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면서
「성 바오로」지 1953년 11월호에 발표된 이 소책자는 모음집 「바오로가족에게」 (20-49쪽)에 첨부되었다. 우리는 이 초판이 초고라 생각하기에 이를 택했다.
창립자 사상의 발전은 의미 있는 소제목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곧 원리, 사회학 연구, 자연적 토대, 초자연적 토대, 수도 공동체와 교회 안에서의 친화력, 바오로가족 사이, 국내 관계와 국제 관계….
작품의 열쇠를 제공하는 네 가지 ‘원칙’이 있다. 1)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2) 삶은 “모든 이가 살아야 하는 의무요, 자신의 완덕을 위한 것이고 이웃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사회성이 필요하다.” 3) “인간은 본성적으로 사회안에서 살라고 하느님이 정해주셨다.” 4) 사회는 “개인이 함께 모여 사는 곳이다. 공동목표를 위해 모인 집단이기에 합법적 권위의 통치 아래 힘을 수렴하며 그 목표를 수행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사회학에 대한 연구가 시급하다는 것이다. “사회 안에서 사도직을 실행해야 하고, 관계를 성화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성은‘ 대단히 다양한 성격과 기질이 모인 구체적인 상황에서 출발하면서’ 일상적으로 지향해야 할 목표다. 그러나 신비체 사상이라는 높은 가치를 고려하지 않으면 사회성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기 힘들다. 여기서 ‘사회의식’을 무엇보다 수도회 내부에 적용시켜야 하고, 이러한 의식이 바오로가족을 결속시켜야 한다.
이 소책자는 사상의 명료함과 현실성이 있고, 사회성에 대한 다양한 표현과 관련된 일련의 지시, 공동체 안에서의 관계, 그룹 안에서든 국제적 범위에서든 사회 관계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관점을 설명하고 있다.
이 소책자의 자필원고는 총원의 문서고 안에 있는 ‘성바오로’라는 이름이 붙은 서랍에 보관되어 있는데, 두 가지 크기(11cm×18.2cm와 15cm×19.3cm)의 종이 23쪽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필원고는 삭제, 첨가, 수정 및 통합 등 다양하게 공을 들였다. 저자는 제목을 사회적 양성이라고 기록했지만, 사실 이 제목은 어디에도 없고 다만 언급한 소책자 표지에만 남아 있다. 비서의 손을 통해‘ 날짜는 1953년 10월 28-31일, 성 바오로San Paolo’라고 원고의 수신처가 쓰여 있다. 사랑의 역할에 관해 설명하고 있는 네장의 종이가 1953년 9월 19일자로 “이미 출간된 「성 바오로」지에 덧붙여”라는 글로,‘ 바오로가족 안에서’라는 제목으로 삽입되었다. 자필원고에 비해 출판된 두 개의 출판본에 나타난 수정과 위치 변경은 비평 대조판을 만들기에 매우 힘든 작업이었을 것이다.
다른 비슷한 주제처럼, 이러한 작업은 사회학 주제에 대한 알베리오네 신부의 지대한 관심을 보여준다. 사실 창립자는 사회학 주제에 관한 서적을 이미 출간했다. 출판을 거듭한 「그리스도교 사회학 기초Elementi di Sociologia 」(1950)의 마지막 수정판은 루치아나 비안키니 수녀(FSP)와 루이지 조반니니 신부(SSP)가 많은 문헌과 참고도서를 탁월한 자료로 제시하며 엮어 「사회교리Catechismo sociale 」(1985)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다.
바오로인들에 의해 두1권으로 편집된 이 소책자를 위해 저자가 길어온 원천은 강조할 만하다.1a
끝으로, 흥미로운 것은 같은 회지 뒷부분에 나오는 ‘소식’난에 실린 내용이다. “펠라L’On. Pella[주세페, 이탈리아 공화국 참사회 대표]께서 성바오로수도회를 방문하셨다. 먼저 사도의 모후 성당과 지하 경당을, 이어서 성바오로딸수도회를 방문하셨다. 곧 인쇄소, 보급소와 영화관, 그 다음 우리가 했듯이, 3부작으로 된 단편영화 <마리아>의 한 부분을 직접 상영해보기도 하셨다. 우리의 소박한 식사를 기쁘고 친근하게 함께 나누며 프리모 마에스트로의 감사에 응답하셨다. 짧지만 찬사와 격려가 담긴 말씀을 하셨고, 자신의 무거운 힘든 과업을 위해 우리에게 기도를 청하셨다.”(「성 바오로」, 1953년 11월, 7쪽, 로마; 역주: 펠라 주세페는 1902년 4월 18일 피에몬테에서 태어나 1981년 5월 31일에 선종함. 이탈리아 그리스도교 민주당 소속 정치가로서 1953-1954년 이탈리아의 32대 수상을, 1954-1956년에는 유럽의회 의장을 역임함)
1. 원리 [SP, 1953년 11월호, 1쪽]
1) 온 정신을 다하고 온 힘을 다하고 온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은 첫째가는 중요한 계명이다. 그러나 첫째 계명과 비슷한 둘째 계명이 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웃을 참으로 사랑한 본보기로 사마리아 사람을 우리에게 제시하셨다. 그는 히브리인이 아니라 ‘외국인’1이었다.
2) 교육은 젊은이가 자유의 선용을 길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자유의 사용은 하느님께 상을 받거나 벌을 받게 할 것이다. 우리의 삶은 많은 이에게 ‘짐’이 되거나 ‘소수’를 위한 축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이며, 자신의 완덕과 이웃의 선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사회성이 필요하다.
3) 하느님은 인간이 사회를 이루며 살도록 정하셨다. 인간은 고립되어 홀로 살 수 없다. 혼자 힘으로는 자신의 신체적 도덕적 지적 완성에 도달하기 위해 부족하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가정생활에서든 사회생활에서든 수도생활에서든 다른 이들과 협력하여 자신의 부족을 채워 통합시키고자 하는 경향을 주셨다. 그리고 이것은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자연적 권리다.
4 ) 사회는 일반적으로 개인이 함께 모인 집합체, 각자 사회 계층을 이루며 합법적 권위의 통치 아래 힘을 결속하여 실행해야 할 공동목적을 위해 일치한 집합체다. (기계적인 조직이 아니라) 개인의 선을 위해 하느님의 섭리 아래 성장하고, 이성과 신앙에 의해 성숙한 단일한 유기체다.
2. 사회학 연구
오늘날은 과거 그 어느 시대보다 더 사회학에 대한 충분한 연구가 필요하다. 우리 삶은 전반적으로 사회 안에서 전개된다. 사도직 실행과 관계를 성화기켜가는 것도 사회 안에서 이루는 것이다.
사회성은 평화로운 공존과 함께 광범위한 인류가족 안에서‘ 서로 도움을 주며 사도적’ 공존을 지향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유다인 가운데서만이 아니라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도 불러주셨습니다.”(로마 9,24)
3. 수도회 안에서
가족, 단체 또는 수도회라고 불리는 여러 수도단체는 항상 사회적 성격을 띠며 목적, 수단, 권위, 회원이라는 구성요소를 지니고 있다. 시대의 필요에 부합하고, 사회적 수단을 통해 회원들의 완덕을 지향하는 수도단체의 설립은 교회의 고유하고 통상적인 권리다.
