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자비롭고, 가장 경건하고, 가장 아름다운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님의 성심을 기리기 위해 이 달의 첫 금요일을 봉헌합시다. 예수 성심은 사람들에게 사랑스러운 것으로 드러납니다. 당신의 지극히 거룩하신 어머니 동정 마리아에게 특히 더 사랑스러운 존재이십니다.
예수님은 아기 예수님, 사춘기의 소년 예수님, 어른 예수님으로 성장하시면서 어머니 마리아와 형언할 수 없는 애정, 특별하고 내밀한 사랑의 교감, 서로 이해하는 마음을 쌓았습니다. 다른 이들은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하느님의 마음, [그리고] 당신의 거룩한 어머니의 마음을 잘 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동정 마리아의 태중에 강생하셨고, 그분에 의해 탄생하셨고, 그분과 함께 사셨고, 갈바리아의 마지막 시간에 이르기까지 그분에게서 도움을 받으셨기 때문에 결코 분리될 수 없는 마음입니다. 마리아는 아드님이 갈바리아에서 사형당하시는 현장에, 그 끔찍한 십자가 아래에서 마치 동상처럼 서 계시면서 그분의 참혹한 죽음을 끝까지 지켜보셨습니다. 예수님이 숨을 거두시자 마리아는 그분의 무덤까지 함께 가셨습니다. 그분이 부활하셨을 때에도 함께 계셨으며, 승천 때에도 산으로 그분을 따라가 하늘로 올라가시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셨습니다.
예수님과 마리아는 이렇게 마음으로 완전히 서로를 이해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성 요한 에우데스1는 두 분 중에 한 분을 제외시켜 말하
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오늘 성체와 묵주기도를 함께 이야기하면서 그분들을 기리고자 합니다. 오늘은 10월의 첫 금요일이 아닙니까?
레오 13세2는 신자들에게 묵주기도를 권고하고 그 가치를 알리려는 목적으로 열한 차례나 회칙을 반포했습니다. 묵주기도에 많은 대사를 허락했고, 특히 제대 위에 현시된 성체와 감실 안에 계신 예수님 앞에서 묵주기도를 바칠 때 많은 대사를 받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토록 묵주기도를 많이 바치도록 권고하는 것입니까? 앞에서 이야기한 여러 가지 이유에서입니다. 곧 예수님과 마리아 사이의 밀접한 관계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마리아는 지상에서 결코 분리될 수 없었고, 하늘에서도 분리되지 않습니다. 우리 또한 우리 신심에서 그분들을 분리시키지 않는 것이 옳습니다. 성체와 묵주기도에 경의를 표합시다.고통의 신비를 살펴봅시다.
[고통의 신비] 1단에서는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시는 예수님을 관상합니다.
잠들어버린 사도들에게서 버림받으신 구세주, 고독 속에 계신 구세주를 묵상합시다. 예수님은 바리사이들이 그분을 죽이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있는 동안 기도하십니다. 그분은 기도하십니다. 다가올 수난의 잔을 받아들일 힘을 얻기 위해 성부께 기도하십니다. 그분의 마음은 깊은 슬픔에 잠겨있습니다. 그 다음날 겪게 될 쓰디쓴 고통, 그러나 [흘리신] 피를 쓸모없게 만들 많은 영혼들을 보여주는 환시가 그분을 더 괴롭혔습니다. 사랑받던 영혼들이 이제는 적대자, 배은망덕
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분은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Tristis est anima mea usque ad mortem.”3라며 죽음의 고뇌를 토로하십니다. 당신의 고통은 정말 죽을 지경이었고, 급기야 피가 살갗을 뚫고 나와 땅 위로 흘러내릴 정도였습니다.
지금 우리 앞에서 예수님은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혹시 그분의 고통이 끝난 것입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성합을 열면 거룩한 성체가 눈에 보입니다. 오, 그 성체는 살아 계신, 맥박이 뛰는 심장을 가진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은 겟세마니에서의 죽음을 느끼는 단말마의 고통을 계속 이어가고 계십니다! 모든 시대에 예수님의 직무는 언제나 똑같습니다. 계속 기도하시고, 제물로 희생되시기 위해 당신을 감추십니다. 우리에게 버림받으시고, 하늘에 계신 당신 아버지께 상처를 드리며, 아주 멀어진 채 살아가거나 죽어가는 수많은 영혼들과 우리의 배은망덕을 참아주시는 지극한 인내와 무언의 제물이 되십니다.
