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o Giacomo Alberione

Opera Om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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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기억과 상상력

우리는 사라진 과거와 어둠에 싸여있는 미래 사이에서 덧없이 지나가는 순간을 살고 있다. 인간은 자신의 뒤를 돌아보고 앞을 내다보아야 한다. 과거에서 가장 유익한 경험, 교훈, 경고를 길어내고, 미래에 대한 불안한 예감이 건전한 낙관주의와 결합되어 더 높은 곳으로 우리를 끌어당겨야 한다. 여기에 과거에서 보물을 모으는 기억과 미래를 준비하고 다가올 일을 현실적으로 그리고 거의 감지할 수 있게 하는 상상이 있다. 길을 비춰주는 상상의 횃불로 결단력 있게 앞을 향해 응시하면서 발걸음을 옮겨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인 이 두 개의 위대한 힘은 해이함, 침체, 패배, 고통이 될 수도 있다. 과거의 역사는 빛바랜 꿈의 기억이 되기도 하고, 무력하게 만들고, 비관주의에 빠뜨리며 절망에까지 몰아넣어 불안이나 애석함이 스펙트럼 형태를 자아낼 수 있다!
상상력은 발명품을 만들어 내고 영웅을 키우며 성인들이 하늘에 오르도록 가장 잘 날 수 있는 날개를 주었다. 그러나 게으름을 즐기고 이기주의, 어리석은 꿈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사람이 비현실적이고 공허한 삶의 형태를 만들어내어 일종의 최면 작용과 같은 행동으로 꿈속에서 생을 마감해도 만족해하는 인간을 만들 수도 있다.
그리스도인의 이상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것이다. 선의의 바다 속에 악을 가라앉힌다.
지성의 훈련은 바르고 투명하고 균형 잡힌 가운데 일치를 이루도록 이 두 개의 힘을 모을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교의 충만, 더 나아가 수도생활의 충만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과거에 뿌리를 둔 지성, 마음, 의지와 하나가 되고 상상력으로 우리의 실존보다 더 진솔한 미래의 천국을 느낀다면…. 그렇게 된다면? 의지의 활동은 힘에 넘칠 것이고, 영혼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소의 드높은 보상을 향해 걸음을 서두를 것이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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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한 대책

결심, 성찰, 고해, 신심실천과 같은 내적 작업은 결과를 염두에 두면서 질서정연하게 할 것.
언제나 훌륭한 고해사제, 친구, 저자, 잡지, 은행, 체계, 청취, 서적 등을 택할 것.
기억의 직감력을 활용해야 하고, 강연과 설교, 수업 중의 설명에서 건설적이거나 교훈적인 가르침을 기록할 것.
수첩, 메모용 카드, 장부, 사무용 현대 기기를 널리 사용할 것.
단순한 방법이지만 많은 일을 성공시킨 비결은 “깊이 생각하는 것”86, 지혜를 활용하는 것, 계획을 잘 세우는 것, 훌륭한 조언과 감실의 빛에 따라 수단을 마련하는 것이다. 지성의 평온은 이러한 현명함에서 온다.
‘지나친 노동’, (내적 외적으로 지나치게 바쁜 것)은 절제를 거스르는 죄다. 그러나 대단한 수고를 하지 않아도 더 많이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덕이요, 공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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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머리를 써서 일할 것

“믿음 없이는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 87
천상 스승께 드리는 첫 번째 순종은 머리를 써서 일하는 데 있다. 공로가 되는 인간의 모든 행위란 몸과 마음, 의지 그리고 지성이 협력하는 것이다. 곧 사랑을 다하고 | 지성을 사용하여 힘껏 일하는 것이다. 지성은 첫 자리를 차지한다. [SP, 1955년 1월호, 7쪽]
계명과 복음적 권고를 우리에게 주신 하느님의 뜻을 잘 이해해야 한다. 교회의 가르침과 우리 회헌과 교회법을 잘 이해해야 한다. 장상, 책임자(마에스트로), 고해사제, 사도직 부서 책임자들의 지침을 잘 이해해야 한다.
하고 있는 일을 잘하고 성취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며 수단과 방법을 늘 연구하면서 지성을 다 기울여야 한다. 그리하면 고해소, 편집실, 주방, 인쇄소, 학교, 회계 등 모든 면에서 언제나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선교하러 가는 수녀들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서원에서 일하는 수녀들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이것은 자연적인 면과 초자연적인 면에서도 그러하다. 예를 들면 신앙으로 일하고 하느님께 의탁하며 올바른 목적을 가진 사람은 영혼을 위한 일에서도 더 잘할 것이며, 그의 일은 더 큰 공로를 쌓으면서 더 많은 성과를 가져올 것이다. “제대 위에서 계속 희생제물이 되시는 예수님의 지향에 따라”88 일하는 사람을 예로 들 수 있다.
기도와 기술적인 일, 수업에도 머리를 써야 한다. 서적, 친구, 영화, 상담자, 고해사제 등에 대해서는 언제나 뛰어난 선택을 해야 한다.
진리에 대한 사랑, 진리를 위한 사랑, 진리 안에서의 사랑은 첫째가는 사랑이요, 성화의 으뜸가는 사랑이다. 예수님도 사도들을 위해 그렇게 기도하셨다.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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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성령의 칠은 베푸소서 89

고통의 신비 제3단에서는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을 묵상한다. 이는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께 마련한 가장 잔혹한 고통 중의 하나다. 사실 지성으로 범하는 죄는 가장 중대하고, 가장 빈번하게 범하는 죄로서 사람을 파멸로 이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을 통해 우리 죄를 보속하셔야만 했다. 지성으로 범하는 죄는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요한 18,37]고 말씀하신 스승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다. 오류와 이단을 펴는 사람들은 거짓증언을 하면서 유일하신 스승의 가르침을 거슬러 교단에 오르는 것이다.
이 고통의 신비는 ‘마음의 빛’90이신 성령의 강림, 곧 영광의 신비 제3단과 부합한다. 성령의 일곱 가지 은사 중 처음 네 가지인 지혜(슬기), 통찰(깨달음), 의견(일깨움), 지식(앎)은 지성과 관련된 것이다. 이 두 가지 신비를 번갈아 기도하면 좋을 것이다. “임하소서, 성령이여! 믿는 이들 마음속에 임하소서.” 91