완덕의 목적은 모든 수도단체에 공통된 것이다. 교회 안의 수많은 수도단체는 각기 고유한 사도적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고유한 수단을 마련한다. 회원들을 이끌어 그들의 능력을 특수목적과 공동목적을 위해 조정하는 권위를 지니고 있다.
여기서 없어서는 안 될 두 가지 필요성이 나온다. 곧 순명과 사랑이다. 순명은 건물의 기초요, 사랑은 모든 회원을 일치시키는 수단이다.
여기에 다음과 같은 의미가 담겨 있다.“ 하느님의 집은 믿으면서 기초를 닦고, 희망하면서 세우며, 사랑하면서 완성된다.” 2
성바오로수도회의 두 가지 목적은 회헌의 첫 두 조항에 표현되어 있다.3
인간은 자연적 초자연적 완덕이라는 이중의 완덕을 이행해야 하기 때문에 두 가지 사회범주가 있게 마련이다. 곧 자연 | 질서의 사회와 초자연 질서의 사회다. 첫 번째 범주는 가정사회, 시민 사회 등에 속하고, 두 번째 범주는 교회, 수도단체 등에 속한다. [SP, 1953년 11월호, 2쪽]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적 사회의 일원이 될 권리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세례성사로 이루어지는 두 번째 탄생으로 목적과 수단을 통해 초자연적 사회에 들어갈 권리를 얻는다.
교회는 영원한 행복이라는 목적을 추구하는 초자연적 사회다. 그 수단은 신앙, 성사, 그리스도교적 덕행, 그리고 사목자에 대한 순명, 특히 교황에 대한 순명이다.
* * *
바오로인에게 사회성은 다음 사항을 요구한다.4
- 수도가족 안에서 공동생활을 통해 형제들, 장상들, 후배들에 대한 존중
- 다른 수도가족에 대한 존중
- 바오로가족의 다른 수도회에 대한 존중
- 신자 개인이나 집단으로 모인 신자단체에 대한 존중
- 시민, 국민과 위정자들에 대한 존중
- 온 인류 가정에 대한 존중
- 교회 전체, 곧 투쟁하는 교회, 정화하는 교회, 승리한 교회에 대한 존중
4. 성소의 표지
사회성은 그 사회에 속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요구하는 근본 자질이고, 그 사회가 수도회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사회성은 성소를 드러내는 긍정적인 표지이므로, 사회성이 결여되었다는 것은 성소가 없다는 뚜렷한 표지이요, 근본적인 장애가 된다. “교회법과 회헌 규정에 따라 공동생활을 하면서” 수도단체에서는 서원誓願 외에도 완덕을 지향한다고 분명히 말한 바 있다. 그러므로 공동생활은 공로의 원천이요, 성화의 수단이다. 이 때문에 모든 것을 공유한다. 곧 일과표, 면학, 사도직, 신심, 식사, 의복 등.(회헌 1,133-136조)
회헌 169조, 170조를 상기해보자. “모든 선은 사랑에 기초를 두고 완성되는 것임을 수도자들은 기억해야 한다. 사랑은 참고 기다리며, 친절하고 시기하지 않고 무례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고,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한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낸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사랑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거룩한 사람답게 사랑이 명하는 바를 지체하지 않고 지켜야 한다.”
5. 타고난 성품
수도회에 입회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어울릴 줄 아는 성격이어야 한다. 이미 위에서5 ‘공동생활의 전제조건’에 대해 이야기했다.
- 선천적으로든 교육의 영향으로든 온유하고 잘 어울리는 낙천적인 성격
- 너그럽고 친절하고 이해심 깊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
- 가난한 이들, 고통받는 이들, 장상들, 후배들에 대한 올바른 마 음 자 세
- 공손함, 예의바름, 순종, 친절한 태도로 규칙을 준수하며 특히 함께할 줄 아는 역량
- 잘못을 용서하고 죄를 멀리 하며,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잘못에 대한 비난이나 수치심을 안겨주지 않는 마음 자세.
- 늘 일관성이 있으며 단순하고, 성공이나 명예 앞에서 자만하지 않고, 반대상황에서도 지나치게 낙심하지 않는 꿋꿋한 자세.
* * *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사람은 제외시켜야 한다.
- 유별난 사람, 궤변론자, 타인의 아픔에 무감각한 사람, 이기주의자
- 비관적인 신앙인, 편협한 사람
- 히스테리 환자, 과도하게 신경질적인 사람, 불안정한 사람
- 정신병자, 늘 불만에 차 있는 사람, 옹고집쟁이
- 충돌을 일삼는 사람, 투명하지 않은 사람, 보복하는 사람, 공격적인 사람
- 교육할 수 없는 사람, 요지부동한 사람, 무례한 사람, 불안한 사람
- 가족 중에 이와 같은 질병과 일종의 심각한 증세가 있거나, 예를 들어 광기에 가까운 애정이나 다른 유전적인 질환을 가진 사람.
6. 초자연적 토대
사회성은 신심처럼 신앙을 바탕으로 한다.
‘신앙을 통해’ 우리는 모든 사람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를 발견하고 ‘우리 아버지’ 안에서 형제들을 발견한다.
‘신앙을 통해’ 우리는 모든 사람 안에서 진리, 교육, 기도에 빚진 사람임을 알게 된다.
‘신앙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 도움이 가장 필요한 사람, 죄인, 고통받는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셨는지를 우리는 알게 된다. 그분은 순수하게 인성만 지니신 것이 아니라 인성과 신성을 함께 지니셨다.
‘신앙을 통해’ 우리는 올바른 민족주의를 지닐 것이며, 특히 조국에서 사람과 사람의 구원을 항상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결코 복음에 반대되는 민족주의를 지향해서는 안 되고, 정치적 성격이나 경제적 성격의 민족주의를 바라서도 안 된다. 모든 것, 곧 법, 가르침, 도덕, 신심실천이 교황의 가르침에 부합해야 한다.
‘신앙을 통해’ 수도회 회원이 서원자라는 새로운 명칭 때문에 우리는 형제임을 인정한다.
‘신앙을 통해’ 영원을 향해 가는 여정의 동반자요, 상호협력의 의무를 수행해야 함을 알게 된다.
‘신앙을 통해’ “모두 나에게 오너라”.6 하시며 모든 사람을 당신께 초대하고 설교하시는 천상 스승의 성심, 마음을 넓혀 모든 사람을 품으신 이방인의 학자 성 바오로7, 천상 성부의 모든 자녀, 선교사, 설교가, 사도들을 인도하신 사도의 모후를 이해하게 된다.
