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o Giacomo Alberi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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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몸으로 하느님을 전하십시오

들어가면서

영적 열기가 뜨거워지고, 마찬가지로 사도직 활동도 불타오르던 시기인 1954년 봄에 저술한 이 소책자는 그 때까지 출판된 것 가운데 가장 진전된 내용이 담긴 것으로, 그 분량은 「네 정신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라」(1956년)는 (소책자) 다음으로 방대하다.
이 소책자는 제일 먼저 「성 바오로」지 2-3월호에 실렸고, 이어서 1954년 성 요셉 축일에 발간된 모음집 「바오로가족에게」에 실렸다. 그해 3월 19일 성 요셉 축일 장엄미사 중에 알베리오네 신부는 나자렛의 가장인 성 요셉의 이름을 수도명으로 택한 축일을 기념했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 해에는 역사적으로 두 가지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4월 4일은 창립자의 70세 탄생일이었고, 첫 수도회인 성바오로수도회 창립 40주년이었다.
적극적으로 축제를 준비하던 그의 제자들은 창립자 자신과 창립에 대해 글을 써주었으면 하고 요청했고(이 요청에 의해 「당신 은총의 풍성한 부」라는 저서가 나옴),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라는 책의 출간 계기를 마련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을 양성하거나 확고히 다지기 위해 가장 창조적인 활동은 언제나 각 인격체의 몸과 인간성을 기초로 하여 출발한다고 생각했다.
이 소책자는 다른 모든 것보다 알베리오네 고유의 인간학을 가장 잘 표현해 준다. 또한 봉헌된 사람과 사도의 통합적 양성을 위한 성서신학, 윤리, 수덕신학, 심리학… 등 기본적인 이론과 실천을 요약하고 있다.
본문의 몇 가지 소제목이 내용을 시사하고 있다. 곧 ‘하느님의 것인 그대의 육신, 주님, 저 자신을 알게 하소서, 열매를 따먹고 죄를 지었다, 죄의 결과, 육신의 구원, 부활할 육신, 놀라운 영광, 영과 육, 재축성, 여러분의 육신 안에 계신 하느님, 마지막 축성봉헌, 신성을 모독하지 마라, 탐식, 육욕, 순결에 대한 교육, 태만, 의지의 역할, 은총, 육신, 사랑하는 아들인 육신, 복음과 위생은 조화를 이룬다, 극기의 법칙, 성공의 비결, 사도직, 내적 교육학, 인내, 건강한 육신에 건강한 정신Mens sana in corpore sano, 그대 자신의 의사, 의사 선택’ 등.
육신에 대한 주제, 특히 육신과 영혼 간의 관계, 미래의 삶에 대한 준비 등에 관해 다루는 주제의 원천은 이미 언급한 바 있는 프란치스코 키에사 신부의 「생명의 열쇠」 (마지막 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더 구체적인 것, 곧 생명공학, 심리학과 위생학적 성격에 대한 설명은 니콜라 펜데Nicola Pende1a의 「인격에 관한 현대 과학La scienza moderna della persona umana」에서 발췌했다.
비록 저자가 늘 남성을 주제로 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것은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알베리오네 신부가 사도적 삶을 시작하게 한 소녀와 여성의 숫자는 형제들보다 훨씬 많았고, 그는 그들을 똑같이 대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인성교육과 영적 양성을 위해 훨씬 더 많은 배려를 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이 소책자에 인용한 모든 글은 발간하기 전에 그들에게 건네주어 검토하게 했고, 로마 인쇄소에서 인쇄하여 바오로회 형제들에게 전달되었다.
그러므로 이 소책자는 알베리오네 신부의 가장 뛰어난 작품 중 하나다. 앞서 언급한 여러 제목을 훑어보아도 독자는 이 소책자가 다루고 있는 주제가 얼마나 광범위한지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옛’ 표현임에도 모든 내용이 생기 있고 매우 현실적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여러분의 몸으로 하느님을 전하십시오1
(1코린 6,20)

1. 기도합시다 [SP, 1954년 2-3월호, 1쪽]

“주님, 하늘과 땅의 임금이신 우리 하느님, 당신의 법에 따라 그리고 당신 계명을 이루도록 오늘 저희의 마음과 육신, 저희의 감각, 대화와 행동을 인도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며, 지탱하시고 다스리시어, 저희가 지금 그리고 영원히 구원받고 자유롭게 해주소서. 오! 세상의 구세주시여, 주님은 세세에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성무일도서에서)2

1

2. 하느님의 것인 그대의 육신

인격에 관한 니콜라 펜데3의 정의는 뛰어난 것이다. “인격이란 인간적이고 신적인 창조물로서 살아 있고, 생각하며 사랑하는 존재요, 되풀이될 수 없는 고유한 개체로서, 우주와 영적 세계에 참여하며, 거기에서 계속 변화의 영향을 받는다. 자유의지를 받았고, 고귀한 존재로 드높여지고자 불완전한 본성을 거슬러 싸우는 은혜를 받았다. 그리고 하느님의 은총에 의지한다면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된다.”
인간은 구체적인 개체로서 인격을 중심으로 자연과 은총을 활용하여 의사와 교육자, 사제와 사회학자로 일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심층과학, 그리스도교 철학과 신학은 인간의 기원, 구성, 활동, 운명을 규명하기 위해 조화를 이룬다.
성 토마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은 육신과 영혼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마치 두 가지 실체로 구성된 제3의 것 같지만, 인간은 육신도 아니요 영혼도 아니기 때문에 중성적인 실체라고 할 수 있다.” 육신과 영혼은 새로운 단일성을 형성할 정도로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어 인간은 동시에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단일체이지만, 육신만으로 이루어지지도 않았고 영혼만으로 이루어지지도 않았다고 한다. 인간이 행하는 모든 것은 항상 육체적 정신적인 것이다. 비록 한 인격 안에 결속되어 있다 하더라도 두 개의 실체는 각기 타고난 특성을 보존한다. 곧 영혼은 영적이고 자유롭고 불멸하며, 육신은 본성상 자유롭지 못하고 소멸하는 것이다

2

3.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께 감사드림4

인간의 초월적 부분인 영혼, 이성, 정신이 활동을 이끌어야 하지만 물질적인 육신도 필요하다. “삶을 이루는 이 두 협력관계는 일반적으로 우리 안에 있는 반半짐승과 반半천사 사이에 벌어지는 투쟁이 삶의 결과를 초래한다.”고 저명한 철학자 리카르도 롬바르디R. Lombardi 신부5가 말했다. 이렇게 육신은 영혼을 거의 동물의 단계, 곧 ‘현세적 인간’6에까지 끌어내릴 수 있다. 그러나 영혼은 신앙과 은총을 통해 육신을 거의 천사화시키는 단계, 곧 ‘젊은 천사 알로이시오’, ‘천사박사’7에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아담에게는 은총이 넘치도록 주어져 영혼이 감각을 지배하기 쉬운 상태였다. 그러나 이러한 은총은 완벽한 인간이 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 욕정에 대한 어떤 | 지배력을 주어 덕을 쉽게 쌓게 만들었다. 하지만 타락하고 은총을 빼앗긴 인간 안에서 한결같이 육정과의 투쟁이 벌어지며, 정신의 승리는 하느님의 상존은총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SP, 1954년 2-3월호, 2쪽]
욕정은 강력한 경향으로서 이성을 거스르고 무절제한 방식으로 합법적이든, 비합법적이든 감각적인 편익便益을 추구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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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신적 기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 2,7]
하느님은 이미 우주(광물계, 식물계, 동물계)를 창조하셨고 질서를 세워놓으셨다. 다만 전능하신 조물주, 지혜로운 명령자, 섭리의 통치자를 알아볼 수 있는 존재가 없었다. 그리고 그분께 마땅한 영광과 자녀다운 사랑을 드릴 존재가 없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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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주님, 저를 알게 하소서8

인간은 물질적 요소와 비물질적 요소로 구성된 존재다. 유한하고 무한한 존재, 죽어가는 존재, 영원한 존재다.
인간은 모두 하느님의 능력, 사랑, 힘, 지혜의 활동으로 이루어졌다.
인간의 물질적인 부분은 지상에 정착해 살고, 그 대신 인간을 이끌고 지배하는 영적인 부분은 하늘나라 시민이 되게 하며 순수한 영 사이에 머문다.
인간은 소우주다. 유기체인 인간은 하느님의 걸작품이다.
구원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신적 친족관계에 들게 된다.
영혼은 육신에게 성장하는 힘9, 느끼는 힘, 활동하는 힘을 부여한다. 영혼 없이는 육신이 먼지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육신에 비해 의지와 지향의 초월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창조주요 구세주인 하느님의 생각 안에는 인간에게 주고자 하시는 제3의 요소, 곧 비할 데 없는 존엄성, 신적 본성에의 참여, 거의 신적 존재가 되게 하는 요소가 있음에 틀림없다. 이 제3의 요소는 인간 본성에서 기인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어지심이 허락한 것으로, 육신의 욕망과 영의 법칙 사이에 질서를 세우고 드높이며 조화를 이루는 힘이 작용했을 것이다. 인간행위에 초자연적 품성을 부여하고, 초자연적 상급을 받기에 합당한 자녀요 상속자가 되게 한다.
“하느님은 자연과 인간 본성을 창조하시면서 은총을 베푸셨습니다.”(성 아우구스티노)10
이로써 인간은 전적으로 드높여졌다. 그리고 인간은 이러한 요소를 빼앗길 때 불안하고, 덕성과 지식조차 갖출 수 없게 된다.
마치 새로운 조건에 적응할 줄 모르는 타락한 자녀와도 같다. “편안하지 않습니다.”11 초자연적인 것이 부족할 때 모든 것은 늘 불완전하게 나타난다. 이와 같은 우리의 숭고한 인간됨은 인간이며 하느님이요 신적 위격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받게 된다. “그러므로 죄가 여러분의 죽을 몸을 지배하여 여러분이 그 욕망에 순종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로마 6,12)
“하느님께서 값을 치르고 여러분을 속량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몸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고 전하십시오.”(1코린 6,20 참조)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신격화神格化되는 길이요 가능성이다.