* * *

[SP, 1955년 3월호, 2쪽] 구원 또는 재건은 사람을 복원시키는 것,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창세 1,26)라고 하신 말씀대로 하느님의 지혜, 권능, 선이라는 걸작품인 인간을 다시 세우는 것이다. 하나이고 삼위이신 하느님을 닮은 걸작품인 인간을 악마가 야만인, 곧 상처를 내고, 망가뜨리고, 넘어뜨려 ‘지성 의지 마음’이라는 골격만 남겨놓았다. 그리하여 성자는 이 작품 위에 훌륭한 설계를 하여 다시 세우기 위해 오셨다. 부분적으로는 설계를 완전히 다시 해야 했으므로 더 뛰어나게 하셨다. 이는 죄 때문에 모욕을 당하신 하느님께 합당한92 보상뿐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영광을 찾는다”[요한 7,18 참조]고 하셨듯이 더 큰 영광을 드리기 위해서였다.
피조물 가운데 인간은 하느님의 걸작품이었다. 순수한 물질과 영 사이의 고리였고, 육체와 영혼으로 되어 있어 눈에 보이는 자연을 다스리며 하느님의 소리가 되어 하느님께‘ 찬양제물’93을 드릴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하느님은 한 분이시지만 삼위이시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인간을 세 가지 능력으로 꾸미기를 원하셨다. 이 세 가지 능력에는 각 각 한 분이시고 삼위이신 하느님의 걸작인 성부의 의지, 성자의 지성, 성령의 감정이라는 하느님의 위격이 새겨져 있다.
그런데 성부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피조물을 결집한 것같은 놀라운 걸작, 당신의 놀라운 작품(역주: ‘edizione’는 편집, 출판이라는 뜻이지만 문맥상 ‘작품’으로 번역함), 이미지, 자기 사진을 보고 기뻐 전율하셨다. 마치 경탄할 만한 ‘모세’의 상을 조각한 예술가가 그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보고 황홀하여 대리석 조각이라는 것도 잊고 끌을 내던지며“ 왜 말이 없소? 왜 당신 안에는 생명의 피가 돌지 않소?”94 하며 외친 것처럼.
하느님도 똑같은 방식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사람이라는 존재 안에 신적 생명이 돌게 하여 우리 모습을 닮게 합시다.” 이리하여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도록 인간의 지성, 의지, 감정을 드높이셨다. 그리하여 인간은 초자연적 존재가 되었으며,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도록 드높여졌다. 그러므로 인간은 더 이상 그저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인간을 초월하는 인간, 인간적인 작품을 초월하는 하느님의 작품인 하느님의 아들이 되었다.
죄는 이 하느님의 걸작품을 모두 부숴버리는 동시에 인간적인 작품에도 상처를 입혔다.
신적 건축가이신 성자는 더 나아지고, 수정한 새로운 두 번째 걸작품의 설계를 제시하셨고, 성부는 이를 마음에 들어하셨으며, 시행하도록 성자를 파견하셨다.
그래서 성자가 오셨다. 성자는 하느님에게서 오는 권위로 진리와 계명과 참 신심을 굳히셨다.“ 율법 학자들과는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다.”(마태 7,29) 더 나아가 인간이 하늘에서 하느님을 뵙고 소유하고 누리도록 신적 진리와 신적 계명, 새로운 신적 예배가 추가되었다. 한 분이요 삼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고, 영원하고 신적인 생명을 살아야 한다. 경탄하고 경탄할 일이다. 인간이 하늘에서 행복하고, 더 힘 있고 지혜롭고 행복한 존재라는 것을 보았으므로 악마는 패하고 말았다.
더 값진 것은 지성, 의지, 감정을 바르게 훈련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인간의 행동을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 것으로 삼으시고 흡수하신다. 그러므로 드높여진 그 행위는 하느님의 새롭고 무한한 영광을 드러내며, 그 행위를 완수하는 사람에게는 은총과 상급을 선사하신다. 마땅히 거쳐야 할 길이신 중개자 그리스도를 거치면 그분의 행위가 된다. (예를 들면 한 걸음을 내딛는) 인간의 미천한 행위도 이성에 의해 방향을 잡으면 인격적인 행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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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내 눈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을 치워버려라 95

진리를 위해 창조된 존재로서 지성을 첫 자리에 두어야 하는 인간이라면, ‘첫째가는’ 그리고 ‘가장 심각한’ 유혹은 지성을 향한 것임이 분명하다.
이미 하늘에서 있었던 첫 싸움은 ‘생각과 사상의’ 싸움이었다.
첫 오류 때문에 사탄은 하느님과 자신을 비교했고, 신적 영예를 갈망했으며, 미카엘은 이에 맞서 “하느님 같은 자가 누구냐?”96 하고 외쳤으며, 착한 천사들은 그를 따랐다.
하와는 사탄의 유혹을 따랐다. “너희는 절대 죽지 않는다.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 악을 ‘알게 될 것이다.’” [창세 3,4-5 참조] 그리고 하와는 그 꾐에 넘어갔고, 아담을 설득시켰다. 먹지 말라고 금한 과일을 먹었고, 그들의 눈이 ‘열렸으며 저지른 악과 그에 따르는 결과를 알았다. 진리와 오류 사이의 싸움이었다. [SP, 1955년 3월호, 3쪽]
하늘에서 벌어진 싸움이 오늘날 이 지상으로 옮겨졌다. 민족 간의 싸움은 기관총과 폭탄을 손에 들고 싸우기 전에“ 하느님, 그리스도, 교회, 영원한 생명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사상의 대립이라는 형태로 일어난다.
이와 같은 일은 각 개인 안에 그리고 각 공동체 안에서 일어난다. 진리는 하나로 모으고, 거짓은 반목의 씨를 뿌린다. 의지의 폭동 이전에 지성의 폭동이 일어난다. 삶에서 독립정신이 일어나기 전에 먼저 지성의 독립이 일어난다. 복음에 대한 믿음을 저버린 후에 복음을 실천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면 참행복을 믿는 사람이 적다. “그들은 하느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어 버리고, 창조주 대신에 피조물을 받들어 섬겼습니다. 이런 까닭에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수치스러운 정욕에 넘기셨습니다.”(로마 1,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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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97