여러분은 밤에 성체조배를 하겠지만, 바로 그 시간이 예수님께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임을 기억하십시오. 그 시간에 착한 이들은 잠을 자고, 악한 이들은 그분을 거슬러 음모를 꾸밉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을 향해 한탄을 하십니다. “이렇게 너희는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란 말이냐Una hora non potuistis vigilare mecum?”4 하느님의 바람을 이해하는 사람, 겟세마니에서 고통당하시는 예수님과 함께 있을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예수님이 동산에서 고통을 겪으시며 흘리신 그 피를 천사들은 모아들입니다. 이제는 여러분이 바로 신심 깊은 천사들입니다. 감실의 축성된 성체 안에서 똑같은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마리아와 함께 그분을 흠숭하고, 고통의 신비를 기도로 바치면서, 그토록 위대하고 강렬한 예수님의 고통과 열망을 이해할 수 있는
은총을 성모님께 청하십시오.
고통의 신비 2단에서는 기둥에 매달린 채 매 맞으시는 예수님을 관상합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원하고 있습니다. 빌라도는 증거가 불충분하여 그분을 단죄하기를 망설입니다. 그분을 풀어주고 싶지만 그럴 용기가 없는 그는 그 위기를 피할 방도를 찾았습니다. 예수님을 매질하게 한 것입니다. 구세주께서 기둥에 결박되자, 두 명의 집행인은 뼈 조각과 납을 끼운 가죽 채찍으로 무자비하게 그분의 등을 내리쳤습니다. 예수님의 살갗은 금세 찢어지고 살이 뜯겨나가자 뼈가 드러났습니다. “제 뼈는 낱낱이 셀 수 있게 되었는데Et dinumeraverunt omnia ossa mea …”5 피가 땅을 적시고, 집행인들의 손과 돌기둥도 피범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토록 극심한 고통을 당하셔야 했습니까? 우리 관능의 죄, 곧 태만, 탐욕, 감정을 보속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오, 인간이여, 여러분의 만족은 예수님께 얼마나 값비싼 희생을 치르게 했습니까! 여러분이 누리는 그것이 예수님께 뼈가 드러날 정도의 고통을 드렸습니다.
관능의 죄를 통해 예수님이 받으신 그 큰 고통을 보속하기 위해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을 열 번 바치며, 예수 성심을 위로해 주시도록 마리아께 청합시다. 관능의 만족을 추구하는 세 가지 죄에 결코 빠지지 않는 은총도 함께 청합시다.
고통의 신비 3단에서는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을 관상합니다. 그분은 악의 두 번째 원천인 교만의 죄를 보속하기 위해 가시관을 쓰셨습니다.
어깨에는 낡은 망토를 걸치고, 손에는 부러진 갈대를 쥐고, 머리에는 가시나무로 엮은 관을 쓴 채 발판 위에 앉아 계신 구세주를 경배하는 우리의 모습을 상상해 봅시다. 오, 작은 가시 하나가 손가락에 박혀도 잠을 잘 수 없는 고통의 밤을 보내야 하는 우리인데, 수많은 가시가 관자놀이에 박힌 예수님은 얼마나 큰 고통을 겪으셨겠습니까! 우리의 자만을 보속하기 위한 예수님의 고통은 어떠했겠습니까!
우리가 교만의 만족을 원한 결과는 어떤 값을 치러야 했습니까! 죄 없이 잉태되셨고, 모든 여인 가운데서 선택된 분이신 마리아께서 머리를 조아리고 계십니다. 하느님 어머니의 최고의 겸손을 배웁시다. 천사의 예고에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6라고 대답하신 그분께 겸손을 배웁시다. 우리 자신을 낮춥시다. 그리고 이 세 번째 신비 앞에서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으로 깊은 겸손의 은총을 청합시다.
고통의 신비 4단에서는 예수님의 사형선고와 갈바리아의 여정을 관상합니다.