5

6. 열매를 따먹고 죄를 지었다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데려다 에덴동산에 두시어, 그곳을 일구고 돌보게 하셨다. 그리고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이렇게 명령하셨다.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먹어도 된다.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창세 2,15 이하)
“뱀은 주 하느님께서 만드신 모든 들짐승 가운데에서 가장 간교하였다. 그 뱀이 여자에게 물었다. ‘하느님께서 너희는 동산의 어떤 나무에서든지 열매를 따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는 데 정말이냐?’ 여자가 뱀에게 대답하였다. ‘우리는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를 먹어도 된다. 그러나 동산 한가운데에 있는 나무 열매만은 너희가 죽지 않으려거든 먹지도 만지지도 마라, 하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자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여자가 쳐다보니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 그래서 여자가 열매 하나를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자, 그도 그것을 먹었다. 그러자 그 둘은 눈이 열려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두렁이를 만들어 입었다.”(창세 3,1-7)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벌이 따랐지만 속량과 구속자의 약속도 주어졌다.

6

7. 죄의 결과

아담 전체, 곧 영혼과 육신은 원죄 때문에 은총의 삶을 잃었을 뿐 아니라 아담이 본래 지니고 있던 선善도 상처를 입었고, 육신과 정신이 죄의 결과를 느꼈다.
지성은 이해력이 떨어지고, 더 쉽게 오류에 빠지거나 헛된 일에 지성을 잃게 된다.
예를 들면, 하느님이나 올바른 이성에 의해 비추임을 받은 사람은, 완전한 정결은 가장 위대하고 황홀한 사랑이요, 순명은 가장 위대하고 만족스러운 자유요, 청빈은 가장 위대하고 기쁨을 주는 즐거움12이라는 세 가지 명제를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감각에 의해 | 약해지고 흐려지고 육신의 법에 의해 억압된 이성은 사물을 아주 다르게 볼 것이다. [SP, 1954년 2-3월호, 3쪽]
여왕으로 군림해야 할 의지는 쇠약해졌고 왕권을 박탈당하고 처참하게 되었다. 화려한 외모, 또는 사려 깊음이나 세력의 탈에 가려진 거짓 개념을 통해 신적이고 인간적인 능력(지성과 자유의 지)은 동시에 흐려지고 마비되었거나 탈선했다.
두 종류의 무덤은 아담이 지은 죄의 결과다. 하나는 도덕상의 무덤으로서 외적으로 심판받은 수백만의 사람이 하느님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이 분리는 영혼의 죽음, 곧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죽은 사람으로서 대죄가 원인이 되는 행위에 의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온 땅 위에 퍼져 있는 육신의 무덤이다. “사람아,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13 질병, 고통, 현세 삶의 노고는 육신이 무덤에서 부패됨으로써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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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14

인간은 어떤 노예상태로 전락했는가! “내 지체 안에는 다른 법이 있어 내 이성의 법과 대결하고 있음을 나는 봅니다.”(로마 7,23) “나는 가장 좋은 것을 보고 가장 나쁜 것을 따른다.”15 “나는 내가 바라는 것을 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싫어하는 것을 합니다.”(로마 7,15)“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 (로마 7,24)“ 그 계시들이 엄청난 것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내가 자만하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으로, 나를 줄곧 찔러 대 내가 자만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과 관련하여, 나는 그것이 나에게서 떠나게 해 주십사고 주님께 세 번이나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2코린 12,7-9)
그리스도교화 활동은 인간을 죽음, 오류, 죄와 육신과 두려움 등의 노예상태에서 자유롭게 해방시켜 잃었던 자유를 그에게 되돌려 주기 위한 교회의 크나큰 노력이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자유롭게 되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다만 그 자유를 육을 위하는 구실로 삼지 마십시오. 오히려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 (갈라 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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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육신의 구원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것’이 당신 안에서 구원되기를 원하셨다. 육신도 구원되기를 바라셨으므로 육신과 영혼을 취하셨다. 아기의 모습을 띤 육신, 어린이, 인간의 육신, 희생제물의 육신을 취하신 것이다. 죄 외에는,16 곧 감각, 자연적인 필요, 피, 심장, 열정 등 모든 점에서 우리와 비슷하게 되셨다.
“소리 높여 찬양하라, 영광된 주의 성체 고귀하신 주의 성혈….”17
구유 안에 누운 아기, 나자렛의 노동자, 사도직에 전념하여 지친 모습, 겟세마니에서 피땀을 흘리고, 채찍질로 살이 찢겼으며, 가시관에 찔리고, 골고타로 향하는 길에서 십자가 아래 넘어졌고, 담즙과 몰약과 식초로 목을 축였으며, 십자가 위에 못 박혔으며, 몇 개의 못에 매달려 계신 세 시간의 단말마, 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구는 모습, 옆구리가 창에 찔린 모습, 무덤에 모시기 위해 향유를 바르고 염습하는 모습, 3일 동안 무덤에 갇히셨음을 관상해야 한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여러분은 조상들에게서 물려받은 헛된 생활방식에서 해방되었는데, 은이나 금처럼 없어질 물건으로 그리된 것이 아니라, 흠 없고 티 없는 어린 양 같으신 그리스도의 고귀한 피로 그리된 것입니다.”(1베드 1,18-19; 참조: 1코린 6,20; 7,23)
얼마나 큰 대가였나! “나는 육신의 부활을 믿습니다” 하듯이 마침내 부활할 날을 위해 결정적이고 충만한 구원으로 상대적인 완전무결함을 다시 얻은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제물과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에게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기꺼워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제가 아뢰었습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히브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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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부활하신 예수님과 마리아

예수 그리스도는 영광스럽게 부활하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찾는 줄을 나는 안다.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말씀하신 대로 그분께서는 되살아 나셨다. 와서 그분께서 누워 계셨던 곳을 보아라.”[마태 28,5-6 참조] 하고 천사가 믿음 깊은 여인들에게 말했다.
그분의 상처는 눈부셨다. 문이 잠겼는데도 다락방으로 들어오시어 당신 제자들에게 당신 부활에 대한 믿음을 확인시켜 주려고 여덟 차례나 모습을 드러내셨다.
그분은 하늘로 올라가셨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이르신 다음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셨는데, 구름에 감싸여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다. 예수님께서 올라가시는 동안 그들이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는데, 갑자기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렇게 말하였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만 쳐다보며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사도 1,9-11]
그분은 성부 오른 편에 앉으셨다.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의 영광스러운 육신! 예수님의 육신은 하늘에서 영예롭게 되셨고 흠숭을 받으셨으며 사랑받으셨고 현양되셨다! 거기에는 마음과 몸이 동정이신 지극히 거룩한 동정녀의 육신도 있다.
하늘의 임금과 여왕의 지극히 거룩한 육신은 천사들과 성인들의 경이와 사랑을 받는다. 우리 눈으로 보게 될 것이고, 우리 마음으로 사랑하게 될 것이며, 우리의 온 정신과 육신은 황홀경에 빠질 것이다.
교황 비오 12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육신과 영혼으로 하늘에 오르신 마리아를 생각하면서, 모든 사람이 인간 생명의 가치를 알게 되리라 희망합니다. 물질주의와 여가에서 나오는 관습의 부패는 모든 덕성을 매몰시키고 전쟁을 일으키면서 인간 생명을 말살시키려 위협하는 반면, 마리아는 영혼과 육신이 예정된 숭고한 목적인 빛나는 모습으로 모든 이 앞에 자리 잡으셨습니다. 마리아의 승천에 대한 믿음은 우리 부활에 대한 믿음을 더욱 확고하고 더욱 활기차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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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부활할 육신 [SP, 1954년 2-3월호, 4쪽]

