아’께 한 장(章)를 할애하여 서론과 세 개의 항목으로 구성했다. 곧 출판의 왕국, 출판에서의 마리아의 왕국, 마리아가 지휘하는 인쇄 사도직. 끝머리에는 알베리오네 신부의 성소 설명을 첨부했는데, 자카르도 신부의 성소와 수도회 발전에 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에 그 글의 서두 일부를 인용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우리 성 바오로의 아들들, 인쇄 사도직의 작은 사도(ministri)들은 출판물이라는 수단을 통하여 교회를 수호하고 전파하기 위하여 수도서원을 통해 교황께 결속되고, 교황 성하의 뜻에 따라 사도직을 수행한다. 인쇄 사도직은 살아계신 구세주 하느님의 살아 있는 말씀이 책의 옷을, 신문의 옷을 입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명확한 훌륭한 강론이 살아 계신 구세주 하느님의 살아 있는 말씀인 것과 같다. 인쇄 사도직은 복음의 수호, 설명, 보급, 적용, 대중화이다. […] I. ‘출판의 왕국.’ 이 왕국의 능력에서 마리아의 왕관이 빛을 발한다. […]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나라 확장을 의무로 삼고 있는 그리스도교적 열정과 인간 활동의 새로운 모든 부문은 하느님의 선물을 통하여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를 여왕으로 인정하고 그분의 지배에 종속하는 오늘날 출판 현황은 인간 활동의 가장 두드러진 표현이요, 가장 열정적인 수단 중 하나이다. 가장 경이로운 발전, 가장 놀랄 만한 발전은 최근 몇 년 동안 출판분야에서 이루어졌으며, 출판에 관한 것이었다. 인간의 지적 활동 대부분은 출판에서 이루어졌다. 신문은 오늘날의 굶주림이고, 갈증이며 휴식이다. 신문은 창안을 일으키고, 의지를 움직이고, 양심을 형성하고 여론을 지배한다. 신문, 출판을 시대의 제왕이라고 한 것은 아주 잘 맞는 그야말로 의미심장한 표현이다. 또 이렇게 대단히 중요한 왕국, 이러한 막대한 힘, 이러한 생명력의 결정적 표명, 이러한 더할 나위 없이 고귀하고 효과적인 마리아의 열정적인 활동은 마리아를 여왕으로 모시게 한다. 마리아는 출판을 돌보시고, 출판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성모 마리아를 모후로 받아들이고 그분께 감사드린다.”(T. Giaccardo, 「사도의 모후Regina degli Apostoli」, o. c., pp.197-199)

335 Fr. Maggiorino S. Caldellara가 바오로 영성 센터에 넘겨준 특별기획인 “1928년. 스승 예수의 첫 제자 수사들” 참조.

336 이 소식은 「인쇄 사도직 협력자회」(UCAS) 12월호에는 실리지 않은 기능공들의 보조자 조반니 마렌고(Sig. Giovanni Marengo)에 관한 이야기에서 볼수 있다. “훌륭한 바오로인 한 명이 현재 조국을 위한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수도회 밖에 머물면서 영신수련을 하기 위하여 10일 동안 우리와 함께 지내게 되었다. 그를 다시 만나게 되어 우리는 대단히 기뻤다. 특히 그의 자상한 보살핌을 받던 기능공들은 그를 위해 큰 축제를 벌였다. 그는 몇 달 후에 돌아와 우리와 함께 지내게 될 것이다.” (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XI, n. 12, 1928년 12월 12일, p. 5) 1929년 5월호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제자들은 뜰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의 아름다운 조각상을 모셨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XII, n. 5, 1929년 5월 16일, p. 6)

337 G. Alberione, Alba 29/05/1929, 알베리오네 신부와 자카르도 신부 사이에 주고받은 서신 참조. (성바오로수도회 총본부의 바오로가족 전체 역사 문서보관소에 보관)

338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XII, n. 7, 1929년 7월 16일, p. 2.

