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디오와 같은 현대의 발명은 인쇄 매체의 강력하고도 광범위한 영향력을 결코 감소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그 활동범위를 확장시켰고, 「출판 사도직」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유하게 되었다.
인쇄, 영화, 라디오는 오늘날 긴밀히 서로의 힘을 강화시키고 완성하며 진보하면서 나란히 사상의 지배자, 세상의 정복자가 되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인류가 발명한 이 세 가지에 관해 반드시 연구해야 한다. |
그 힘을 말살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방어와 습득의 차원에서 사도직의 경이로운 수단이 되도록 연구해야 할 것이다. 반대되는 출판에 대항하는 방어는 ‘무기에는 무기로 맞설 것’이라는 원칙을 따라야 한다. 이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기 위해 습득해야 하는 것이다. “예술, 과학, 완벽한 기술과 인류 문명의 진보는 하느님의 선물이기에 하느님의 영광과 인간의 구원을 위한 것으로 질서지어져야 한다.”1
이같은 방대하고도 탁월한 이상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무엇보다 출판 사도직을 본연의 참된 빛 안에 자리잡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장章에서는 세 가지 본질적 요소, 곧 본질, 중요성, 목적을 제시하고자 한다.
‘출판 사도직’은 단순히 그리스도교 신앙과 윤리를 훼손시키는 요소를 거부하거나 공동선의 특별한 이상을 제시하는 시도 전반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출판이라는 수단을 통한 하느님 말씀의 설교’라고 정의할 수 있는 고유한 사명, 그 참된 사명을 의미한다.
‘하느님 말씀의 설교’ 또는 인류를 구원하는 진리, 기쁜소식, 복음선포를 뜻한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2 하신 주님의 명에 따라 모든 시대와 모든 장소, 모든 사람에게 선포자가 되라는 것은 모든 이가 원죄에서 비롯한 무지無知와 함께 모두가 하느님을 이해하고, 하느님께 자신을 들어 올릴 수 있는 지성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곧 모두가 구원받아야 할 영혼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원래 설교는 출판을 통해 이루어졌다.”
구두설교처럼 문서설교나 인쇄물은 하느님 말씀을 몇 배로 늘려 하느님 말씀이 어디에든 정확하게 도달하도록, 그러니까 하느님 말씀이 도달할 수 없는 곳이나 본래대로 말씀을 보존할 수 없는 곳까지 이르게 한다. 이는 현재의 성경 73권을 통해 당신의 거룩한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하느님의 귀감과, 언제나 구두설교에 인쇄된 설교를 결합시킨 교회의 귀감을 따른 것이다.
어느 시기에는 출판 사도직의 중요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 ‘어둠의 |
자식들’이 출판을 욕망과 탐욕을 부추기는 데 이용했기에, 급기야 교황 비오 10세는 특별히 출판에 대해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탄식했다. “오, 출판! … 아직도 그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평신도도 성직자도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곳곳에서 출판 사도직의 감탄할 만한 시도가 드러났다.
험난하고도 황폐해진 출판, 영화, 라디오 분야에서 가톨릭 신자들이 이미 활동을 시작했고 또 그것을 이어가고 있다. 여전히 적극적(긍정적) 활동과 구체적인 성공의 가능성이 많이 남아있다. 이제 그리스도교 사상의 전파자들이 이러한 도구를 충분하게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교 선교활동의 범주 저편에는 언제까지나 불모지가 남아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사도직의 본질뿐 아니라 하느님 말씀의 선포라는 출판의 내적 가치 면에서도 쉽게 추정할 수 있다. 인쇄, 영화, 라디오는 사람들이 읽고, 보고, 듣는 바에 따라 그들의 삶을 통제하고 여론을 형성하기 때문에 결국 사람들을 자기 성향대로 이끌어 가는 신비한 영향력을 가진 무기다. 이러한 점에서 결코 불합리하다고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말과 문서가 |
지성에 사상을 심어주면서 호소하듯 의지는 지성을 따르고, 그의 삶은 사상에 의해 진척하기 때문이다.
베랑거Beranger는 출판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좋든 나쁘든, 거짓이든 진실이든, 타락시키든 덕스럽게 하든 출판은 자유국가 안에서 전능 그 자체다. 여론을 형성하고 관습을 만들어 낸다. 좋은 출판이라면 가족과 학교를 강화하고, 나쁜 출판이라면 파괴한다. 출판은 직무를 무너뜨리기도 하고 세우기도 하며, 전쟁과 평화의 권한을 쥐고 있다.”
국제가톨릭출판 전시회의 지속적이고 빛나는 고무자인 교황 비오 11세는 로마 회의에서 잡지 「라 크루와la Croix」의 필자들과 관계자들에게 한 담화에서 ‘출판의 무한한 힘’을 강조한 후 이렇게 말했다.
“현실을 표현하는 데는 이같은 표현조차 충분치 않습니다. 말씀은 그 자체로 전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이 스스로 전능하다면, 말씀이 그와 같은 절대적인 조직과 그에 상응하는 보급수단을 구성한다고 할 때 출판의 위력이 어떠하겠습니까? 이러한 조직과 보급수단 덕분에 이 절대적인 힘은 참으로 온갖 한계를 넘어 몇 갑절로 늘어나는 것입니다.”
영화와 라디오에 관해서도 그에 못지않게 신뢰와 확신이 증명된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인쇄 사도직에 대한 내용을 다룬 다음, 이 책 |
제2편에서 영화와 라디오방송 사도직에 관한 것을 다시 언급하겠다. 지금은 다음의 내용으로 충분할 것이다.
교황 비오 11세는 영화의 격려자요, 격찬자였다. 그는 영화에서 과학의 놀랄 만한 힘을 보았고, 하느님의 선이 인류에게 베푼 선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영화는 ‘거의 언제나 거대한 악의 원천과 전달수단’이 되어버렸다. 이 때문에 교황은 통탄하듯 말했다. “얼마나 큰 파괴입니까! 영혼에 관한 사안입니다. 생각만해도 끔찍합니다!”3
교황 비오 11세는 현대적 발명인 라디오에 관해서도 비슷한 견해를 피력했는데, 라디오가 새로이 부각되고 급발전을 이루며 놀랍게 활용되고 있음을 간파하고, 라디오가 인류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 되기를 바랐다.
교황 비오 12세도 선임자처럼 인쇄, 영화, 라디오의 힘을 보고 놀라면서도 염려했다. 그 증거가 그의 많은 연설과 문헌, 행적에 나타나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1941년 5월 10일,
성바오로수도회를 승인하며 내린 ‘칭찬과 승인 교령Decreto di lode e approvazione’을 상기하고 싶다. 현대적 수도회인 성바오로 수도회 회원은 출판 사도직을 그 특수 목적으로 제시한다.
하느님의 영광과 인간의 구원, 이것이 바로 출판 사도직의 특수 목적이다.
베들레헴 오두막 위에서 천사들이 이와 똑같은 계획을 노래했다. “하느님께 영광, 사람들에게 평화Gloria Deo, pax hominibus.”4예수 그리스도의 계획이요, 교회 안에서 이루어질 당신 삶의 영원한 계획이다. 그러므로 가장 높은 목적이요, 천상 목적이다.
따라서 출판사도의 이상은 하나다. 하느님이 인간을 다스리시도록 하신 것이다. 곧 하느님께 지성을 복종시킴으로써 그 지성을 통해 신앙이 활기를 띠어 스며들게 할 필요가 있다. 하느님께 의지를 복종시킴으로써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게 하며, 하느님의 초자연적 사랑, 애덕에서 영감을 받아 그분께 마음을 내어맡기게 한다.
사도는 유일한 보화, 곧 영원한 보화, 천상지복을 지향한다. 사도는 이 보화가 자신에게 본질적으로, 확고하게 변함없이 자신에게 보장되고 또한 형제들과 모든 이에게 이 보화를 안겨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출판 사도직의 내용은 구두설교의 내용과 동일한 것으로, 가톨릭 교의에 관한 것이다. 교의에는 필수적으로 신앙, 윤리, 경신례가 포함된다. 백성에게 ‘길 진리 생명’으로 선포된 완전한 천상 스승께 교의를 통해 영광을 드린다. 또한 조명받아야 할 지성, 선으로 인도되어야 할 의지, 성화되어야 할 마음을 지니고 있는 인간의 근본 요청에 응답한다.
인간은 신앙의 진리를 알고 이에 충실해야 할 첫째가는 의무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을 알도록 창조되었습니다.”5라는 이 진리, |
하느님이 계시하신 진리, 교회가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우리 신앙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제시해 주는 이 진리가 출판 사도직 내용에서 첫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이는 신학에 온전히 나타나 있고, 교리에 간략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신경信經에 요약되어 있는 진리를 출판 사도직이 모든 사람들에게 알림으로써 모든 이가 교회와 함께 가톨릭 신경을 고백하게 하는 것이다.
신경: 한 분이신 창조주시요 만물의 근원이시며, 지혜와 힘과 선으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느님, 인간에게 온갖 권능을 행사하시는 분, 우리의 최고 목적이신 한 분 하느님을 저는 믿나이다.
동정 마리아에게서 나시어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외아들을 저는 믿나이다. 성자께서는 복음을 선포하시고 교회를 세우셨으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그리로부터 세상을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인간을 성화시키며 교회를 비추고 인도하시는 성령을 믿나이다.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과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천상 스승께서는 “나는 진리다.”6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영원한 구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신앙의 진리를 알고 고백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해야 한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7
하느님의 뜻은 인간에게 주신 율법에 표현되어 있다. 그러기에 계명을 지키고 각기 신분에 따른 의무와 덕행의 실천과 복음적 권고를 실천함으로써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출판 사도직의 2차적인 내용은 그리스도교 윤리 곧 인간의 관습과 자유로운 행동을 하느님 뜻에 부합하도록 이끌어주는 모든 규정이다. 곧 의지로써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다.
“… 네 목숨을 다하고…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8
그리고 세부적으로
계명: 우상숭배, 미신과 헛된 것을 좇지 않고 오직 하느님만을 경배해야 한다. 거룩한 것에 대한 모독과 온갖 불경을 멀리하고 하느님의 이름, 맹세, 서약에 대한 존중과 축일을 거룩하게 지키고, 자녀의 의무, |
종의 의무, 아랫사람의 의무, 노동자의 의무를 지키는 반면에 사람들과 이웃에 대한 명예훼손, 절도 그리고 온갖 불의를 단죄한다.
결국 이 모든 의무는 모든 사람이 하느님을 향하고, 자신을 향하며, 이웃을 향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교회의 규정 - 소극적이고 적극적인 이중의 규정: 축일에 대한 의무로서 휴식과 기도와 선행의 의무.
덕: 대신덕-믿음, 희망, 사랑; 사추덕-예지, 정의, 용기, 절제; 윤리덕-순명, 순결, 근면, 겸손 등.
복음적 권고: 인간이 최상의 경지에 들어 높여지는 곳인 공동 생활을 통한 정결, 청빈, 순명.
수도 신분과 교회적 신분과 모든 수덕 신학적 가르침은 그리스도인과 수도자의 완덕과 관련이 있다.
이 모든 것은 “나는 길이다.”9라고 말씀하신 예수님 삶의 거룩한 귀감으로 설명되고 확인된다.
전례는 신앙교육과 설교의 셋째 부분으로서 출판 사도직의 세 번째 내용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전례는 믿어야 할 진리와 지켜야 할 규범을 알게 하는 것 외에도 은총을 통해 하느님에게서 필요한 도움을 받아 모든 것을 하게 되는 은총의 수단을 알고 그에 참여하도록 인도해야 한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께 접목시키고 우리의 삶을 거룩한 삶으로 변화시키며, 하느님을 찬미하게 하는 공적이며 사적이고, 내면 적이며 외적인 행위의 복합적인 전례에 참여하도록 이끌어야 하는 것이다.
가톨릭 전례의 가장 숭고한 부분은 ‘성사’들로 구성되어 있다.
출판 사도직은 세례성사, 견진성사, 성체성사, 성품성사, 혼인성사와 병자성사를 밝히 설명해 주어야 한다. 특히 고해성사, 미사, 영성체, 성찬전례를 설명해야 한다.
성사와 더불어 ‘준성사’에 대해서도 가르쳐 주어야 한다. 준성사는 갖가지 축성과 축복, 구마식, 임종자를 위한 기도, 장례예식, 희사 등이다. ‘기도’에는 세 가지 형태가 있다. 개인적으로 바치든 공동으로 바치든 소리기도, 마음기도 그리고 삶의 기도다. 특히 공적 기도는 교회가 정하고 가치를 부여한 공식적인 것이므로 전례주년을 충실히 따라 기도할 때 가장 완전한 기도가 된다. 이것은 영혼에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새기는 것이 목적이기에 가장 유익한 기도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
모습을 갖추실 때 까지”,10 결국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라고 말하게 한다.11
예수님은 “나는 생명이다.”12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설명하고 있는 출판 사도직의 내용은 그 모든 영역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모든 것이란 직접계시와 간접계시의 곳간과 같다.
직접계시: 교회의 신학적 가르침에 대한 설명, 옹호, 해설, 대중화.
간접계시: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과 계시에 연관되거나 포 함되어있는 문학작품, 예술작품, 철학 원리, 사건들에 대한 설명, 수호, 해설.
여기에 덧붙여야 할 것은 문학, 역사, 예술, 과학을 통해 신앙에 이르도록 도와주고 신앙에 빛을 비추어주는 모든 것, 예를 들면 출판분야의 학술서적, 신문과 잡지, 흥미로운 문학 작품들이다. 이것은 피조물 안에서 모든 것이 하느님을 표현하고 드러내며 그분을 찬미하게 하는 것이며, 삶 속에서 신앙이 모든 것을 비춰주고 성화시키게 하기 위함이다.
또한 이 모든 것은 선을 건설하는 적극적인 활동일 뿐 아니라 악의 확산을 막거나 악 자체를 소멸시키는 소극적 활동이기도 함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출판 사도직의 내용은 결국 교회의 가르침, 성경과 성전에서 이끌어 내는 가르침으로서, 이성의 논증을 통해 이를 설명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도에게는 성경과 성전聖傳의 원천을 사람들에게 제시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마땅할 뿐 아니라 필요하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순서가 있다. 교회의 가르침이 첫 자리를 차지하는데 그것은 우리 신앙에 밀접한 규범이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에 오래된 규범을 이루는 성경과 성전이 뒤를 잇는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도권의 무류성을 오직 교회에 주셨기 때문에 |
사도는 여기서도 교회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
출판 사도직은 사람들에게 교회의 가르침을 전하는 것이 첫째요, 주요 임무로서 교회, 교황, 주교, 가톨릭 사제의 말을 반복하는 사람, 목소리, 스피커가 되어야 한다. 존경하는v.m.14 교황 비오 11세는 당신 진리의 좌 가까이에 아버지답게 가족처럼 맞아들인 시사평론가들에게 “여러분은 우리의 목소리 그 자체입니다.”라고 했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참된 종교를 알고 심화하기 위해 종교에 대한 적절한 연구를 할 가능성이 없다. 그래서 우리의 목적을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 전혀 없으신 하느님께서 오류도 결점도 없는 보편 교회를 제정하심으로써 섭리해 주셨다. 그것은 모든 장소와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이 참되고 좋은 것을 확실하게 알아 돌아설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사람들, 모든 백성은 매 순간 그 가르침에 전도顫倒되고 늘 그리로 향하면서 천상 진리와 하늘에 도달하기 위한 확실한 길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이를 증명한다. “너희 말을 듣는 이는 |
| 내 말을 듣는 사람이고, 너희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물리치는 사람이며, 나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물리치는 사람이다.”15
교회의 가르침을 받은 사제와 신자들은 진리를 탐구하고 확인하는 일에서, 다시 말해 계시의 원천에 대한 연구에서도 교회의 가르침을 따를 준비가 되어있다. 계시의 원천은 성경, 성전, 계시된 진리를 담고 있는 우리 신앙의 오래된 규범이다. 최우선인 성경은 하느님이 당신 자녀인 인간을 하늘로 초대하기 위해 보내신 하느님의 편지 또는 위대한 책으로서 믿어야 할 진리, 행해야 할 활동, 도달해야 할 은총의 수단을 제시해 놓으셨다.
그러나 하느님이 교회에 그리고 교회에만 맡기셨기에 거룩한 본문(성경)에 대한 자유로운 해석이 허락되지 않는 관계로, 진리의 보고寶庫인 성경은 교회의 지시에 따라 읽고 연구해야 한다.
거룩한 어머니인 교회의 충실한 아들로서의 출판사도는 모든 사람에게 성경을 전하라는 위임을 받았기에 언제나 교회의 규범에 따라야 하며 |
교회의 원칙과 본질적인 해석에 상응하지 않는 것은 거부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에게 상기시켜야 할 것은, 성경을 깊이 연구하기 위해서는 신학과 믿을 만한 입문 연구뿐 아니라 특히 교회가 제안했거나 적어도 승인한 해설을 수용하겠다는 교회에 대한 충실도 필요하다는 점이다.
신자들과 백성에게는 방대하지 않은 대중적 성격의 풍부한 해설을 곁들인 성경본문을 읽도록 제시해야 하는데, 이 또한 다음에 설명한 규범을 따라야 한다.