예수 그리스도는 사탄의 거짓말을 성경에 있는 신적 진리로 물리치셨다.
사탄이 말했다.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해보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답하신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사탄이 말했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밑으로 몸을 던져보시오. 성경에… ‘그분께서는 너를 위해 당신 천사들에게 명령하시리라.’‘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성경에 이렇게도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사탄이 말했다. “당신이 땅에 엎드려 나에게 경배하면 저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그러자 악마는 그분을 떠나가고, 천사들이 다가와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마태 4,3-11 참조]
우리의 싸움에서 복음서를 사용하는 것은 매우 유익하다. “복음 봉독이 저희 구원과 보호가 되게 하소서.”
전례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기도한다.
“복된 이들의 참 빛이신 당신(그리스도)의 온유한 얼굴빛으로 저희를 비추어주시고, 지성의 졸음을 몰아내소서.”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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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지성으로 짓는 죄 99

- 무익한 독서로 지성을 낭비하고
- 무익한 방문으로 지성을 낭비하고
- 우유부단함으로 지성을 낭비하고
- 무익한 대화로 지성을 낭비하고
- 지나친 놀이, 규정보다 긴 휴가, 영화관람, 텔레비전 시청, 라디오 청취로 지성을 낭비하고
-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타인을 제멋대로 생각하거나 판단하여 지성을 낭비하고
- 공상으로 지성을 낭비하고
- 실현 불가능한 계획을 세워 지성을 낭비하고
- 두려움, 미래에 대한 쓸데없는 걱정, 불안으로 지성을 낭비하고
- 참 도움이 되지 않는 서신왕래의 폭을 넓혀 지성을 낭비하고
- 무질서하고, 성급하고, 아무렇게나 행동하여 지성을 낭비하고
- 고해사제, 영적 지도자, 방침, 결심을 경솔하게 바꾸어 지성을 낭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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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자유로운 지성의 탁월함 100

온 힘을 다해, 곧 언제나, 어디서나, 온갖 주의를 기울여 악이 자리할 여유와 시간이 남지 않도록 좋은 생각으로 지성을 가득채워야 한다. 이는 사람에게 하느님, 신심, 공부, 사도직, 자기 의무에 대한 생각을 일으킬 것이다.
지성의 게으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지적 관심의 부족… 등은 지성이 도리에 어긋나는 것이나 더러운 것이 자리 잡는 밭이 될 위험에 노출시키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건전한 활동을 계속하고 자신의 관심을 무엇인가에 항구하게 전념하면 많은 유혹과 좋지 않은 일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의 은총은 지혜롭고 건전하며 점잖은 사람과 언제나 함께한다.
특히 위험이 닥쳐올 때나 이미 위험한 상황일 때에는 지성을 건전한 생각과 자연적 질서와 초자연적 질서로 채워야 한다. 신중하고 침착하게 하느님을 신뢰하며 협력해야 한다.
“주님, 저희에게 건전한 지성을 허락하소서.”101 인간이 품고 있는 생각이 바로 그 사람의 지성이다. 열매는 나무를 알게 하고, 포도주 병은 그 속에 있는 포도주를 준다. 건강하고 힘 있는 지성은 건전한 생각을 낳고, 병든 지성은 악한 생각을 낳는다.
나약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부당한 생각이란? 지성의 건강상태가 나쁘거나 지성에 대한 교육이 좋지 않은 데서 오는 것이다.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지성’102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지성의 건강을 유지하고, 지성을 재교육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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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나는 복음을 통하여 여러분을 낳았습니다 103

예수 그리스도는 진리 안에서 우리를 낳으셨으며, 이로써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 우리가 진리 안에서 태어난 것처럼 살고 열매를 맺어야 한다. 진리에 대한 예禮는 하느님께 대한 예禮다.“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요한 4,24)
진리를 준다는 것은 사람에게 하느님을 주는 것이요, 하느님에게 사람을 인도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는 복음서와 성전聖傳에서 드러난다. 이러한 진리를 전하고, 시대의 필요에 적용하여 살게 하는 것은 신약의 사도들, 성 바오로, 교회, 교회학자, 교회저술가, 그리고 바오로가족의 임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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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진리 104

성 바오로는 복음의 위대한 해설자요 설교자였다. 그는 천상 스승의 계시 안에서 복음을 이해하였으며, 여러 민족의 학자요 스승이었다. 예수 그리스도 이후에 구원의 진리가 전파되기 시작했고, 언제나 샘에서 물이 흘러나와 강으로 흘러들듯이 | 물줄기가 모이고 불어나서 어디에든 은총과 성성을 가져간다. [SP, 1955년 3월호,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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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진리의 기둥이요 버팀목 105

그르칠 수 없는 영원한 교회는 언제나 진리를 설파하고 가르치고 수호한다. 교회 안에 그리고 교회를 위해 교부, 학자, 설교자, 교회 저술가, 가톨릭 작가가 있다.
시간과 장소를 가로질러 흐르는 이 진리의 강에는 성 바오로의 정신을 따라 겸손한 제자요 스승의 일을 완수하는 바오로가족이 있다. “복음 선포자의 일을 하고 그대의 직무를 완수하십시오.”106 [2티모 4,5]

진리의 강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1) 교부와 학자 2) 뛰어난 저술가 3) 출판을 통해 진리에 봉사하는 바오로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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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진리의 종들 107