육신의 구원은 결국 부활로 완성될 것이다. “나는 육신의 부활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한 이들의 맏이가 되셨다. 이는 그분이 겪으신 형언할 수 없는 육신의 고통으로 이미 마련된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기 때문이다.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는 그분을 따랐고, 모두 그분을 따를 것이다. “죽은 이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썩어 없어질 것으로 묻히지만 썩지 않는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비천한 것으로 묻히지만 영광스러운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약한 것으로 묻히지만 강한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물질적인 몸으로 묻히지만 영적인 몸으로 되살아납니다. 물질적인 몸이 있으면 영적인 몸도 있습니다.” (1코린 15,42-44)
선택된 이들의 육신은 덕과 선행의 표지를 지닐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육신과 같은 품위를 지니게 될 것이며, 영혼과 육신으로 이루어진 온전한 인간은 하느님 정의에 따라 하늘 나라에 들어가 상급을 받게 될 것이다. 모든 감각, 모든 노고, 모든 극기, 모든 가치 있는 행동은 영광을 받게 될 것이다. 인간의 온 인격이 상급을 받을 것이다.
모두가 그렇게 될 것인가? 아니다. 저주받은 이들의 육신은 혐오스러운 몸으로, 특히 부정직한 이들 그리고 일반적으로 육적인 죄일수록 치욕스러운 몸으로 살아날 것이다. 사실 성 바오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 내가 여러분에게 신비 하나를 말해주겠습니다. 우리 모두 죽지 않고 다 부활할 것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변화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고통을 느끼는 상태에서 고통을 느끼지 않는 상태로.)[1코린 15,51 참조] 저주받은 자들은 영원히 불에 타기 위해 살아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속으로 들어가라.”[마태 25,41.46 참조]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 복된 부활의 희망을 주셨기에 저희는 죽어야 할 운명을 슬퍼하면서도 다가오는 영생의 약속으로 위로를 받나이다. 주님,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오니 세상에서 깃들이던 이 집이 허물어지면 하늘에 영원한 거처가 마련되나이다.”(위령미사 감사송에서)18

11

12. 경이로운 영광

“심 판자께 대답하기 위해
세상 만물 부활할 때
죽음이 놀라고 자연도 놀라리라.” 19

영광스러운 육신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 고통을 느끼지 않고 영원히 남으며
- 일반적으로 육신이 영혼에 순종하는 품성이 주어지고
- “죽은 이들의 부활도 이와 같을 터인데”[1코린 15,42 참조] 뭇 별이 서로 다른 빛을 내듯이 빛나며
-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아가는 움직임은 정신의 의지에 달려있기 때문에 민첩하며
- 정신이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영성화한다는 의미로서 모든 것이 영에 달려있을 것이기에 영적이라고 말하는데 순수하다.
육신을 제어할 줄 아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육신의 만족감은 과연 어떤 것일까! 그대 자신을 사랑하라!
예수 그리스도는 묵시록에서 금관을 쓰고 계신 분으로 나타난다.(묵시 14,14)
이와 같이 그분과 함께 다스릴 성인들은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있다고 소개한다.(묵시 4,4) 이는 그분이 육신에 입혀주실 승리를 가리킨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2티모 4,7-8] 화관이란 사실 승리의 표징이다.
“경기를 하는 사람도 규칙대로 경기를 하지 않으면 승리의 화관을 얻지 못합니다.”[2티모 2,5] 그러므로 용감하게 싸웠고, 그리스도와 함께 승리한 사람이 죽음과 죄와 악마를 무찌르신 그분과 함께 화관을 쓰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이 바로 ‘화관의 본질’이다. “오시오, 나의 신부여, 화관을 쓰게 될 것이오.”[아가 4,8 참조] 
그리고 다른 후광이 있는데, 가장 위대한 승리에 대한 본질적인 상에 따르는 ‘부수적인’20 상이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육신을 완전히 굴복시킨 ‘동정자들’에게 주어지는 후광, 설교를 하고 글을 쓰면서 무지와 오류와 이단과 불신을 이긴 ‘학자들’에게 주어지는 후광, 세상과 박해자들을 이긴 ‘순교자들’에게 주어지는 세 개의 후광이 있다고 한다.
‘동정자들’에 대해서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동정을 지킨 사람들로서…”[묵시 14,4], 그들의 특별한 광채를 입증했다.‘ 학자들’에 대해서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많은 사람을 정의로 이끈 이들은 별처럼 영원 무궁히 빛나리라.”[다니 12,3] ‘순교자들’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루카 12,8] 그러므로 묵시록에는 “희고 긴 겉옷을 입은”(묵시 7,13) 사람들로 나타났다.

12

13. 영혼과 육신

“내 말은 이렇습니다.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육의 욕망을 채우지 않게 될 것입니다. 육이 욕망하는 것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께서 바라시는 것은 육을 거스릅니다. 이 둘은 서로 반대되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육의 행실은 자명합니다. 그것은 곧 불륜, 더러움, 방탕, 우상숭배, 마술, 적개심, 분쟁, 시기, 격분, 이기심, 분열, 분파, 질투, 만취, 흥청대는 술판, 그 밖에 이와 비슷한 것들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이미 경고한 그대로 이제 다시 경고합니다. 이런 짓을 저지르는 자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막는 법은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 속한 이들은 자기 육을 그 욕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사는 사람들이므로 성령을 따라갑시다. 잘난 체하지 말고 서로 시비하지 말고 서로 시기하지 맙시다.”(갈라 5,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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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재축성  [SP, 1954년 2-3월호, 5쪽]

예수 그리스도는 죄로 말미암아 신성함을 잃은 육신을 재축성 하기를 바라셨다. 모든 인간은 대대로 아담의 잘못을 입고 태어난다.
육신은 재축성된다.
- 물과 성령으로 인간의 아들이 하느님의 아들이 되는 세례성사를 통해 재축성된다. 곧 온 인격이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 견진성사로 더욱 완전한 자녀가 [된다].
- 영성체로 양육된 자녀가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한다.
‘어른이 된다’21는 것은 완전히 성숙한 나이에 이르기까지 실질적으로 성장하는 것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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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여러분의 육신 안에 계신 하느님

“우리는 하늘의 시민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구세주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대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만물을 당신께 복종시키실 수도 있는 그 권능으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필리 3,20-21)22
활동은 인간의 고유한 행위다. “행위는 고유한 주체의 특성이다.”23 선이나 악을 행하는 주체는 인간의 인격이다. 곧 영혼과 육신이 함께 어우러진 사람이다. 실제로 각 사람 안에서 영혼과 육신이라는 두 개의 협력 요소가 분리되는 죽음이 다가오면 영혼도 육신도 더 이상 공로를 세울 수도 죄를 지을 수도 없다. 두 가지 요소는 서로 경합을 벌이면서 결국 둘 다 상이나 벌을 받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주님은 하느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로써 저희 마음과 육신을 인도해 주소서.”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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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마지막 축성 

중태 상태에 병자를 위한 전례가 있다. 종부성사, 삶에서 영원으로 옮아가는 거대한 여정을 위한 노자성체, 마지막 정화와 성화를 위한 성유, 성당에서 거행하는 장례미사와 시신에게 베푸는 사죄경, 구원과 부활의 표지인 십자가를 통한 그리스도교적 매장 예절.
노자성체를 영해줄 때 사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형제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노자성체를 받으십시오.” 예식을 마치면서 다음과 같이 기도한다. “…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체가 그대의 육신과 영혼에 도움이 되기를….” 성유를 몸에 바르면서 이렇게 기도한다. “이 거룩한 도유를 통하여 그리고 주님의 지극히 경건한 자비를 통하여 주님께서 그대가 시각, 청각, 미각과 말, 촉각을 통하여 지은 죄를 용서하시기를 빕니다.”
임종자를 하느님께 맡기는 동안 다음과 같이 기도한다. “하느님의 성인들이여, 오소서. 주님의 천사들이여, 마주 오소서. 이 영혼을 받아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 대전에 바치소서.” “주님, 그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하관하는 동안 다음과 같이 기도한다. “오! 주님, 이 영혼을 모든 죄의 유대에서 풀어주시어, 마지막 날 부활하여 천국에서 성인들과 선택받은 이들과 함께 영원히 살게 하소서.”
그리고 사제는 천사의 나팔소리가 잠든 모든 이를 깨울 때까지 어머니인 교회에 의해 죽은 이의 육신이 보존되고 지켜지도록 무덤을 한 번 더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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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세상을 떠난 회원들을 생각하자

교회 정신에 따라 회헌25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어떤 수도자가 세상을 떠나면 곧바로 수도회의 모든 회원에게 알려 회헌에 규정된 대로 가능한 한 빨리 세상을 떠난 회원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회헌 267조)
“수도자들 사이에 결속된 사랑은 죽음을 통해서도 전혀 풀리지 않고 오히려 더욱 돈독해진다. 그러므로 우리의 죽은 형제들을 위한 장례미사와 무덤예절은 합당하게 이루어져야 하지만, 수도자들의 관습에 따라야 하고, 죽은 이를 대신하여 바치는 기도를 통해 연옥의 고통이 가벼워지게 해야 한다. 그러나 살아 있는 각자 또한 자기 자신을 잘 돌보고 지은 죄를 보속하고 거룩한 대사를 얻도록 하여, 죽음으로 인해 연옥의 형벌과 고통을 너무 많이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회헌 268조)
묘지, 특히 우리 수도회 묘지를 참배하는 것은 거룩하고 구원에 도움을 주는 일이다. 죽은 우리 형제들의 묘지를 합당하게 보존하도록 돌보아야 한다. 우리의 고유한 무덤을 위한 장소를 구입하거나 수도회 묘지를 조성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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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욕되게 하지 마라!