출판사도는 교회의 가르침과 성경 외에도 성전聖傳을 대중화하고 보급해야 한다. 성전은 성경을 실현하는 거룩한 계시 부분으로서, 성경에 포함된 내용은 아니지만 우리에게 진리를 전달하고, 그 진리를 이론적이며 실천적인 일반 교도권과 장엄한 교도권의 권위있는 방식으로 해석한다.
출판사도는 교회의 인도를 받아 성전聖傳과 함께 가톨릭의 가르침을 명확히 설명하고 확고히 다지며, 적용하고 수호해야 한다. 그리고 교회에서 하느님의 영광과 인간의 구원을 가져다 주는 노고와 결실을 이끌어 낼 줄 알아야 한다.
출판 사도직은 내용과 형태 면에서 사목적인 특징을 뚜렷이 드러낸다.
사목은 인간을 다스리는 뛰어난 예술이다. 다시 말해 인간을 사목한다는 것은 그리스도교적 성성이라는 올바른 길을 통해 진리라는 건강한 목초지로, 초자연적 삶의 원천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거룩한 과제였다. 스승은 이 과제를 사목자들에게 전수하며 맡기셨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16
이것은 다름 아닌 위대한 사제의 직무다. 사제는 설교대에서 설교하거나 종이, 책, 영화, 마이크를 통해 설교해야 한다. 유일한 교의, 유일한 계획, 하느님의 대리자를 위한 유일한 직무, 곧 출판의 언어를 이용해야 한다. “영혼은 나에게 주고, 나머지 것은 가져가시오.”17
출판 사도직은 출판물을 통해 제시하는 내용에서, 바꾸어 말하면 지식에서 또는 인식이 무엇보다도 사목적이어야 한다.
이 점에서는 교회가 스승이다. 교회는 거룩한 교의의 위탁자요, 모든 인간 지식의 모체altrice18다. 왜냐하면 인간의 모든 학문과 모든 예술이 어떤 식으로든 계시에 의해 빛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학문 분야에서 최고의 공로자다. 그러나 교회의 본질인 직무, 관심사는 하늘의 길을 밝히 제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교의 경신례, 윤리, 신앙의 진리 안에서 사람들을 지도하는 것이다.
교회의 발자취와 지침을 따라 출판사도는 자신의 특수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만 학문과 예술에 관여한다. 같은 방식으로 선교사는 |
믿지 않는 이들이 좀 더 쉽게 회심하도록 학문과 예술을 이용한다.
그러므로 사도의 주요 염려는 독자들에게 최근의 소식을 알리는 것이 아니요, 정치, 경제, 산업, 농업, 문학 등의 문제점을 다루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그리스도교 사상으로 쉽게 인도하며, 영혼을 독이 있는 목초지에서 구하고, 학문과 예술을 그리스도교 사상으로 성화할 수 있어야 하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거룩한 교의를 교리문답식이나 학술적 방식으로 직접 제시하여 전하기보다는 개인, 가족, 사회, 국제적 차원에서 그리스도인 삶에 적용되는 방법으로, 진리와 교회력을 따른 전례적 삶이 모든 활동의 바탕과 본질이 되도록 이끌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축일, 복음서, 서간, 전례 거행을 통해 사람들에게 제시해야 하는 진리, 규범, 은총의 수단을 이끌어 내고 대중화할 것이다.
또는 교황, 주교, 사제가 가르치는 교의를 적용하면서 시대를 거쳐 내려오는 교회의 삶이 그 바탕과 본질이 되게 한다. 그리고 사도는 악마의 도시에 맞서 하느님의 도시가 벌이는 전투에 자주 참여하고 파수꾼으로 나서기도 한다. |
적대자들의 공격에서 윤리, 교의, 신앙을 보호하면서 어머니인 교회가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보화를 지상 곳곳에 널리 유포한다.
또는 시대에 따른 정치, 경제, 사회, 학문, 윤리 문제에 가톨릭 교의를 적용한다.
출판사도는 첫 두 양식에 대해 교의적 바탕과 사실적 증거 자료를 지닐 것이며, 세 번째는 역사적 · 교의적 방법을 따를 것이다.
출판 사도직은 내용을 설명할 때도 사목적이어야 한다. 인간의 모든 능력, 곧 지성, 의지, 감정을 이끌어 인간을 거룩한 선물, 하느님 자체로 양육해야 한다. 이로써 인간은 하느님으로 변모하게 된다.
모든 인간은 하느님께 합당한 영광을 드려야 한다. 그분께 완전하고 지혜로운 경의, ‘합당한 예배’19를 드리기 위해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그분께로 방향지어야 한다.
지성은 하느님께 경의를 표해야 한다. 천상 스승은 말씀하셨다.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20 그러므로 ‘착한 목자’이신 그분은 온갖 |
방법을 다 동원하여 가르치셨다.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21
의지: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라.”22 의지는 완전한 모범이신 천상 스승의 표양과, 하늘의 길을 두드린 이들과 성인들의 표양으로 조명되어야 하고, 의무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으니”23 노력하라.
하느님께 감정과 마음을! 하느님의 생명 곧 은총은 마음을 충만케 하고, 성령의 활동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로 변모시킨다.
세 가지 욕망이 인간을 흔들어 놓는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살림살이에 대한 자만은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입니다.”24 그러므로 순결과 가난의 정신, 마음의 겸손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출판 사도직의 보편성은 이를 실행하는 이에게는 다음 세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는 특별한 재능과 열망이 요청된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느낄 것, 교회와 함께 느낄 것, 성 바오로와 함께 느낄 것.
이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25 하신 말씀에서 드러난 천상 스승의 마음을 지니라는 뜻이다. 따라서 모범과 사명이나 교육에만 몰두하지 말고, 기도와 성사, 하느님 말씀과 성사에 얼마나 자주 참여했는지에 대해서만 걱정하지 말아야 한다. 궁핍한 사람들, 여인들, 특정 계층의 사람들에게만 몰두하지도 말아야 한다.
이러한 특수한 사도직을 위해서는 |
전문가들이 있다. 그들은 자기네의 여러 거룩한 사업을 위해 출판을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출판 사도직은 온갖 필요, 온갖 활동, 온갖 이니셔티브, 모든 것에 마음을 쓴다. 그러므로
종교교육을 위한 활동: 교리, 그리스도교 문화, 교육.
윤리적 양성을 위한 활동: 청소년 교육에 관한 모든 것(유치원, 중고등학교, 대학교), 가톨릭 단체, 성소, 선교, 결혼의 성화, 가정의올바른 정립, 바람직한 입법과 국민 통치.
영적 생활을 위한 활동: 기도와 신심, 연중 전례, 성사들 같은 일반 전례와 특별 전례, 경신례 실천.
선행: 성 빈첸시오 드 폴의 강연, 매일의 자선, 고아원, 양로원, 요양소, 병원, 교도소, 병자, 과부, 장애인, 하인들과 가난한 이들 모두를 포함한다.
출판 사도직은 이 모든 활동에 관한 서적, 잡지, 적합한 출판물을 통해 효과적으로, 열정을 다해 기여할 수 있다. 열중해야 할 것은 무엇보다 복음서, 성체신심활동, 젊은이 양성, 샘에서 (분출되듯) 다른 사도직을 발산하는 모든 문화적 활동이다.
출판 사도직은 교회를,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설립하신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로마 가톨릭의 그르칠 수 없이 완전무결한 가시적인 단체로 생각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이 사도직을 실행하는 사람은 자신의 사적 감정을 내려놓고 정신, 의지, 마음이 항상 교회의 규정에 따라 생각하고 활동하고 느끼도록 지향해야 한다. 결국 어머니의 마음을 지닌 교회를 향한 자녀의 마음으로 사람을 대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의 승인과 추천을 받은 저작자들 특히 교회 박사들을 토대로 양성해야 한다. 전 생애 동안 그들의 저서를 읽어야 하고 묵상해야 한다. 특히 교황 문서, 로마 교황청 문서, 주교단의 문서를 읽어야 하지만, 교회가 가르치고 원하는 것과 엄밀히 일치하지 않는 온갖 서적, 잡지, 경향, 정당, 논쟁, 연설을 즉각적으로 거부해야 한다.
그다음으로 교회, 교황, 주교단, 공의회, 교회법, 전례 규정, 규범, 교의적 가르침과 전통적 가르침 등 교회에 관한 내용을 조명하고 칭송해야 하며, 이를 출간하는 일이 출판 사도직에 속한다. 또한 그 내용들을 수호하고 생활에 적용해야 한다. 교회 안의 모든 |
단체를 장려하며 대답이 될 때 책망해야 한다.
이 사도직에는 특별히 교황청의 이니셔티브와 권고를 실현하기 위하여 성좌를 보필할 과제가 맡겨졌다. 교구에 관련한 이니셔티브 실현을 위해 주교단에 조화, 일치, 효과를 가져올 지역적인 일을 위해 재속사제(교구사제)와 수도사제를 동반할 과제가 맡겨졌다.
요약하면, 출판 사도직은 교회, 교황, 주교단, 본당신부, 사제의 목소리가 된다. 그와 같은 목소리는 모든 이에게 교회의 진리, 성성, 생명이 도달하기 위해 확성기처럼 모든 이에게 확장된다.
성 바오로는 전형적인 사도다. 그는 하나의 이상, 하나의 생명, 하나의 존재에 헌신하기 위해 전혀 다른 종류의 요소를 자기 것으로 삼았다.
바오로 사도는 지칠 줄 몰랐다.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26 그는 항상 어디서든 모든 이와 함께했고, 모든 수단을 사용했다. 열정적인 사도는 허약한 체질, 장거리, 산, 바다, 지식인의 무관심, 권력자의 힘, 향락자의 조롱, 체포, 순교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새로운 빛,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개혁하기 위해 세상을 |
두루 다녔다.
출판사도는 바로 그렇게 되어야 한다. 이방인의 사도, 곧 그의 귀감이요 보호자의 자취를 따라 온 세상을 끌어 안는 큰 마음을 지녀야 하고, 지칠 줄 모르는 활동으로 영혼을 하느님께 인도하고 하느님을 영혼에게 모셔가는 영웅이 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모두 같은 방식으로 하느님께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각기 개인적 필요가 있기에 사도는 귀감이신 분에게서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는’ 슬기를 배워야 한다. 또한 사람들을 육체적 · 지적 · 윤리적 · 종교적 그리고 문화적 조건에 따라 대하는 사도 바오로의 다양한 방식과 적응의 유연성을 배워야 한다.
사실상 사도는 이방인의 사도가 오네시모스를 환대하는 모습으로 또는 동정녀 테클라와 함께 사랑과 자비로 수고하여 드높여진 내면의 옷으로 갈아입을 필요가 있고, 때로는 코린토인들에게 행한 힘 있는 훈계를, 때로는 아레오파고스에서 설교에 앞서 취한 기품을, 때로는 필레몬에게 말한 것같은 단순함을 취할 필요가 있다.
출판사도가 이렇듯 성 바오로의 적응의 비결, 곧 사랑을 발견할 줄 안다면 큰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 위에 사랑을!”27
사도직에서도 하나의 방법, 곧 행동양식을 통합하는 원칙과 기준과 배치의 종합을 따르는 것이 유익하다. 방법은 행보를 관리하고 목적 달성을 보증한다.
출판 사도직에는 다음과 같은 방법을 권할 만하다. 길 진리 생명, 곧 복음의 세 명제를 따르는 방법이다. 사도는 양성 때 이를 배워 심화시키며, 자신의 사도직에 이를 구체화시켜야 한다.
이러한 방법의 실천양식은 이 책 전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는 본질, 기초, 실행을 설명하고 실천적인 몇 가지 규칙을 제시한다.
길 진리 생명의 방법은 인간이 하느님과 완전하게 일치해야 하는, 다시 말해 자신의 모든 주요 능력인 지성, 의지, 감정을 통해 일치해야 한다는 원칙에 그 뿌리를 둔다.
그렇다면 실제적으로 어떻게 일치할 것인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28라고 하신 진리, 성화, 은총의 중개자요, 하느님께 선택된 예수 그리스도를 따름으로써 그리고 정확하게 말하면 다음과 같은 도식을 따름으로써 일치하게 된다.
1.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름: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 걸음으로써(의지의 일치).
2.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름: 그분의 가르침에 귀기울임으로써(지성의 일치).
3.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름: 그분의 사랑과 은총 안에 살므로써(감성과 정신의 일치).
이러한 원리에 근거한 도식에 따라 사도는 자신의 양성과 사도직을 위한 주요한 방법을 발견할 것이다.
제시하는 방법은 인간 본성의 자연 질서와 인간 본성이 들어높여진 초자연 질서에 기초를 둔다.
자연 질서: 영혼과 육신으로 결합된 인간은 본성을 제시하는 고유한 능력, 곧 영적 기능과 감각기능으로 행동하고 활동한다. 동일한 그루터기(인간 본성)에 뿌리내린 이러한 인간의 힘은 상호 의존하지 않을 수 없으며, 행위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의 특정한 활동에 대한 설명을 오로지 의지의 활동으로 제한하거나 지성이나 감성만으로도 아니고, 감각적인 것만으로 설명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29 인간 안에서 힘은 영적 질서 안에서든 반드시 생명의 조화 속에서 모든 것이 실행될 것이다.
그래서 영적 능력들, 의지, 지성과 감정에 국한시켜 볼 때 이러한 세 가지 능력의 활동이나 행동의 직접적인 원리는 ‘길 진리 생명’이라는 복음의 세 가지 명제 안에 잘 표현되어 있다고 말할 수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내가 어떤 정해진 길을 걷기를 원한다고 하자, 목표에 대한 이상idea은 의도를 통해 생겨나고, 의지에 의해 갈망하게 된다. 그렇지만 수단을 적합하게 선택하기 위해서는 먼저 길을 알아야 한다. 곧 지성의 성찰이다. 그다음에 진행하기 위해서는 활력, 힘, 열정, 용기가 필요하다. 곧 감정이다.
이 모든 것은 논리적이고 점진적이다. 사실 인간의 으뜸가는 능력은 의지고, 이 의지가 지성, 감정, 감각 등에 명령한다. 의지로 활성화된 지성은 적합성, 균형, 인간관계, 수단이 지닌 효과 등을 고찰한다. 의지의 명령을 받은 감정은 감각 세계의 질서 안에서 사물을 터득하여 감각을 적용하며, 생기찬 활동을 추진하고 끌어 당긴다.
의지의 (원초적인) 첫 행위에는 목적을 드러내는 지성의 빛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지만, 목적의 의도에는 억누를 수 없는 경향처럼 빛을 발하는 지배력을 드러내는 의지가 있다.
감정은 의지, 지성, 그리고 감성과 감수성의 활동에서 분리할 수 없지만 이는 지성의 조명을 받고 감각의 도움을 받은 의지가 질서정연하게 실행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30
초자연 질서: 여기에 인간 본성 전체를 들어 높이는 생명과 활동의 새로운 원칙인 은총이 있다. 그리고 자연 질서 안에서 생명을 주는 원칙이, 실존과 행동에서 이를 지탱하기 위해 의지와 지성에 권한을 부여하는 것처럼, 초자연 질서 안에서도 은총은 의지와 지성에 정보를 주어 초자연적 목적에 따라 해결하고 활용할 수 있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총은 인간 본성을 특징짓고 들어 높이면서 효과적인 에너지를 일으키는데, 이 에너지는 (자유를 존중하는 가운데) 목적을 향해 의지를 끌어당기고, 지성에 자연적이고 초자 연적 진리의 비전을 수월하게 가져다 준다. 이 에너지는 많은 장애를 신기할 정도로 제거하면서 신앙행위의 발산을 통해 그리고 여러 결의를 통해 지성과 의지를 도와준다.
초자연 질서로 들어 높여진 인간 본성 안에서도 길 진리 생명이라는 방법의 기초를 발견하게 되는데, 여기서도 인간은 자신의 핵심 능력(지성, 의지, 감정)31과 더불어 행동하기 때문이다. 비록 은총으로 들어 높여지지만 이 능력들은 적합한 행위들의 실행에서 상호 영향을 끼친다.
인간 활동의 모든 분야(이론적 · 실천적 · 사상적 · 예술적…)에서 그리고 모든 학문(신학적 · 철학적 · 역사적 · 전기적…)에서 복음의 세 명제의 구체적인 실현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점에 관해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증거를 제시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몇 가지로 제한하기로 하자.
인간의 활동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철학적 원칙이 잘 알려져 있다. “의도意圖의 첫 자리는 목적이다.”32 그러나 의도 또는 목적은 본질적으로 (지적 인식에 관한) 하나의 상황으로 기우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경향은 이러한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길을 따르는 의지 고유의 특성이다.
뒤이어 목적에 어울리게 하는 수단들의 검토로서, 목적에 더욱 적합한33 결과를 주는 행보에 대해 성찰하며, 생각과 행동 사이에, 말과 말 사이에, 행동과 행동 사이에 존재하는 연결에 대한 검토다. 다시 말해 의지가 장애를 피하고, 어려움을 해결하며, 언제나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통해 늘 빛을 받도록 원인과 결과 사이의 검토가 따른다. 이것이 지성의 임무요, 진리를 통한 의지의 빛이다.
일단 의지가 목표를 결정하면 지성은 합당한 수단을 정하게 되고, 그 결심을 실현하기 위한 힘을 요구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생명과 매우 유사하여 생명의 상징이랄 수 있는 마음 또는 감정이다.