1. 교회 학자들: 이들은 정통 가르침과 뛰어난 성덕을 갖추고 명시적으로든 묵시적으로든 교회에서 인정을 받은 뛰어난 저술가들이다. 이 세 가지 조건에 고대성이라는 네 번째 조건이 추가되면 학자 또는 교부라는 이름을 갖는다. 이들은 적어도 2 8명이다.
교부-학자들, 교부 중 주요 인물은 여덟 사람이다. 서방교부 네 분은 암브로시오, 예로니모, 아우구스티노, 대 그레고리오이고, 동방교부 네 분은 아타나시오, 바실리오, 나지안조의 그레고리오, 요한 크리소스토모다.
그 밖의 교부 학자들 가운데 나열해야 할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에프렘, 대 레오, 힐라리오,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 예루살렘의 치릴로, 베드로 크리솔로고, 다마스쿠스의 요한, 스페인 [시빌리아의] 이시도로다.
교부시대 이후에는 가경자 베다, 베르나르도, 베드로 다미아노, 토마스 아퀴나스, 보나벤투라, 안셀모,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베드로 가니시오, 십자가의 요한, 벨라르미노, 대 알베르토가 있다.
교회 학자들의 미사는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된다. “[주님은] 회중 가운데에서 그의 입을 열어주시리라. 그는 즐거움과 환희의 화관을 얻고 영원한 명성을 차지하리라.”(집회 15,5-6 참조)
그리고 별로 눈에 띄지 않으나 여러 시대에 걸쳐 가톨릭 사상을 이해하도록 뛰어난 저술로써 교회의 가르침을 설명한 사람들이 있다.108 […]
바오로가족은 학자들 중 특히 철학부문에서는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부문에서는 성 아우구스티노, 마리아론은 성 베르나르도, 자연과학 부문에서는 성 대 알베르토, 신비신학 부문에서는 십자가의 성 요한, 사목부문에서는 성 대 그레고리오, 윤리부문에서는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수덕부문에서는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를 존경한다.
2. 진리에 봉사하는 바오로가족: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주십시오.”(요한 17,17) [SP, 1955년 3월호, 5쪽]
바오로가족은 ‘교리교육부문에’ 전념했다. 교리서는 바오로가족이 태어난 첫날부터 가장 많이 인쇄하고 보급한 책이다. 가장 단순하고 신적이고 사도적인 교리를 설교하는 것이 첫째이기 때문이다.
프리모 마에스트로가 편집한 학년별 교리교재는 성바오로딸수도회가 삽화를 그려넣어 출판했다.
교리교육용 단편영화도 마련하여 보급했으며,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하여 보급했다. 성경, 전례, 복음을 위한 영화도 제작·보급했다. 교리교육용 공책, 앨범 그리고 모든 교리교재도 제작·보급했다.
교리주간, 교리대회, 교리 안내서, 교리잡지. […]
‘성경부문에서는’ 무엇보다 원문에서 번역한 「새 번역 성경Nuova versione della Bibbia 」을 상기할 수 있다. 로발도Robaldo 신부는 여러 종류의 복음서를 편찬한 인물로 특기할 만하다. 곧 「젊은이의 복음서」, 「교육자인 엄마의 복음서」, 「가정의 복음서」, 「노동자의 복음서」, 「매일의 복음서」. […]
‘전례부문에서는’ 매일 미사경본과 축일 미사경본…등 수많은 출판본을 발행했다. 전례교육에 관한 저서 가운데 궤랑제Guéranger의 기념비적 작품인 다섯 권으로 된 「전례의 해L’anno liturgico」를 꼽을 수 있다. 모원에서는 「전례 대백과사전Enciclopedia Liturgica」을 인쇄 중이다. […]
‘사목신학부문에서는’ 프리모 마에스트로의 책임하에 사목전집을 시작했다. 세 부문이 포함되어 있으며 가) 「교회의 가르침Magisterium」: 신경信經과 교의적 윤리적 진리에 관한 설명, 나) 「직무Ministerium」: 준성사와 전례, 다) 「통솔Regimen」: 사목실천의 문제를 다룬다. […]
‘교부신학부문에서는’ 무엇보다 성바오로딸수도회가 엮은 뛰어난 가치를 지닌 전집을 들 수 있다. ‘거룩한 교부들과 교회 저술가들의 꽃’인 이 전집은 53권이 발간되었고, 차츰 새로운 책이 더해져서 풍부해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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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109 [SP, 4-5월호 1955, p. 3]

“주님은 그를 바른 길로 이끌고 하느님의 나라를 보여주셨으며, 거룩한 것들을 알려주셨다. 고생하는 그를 번영하게 하고 그 노고의 결실이 불어나게 하셨으며, 착취자들이 탐욕을 부릴 때에 그 곁에 있어주고 그를 부자로 만들어 주셨다. 또 그를 원수들에게서 지키고 매복한 적들에게서 보호하셨으며, 격렬한 싸움이 벌어졌을 때에 그에게 승리를 주어 깊은 신심이 그 무엇보다도 강함을 깨닫게 해주셨다.”(지혜 10,10-12 참조)
겉으로 보면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자주 있지만, 신앙에 따라 깊이 숙고하면 설명을 아주 잘 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명성, 권력, 학식, 돈, 큰일을 할 능력, 인간적인 도움, 건강… 등 모든 면에서 가난한 사람들이지만 이들이 세상을 움직였다. 곧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 베네딕토,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성 요한 보스코, 성 주세페 베네딕토 코톨렌고, 예수의 성녀 데레사, 열두 사도와 다른 많은 이들이다. 이와 반대로 재산이 많고 내적 외적 자질도 받았으며, 사회적 지위와 영향력도 있고 명예도 있는 사람들… 이들은 사회적 영향력도 없고 생명력이 있는 업적을 남기지도 못해 실망하고 타인에게도 실망을 안겨주는, 마치 잎과 꽃은 무성하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처럼 되어버렸다.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이를 설명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관점에서 쉽고도 어려운 일이다. 첫째 경우의 사람들은 겸허한 생각으로서 지도를 받은 신앙이 충만한 사람들이고, 둘째 경우의 사람들은 자기 지성을 자랑으로 여기며, 자기네 가치를 믿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병거를, 저들은 기마를 믿지만 우리는 우리 하느님이신 주님의 이름을 부르네.”[시편 20(19),8] 예를 들면 골리앗과 다윗, 나폴레옹과 교황 비오 12세, 참 개혁자와 이단자. 지성과 마음이 겸손한 사람에게 하느님은 은총을 충만히 내려주시나, 지성과 마음이 교만한 사람에게서는 은총을 거두신다. “주님의 진실하심 영원하여라.”110 그 말씀은 한 점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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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좋으신 주님, 저희 지성을 깨끗하고 새롭게 하소서 111