육신을 욕되게 한다는 것은 욕정을 위해 육신을 사용한다는 의미다. 그렇게 하면 인간 전체가 실추된다. “지혜는 간악한 영혼 안으로 들지 않고 죄에 얽매인 육신 안에 머무르지 않는다.”(지혜 1,4) “현세적 인간은 하느님의 영에게서 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1코린 2,14)
육신과 영혼은 아주 긴밀하게 결속되어 있다. 각기 홀로 죄를 지을 수 없고 공로를 쌓을 수도 없다. 마치 질료가 형상과 결합하지 않으면 성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과 같다. 26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빵부스러기조차 먹을 수 없었던 거지요 종기투성이고 허기진 라자로 앞에… 화려한 옷을 입고 많은 종을 거느리고 탐식과 취기가 채워질 때까지 화려하게 연회를 벌이는 미식가 부자가 있다. 그러나 결말은 어떠한가? 라자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고 인색한 부자는 죽어 묻혀서 지옥에 갔다. [SP, 1954년 2-4월호, 6쪽]
천상 스승의 가르침은 언제나 심오하고 명백하다.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또 네 오른 |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마태 5,29-30)
눈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그러나 만일 그 눈이 악을 일삼는다면? 악의에 가득 찬 눈길은 영혼을 죽인다! “탐욕스러운 눈은 좋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하여라. 눈보다 더 탐욕스럽게 창조된 것이 무엇이겠느냐?”(집회 31,13)
진정으로 위대한 모든 사람은 성덕, 사도직, 학문, 가치 있는 일, 인도주의적이고 자애로운 활동과 드높은 열망을 위해 자기 육신을 ‘강하면서도 부드럽게fortiter et suaviter’ 인도하고, 본능과 욕정을 다스릴 줄 알았다. 그들은 이성과 신앙을 따라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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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탐식

탐식은 육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무질서하게 먹고 마시는 욕망을 추구하고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미각에 굴복하는] 방법은 ‘탐욕스럽게, 많이, 허겁지겁, 정신없이’27 먹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탐도를 제어하라. 그러면 모든 육욕을 쉽게 막을 수 있을 것이다.”(「준주성범」)28
“탐욕스러운 사람은 배를 채우는 데 마음이 있다.”(성 예로니모)29 그 대신 절제는 먹고 마시는 데 올바‘른척 도’를 가리킨다.
알코올 음료와 알코올 함량이 높은 음료의 ‘습관적인’ 섭취는 개인적 사회적으로 미치는 결과로 보아 반드시 단죄받아야 한다. 반면에 적당량의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건강을 위해 매우 이롭다. “그러나 어린이, 적어도 17-18세가 되지 않은 젊은이에게는 결코 권하지 말아야 한다.”(Roncati)
“알코올 중독 외에 사회와 조직을 타락시키는 다른 요인은 담배다.”(Roncati) 이유는? 니코틴, 산화탄소, 암모니아 청산칼리 등을 유발한다. 결과는? 어떤 것은 윤리적인 영향력, 어떤 것은 정신적인 결과, 어떤 것은 인체조직의 결과, 어떤 것은 지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흡연은 모든 이의 건강에 해를 끼친다.”(Guzzanti) 
다른 사항에 관해서는 이미 쓴 적이 있는데, 전반적으로 이를 확인시켜준다. 모든 것에서 자기 자신을 절제하는 사람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으로 평생 타인에게서 존경을 받는다.
“살기 위해 먹어야 하나 먹기 위해 살지는 말아야 한다.”
성령께서 말씀하신다. 술은 알맞게 마시면 영혼과 육신을 위해 도움이 된다.30
“위장과 목구멍의 악습은 인간의 생명을 단축시킬 뿐 아니라 모든 것을 앗아간다.”(키케로)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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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혀

혀로 인해 야기된 악에 관해 성 바오로는 다음과 같이 썼다. “나쁜 대화32는 좋은 관습을 망칩니다.”(1코린 15,33 참조) 얼마나 많은 선량한 사람이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타락했는가.
성 야고보는 혀에 관해 다음과 같은 거룩한 가르침을 준다.“ 말의 입에 재갈을 물려 복종하게 만들면, 그 온몸을 조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배를 보십시오. 배가 아무리 크고 또 거센 바람에 떠밀려도, 키잡이의 의도에 따라 아주 작은 키로 조종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혀도 작은 지체에 지나지 않지만 큰일을 한다고 자랑합니다. 아주 작은 불이 얼마나 큰 수풀을 태워 버리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혀도 불입니다. 또 불의의 세계입니다. 이러한 혀가 우리의 지체 가운데에 들어앉아 온몸을 더럽히고 인생행로를 불태우며, 그 자체도 지옥불로 타오르고 있습니다. 온갖 들짐승과 날짐승과 길짐승과 바다 생물이 인류의 손에 길들여질 수 있으며 또 길들여져 왔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혀는 아무도 길들일 수 없습니다. 혀는 쉴 사이 없이 움직이는 악한 것으로, 사람을 죽이는 독이 가득합니다. 우리는 이 혀로 주님이신 아버지를 찬미하기도 하고, 또 이 혀로 하느님과 비슷하게 창조된 사람들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같은 입에서 찬미와 저주가 나오는 것입니다. 나의 형제 여러분, 이래서는 안 됩니다. 같은 샘구멍에서 단물과 쓴 물이 솟아날 수 있습니까? 나의 형제 여러분, 무화과나무가 올리브 열매를 내고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낼 수 있습니까? 짠 샘도 단 물을 낼 수는 없습니다.(”야고 3,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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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저희 영혼과 육신을 모든 악에서 지켜주소서33

특히 육체의 욕정에서 나오는 죄에는 육욕, 탐욕, 태만 세 가지가 있다. 여기에 분노, 인색, 소위 신경과민을 덧붙일 수 있다.
“저마다 자기 아내를 거룩하게 또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할 줄 아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모르는 이교인들처럼 색욕으로 아내를 대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더러움 속에서 살라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거룩하게 살라고 부르셨기 때문입니다.”(1테살 4,4-5. 7; 역주: 본문에는 ‘아내’ 대신 ‘자기 육신’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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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육욕

“간음하지 말라”는 제6계명은 음란한 모든 것을 금한다. 그러므로 부도덕한 행위, 말, 눈길, 서적, 영화, 영상, 연극, 비윤리적인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 청취를 금해야 한다. 한편으로 이와 같은 계명은 ‘육신을 거룩하게’ 지키라 명하고, 하느님이 활동하시고, 당신 현존과 은총을 지니고 거주하시는 성전으로서 자신과 다른 사람을 최대한 존중하라고 명한다.
악에 관한 것과 악에 | 다가서게 만드는 것을 미워할 정도로 정결에 대한 참된 존중이 필요하다. 성 바오로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악한 것은 무엇이든 멀리하십시오.”[1테살 5,22] [SP, 1954년 2-3월호, 7쪽]
지혜, 사랑, 현명으로 이루어진 정결에 대한 진정한 교육이 필요하다.
서원자는 자기 수도회의 회헌과 자신의 서원을 지키기 위한 수단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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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순결 교육

대단히 민감한 과제다. 그러나 순결한 이들은 주님과 마리아와 성 바오로의 사랑을 받는 아름다운 무리를 교회에 선사하는 은총을 지니게 될 것이다. 성 바오로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아지기를 바랍니다.”[1코린 7,7 참조]
마음은 사랑하기 위해 창조되었다. 곧 주님과 마리아, 거룩한 것을 사랑하는 사람은 진흙탕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를 위해 뛰어난 수단은 다음과 같다. 열심하며 잦은 성사생활, 영적 지도, 마리아에 대한 신심, 관대한 의무 수행, 사말에 대한 묵상 등이다.
1950년 11월 1일 아침, 30여 명의 젊은 대학생과 고등학생이 예수께 사적 일시적인 서원양식으로 자신을 봉헌했다. 이러한 봉헌행위는 소죄를 보속하는 행위로 고해신부의 권고에 따라 행했고, 새로운 의무를 부과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덕을 닦는다는 큰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그와 같은 서원을 하기 전에 서원을 지킬 윤리적 확신이 있어야 한다. 서원을 권한 사람이 서원을 풀 수 있다는 조건을 붙여야 한다.
우리 지원자들이 행한 서원행위는 서원이 지속되는 동안 젊은이들이 수도회에 바치는 선물임을 깨달아야 한다.
지원자는 우리 양성소에서 책임자의 지도아래 순명서원과 함께 아마도 청빈서원까지 덧붙일 수도 있을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일시적인 사적 서원의 의미는 늘 유지된다.
이러한 교육은 적절한 시기에 젊은이를 섬세하게 깨우쳐주고, 보호해 주며 위험한 독서, 연극, 동료,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 등에 빠지지 않도록 선도하며 (특히 방학 동안) 열렬한 신심을 지니도록 용기를 북돋아줌으로써 완성된다.