339 비오 11세의 「예수 성심께 바치는 보속에 관한 회칙Lettera enciclica della riparazione che tutti debbano al Cuore Sacratissimo di Gesù」, 「가톨릭 문화La Civiltà Cattolica 」, anno 79°, vol. II, quad. 1871, 1928년 5월 23일, pp.385 이하 참조.

340 Quaderno n. 6, inedito, 1928년 5월 18일 금요일, p. 177 참조.

341 F. Chiesa, 「보속Riparazione 」, 회칙 「자비로우신 구세주Miserentissimus Redemptor 」에 대한 한 달 간의 강의로 예화를 곁들인 주석, L.I.C.E., Lega Italiana Cattolica Editrice, Torino, 1930. 저자가 머리말에서 “Alba, 1929년 공현 대축일”이라고 표기한 점을 주목해야 한다.

342 “ 교회 안에는 많은 수도회가 존재한다. 오래된 수도회나 최근에 창립된 수도회 모두 영혼을 위한 풍요로운 결실을 염원한다. 오늘날 예언적이고 필수적인 인쇄 사도직에 전념할 수도회가 특히 필요하다. 인쇄 사도직의 역사는 성경만큼이나 오랜 것이지만 오늘날에는 최근의 발명과 현대적 사회 조건이 부여한 새로운 형태를 입고 새로운 효과를 내며 새로운 필요가 되고 있다. 그러한 사도직을 위하여 두 수도회는 교회법에 의해 수도회로 승인받았다. 이들 ‘성바오로수도회’(남성 줄기)와 ‘성바오로딸수도회’(여성 줄기)는 편집이나 경영에서는 구별되지만, 공통된 목적과 수단, 공통된 정신에서 상호간의 일치를 유지한다. -‘목적’: 그리스도교 진리를 설교하는 것처럼 두 수도회 모두 말씀을 통하여, ‘출판’을 통하여 설교하고, 회원들을 성화시키고, 사람들을 천상으로 인도함으로써 천상 스승의 배움터로 이끄는 것이다.

‘수단’: 자신의 성화를 위해 공동생활, 수도서원, 신심실천, 매일의 사도직, 덕의 실천 등을 활용한다. 그리스도교 가르침을 전하기 위하여 회원들은 다음과 같은 일에 전념한다. ① 통교의 정신으로 거룩한 복음과 복음의 가르침을 설명하고 전달하며 모든 인쇄물, 곧 신문, 소책자, 서적 저술에 전념한 다. ② 출판의 전 과정, 곧 식자, 인쇄, 재단, 제본 등의 작업을 수행한다. ③ 다양한 형태의 도서관 사업, 본당주보, 주간지, 성경 활동 등을 통하여 널리 알리는 일에 전념한다. ‘정신’: 오류가 없는 진리의 스승인 가톨릭교회에서 보호되고 가르침 받은 대로 모든 피조물을 가르쳐야 하는 것은 바로 천상 스승의 명령이다. 복음선포는 선택된 그릇이요 이방인의 박사인 성 바오로 사도의 표양을 따르고, 그분의 보호 아래 단순한 형태로 이루어져야 하고, 길 진리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 전체를 전하는 것이어야 한다. ‘영원한 생명이신 당신(오 아버지시여!)을 알게 하고, 당신이 보내신 분을 알게 하기’ 때문에 주님과 성경 저자들, 사도들, 교부들, 박사들, 교회가 이 사도직의 모델이요 스승이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XII, n. 8, 1929년 8월 16일, p. 1)

343 알바 수도원에 대한 소식 가운데 조반니(Sig. Giovanni) 군이 군복무에서 돌아온 것과 평수사들 (Discepoli Riparatori)의 착복식 소식이 있었다. “우리의 젊은 조반니 군이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왔다. 그는 일주일간의 영신수련 후 ‘평수사’들과 함께 착복식을 했다. 군생활의 모든 위험에서 그를 잘 지켜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그가 더욱 풍요로운 사도직을 할 수 있도록 축원하자.”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XII, n. 9, 1929년 9월 16일, p. 12)

344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XII, n. 9, 1929년 9월 16일, p. 5. 이 책 ‘입문’ n. 166 참조.