인간 삶의 시기에 따라서: 유년기에는 다만 자신이 보고 듣고, 인상적인 것만 모방하여 행동한다. 청년기에는 사고하기 시작하고, 사물의 근원을 탐구할 뿐 아니라 원인과 결과 사이의 조화도 추구하게 된다.
삶은 계속된다: 노년기에는 특히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행동한다.
그러므로 감정과 정열이 지배적인 청년기의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는 점진적인 세 단계, 곧 유년기는 모방(길), 성년기는 성찰(진리), 노년기는 감정(생명)의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지성이라는 유형의 연구와 활동을 통해’ 세 명제의 점진적 실현과정을 증명할 수 있다! 어떤 책을 읽는다고 하자. 첫 눈길은 저자의 지적 행보를 따르는 것(모방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그 다음 시대와 사고를 결속시키는 동기를 검토한다. 마침내 애정을 갖고 전념하게 되는 자신의 생명, 자기 것이 되게 하는 사고와 개념에 동화된다.
묵상이나 설교를 통해: 읽거나 경청하는 것은 우리 밖의 다른 사람이 찾아 낸 길을 단순하게 따르는 것이다.
성찰이 따름-(좋든 나쁘든) 원인에 따른 결과에 상응하는 관계를 |
검토한다. 지시한 그 길을 효과적으로 걷기 위해 적합한 수단을 검토한다. 그런 다음 내적 동화가 이루어지면 열정적인 행동을 통해 숙고한 것을 자신 안에 살게 하고, 자기 것으로 한다. 그때 신념은 자기 것이 된 실재(생명)로 변하고, 그런 다음 개별 행동으로 발전하며, 실현 가능한 것이 된다. 의지의 경향(목표)과 지성의 확신이 고유한 삶을 낳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그리스도교 가르침이 구체적인 실천을 도외시하고 의도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도 설명이 가능하다. 의도는 효과적이고 인간의 생명이 되기 때문에 창조한다.
삼단논법을 적용해 보자면, 대전제에서는 의지가 정한 어떤 길(방법)에 해당하는 명령을 서술한다. 소전제의 주어인 정신은 의지의 명령에 대해 성찰하고, 그것을 수용할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를 분석하는데, 이것이 매개념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 두 전제가 결합되면서‘결론’으로 요약되는데, 이렇게 형성된 결론은 지식 분야에도 중요한 기여를 하게 된다.
여기 제시한 예와 다른 수많은 예는 ‘길 진리 생명’ 방법이 유기적이고 논리적이며, 명쾌하고 정확하다는 것을 입증할 뿐 아니라 인간의 특수한 구성 요소를 건드리기 때문에 무한히 적용할 수 있다.
제시한 방법을 따를 때 인간에게 길 진리 생명이 되고자 하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하느님께 완전히 전념하는 법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방법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되며, 상황에 적응할 줄 아는 유연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의지가 지성에 부합하는 것처럼 인간의 힘 위에 군림하는 의지에 부합하는 의견을 기꺼이 따라야 한다. 의지가 인간 능력의 여왕인 것이 사실이라면, 지성 또한 행동 질서 안에서 확고하게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사실 관념이 행위를 낳고, 그런 다음 행위는 감정을 촉발하며, 감정은 관념에 가치를 부여하여 행동을 강화한다.
출판 사도직의 직무자는 통상 직무자와 특별 직무자 두 가지로 구분된다. 통상 직무자들은 성직 수임자로서 성무를 수행한다. 이들은 사제다. 특별 직무자들은 그 사제와 일치 안에서 협력하며, 그 사제에게 종속된 이를 말한다. 이들 모두는 가톨릭 신자일 수도 있고, 갈라진 형제나 이단자, 또는 비신자일 수도 있다.34
이제 하느님이 뽑으시어 성무를 수행한다는 측면에서 사제를 가리키는 통상 직무자들에 국한시켜 살펴 보기로 하자.
출판 사도직은 흔히 ‘거룩한 진리’에 대한 문서설교라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문서설교를 교회 교도권에 위임하셨다. 곧 교황과 그에 일치한 주교들, 그리고 통교를 통해 주교들에 의해 임명된 성직자들, 일반적으로 ‘사제’라고 일컫는 이들에게 맡기셨으므로 구두설교든 문서설교든 모든 설교는 이들의 의무다.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복음 안에서 다시 태어나도록 하는 일을 맡은 것은 바로 사제다. 그러므로 진리와 윤리, 거룩한 경신례(전례)와 구원의 수단을 통해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는 일은 사제에게 위임되었다. 그리고 말이나 출판이라는 수단은 부수적인 문제로서 상황에 따라 필요성이 달라진다.
따라서 출판의 필요성이 더 많이 요구될 때 사제에게 출판의 의무는 더욱 중요해지고, 이 사도직을 발전시킬 기회가 더 커진다.
교회 안에서 사제는 그리스도를 삼위일체 하느님께 봉헌하고, 그리스도를 세상에 주는 두 가지 주요 성무를 수행한다.
그리스도를 삼위일체께 봉헌하는 것은 미사의 희생제사를 통해 서다. 그리스도를 세상에 주는 방식은 |
다음 두 가지다. 곧 성체성사와 준성사를 비롯한 다른 모든 성사를 거행함으로써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세상에 준다. 또 복음화를 통해 길이요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세상에 준다. 다시 말해 그분의 말씀과 계명, 거룩한 모범을 가르치고 대중화하며 이를 보호하고 삶에 적용함으로써, 또 사람들이 그분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살아가도록 이끌어 줌으로써 그리스도를 세상에 준다.
이제 사도는 이 모든 것을 말씀 사도직과 마찬가지로 출판 사도직으로도 행할 수 있다. 오히려 많은 경우 출판 사도직이 말씀 사도직보다 더 많은 도움을 준다.
그러므로 말씀 사도직의 통상 직무자가 사제라면 그는 출판 사도직의 통상 직무자이기도 하다. 또한 말씀 사도직과 출판 사도직이나 사명이 모두 공통의 대상과 목적이 있다면 이를 수행할 사람들도 있어야 한다.
출판 사도직에서 수도자들은 일반 성직자의 공통된 임무와 그들의 특수한 신분에 따른 특별한 가능성을 지니게 된다. 가능성과 임무는 다음과 같다. 더 넓은 광대함, 더 긴 지속성, 더 큰 열성.
설교, 영향, 은총에 대해
설교에 대해: 하나의 본당, 하나의 교구에 제한되지 않고, 그들의 활동을 교회 전체로 확장시킨다.
영향에 대해: 성좌에 특별하게 봉사하는 것으로, 다양한 사회계층의 신자, 다양한 조건에 놓인 신자 모두에게 |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은총에 대해: 받은 성소를 통해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기에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에 대한 은총이 충만하다. 사실 하느님은 각자에게 맡긴 임무에 따라 기꺼이 은총을 선사하신다.
수도회는 사제 개인보다 생명이 더 길다.
사실 수도자 중 한 명이 사도직을 충분하게 수행하지 못하게 되면 또 다른 사람이 그 뒤를 잇게 될 것이다. 그리고 수도자 중 한 사람이 천국의 화관을 받으러 간다 해도 수도회는 다른 이가 동일한 사업을 계속하도록 배려할 것이다.
하나의 계획이 좋은 결과를 보장하고, 일이 많아지거나 새로운 어려움을 당하게 될 때, 수도회는 인원을 보충하여 도울 것이다.
마지막으로 수도자들은 사도직에 대해 더 큰 열성을 갖는다. 이는 사도직에 헌신하는 이가 개인의 필요를 돌보지 않고 자신의 시간을 사용하기 때문이며, 또 수도서원은 사도직에서 자연적·초자연적 힘을 |
집중하여 더 많은 결실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신자들은 지상에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것을 아는 수도자에게 특별한 신뢰를 갖고 지지한다. 결국 수도회는 질료와 형상에 있어 하나의 전문학교, 말하자면 사도직의 모든 분야에서 숙련된 전문가를 양성하는 학교가 될 수 있다.
다른 시대에 출판 사도직이 개인적인 이니셔티브를 통해 많은 결실을 내며 추진되었다면 오늘날은 이러한 이니셔티브가 비록 큰 이익을 볼 수 있다 하더라도 적을 대적하기에는 충분치 않을 것이다.
사실 우리 시대의 특징은 교회를 반대하는 출판사들이 거대한 조직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반대자가 출판을 이용하기 때문에도 그러하고 히브리인들, 프리메이슨, 개신교, 공산주의 등에서도 출판에 대단한 투자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대의 정신과 현대의 형태를 지닌 광대하고 힘 있는 조직으로 대항할 필요가 있다. 달리 말해 출판 사도직에 종사함은 |
개별적 이니셔티브가 아니라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준비된 사람들이 종사하여 시간과 공간에서 결실을 증대시키는 보편적 특성의 이니셔티브가 필요하다.
이렇게 고안한 사도직은 다음과 같은 폭넓은 가르침, 영향, 은총, 일의 연속성, 열정, 강한 희생 정신, 열렬한 기도 정신 등을 요청한다.
결국 교회에 의존하여 행동하고, 반대자들의 거대한 힘을 이길수 있는 유일한 힘인 하느님의 힘만을 신뢰하는 사람들, 같은 부르심과 특별한 양성을 받은 사람들이 종사할 것을 요청한다.
이렇게 형성된 무리는 출판 사도직의 수행을 특수 목적으로 제시하는 수도자들의 집단 외에는 있을 수 없다.
이러한 생각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경륜과 교회의 전통에 완전히 일치된 것이다.
사실 하느님은 각 시대마다 필요에 부응하는 사람들과 수도회를 일으키셨다. 곧 그리스도인이 지나치게 피상적인 삶에 매달려 있을 때 하느님은 관상생활을 하는 수도자들을 일으키셨다. 페스트가 맹위를 떨칠 때는 환자들의 치료에 헌신하는 수도자들을 일으키셨다. 전 세계를 |
향해 해외선교에 매진할 수 있는 여러 길이 열렸을 때는 선교 수도자들을 일으키셨다.
그리고 하느님의 계획을 충실히 해석하는 교회는 세기에 걸쳐 그 활동을 언제나 수도자들에게 맡겼다. 예를 들면 이민족을 위한 선교, 전염병으로 인한 기근과 페스트를 위한 자선단체 조직, 십자군 원정, 명백한 역사적 순간과 사건을 입증한 위대한 연구, 노예 해방, 갖가지 위대한 개혁과 젊은이들의 교육 등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현시대의 요청에 부응하기 위한 여러 가족 수도회가 있어야 한다. 하느님과 교회는 방식을 바꾸지 않는다.
출판 사도직에 종사하는 성바오로수도회는 출판을 위해 우리 시대에 생겨난 수도단체다.
모든 수도회가 그러하듯 성바오로수도회에는 일반목표와 특수 목표가 있다.
‘일반목표’는 거룩한 교회법과 수도회 고유의 회헌 규정에 따라 공동생활을 통해 청빈, 정결, 순명의 세 가지 서원을 충실하게 실천함으로써 회원의 성화를 꾀하는 것이다.
‘특수목표’는 출판 사도직을 수행하는 것이다.
성바오로수도회는 ‘수도사제와 평수사’로 구성된다. 수도회는 다른 수도회처럼 청원기, 수련기, 유기서원기를 거쳐 종신서원을 한다.
수도회 곁에는 여성 가지인 ‘성바오로딸수도회’가 있다. 이 수도회는 사도직을 돕기 위해 설립되었지만 성바오로수도회와 정신, 지향, 방법에 있어 일관성에서 평행을 이룬다. 수녀들로 구성된 수도회로서 다양한 수단, 곧 사목적 협력, 성체성사 안에 계신 천상 스승께 대한 신심 그리고 주로 출판 사도직으로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전하는 것이 수도회의 목적이다.
그 임무와 의무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영적, 지적, 기술적 준비가 필요하다.
성바오로가족에는 사도직을 위한 ‘협력자들’35도 있다. 이들은 가족수도회의 수도생활과 사도직을 가능한 방법으로 세상 안에서 살아간다. 따라서 가능한 대로 복음적 청빈, 정결, 순명을 살아가는 한편 기도, 봉헌, 활동으로 사도직에 가장 강력하고 필요한 협력을 제공한다.
교회 안에는 사도들이 있고, 또 그래야만 하며, 어느 범위에서는 평신도들도 그렇다. 이들은 성직자의 조력자들이다.
특히 출판 사도직에서 평신도들의 협력은 소극적일 수도 있고, 적극 적일 수도 있다.
편집분야에서든 기술분야와 보급분야에서든 비종교적이며 나쁜 출판물에 대한 협력을 거부하는 것은 의무다.
편집분야에서: 복음과 교회에 상반되는 출판을 삼가야 할 뿐 아니라 반대자의 출판, 종교적 소재와 무관한 출판에 지적 · 윤리적 기여를 하는 그 어떤 것도 거부해야 한다.
기술분야에서: 신앙이나 관습에 역행하는 방향으로 일이 진행될 때 그 일 자체나 기계 설비, 장소, 매체 등을 거부해야 한다.
보급분야에서: 그리스도교 신앙과 삶에 반대되는 출판물은 어떤 방법으로든 유포하고 조장하는 일을 삼가야 한다.
사실 가톨릭 신자들은 —인쇄분야에만 국한시켜 본다면— (교회 교도권이 검토하고 인정한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리스도교 신앙과 윤리에 반대되는 독서를 삼가야 할 의무가 있다. 더 나아가 경박하고 감성적이며 신비적 · 관능적인 문학 서적을 삼가야 하고, 참된 가톨릭 양심을 잠재우는 비가톨릭 사상과 세속적 윤리를 거룩한 복음의 가르침과 윤리와 융화시키려는 인쇄물을 거부해야 한다.
그 대신 교회가 극찬하는 책들은 연구하기 위해 읽고 이용하며, 자기네 양성을 위해 따라야 한다. 그뿐 아니라 가능하다면 나쁜 인쇄물의 중대한 죄와 스캔들을 다음과 같은 합법적 수단으로 제거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
특정 출판물을 저지하고 고발하며 필요하다면 불태우는 일, 가능할 때 그 출판물을 다른 것으로 교체하는 일, 만일 권위에 의해 법으로 제정되었다면 금지하는 것 등이다.
모든 가톨릭 신자는 가톨릭 활동에 종사하듯이 출판에 종사하는 것은 중요할 뿐 아니라 필요한 일이다. 출판이 모든 활동 중의 으뜸인 것은 생각, 삶, 마음을 양성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출판은 성직자에게 직접 맡겨졌으며, 협력으로 모든 가톨릭 신자에게 간접적으로 맡겨진 신앙활동이기도 하다.
직접적으로는 가톨릭 교계의 사도직을 확장하고 강화하며 수호하는 일에 종사할 수 있고, 간접적으로는 기도, 희생, 활동으로 출판 사도직에 협력할 수 있다.
‘직접적인 협력’은 대부분 권위 있는 위정자, 평신도 교사에게 그리고 다양한 동기로 다른 이들에게 확실한 영향력을 끼치는 이들에게도 주어졌다.
반면 ‘간접적인 협력’은 다양한 자질과 적합성에 따라 모든 가톨릭 신자가 할 수 있다.
출판물로 인한 하느님께 대한 모욕을 기워갚기 위해 |
그리고 출판 사도들을 위한 빛, 힘, 은총을 간구하고 사도직의 증진을 위해 모두가 예외 없이 기도와 희생으로 협력할 수 있다.
기도와 희생은 사도직의 큰 힘이다. 사실 기도와 희생은 사도들을 북돋아주고 그들을 지지하며, 그들에게 필요한 덕성을 갖추게 하고 빛과 위로와 영혼들의 구원을 얻어준다.
가톨릭 신자들은 하느님의 은총 다음가는 이 사도직 외의 중요한 것을 줄 수 있다. 곧 성소자를 보내는 일이다.
부모는 자녀들을 보냄으로써 거룩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만일 잉크가 순교자들의 피에 버금간다면 그들은 사도들, 어떤 의미에서는 순교자들을 교회에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제자들을 비추어줄 수 있다. 신자들은 사업을 시작하거나 이미 설립된 사업체를 도울 수 있다.
모두가 자기 신분에 따라 나쁜 출판물의 대량 유포로 형성된 위험에 대하여, 그리고 가톨릭 출판 사도직에 걸 수 있는 큰 희망에 대하여 강연, 저서, 대화로 형제들을 비추어줄 수 있다.
그리고 만일 사도직의 세 부분 곧 편집, 기술, 보급에 기여하지 못하더라도 한 부분이나 다른 부분에 기여함으로써 얼마든지 협력이 가능하다.
‘편집’에 관해 모든 가톨릭 평신도는 항상 가톨릭 출판물을 촉진시켜야 한다. 이는 사회학, 정치, 역사, 문학, 예술, 다양한 과학분야, 철학, 법학 등 모든 주제를 망라한다.
여기에는 복음의 원칙을 적용해야 하는 분야가 특별히 제한되어 있지는 않다. 훨씬 넓은 의미에서 문학과 학문, 곧 역사학, 민법, 사회윤리학, 인구통계학, 음악, 미술, 건축 등의 예술 분야, 사법과 공법의 법률 규범, 철학, 윤리학 등에 적용할 수 있다.