신심 또는 성화를 위한 노력만큼 유혹, 오해, 탈선, 거짓의 대상이 되는 것은 없다.
보통 1리라짜리 지폐는 위조하지 않지만, 1천 리라, 1만 리라짜리 지폐는 위조한다. 악마의 일도 이와 같다. 하느님의 길을 가르치는 체하는 책이 있는데, 이런 것들은 태워버리는 것이 애덕일 것이다. 하느님의 길은 단순하고 숭고한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는 이를 가장 쉽게 전해주기 위해 당신의 가르침으로 가장 단순하게 요약하셨다. 그래서 아무리 소박한 농부라도 이해할 수 있고 실천할 수 있다. 모든 사람, 가장 박식한 사람이라도 자기 지식을 초월하는 무엇인가를 언제든 발견할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첫째가는 것은 이것이다! 네 지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네 지성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해야 한다. 신심은 무엇보다 지혜로워 이성과 교의에서 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나는 영으로 기도하면서 이성으로도 기도하겠습니다. 나는 영으로 찬양하면서 이성으로도 찬양하겠습니다.”[1코린 14,15]
신앙에서 비롯되지 않은 신심은 오래 가지 않으며, 종교교육과 신앙 없이는 덕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믿음, 희망, 사랑, 신심은 같 은 초 자 연 적 차 원에 있으나 뿌리는 믿음이요, 이 믿음은 결실을 풍부히 내는 튼튼한 나무를 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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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면학

솔로몬은 “주님, 당신 어좌에 자리를 같이한 지혜를 저에게 주소서.”[지혜 9,4]라고 기도했다. 안다는 것은 사회적 지위를 얻기위해서뿐 아니라 삶을 드높이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일정한 계획에 따른 면학, 분명하고 상세한 계획, 체계적인 교육, 정기적인 시험.
젊은이는 자기 주변환경의 모든 것에서 영향을 많이 받는다. 공상은 젊은이를 끌어당기고 거의 지배한다. 성찰은 큰 희생을 요구한다. 이와 반대로 젊은이는 자유, 스포츠, 파티, 놀이, 공연을 좋아한다.
특히 성찰로 이끄는 과목(라틴어, 수학, 철학 등)을 진지하게 공부하도록 교육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일생을 통해 매우 값지고 매우 유익한 것이다. [SP, 1955년 4-5월호, 4쪽]
교사 자신이 스승은 무엇하는 사람인가를 이해하고, 학생에게 ‘지식을 가르칠’ 뿐 아니라 ‘교육하는 것’임을 깨닫고 가르친다면 학교는 거룩한 장소, 곧 성전인 것이다.
천상 스승을 귀감으로 삼고 있는 스승과 온순한 학생 사이에는 점차 협력관계가 성립되어 학생에게 도움이 되고, 수도회 안에서는 신성한 부자관계를 초월하는 대단히 다정한 관계가 확립될 것이다.
좋은 스승은 곧잘 소홀히 다루는 숨은 은인이지만 인류의 위대한 은인이다. 하물며 한 수도회 안에서 매우 어렵고 필요한 이 역할을 완수하는 사람이 절실하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좋은 신문을 시작하는 것, 본당을 세우는 것, 교육적인 영화관을 개관하는 것, 건전하며 인격형성에 도움이 되는 텔레비전과 라디오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 등은 좋은 학교에 비길 만큼 가치가 있는 일이요, ‘여러 곳의 교도소를 폐쇄하는 것’에 견줄만하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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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통제

“지성의 더러움을 씻어라.” 우리 생각의 통제는 생각의 통로를 견제하여 무의식 중에 강하게 사로잡히는 생각에 끌려 다니지 않고 이를 조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려운 일이다. 1) 계속적인 경계가 필요하기 때문이고, 2) 어떤 생각은 특별히 생각하지도 않는데 파고들어 몰아내도 나가려 하지 않기 때문이며, 3) 나갔다가도 몰래 되돌아오기 때문이고, 4) 아마 상상, 마음, 이성 자체가 이미 굴복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며, 5) 지성은 섬세하므로 갑자기 또는 난폭한 방법으로 통제하는 것은 건강이나 지성의 균형을 위해 해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교만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겸손은 교만의 부재不在뿐 아니라 활기 있는 것이요 긍정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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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 확실한 방법

“선으로 악을 굴복시키십시오.”(로마 12,21)라고 한 성 바오로의 말은 적극적인 방법이다. 곧 하느님과 이웃과 우리 자신에 대해 그리고 과거, 현재, 미래에 관해 진리, 질서, 정의에 대한 생각을 기르는 것이다.
지성이 선으로 가득 차 있으면 악은 사라질 것이다. 병 속에서 공기를 빼내려면 물을 가득 부으면 된다. 방에서 어둠을 몰아내기 위해 빗자루나 수건을 휘두르기보다 등불을 밝히면 어둠은 곧 바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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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영성체

