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현해야 할 것
I. ‘최상의 삶’1
오늘날은 과학지상주의와 기술만능주의의 병으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모든 학문, 발명, 발견은 각각 창조라는 방대한 책의 한장章이다. 그 하나하나는 하느님 창조사업의 인식이요, 마치 눈, 혀, 의지가 인간에게 도움이 되듯이 하느님께 나아가기 위한 수단으로서 인간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나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왜 살고 있는가?”라는 자문을 하지 않는다. 지식, 발명, 발견에 대해서도 그렇다. 사람들은 단지 그것을 소유하는 것만 좋아하고, “누가 이 모든 것을 만들었는가, 왜 나에게 이것이 주어졌는가, 무엇에 쓰이는 것인가?”라고 묻지 않는다.
“모든 것이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것입니다.”2라는 성 바오로의 말씀대로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 하느님께, 인간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
학문을 깊이 탐구하면 하느님께 이르는 길인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된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아들이도록 준비된다.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사물을 창조하시면서 인간이 이를 알도록 비추어주셨고, 인간을 들어 높이기 위해 본성 안에 각인되어 있지 않은 다른 진리를 계시하고자 하셨다. [그리고] 인간이 이성을 잘 사용하고 계시를 받아들이고 믿는다면 인간이 하느님을 볼 수 있게 준비하신다.
죄가 관습, 경신례, 사람들 사이에 혼란을 가져온 것처럼 철학과 과학에도 혼란을 가져왔다. “하느님처럼 되려는”3 인간의 교만 때문에 철학과 과학은 자주 신학과 신앙에 도달하지 못하고, 인간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인간을 종으로 만들어 그 목적 달성을 방해한다.
인간의 지식knowledge은 고귀한 무기지만 자주 인간을 거슬러 사용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행하신 일의 계승자인 우리 사제들은 지식을 다스려, 지식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하느님을 알고 결국 발견하도록 그들을 비추고 인도하는 임무를 완수하고 있는가? 사제가 이러한 방면에서 활동하기 위해 그리고 지식인들을 이성에서 계시로, 인문학에서 신적 학문으로 들어 높이기 위해서는 그들이 있는 곳까지 찾아가야 할 것이다. 마치 하느님의 아들이 길 잃은 양인 인간을 찾기 위해 인간이 되시고, 인간을 하느님 아버지께 다시 데려가신 것처럼. 이 때문에 교황청 프로그램은 비오 10세 이전과는 달리 신학생들에게 인문학을 더 많이 배우도록 촉구하고 있다.
성 대 알베르토4 축일의 ‘본기도’5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기도한다. “인간의 지혜와 신앙을 조화시키기 위하여 위대한 성 알베르토 주교를 보내주신 하느님, 우리로 하여금 그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며 지식에 진보하여 당신을 더욱 깊이 알고 사랑하게 하소서.”
현재는 지성인들을 신학의 문으로 인도하고 그들 안에 다른 빛, 곧 그리스도의 빛에 대한 열망을 고무시키는 여러 학문을 철학에 통합시키는 것이 부족하다. 이 빛을 통해 인간은 하늘의 충만한 빛에 이를 것이다.
신학과정 중에 학교에서 다루는 내용 외에, 성 토마스의 「신학대전」(철학, 신학 대사전)을 연구하면서 고대 학문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정리하고 이를 통합하고자 한 성인의 놀라운 행위에 관하여 참사위원 키에사와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언제나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하느님의 섭리가 새로운 아퀴나스를 일으켜 주시어 분산된 지체, 곧 여러 학문을 간략하게나마 체계적이고 명료한 새로운 통합방식으로 정리하여 그 모든 것이 한 몸을 이루도록 함께 마음을 모아 기도합시다.”
지성인들은 은총이라는 하느님의 도움 외에 지식이라는 인간적 도움도 받게 될 것이다. 모든 학문은 철학을 통해 신학에 고유한 섬광을 보낼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학문은 다양성 안에서 일치를 이루게 될 것이고, 신앙의 겸허함을 통해 제3의 계시,‘영광의 빛’6을 얻게 될 것이다.
기도를 많이 한 다음 이러한 것들을‘신학 과정’중 하나의 시도로 논문 시리즈를 만들기로 했다.7 참사위원 키에사는 독일인, 영국인, 프랑스인들 사이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기에 그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신학, 철학, 교회법과 민법 분야의 학위가 있고 인문학의 방대한 지식(모든 세부적인 분야는 아니지만 인문학의 원칙, 사용, 적용, 목적 등)을 겸비하고 있었다.