7. 수도자가 지녀야 하는 사회성
우리가 살고 있는 수도회에는 같은 목적을 지향하며, 같은 수도복을 입고, 공동생활에 참여하고, 기쁨과 고통을 나누며, 같은 결심으로 고무되어 영광의 화관을 얻기 위해 같은 길로 나아가는 형제들이 있다.
이러한 일치된 공통의 목적은 욕망과 이해관계와 인간적 음모에 의해 계속 분열되는 불행한 이 지상에서 사랑의 유대를 통해 우리를 결속시켜야 하고, 수도원을 평화의 감미로운 오아시스가 되게 해야 한다. 첫 공동체였던 사도단8을 결속시킨 형제애 정신과 하느님과의 일치가 우리 사이에 머물러 우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우리 얼굴에 평온함이 번지고, 우리 영혼을 고요하게 하며 수도생활의 직접 목적인 하느님과의 일치를 이루도록 기여한다.
이런 것이 부족한 곳에서는 잠심과 기도와 수도생활에 대한 사랑, 영적 삶의 열의를 지닐 수 없다.
그뿐 아니라 본성상 사회적인 인간은 이러한 자기 본능을 만족시키는 곳에서는 쉽게 편안함을 느낀다. 순수한 애정의 열기로 훈훈한 가정을 떠날 때 삶의 불가피한 폭풍에서 자신을 이해하고 격려하는 우정 어린 안전한 버팀목 같은 친구를 찾게 된다. 가장 위대한 성인들도 인간의 원초적인 나약함에서 벗어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들의 내면을 드러내는 편지가 그 명백한 증거다.
그러므로 공동체에서 자신의 일생을 보내는 수도자는 그 안에서 열린 마음, 관대하고 자비로운 영혼, 고상하고 섬세한 정신을 발견하면 행복하고 평온하게 살 것이고, 진정으로 “이 지상에서 천상 예루살렘의 감탄할 만한 회중을 잘 대변해 주는 곳은 사랑으로 완전하게 일치된 수도회뿐이라는 것과, 우리 주님이 그들 가운데 계시고 그들이 머무는 곳은 ‘하늘의 문’[창세 28,17 참조]” 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도자의 원수요 가장 무질서한 영인 악마는 그곳을 뚫고 들어와 평화를 교란시키고 불화를 퍼뜨릴 수 있는 무수한 길을 찾는다. 악마는 조화로운 일치와 형제적 이해가 꽃피지 않는 곳에는 하느님의 사랑, 섬세한 양심, 극기의 정신, 자신의 영역을 넘어서는 사랑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공동체 안에 분열을 조장하고, 그곳을 불화와 몰이해와 온갖 종류의 오해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애쓴다. 위대한 영혼들 사이에서도 피할 수 없는 모든 인간적인 나약함을 교묘하게 이용한다.
여러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수도 공동체에서도 여러분은 가장 반대되는 성격을 틀림없이 발견할 것이고, 다음과 같은 것이 여러분에게 아주 쉽게 이러한 점을 설명해줄 것이다. 자녀들을 수도회9에 봉헌하는 부모들의 마음자세가 각양각색이고, 각 출신지역의 특색도, 기질도 다양하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모두 수도원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일, 매 순간 언제나 서로 가까이 지내며 조용한 사람과 침착하지 못한 사람, 심사 숙고하는 사람과 경솔한 사람, 진지한 사람과 신경질적인 사람, 균형잡힌 사람과 공상가 등이 함께 지낸다.
자신과 화해할 수 없는 성격의 소유자와 함께 살게 된다면 세속인은 거주지나 업무를 바꾸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도자에게는 그러한 탈출구가 늘 열려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같은 사무실에서 완전히 자신과 반대되는 적성과 다른 시각을 가진 형제와 불가피하게 지내야 할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우리가 불완전한 이 지상에 사는 한 우리는 연약함과 비참함 사이에서 살아야 할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오직 하늘나라에서만 모두가 완전해질 것이다.
그러나 악마는 이러한 인간적인 나약함을 간교하게 이용하고, 서로 대립하여 부딪치게 하고, 자주 불화의 불꽃과 충돌을 일으킨다. 상상을 뒤엎고 욕망을 뜨겁게 달구며 영혼을 어지럽히고 의심하게 만들고 사소한 일을 과장되게 만들어 급기야 많은 경우 혼란을 조장하고 뒤흔들어 평화, 형제적 화합, 상호신뢰를 몰아내고, 그 결과 수도생활의 감미로운 멍에를 무가치하고 사소한 것 때문에 무겁게 만든다. 이와 같은 가라지가 자라는 곳에서 덕은 질식하고, 선을 위한 모든 도전은 감소되며, 영성생활은 활력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했다. “파벌로 분열된 수도원은 비참하다.”10 이 점에 관해서는 사도 성 바오로의 말을 상기하라고 제안할 수 있다.“ 형제 여러분,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모두 합심하여 여러분 가운데에 분열이 일어나지 않게 하십시오. 오히려 같은 생각과 같은 뜻으로 하나가 되십시오.”(1코린 1,10)
8. 사회성을 거스르는 죄 [SP, 1953년 11월호, 4쪽]
1) 최고 장상과 권위를 가진 사람이 형제들 사이에 영적 일치를 깨뜨리는 것은 죄다. 일치는 ‘사회적 선’이요, 힘을 분열시키는 것은 사회의 본질에 반대되는 일로서, 모든 이에게 해를 입히고 사회의 존립을 뒤흔든다. 이는 무절제한 비판을 통해서도 일어날 수 있다.
2) 직무, 사도직, 수업과 같은 자신의 의무를 소홀히 하면서 수도회 밖의 일을 맡으며 힘을 빼는 것은 죄다. 이러한 일은 가족의 형제나 자매에 대한 부양 의무를 지거나 친족과 친구를 돌볼 때 발생할 수 있다. 곧 무익한 외부 관계를 맺으면서 공동일에는 느리게 대처하는 대신 개인의 관심사에는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을 때 죄가 발생할 수 있다. 11
3) 모두가 힘을 모아 목적을 위해 투신하지 않거나, 그들 개개인의 영적 물질적 필요를 돌보지 않는 것은 죄다.
4) 정당한 이유 없이 맡겨진 직무를 거부하거나 소홀히 하는 것은 죄다. 이와 마찬가지로 경험상 이미 자기 능력 밖의 일이라는 것이 드러났음에도 그 직무를 열망하는 것도 죄다.
* * *
일치를 목적으로 하는‘ 사회적 선’을 위한 직무와 소임은 장상의 뜻을 잘 헤아리고 가장 좋은 방법으로 실현해야 하기 때문에 지성, 의지, 마음, 육체의 힘을 집중해야 한다.
9 . 사회성을 거스르는 위험 요소
1) 수도회와 무관한 일에 대한 관심, 문제성 있는 사람에 대한 애착, 외출하고 방문하려는 열망, 외부인과 사적 관계를 맺거나 서신 관계를 계속하는 것, 장상이 알면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아 숨기는 행동.