이들에게는 천상 스승의 가르침을 법률, 정치생활, 사회생활, 가정생활에 적용해야 할 과제가 수없이 많다.
가톨릭의 많은 평신도가 종교를 다룰 수도 있다. 그러나 교회의 가르침에 대한 균형 잡힌 준비가 필요하다. 그다음 그들의 활동은 교회 교도권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가톨릭 교계에 종속되어야 한다. 모든 가톨릭 신자는 각자의 형편에 따라 마치 선교와 설교, 교리교육 활동을 위해 본분을 다하듯 물질적 기여와 희사로써 출판 사도직에 협력해야 한다. 복음의 활동과 복음의 일꾼은 계속 태어나야 하고, 살아야 하며, 유익한 결실을 거두어야 한다. 각자는 자신의 사회적 신분에 따라 법관은 법관으로서,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사업가는 사업가로서, 노동자는 노동자로서 격려와 옹호와 보급을 위해 |
윤리적 협력을 할 수 있다.
결국 가톨릭 신자는 일반적으로 성직자에 종속되고 일치하여 출판, 영화, 라디오의 드넓은 영역에서 편집, 기술적인 일, 소식, 관리, 보급 등의 폭넓은 역할을 맡는다.
‘기술’에 관해 가톨릭 평신도는 출판 사도직에 물질적 수단을 제공할 수 있고 봉사활동으로 도울 수 있다.
기술적으로 완벽한 출판을 위해서는 기계, 자재, 무한한36 수단이 필요하다.
좋은 뜻을 가진 가톨릭 신자들은 사도직의 필요를 알고 도와줄 시간과 장소를 간파하고, 그들이 고귀한 활동을 수행한다는 것을 확신한다. 이 활동은 하느님 앞에서 큰 공로가 되고, 자기 자신이 나 사람들과 사회를 위해서도 그러하다.
결국 출판 사도직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보급’에 관한 것으로서 대부분 평신도들의 협력에 달려있다. 수많은 수단을 제공하는 협력은 상황에 따라 다양해지고, 열성으로 고무된 창의적인 정신으로 더욱 확장된다.
출판 사도직의 고귀함과 책임은 사도직 안에서 특수한 소명 외에도 준비, 더 나아가 고유한 양성이 필요한데, 이 양성에는 특별 양성과 일반양성이 있다. 특별양성은 각 분야에서 직접 사도직을 실습할 준비를 하고, 사람과 업무에 따라 다양하다. 이 점에 대해서는 계속 인쇄 사도직, 영화 사도직과 라디오 사도직을 다루면서 언급할 것이다. 일반양성은 대부분 윤리적인 것이고, 출판 사도직의 몇몇 기획에 헌신하는 모든 이에게 동일하다. 이를 정신의 양성, 의지의 양성, 마음의 양성 세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보자.
종교, 사도직, 세속 학문에 대한 공부로 이루어진다.
‘종교에 관한 공부’는 정확하고 완전하며 확고해야 한다. 정확하다는 것은 오류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완전하다는 것은 가톨릭 교의와 윤리와 경신례를 포함해야 하고, 확고하다는 것은 중심 진리 위에 확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도직에 관한 공부’, 특별히 출판 사도직에 대한 공부는 이론과 실천에 관한 것으로 사도직 일반, 사도, 사도직 분야와 사도직이 포함되어야 한다.
‘세속 학문에 대한 공부’는 사도직 실천에 필요한 종교와 사도직에 관련된 것이어야 한다.
사제 저술가의 예를 든다면 (그리고 비례적으로 수도자와 평신도도 마찬가지로) 정신의 준비는 일반적으로 설교가이자 사목자여야 하는 사제에게도 요구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유일한 사명에로 수렴되는 준비인 것이다. 다만, 그 유일한 사명에 속하는 어떤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경우에 따라서는 소위 ‘전문화’된 부수적 요소에 해당하는 것들이 우위를 차지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뛰어난 설교, 글 쓰는 능력, 출판기술, 보급 기량 등.
출판사도에게 지적 준비의 필요성은 명백하다. 그는 지적 준비가 되어있는 만큼 본성상, 선택상, 신분상 스승이 된다. 뛰어난 스승, 정확하고 폭넓은 가르침을 널리 전하는 스승, 다양한 제자들을 거느린 스승이다.
이 모든 것은 그의 학식이 넓고 깊고 실천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준비한 만큼 결실도 풍부할 것이다. 그러므로 면학기간은 매우 신중한 사안이다. 보통 이상의 지성, 다시 말해 뛰어난 지성, 충분한 시간, 좋은 학교와 좋은 수업 방법, 구체적인 실습, 표본 적용, 공부를 방해하거나 멀리하게 하고 또 적용과 진보를 가로 막을 수 있는 것을 피해야 한다.
사도직을 착수하기 전에 시련과 시험을 거쳐야 하며, 말씀의 사도직과 마찬가지로 적절한 승인을 받아야 한다.
자신의 나쁜 경향과의 투쟁과 덕의 실천을 통한 영적 활동의 훈련으로 이루어진다.
영적 투쟁을 하는 방법을 안다면 매우 유익할 것이다. 많은 방법 가운데 성 이냐시오가 제시한 방법, 다시 말해 집중하여 |
지배적인 욕정과 투쟁할 것을 권한다. 이 투쟁을 연구하고, 모든 특징과 표현을 규정짓고, 모든 영적 · 윤리적 · 육체적 힘을 다해 단호하게 전쟁을 선포하여 그것을 이기고 굴복시킬 때까지, 그리하여 이성과 신앙의 지배하에 선의 겸손한 종이 되게 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일반 양심성찰과 특별 양심성찰, 예비성찰, 일상성찰, 주간, 월간, 연간 양심성찰을 계속할 것이다.
덕의 실천도 체계적이고 항구하게 점진적으로 훈련한다. 자기 기질에 따라 필요한 덕부터 시작하여 그 덕을 열성적으로 가꾸며, 영혼이 그 덕을 “신속하고, 쉽게 그리고 기꺼이”38 실천할 수 있을 때까지 훈련한다.
믿음 · 희망 · 사랑인 대신덕과 그에 조화를 이루어 예지 · 정의 · 용기 · 절제인 사추덕에, 끝으로 순명 · 정결 · 청빈 ·겸손 등 윤리덕에 가장 중요한 가치를 두어야 할 것이다.
완덕의 핵심에 사랑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사랑에 대해 연구하고 습득하기 위해 모든 주의를 집중해야 할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영적 투쟁이 필요하다면 사도가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실상 그에게 필요한 것은 모범적인 삶뿐 아니라 겸손과 |
희생정신, 항구함으로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강화된 사회적 덕을 지니는 것도 필요하다.
사실 그는 그리스도인 삶의 단순한 실천만으로 만족해서는 안된다. 가능한 한 최고의 단계에서 하느님과 일치하는 완덕의 절정에 이르기를 열망해야 한다.
실제적으로 덕을 쌓기 위한 영적 활동과 사도의 윤리적 양성은 지성의 양성시기 동안 지속되고, 전 생애를 통해 항구하게 계속 되는데, 시간의 흐름이 새로운 활동, 새로운 필요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곧 더 큰 덕, 새로운 희생이 요구되겠기 때문이다. 결실은 지성의 양성뿐 아니라 의지의 양성에 비례할 것이다.
마음의 양성은 하느님과 완전하게 일치하고자 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부정적인 작업과 긍적적인 작업에서 이루어진다.
부정적인 작업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낙심, 우울감, 지나친 노력, 이성을 해치는 싸움에 빠져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긍정적인 작업은 부정적인 작업이 전제되며, 세 가지 단계가 있다. 첫째, 진선미, 실제로는 진리의 감미로움과 아름다움을 음미하는 것이다. 둘째,하느님과 그분의 법을 |
초자연적으로 사랑하도록 인도하고 고무하는 것이다. 셋째 (이것은 가장 중요한 것으로서) 강력한 동기로 사랑의 열정을 키우는 것이다.
이 셋째 단계에서 영적 교육에 입문하게 되는데 성사, 준성사, 기도의 실천이 따른다. 그리하여 이러한 수단이 참된 수로가 되게 하고, 이 수로를 통해 예수님의 마음에서 사도의 마음으로 은총의 생명이 흘러가도록 하여 그가 자신 안에 “나에게는 삶이 곧 그리스도다.”39라는 말씀을 실현하는 삶과 사랑의 정이 온전히 하느님께 향하도록 한다.
적극적으로 자주 성사에 참여하도록 가르치며, 그중에서도 고해성사와 성체성사에 더 중요성을 두게 한다. 특히 미사에 대한 신심을 갖도록 해야 하는데, 사도는 자신과 사람들을 위해 보속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사 거행에 있어 준성사, 적어도 가장 통상적인 준성사들과 분리시켜 놓아서는 안 된다. 그리고 기도에 관해 천상 스승의 권고에 유념해야 한다. “낙심 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40마음기도, 소리기도, 삶의 기도는 사도가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전하기 위해 하느님으로 양육되는 것이다.
마음기도를 위해서는 성경, 특히 복음 묵상, 교부들의 저서, 성인들의 생애를 읽고 묵상하라고 권한다.
여기에 적어도 30분간의 매일 묵상과 월피정, 연피정을 결합시킨다. 소리기도는 직접적인 방식으로 차근차근 지나치지 않게, 짧고 좋은 내용의 기도를 마음에 새기도록 한다.
그다음 사도는 삶의 기도, 곧 신앙과 사랑의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께 활동을 봉헌하면서 모든 활동을 기도로 변화시키는 방법을 충분히 익혀야 한다.
마음의 양성은 사도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더욱 사도적인 영혼이 될수록 항상 더 많은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설교하는 일이 바로 우리 자신을 회개시켜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성 바오로가 그의 충실한 제자41에게 훈계한 것처럼 “그대 자신과 그대의 가르침에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이 일을 지속해 나아가십시오. 이렇게 하면 그대는 그대뿐만 아니라 그대의 말을 듣는 이들도 구원할 것입니다.”42 자기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만큼 다른 사람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유익하다. “너희는 따로 외딴 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43 하신 외딴 곳은 분명 |
설교대와 펜보다 영혼에 더 유익하다.
사실 영혼을 더욱 살찌우는 신심, 곧 길 진리 생명이신 천상 스승께 대한 신심, 사도의 모후께 대한 신심, 보편교회의 수호자이신 성 요셉께 대한 신심, 우리가 교회 안에 긴밀하게 결속되기를 비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에 대한 신심, 수호천사, 연옥영혼에 대한 신심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교회 전례력을 통해 제시하는 스승 예수의 생명에 특별히 깊이 참여해야 한다. 사도직은 여기서 열정을 얻게 되는데 그것은 모든 사도직이 교회 안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고, 교회 밖에는 겉모습과공 허만이 있기 때문이다.
사도의 양성과 사도직의 결과가 달려있는 신심 가운데 탁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미사, 영성체, 묵상, 성체방문, 양심성찰이다. 이어지는 여러 장章에서, 앞서 언급한 실천사항을 실행하는 방법에 관해 사도에게 실천적 안내를 제시할 것이다.
그리고 초보자를 위해서는 적어도 하나의 방법을 따르는 것이 유익하기 때문에 출판 사도직을 위해 특징이라고 생각되는 복음의 세 명제인 ‘길 진리 생명’에 기초한 방법을 제시한다.
미사성제에 경건하게 참례하고 결실을 얻도록 제안하는 다양한 방법 가운데 출판사도에게 권고하는 방법은 길 진리 생명이신 스승 예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다.
이 방법에 따르면 미사성제는 시작예식부터 예물준비 전까지, 예물준비 이후부터 주님의 기도를 포함한 부분까지, 주님의 기도 이후부터 마침예식까지 세 부분으로 나뉜다.
시작부터 예물준비 전까지인 첫째 부분은 ‘지식의 주님’44인 진리이신 예수께 영광을 드리는 부분이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실천이 지성의 행위로 이루어지며, |
드러난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는 수난하고 죽으시기 전에 설교하신 천상 스승을 따라 희생제사를 거행하기 전에 신앙의 진리에 관한 교육을 먼저 행하는 교회의 정신과 일치한다.
예전부터 미사의 이 부분에서, 세례 지원자들과 신자들을 교육했다. 전자에게는 진리를 설명하며 차근차근 가르쳐 주어 나중에 신앙고백에 이르게 했고, 후자에게는 이미 전수받은 신앙의 신비를 상기시켰다.
이는 항상 계속되어 왔고 모든 시대에 걸쳐 교회는 사목자들에게 미사에서 선포하는 독서의 의미, 특히 복음의 의미를 신자들에게 설명해줄 것을 권장했다.
미사 독서 내용은 매일 다르다. 이 독서 내용은 그날 고유 전례의 의미를 반영하는 한편 교육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통상적으로 중요한 진리는 입당송과 본기도에서 선포하는데, 믿어야 할 것과 기도를 위한 행동 원칙과 삶의 규범을 알려준다. 이는 서간, 특히 복음서에서 드러나고 발전하며, 다른 부분에서 확증된다. ‘길 |
진리 생명’의 방법으로 미사를 드리기 원한다면 삶의 규범으로 삼기 위해 이러한 진리를 구현하고 완성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실천방법: 제단 아래에서 사제가 준비기도를 바치는 동안 우리를 지극히 거룩하신 그분께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에 대해 용서를 청한다. 그다음 ‘입당송’에서 중요한 가르침의 선포를 들은 후 ‘자비송’과 ‘본기도’에서 그 가르침을 이해하고 스며들도록 은총을 청한다. 그런 다음 서간과 복음서를 읽고, 축일이나 그날의 전례에서 빛을 받아 묵상한다. 신앙생활에 붙따르는 복음에 역행하는 온갖 주장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그다음 신앙이 굳건해지고 지식과 사도를 위한 커뮤니케이션의 은총을 간구한다.
제시된 진리에 대한 충실 서약이자 그리스도교 가르침의 모든 진리에 대한 장엄한 신앙고백인 신경을 바치면서 끝맺는다.
예물준비부터 ‘주님의 기도’를 포함한 둘째 부분은 희생제사의 준비, 거행과 적용을 포함한다.
이 부분에서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실천의지가 행위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의지는 계명과 제시된 모범을 실천하기로 공언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는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 목적이다. 사실 이 부분에서 예수님은 특히 세 가지 측면에서 우리의 길을 제시하신다. 그것은 오직 그분 안에서 십자가의 희생 덕분에 미사를 되풀이하여 봉헌하면서 하느님께 마땅한 흠숭과 영광을 드릴 수 있기 때문이며, 그분의 헤아릴 수 없는 은덕에 감사드릴 수 있기 때문이고, 우리의 많은 죄로 인해 훼손된 그분의 정의를 회복하고 마땅히 기워갚으며, 우리와 교회와 세상을 위해 그리고 연옥 영혼을 위해 그분께 탄원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신비로운 희생으로 우리의 길을 제시하시는데, 죽음에 이르기까지 당신 자신의 완전한 희생으로 성부의 뜻을 이루신 귀감, 곧 성화의 귀감, 거룩함 자체이시다.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는 사람은 올바른 길을 걸으며, 완전해지고 거룩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는 상징이나 기억, 또는 호소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참된 현실을 다룬다. 그리스도교 모든 경신례의 중심을 이루는 것, 은총의 유일하고 본질적인 원천이며, 가장 완전한 희생, 곧 인간-하느님이신 분의 업적을 다룬다.
미사의 둘째 부분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사도의 길을 한 번 더 제시하신다. 당신 자신을 희생하기까지 |
이웃과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신다. “나는 너희를 위해 나를 희생하러 갈 것이다.”45
실천방법: 교회가 의도하는 것처럼 전례행위를 착실히 따르고 묵상하는 것이다.
예물준비에서는 “우리와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해”,46 곧 모든 인간의 구원을 위한 제물봉헌의 준비로서 하느님께 우리를 온전히 드릴 준비가 되어있음을 표명한다. 그러므로 제대 위에 빵과 포도주, 모든 외적 선물, 육신과 영혼, 자신의 능력, 곧 정신, 의지, 마음, 근심, 필요성, 곧 자기 존재와 자기 생명을 제물로 바친다. “찬미의 제사”,47 감사와 축복의 장엄한 기도인 감사송에서는 자신의 봉헌을 새롭게 하고 천사들과 성인들, 특히 강생하신 말씀과 연대하여 하느님의 존엄하심을 찬미하며, 그분의 거룩하심을 선포한다.
축성에서 우리 예물을 당신의 몸과 피로 변화시켜 성부께 바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당신의 희생제물에 포함되고 그분과 함께 그분을 통해 희생에 동참하도록 자신을 바치신다. 성부께 당신 자신[= 우리 자신]을 온전히 예물로 받아들이시기를 기도한 다음 찬미의 행위, 감사의 행위, 자신의 죄와 모든 사람의 죄를 위한 보상행위를 완수한다. 자신과 세상과 연옥 영혼을 위해 새로운
은총과 자비의 청원을 명확하게 표현한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성부께 순명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기로 약속하고, 인간을 위해 희생하는 힘과 능력을 기원한다.
‘주님의 기도’ 이후부터 미사 마침 부분으로, 특히 그리스도 안에 살기를 청하며 인간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 목적이다.