많은 논문을 참조했고, 「하느님 모범Divino esemplarismo」8을 길잡이로 삼았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이러한 시도를 검토조차 하지 않았고, 마치 철부지의 환상으로 간주했다.
그럼에도 그는9 확신있게 하늘나라에 계신 천상 스승을 흠숭했고, 영원한 진리이신 그리스도께 드리는 그의 영원한 찬미를 통해 그곳에 계신 보편주의자 성 바오로 사도와 함께할 것을 염원했다. (기도의 사명을 수행하는) 스승예수의제자수녀회를 포함하여 바오로가족이 지상에서 바치는 흠숭은 이러한 은총을 성체이신 천상 스승에게서 얻을 것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루어 주신다는10 것이 사실이라면 믿고 기다리며 신앙 안에서 겸손하게 일하자.
성바오로수도회는 “너 왜 여기에 왔는가?”11라고 자주 자문해야 할 것이다. 수도회는 언제나 지성인을 마음에 두어야 한다. 복음은 신성한 것으로 결국 모든 이의 정신에 부합하는 것이다. 모든 시대의 사람에게 응답하면서 모든 질문에 답을 줄 수 있다. 지성인을 사로잡으면 낚싯바늘로만이 아니라 그물로 고기를 낚는 셈이다.
그러면 그리스도-하느님 안에 이성과 신앙이라는 두 자매의 완전한 포옹이 [이루어질] 것이다.
II. 학문 연구
철학, 사회학, 신학, 법학에 관해서는 학위를 받기까지 학업을 계속할 필요가 있다. 제노바 신학교에는 학위를 수여하는 교황청 대학이 있었다.12 참사위원 키에사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학위가 그대에게 지식을 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학위는 성직을 수행할 수 있다는 더 장엄한 선언이요 승인입니다. 그대는, 나는 지식 면에서 그리스도교 교의를 가르치는 일에 적합하도록 노력했습니다. 지금 나에게 부족한 모든 것, 가장 부족한 것에 대해서는 ‘복음을 전하는 이들에게 주님께서 말씀해 주실 것이다.’13라는 하느님의 약속에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큰 신뢰를 가지고 사제직에 임할 수 있을 것입니다.”
1906년 6월 30일 특별한 빛이 왔다.14
이 부富는 바오로가족이 그 사명에 응답하는 정도에 따라 하느님이 주실 것이다.
이와 같은 노선에서 일을 해나갈 수 있다.
III. 은총의 중개자, 마리아께 드리는 공경
어느 꿈에서 그는 마리아께 바오로가족이 ‘지금’ 공경의 표시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이 역사적 순간에 그리스도인에게서 어떤 공경을 기대하고 계신지 여쭈어보았다. 마리아는 은총이 충만한 분답게 하얀 빛에 감싸여 나타나셨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들었다. “나는 천상 은총의 어머니다.”15 이는 현재 가련한 인류가 당면한 필요에 상응하는 대답이요, 마리아가 하늘에서 행하고 계신 ‘은총의 보편적 중개자’16의 임무를 더 잘 알게 해준다.
여기 인도를 받고 있는 반半 장님이 있다. 그리고 일이 진행되어감에 따라 그가 늘 앞으로 나아가도록 빛이신 하느님에게서 그때 그때 비추임을 받았다. 하느님은 빛이시다.17
다른 몇 가지 사항은 후에 보게 될 것이다.
다음과 같은 선물에 대해 주님께 감사드린다.
1) 철학과정 중 정결을 위해 성 토마스의 허리띠를 착용한 것.
2) 신학과정 중 신학생 사이에 결성된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그룹에 가입한 것.
3) 신학과정 중 ‘소년 예수의 서클’일원이 된 것.
4) 잇달아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가르멜 산의 복되신 마리아, 고통의 성모 마리아 스카풀라를 받은 것.
5) 사제직을 수행한 첫 해에 성체흠숭 사제회에 가입한 것.
6) 도미니코 제3회에 가입한 것과 나에게 큰 도움이 된 알바시의 도미니코 제3회원 지도신부로 있었던 것.
7) 특히 1902년부터 기도의 사도직을 행한 것.
8) ‘성 요셉 선종회’와‘선종의 성모회’일원이 된 것.18
1 이러한 주제에 관해서는 San Paolo, 1955년 2월-1959년 9월(CISP pp. 1195-1254) 그리고 UPS II, 149-161 참조.