“지성은 은총으로 충만하게 된다.”112 영성체는 육신의 일치, 마음의 일치, 의지의 일치, 지성의 일치, 곧 온전한 친교라야 한다. 예수님처럼 생각해야 하고, 자연적 차원이든 초자연적 차원이 든 신앙에 따른 사고방식, 신적 지성에 따른 판단을 해야 한다. “주님, 천상 선물의 활동이 우리의 지성과 육신을 다스리게 하소서.”113
신앙은 통합하고 변화시킨다. 거룩한 생각을 통해 우리를 친교에 들게 하면서 무한한 진리이신 하느님과 일치시킨다. 그리고 하느님이 창조와 성자의 강생을 통해 계시된 분임을 알게 해준다.
“신앙을 통해 하느님의 빛은 우리의 빛이 되고, 하느님의 지혜는 우리의 지혜, 하느님의 지식은 우리의 지식, 하느님의 지성은 우리의 지성, 하느님의 생명은 우리의 생명이 된다.” 114
지성의 동정성, 신앙의 동정성이 있다! 이는 감각의 순수함을 보존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지킬 수 있다.
영성체는 몸이나 마음 또는 의지뿐 아니라 먼저 지성의 친교가 이루어져야 한다. 곧 예수님의 사고방식과 같은 사고방식을 갖기위해 예수님의 지성에 우리의 가장 고귀한 능력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높은 차원의 존재가 낮은 차원의 존재를 자기 안에 흡수한다.”115 전례문에 따라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주님, 당신의 빛으로 저희를 채워주소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룩하신 구원의 첫째부분은 지성에 관한 것이다. 곧 예수님은 당신의 기쁜소식을 선포하셨다. 이 구원은 모든 거짓을 혐오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고방식을 닮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이것은 예수님과 우리 커뮤니케이션의 결실이다. 영성체를 통해 예수님은 지성의 질병도 치유하신다. 무지, 경솔함, 망각, 둔함, 미신, 편견 등을 극복하기 위해 “지성도 치유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신다.”[갈라 2,20]고 했듯이 예수님은 우리 안에서 생각하실 것이다. 그래서 지적 생활이 가장 우선적이며 가장 필요한 것이다.
영성체를 위한 준비와 감사행위:
1) 믿음의 행위, 복음과 교회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며 이에 반대 되 는 모 든 가 르 침을 부인否認함으로써 제대 위에 현존하시는 길 진리 생명이신 예수님을 흠숭해야 한다.
2)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고자 하는 순수한 결심으로, 믿음과 그리스도인의 덕과 수도자의 덕에 어긋나는 모든 생각과 행위를 물리쳐야 한다.
3) 예수 그리스도, 복음서, 교회에 대해 더 깊은 사랑을 지니고자 하는 신뢰와 희망, 하느님의 영광과 사람들을 위해 참된 열성을 얻고자 하는 희망을 지녀야 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을 불러일으키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자 하는 생각에 그친다면 그 영성체는 통합된 것이 아니므로 작은 결실만을 얻게 될 것이다.
교회가 기도하듯이 “영혼과 육신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116 통합된 영성체를 충분히 설명해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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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양심성찰, 고해성사, 영적 지도

“지혜는 지각의 빵으로 그를 먹이고 이해의 물을 그에게 주리라.”(집회 15,3) 생각을 살피고… 생각에 대해 고해하자. 생각에 대해 지도를 받자. 생각에 관한 자기 질책이 앞서야 한다.
올바른 사고방식을 형성하는 것은 영혼의 지도와 젊은이의 양성과 그리스도인 성격 형성에 있어 첫째가는 부분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 애덕의 부족, 참 겸손의 부족, 참 신심의 부족, 곧 내면에 대한 경계를 자주 촉구하셨다. 산상설교의 중요한 부분은 지성과 마음의 성화가 아닌가? 그리고 여러 복음사가, 특히 성 요한이 언급한 설교의 중요한 부분이 그렇지 않은가? ‘지성의 죄가 사라지도록’(전례).
모순: 외적으로는 겸손한 행동을 하지만 지성은 교만, 반항정신을 지닌 복종, 원한을 품은 친절, 단식을 하는 것 같지만 숨어서 먹는 것, 겉으로는 엄격한 것처럼 보이나 나쁜 생각과 불결한 상상을 품는 것, 골방에서 기도하는 대신 한길 모퉁이에서 기도하는 것 등은 모순이다.
장상, 고해사제, 영적 지도자는 위선자를 만들거나 경찰과 같은 일을 할 의도가 없다. 그와는 반대로 깊은 확신, 지성의 회개, 참된 수도자, 참된 그리스도인을 형성하고자 한다. 그들은 대화하고 읽게 하고 그릇된 사상에서 구해줄 것이고, 그릇된 사고방식에 지배당하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해줄 것이다.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로마 5,5] 실망117은 모호한 생각이나 실패의 결과인가? 어찌되었든 나무를 갉아먹는 벌레요, ‘이상’을 무너뜨리는 원인이다. 적대자가 건물의 기초를 파괴하려 하기 때문에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좌절과의 싸움에 집중해야 한다.
지옥에서 가장 추악한 악마는 실망이다.
신뢰해야 하는 인간적 초자연적 동기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불행했던 과거라도 찬란한 미래를 건설하기 위한 건축요소가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자기 죄에서 이점을 끌어내는 기술’118이다 .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 8,28]라는 말씀은 ‘죄까지도’ 포함시킨다.
“희망은 마지막 신이다.”119 [이 격언은]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다.
첫 번째 싸움에서 졌다 해도 새 전투에서는 승리할 여지가 있다. 인생에 있어서도 그럴 것이고, 영원을 위해서라면 기회는 언제든 제공된다“. 무력하게 땅에 주저앉지 마라. 지성이 이미 일어났다.”120(전례)
베드로를 생각해 보라! 바오로를 생각해보라! 아우구스티노를 생각해보라! 「약혼자들」에 나오는 크리스토포로 신부와 인노미나토를 생각해보라.121 많은 문학가, 군인, 예술가, 정치가, 교수, 교육자 등을 생각해보라.
은총이 있고 마리아의 자비가 있고 고해성사가 있고 수호천사가 있다. 우리가 가는 길에는 언제나 주님이 보내주시는 신뢰할만한 사람이 있다. 모든 것이 어둠처럼 여겨질 때에도… 예수님과 친밀한 대화를 통해 다시 빛이 비추어지고 힘이 되살아난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이시며, 생명이시요 부활이시다.”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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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성체방문

사도에게 성체방문은 하나의 알현이요, 배움터, 제자나 봉사자가 천상 스승과 대화하며 머무는 배움터와 같다.
이 성체방문에서 많은 결실을 얻기 위한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길 진리 생명이신 스승 예수를 흠숭하는 방법을 가장 많이 권한다.
이 방법으로 하는 성체방문은 시간을 세 부분으로 똑같이 나눈다. 여기서는 ‘첫째부분’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한다. 이 부분은 ‘지성을 다해’ 행하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훈련으로서 다음 세 가지 목적이 있다.
1)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최고요 진리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생각하고 영광을 드리는 것,
2) 지적 영적 사목적 양성에서 얻은 자연적 지식과 초자연적 지식 모두를 하느님께 봉사하기 위해 요약하고 분명히 하고 통합하는 것,
3) 복음서에서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요한 17,3)라고 말하는 대로, 모든 사람이 진리의 빛에 이르도록 탄원하는 것이다.
이 첫째부분에서 지성은 오류를 물리치고 신적 진리를 심화하며 신앙을 굳건히 한다.
우리 기도서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첫째부분: 진리이신 예수께 영광을 드리고, 영적 지식과 믿음을 더욱 풍부하게 하기 위함이다. 가) ‘거룩하시다’를 노래하거나 기도한다. 나) 통회의 기도를 바친다. 다) 이어서 영적 독서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복음서나 성 바오로 사도의 서간이 바람직하다. 라) 숙고하고 기도한다. 예를 들면 기쁨의 신비 한 단을 바치거나‘ 신경’,‘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 유일한 빛 그리스도’123 등을 바친다.
다른 두 부분은 이 첫째부분에 딸린 것으로, 온 힘을 다하고 온 마음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마음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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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묵상