이 부분의 중심에서는 성부께서 우리에게 당신 성자를 선사하시는 제물인 성체를 영한다. 우리도 하느님 안에 있고 하느님도 당신의 생명을 우리와 커뮤니케이션하시기 위해 우리 안에 계신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48
창조주와 피조물이 가장 밀접하게 일치를 이루는 것이 이 부분이다. 육체적 · 윤리적 일치, 신비적 · 실재적 일치, 변형적이고 영원한 본성의 일치다. 신성과 인성의 상호 내재성 덕분에 일치는 성삼위의 신적 세 위격과의 특별한 일치를 이끌어 낸다.
미사의 이 부분은 청원기도와 함께 마음과 정신의 성화를 위한 기도가 특징이다.
핵심 행위인 영성체에서는 준비가 앞서고 | 영성체 후에는 감사가 뒤따른다.
준비는 특히 죄를 뉘우치고, 피조물에게서 벗어나며,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일치를 호소하는 기도로 시작한다.
한편 감사는 하느님께 감사를 표하고, 당신 자녀들이 그분과 함께 그분을 통하여 살아가게 해주기를 그분께 간절히 청하거나 흠숭으로 이루어진다.
실천방법: 영성체와 하느님께 드리는 간구라는 두 가지 행위로 마칠 필요가 있다.
영성체(성사적 영성체가 아니라면 적어도 신령성체)는 가장 거룩하고 가장 완전해야 한다. 우리와 결합되어 우리가 그분 안에서 변화되도록 예수 그리스도와 정신, 의지, 마음의 일치를 이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먼저 열심히 준비하고 가능한 한 마땅한 감사가 따라야 한다.
하느님께 드리는 간구는 사도의 마음, 하느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하느님께 그분의 영광과 사람들의 선을 간청하고, 자기 개인의 필요와 사회의 필요를 그분께 맡겨야 한다. 순례하는 교회와 정화하는 교회를 위해, ‘주님의 기도’에서 천상 스승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처럼 자기 자신을 위해 그리고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성체를 통해 당신으로 우리를 변형시키기위해 우리와 일치하신다. 이러한 초자연적 일치는 육체적인 동시에 윤리적이다. 육체적 일치인 것은 영성체 후에 “예수님과 우리의 일치는 음식과 그것을 소화하는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일치와 유사하다. 다만 다른 점은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 안에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그분 안에 변화시키신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위의 존재가 하위의 존재를 소화한다.”49
이러한 육체적 일치에서 가장 내밀한 변화의 모체인 윤리적 결합이 일어난다. 예수님은 그분과 우리 사이에 ‘하나의 마음과 하나의 영cor unum et anima una’50을 이루시고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해 우리와 하나가 되신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하고 그분을 통해 하느님과 일치하기 위해 영성체를 할 때, 사도는 미리 준비하고 이러한 일치를 촉진시키는 감사가 이어지도록 효과를 증대시킬 방안을 모색할 것이다. 준비란 예수 그리스도와 사전에 일치하는 것이요, 감사란 이러한 일치를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완전한 일치는 정신, 의지, 마음의 일치다.
인간 지성은 신앙의 빛으로 조명받아 모든 것을 볼 수 있으며, 모든 것을 거룩한 빛으로 판단하도록 하느님의 지성과 일치해야 한다.
그러나 원죄 이후, 인간 본성이 타락했기 때문에 특별한 은총없이 이렇게 되기는 어렵고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리고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인간이 실수에 실수를 거듭했고, 언제나 진리를 이해하고 신학적으로 논의하며 그리스도교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입증한다.
거짓과 속임수투성이인 악령에게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
우리에게 하느님의 진리를 설교하셨다. 그런 다음 구원의 보관자요 분배자인 교회를 남겨주셨다.
구원을 힘입어 모든 사람은 이러한 진리를 알고 받아들이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그리스도인은 거룩한 세례를 받음으로써 은총과 신앙이 주어진 덕분에 믿음의 특별한 선물을 지니게 된다.
그러나 이 신앙을 고백하고 굳게 지키기 위해서는 다른 은총이 필요하다. 이것은 물론 기도, 성사, 영성체를 통해 우리가 추구하는 은총이다. 우리의 지성을 점차 회복시키는 습관적이고 구체적인 은총은 질병 곧 (무반성, 무지, 망각, 완고함, 선입견, 실수, 타락 등)에서 지성을 치유하고 초자연적 차원으로 고양시켜 예수 그리스도의 지성과 일치하게 한다.
이러한 혜택은 준비와 감사에서 요청되는 협력이 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활동과 일치한다면 틀림없이 받을 수 있다.
실천방법: 준비와 감사는 세 부분으로 나뉜다. 지성과 의지와 마음의 훈련이다. 첫째, 지성의 훈련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준비-자신의 생각, 확신, 판단을 |
예수 그리스도의 것과 비교할 것. 지성을 잘못 사용한 것과 신앙의 부족에 대해 용서를 청하고, 천상 스승께 은총을 청하며 개선하고자 하는 원의를 표할 것.
감사-진리이신 예수께 대한 깊은 흠숭의 행위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 지성을 다해 경의를 표할 것. 하느님의 진리를 깨닫고 일치하며 간직하고 고백하는 방법으로 지성을 우리의 머리이신 그분 안에 다시 세워주시기를 원한다고 천상 스승께 기도할 것. 판단, 분별, 조언, 결정, 기억을 거룩하게 해주시고 초자연적으로 변화시켜 주시도록 청할 것. 모든 사람이 진리를 알고 그들의 지성이 하느님을 따르도록 기도할 것.
인간의 뜻과 하느님 뜻의 일치는 하느님 뜻과 완전히 같아짐을 의미한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완전함이 있다. 일치는 사랑을 의미하고, 완전함은 하느님의 사랑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일치가 더욱 강렬하고 완전할수록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은 더 생생할 것이고, 우리의 완전함은 더 높아질 것이다.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뜻은 계명, 교회의 규범과 사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다. 계명과 사건을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뜻은 |
이론상 그러하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뜻은 구체적이고 살아있으며 생기를 준다. 실상 그분은 거룩함 자체이시고 성부의 살아 있는 뜻이다. 거룩함 자체이신 것은 그분이 계명과 복음적 권고를 사셨고, 모든 덕 중 가장 높은 완덕에 이르셨기 때문이다. 뜻이란 그분의 귀감이 우리에게는 법이고, 그분의 말씀은 초자연적 권고와 규정과 함께 계명을 설명했고 적용했으며, 확인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뜻과 귀감에 일치하면서 그분 안에서 성부의 뜻에 일치하면 우리는 완덕에 이를 것이다.
그리고 마치 포도나무의 가지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지탱이 되어주시고 그분의 윤리적 힘과 초자연적 생명력에 참여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부의 뜻을 따르기가 수월하다. 그분과 함께 완덕의 길을 빠르게 걷고, 지금의 이 행보가 험난할 때 그분이 지탱이 되어 주시고 데려가 주신다. 예수님의 뜻에 일치하도록 우리를 도와주는 수단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영성체야말로 의심의 여지 없이 가장 탁월한 기도인데, 그것은 은총을 주시는 분 자신 이 우리에게 선사하시는 성사이기 때문이다. 영성체를 통해 야생 올리브 나무인 우리는 좋은 올리브 나무인 예수 그리스도께 접목 된다.
영성체로써 우리 의지는 치료되고 고양되며 강화된다. “인간구원의 창시자”51는 의지를 |
무기력, 불안정, 태만, 완고함, 나쁜 습관이라는 병에서 치유하신다. 하느님 은총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의지를 고양시키고 강화시키신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52
실천 방법: 준비-자신의 뜻과 원의를 예수님의 것과 비교한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예비성찰을 하고, 영적 활동의 요점에 대한 결심을 세우고, 통회의 기도로 마친다. 하느님의 거룩하심과 자신의 부당함에 대한 성찰에서 우러나오는 진정 겸손한 자세를 취한다. 천상 스승께 영적 활동을 위한 은총을 청한다.
감사-거룩함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그분과 함께 그분을 통해 지극히 거룩하신 성삼위께 아무것도 아닌 우리 자신을 낮추어 온전히 내어 드리는 고요한 흠숭의 기도를 드린다. 하느님 뜻에 따라 우리의 인도자가 되어주시고, 의무를 완수하도록 우리의 힘이 되어주시는 길이신 예수께 탄원한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53 하며 하느님의 뜻이 언제나 모든 피조물에게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를 드린다.
우리 마음과 하느님 마음과의 일치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신적 생명을 느끼고 살아감으로써 이루어진다. 그 일치는 성령의 선물을 능동적으로 취함으로써, 물질적 영적 자선을 실천함으로써, 선과 영적 결실들에서 우러나오는 믿음 희망 사랑의 실천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신적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에 의해 커뮤니케이션되는 것이기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성부의 것이 되기 위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을 이룰 필요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합일은 세례성사에서 시작하여 은총 상태로 유지되며, 성사들, 그중에서도 으뜸인 성체성사로써 성장하고 완전해진다. 사실 영성체로써 우리는 예수님으로 양육되는데 그것은 그분과 한마음이 되도록 그분의 거룩한 성심이 우리 마음을 흡수하기 때문이다. 예수 성심은 우리 마음의 질병 곧 (무관심, 불신, 나쁜 경향, 불건전한 욕망, 경박한 감정, 인간적 열망…)을 치유해 주실 것이며, 하느님의 영광과 사람들의 평화를 위해 당신 성심과 일치하도록 박차를 가할 것이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깊은 인식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숭고하게 드높여짐을 이해하게 해주실 것이다.
실천 방법: 준비-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자기 마음의 느낌을 |
비교한다. 자신의 이기심에 대해 용서를 구하며, 오로지 본성적이고 감각적인 애정에 대해 용서를 청한다. 그분께 열렬하고 관대하게, 열정적으로 하느님과 사람들을 사랑하기를 원한다고 말씀드린다. 천상 스승께 그와 같은 은총을 청하며 생명을 마시고 예수님 모시기를 청한다! 그런 다음 자신 앞에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54라고 해야 하므로 오직 그분만이 사시고 일하시도록 내어맡기며, 나는 그분안에 숨고, 그분 안에 은둔하여 어디를 가든 예수님을 모시고 새출발을 하게 될 것이다.
감사-우리의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마음 깊이 하느님을 공경한다.
천상 손님과 나누는 달콤한 대화에 마음을 활짝 열어 신적 생명으로 고취되기를 청한다. 자기 자신과,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과, 투쟁하는 교회와 정화하는 교회, 온 세상을 위해 특별한 은총을 청한다.
묵상은 삶의 규칙처럼 하느님의 뜻과 사말에 대한 기억을 의미할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행하셨으며, 그분의 모범에 따라 성인들이 실천한, 하느님께 영혼을 들어높이고 몰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도는 활동보다 더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묵상에 할애된 시간은 열성적인 활동을 축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도는 묵상으로 양육된 내적 삶으로 아주 풍요로워지고 활성화된다.
성인들은 각자 연구와 기도와 개인 체험의 결실이라는 고유한 인장을 갖는다고 |
말할 수 있을 만큼 어려운 기법으로 늘 다양한 묵상 방법을 추구했다.
최상의 방법은 카시아노와 성 요한 클리마코 그리고 중요한 영성 저술가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16세기에 이르러서야 사람을 기도의 길로 인도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 방법이 고안되었다. 예를 들면 성 이냐시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오라토 리오회 수사들과 성 술피스의 방법이 그것이다.
성인들과 영성 대가들이 제안한 모든 방법에는 묵상의 본질을 구성하는 공통 요소가 있다. 그것은 준비, 본 묵상, 결론이다.
‘준비’에는 세 단계, 곧 먼 준비와 가까운 준비와 직접적인 준비가 있다.
먼 준비는 묵상으로 자기의 삶에 조화를 이루려는 노력이다.
지성의 준비는 교의적 진리에 대한 인식을 필요로 하는데, 이러한 진리에서 윤리적 · 수덕적 · 신비적 원칙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의지의 준비는 하느님의 법과 자기 신분의 의무를 실천하려는 성향을 띤다. 마음의 준비는 나아지고자 하는 열망과 기도하려는 인간의 성향으로 이루어진다.
가까운 준비는 준비기도를 포함하는데, |
곧 전날 저녁에 묵상 주제에 관한 구절을 읽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그것을 기억할 것과 지성, 의지, 마음을 거기에 집중하여 많은 열매를 맺게 할 것이다.
직접적인 준비는 묵상을 시작하는 기도를 포함한다. 곧 하느님의 현존 앞에 머물러 자신의 비천함과 무능을 인식하고 하느님의 은총을 청한다.
묵상은 보다 다양한 방법으로 할 수 있다. 그러나 묵상에는 기본적인 부분이 있음을 누구나 인정한다. 하느님께 드려야 마땅한 종교적 의무를 다함, 묵상의 주제에 관한 숙고,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또는 어떤 점을 향상시켜야 할지 알기 위해 자신에 대한 성찰이나 반성, 그날을 위한 실천적 결심과 필요한 은총을 간청하는 기도다.
‘결론’은 묵상의 은총에 대해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와 자신이 행한 방법과 영적 꽃다발의 선택에 대한 짧은 성찰이다.
사도가 목표로 삼아야 하는 묵상은 의심의 여지 없이 일치55를 향한 묵상인데, 이 일치로써 인간은 사랑으로 하느님과 밀접하게 결합한다. 그러나 이것은 하느님께 달린 것이다. 그것은 정화와 조명의 묵상에서 나온 결실이기 때문에 많은 방법 중 하나를 따를 것이다. 일치의 묵상에 은총의 영역이 많다면 다른 두 묵상에는 개인적인 노력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도는 이 묵상을 행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자기 영혼에 유익하다고 판단되는 좋은 방법이라면 구별하지 말고 따를 것이다. 그러나 선호해야 하는 방법은 ‘길 진리 생명’의 방법이라야 한다.
이 방법도 다른 방법처럼 준비와 묵상과 결론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먼 ‘준비’는 신앙, 윤리, 경신례의 세 부분으로 나뉘는 종교에 관한 공부다. 가까운 준비는 (다른 방법과 마찬가지로) 저녁과 아침에 묵상주제를 준비하는 것이다. 직접적인 준비는 시작 전 준비와 기도, 곧 묵상할 진리를 상기하고, 상상을 통해 장소를 구성하고 성과를 |
이끌어 낼 일반 결심, 주제에 부합하는 특별한 은총을 청하는 준비기도를 포함한다.
주제에 적합한 복음의 일화를 생각한다면 준비기도는 성공할 것이다. 예를 들어 묵상할 영혼의 귀감인 마리아 막달레나를 소개하는 부분에 대한 기억을 상기하면서, (영혼의) 성문城門을 두드리시는 스승 예수님을 바라보는 그녀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승의 모든 말씀을 보석처럼 여기며 관심을 가지고 그분께 질문하고 그분의 고통과 그분의 어지심에 주의를 기울이는 신실한 여인을 닮도록 노력할 것이다.
우리는 가끔 예수님과 단둘이 머물러 그분과 친근하게 이야기하고, 그분이 좋을 대로 하시도록 그분께 지성, 마음, 의지, 자기 자신을 송두리째 맡기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와 같이 묵상 내내 그분과 달콤한 대화를 계속할 채비를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성모님의 삶과 성인들의 삶의 표양을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고, 죽음의 침상, 묘지 입구, 지옥 언저리 등과 같은 특별한 장소나 상황에 처한 존재로 상상하는 것도 유익할 것이다.
묵상은 진리 길 생명 또는 길 진리 생명 세 부분 으로 나뉜다. 이 중에 처음 두 부분은 각각 셋째 부분이 차지하는 시간의 반을 차지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
셋째 부분을 12분 지속한다면, 첫째와 둘째 부분은 각각 6분간 지속할 것이다.)
첫째 부분: ‘진리’-이 부분에서는 지성의 훈련이 지배적이다. 묵상할 구절을 읽은 다음, 읽은 부분에 포함되어 있는 진리에 대한 확신이 지성에 각인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둘째 부분: ‘길’-의지의 훈련이다.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 부분은 묵상한 진리에 관한 천상 스승의 가르침에 대한 생생함과 아주 특별한 숙고다.
그다음, 예수님의 모범과 자신의 행동을 비교하고, 이어서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약속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특별하고 진지한 양심성찰을 하게 될 것이다.
성찰은 그날을 위해 결심한 셋째 부분으로 끝난다. 실천적이고 개인적인 결심은 최근의 영신수련이나 최근의 월피정과 관련해서 정한다. 곧 특별성찰의 내용과 관련된 것으로 정한다.
셋째 부분: ‘생명’- 이 부분이 가장 길다. 영혼은 하느님과 그리고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와 열정이 넘치는 사랑스런 대화를 한다. 묵상한 바를 깊일 수 있는 빛을 얻기 위해 기도하고, 결심한 바를 실천하기 위한 의지의 힘과 필요한 초자연적 도움을 얻기 |
위해 기도한다.