2) 특별한 우정관계, 호감이나 반감, 외부인들에게만 베푸는 과도한 친절, 고민 중이거나 기뻐하는 형제들에게조차 냉혹하거나 몰상식한 언행, 무관심, 저속한 언행.
3) 일상의 비밀이나 직무상 비밀을 지키지 않는 것.
4) 시기와 질투, 형제들과 장상들의 활동을 저지하거나 지연시키는 자애심. 시기는 지극히 일반적이지만 대단히 해로운 것이다. 카인과 아벨, 요셉과 그의 형제들에 관한 일화를 기억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5) 청하지도 않았고 책임을 맡기지도 않았는데 쉽게 개입하며 나서는 사람들, 말만 하고 일하지 않는 사람들, 충고는 잘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일어나는 위험.
6) 영원한 삶을 위해 공로를 쌓지도 않은 채 외부인의 의견만 지나치게 찾아다니고, 자기 성소의 가치를 잃을 때 수도정신에서 멀어지기가 매우 쉽다. 예레미야가 자기 시대를 통탄한 만큼 명확하게 증명해보일 수 있는 것도 없을 것이다. “[정녕 내 백성이 두 가지 악행을 저질렀다.] 그들은 생수의 원천을 저버렸고 저수 동굴, 물을 담아두지 못하는 갈라진 저수 동굴을 팠다.”[예레 2,13 참조] 이성과 신앙은 악, 대개 우리 때문에 야기되는 악에서 구제될 다른 좋은 대책을 가르쳐준다.
7) 가까이 있는 장상에게 순명하지 않기 위해 사실을 기만하려 노력하면서 멀리 있는 장상에게 도움을 청하려는 유혹이 있을 수 있다. 또는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제삼자를 비열하게 부정적으로 비판함으로써 형제들이나 장상들에 대한 불신을 퍼뜨리는 것이다. 자리에 없는 이들을 옹호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이는 뛰어난 사랑이다. 자기 자신을 열심히 주의 깊게 바라보는 사람12은 애덕의 이유가 아니라면 다른 사람의 일에 참견하지 않는다. 직무상 그러한 일을 맡은 경우는 예외다.
10. 성소에 부합하는 표지13
성소의 표지는 수도회에 대한 사랑이다. 수도회 조직에 대해, 회헌에 대해, 장상에 대해, 형제에 대해, 사도직 창안과 성과에 대해, 공동체에 대해 좋게 이야기하는 것, 모든 이의 성성을 위해, 성소를 위해, 사도직을 위해 항상 기도하는 것, 성소를 위해 일하는 것, 각자의 위치에 따라 사도직과 물질적 재화에 대한 것과 마찬가지로 영적 진보와 지적 발전에 온 힘을 기울여 기여하는 것, 곧 결점을 떨쳐버리고 선을 증대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 등이다.
성소가 없다는 표지는 다음과 같다. 곧 파괴적이거나 경솔한 비판을 하는 습관, 수도회의 일을 함에 있어 무기력한 자세, 부당한 일 과 결 점 을 부 추 기는 행위다. 기계 전체에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하나의 바퀴나 톱니 하나가 파손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교회의 정신과 판단력에 따라 모든 수도회를 존중해야 하지만, 모든 것 위에 여러분의 수도회를 사랑해야 한다. 이러한 사랑이 부족한 사람을 피해야 한다. 자주 물질적인 면에서 물의를 일으키는 사람보다 더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여러분은 참된 바오로의 정신을 드러내는 사람을 좋아하고 자주 만나야 한다. 선, 진리, 평화의 씨를 뿌리는 사람은 큰 공로를 쌓는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11. 사회성의 수단
서원자들의 모임을 갖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격려하고 지도하는 것은 필요한 일일 뿐 아니라 의무다.
모임에서 각자는 자기 견해를 단순하게 말하고, 모두가 그의 의견을 존중하지만 아무런 강요도 하지 않으며, 장상이 이를 종합하여 결정한다. 그렇게 한 다음, 신앙에 힘입어 오로지 하나의 생각으로 힘차고 기쁘게 열심히, 너그러운 마음으로 일치하여 살아간다. “회원의 의견을 수렴하고 힘을 모으고 그 지향으로 함께 간구한다.”14
필리비 신자들에게 한 성 바오로의 말씀은 숙고할 만한 내용이다. “여러분이 첫날부터 지금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서 좋은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의 날까지 그 일을 완성하시리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내가 여러분 모두를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나로서는 당연합니다. 여러분이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갇혀 있을 때나, 복음을 수호하고 확증할 때나 여러분은 모두 나와 함께 은총에 동참한 사람들입니다. 사실 나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애정으로 여러분 모두를 몹시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의 증인이십니다. 그리고 내가 기도하는 것은, 여러분의 사랑이 지식과 온갖 이해로 더욱더 풍부해져 무엇이 옳은지 분별할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순수하고 나무랄데 없는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날을 맞이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는 의로움의 열매를 가득히 맺어 하느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필리 1,5-11)
12. 교회의 사회성
교회와 그리스도교에 관한 사회성의 특별한 토대는 신비체 사상이다. 외적 관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살아 있는 지체 사이에는 예수님과 똑같은 피가 순환한다. 다시 말해 모두에게 활기찬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그분의 생명과 똑같은 생명력이 순환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많은 지체와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하나의 몸을 이루는 것이다. 우리는 교회를 이룬다.
그리고 이 교회는 ‘투쟁하는 교회, 정화하는 교회, 승리한 교회’15 세 부분으로 나타난다. 이는 지상에서 순례 중인 교회, 또는 이 미 영 원 한 목 적 지에 도달한 유일한 교회를 형성한다.
교회의 사회성은 (적어도 교회에 속하는) 모든 신자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형제로 보도록 이끈다.
교회의 사회성은 교황과는 사랑, 순명, 존경하는 관계를 맺고, 이와 마찬가지로 주교와 교회 장상과도 그러한 관계를 맺기 바란다.
[SP, 1953년 11월호, 5쪽]무엇보다 출판 사도직을 통해 신자들의 신심을 북돋아주어야 한다. 출판 사도직을 통해 우리는 독자, 관객, 청취자에게 다가간다. 우리는 그들에게 빛과 위로와 용기를 전해주어야 한다. 독자를 이해하고 너그럽게 잘 대해야 한다.
우정관계는 분명해야 한다. 젊은이를 받아들이기 위한 조건이 분명해야 하고, 구독신청이나 서적의 가격도 분명히 명시해야 하며, 할인율을 분명히 책정해야 한다. 발송은 정확하게 해야 하고 제때에 지불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계약을 정확하게 해야 우정이 길게 간다. 채무자는 채권자를 반기지 않고 멀리한다. 확실하게 주고 요구해야 한다.