묵상에는 언제나 지성에 관한 부분이 있다. 진리와 교훈적인 사건을 떠올리거나 영혼에 유익한 가르침을 읽거나 듣는 지성과 관련된 부분이다. 실제로 묵상의 정의는 “하느님께 드려야 할 합당한 행위를 하고 더 나은 우리 자신이 되도록 하느님께 영혼을 들어 높이고 집중하는 것이다.” 초보자들124에게는 ‘묵상서적’을 가지고 시작하라고 권한다. 예를 들면 「준주성범」, 「영적 투쟁」,125 복음서.
묵상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주요한 부분은 “얻고자 하는 덕의 필요성 또는 매우 유익한 것이라는 확신을 갖기 위한 숙고요, 또는 인도해 주는 진리, 힘이 되는 생각을 지성 안에 각인시키는 것이다”.
의지를 인도하고 자극할 만한 깊은 확신을 주는 것이 지성의 역할이다. 이는 하느님의 뜻에 일치하는 것을 선택하도록 의지를 움직이는 힘 있는 확신이다. 이 확신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내 목적은 하느님이요, 예수님은 하느님께 도달하기 위해 내가 따라가야 할 길이다. 따라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하느님을 위해 모든 것을 해야 한다. 이를 방해하는 것은 오직 죄뿐이므로 죄를 피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 죄를 지었다면 곧바로 속죄해야 한다. [SP, 1955년 4-5월호, 6쪽] 죄를 피하기 위해 필요한 유일한 방법은 언제나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요 이것으로 죄를 충분히 피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계속 하느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실천할 것을 지향해야 한다. 이러한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성 바오로가 회심하던 순간에 한 말을 자주 되풀이해야 할 것이다.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사도 22,10] 그리고 저녁 성찰 때에는 나의 부족했던 점을 통회해야 할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인생의 계획, 연간 계획과 결심을 언제나 마음에 간직하고 있으면서 그에 따라 생각과 결정을 내린다. “당신 말씀은 제 발에 등불, 저의 길에 빛입니다.”[시편 119(118),105]

성인들이 가르쳐주는 방법은 많으나 본질적으로 다음과 같은 원칙을 따르는 것이 좋다.
1) 묵상은 잘못을 뉘우치고 의지를 자극하며 미래를 위해 효과적인 결심을 세우는 것을 지향한다. 묵상은 지성, 마음, 신심, 의지의 훈련으로 이루어진다.126
2) 따라서 묵상은 지성에서 출발한다. 원리, 행위, 진리를 상기해야 한다. 독서를 하거나 설교를 들으면서 명확한 생각과 깊은 확신에 도달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좋은 감정과 굳은 결심의 토대가 될 것이다.
3) 예수님은 성령을 통해 활동하신다. “자비로이 우리 지성에 성령을 부어 주시어 당신 지혜로써 우리를 창조하시고, 섭리로써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전례)127
4) 마리아는 거룩한 묵상의 스승이요 어머니시다.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루카 2,19]
교회와 함께 기도하자.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주 하느님, 주님께 나아가는 데에 해로운 모든 것을 물리쳐 주시어, 저희 몸과 마음을 평온하게 하시고, 자유로이 주님의 뜻을 따르게 하소서.”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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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미사

미사에는 희생제물과 영성체가 있다. 첫째부분은 가르치는 부분 또는 교육하는 부분으로서 서간과 복음서 봉독, ‘신경’을 통한 신앙고백으로 끝맺는다. 미사경본에 따라 미사에 참례하면 모든 신자는 하루를 지내면서 마음속에 간직하고 묵상하며 신앙고백을 해야 할 가르침과 진리를 알 수 있다.
주일에는 사제가 신자들을 위해 복음서를 봉독하고 해설을 한다. 이렇게 교회는 영적 빵을 나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태 4,4 참조]
미사의 첫째부분, 곧 지성의 부분에는 참여하지 않고 미사에 참례하는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에 신심행사에 참여한 정도의 결실밖에 얻지 못한다. 지성에 대한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에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과 의지로 사랑하는 것도 매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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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경건한 행동과 정신으로 하나의 믿음이 되게 하소서 129

