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라파엘 대천사를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라파엘 대천사는 토빗의 아들, 곧 토비야1의 동반자였습니다. 그의 이 직무는 우리의 수호천사 직무를 상기시킵니다. 주님은 영혼을 창조하실 때 수호천사를 보내시어 우리 삶의 동반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존엄성은 대단합니다! 물론 우리는 그렇듯 아름다운 영, 그토록 지혜로운 영, 그토록 거룩한 영을 곁에 둘 수 있는 은총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무한한 사랑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우리를 계속 도와주는 수호천사에게 감사합시다. 수호천사는 우리를 비추어주고, 우리를 지켜줍니다. 오, 이 천사는 지상의 삶에서 우리를 도와줄 뿐 아니라, 우리가 죽을 때 특히 하느님과 우리를 화해시켜줍니다!
한편 우리가 성인들의 축일을 앞두고 9일기도 중에 있다는 점을 잊지 맙시다. 11월 1일은 모든 성인 대축일이고, 2일은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는 성인들을 위해 9일기도를 바치고, 또 죽은 이들을 위해 8일간 추도기간을 갖습니다.
성인들을 위해 9일기도를 하고 있는 이 기간에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합니까? 이 기간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우리는 성인들에게서 하느님의 위대한 자비를 깨닫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잠깐 생각해 봅시다. 성인들은 누구입니까? 성모님께 드리는 호칭을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성모님께 드리는 호칭
은 아주 다양합니다. 성조의 모후, 예언자의 모후, 사도의 모후, 순교자의 모후, 증거자의 모후, 동정녀의 모후, 모든 성인의 모후 등등. 그런데 성인들은 누구입니까? 바로 성조들, 예언자들, 사도들, 순교자들, 증거자들, 동정녀들입니다. 곧 하늘에 있는 모든 이들입니다. 결정적으로 하느님의 은총 안에 있는 이들이 성인들입니다. 이 지상에도 성인들이 있을 수 있지만 결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지상 삶에서는 성성이 인정되었다가도 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저 너머 삶에서는 잃을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성 베드로는 신도들을 성도들이라 불렀고, 성 바오로는 그의 성도들을 늘 지켜주려 했습니다. 그러면 이들은 누구입니까? 사도가 세례를 베풀고 강의를 해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성인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덕성을 지녔습니까! 우리는 그들을 기리고 그들에게 기도해야 합니다. 보십시오, 우리는 매년 성인들의 축일이 다가올 때마다 기도하고, 전례를 거행하고, 성가를 부릅니다. 모든 성인 대축일에는 이런 신심을 더 강화해야 하고, 성인품을 받지 않은 모든 이, 곧 요람에 누워 있다가 세상을 떠난 영아들까지 모두를 기억해야 합니다.
오, 하늘을 생각합시다! 저 높은 곳에는 로마의 성 베드로 성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훨씬 더 아름다운 성전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바닥이 황금으로 되어 있는 성전보다 더 아름다운, 수천 수백만의 복된 이들에게 에워싸인 위대한 천상 어머니를 뵐 수 있는 곳입니다. 언젠가 그들 가운데 우리 또한 있게 되리라는 것을 생각합시다. 성인들은 이 세상에서 투쟁하여 승리한 이들입니다. 혹시 이 땅에서 오염된 것을 벗어버리지 못한 채 떠났다면 연옥의 정화를 거처 목적지에 [도달한] 것입니다. 하늘에 있는 이 영혼들은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예수님이 그 영혼들을 거룩하게 하신 것처럼 우리도 거룩하게 해주
시리라는 것을 생각합시다. 거룩하신 예수님은 그들만 부르신 것이 아니라 우리도 부르셨습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는 용기를 내야 합니다. 성인들인 그들도 시련을 겪고, 투쟁하고, 고통을 겪고, 기도하고, 승리하여 상급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겨내지 못하여 지옥에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인들을 바라보고 그들을 본받도록 노력합시다. 순교자들을 생각할 때, 우리가 그들의 극기 정신을 지니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사도들을 생각할 때, 우리가 그들처럼 하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동정녀들을 생각할 때, 우리가 그들과 똑같은 순수함을 지녔는지 생각해봅시다. 그들의 덕을 청하면서도 [오히려] 성인이 아닌 자들을 따르며 본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 봅시다.
각자는 하느님 앞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외적인 선함이 아니라, 내적인 선함, 겸손, 항구한 신심, 항구한 투쟁, 죄에 대한 증오, 덕행을 실천하려는 사랑과 열성이 [필요합니다.] 이 기간에 많은 중개자들이 동반해줄 수 있기에, 우리는 모든 성인의 도움을 바랄 수 있습니다.2 죄가 없는 정결한 순교 성인들을 생각해 봅시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천국에 있습니다. 동정녀들의 끝없는 무리를 생각해 봅시다. 하느님 앞에서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우리가 오염된 이 지상에서 구원되도록, 그들이 우리를 위해 전구해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보고, 듣고, 판단하기를 좋아하는 이들은 세상과 얽힌 가운데 세속적인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대가 누구와 어울리고 있는지 말
해준다면 나는 그대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줄 수 있습니다.” 성인이 되기를 원하는 이들은 세상의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책 대신 성인들의 전기를 읽고, 위대한 일보다는 작은 일에서 그들을 본받고자 노력합니다. 우리는 위대한 덕을 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니 작은 덕을 청합시다. 곧 잠심의 정신, 눈의 극기, 생각의 극기, 더 나아가 혀의 작은 결점들, 작은 불순종, 분심, 의무에 대한 게으름, 직무와 면학에 대한 소홀함을 극복하게 해주시기를 주 예수님께 청합시다.
실제로 성인이 되고 싶은 열정적인 마음이 있습니까? 성인들이 우리에게 보여준 위대한 귀감 앞에서 우리 자신을 낮추어 작은 덕행을 실천합시다. 9일기도 중에 성인들에게 작은 덕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청하고, 결점을 바로잡도록 합시다. 그것으로 충분합니까? 예, 충분합니다. 만일 우리가 작은 일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예수님에게서 큰 자비를 바랄 수 있습니다. 오, 우리가 얼마나 약하고, 죄를 지을 위험과 바른 길에서 벗어날 위험에 얼마나 많이 노출되어 있습니까!
이 묵상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결실은 무엇입니까? 성인들을 본받아 작은 덕의 실천과 결점을 바로잡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시어, 천국에서 성인들과 함께 예수님을 뵙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시기를 성모님께 청하며 “성모찬송”을 바칩시다.
* 두 장(22.5x33)의 등사본 본문. 제목은 “성인들”이다. 맨 윗줄에 “프리모 시뇨르 마에스트로의 강의 - 24/X/35”라고 제목이 명시되어 있다. 타자본의 편집자들이 손글씨로 “수호천사 - 성인들”이라고 추가했다.
1 토빗 5,16-17 참조.
2 성년(Anno Santo)을 맞이하여 특히 이제 막 성인품에 오른 이들은 알베리오네 신부와 바오로 가족에게 아주 친근한 이들이다. 1934년에 성인품에 오른 성 주세페 베네딕도 코톨렌고, 성 요한 보스코, 성녀 요안나 앙티드 투레(santa Giovanna Antida Thouret)와 1935년에 성인품에 오른 성 요한 피셔(san Giovanni Fisher), 성 토마스 모어(san Tommaso Moro) 성녀 루이사 드 마릴락(santa Luisa de Marillac)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