우리는 출판, 영화,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해 특히 어린이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 점에 관해서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식자 인쇄분야에서 일을 분담할 때에도 젊은이를 위해 마음 써 가며 일을 주어야 한다. 16
고려해야 할 점은 우리 회원의 부모와 친척과의 관계, 학생, 지원자, 청취자, 고해자들과의 관계다. 이에 관해 명료하게 말하는 작가들의 조언을 들어야 한다.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고통을 겪고, 기쁨을 누리는 이들과 함께 기쁨을 나눠야 한다. 특히 교회가 고통을 당할 때 아파하고, 교회가 기뻐할 때 기뻐해야 한다. 교황의 보편적 심려에 동참한다는 의미에서 정신, 의지, 마음을 교황과 일치하여 살아야 한다.
어떤 특정 국가를 위해, 마찬가지로 자기 나라를 위해 바오로인이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과 사람들의 선이라는 목적을 위해 정해진 지역에 가기 위해 바오로인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왕국의 시민, 곧 교회의 시민이며, 어떠한 국가에 있든 우리는 항상 교회에 속한다. 교회는 가톨릭, 곧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회는 로마교회17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로마시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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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18 사회의식은 사도직에도 적용된다.
총원은 사랑으로 활동하고 존재하며 교회, 영혼, 수도회, 분원의 필요성을 배려한다. 총원은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지침과 용기를 주고, 기획하고 제안하며, 회헌의 정신에 포함된 어떠한 활동도 멈추지 않는다. 곧 출판물은 다른 국가에서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고, 출판할 수 있다. 총원은 교회 안에서 교회를 위해 살고 활동하는 힘이 된다.
“현명한 교육자에게는 자극하고 행동하게 놓아두며, 인도하고 바로 잡아준다.”19는 법칙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천상 스승이요, 그 누구보다 인간을 존중하셨으며, 자연적 초자연적 역할을 통해 인격을 계발하셨고, 이 지상에서 그리고 영원에서 하느님 구원사업에 참여하도록 드높이셨고 인도하셨다. “이 물과 술이 하나 되듯이, 인성을 취하신 그리스도의 신성에 저희도 참여하게 하소서.”20 우리의 온 존재가 오류와 악과 거짓예배와 미신과 거짓열성과 타협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이렇다. 수도회와 교회를 대표하는 사람도 이와 같이 활동해야 한다.
13. 바오로가족 사이에 21
주님은 우리 수도회가 넷이기를 바라셨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참 사랑이 있는 곳에 주님 계시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한데 모으니… 우리 모두 함께 모여 하나 되니 우리 마음 갈라질까 조심하세.”22
바오로가족은 모두 감실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는 밀접한 가족관계가 형성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살고 교회에 봉사한다는 유일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모두를 대신하여 감실 곁에서 전구하고, 어떤 사람은 마치 큰 소리로 전하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파하며, 또 어떤 사람은 개개인에게 다가간다.
그들 사이에는 영적 지적 윤리적 경제적 긴밀한 협력이 있다.
통솔과 경영관리는 분리되어 있지만, 성바오로수도회는 다른 세 수도회의 ‘모체altrice’23다.
분리되어 있음에도 혈연의 유대보다 더 고귀한, 사랑의 긴밀한 유대가 있다.
그들은 서로 독립되어 있으나 여러 가지 방법으로 기도와 도움을 주고받는다. 활동은 분리되어 있지만 기쁨과 고통에 동참할 것이다.
‘서로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 공동생활을 향한 첫걸음은 이해하는 것이다. 좋은 이웃과 공존하는 삶이라기보다 생각, 정신, 열망을 나누기 때문에 속성상 가족관계다.
‘서로 존중 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랑은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1코린 13,5]라는 말씀은 여기서 아주 적절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좋게 생각하고, 선을 바라고, 좋게 말하고, 선을 베풀어야 한다.” 도와줄 줄 알아야 한다. 한 가족이 어떤 나라에 진출했을 때 다른 수도회도 진출하도록 준비해줄 줄 알아야 한다.
‘서로 조정해야 한다’: 성소를 찾는 일에서 여자수도회 사이에 경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성소를 북돋울 줄 알아야 하지만 젊은 여성이 자극을 받아 마음이 끌리고 적성에 맞는 수도회에 자유롭게 입회하도록 놓아두어야 한다. 한 수도회에서 퇴회한 젊은 여성을 다른 수도회에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각 수도회는 고유한 사도직을 수행하고, 다른 수도회는 그 수도회의 영역과 사업을 존중해야 하며, 기회가 주어질 때 협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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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수도회 사이의 조정은 장상들 사이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소속 회원들은 해당 장상에게서 지시를 받게 될 것이다.
발생하는 세부적인 어려움은 가능한 한 성바오로수도회 총원장이 부성적 방법으로 해결한다. 합리적인 방법으로 온순하게 따라야 하고, 요구하는 희생을 잘 감내하는 애덕을 지니는 것은 도움이 된다.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애덕24은 교회의 사회적 활동을 조정한다. 애덕은 교회법과 교회가 정한 모든 규정, 교회와 수도회 당국이 정한 모든 규정의 결정적인 원리, 동기, 요소다. 베드로 사도는 ‘이들이 사랑하는 것보다 더’[요한 21,15 참조] 사랑했기 때문에, 온 교회를 다스리고 규정하는 직무를 맡게 되었다. 그리고 교회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권한이 아니라면 지상에서 어떠한 대리자도 그와 같은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
이와 같이 애덕은 규정된 바에 대한 올바른 해석으로 이끌어주고, 마찬가지로 애덕은 거룩한 실천으로 이끌어주며, 우리의 존재 전체, 곧 정신과 힘과 마음을 적용하게 한다.
우리 수도회들은 목적과 수단이 잘 구분되어 있다. 그럼에도 1밀리미터까지 정확하게 규정할 수 없는 경계지역이 항상 있게 마련이다. 이것은 물론 네 개의 수도회 모두가 교회 안에서 교회를 위해 일하고 봉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애덕은 회헌이 명확하게 규정할 수 없는 바를 보충해준다. 예를 들면 선한목자예수수녀회는 본당신부의 지도하에 ‘수녀회가 진출한 본당 내에서’ 주보, 도서관, 교리서 보급 등에 전념해야 하는 것이다. 그와 같이 애덕은 바오로 서원과 전례사도직 센터 활동과 공존하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서로 만나고 느끼며 배려하는 것과 올바른 지향은 서로를 이해하고 평화를 이루며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알바의 한 훌륭한 본당신부가 ‘성 바오로’25에 우리의 두 번째 성작을 선물하면서 말했다. “성작 하단에 새겨둔 글귀를 보십시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주십시오.’라는 천상 스승의 말씀을 바탕으로 한 여러분 사이의 일치는 수도회의 발전과 평화와 개개인의 열의를 가져올 것입니다.” 사실 대사제의 기도에서 예수님은 네 번에 걸쳐 성부께 이러한 일치를 청하셨다. 먼저 사도들 사이의 일치, 그 다음 사도와 신자 사이의 일치, 신자들 사이의 일치 그리고 교회 교계제도와의 일치를 청하셨다.