23

24. 예수님과 마리아께 대한 사랑

이러한 사랑은 감각적인 애정에서 지켜주고 많은 유혹을 물리치게 해준다.
인간의 마음은 사랑하기 위해 창조되었다. 수도자 신분과 사제 신분은 감성적인 본성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감수성을 넓혀주고 승화시켜주며 초자연화시켜준다.
마음을 다하여 예수님을 사랑해야 하고 마리아를 어머니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러한 사랑은 영혼에 천상의 아름다움과 기쁨이 스며들게 하고, 따라서 현세에 이끌리는 감정을 둔화시킨다.
이러한 애정을 지니려면 예수님과 마리아께 대한 사랑이 열렬하고 관대하며 뛰어나야 한다. 아름다움과 어지심과 권능을 충만히 갖추신 분, 창조의 아름다움과 놀라운 은총을 지니신 마리아 앞에서 피조물은 자신의 매력을 상실한다. 예수님과 마리아께서 우리 마음을 한층 부드럽고 강하게 끌어당기실 것이다. 더구나 그분들께 봉헌하는 사람을 마치 눈동자처럼 보호해 주실 것이다.
아가서는 영혼이 영적 신랑에게 전적으로 자신을 열어 보이면서 형언할 수 없는 소통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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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태만

태만은 또 다른 주요 악습이지만, 이에 대해서는 이미 노동에 대해 언급하면서 다루었다.
그렇지만 색욕, 탐식, 태만은 영에 대한 육의 돌풍이라는 점을 덧붙일 필요가 있다. 이러한 것들 때문에 인간은 비이성적이고 부자유스럽게 된다. 빠르든 늦든 그와 같은 악습이 뒤따를 것이다.
욕정이 처음에는 부탁하고, 그 다음에는 강요한다. 그 다음은 압박하며 조여온다. 비록 불만스럽고 후회하게 되더라도 계속 욕정을 따라 행동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부당한 짓을 허용하여 의지를 약화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욕정을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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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사랑할 때

여기서 회헌과 성경구절을 각각 두 차례씩 상기하는 것이 좋겠다.
회헌 130조: “모든 수도자는 청빈에 따라 어떠한 조건에서든 그리고 어떠한 직무나 맡은 책무에서든 여분의 것을 멀리하고 공동 생활의 멍에를 기꺼이 져야 한다. 그러나 만일 누군가에게 특별한 무엇이 필요하다면 겸손과 신뢰로 자기 장상에게 청해야 한다.”
회헌 131조: “모두 검소한 식사에 만족해야 하고, 그 누구도 무모하게 건강을 해치며 고통을 겪지 않도록 장상은 회원 각자의 노동과 체력을 배려할 의무가 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날 먹을 양식조차 없는데, 여러분 가운데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이 녹이고 배불리 먹으시오.’ 하고 말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야고 2,15-16)
성 바오로는 필리피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어떠한 처지에서도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비천하게 살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넉넉하거나 모자라거나 그 어떠한 경우에도 잘 지내는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필리 4,11-12)
다른 대륙으로 가게 될 때 거의 언제나 시차와 음식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이탈리아에서 유럽 밖의 | 대륙으로 건너갈 때 그리고 이와 반대의 경우에 처하게 될 때 그러한 일이 일어난다. 주님이 이런 희생을 요구하신다는 것을 나는 자주, 강하게 느꼈다. 그리고 여러 곳으로 옮겨 다니시던 예수님과 성 바오로의 모습을 떠올렸다. 적어도 주님께 이러한 작은 고통을 바칠 줄 모른다면 수도원에 필요한 은총을 어떻게 얻을 수 있겠는가? [SP, 1954년 2-3월호,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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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의지의 역할

우리 의지는 최고의 기능, 다른 모든 기능의 여왕이다. 내적 외적 감각, 권력, 욕정, 그 모든 기능의 여왕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의지는 자유롭기 때문에 자신의 고유한 행위eliciti34와 다른 권위를 행사하는(책임행위imperati) 자유, 공로 또는 잘못을 안겨준다. 
의지를 다스린다는 것은 인간 전체를 다스리는 것이므로 육신까지 다스린다는 의미다.
의지가 강하면 잘 다스리게 되듯이, 한편으로는 명령하여 힘과 감각을 순종하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언제나 하느님 뜻에 순종할 정도로 의지 자체가 온순하게 된다. 곧 ‘의미인 표징’이든, ‘동의인 의지든’35 하느님 뜻에 대한 이중의 역할을 한다.
이 둘이 서로 어려움에 처하는 것은 자주 감각이 대립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확고함, 빈틈없음, 하느님 은총이 필요하다. 우선 큰 빛, 설득력, 신앙이 필요하다.
그뿐 아니라 우리 의지는 자신의 지병持病 때문에 하느님 뜻에 대한 일종의 자율이나 독립을 열망한다. 하느님 뜻은 우리의 희생 없이 우리를 성화시킬 수 없다. 그러나 자주 힘든 노력 앞에서 물러서고 만다.
이는 원죄의 결과다. 의지는 하느님께 반기를 들고 감각은 의지에 반역하게 되었다. 의지 자체가 불손하게 되어 온순함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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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의지를 교육할 것

구원이란 하느님의 첫 계획에 따라 본성과 은총의 질서 안에서 인간을 재창조하는 것이다. 건축가이신 하느님의 아드님이 이루셔야 하는 일이었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다.”[요한 1,3]
의지의 구원은 의지가 인간의 여왕 자리를 되찾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선하신 하느님이 천사를 자유로운 존재로 창조하신 것처럼 인간을 자유로운 존재로 창조하셨다. 사물을 피상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하느님이 창조의 주체로서 자유로운 존재를 창조하여 위험을 무릅썼을 때 모든 것이 악으로 치닫게 된 것처럼 보이겠지만, 하느님의 지혜와 권능과 사랑은 전혀 예기치 못한 설명을 제시한다!
의지가 온순하면서도 강하려면 장애를 극복하고 긍정적인 수단을 사용해야 한다.
‘외적 장애’는 ‘인간의 존중을 받으려는 것’이다. 인간의 평판 때문에 인간은 선을 행하거나 악을 저지르게 된다. 곧 스스로 노예가 된다. ‘세속을 따르는 악한 표양’은 사람들 위에 힘을 행사하여 의지 자체가 악으로 기울게 한다. 악마는 우리 원조와 맞서 자기네 권한을 행사했고, 이제는 선한 의지의 사람들과 맞서 자기네 권한을 행사한다.
‘내적 장애’는 ‘경솔함’이다. 이 때문에 기분에 따라 행동한다.
‘무관심’과 ‘게으름’은 깊은 확신의 부족으로 인해 야기된다.
‘긍정적인 수단’은 ‘지성’과 ‘의지’와 ‘은총’의 조화로운 일치로 요약할 수 있다.
지성과 깊은 신앙은 목적과 수단을 분명히 알고 있다. “먼저 알지 못하면 아무것도 원할 수 없다.”36의지를 효과적으로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깊은 확신, 넓은 교양, 신앙정신이 필요하다. 이는 의지가 결단, 확고함, 항구함을 자아내면서 모든 ‘원의’와 한없는 욕망을 거슬러 행동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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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은총

예수 그리스도는 은총을 획득하셨다.
우리는 기도, 잃어버린 선물들을 특히 성체성사를 통해 ‘어떤 식으로든’ 다시 획득할 수 있다. 기도하는 사람은 의지를 위한 힘과 지성을 위한 빛과 욕망과 육욕을 완화하는 상존은총의 선물을 받는다. 특히 영성체, 곧 선택받은 이들의 양식, 동정자들의 포도주, 어려운 삶의 여정을 위한 노자성체는 욕정을 약화시키고 좋은 경향을 강화시킨다. “구원의 희생되시어 천국의 문을 여시는 주… 위로와 힘을 주소서.”37
고통의 신비를 묵상하고, ‘십자가의 길’ 기도를 자주 바쳐야 한다.
기도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예수 그리스도는 빛이요 귀감일뿐 아니라 우리의 협력자요 협조자이시기도 하다. “우리는 하느님의 협력자입니다.”(1코린 3,9)38 “주님은 나의 힘, 나의 굳셈이”시다.39 우리는 하느님을 힘입어 하느님께 복종할 것이고, 의지는 본능과 감각을 굴복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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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사랑스런 육신

육신을 착한 아들 또는 여행의 훌륭한 동반자로 여겨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육신에게 음식을 주어야 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깨어 지켜야 한다! 매 순간 사람을 진흙탕으로 몰아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다음과 같이 썼다. “많은 지역에서 성경, 성인들의 표양과 자연법칙은 아침시간을 크게 중요시하라고 가르친다. 아침은 하루 중 가장 효율적이며 최상의 시간이기 때문에… 저녁에 일찍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틀림없이 그 시간은 가장 상쾌하고 자유롭고 편안한 시간이다.”(「신애론Filotea」; 역주: 「하느님을 찾은 이들에게」라는 표제로 2006년, 바오로딸 출판사에서 출간됨)
휴식에 관해 몇 시간 잠을 자야 하는지 규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정확한 판단을 위해서는 많은 | 요소를 감안해야 할 것이다. [SP, 1954년 2-3월호, 9쪽] 그리고 획일적인 규범을 정할 수 없을 것이다. 젊은이는 노인보다 더 자야 한다. 적절한 휴식은 ‘피로의 독’(유해성분)을 없애는 데 충분하다. 그리고 새로운 산소가 근육과 신체조직 전체에 공급되어 다시 활발하게 일하게 된다. 어른은 최소한 6시간에서 최대한 8시간까지 쉬어야 할 것이다.
육신이 규칙적인 휴식을 취해 인간 전체에 도움을 주는 것은 가장 좋은 일이다.
음식에 관해 살펴보자. “각 사람의 일일 영양 섭취량은 그에게 필요한 에너지의 양 만큼 공급해야 한다. 그리고 이 양은 알부민, 당분 그리고 지방이 산소활동으로 분해되면서 생산하는 칼로리에 의해 측정된다. 그리고 분명히 밝히면, 칼로리 지수의 실제 단위는 1킬로그램의 물의 온도를 섭씨 영도에서 1도로 올리기 위해 필요한 열량이다.”
일반적으로 성장기에 있는 젊은이를 위해서는 많은 양의 음식이 필요하고, 어른을 위해서는 이보다 적게, 노인을 위해서는 더 적은 양의 음식이 필요하다. 언제나 나이, 하는 일의 종류, 소화 능력 등을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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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복음과 위생은 조화를 이룬다