2 “Omnia vestra sunt, vos autem Christi, Christus autem Dei.”(1코린 3,21.23 참조)
3 “eritis sicut Dii”.(창세 3,5 참조)
4 Sant’Alberto Magno(1193-1280), 1931년에 시성. 자연과학 연구의 수호자.
5 Missale Romanam ‘성인 고유’, 11월 15일자 참조.
6 ‘lumen gloriæ’는 인식 능력을 강화시키는 초자연적 ‘덕성’(virtus)으로서 인지능력이 하느님의 본질을 꿰뚫을 수 있게 한다. ‘lumen gloriæ’의 필요성은 이를 부정한 Beguardi들에 대항하여 비엔나 공의회(프랑스)에서 확정되었다. 헌장 Ad nostrum qui, 1312년 5월 6일. Denz.-Schönm. 891 이하 참조.
7 Francesco Chiesa, Lectiones theologiæ dogmaticæ recentiori mentalitati et necessitati accomodatæ Vol. I: De constitutione theologicæ mentalitatis Vol. II: De Deo Uno-De Deo Trino-De Deo Patre Vol. III: De Deo Filio-De Deo Spiritu Sancto Vol. IV: De Sacramentis-De Sacramentalibus-De Oratione.
8 E. Dubois, De exemplarismo divino seu de trino ordine exemplari et de trino rerum ordine exemplato, Roma 1897 참조.
9 주어는 참사위원 키에사다.
10 요한 14,13 참조.
11 “ad quid venisti?” 이 질문으로써 주로 존재 또는 특별한 임무의 ‘목적’을 표현한다.
12 제노바 신학교에는 “Almum et Apostolicum genuensium theologorum S. Thomæ Aquinatis Collegium”이 있었다. 이탈리아의 여러 교구에서 온 사제들이 여기서 시험을 치르고 학위를 받았다.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는 이 곳에서 학사, 석사, 신학박사 학위를 1907년 2월 18일, 같은 해 12월 17일 그리고 1908년 4월 9일에 받았다. 그가 신학박사라고 문서에 명시된 날짜는 1908년 4월 10일이다.
13 “dabit verbum evangelizantibus.”(‘Vulgata’: ‘대중라틴어성경’, 시편 67, 12) 예루살렘 성경에 따른 원전의 본문은 다음과 같다. “주님께서 말씀을 내리시니 기쁜 소식 전하는 이들이 대군을 이루네.”(시편 68,12)
14 아직까지 우리는 이 ‘빛’의 의미를 모른다. 다만 그 전날인 1906년 6월 29일에 알베리오네 신학생이 차부제품(Suddiaconato)을 받았다는 사실만 알 수 있다.
15 “Sono la Mater divinae gratiae.”
16 마리아의 이 호칭이 알베리오네 신부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는 금으로 된 실과 같이 그의 온 존재를 연결해 주는 일련의 사건으로 판명된다.
그의 첫 책은 성모님께 바친 「케라스코의 복되신 은총의 동정 마리아B. M. Vergine delle Grazie di Cherasco」(1912)였는데, 이 점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마리아께 감사드리기 위해 1909년 「은총의 성모님La Madonna delle grazie」이라는 소책자[를 통해 출판-] 사도[직]을 시작했습니다. 천상 스승께서 구원사업을 [시작하셨을 때와] 같이 마리아와 함께 출발하는 것, 그것은 특별한 은총의 보증이 됩니다. 하느님은 마리아를 예수님께 이르는 길로 정하셨고, 또 예수님은 성부께 이르는 길로 정하셨습니다.”(1953년의 자필원고 쪽지) 그의 마지막 노고 중 하나는 Luigina G. Provera 박사와 Lydia Bonicco 박사가 운영하는 Rosta(Torino)의 “Mater Divinæ Gratiæ” 센터 유지에 관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알베리오네 신부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이와 연관된 교의의 승인을 위해 제안을 했다는 사실이다.(A. Damino, Don Alberione al Concilio Vaticano II, Ed. Archivio Storico Generale della F.P., Roma 1994, pp. 19 참조)
17 “여기 인도를 받고 있는 반 장님 … ”, 이 부분은 거의 판독하기 힘든 글씨로 썼는데, 그 시기에 그분의 건강 상태를 잘 증언해 준다.
18 이 짧은 원고로써 저자는 ‘하느님이 바오로가족에게 베푸신 은총의 풍성한 부’에 대한 ‘감사’의 마지막 동기를 결론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