345 “성바오로수도회의 인쇄 사도직에 헌신하는 ‘평수사들’은 천상 스승의 제자들이다. 그들은 두 가지를 목표로 삼는다. 1) 경건한 삶과 그리스도교 덕행의 실천으로 자신의 성화를 이루며, 나쁜 출판물 때문에 야기된 많은 죄를 보속한다. 2) 식자, 인쇄, 제본, 제지, 잉크, 보급 등 인쇄 작업 전반에 대한 이론적이며 실천적인 공부와 기술을 연마한다. 이들은 중요한 신심 두가지를 실천하면서 스승 예수를 따른다. 곧 매일의 성체조배와 미사성제를 적극적으로 참여하고(매일 두 대의 미사), 일주일에 두 번(화요일과 금요일)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며, 자신들의 모든 힘을 쏟아 다양한 작업에 전념하면서 늘 기쁘고 만족스럽게 살아간다. 인쇄 작업에 관한 모든 이론적, 실천적인 지식을 완전히 갖추어야 할 뿐 아니라 수도회에 관해서도 잘 알아야 한다. 조판이나 인쇄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인쇄를 위한 잉크를 준비하고, 식자를 위한 활자를 주조하며, 인쇄용지 제조까지 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식자실에서 인쇄소로 뛰어다니고, 연판실에서 인쇄 잉크실로, 기계 작업장에서 제지 작업장으로, 그뿐 아니라 출판된 서적 보급을 위해 거리로 나서야 하지만 그 움직임들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이 모든 다양한 작업은 매우 정밀한 과정을 거쳐가야 한다. 또한 이러한 일은 오직 하나의 정신으로 추진되어야 하는데 곧 공로, 하늘을 위해 많은 공로를 얻어서 많은 영혼을, 아주 많은 영혼을 구하는 것이다. 천상 스승의 제자들이 많이 증가하고 있는데, 특히 근래에 부쩍 늘었다. 부르심을 느끼게 하는 분은 천상 스승이시다. 그분께 당신을 따르는 이들이 더 많아지고 또 부르심 받은 이들 중 아무도 이탈하지 않고 모두 관대하게 응답할 수 있기를 기도드리자. 우리의 친애하는 협력자들과 특히 경애하는 본당사제들에게 천상 스승의 제자들, 인쇄 사도직의 성소자들을 많이 보내주도록 당부하는 바이다. ‘가톨릭 남성 청년회’에서 종종 깊은 신심을 보이는 청소년과 청년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들을 수도생활로 인도하는 것은 훌륭한 사랑의 실천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들 또한 수도생활에서 많은 공로를 쌓을 것이다! 순진무구한 어린이들을 만날 때 많은 위험에서 벗어나 성소의 싹을 틔울 수 있는 수도회를 알게 해준다면 더 큰 공로를 쌓게 된다. 때때로 홀로 있거나 여러 사람의 가족과 생활하고 있는 젊은이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들의 마음에 신심과 온유함이 있다면, 수도성소에 대한 특별한 희망을 일구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적절한 기회는 하느님께서 만들어주신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XII, n. 10, 1929년 10월 16일, pp. 2-3)