이 기도는 영혼의 특별한 성향에 부합하는 매우 자유로운 기도일 것이다. 무미건조하거나 분심으로 마음이 산란할 경우에는 통상 기도문, 묵주기도의 신비 몇 단, 복되신 동정 마리아 호칭기도, ‘미세레레Miserere’(역주: 시편 51편) 등을 기도할 수 있을 것이다.56
묵상의 주요한 세 부분에 이어 ‘결론’이 따르는데, 앞서 행한 묵상에 대한 짧은 성찰이다. 성찰에는 묵상하는 동안 저지른 게으름에 대해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고, 받은 은총과 좋은 영감에 대해 감사하며, 정오의 특별성찰 중에 그리고 성체방문 때의 성찰 중에, 하루 동안 기억해야 할 영적 생각이나 작은 꽃다발을 모으는 것 세 가지가 따른다.
사도에게 성체방문은 제자 또는 사도가 길 진리 생명이신 천상 스승과 대화를 나누러 가는 알현 또는 배움터와 같다. 이러한 실천으로 많은 열매를 맺도록 이끌어 주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출판사도를 위해 가장 권장하고 싶은 것은 길 진리 생명이신 스승 예수께 영광을 드리는 방법이다.
이 방법에 따라 성체방문은 세 부분으로 나뉘며, 각각 동일하게 시간을 배정한다.
온 지성을 기울여 행하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훈련으로서, 다음 세 가지 목적을 지닌다.
1.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최상의 진리요, 진리 자체이신 하느님을 깊이 생각하고 영광을 드림.
2. 지적 · 영적 · 사목적 양성에서 얻은 자연적 · 초자연적 인식 모두를 하느님께 대한 봉사로 집약시키고 명료하게 하며 통합함.
3. 모든 사람이 복음말씀에 따라 진리의 빛에 도달하도록 간청함.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57
첫째 부분에서 지성은 그릇됨을 멀리하는 방법으로 신적 진리를 심화한다.
실천 방법: 효과적으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아주 단순해야 하는데 다음 세 가지가 포함되어야 한다. 가) 하느님 앞에 자신을 내려놓고 자신의 잘못에 대한 용서를 청한다.
나) 하루 동안 또는 한 주 동안 얻은 인식을 머릿속에 요약하거나 성경의 몇 구절이나 신학 서적의 일정 부분을 읽는다. 그리고 이에 대한 깊은 성찰과 믿음의 행위를 실천한다.
다) 자신과 영혼들을 위해 ‘지성의 빛, 충만한 사랑’의 자연적 초자연적 선물을 하느님께 청한다. 그리고 특히 |
신앙(의화의 시작), 학문, 지혜, 지성의 선물, 자기 직분과 신분에 대한 인식, 하느님과 영혼들에 대한 인식, 지복직관을 위해 지성을 준비하는 은총을 청한다.
이러한 청원은 개인기도, 화살기도 또는 신경, 신덕송, 영광의 신비(묵주기도), 다양한 시편기도, ‘오소서 성령이여Veni Creator Spiritus’ 등의 기도로 바칠 수 있다.
온 의지를 기울여 행하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훈련으로서, 목적은 다음과 같다.
1.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최상의 선이요 선 자체이신 하느님을 깊이 생각하고 흠숭한다.
2. 다음과 같은 사항에 도달하기 위해 진지한 숙고와 섬세하게 양심성찰을 한다.가) 계명, 복음적 권고, 신분에 따르는 의무를 자유롭게 수락하면서,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절대적인 주도권을 인정하고 그분께 의지를 봉헌한다.
나) 우리가 당신을 따르면서 성부께 그리고 하늘의 영광에 도달할 수 있도록 우리의 길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고, 삶으로 그분을 |
따를 수 있도록 그분의 거룩한 모범을 배우기로 다짐한다 .
3. 성부를 늘 기쁘게 해드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에 따라, 하느님께 우리 의지와 모든 행위를 일치시킬 수 있는 은총을 청한다.
둘째 부분에서는 더 참되고, 더 뛰어나고, 더 심오한 모든 덕의 총체적 완성자이신 분의 귀감을 따라 참된 인간, 그리스도인, 사도가 될 것을 지향한다.
실천 방법: 가) 천상 스승의 생애에 관한 몇 구절을 관상한다.
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한 성찰과 결심과 기도를 드린다. 이러한 모든 훈련은 자신의 변화와 향상이 따라야 하며, 특별성찰의 내용이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인내에 관한 영적 활동에 집중한다면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하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구유를 관상하고, 그다음에 겟세마니와 골고타의 길을 관상한다. 그리고 특별한 장면으로 내려와, 자신의 인내를 고통의 인간이신 분의 인내와 비교하며 용서를 청하고, 결심을 하고, 예수님이 당신의 거룩한 길로 우리를 이끄시기를 간청한다.
다음과 같은 기도 중 하나로 끝마칠 수 있다. ‘미세레레’, ‘깊은 구렁 속에서(시편 130편)’, 통회의 기도, 고통의 신비( 묵주기도).
온 마음과 영혼을 다기울여 행하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훈련으로서, 목적은 다음과 같다.
1.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뛰어난 생명이요 생명의 본질이신 하느님을 관상하고 흠숭한다.
2. 하느님의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이 생명을 우리와 커뮤니케이션하기 위해 오셨음을 인식한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58
3. 머리와 지체가 한몸을 이루듯이, 포도나무에 가지가 붙어있듯이 그분께서는 당신과 우리가 한몸을 이루게 하시면서 초자연적 생명을 우리에게 커뮤니케이션하신다는 것을 숙고한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59
4. 이 생명의 선물, 성장, 열매와 자기 영혼을 위해 필요한 은총을 간구한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과 거룩한 삶을 생각하는 사도직의 과제이기 때문에 사도에게 아주 유익한 것이다.
영혼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오로지 하느님의 영광과 사람들의 평화를 지향하기에 이 모든 것을 하느님께 청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60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61라고 하는 이 삶은 완전한 |
삶이다. 그리고 십자가의 공로와 예수님의 성체성사의 희생, 인간 마음의 진지한 협력으로 마리아의 사랑 안에서 성령의 활동을 통해, 낡은 인간으로 살지 않고 강생하신 ‘하느님에게서 난’62새 인간, 곧 예수 그리스도를 사는 것이다. 이 은총, 이 내적 생명이요 초자연적 생명, 인간의 생명은 사도를 위한 이중의 영광, 곧 천국을 위한 보상과 영원한 영광일 것 이다.
실천 방법: 가) 셋째 부분의 목적을 구성하는 모든 주제에 대해 성찰한다.
나) 천상 스승과 친밀한 대화의 시간을 마련하여 하느님의 관심사에 대하여, 자기 자신에 대하여, 모든 피조물의 관심사에 대하여 말씀을 나눈다.
다) 특히 하느님과 자기 자신과 이웃에 대한 사랑인 대신덕과 같은 특별한 은총과 사추덕인 예지, 정의, 용기, 절제와 성령의 칠은인 지혜(슬기), 통달(깨달음), 의견(일깨움), 용기(굳셈), 지식(앎), 공경(받듦),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두려워함) 그리고 복음의 여덟 가지 참행복과 성령의 열두 가지 열매, 위험을 피하고 기도로써 영적 삶의 세 가지 적인 세상, 육신, 악마에게서 항상 지켜줄수 있는 은총과 |
그밖에도 완덕을 향한 성소, 사도직을 위한 열정 등을 간청한다.
목적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는 세 가지 기도는 애덕송, 참행복 선언, 셋째 부분으로서의 묵주기도 중 기쁨의 신비 등이다.
모든 사도직의 원천이신 하느님과 친밀하고도 사랑 가득한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는 하느님에 대한 지식과 자기 자신에 대한 앎, 곧 일치의 두 요소인 하느님과 영혼이 필요하다.
하느님에 대한 지식은 그분을 찬미하고 사랑할 수 있게 하는 모든 것, 그분의 존재, 본성, 속성, 활동, 특히 인간과 그분과의 관계, 그분과의 밀접한 삶을 포함한다.
철학과 신학에 대한 연구, 묵상과 기도 그리고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봄으로써 하느님을 알게 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앎은 자기 영혼 안에서 보게 되는 모든 것 |
곧 재능과 결점, 자연적 초자연적 은혜, 자신의 경향과 싫어함, 자기 삶의 내밀한 역사, 자신의 잘못, 노력, 진보를 포함한다. 이 모든 것은 비관주의에 빠지는 일 없이 공정한 태도와 신앙으로 비추임 받은 올바른 양심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출판사도가 자신과 사람들이 거룩하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면 하느님에 대한 탐구와 자신에 대한 탐구에 정진해야 한다. 곧 보이지 않는 자신의 작은 세계를 성찰하기 위해 내면으로 들어가야 하고, 자신을 단련해야 한다. 성찰은 삶을 개혁하는 실천적 앎이기에 무엇이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인지, 무엇이 타락한 본성에서 [오는 것인지] 알아, 전자를 따르고 후자를 버리기 위한 것이다.
자신에 대한 이러한 탐구는 ‘길 진리 생명’63의 방법에 따라 매일의 양심성찰, 일반성찰과 특별성찰을 통해 할 것이다.
선량한 모든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알고 결점을 바로잡기 위해 매일 성찰을 해야 한다. |
하루의 모든 생각, 행동, 감정을 살피며 특히 다음 다섯 가지를 염두에 둘 것이다.
1. 한 분이시고 삼위이시며 무한한 선이신 ‘하느님을 흠숭하고’, 우리에게 주신 일반적인 은혜와 특별한 모든 은혜에 대해 그분께 ‘감사한다’. 이 첫째 사항에는 삼중의 목적이 있다. 하느님께 드려야 할 신앙행위와 은혜를 저버린 자기 잘못을 딛고 다시 일어서면서 그분을 신뢰하며 영혼의 회개를 준비한다.
2. 자신의 죄를 알고 거기서 해방되게 하는 ‘은총을 청한다’. 이러한 청원은 특별히 성령께 지식의 은사를 주시도록 청하는 것는데, 이는 하느님께 나아가기 위해 자신을 잘 알도록 영혼을 도와주는 성령의 은사이기 때문이다.
3. 아침 첫 순간부터 하루를 마무리하는 성찰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행동이 올바른 것이었는지, 그날 시간을 잘 보냈는지 또는 배정한 시간과 순서에 따라 행동했는지 잘 생각하며 자문한다.
이를 위해 세 가지 규칙을 제시한다. 가) 순서를 따르되 생각, 행동, 감정 그리고 다음 사항들까지 고려한다. 하느님 말씀에 대한 존경과 신앙, 교회에 대한 순종과 충실, 자신의 직무와 책임에 따르는 사도직을 통한 사목적 열의, 나쁘고 세속적인 출판물에 대한 사람들과 자신의 처신, |
시간 특히 내적 삶을 위한 시간 투자. 나) 자기 내면에서 일어나는 행동의 먼 동기와 가까운 동기와 그 결과를 공정하게 판단하고 검토하면서 내적 외적 모든 행동에 대한 책임과 윤리적 특성을 부각시킨다. 다) 삶의 태도를 예수님의 태도와 비교한다. 그러면 자신과 신적 모델 사이에서 느끼는 대립 및 자신의 결점과 불완전함이 더욱 현저하게 드러날 것이고, 한편 그분을 더욱 가까이에서 따르고자 하는 원의가 촉진될 것이다.
4. ‘영적 고해’, 곧 겸손과 신뢰로 예수께 자신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청하고, 승리에 대해 그분께 감사드린다. 이 넷째 사항은 양심성찰의 핵심 요소인 뉘우침을 포함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5. 확실한 ‘결심’과 자신을 교정하고 나아지려는 노력을 표명하고, 하느님의 은총을 간구한다. 결심이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겸손에 바탕을 두어야 하며, 명확하고 특별해야 하고, 생각과 행위, 감정을 포함해야 한다. 결심을 실천할 은총을 간청하기 위해 권고할 만한 기도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은 ‘주님의 기도’다. 이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께 드리는 효력 있는 기도로서, 우리 의 용서와 도움의 청원을 틀림없이 들어주실 것이다.
(특별성찰은) 명백히 드러난 한 부분에 대해 자기 자신을 극복할 목적으로 시작하는 전투에서 강력한 무기라 할 수 있다. 결점을 고치거나 덕성을 키워나가는 것이 목적이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주제 선정과 실천양식에 관한 규칙을 따를 필요가 있다.
주제 선정: 일반지침에서는 지배적인 결점인 (칠죄종 중 하나 또는 두드러진 결점 중 하나)를 목표로 하는 것이 좋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 결점을 차츰 반대되는 덕으로 바꾸도록 한다.
작업을 통해 더 완전하고, 더 쉽고 확실하게 진보하기 위해서는 기본 능력, 곧 지성, 의지, 감정 등 모든 능력을 기울이는 실천적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하느님께 대한 애덕을 특별성찰로 정했다면, 그 계획은 다음 세 가지 요소가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1. 지성의 훈련: 하느님께 대한 애덕의 기초인 원칙들을 굳게 믿는다. 곧 하느님은 모든 피조물의 시작이요 통치자요 목적이시다. 피조물의 최고선이요, 선 자체이신 그분은 소유한 모든 선을 커뮤니케이션하셨다. 그러므로 피조물인 우리의 사랑을 하느님께 드려야 한다. 다른 모든 것은 그분 안에서, 그분을 위해서 사랑해야 한다.
2. 의지의 훈련: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에 따라 하느님 뜻에 계속 기쁘게 일치하도록 결심한다. 하느님 뜻에 일치한다는 것은 계명, 교회의 규정, 복음적 권고, 은총의 감화 그리고 수도자들에게는 회헌과 회칙에 대한 순종을 의미한다. 하느님의 어지신 뜻에 일치한다는 것은 더 큰 선을 위해 그리고 주로 자신의 성화를 위해 하느님이 원하시거나 허락하신 모든 섭리에 순종함을 의미한다.
3. 마음의 훈련: 다음에 나열하는 수단을 통해 하느님과 가능한한 가장 높은 단계의 일치를 이루도록 결심한다. 모든 피조물 안에서 오로지 그리고 늘 하느님의 선만을 생각하고 바라본다. 그리고 이러한 것을 하느님께 이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다. 자기 자신과 본성적인 모든 감정에서 이탈하여 자기 자신 안에 작은 방을 만든다. 그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고 사랑하며, 마음과 마음으로 그분께 말씀드리며, 하늘나라의 영원한 포옹을 기다린다.
실천 방법: 특별성찰은 세 번, 곧 아침에, 성체방문 중에, 저녁에 한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른바 ‘예비성찰’을 하는데, 네 가지 본질적인 행위를 내포한다. 오전에 투쟁할 주제를 분명하게 정하고, 기회를 |
예상하며 기회가 올 때마다 승리하도록 결심하고, 하느님의 빛과 힘을 기원한다. 이것은 짧게2 -3분이면 충분하다.
성체방문 중에는 말 그대로의 특별성찰을 하는데, 20분 정도 할애한다. 일반성찰과 마찬가지로 다섯 가지 요점, 곧 감사, 자기 잘못을 알고 미워하기 위한 기도, 부족한 점에 대한 검토와 진보에 대한 확인, 뉘우침, 결심이다. 두 가지 ‘준비기도’가 앞서고 ‘마침기도’가 따른다.
준비기도는 정신집중에 탄력을 제공하고 진정한 성찰을 하게 한다. 하느님의 현존 안에 머무는 훈련과 하나의 시작기도가 포함된다. 하느님 현존 안에 머무는 훈련은 하느님의 눈길 아래서 겸손과 찹찹함이라는 생생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시작기도’는 성찰을 잘 하도록 짧막하게 하느님의 은총을 청하는 것이다. 이는 열렬한 기도라야 한다.
감사: 마지막 성찰 이후 우리에게 아낌없이 베풀어 주신 모든 은총에 대해 특별하고 상세하게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특히 우리에게 베푸신 선에 대해 그분께 감사드린다.
기도: 특별성찰의 주제에 대해 모든 |
주의를 집중하고, 얼마나 자주 잘못했는지 기억하기 위해, 그리고 고칠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해 하느님의 도움을 간청한다.
성찰: 잘못을 살피고, 그 횟수를 표시하며, 지난 번 성찰과 비교해 본다. 잘못을 찾기 위해서는 스스로 결점을 고치고 나아지겠다고 결심한 특별한 점에 관해 정확한 결산을 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위에서 설명한 성찰 내용에 관한 분명하고도 특별한 질문을 나열한 구체적인 질문지 사용을 권할 만하다. 형식적인 것이 되지 않도록 언제나 같은 순서에 따라, 시간마다 또는 행동 하나하나를 살펴보는 것이 유익하고, 지나친 낙관주의와 비관주의를 피하면서 분명하고 정확한 결산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적당한 수첩에 결과를 기록해야 한다. 비교는 이러한 방식으로 해야 더 쉽게 기억하고, 비교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정오의 성찰 결산은 저녁의 성찰결산과 비교하고, 하루의 성찰결산은 다른 날과 비교해야 한다. 주간결산, 월간결산과 연간결산을 비교하고, 영적 지도자에게 제출해야 한다. 비교는 열성을 촉진하고, 그런 결산 작업은 싸움에 항구하도록 지탱이 되어주며 확실한 길잡이 역할을 한다.
뉘우침: 고해성사 때와 같이 마음을 다하여 |
자신의 잘못을 미워하고 깊이 뉘우친다. 통회의 기도, 참회의 시편을 바치거나 십자가의 길 몇 처를 묵상함으로써 끝마친다.