시장[배고픔]이 최고의 반찬이다. 일했을 때, 공부했을 때, 걸었을 때, 충분한 운동을 하고 난 후의 식사는 식욕을 돋군다.
중독성 있는 향료와 자극성이 첨가되거나 지방이 너무 많이 함유된 조미료는 소화하기 어렵다.
다음과 같은 속담이 있다. “칼보다 식탐이 사람을 더 쉽게 죽인다.”
인간답게, 그리스도인답게, 수도자답게 먹어야 한다. 미각에 좌우되지 말고 하느님을 섬기며 사도직을 하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음식을 먹어야 한다.
음식의 양은 성 이냐시오에 따른 영신수련 과정에서 정한 일반 규범처럼 필요하고, 정해진 양을 섭취해야 하며, 소화할 수 있는 만큼 먹어야 한다.
음식물이 침과 잘 섞여 소화되도록 꼭꼭 씹어야 한다. 충분히 씹지 않은 채 탐욕스럽게 삼키는 것은 소화불량과 여러 질병의 원인이 된다.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바라는 사람은 부족한 듯할 때 식탁에 서 일어서야 한다. 결코 배불리 먹어서는 안 된다!”(Guzzanti) 
일을 지혜롭게 배분하며 쉬는 것은 건강과 일의 최대 효율을 위해 도움이 된다.
수도원, 공연장소, 성당, 여행, 주방에 관한 위생규정이 있어야 한다.
음식의 간을 잘 맞추고 잘 익히고 조미료를 사용해 요리한 영양가 있는 음식물은 건강을 위해 큰 도움이 된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위대한 성인이요, 훌륭한 인간성을 지닌 분이셨다. “차려주는 음식을 먹어라.”[루카 10,8]라는 성경구절을 주석하면서, 음식투정을 하지 않고 주방에서 준비해 주는 대로 먹는 것이 자진해서 어떤 극기를 하는 것보다 더 완전한 일이라고 말했다. 전자의 경우는 선택조차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훨씬 완전한 극기다.
식사와 식사 사이에 주전부리를 하는 것은 건강에 좋지 않고, 덕스러운 일도 아니다. 간식도 그 양과 질과 시간을 미리 정해야 한다.
음식물이 소화되는 동안에는 목욕을 하지 말아야 하고, 생명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냉탕에서 목욕을 하지 말아야 한다.
식후에 하는 공부와 과격한 운동은 해롭기 때문에 식사 후에는 차분히 지내야 한다. 위생상, 교육상, 덕성상 깨끗한 손으로 먹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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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극기의 법칙

극기는 ‘보편적인 법칙이다.’ 이루고자 하는 모든 선은 적합하지 않은 것을 거부하거나 필요한 노력을 기울이라고 요구한다.
그러므로 영적 선행, 기도, 공부, 사도직, 수도생활의 규칙준수 등을 지키기 위해 극기해야 한다. 레크리에이션, 청소, 가족과 사회 안에서 사는 것, 거래, 규칙적인 영양섭취, 건강유지, 사람들의 신뢰와 존중을 받는 것 등도 극기를 요구하는 일이다.
합리적으로 극기할 줄 아는 사람은 많은 부를 쌓을 것이다. 예를 들면 면학, 노동에 전념하는 젊은이와 게으르며 일을 거부하는 젊은이를 비교해보라. 어떠한 삶을 준비해야 하겠는가?
훌륭한 그리스도인과 훌륭한 수도자는 자기네 신분이 요구하는 의무를 지킨다. 그리고 자기 임무에 불성실한 수도자와 악습에 물든 그리스도인을 비교해보라. 어떤 영원을 준비하고 있는가?
고통을 피하려 하면 더 많은 고통을 겪게 되고, 적당히 극기할줄 아는 사람은 기쁨을 더 누릴 것이다. “자기 목숨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이성적으로)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요한 12,25 참조] 예를 들면 먹고 마시는 것을 통제할 줄 모르는 사람은 많은 병치레를 할 것이고, 그러는 사이에 생명을 단축시키는 것이다.
극기가‘ 보편적’인 것은 온 존재, 곧 지성, 마음, 의지, 상상, 시각, 촉각, 미각, 기억, 온갖 욕정으로 확산되기 때문이다.
지혜롭게 극기하도록 교육하는 것은 지원자에게 무한한 선을 가져다준다. 주의를 기울여 숙제를 내주고 수업을 하며, 수덕의 길, 좋은 습관의 양성, 교정敎正, 질서 있는 교육, 현명한 훈련, 수많은 욕구에 대한 희생 등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사랑을 베푸는 학교 선생, 고해신부, 영적 지도자, 보조자가 있는 곳이 여기 말고 또 어디에 있겠는가.
[SP, 1954년 2-3월호, 10쪽] 교육자이신 천상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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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성공의 비결

여러 분야에서 진정 위대한 인물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세상의 교육자, 저술가, 사도들, 과학자들, 군 장성들, 교회학자들, 모든 분야의 성인들, 탐험가들, 노동자들…. 그들 안에는 천부적인 재능과 초자연적인 은총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관대하고 항구한 노력이 있었다.
인간은 시간과 장소의 한계를 극복할 줄 알 때 숭고하게 된다.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 성실할 것이고, 작은 일에 불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성실할 것이다.”[마태 25,21 참조]
순종할 줄 아는 사람은 사람들이 순종하게 할 것이요,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사람들이 순종하게 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받을 것이요,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사랑받지 못할 것이다.
훌륭한 제자는 훌륭한 스승이 될 것이요, 나쁜 제자는 나쁜 스승이 될 것이다.
기꺼이 뒤로 물러설 줄 아는 사람은 사회에 선을 베풀 것이요, 물러서기를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은 여러 관계에서 많은 위험을 초래할 것이다.
경건하고, 신심이 두텁고, 질서 있고, 학식 있는 사람은 사도로서, [선의] 씨를 뿌리며 경건하고 신심이 두텁고 질서 있고 학식있는 사도를 양성할 것이다.
그 대신 경건하지 않고, 신심이 두텁지 않고, 무질서하고, 사도가 아니라면 그 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겨우겨우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교회에 사제와 수도자를 배출하기 어려울 것이다.
훌륭한 교육자는 올바르고 초자연적인 사랑 안에서 양성된다.
결코 호감이나 반감에 좌우되지 말아야 한다.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영원을 위해 지상에서 영에 합당치 않은 것을 부정하고, 영원한 기쁨을 준비하기 위해 고생과 극기를 하는 것이야말로 육신을 위한 참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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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훌륭한 싸움40

극기의 목적은 긍정적인 것, 곧 올바른 방향에서 협력하는 것이다.
극기라는 말은 거의 ‘죽는 것mortuum facere’이라는 의미로 들린다. 말하자면 의지를 왕으로 군림시켜41 눈, 기억, 혀, 상상을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마치 시체처럼 저항하지 않도록 이끌어갈 수 있어야 한다.
올바르게 극기한다면 우리는 구원, 완성, 사도직이라는 가장 좋은 세 가지 선을 지니게 될 것이다.
극기를 지칭하는 여러 가지 명칭은 극기의 개념, 필요성, 목적을 명확하게 밝혀준다.
성경에는 ‘버리다’(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부정하다’(자신을 버리고), ‘극기’(육적인 욕망을 멀리하십시오), ‘죽음’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묻힘’(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벗어버림’(옛 인간을 벗어버리고), ‘싸움’(훌륭한 싸움) 등 여러 가지 명칭을 택한다.
오늘날은 ‘개혁, 자기 지배, 이탈, 의지를 교육할 것, 하느님을 덧입을 것, 그리스도 안에 살 것, 하느님을 향할 것, 노력, 희생, 깨어있음’과 같은 표현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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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사도직

사도직은 우리 자신과 사람을 위한 우리의 적극적인 보속이다.
무위도식, 게으름, 사도직을 나태하게 하는 경향은 태만이다.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와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그 대신 의지의 병이라고 할 수 있다. 태만한 사람은 요구하는 온갖 고생과 힘든 수고를 회피하려 한다. 이러한 상태에 이른 사람에게는 재앙이 따를 것이다! 경우에 따라 게으름, 열의 없음, 미지근함, 무관심이 여기에 해당된다. “보게, 내가 삼 년째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네. 그러니 이것을 잘라버리게. 땅만 버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루카 13,7)“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마태 3,10; 7,19)
노동은 많은 악습과 무익하거나 나쁜 생각에서 지켜준다. 그 대신 게으름은 그러한 것들로 가득 찬 소굴이 된다. 게으른 사람에 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게으른 사람의 밭과 지각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갔는데
보아라, 온통 엉겅퀴가 우거지고
전부 쐐기풀이 뒤덮었으며
돌담이 무너져 있었다.
나는 그것을 바라보며 깊이 생각하고
그것을 보며 교훈을 얻었다.
‘조금만 더 자자. 조금만 더 눈을 붙이자.
손을 놓고 조금만 더 누워 있자!’ 하면
가난이 부랑자처럼,
빈곤이 무장한 군사처럼 너에게 들이닥친다.”(잠언 24,3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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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내면의 교육학