346 F. Chiesa, ‘Prefazione’, in 「수덕 입문Introduzione all’Ascetica」, o.c.,p. VII.

347 F. Chiesa, 「수덕 입문Introduzione all’Ascetica」, Pia Società San Paolo, Alba, Roma, 1929.

348 F. Chiesa, 「수덕 입문Introduzione all’Ascetica」, o. c., p. 166.

349 G. Alberione, Alba 04/11/1928, 알베리오네 신부와 T. 자카르도 신부가 주고받은 서신 참조. (성바오로수도회 총본부의 바오로가족 전체 역사 문서보관소 보관)

350 G. Alberione, Alba 10/01/1929, 알베리오네 신부와 T. 자카르도 신부가 주고받은 서신 참조. (성바오로수도회 총본부의 바오로가족 전체 역사 문서보관소 보관)

351 G. Alberione, Alba 11/09/1929, 알베리오네 신부와 T. 자카르도 신부가 주고받은 서신 참조. (성바오로수도회 총본부의 바오로가족 전체 역사 문서보관소 보관)

352 G. Alberione, 1929?, 알베리오네 신부와 T. 자카르도 신부가 주고받은 서신 참조.(성바오로수도회 총본부의 바오로가족 전체 역사 문서보관소 보관)

353 A. F. Da Silva,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의 사상 안에서 영신수련의 여정Il cammino degli Esercizi Spirituali nel pensiero di Don Giacomo Alberione 」, o. c.., pp. 72 이하; A. F. Da Silva, 「G. 알베리오네 신부의 삶, 작품, 사상의 중심인 길 진리 생명이신 그리스도Cristo Via, Verità e Vita centro della vita, dell’opera e del pensiero di don G. Alberione」, in AA.VV., 「알베리오네 신부의 그리스도 중심 사상의 유산L’eredità cristocentrica di don Alberione 」, o. c.., pp. 263 이하; A. F. Da Silva, 「요한 14,6: 바오로가족을 위한 카리스마 유산Gv 14,6: eredita carismaticà per la Famiglia Paolina 」, in “Spezzate il pane della Parola”, Dossier per l’Anno Biblibo Paolono 1991-1992, Roma, Casa Generalizia SSP, 1991년 1월, Pro manuscripto, pp. 52 이하.

354 F. Chiesa, 「성직자 양성의 일치를 위하여Per l’unità nella formazione del Clero 」, Pia Società San Paolo, Alba-Roma, 1932.

355 F. Chiesa, 「성직자 양성의 일치를 위하여Per l’unità nella formazione del Clero 」, o. c., pp. 130-131.

356 알베리오네 신부의 사상과 다음에 나열하는 프란치스코 키에사 신부의 표현이 일치하는 것을 숙고해보라. “그래서 사제에 대하여 무엇을 말하는가? 사제는 또 다른 그리스도가 아닌가? ‘사제는 또 다른 그리스도’(Sacerdos alter Christus) 만일 그렇다면, 신학생 시절부터 신학교에서 그렇게 살도록 해야하고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모습을 갖추실 때까지’(donec formetur Christus in vobos: 갈라 4,19) 그리스도의 표양을 본받으려는 지속적인 공부로 사제직을 준비해야 하지 않겠는가? 사제직의 목표는 사람들 사이에서 예수님의 사명을 계속하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Sicut misit me Pater, et ego mitto vos: 요한 20,21) 그렇기 때문에 사제가 사명을 어떻게 실행하느냐에 따라 자신을 파견하고 본보기가 되어주시는 그리스도와 일치하게 된다. 마치 금속선이 전류의 원천에 접속되어 있을 때 모터를 작동시킬 수 있는 힘을 받는 것과 같다. – 또한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비유처럼 - 사제도 그와 같다 - 사제가 예수님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영혼 안에 예수님의 구원을 전할 수 없다. 주님과 오직 하나가 되어야 한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Sine me, nihil potestis facere: 요한 15,5) 그렇다면 또 다른 그리스도가 되기 위하여, 또 그리스도 신비의 포도밭에서 가장 풍성한 열매를 맺기 위하여 잘 준비해야 하는 신학생은 과연 어떠해야 하는가? 자신 안에 예수님 사명의 세 가지 요소를 통합시키기 위하여, 곧 자신이 ‘길 진리 생명’이 되기 위하여 최대한 부지런히 노력하는 신학생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수님을 본받기 위해 표양을 통하여 신자들의 ‘길’이 되고, 자신이 가르쳐야 할 때가 오면 가르칠 수 있을 정도로 예수님의 참된 가르침에 심화된 ‘진리’가 되고, 나중에 성사를 집전하고 신자들에게 성무집행을 할 수 있도록 자주 성사생활에 참여함으로써 ‘생명’이 되어야 한다. 지성과 마음, 가르침과 삶, 면학과 덕성, 신학과 행동, 이론과 실제, 이 모든 것이 그 안에 하나가 되어야 한다. 흔히 말하듯, 신학생은 모순에 빠지는 일 없이, 아무 조건 없이 ‘조금씩 모두’ 갖추어야 한다.”(F. Chiesa, 「성직자 양성의 일치를 위하여Per l’unità nella formazione del Clero 」, o. c., pp. 52-53)