결심: 속죄하고 정개定改한다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 죄의 근원인 쾌락에 대한 애착을 약화시키려는 목적으로 자기 잘못에 대해 책임을 지면서 보속 행위로써 속죄한다.
기회를 예견하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극복할 수 있는 특별한 결정을 내리면서, 투쟁할 주제를 명확히 하면서 정개해야 한다. 자신의 선의와 힘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많은 은총을 앗아가고 다시 경솔과 추락으로 내몰 수 있는 오만을 재빨리 제거하도록 주의한다. 그러나 자신의 무능을 의식하도록 돕기 위해 언제나 준비하고 계신 하느님의 전능과 끝없는 선에 신뢰하며 의지한다. 이러한 하느님의 도움을 구하는 간구는 마침기도로 끝맺는다. 자기 죄를 한번 흘낏 바라보는 것은 믿을 수 없는 것이기에, 기도는 [더욱] 겸손하고 주의 깊어야 한다.
성 이냐시오가 제시한 방법 외에 |
‘길 진리 생명’의 방법에 더욱 상응하는 방법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1.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신덕송과 준비기도를 바친 다음
가) 주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에 감사하며, 자기 자신을 알수 있는 은총과 자신의 결점과 잘못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도록 은총을 청한다. ‘진리’ 부분(5분)이다.
나) 잘못을 살피고 뉘우치며 결심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성찰을 한다. ‘길’ 부분(10분)이다.
다) 풍부한 기도. ‘생명’ 부분(4분)이다. ‘주님의 기도’와 ‘하루를 거룩히 지내기 위하여…’64라는 기도(1분)로 마친다.
2.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신덕송과 준비기도1(분)를 바친 다음
가) 하느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고 자신을 알고 고칠 수 있게 해주시기를 하느님께 청한다. 지은 죄, 자신의 결점을 살피고 이를 겸손하게 인정한다. ‘진리’ 부분(7분)이다.
나) 뉘우침과 결심의 기도. ‘길’ 부분8(분)이다.
다) 풍부한 기도. ‘생명’ 부분( 4분)이다.
‘주님의 기도’와 ‘하루를 거룩히 지내기 위하여’라는 기도를 바친다(1분).
3.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신덕송과 준비기도를 바친 다음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그분께 자신을 알고 회개하며, 결심할 은총을 청한다(4분).
성찰에 전념한다.
가) 잘못을 살핀다(8분).
나) 뉘우침과 결심(8분).
다) 기도(4분).
‘주님의 기도’와 ‘하루를 거룩히 지내기 위하여’라는 기도를 바친다(1분).
오전에, 성체방문(가능한 한 정오쯤) 때, 저녁에 다시 특별성찰을 한다.
여기서는 성찰 자체가 아니라 일반성찰의 주요 사항을 다룬다. 그러나 성체방문 때 한 특별성찰의 모든 내용을 요약해야 한다.
특별성찰을 위해 하루 세 번뿐 아니라 다른 시간이 있으니, 예를 들면 정오, |
‘성모송’이 울려퍼지는 시간,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 일을 바꿀 때… 자기 영혼을 늘 살펴보도록 도와주고 참되게 영적 진보를 보장해 주는 신속한 성찰에 대해 언급하는 사항이 많이 있다.
출판사도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의 특별한 모습은 분명 ‘역사의 여왕’이시다. 다시 말해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는 한 처음부터 창조를 주재하셨고, 그 발전을 통해 주재하시며, 그 종말에 주재하실 것이다.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는 예수님과 더불어 창조의 최종 원인이요, 본本이 되는 원인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의 왕권을 공유하신다. 목적인目的因인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이요 |
그분과 더불어 우리 구원의 원인이시며 은총의 모든 질서의 원인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 질서(창조)는 은총의 질서를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비록 창조에 참여하셨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신 성모님은 당신의 육체적 존재로서가 아니라 목적인目的因으로서 하느님의 생각 안에 먼저 존재하셨다.
하느님은 성모님을 당신의 모든 활동의 시작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에서부터ab oeterno’ 존재하도록 예정하셨으며, 하늘과 땅, 예수님의 영혼과 육신을 창조하시면서 모든 것에 앞서 마리아를 바라보셨다. 하느님은 당신 친아드님의 어머니요 소유자이신 그분을 위해 모든 것을 만드셨기에 마리아는 창조된 모든 것의 여왕이시다.
이 때문에 교회, 교부들, 학자들은 성경말씀에서 표현한 강생하신 지혜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한 내용을 동정녀께도 적용한다. “주님께서는 그 옛날 모든 일을 하시기 전에 당신의 첫 작품으로 나를 지으셨다. 나는 한처음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영원에서부터 모습이 갖추어졌다. 심연이 생기기 전에, 물 많은 샘들이 생기기 전에 나는 태어났다. 산들이 자리 잡기 전에, 언덕들이 생기기 전에 나는 태어났다. 그분께서 땅과 들, 누리의 첫 흙을 만드시기 전이다. 그분께서 하늘을 세우실 때, 심연 위에 테두리를 정하실 때 나 거기 있었다. 그분께서 위의 구름을 굳히시고 심연의 샘들을 솟구치게 하실 때, |
물이 그분의 명령을 어기지 않도록 바다에 경계를 두실 때, 그분께서 땅의 기초를 놓으실 때 나는 그분 곁에서 사랑받는 아이였다.”65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여전히 형상인形相因 또는 더 잘 표현하면 창조의 본보기, 곧 창조의 이상, 창조의 모델이시다. 사실 은총의 질서 안에서 첫 자리를 차지하시는 예수님과 마리아는 하느님이 모양을 만드시고 자연 질서에 따라 배치하신 모델이시다.
하느님의 말씀은 강생하기 위해 창조된 영혼과 육신을 지니시면서도, 신적 위격을 통해 하나의 창조물이 되지 않고, 성삼위의 제2위격으로 남아 계시니,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 유일하신 하느님, 세상의 창조주시고 당신의 모습을 닮은 지극히 거룩한 마리아의 창조주시다. 우리 주님은 이 완전한 모델에 영원에서부터 당신 정신이 머물게 하시고, 당신의 모든 기쁨을 성 마리아 안에 두시고, 영적 세계나 물질 세계의 모든 창조에 형태를 주셨다.
“마리아는 창조, 천사들, 사람들 그리고 다른 피조물 안에 유포된 모든 은총의 전형이시고, 이미지, 샘, 수로시다.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님에게서, 당신의 사랑스런 영혼의 모상에 따라 창조되신 마리아의 영혼은 |
전형이시고 모든 영, 특히 우리 영혼의 가장 완전한 귀감이시다. 그분의 거룩한 육신은 모든 물질세계의 전형이듯이 우리 육신의 전형이시다.”66라고 몬시뇰 드 세귀르De Ségur는 단언한다. 그러므로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는 성부의 따님, 성자의 어머니, 성령의 신부로 선택되셨고, 하느님이 당신의 완전함 안에서 커뮤니케이션하실 수 있는 모든 것을 커뮤니케이션하셨기 때문에 당신 안에 피조물의 모든 자질과 다른 최상의 자질까지도 갖추어 계신다.
하느님의 창조와 구원계획의 발전과 실행에 있어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는 하느님이 예정하신 대로 참 여왕으로 드러나신다. 구약성경에서는 표상과 예언으로, 신약성경에서는 실재로 그러하다. 그분 안에서 이루어진 강생의 신비를 통해 그분은 중심이요, 예언자 이사야가 말한 대로 ‘지상의 중개자medium terroe’시다. 하느님은 ‘모든 세기의 작품’처럼 모든 것을 마리아와 연관지으시면서 그분에 대해 예언하시고 수많은 상징으로 묘사하신다.
곧 첫 인간의 창조, |
지상 낙원, 홍수 때의 방주, 노아의 무지개, 세 분의 위대한 성조, 모세, 광야의 구름 기둥, 성막과 계약 궤, 만나의 황금 항아리, 아론의 지팡이, 성지, 예루살렘과 성전, 엘리야의 구름, 유딧, 에스테르, 모세의 예언, 이사야, 예레미야, 다니엘, 다윗, 많은 예언적 인물이 다양한 방식으로 그리고 더욱더 상세하게 동정 마리아의 덕성, 직무, 특권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말해준다. 그뿐인가, 비록 변질되긴 했지만 고대 여러 거짓 종교들에서 마리아의 신비를 볼 수 있다.
마침내 시간이 차자 [마리아는] 새 계약의 여명, 당신의 원죄 없는 잉태의 광채를 통해 세상에 나타나셨다.
하늘에서 구세주가 내려오시자 마리아는 그분을 맞아들이시어 그분을 지지하며 그분을 곁에서 도우신다. 그분과 함께 마리아는 세상의 중심이요, 역사의 중심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왕이시고, 마리아는 여왕이시다. “왕비는 당신 오른쪽에 서 있습니다.”67
그리고 놀라운 신비가 계속 일어난다. 탄생 예고에서 하느님은 마리아에게 강생을 위한 동의를 구하기 위해 한 천사를 보내신다. 마리아의 ‘예fiat’에 따라 하느님의 말씀이 내려오시고, 당신의 동정이신 태내의 감실을 제공하신 다음, 세상 곧( |
요셉, 목자들, 동방 박사들, 이집트에서 이방인들에게…) 그분을 드러내시고 성전에서 하느님께 바치신다. 30년 동안 그분을 가르치고, 공생활 초기에 첫 기적을 이루게 하신다. 마지막으로 갈바리아에서 사람들을 위해 그분을 성부께 제물로 바치신다.
부활하신 그분을 만나시어 찬미드리며, 승천을 통해 성부께 다시 돌려 드리신다. 항상 당신의 하느님이요 아드님이신 왕을 지지하고 동반하시는 어머니요 여왕이시다.
승천 후에 마리아는 인간의 성화를 위해 구원 업적을 완성하고 적용하고자 성자께서 보내신 성령과 함께 협력하신다.
그리고 마리아는 오순절 때 교회의 어머니, 사도의 모후가 되시어, 모든 세기에 걸쳐 모든 사람의 어머니, 여왕, 스승이시다. 하늘과 땅의 여왕, 모든 은총의 분배자시다.
그래서 교회는 그분께 기도한다: “여왕이시며 사랑에 넘친 어머니…”; “아베, 하늘의 여왕, 아베, 천사의 모후…”; “하늘의 모후님, 기뻐하소서. 알렐루야…!”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는 하느님 창조활동의 완성 안에서도 여왕이시다.
사실 성모 승천으로써 여왕이 되셨다. |
그분은 육신도 함께 승천하셨고, 구품 천사들이 칭송했으며, 새로운 선물을 받으셨기때문인데, 하느님은 그분을 지식과 덕과 은총으로 풍요롭게 하시어 피조물이 그분께 지성, 의지, 마음으로 공경하기를 바라셨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태양의 빛을 받아 지상을 비추는 달처럼 하느님의 빛을 세상에 비추는 지성을 지배하신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전능한 힘이 주는 의지를 지배하신다.
마리아는 성령의 힘으로 마음을 이끄시고 빚으시며 풍요롭게 하시면서 마음을 지배하신다. “동정녀 당신은 하느님이 하실 수 있는 것을 그분께 추천해 주시고 또 간구해 주십니다.”68
마지막 심판이 이루어질 때 마리아는 성자 다음으로 영원한 왕국에 들어가실 것이다. 그분의 옥좌 위에는 오직 하느님의 옥좌가 있을 뿐이다. 하느님은 그분을 통해 충실한 모든 피조물에게 비전, 기쁨 그리고 충만한 즐거움을 주실 것이다.
“하늘에 큰 표징이 나타났습니다. 태양을 입고 발 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나타난 것입니다.”69라고 복음사가 요한은 묵시록에서 말한다. 달은 모든 피조물의 표징, 별은 사도들의 표징, 태양을 옷 입은 모습은 내적으로 은총을 입은 표징이며, 이 모든 것은 마리아의 영원한 존엄성을 상징한다.
지극히 거룩한 역사의 여왕이신 |
마리아에 대한 심오하고도 완전한 연구는 은총의 분배자시고 우리 삶의 모범에 이차적 원인인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께 대한 연구일 뿐 아니라 사도의 마음속에 우리의 위대한 어머니, 스승, 여왕에 대한 자녀의 신심을 심어줄 것이다. 신심은 참된 봉헌, 곧 그분께 그리고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께 자기 자신을 완전한 선물로 드리는 것에서 시작된다. 따라서 가장 깊은 존경으로써 지성을, 절대적인 신뢰로써 의지를, 가장 자녀다운 사랑으로써 마음을, 그분의 덕 가운데 모방 가능한 덕을 가장 완벽하게 닮음으로써 존재 전체를 그분께 드릴 것이다. 한마디로 천상 스승과 그분의 성인들이 마리아의 자녀들이었던 것처럼 사도는 그분의 아들이 될 것이다.70
출판사도는 ‘성경에 대한 공경의 예禮’라는 고유한 특징을 뚜렷하게 드러내야 한다.
여기서는 교회의 가르침, 성경, 성전 그리고 동기ragione 자체에서도 드러나는 가톨릭교회의 성경에 대한 예에 관한 근본 개념을 빛과 안내처럼 제시하며 실천적 규정이 따른다.
성상에 대한 것처럼 성경에 대해 나름대로 공경의 예를 갖추어야 한다. 이는 |
교회의 가르침, 성경, 성전, 그리고 그 동기ragione 자체에서도 드러난다.
교회의 가르침: 제2차 니케아공의회(787년 10월 13일, 7차 회기)는 교령을 선포했다. “온갖 확신과 주의를 기울여 정의하는 바이다. 소중하고 생명을 주는 십자가와 대등하게 초상화로 그렸거나 모자이크 또는 다른 재질로 된 거룩하고 존경할 만한 (구세주, 하느님의 어머니, 천사, 모든 성인의) 성상은 교회, 제의, 집, 길, 벽에 그릴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
“사실 성상을 자주 바라보는 정도에 따라 정신과 마음은 더 열심해지고, 표현된 주체를 향해 고양된다.”
“고대의 깊은 신심과 관습에 따라 이러한 십자가와 복음서, 다른 거룩한 대상에게 하듯이 성상에 입맞춤, 인사, 분향, 촛불봉헌, 무릎 꿇음, 엎디어 절함으로써 공경을 표한다. 그러나 이는 신앙에 따라 하느님께만 드리는 절대적 흠숭과는 다른 것이다.”72
그리고 제4차 콘스탄티노폴리스공의회는 교회법 3장에서 “모든 이의 해방자요, 구세주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성상은 ‘거룩한 복음서를 대하는 것과 똑같이 존경해야 한다.’고 반포하는 바이다. 복음서 안에 내포된 말씀을 통해 |
| 모두가 구원에 이르듯이 채색된 성상을 통해 지혜로운 사람과 무지한 사람 모두가 거기서 분명히 도움을 받기 때문이다. 사실 글자의 배열을 통해 표현하고 가르치는 진리 자체는 색채의 배열에 의해서도 설명하고 마음에 새겨진다.”
“동기의 유사성과 오래된 전통을 고려할 때, 으뜸가는 대상을 경배하는 것은 합당한 일이니, 여기서 유추할 수 있듯이 ‘거룩한 책인 복음서와 십자가에 하듯이 성상도 존경하고 또 경배해야’ 마땅하다.”73
성경: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은 율법판을 계약 궤 안에 넣어 두라고 하셨는데, 거기에는 만나도 있었다. 모세는 이렇게 말한다. “그뒤에 나는 돌아서서 산을 내려와 주님께서 나에게 명령하신 대로 내가 만든 궤 안에 판들을 넣었는데, 그것들은 지금도 그 안에 있다.”74
율법서는 모세가 사제들에게 내린 명령에서 드러나듯이 지성소 안에 있는 계약 궤 옆에 있었다. “이 율법서를 가져다가 주 너희 하느님의 계약 궤 곁에 두어라. 거기에서 이 책이 너희에 대한 증인이 되게 하여라.”75
성경 인용에서처럼 하느님은 이미 구약성경을 통해 그리스도, 곧 성체성사의 표상인 만나와 진리와 길이신 그리스도, 곧 복음서의 기초요 표상인 성경에 속하는 십계명 석판과 율법서에 대한 존경과 예를 하나로 일치시키셨다.
하느님이 그와 같은 표상들을 규정하셨다면 실제로 현실화해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복음서에는 예수 그리스도께 드리는 것과 비슷한 공경을 예로 드리되 상대적이라야 한다.
성전聖傳: 위에서 인용한 공의회, 곧 제2차 니케아공의회와 제4차 콘스탄티노폴리스공의회 법규 중 하나는 선조들의 전통을, 다른 하나는 아주 오래된 전통을 암시한다. 게다가 그 가운데 복음서에 대한 공경의 예는 이미 존재하던 명백한 표징인 구세주의 성상에 대한 공경의 예를 굳히기 위한 동기에서 취한 것이다.
그뿐 아니라 콘스탄티노폴리스공의회는 공의회 법규 1장에서 포치오Fozio를 거슬러 기술하고 있다. “한결같고 고귀한 하느님 정의正義의 길을 넘어지지 않고 잘 걸어가기를 바라면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우리의 발걸음을 비추며 타오르는 등불과도 같은 교부들의 말씀과 정의定義를 생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거룩한 복음서에 대한 공경의 예를 표명하려면 교부들과 그 리스도교 전통의 자취를 따라 걸어야 한다.