그리스도교 교육학은 육체의 건강, 기질, 성격, 불건전한 경향 등 모든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리스도교 교육학은 겸손, 하느님께 대한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이라는 세 가지 덕에 기초를 두고 있다. 많은 학생을 교육하는 교사는 개인지도를 하는 교사보다 효과가 훨씬 적다. 평범한 약이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전문화는 특히 사춘기에 필요하며 민감한 주제다.
그러므로 영적 지도를 많이 받으라고 권한다.
더 나아가 ‘인계引繼’가 필요하다. 우리 회원이 한 부서에서 다른 부서로, 한 분원에서 다른 분원으로 이동하고, 한 양성기에서 윗 | 단계로 올라가거나(예를 들면 지원기에서 수련기로), 어떤 직분에서 다른 직분으로 옮겨갈 때 정신, 면학, 마음자세, 사도직, 청빈 등 여러 가지 사항을 아우르는 충실하고 신중한 보고를 해야 한다. 그래서 각 사람이 통일되고 지속적인 양성을 받고 도움을 받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것은 언제나 아버지다운 마음으로 해야 한다. 이러한 인계에는 다른 요소와 함께 자발성과 지적 능력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SP, 1954년 2-3월호, 11쪽]
일부 국가에서는 개인의 ‘건강 노트’42를 작성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수도회 입회허락을 위해 학생이나 생활 참관자에게 간략한 소개서를 (제출하도록) 요청한다.
이 모든 것은 사랑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각자에게 최선이 되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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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인내

“주님의 말씀이다. 그러나 이제라도 너희는 단식하고 울고 슬퍼하면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주 너희 하느님에게 돌아오너라. 그는 너그럽고 자비로운 이, 분노에 더디고 자애가 큰 이, 재앙을 내리다가도 후회하는 이다.”(요엘 2,12-13)
[인내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위해 육체적 윤리적 고통을 평화롭게 견디게 하는 덕이다.
우리 모두가 탐욕, 이득이나 허영, 반란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답게 인내를 실천한다면 그 인내는 성인이 되어 연옥을 피할 수 있는 소지가 충분하다.
고통은 하나의 교육자요, 공로의 근원이며 강인하게 만드는 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완성하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교회 안에서 사람,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의 고난을 겪어야 한다.
인간적으로 말해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고통을 받아들이면서 상황을 악화시키지 말아야 한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마태 6,34]
과거에 대해서는 인내한 공로와 선행만을 기억해야 한다. 중상 모략, 허물, 불쾌함을 다시 생각하면 우리를 괴롭힐 뿐이다. 미래는? 고통이 어떠한 형태로 다가올지 우리는 모른다. 다만 아직 고통이 다가오지 않고 있다는 것만을 알고 있다. 만일 그러한 고통이 다가올 때에는 은총도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인내에는 여러 단계가 있다. 고통에 찌든 사람과 고통을 감내한 사람과는 큰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십자가의 성 요한은 영육 간에 많은 고통을 겪었다. 중상모략을 당했고, 박해를 받았으며, 감옥과 같은 곳에 감금당했고, 굶주림에 허덕였고, 추위에 떨었으며, 그 결과 질병에 시달렸다. 예수님이 물으셨다. “요한아, 어떤 상賞을 바라느냐?” 그러자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을 위해 좀 더 고통받고 멸시당하기를 바랍니다.”
성 바오로는 천국에서 받을 상에 비하면 받아야 할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나는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명예와 돈과 친구도 잃었습니다. 그러나 멸시를 통해 나는 모든 것, 하느님을 찾았습니다.” 이는 어느 개종자가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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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영혼과 육신의 건강43

영혼이 성화되는 만큼 육신도 성화된다. 성덕은 성사, 준성사, 기도를 통해 성장한다.
신앙, 묵상, 양심성찰, 하느님을 향한 승화, 경건한 감정, 드높은 열망을 통해 성장한다.
대신덕, 사추덕, 수덕, 윤리덕을 통해 성장한다.
사도직의 수고를 통해 성장한다.
극기, 보속, 동정성을 통해 성장한다.
의인들은 얼마나 빛나는가! 예언자, 사도, 순교자, 증거자, 동정자, 참회자, 수도자, 참된 그리스도인은 “해처럼 빛날 것이다.” [마태 13,43]
육신이 영에 순종할 때마다 더욱 영광스럽게 된다.“ 우리의 몸이 속량되기를 기다리며 속으로 탄식하고 있습니다.” (로마 8,23)
여기에 육신에 대한 참 사랑이 있다.“ 악을 멀리하고 선을 지지하라.”44 그러나 배를 하느님으로, 안락이나 육욕을 만족으로 생각하여, 자기 육신을 위해 영혼을 바친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하신 대로 순교자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않았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마태 10,28] 최후심판이 이를 드러낼 것이다.
“나는 내 몸을 단련하여 복종시킵니다.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나서, 나 자신이 실격자가 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1코린 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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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건강한 육신에 건강한 정신 45

건강을 소홀히 하지 않고 합당하게 돌봄으로써 건강을 보존하는 것은 의무다. “몸의 건강보다 좋은 재산은 없고, 마음의 기쁨보다 큰 즐거움은 없다.”(집회 30,16)고 성령께서 말씀하신다. 건강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큰 선물임이 분명하다. 우리에게는 지혜롭게 건강을 보존하고 우리의 성화, 면학, 사도직, 영혼에 도움이 되게 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성 바오로는 우리에게 분명한 ‘원칙’을 주셨다. “여러분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을 모릅니까?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임을 모릅니까?” [1코린 6,15.19] 바오로가족 안에서 다는 아니지만 어떤 레크리에이션은 사도
직을 해야 하는 활동량에 준해 축소시킬 수 있다. 예를 들면 기계앞에 머무는 것, 선교하는 것 등.
어떻든 모든 운동과 레크리에이션은 단지 다리와 팔을 탄력 있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특히 폐, 심장, 혈액순환, 소화기, 호흡기 등 인체 조직과 기능을 발전시키는 것이라야 한다.
온몸을 청결하게 해야 하므로 목욕을 해야 하고 특히 손, 목,  귀, 눈, 발, 손톱, 치아 등을 잘 닦아야 한다. [SP, 1954년 2-3월호, 12쪽]
어디든 통풍과 채광이 잘 되고, 물이 충분해야 한다.
침대는 너무 푹신해도 안 되고 너무 더워도 안 된다.
건강에 좋은 자세를 취해야 하고 성당, 공부방, 식탁, 침실, 어디서든 좋은 습관을 들여야 한다.
올바른 신체단련은 건강을 오래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어 의지가 더 유연하고 굳건하며 온순히 따르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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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그대 자신이 의사가 되시오

그대 자신을 지키도록 하라! 그 어떤 의사의 지혜도 자기 몸에 대한 본인의 경험보다 뛰어나지 않다.
그대 자신을 보살펴라! 그대를 올바로 살게 하는 스승인 ‘그대’의 역사에서 배우지 못한다면 만족할 만한 그 어떠한 영적 지도자도 찾지 못할 것이다. 
그대의 영혼을 위한 양심성찰과 육신에 대한 고찰은 언제나 필요하다.
노동, 영양섭취, 휴식 등에서 그대 자신을 다스려야 할 것이다.
시각, 청각, 혀, 관계, 독서, 우정 등을 돌보는 일에서 그대 자신을 다스려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을 검토하고, 올바르게 판단하고, 강인하고 현명하게 실천에 옮겨야 한다. 예를 들면 어떤 음식이 건강을 해친다면 미각이 식욕을 돋구더라도 먹지 말아야 한다.
“약으로 사는 사람은 비참하게 산다.”46 의사와 약을 과신하는 사람은 결코 만족하지 못할 것이고, 온갖 작은 질병 때문에도 근심하게 되어 결국 비참한 삶에 이르고 만다. 영적인 것에 대해서도, 곧 소심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도, ‘100세의 어린이’47가 되지 않기 위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정신이 젊기 위해서는 강한 확신이 필요하다.
질병에서 쉽게 치유되고 고통을 잘 견디기 위해서는 의지가 큰 역할을 한다. 의기소침, 우유부단, 무기력, 조로早老, 비관주의는 이미 그 자체가 병이다.
하느님께 바탕을 둔 생각과 활동을 통해 건전한 낙관주의,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 협력, 은총과 자연적 초자연적 역량 등이 항상 삶에 동반되어야 한다.
의욕이 가득 찬 존재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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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의사醫師의 선택

영혼과 육신은 상호 의존관계에 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심리적 육체적으로 구성된’48 자기 전체를 생각해야 한다.
전문지식과 건전한 윤리원칙을 가진 의사, 가능하면 가족을 잘 아는 의사(소위 ‘가족 주치의’), 지역환경에 대한 지식, 수도회에 대한 지식, 예를 들면 생활조건과 노동조건과 정신환경에 대한 지식을 갖춘 의사를 선택해야 한다. 만일 환자의 체질적 취약점, 이상증세, 유전적 특이체질,49 신체적 성장(18세까지), 지향하는 삶의 종류를 알고, 눈에 보이는 건강상태와 실제상태를 구별하면서 기질, 성격, 반응성 등을 계속 주시한다면 훨씬 쉽게 예방하고 이끌고 돌볼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오늘날 아주 많은 의사는 영혼을 치료하지 않고는 육신을 치료할 수 없으며, 육신을 치료하지 않고는 영혼을 치료할 수 없다는 원리를 소홀히 하고 있다. 모든 증세는 육체적 심리적 징후가 동시에 나타난다. 자주 의사의 인간성과 종교성이 그가 지닌 지식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다.” 50
경솔하게 고해신부를 바꾸기 때문에 발생하는 불상사처럼, 너무 자주 의사를 바꾸는 일은 재난을 초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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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지혜와 나이와 은총이 더해 갔다 51