“거룩하신 아버지…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주십시오.”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저는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는 제 안에 계십니다. 이는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한 17,11.21.22.23)
당시 교회가 처한 상황에서 천상 스승의 간절한 기도는 심오한 이유가 있음을 우리는 이해하게 된다. 수천에 이르는 이교와 수십만에 이르는 이단이 활개를 치는 상황이었고, 신앙의 진리와 윤리원칙에 관한 무절제한 토론이 난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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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성은 손님 대접을 잘 하게 한다. 성 바오로가 권고한 손님 대접은 손님을 환대하고 친절하게 접대해야 할 주인의 의무를 중시하지만, 주인을 존중하고 치켜세워야 할 손님의 의무도 강조한다. “불평하지 말고 서로 잘 대접하십시오.”[1베드 4,9] 그 집안의 질서를 방해하지 말고, 최선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하며, 필요 이상 머물지 말아야 한다.
어디에서든 우리 회원은 대접을 받고 형제적 환대를 받지만, 어디를 가든 형제들에게 지나친 요구를 하여 중압감을 주는 일은 피해야 한다. 가능한 한 방해를 일으키는 일을 피해야 한다. 한 분원에서 다른 분원으로 악을 퍼뜨리지 말고, 오히려 선을 순환시켜야 한다! 그 대신 수도회 법규를 준수하는 모범을 보임으로써 건설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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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성은 기쁨을 불러일으키고, 균형 잡힌 공동 레크리에이션을 통해 활성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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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가족은 출판 사도직 협력자들Unione Cooperatori Apostolato Edizioni26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다.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받았고, 그들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그리고 협력자들과 영적으로 결속되어 있음을 느끼며, 협력자회 회보를 통해 그러한 관계를 유지해 나가고 있다. 그들에게 베푸는 가장 큰 감사의 선물은 그들을 위해 매년 2400대의 미사를 거행하는 것이고, 산 이들과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이 밖에도 우리 수도회가 완수하는 선행의 한 몫을 차지하고 대사를 받으며, 많은 공헌을 한 협력자를 위해서는 사후死後에 그레고리오 미사를 봉헌한다. 사회성은 우리 편의 생생한 감사를 요구한다.
협력자들의 성화를 위해 그들을 교육하고 한층 더 효과적인 협력을 위해 그들을 비추어주는 것이 우리의 두 가지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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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소는 매우 중요한 곳이기 때문에 도와주어야 한다. 초기양성소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서원자로만 구성되어 있는 분원은 스스로 생활비를 쉽게 마련할 수 있고, 분명 그래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분원은 이미 양성이 끝난 회원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반면에 건물, 인쇄기, 학교, 영적 동반자가 있는 분원의 경우에는 일상적인 지출이 매우 많다. 서원자로만 구성된 수도회의 모든 분원은 정해진 범위 내에서 양성소를 도와주어야 한다. 우리 경우에는 지금까지 사랑의 정신으로 서로 도움을 주고받았기 때문에 아직 그러한 규정을 정하지는 않았다. 모두가 선으로 이해하고 충만해지도록 기도해야 한다. 이러한 일은 사랑의 의무일 뿐 아니라 사회에서 정의를 실행하는 자연적인 의무조항이다. 예를 들어 (다섯 명으로 구성된 가정 공동체를 가정해보자.) 가족의 일원 중 누군가가 경제적 도움을 준다 하더라도 결국 가장인 아버지가 생활비를 책임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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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직’에서도 사회의식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진출한 나라를 위해 지침이나 방향제시에 도움이 될 출판을 한다. ‘로마국제센터Centro internazionale di Roma’와 다른 나라의 센터에 관해 이미 설명한 것처럼27 여러 나라 사이에 출판교류가 있을 수 있다. 우선 내부의 채무에 대한 지불을 분명히 한다면 모든 것이 쉽게 이루어질 것이다.
14. 국내 관계
그리스도교 사회학은 국가와 정부에 대한 가톨릭 신자의 의무를 알려준다. “개인의 의무는 양심적인 존중과 합리적인 순종이다. 그 밖에 물질적이고 도덕적인 공동선을 위해 자신의 자원을 내놓아야 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법에 따라 | 현명하고 정직하며 사리사욕을 취하지 않고 공동선을 위해 주력하고 교회와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정치인들을 배출하는 것이 중요한 의무다. 교황청은 명확한 가르침을 준다. 그리고 바오로가족은 이러한 가르침을 전할 방법을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SP, 1953년 11월호, 6쪽]
이웃나라보다 자기 나라를 먼저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다. 그러나 자기 나라를 위한 사랑은, 사랑 안에서 공정하게 자리 잡고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여러 나라의 모든 가정을 존중해야 한다.
교회의 큰 적은 국수주의다. 전체주의 나라에서는 많은 사람이 로마28의 지침을 따르는 것을 자기 정권에서 이탈하거나 반역하는 것으로 여기고 외국 세력을 편드는 것으로 치부한다. 그 얼마나 이상한 논리고 치명적인 오류인가! 그럼에도 실제로 교회보다 조국을 선택하고, 사상 면에서 아니면 적어도 실천적인 면에서 권리와 특권을 고집하면서 교회가 과장한다고 의심하거나 선입관을 갖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이들은 사건의 객관성, 공공법규의 원칙, 인간의 최고요 영원한 선을 바라는 열망에 의해 인도되도록 놓아두는 대신, 여러 가지 충돌로 국가보다 교회를 고발하려고 애쓰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1860년부터 오늘날까지 발행된 교황의 회칙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된다. 조국에 대한 사랑은 교회에 대한 사랑에 종속된다. 교회의 본질과 사명에 있어 국가 자체는 교회에 종속된다.29
물질적인 가치는 영적인 것에 종속된다. 이는 마치 국가의 목적이 교회의 목적에 종속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비록 정당이 건전하고 가톨릭 신자들로 구성되었다 해도 이들이 교회를 대변할 수도 구성할 수도 없는 것이다.
복음을 지혜롭게, 전적으로 살아가는 수도자들과 사제들은 모든 나라 사람을 사랑할 줄 알고, 동시에 모범적인 방법으로 시민의 의무를 수행할 줄 안다. 같은 수도회의 사제와 수도자라도 적국에 속한 이들은 전쟁 동안 병역의 의무를 완수했을 것이고, 그중 많은 사람이 공을 세우고 훈장도 받았을 것이다.
15. 국제 관계
국제 관계는 본질적으로 다음과 같은 사항, 곧 국가의 공동기원, 공동구원, 공동운명, 공동선에 토대를 둔다.
“인류는 비록 하느님이 정하신 자연질서 상 여러 인종으로 나누어지지만…, 거대한 공동체 안에서 윤리적 법률적 상호 유대관계로 결속되어 있습니다.”(교황 비오 12세)
자연법과 관례적인 법은 관계를 확립시킨다.
조국에 대한 사랑은 인류에 대한 사랑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들 사이의 재화의 교환을 통해 강화시킨다.
“지나친 민족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여러분을 살피십시오. 여러분 주변에는 민족주의와 민족주의가 널려있기 때문입니다.”(교황 비오 11세)
이 점에 관해서는 다음 사항이 필요하다. 1) 올바른 생각, 다시 말해 인간 생명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개념, 2) 인간 사이의 보편적 사고, 3) 인간 사이에 조화를 이루는 토대는 가톨릭 신앙이라는 점을 염두에 둘 것.