예수님은 사형선고를 받으셨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그분이야말로 인간의 자녀들 가운데 영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분이시고, 가장 결백하시고, 가장 거룩하시고, 모든 이를 위해 보속하기에 가장 합당한 성부의 사랑받는 제물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피가 하느님께 받아들여지리라는 것을 아셨으므로, 지금까지 범한 죄와 지금부터 세상 끝날까지 범하게 될 모든 죄를 기워 갚기 위해 피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모두 흘리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는 가난하고 불쌍한 죄인들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시는 죽음을 기꺼이, 평화로운 가운데 받아들입시다. 삶에서 가장
큰 공덕을 쌓을 기회는 두 번 있습니다. 수도자 신분의 선택과 죽음을 수용할 때입니다. 이 두 가지는 하느님께 대한 순수한 사랑의 행위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순수한 사랑 안에서 죽는 사람은 연옥의 맹렬한 불을 면하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은총을 얻으리라는 확신으로, 삶에서 여러 차례 죽음의 행위를 수용할 수 있습니다. 자기 죄에 대한 속죄[로], 예수님처럼 자신의 십자가를 기꺼이 짊어지고 덕을 실천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자기애에서 이탈하여 하느님께 대한 사랑 안에서 사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 사람의 죽음은 거룩할 뿐 아니라, 유배지에서 조국 본향으로 넘어가는 여정이 되어줄 것입니다. 이 네 번째 신비를 바치면서 성모님께 그러한 죽음을 청합시다.
고통의 신비 5단에서는 십자가 위에서 임종의 고통 가운데 죽음을 맞으시는 예수님을 관상합니다.
예수님은 육신과 영으로 단말마의 고통을 겪으시고, 마리아는 마음과 영혼으로 고통을 겪으십니다. 십자가의 희생이 오늘 미사성제로 이루어집니다. 아, 미사성제의 가치를 이해하는 영혼들! 미사는 숨겨진 보물이고, 그리스도교 모든 신심의 중심이며, 신앙생활의 첫 번째 행위요, 하느님께 가장 잘 받아들여지는 희생제사요, 완벽한 전례(latreutico, 역주-예배를 뜻하는 그리스어 단어에서 파생함), 성체성사, 화해, 그리고 탄원이며, 연옥영혼들을 위한 뛰어난 대리기도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제대 위에서 새롭게 반복되는 예수님의 죽음이라는 위대한 사건인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나는 대신 쾌락과 오락으로 밤을 지새우는 것을 택합니다.
이 신비에서 우리는 미사성제에 열정적으로 참례하는 은총을 청합시다. 묵주기도와 성체는 서로 부드럽게 엮여있습니다. 예수님과 마
리아에 대한 사랑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게 될 때 우리도 성 요한 에우데스처럼 이 둘을 갈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 한 달 동안 우리는 미사에서 세 가지 은총을 얻기 위해 제대 위에 현시된 예수님 앞에서 묵주기도를 바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자주 성체를 영할 뿐 아니라, 성체를 거룩하게 잘 영하기 위한 은총, 아름다운 성체흠숭을 위한 은총, 한층 더 깊은 영성으로 미사성제에 참례할 은총을 청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생명의 달, 묵주기도의 달을 한 번 더 우리에게 허락해 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리고, 사는 기쁨보다 공덕을 쌓으며 삶을 마감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합시다. 우리는 삶을 연장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천국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시간을 낭비하지 맙시다. 시간을 잃지 맙시다!
* 두 장(23x33)의 등사본으로 된 강의. 제목은 “10월 첫 금요일”이다. 원문에는 시기와 저자를 “4/10/35. 프리모 시뇨르 마에스트로”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1 요한 에우데스(Giovanni Eudes, 1601-1680)는 프랑스 태생으로, 예수 성심과 성모 성심에 대한 전례적 공경을 추진하였다.
2 Leone XIII(빈체시오 조아키노 데이 콘티 페치Vincenzo Gioacchino dei conti Pecci, 1810-1903)는 1878년에 교황이 되었다.
3 마태 26,38.
4 마태 26,40.
5 시편 22,18.
6 루카 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