현행 전례에서는 다음과 같이 성경에 공경의 예를 표한다.
가) 성무일도서의 대부분과 미사의 많은 부분이 성경을 토대로 작성되었고, 미사의 중요한 부분도 성경구절로 구성되어 있다.
나) 복음서에 입맞춤으로써.
다) 장엄미사에서 부제가 복음을 노래로 선포하기 전에 촛불을 밝히고 분향함으로써.
동기ragione: 동기 또한 증거들을 제시한다.
탁월함에 걸맞는 공경의 의무를 지니고 있다.
제4차 콘스탄티노폴리스공의회는 구세주의 성상에 대한 공경의 예禮 규정에는 성전聖傳 외에 십자가, 거룩한 복음서와 구세주의 성상에 공경을 표하는 동기가 유사하다는 데 기초를 두고 있다. 말하자면 복음서와 더 나아가 성경에 대한 공적 예는 거룩한 것으로 기릴 만하다.
그리고 구세주 성상에 공적 예를 표하는 것과 같은 동기로 하느님 말씀을 담고 있는 성경에 공적 예를 표할 수 있는 것이다.
성경에 대한 공경은 하느님께 대한 흠숭처럼 인간 존재의 본성과 사회적 존재의 본성에 따라 완전해야 한다. 내적 예는 외적으로 드러나야 하며, 사적인 예가 필요에 따라서는 공적인 것이 되기도 할 것이다.
그리하여 내적 예의 실천은 외적 예에 그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며, 외적 예는 내적 예를 더 강화시키는 구실을 한다. 공적 예는 사적 예를 완성시키고 완전하게 한다.
실제로 참으로 가톨릭적(보편적)이고 단순하며 강한 신앙행위로 이루어지는 ‘지성의 순종’76이다.
다시 말해 ‘가톨릭 신앙’은 천상 스승의 정신에 따라 교회가 성경을 해석할 때 성령이 반드시 교회를 비추신다는 원칙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교회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신앙 안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 신앙교육을 충분히 [받아] 준비된 신앙은 교회가 승인한 해설을 따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설교하실 때 지니셨던 바로 그 사랑과 영靈으로 성경 특히 복음서를 읽는다.
‘단순한 신앙’. 마음이 단순하고 겸손한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이해한다. |
사도들의 마음, 거룩한 동정녀의 마음과 같은 단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성경에 다가갈 필요가 있다.
‘강한 신앙’. 하느님 말씀은 사람을 회심시킨다. 그러나 길을 잃은 사람과 옆길로 가는 사람에게 하느님 말씀을 권하고, 하느님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서는 고통을 바칠 용기가 필요하다.
‘의지의 순종’은 성경, 특히 복음서를 통해 신적 윤리법에 대한 전적인 동의로 이루어진다. “복음서는 그리스도의 책, 철학, 예수 그리스도의 신학, 인류의 구속, 은총과 구원이라는 가장 기쁜 선포로서, 그분을 믿는 이들에게 주어진, 그분을 통해 하늘이 건네준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복음서를 읽는다는 것 또는 듣는다는 것은 하느님 아드님의 목소리를 읽거나 듣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것처럼 아주 정중하게 복음을 경청해야 한다.”77고 코르넬리오 아 라피데Cornelio a Lapide는 말한다.
‘마음의 순종과 우리 전 존재의 순종’은 교회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처럼 그리고 많은 성인이 표양을 보여준 것처럼 해야 하는데, 그 성인들 중 즐겨 기억하는 분들로는 성 안토니오, 성바실리오, 성 아우구스티노, 성녀 체칠리아 등이 있다.
우리에게 진리를 계시하시고 당신 뜻을 드러내시며 당신 사랑을 보여주시는 하느님은 순종하는 마음을 반기신다. |
이 순종하는 마음은 하느님의 위대함을 찬미하고, 하느님의 호의를 기쁘게 그리고 곧바로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이다.
아나스타시오 교황은 독일과 보르고냐 주교들에게 정중하게 순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여러분은 복음서를 읽을 때 몇몇 사람이 앉아있다고 우리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이에 대해 “사도적 권위로써 명하는 바이니 어떠한 식으로든 앞으로 이러한 일이 계속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교회에서 복음서를 봉독할 때 사제들과 다른 모든 참석자는 앉아있지 말고 서서 그리고 독서대를 향해 정중하게 몸을 굽힌 채 주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듣고 충심으로 공경의 예를 표해야 합니다.”78
성경에 대한 예의 외적 행위 가운데 격찬할 만한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행렬, 9일 기도와 3일 기도, 기도, 현시, 입맞춤, 복음서에 대한 서약.
‘행렬’의 가장 좋은 방법은 성경을 높이 들고 행렬을 하는 것으로 전례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행한다.
이 점에 관해서는 1933년 2월 19일자 <로세르바토레 로마노L’Osservatore Romano>에 게재되었다. “첸치오 카메라리오Cencio Camerario가 말하는 성경행렬 의식은 |
부제가 어깨 위로 성경을 높이 들고, 종려나무가지를 든 사람들이 이를 에워싸고 향을 피운 향로, 촛불잡이, 시내 여러 학교 기수들 뒤로 ‘운반대 Portatorium’라 불리는 우아하고 빛나는 성경 받침대가 따르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직접 받은 것과 비슷한 존경을 복음서에 적용한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러한 관습은 거룩하고 존경할 만한 것으로, 계속 이어갈 가치가 있다.
‘9일 기도와 3일 기도’는 매일 성경을 한 장章씩 읽는 것이다. 이러한 신심은 여러 곳으로 확산되었는데, 가치 있고 특별한 은총을 가져다주었다.
‘기도’는 다양한 형태로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투르의 성 그레고리오는 「교부들의 생애」 4장에서, 화염이 알베르니아 시를 휩쓸 때 성 갈로는 성당에 들어가 거룩한 제대 앞에서 오랫동안 기도했다고 한다. 그리고 일어서서 복음서를 들고 불길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는데 불씨 하나 남지 않고 불이 꺼졌다고 한다.
성 마르치아노와 니체포로는 유사한 기적과 사건에 대해 이야기한다. 기도의 한 형태로 유혹과 불운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며 하느님의 도움을 청하기 위해 성경 전체나 한 부분을 품고다니는 것인데 이는 악마가 복음서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 관해 성요한 크리소스토모는 복음서가 있는 곳에는 |
악마가 감히 접근할 생각을 못한다고 강조한다.79
경배를 위한 ‘현시’-니체포로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두 번에 걸친 니케아공의회와 칼케돈공의회 그리고 에페소공의회에서는 복음서를 회의실 한가운데 모셨는데, 그 이유는 교부들이 마치 예수 그리스도를 대하듯 복음서를 대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가 올바른 판단을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생각하라는 것이었다.80
마찬가지로 트리엔트공의회에서는 회의실 가운데에 성경을 모셔놓고 존경을 표시했다.
<로세르바토레 로마노>는 교회에서 신자들이 복음서에 입을 맞추고 읽도록 난간과 제대 앞에 복음서를 펼쳐놓도록 장려했다. 이탈리아의 여러 가정에서는 적당한 장소에 성경을 펴놓고 그 앞을 지날 때마다 고개를 숙이거나 입을 맞추는 행위가 널리 확산되었다.
복음서에 대한 ‘서약’-가장 장엄한 행위로, 누군가가 단언하거나 부인하는 내용을 확증하기 위해 진리이신 하느님을 부르는 것으로 이루어지며, 동시에 진리를 고백할 수 있는 은총이나 약속한 바를 충실히 지킬 수 있는 은총을 간청한다.
이러한 신심은 교회법이 바라는 것으로 장엄한 서약을 할 때 복음서에 손을 얹도록 규정하고 있다.
1 1942년에 출판된, 성바오로수도회 「회헌」 2항. (수도회의 특수 목적)에 이미 명기된 것처럼 “무엇보다도 ‘출판 사도직’을 통하여 더욱 풍성하고 신속하며 ‘시대의 필요와 조건에 더욱 적합한’ 매체를 사용하면서” 일하도록 회원에게 의무를 부여하고 있음은 의미심장하다.
2 마르 16,15: ⁎“Euntes in mundum universum, proedicate Evangelium omni creaturoe.”
3 1934년 10월 10일에 카스텔간돌포에서 국제 출판영화연합위원회 회원들에게 한 담화.
4 ⁎ 루카 2,14 참조: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5 비오 10세의 교리교육.
6 요한 14,6.
7 마태 7,21.
8 마태 22,37.
9 요한 14,6.
10 갈라 4,19: *“donec formetur Christus in vobis”라는 표제의 알베리오네 신부 작품도 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모습을 갖추실 때까지Donec formetur Christus in vobis」. 프리모 마에스트로 묵상집, 알바, 성바오로수도회 1933년, 110쪽, 16cm. 새로운 비평 편집본을 출간 준비 중이다.
11 갈라 2,20: *“vivo autem iam non ego: vivit vero in me Christus.”
12 요한 14,6.
14 Di Venerando o venerata memoria. 가경자 또는 존경받는 추모자.
15 루카 10,16.
16 요한 20,21.
17 “Da mihi animas, cetera tolle.” 창세 14,21. ⁎성경 본문은 “소돔 임금이 아브람에게 ‘사람들은 나에게 돌려주고 재물은 그대가 가지시오.’”라고 한다.
그리스도교 수덕신학 전통에서, 이 표현은 다음과 같은 의미로 변천했다. “영혼들의 구원을 보장하라. 그 나머지는 기꺼이 그대가 가져도 좋다.”=(참된 사도적 열성은 현세 재물을 추구하기보다 영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이끄는 일에 집중한다.)
18 ⁎양육자Alimentatrice, 유모nutrice.
19 로마 12,1.
20 요한 17,3: ⁎“hoec est vita oeterna; ut cognoscant Te (Pater) et quem misisti Jesum Christum.”
21 마태 5,2-3: ⁎“aperiens os suum docebat: beati pauperes spiritu….”
22 마태 19,17: ⁎“Si vis ad vitam ingredi serva mandata.”
23 마태 7,13-14.
24 1요한 2,16: ⁎“Omne quod est in mundo concupiscentia carnis, concupiscentia oculorum, superbia vitæ.”
25 마태 11,28:⁎“Venite ad me omnes.”
26 “omnia omnibus factus.” ⁎1코린 9,22 이하: “약한 이들을 얻으려고 약한 이들에게는 약한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하려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나는 복음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합니다. 나도 복음에 동참하려는 것입니다.”
27 “in omnibus caritas!” ⁎콜로 3,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주는 끈입니다.”
28 요한 14,6: ⁎“Ego sum Via, Veritas et Vita.”
29 실제로 활동은 능력으로 간주된다. 모든 활동은 자신이 지닌 주요한 능력에 의한 특별한 흔적이기 때문이다.
30 감정은 다른 이들이 ‘의지에 푹 빠진 애정pius affectus voluntatis’이라고 하는 데, 자신의 ‘애정’을 통해 에너지에 명령하여, 영적 사랑을 증대시키고 지탱하며 강하게 만든다. 그런 다음 영적 의미에서뿐 아니라 감성적 의미에서 능력으로 간주되어 ‘마음’이라고도 한다. 이것은 적합성, 더 낫게는 합법적 상징주의를 통해 (생명과 양분의 상징인) 피를 전달하는 조직의 중심으로서, 심장의 기능에 토대를 둔다. 이를 ‘생명’이라고도 이름하는데, 이것이 결과에 응답하고, 사랑을 상징하며, 사랑을 통해 선의 커뮤니케이션인 생명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자연적 본성 안에서뿐 아니라 초자연적 본성 안에서도 그러한데, 이 초자연적 본성 안에서 선의 커뮤니케이션은 영혼의 생명, 은총의 커뮤니케이션과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
31 (은총에 의해 고양된) 마음이라고도 불리는 감정은 사랑과 생명을 상징할 뿐 아니라 하느님이 인간에게 커뮤니케이션하시는 생명을 주는 새로운 기원인 은총으로 형성된다.
32 “Primus in intentione est finis.”
33 ⁎상응하는, 일치하는.
34 이 책에서는 이하 통상 직무자와 특별 직무자 모두를 일컬어 ‘사도’로 통칭한다.
35 ⁎부록 참조.
36 ⁎‘헤아릴 수 없는innumerevoli’ 대신에 ‘무한한indefiniti’을 택함.
37 여기에서 사용한 ‘정신mente’이라는 용어는 이 책 전체에서 ‘지성intelletto’과 동의어다.
38 ⁎“prompte, faciliter et delectabiliter.”
39 필리 1,21: ⁎“Mihi vivere Christus est.”
40 루카 18,1: ⁎“Oportet semper orare et non deficere.”
41 ⁎ 티모테오.
42 1티모 4,16. ⁎“Attende tibi et doctrinæ… hoc enim faciens et te ipsum salvum facies et eos, qui te audiunt.”
43 ⁎ 마르 6,31 참조. “elige tibi remotum locum.”
44 ⁎“scientiarum Dominus.”
45 “Ego vadam immolari pro vobis.” ⁎요한복음서의 몇 구절을 나타낸다.(8,21-22 참조)
46 ⁎“pro nostra et totius mundi salute.”
47 ⁎“sacrificium laudis”.
48 요한 10,10: ⁎“Ego veni ut vitam habeant et abundantius habeant.”
49 A. Tanquerey, 「수덕신비신학 개론Compendio di teologia ascetica e mistica」, [n.278].
50 ⁎사도 4,32 참조.
46 ⁎“salutis humanoe Sator.” : 1티모 4,10; 참조: 요한 4,42.
52 요한 15,5: ⁎“qui manet in me et ego in eo, multum fructum affert.”
53 ⁎“fiat voluntas tua sicut in coelo et in terra.” 참조: 마태 6,9; 루카 11,2.
54 갈라 2,20: ⁎“Vivo autem, iam non ego: vivit vero in me Christus.”
55 일반적으로 묵상을 영성생활의 세 단계에 사용되는 같은 이름을 붙여서 정화, 조명, 일치로 구별한다.
56 순서를 바꾸고 싶다면, 곧 복음의 표현인 ‘길 진리 생명’에 따라 ‘길’을 ‘진리’ 앞에 두면, 먼저 묵상을 위해 제안한 진리에 관해 예수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모범을 숙고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모범은 우리의 역량을 초월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한 걸음 한 걸음 따라가도록 우리 앞에 놓여진다.
이러한 첫 훈련 (이른바 길)에 둘째 (진리)가 뒤따르는데, 특정한 원인에 대한 결과(좋은 결과와 나쁜 결과)의 적절할 상관성에 관한 성찰과 검토다.
셋째 훈련 (생명)에서는 내적 동화가 이루어지는데, 이를 통해 숙고하고 따른 진리가 우리 안에 살아있고 자기 것이 되게 한다. 그러한 확신은 현실로 변화되는데, 개별 행위, 곧 결심의 실천으로 발전하게 된다.
57 요한 17,3: ⁎“Hoec est autem vita oeterna: ut cognoscant te, solum Deum verum, et quem misisti Jesum Christum.”
58 요한 1,4:⁎“in ipso vita erat, et vita erat lux hominum.”
59 요한 15,5:⁎“Ego sum vitis, vos palmites: qui manet in me et ego in eo, hic fert fructum multum: quia sine me nihil potestis facere.”
60 2코린 5,14:⁎“Caritas enim Christi urget nos.”
61 갈라 2,20: ⁎“Vivo autem, iam non ego: vivit vero in me Christus.”
62 ⁎“ex Deo factus est”, 요한 1,13 참조.
63 성 이냐시오가 복음의 세 명제의 특별한 조명 아래에서 보았고, 논리적 순서와 진보적 순서에 따라 구분한 방법이다.
64 사랑스럽고 부드러우신 어머니 마리아님, 제 머리 위에 당신의 거룩한 손을 얹으시어 제 지성과 마음과 오관을 지키시고 죄에 떨어지지 않게 하소서. 제 생각과 감정, 말과 행동을 성화시키시어 나의 하느님이며 당신의 아들이신 예수님과 당신께 기쁨을 드릴 수 있게 하시며, 당신과 함께 하늘나라에 들게 하소서. 예수 마리아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저에게 강복하소서. 아멘.
65 잠언 8,22-30.
66 Mons. De Ségur, 「교부들의 주석 안에서 본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La Ss.Vergine nei commenti dei Santi Padri」.
67 시편 44,10: “Adstitit Regina a dextris tuis.”
68 “Quod Deus imperio, tu prece, Virgo, potes.”
69 묵시 12,1.
70 ‘교회학자들’은 그분께 배웠고(성 안셀모, 성 토마스를 기억하라), ‘성인들’은 그분의 도우심으로 그와 같이 행했으며(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 알폰소를 기억하라), ‘저술가들’은 그분께 자신의 펜을 봉헌했다 (다마스쿠스의 성 요한, 성 베르나르도를 기억하라).
71 하느님의 말씀이나 그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성경과 복음서라는 ‘책’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72 Denzinger 302.
73 Denzinger 337.
74 신명 10,5.
75 신명 31,26.
76 Cornelj, 「성서 입문Introduzione alla S. Scrittura」
77 3권, 3-4 참조.
78 Can. Apost. de Consecrat. dist. 1.
79 Cf. 51 su San Giovanni Evangelista.
80 Cf. libro XIV, capo I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