국가 간의 회의에서 이탈리아는 인간적 가치와 종교적 가치, 그 전통적인 역사,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의 권좌가 있고, 문명화와 선교사명을 위한 자신의 소명 때문에 아주 특별한 위치에 있다. 30
바오로인은 모든 국가에 대해 좋게 이야기해야 할 것이고, 자기네 사도직을 넓혀가기 위해 널리 통용되는 언어를 선택해야 할 것이며, 진출한 나라에서 모든 것에 적응하는 위대한 정신을 지녀야 할 것이다. 모두를 존중해야 할 것이고 복음, 교회, 문화의 풍요로움을 전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설교와 묵상은 아직도 구원을 기다리는 백성에게 자주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기도에 모든 백성을 포함시키고 ‘주님의 기도’의 보편정신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인류 전체에 대한 시각을 우리에게 잘 제공해주는 <로세르바토레 로마노L’Osservatore Romano>를 구독하자. 모든 바오로인은 회헌이 우리에게 보편적 정신을 심어주고, 다른 국가에 마음을 열게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기쁘게 맞아들이며, 그들을 형제처럼 환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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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안다는 것은 그를 사랑하기 위한 수단이다. 지리, 역사, 문학과 그와 유사한 과목의 수업에서는 여러 대륙의 필요와 가치, 문명상태, 관습, 사상, 종교상황, 로마 가톨릭과의 관계 등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알아야 한다.
수도자에게는 부자도 가난한 이도 없고, 미개인도 문명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고, 다만 하느님의 자녀요 구원해야 할 영혼이 있을 뿐이다. 수도자는 물질적인 것이나 정치적인 것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정신과 영원에 관련된 더 높은 사명을 위해 태어났음을 느낀다.
우리 공동체에서는 북쪽지방 출신과 중부지방 출신, 동쪽지방 출신이나 서쪽지방 출신을 똑같이 받아들여야 한다.
[SP, 1953년 11월호, 7쪽]비록 적국이라 해도 다른 나라 형제들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는 이야기는 절대로 피해야 한다. 바오로인에게는 오직 친구와 형제가 있을 뿐이다. 오히려 ‘억압된 분위기’에서 온 사람들에게는 더 많은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천국에서는 흑인이 백인을 앞설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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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국제연합에 속하는 여러 나라가 바라는 하나의 사회를 건설하는 세상의 염원이 실현된다면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라는 창조주요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계획, 스승 예수 그리스도의 계획, 가톨릭교회의 계획, 성 바오로 사도의 계획도 실현될 것이다. 스승도 한 분이요, 학교도 하나요, 가르침도 하나요, 무르익어야 할 열매도 하나라야 한다. 그러므로 고등학교 교리를 공부하듯 우리의 모든 수도원에서 공부해야 할 「사회학의 원리」31라는 소책자를 만들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특별하고 제한된 사명을 가졌던 히브리 백성의 종교적 시민적 민족주의 장벽을 극복하셨고, 그리스도 친히 이렇게 명령하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천상 성부께서는 당신 아드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민족들을 너의 재산으로, 땅 끝까지 너의 소유로 주리라.”[시편 2,8] 곧 세상의 모든 나라를 주신다는 약속이다. 그리고 당신 신비체인 교회는 인류 전체에 대한 권리와 의무와 더불어 보편적 유산을 받았다. 또한 성 바오로는 이러한 권리와 의무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었다. 그리고 예루살렘 공의회는 순수하고 강한 신앙을 지닌 사람들인 사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생각을 대변하는 권리를 맡겼다. 세계공의회였다. 바오로인은 그들의 아버지요 스승이요 학자인 성 바오로 사도의 이러한 가장 소중한 유산, 곧 사도의 마음, 열망, 무한한 사도직을 받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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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개의 사회, 각 나라는 인류라는 거대한 강에서 갈라져 흐르는 개천이다. 복음은 초자연적일 뿐 아니라 초국가적인 것이다. 복음은 때가 차면 끝나고 마는 제한된 것이 아니다. 다만 역사와 영원의 결말을 한계로 삼는다. “유다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습니다. 같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으로서, 당신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로마 10,12)
참된 바오로인의 생각, 감정, 열망은 이러한 초자연성과 초세속성sit venia verbis32을 숙고해야 한다. 익숙한 환경, 교구나 교계제도가 확립된 현세, 또는 그리스도교의 메시지가 전파된 지역으로 한정시켜서는 안 된다.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한다! 언제나 더 앞으로 가야 한다! 사도들의 토대 위에 기초를 두고 예수 그리스도인 모퉁이돌 위에 기초를 둔다면 확실히 도약할 수 있다. 사명의 높이와 깊이와 길이와 넓이를 측량해야 한다.
미사는 보편적 기도인 동시에 일치의 기도, 공동의 기도, 사회적인 기도다. 일치는 하나의 신앙, 하나의 생명, 하나의 은총, 하나의 양떼, 한 목자, 하나의 천국, 곧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다. 축성된 포도주는 많은 포도알로 이루어졌고, 성변화된 빵은 많은 밀로 이루어졌다. 집전자를 통해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33 십자가의 희생제사를 봉헌하는 것이다. 매일 아침, 비록 지상의 수많은 지역에 흩어져 있지만 우리는 동일하고 가장 위대한 행위인 미사 안에서 일치한다. 사제도 하나요, 희생제물도 하나요, 같은 열매를 맺는다. ‘길에서 쓰러지지 않도록’[마태 15,32 참조] 각자가 취할 수 있는 하루의 양식이다. 보편성이란 다음과 같은 것이다. 교회는 희생제사를 바치기 전에 영적으로 사람의 무리, 곧 주위의 모든 사람을 제대 주위에 불러모아 천상의 모든 이와 “친교를 이룬다.”34 미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신비체의 모든 지체를 살게 하는 중개자이신 그리스도의 희생제사다. 사회의식을 가지고 미사에 참례하는 것은 미사를 가장 생생한 사도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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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사회성은 모두를 위한 모두의 덕행이다. 이것은 특히 수도회 안에서 사는 사람에게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 사도직이 광범위한 만큼, 국가가 넓은 만큼, 교회가 널리 퍼진 만큼, 오늘날 25억으로 집계되는 인류의 많은 숫자35만큼 아주 방대한 영역을 가지고 있다.
1a Giulio Monetti S.J., 「사회 현안 문제, 특수 사회학과 응용 사회학 강좌La Questione Sociale, Corso accademico di Sociologia particolare ed applicata」, Scuola Tipografica Editrice di Alba, 1921; Natale Busi, 「사회생활을 통한 인격La persona umana nella vita Sociale」, Pia Società San Paolo, Alba 1945.
1 ‘Alienigena’는 문자 그대로‘ 다른 지역 태생의 외국인, 이방인이’다.