357 예를 들면, 제지공장에서 일하는 평수사들의 사진을 실었고(「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XIII, 1930년 7월 17일, p. 5 참조) 1931년 8월에는 이탈리아어 성경을 새로 번역하기 시작했음을 알렸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XIV, n. 8, 1931년 8월 17일, p. 14 참조) 또 1932년 2월호는 각 4권으로 된 다양한 편집본의 성경 발간에 대한 알베리오네 신부의 원대한 계획을 실었다. 곧 라틴어-이탈리아어 성경, 라틴어-프랑스어 성경, 라틴어-영어 성경, 라틴어-스페인어 성경이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XV, n. 2, 1932년 2월, p. 10 참조)

358 「인쇄 사도직 협력자회」(UCAS) 1929년 12월호는 1930년의 달력을 발간하면서, 알바 수도회의 여러 공동체를 찍은 12장의 사진을 실었다. (「선한 출판협력자회」, anno XII, n. 12, 1929년 12월 17일, pp. 4-15 참조) 1930년 7월호는 주님 성체성혈대축일에 거행한 장엄한 성체거동 사진을 실었다.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XIII, n. 14, 1930년 7월 17일, pp. 10-11 참조)

359 이미 언급한 분원 설립 외에 새로 개설한 분원은 다음과 같다. 1929년 브레샤(FSP, 8월 8일), 우디네(FSP, 9월 17일), 제노바(FSP, 11월 25일), 팔레르모(FSP, 11월 28일), 1930년 노바라(FSP, 5월 10일), 트레비소(FSP, 6월 27일), 안코나(FSP, 7월 10일), 볼로냐(FSP, 7월 20일), 산프레(SSP, 9월 15일), 나 폴리-카포디몬테(FSP, 10월 8일), 1931년에는 이탈리아 10여 곳에 분원이설립되었다.

360 1931년 바오로인들은 브라질, 아르헨티나, 미국으로 진출했고, 성바오로딸수도회와 스승예수의제자 수녀회도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 진출했다.

361 「인쇄 사도직 협력자회」(UCAS) 2월호에 알바 모원에 대한 소식이 실렸다.

“1월. - 수도회는 1월 한 달을 스승 예수께 봉헌했고, 프리모 마에스트로께서는 3일 성체조배 시간에 1월 한 달 동안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모습을 갖추실 `때까지’(donec formetur Christus in vobos)에 따라 성장하기 위해 더욱 앞으로 나갈 은총을 얻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사생활을 본받기 위하여 이 달을 예수님의 청년기에 봉헌했는데 프리모 마에스트로께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다. “우리에게 있어서 성장한다는 것은 더 거룩하고, 더 지혜롭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삶의 날수를 늘여가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신심, 더 깊은 정신을 획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자들인 우리는 제자로서 스승을 본받아야 한다. 스승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그렇게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quemadmodum ego feci ita et vos faciatis)” ( 「선한 출판 협력자회」, anno XV, n. 2, 1932년 2월, p.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