식이요법, 예방, 약, 수술 등 새로운 건강수단과 치료방법을 발견하도록 연구가들의 지성을 비추어주심에 대해 ‘과학의 주님’께 감사드려야 한다는 감수성을 발휘하자. 이러한 것은 인류를 위해 기여한 칭송할 만한 일이다. 통계에 의하면 이탈리아에서 인간의 평균수명이 34세에서 47세로 높아졌고52, 특히 어린이의 사망률이 상당히 감소되었다고 한다.
의사의 제안과 처방을 잘 따르는 것은 소중한 보화인 건강을 잘 돌보는 좋은 관리자의 일이다. 이 때문에 성바오로딸수도회는 알바노Albano주에 ‘사도의 모후Regina Apostolorum’ 병원 설립을 준비했고, 스승예수의제자수녀회와 성바오로수도회는 쿠네오Cuneo 주 산프레Sanfré에 진료소를 설립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자연적인 것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와 은총’이 더해가야 한다. 만일 매 순간이 소중하다면, 우리 삶이 몇 달이나 몇 년 더 연장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 가? 우리의 온 생애는 “하늘나라에 공로와 영광을 쌓고, 하느님을 알고 사랑하며 봉사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다.”
“주님, 저희를 육신의 모든 역경에서 보호해 주시고 영혼이 온갖 나쁜 생각에서 정화되도록 내적 외적으로 지켜주소서.”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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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기 도

“저희를 경이롭게 창조하시고 저희의 영혼과 육신을 더욱 경이롭게 구원하신 주님, 당신 성령의 빛과 힘과 은총을 저희에게 부어주시어 저희의 온 존재가 성화되고, 영광스러운 부활에 이르게 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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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a 앞에 나오는 “인간 양성” 주제의 ‘들어가면서’ 각주 2 참조.

1 이 제목은 라틴어역 성경에 따르면 “여러분의 몸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고 전하십시오glorificate et portate Deum in corpore vestro.”라는 1코린 6,20에 나오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에서 따온 것이다. 대다수의 사본은 ‘glorificate’ 라는 명령법 형태만 택하고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첨가한 ‘et portate’는 몇 몇 사본에만 나오는데, 알베리오네 신부는 이 문장을 중요하게 여겼다.

2 성무일도서의 첫 시간경 기도문

3 N. Pende에 대해서는 앞에서 다룬 “인간 양성” 주제의 ‘들어가면서’ 각주 2a 참조.

4 로마 7,25 참조.

5 P. Riccardo Lombardi(1908-1979), 예수회 사제로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운동Movimento per un mondo migliore”의 주창자요 전쟁 후 가장 뛰어난 설교가다.

6 ‘animalis homo’(1코린 2,14; 역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성경은 ‘현세적 인간’이라고 번역했으나, 라틴어 본문을 직역하면 ‘동물적 인간’이다.)

7 ‘angelicus juvenis Aloisius’; ‘Doctor angelicus’: 전자는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후자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8 성 아우구스티노: “주 예수님, 제가 저 자신을 알고 당신을 알게 하소서 Domine Jesu, noverim me, noverim te.”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과 추종을 청하기 위한 기도문으로, 알베리오네 신부는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모습을 갖추실 때까지」 7번에 인용했다. 

9 다시 말해, 생장하는 생명을 활용하는 것이다 

10 “Simul condens naturam et infundens gratiam.”(‘De Civ. Dei’, XII; 성 토마스가, 「신학대전」, I, qu. 12에서 다시 취함) 

11 “inquietum est“ 우리의 마음은 당신의 품에 쉴 때까지] 편안하지 않습니다.”(성아우구스티노, 「고백록」, I, 1)

12 앞선 출판본에는 이렇게 되어 있지만 아마도 기록이 잘못된 것 같다. 저자는 ‘기쁨을 주는 부ricchezza’라고 표현하려 했을 것이다. 

13 재의 수요일 전례 양식. 라틴어 문구: “Memento, homo, quia pulvis es et in pulverem reverteris.”

 

14 “Infelix ego homo.”(로마 7,24)“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

15 참조: F. Petrarca, “veggio ‘l meglio et al peggior m’appiglio. ” U. Foscolo가 재인용함. “나 자신의 노예, 다른 이들의 노예, 운명의 노예인 나는 / 가장 좋은 것을 알지만 가장 나쁜 것을 택한다.” (Sonetti의 14행시에서 발췌)

16 더 정확하게는: ‘Fuorché nel peccato….’ 

17 “Pange, lingua, gloriosi corporis mysterium, sanguinisque pretiosi….”‘(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 찬미가에서)

18 새 미사경본에 나오는 위령 감사송1 을 택했다.

19 부속가 ‘분노의 날Dies iræ’에서 인용한 부분. “Mors stupebit, et natura, cum resurget creatura, judicanti responsura.”

20 ‘보조적인accessorio’ 의미에서.

21 adolescere.

22 앞선 출판본은 성경인용 구절 표기가 에페 3,20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확실하게 오류로서 잘못 표기된 것이다.

23 “actiones sunt suppositorum”: 스콜라 철학의 공리.

24 원문에는: “Dominus autem dirigat corda et corpora nostra in caritate Dei, et patientia Christi.”(전례 본기도)

25 1949년판 성바오로수도회 회헌.

26 ‘질료materia… 형상forma’은 각각 ‘물질적 요소’(물, 기름, 빵…)와 ‘전례 형태’를 가리킨다.

27 원문에는: “præpropere, laute, nimis ardenter, studiose.” 

28 원문에는: “Frena gulam et facilius omnes alias carnis inclinationes frenaberis.”

29 원문에는: “Cor habet in ventre gulosus.”

30 집회 31,27 참조: “술은 알맞게 마시면 사람들에게 생기를 준다.” 

31 원문에는: “Vitium ventris et gutturis non solum minuit ætatem hominibus, sed etiam aufert.” 성 아우구스티노에게서 인용한 개념이요 표현이다.

32 CEI에서는 ‘대화’를 ‘동료’로 번역했다.

33 “A cunctis nos anima et corporis defende periculis.”(전례 본기도)

34 ‘Eliciti’: ‘고유한 본성에 따른 하나의 능력에서 나온 산물’을 말하기 위한 스콜라 철학적 표현. 

35 ‘Volontà di segno…, di beneplacito’: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에게서 길어온 표현으로(「테오티모Il Teotimo」 또는 「하느님 사랑에 대한 논고Trattato dell’amor di Dio」, l. VIII), 하느님의 뜻에 순응하는 두 가지 측면을 가리킨다. ‘표징인 의지’, 또는 ‘의미인 의지’는 계명이나 충고를 통해 분명하게 드러난다. ‘동의인 의지’는 하느님이 원하셨거나 허용하신 삶의 상황이나 사건에 의해 드러난다.

36 원문에는: “Nihil volitum quin præcognitum.” 이는 스콜라 철학의 공리다.

37 성체성가: “O salutaris Hostia, quæ cæli pandis ostium… da robur, fer auxilium.”

38 원문에는 “Cooperatores enim Dei sumus.”

39 원문에는 “Dominus fortitudo mea.”(이사 12,2)

40 “Bonum certamen.”(참조: 1티모 6,12; 2티모 4,7)

41 생략된 문장이다.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야 더 정확할 것 같다. “곧 ‘독재자 같은 악습을 죽이고’ 여왕 같은 의지를 확립하는 것이다. ‘그래서…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42 건강 차트와 신상 카드.

43 Salus mentis et corporis. 

44 “Abstine a malo, sustine in bonum.”: 스토아 윤리 철학의 금언.

45 “Mens sana in corpore sano.”(Giovenale, 「풍자Satire」, X, 356)

46 “Qui medice vivit, miserrime vivit.” 스페인의 의사인 Ben. Jeronimo Feijoo(1676-1764)가 주석한 Cartas eruditas …, t. I, XL, 9에서 인용한 고전의학의 원리.

47 puer centum annorum.

 

48 앞선 출판본에서는 ‘자신의 심리적 구성’이라고 되어 있다. 분명 기록을 잘못한 것이다.

49 ‘특이체질Diatesi’: 어떤 질병에 걸릴 소질.

50 (다른 많은 경우처럼) 저자가 없는 진술이지만, 알베리오네 신부에게 잘 알려진 의사들, 이를테면 주세페 모스카티Giuseppe Moscati(1880-1927, 1987년 10월 25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됨)와 그의 개인 주치의였던 피에르프란치스코 부세티Pierfrancesco Bussetti(1909-1985)의 생각과 부합하는 내용이다.

51 “Proficiebat ætate, sapientia et gratia.”(Lc 2,52)

52 이러한 통계자료는 반세기 전의 것으로, 분명 수정되어야 한다.

53 원문에는: “Deus… interius exteriusque custodi, ut ab omnibus adversitatibus muniamur in corpore, et a pravis cogitationibus mundemur in mente.”(사순 제2주일 본기도).

54 미사경본 본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