2 원문에는: “Domus Dei credendo fundatur, sperando erigitur, amando perficitur.”(성 아우구스티노, 「강론집Sermo」 27)
3 물론 여기서 말하는 회헌은 분명 당시에 효력을 지니던 회헌을 가리키는 것으로, “하느님의 영광과 회원들의 성화”, 그리고 “가장 신속하고 효과적인 수단을 통한 복음화”라고 두 가지 목적을 명시하고 있다.
4 앞선 출판본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바오로인을 위한 사회성은 다음 사항을 ‘요구한다.’” 이러한 표현은 문장구성상 잘못되고 모호한 표현이다. 만일 동사를 수동태(요청되었다)로 해석해야 한다면, 이어지는 ‘존중rispetto’이라는 단어는 부사적 의미가 된다.(‘…에 관하여’: in riferimento a) 그 대신 동사가 능동태(요구한다)라면, ‘존중rispetto’이라는 단어는 목적어를 보완하는 기능을 가진 명사(존경, 경의)의 의무를 지닌다. 여기서는 두번째 형태의 의미를 채택하기로 했다.
5 “인간 양성”, 4 참조.
6 “venite ad me omnes.”(마태 11,28)
7 “doctor genitium. ”(1티모 2,7)
8 사도 4,32-35 참조.
9 여기에 나오는 ‘종교Religione’라는 단어는 ‘수도회Congregazine’, ‘수도단체Istituto religioso’, 또는 그와 유사한 단체를 가리킨다.
10 성 아우구스티노, 「강론집」 256, ‘de temp’
11 tardus ad communia et ad singularia promptus.
12 attende tibi. 그대 자신[과 그대의 가르침]에 주의를 기울이십시오.(1티모 4,16)
13 이 소제목에 이어서 나오는 (“중개를 많이 해야 한다…”까지)의 부분은 1953년 11월호 「성 바오로」지에는 나오지 않는 내용이다. 소책자 「바오로가족에게」에 첨가되었다.
14 “Collatis consiliis, virbus unitis, multiplicatis intercessoribus…”, 통치에 관해 수도회 권위의 결정 절차를 다루는 교회법의 표현.
15 ‘투쟁/순례하는 교회, 정화하는 교회, 승리한 교회Militante, purgantae, trionfante’라는 표현은 순례하는 교회(하느님 나라를 위해 싸우는 투쟁하는 교회), 정화의 길에 들어선 교회 그리고 영광에 들어간 교회를 가리키는 전통적인 용어다.
16 당시 젊은이들이 바오로 출판사에서 책의 식자 작업을 하게 한 관례를 말한다. 알베리오네 신부가 어른들에게 해당되는 서적이나 전집에 젊은이들의 협력을 권하지 말라고 강조한 점은 잘 알려진 바다.
17 이 같은 로마정신의 의미에 관해서는 「당신 은총의 풍성한 부」 48-57항을 보라.
18 이 단락 또한 (이어지는 소제목까지) 소책자 「바오로가족에게」에 첨가되었다.
19 이미 인용한 (“ 네 정신을 다하여…” 각주 52를 보라) 교육학적 명제요 알베리오네 신부가 자주 애용한 표현이다.
20 미사경본에서 발췌한 내용: “Da nobis… eius divinitatis esse consortes, qui humanitatis nostræ fieri dignatus est particeps, Jesu christus….”(포도주에 물을 부을 때 바치는 예물 준비기도)
21 1950년대 초까지, 창립자가 사용한 용어는 자주 복수 형태(‘가족들, 각 수도회들Famiglie’)에서 단수 형태(‘여러 수도회를 유일한 유기체로 통칭하기 위해 ‘바오로가족, Famiglia Paolina’)로 변했다. 복수 형태의 표현은 곧바로 단수 형태로 바뀌었고, 여기서 ‘수도회들congregazioni’이라는 용어를 통해 명료하게 표현되었다. 1953년 말경 네 개의 수도회를 나열했다. 아직 사도의모후수녀회와 병설 단체들은 태동하지 않았다. - 이 모든 주제에 관해서는 당대에 나온 「당신 은총의 풍성한 부」(33-35항에 동일한 양식으로 표현되어 있다)에 잘 나타나 있고, 알베리오네 신부는 1960년에 세 차례에 걸쳐 이 주제에 대해 다시 언급했다.(「완전한 하느님의 사람이 되기 위하여」, I, 19-20; I, 375-382; III, 180-191 참조)
22 따름 노래 ‘Ubi caritas et amor’: “Congregavit nos in unum Christi amor…. Simul ergo cum in unum congregamur, ne nos mente dividamur, caveamus.”(미사 경본, 성목요일 주님의 만찬미사 성찬전례)
23 “altrice”(양분을 주는 자/모체)의 의미에 관해서는 F. Pierini (ssp), 바오로 가족의 “altrice”인 성바오로수도회의 역할, in “Il ministero dell’Unità nella F.P.”(바오로 가족 안에서 일치의 직무), (제5차 총장 모임), 아리차, 1987년 9월, (바오
로 가족 총본부 역사 문서보관소),p p. 135-160을 보라.
24 이 단락은 (소제목 “국내 관계”까지) 소책자「 바오로가족에게」에 첨가되었다.
25 여기서 ‘성 바오로San Paolo’는 ‘성바오로수도회Pia Società San Paolo’다.
26 이러한 명칭은 당시에 사용했고 새 회규가 승인된 1992년까지 사용하던 협력자들의 명칭이다. 지금은 ‘바오로 협력자회’라 칭하고, 이 협력자회의 고유 회지는 「협력자 회보」다.
27 「성 바오로」, 1953년 11월호, 7쪽 참조: “출판 편집에 대하여: 총원에 있는 출판 사무국은 한층 더 효과적으로 출판 업무를 설치한다. 편집과 출판 선택을 위해, 이탈리아뿐 아니라 해외 분원들과도 점진적인 조정을 위해 일할 것이다.
28 분명, 교황청의 지침을 따르는 나라를 말한다.
29 ‘종속subordinazione’이라는 개념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교회의 사회교리에 의해 사라졌고, 그에 적합한 고유한 질서에 해당하는 통합과 협력의 개념으로 대체되었다.(사목헌장 「기쁨과 희망」 참조)
30 논의의 여지가 대두될 수 있는 평가이지만, 한정된 역사 안에서 성장했고, 세속적이 아닌 순수한 전망으로 방향을 잡고 있던 알베리오네 신부의 느낌이 드러난다.
31 이미 언급한 책을 말한다. 「사회학 요소Elementi di Sociologia」(1950) 또는 「사회교리Catechismo sociale」(1985).
32 구체적으로는: ‘이런 표현에 대해 양해를 구한다라’는 뜻.
33 “per ipsum et cum ipso e in ipso.” 성찬전례의 마침 영광송.
34 로마 미사경본Canone romano에서 산 이들을 ‘기억’하는 전구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온 교회와 친교를 이루어….”
35 1953년 11월의 이 통계 숫자는 오늘날 두 배 이상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