‘균형’에는 회복하고, 속죄하고, 재통합해야 하는 인간적 신적 이중의 과제가 있다.
지성은 단련되어야 한다. 진리를 생각해야 하고, 마음은 진리를 사랑하도록 고무되어야 하며, 의지는 평탄한 곧은길을 발견해야 한다. 그리스도인 삶의 과제는 하와를 유혹한 악마의 기만을 보속하기 위해 천상 스승의 활동이 영혼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내어맡기는 것이다. 철학과 예술은 서로 손을 맞잡는다.
지혜와 사랑으로 행한 교육은 특성 있는 사람을 양성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루카 10,27 참조]
비지성적인 사랑은 어리석은 것이요, 파괴를 거듭하게 한다. 추상적이고 차가운 지성은 실제로 거의 실효성이 없으며, 고통과 후회를 거듭하게 한다.
‘균형’은 육신을 날라야 하는 두 다리처럼 의지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지성과 마음이 조화를 이루어 발달해야 한다. 그러면 마음은 사랑하기 위해 많은 것을 발견하고 알게 되므로 지성에 많은 공헌을 할 것이다.“ 시인은 우리에게 과학이 전혀 모르는 것을 보게 해준다.”
사랑은 눈을 뜨게 해준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 1 요 한 4,8 참조]“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되었다.”[루카 24,35 참조] 거룩한 사랑을 지닌 사람은 얼마나 많은 것을 배웠는가!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성녀 데레사,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 비오 10세.
이와 마찬가지로 지성을 소홀히 하면서 사는 사람은 참 애정의 높은 경지에 이르지 못한다. 예를 들면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처럼 자연을 관상하는 데서 나오는 지적 사랑이나,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처럼 하느님의 활동에 관한 관상을 통해 나오는 지적 사랑이 실제로 존재한다. 시인이기도 한 과학자는 균형 잡혀 있을 것이다. 시적 감각과 신심이 없는 과학자는 불행한 삶을 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지성의 소양과 마음의 지배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는 사제 지망자는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므로 깨끗한 거울처럼 지성이 진리를 완전히 반사하도록, 우리의 부족한 면을 계발하거나, 우리가 인식한 것을 사랑하는 마음을 부추기도록 해야 한다.
죽음처럼 강한 사랑에 열중하고 마음을 다듬을 줄 아는 위대한 이상과 신앙을 지닌 사람들, 곧 성 요한 보스코, 성 요한 드 라살, 성 요셉 베네딕토 코톨렌고,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단테, 성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 베드로 클라베르, 성 [프란치스카] 카브리니, 성 비오 10세, 복자 안젤리코, 만초니, 마르코니 등이 있다.
올곧은 사람과 성인은 이 흩어진 지체를 모으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인간과 사회를 창조의 모습대로 새롭게 세우고, 죄로 말미암아 파괴된 상황을 더 아름답게 다시 세운다. 이것이 바로 재건이다.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는 계획입니다.”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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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지성의 고독 131 [SP, 1955년 4-5월호, 7쪽]

잠심을 몸에 익히고 우리의 몫인 의무, 면학, 소임, 성무, 대화 등에 익숙해질 것.
기도 중의 잠심: “헛되고 어리석고 부당한 온갖 생각에서 우리 마음을 정화시켜 주소서.”132라고 기도하듯이, 하느님과 우리 영혼에 전념하는 것이다.
면학 중의 잠심: “성경봉독과 권고와 가르침에 열중하십시오.” [1티모 4,13]라는 성 바오로의 권고에 따라 잘 선택하고, 잘 이해하고, 현명한 판단으로 잘 기억하고, 은총을 통해 커뮤니케이션하도록 준비해야 한다.
모든 사도직과 일상의 태도에 대해 교황 비오 12세의 회칙 「거룩한 동정Sacra Virginitas」에 표현된 것처럼 살아야 한다. “결코 ‘생각만으로도’ 죄에 떨어지지 마십시오.” 
“위험에서의 도피는 외적 기회를 멀리하는 것뿐 아니라 (예를 들면 세속을 떠나는 것), 무엇보다도 유혹을 당할 때‘ 지성’을 드높이는 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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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그대 자신을 돌보고 주의하십시오 133

교황 비오 12세는 이렇게 덧붙이셨다.“ 모든 성인 성녀가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좋은 수단은 부지런히 모든 죄의 기회를 피하기 위해 유혹을 멀리하고 주의 깊게 경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현대에 와서는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모든 그리스도인, 특히 사제들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세상에서 격리되어’서는 안된다. ‘세상 한가운데 있어야’ 하고, 따라서 저항할 힘이 있는지 시험해보기 위해 위험한 상태에 들어가 자신의 정결을 위험에 노출시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젊은 신학생들은 무엇이든지 겁내지 않고 보는 데 익숙해지고, 위험한 모든 것에서 무감각해지기 위해 무엇이든지 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조심해야 한다는 규칙도 없이 일어나는 모든 것을 보도록 쉽게 허용합니다.
젊은 신학생에게 영화, 때로는 교회가 검열하여 금하고 있는 영화를 관람하러 가는 것도, 외설 잡지까지 포함하여 모든 잡지를 읽는 것도, 금서나 자연법 자체가 금하는 것까지 포함하여 모든 소설을 읽는 것도 허락합니다. 그들이 왜 이런 것을 허락하느냐고 물으면, 이미 현대에는 대중이 흔히 이런 볼거리나 책에 의해서만 살아가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을 돕겠다는 뜻을 가진 사람은 그들의 사고방식이나 견해를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젊은 신학생을 성직자 신분의 성덕으로 인도하기 위해 이러한 교육제도가 얼마나 잘못된 것이며 위험한 것인가를 이해하기란 아주 쉽습니다. ‘위험을 즐기는 자는 그 위험으로 망하리라.’(집회 3,26) 성 아우구스티노의 충고는 매우 타당합니다.
‘불순한 눈을 가졌다면 깨끗한 영혼을 지닌 사람이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불순한 눈은 마음이 깨끗하지 않다는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사악한 양성 방법은 매우 혼란한 논리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저도 이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하셨고, 또 다음과 같이 성부께 기도하셨습니다. ‘이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악에서 지켜주십사고 빕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같은 원칙에 따라 사제들이 세상에서 생활할 때 통상적으로 만나기 쉬운 위험에서 그들을 멀리하도록 적절하고 현명한 규범을 정했습니다. 이 같은 규범을 통해 그들 삶의 성덕이 세속생활의 동요나쾌락에서 충분히 지켜지도록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영적 생활과 사제적 수도적 완덕에 이르는 양성을 위해 젊은 신학생은 삶의 투쟁에 돌입하기에 앞서 더더욱 세속적 소란에서 격리되어 살아야 합니다. 서서히 그리고 현명하게 우리 시대의 문제에 관한 것을 다루는 법을 배우고, 세세하고 정성스레 교육을 받기 위해 신학교나 연구소에 장기간 머물러야 합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교황 권고 「우리의 지성Menti Nostræ」(1950년)에 담긴 내용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생각에 관해서는 성 바오로 사도의 다음과 같은 말씀이 이에 해당하는 가치 있는 말씀이다. “참된 것과 고귀한 것과 의로운 것과 정결한 것과 사랑스러운 것과 영예로운 것은 무엇이든지, 또 덕이 되는 것과 칭송받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마음에 간직하십시오.”[필리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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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F. Chiesa, 「깊이 생각하라

Pensarci su 」, Alba 1939 참조. 젊은이들을 위한 소책자.

87 원문에는: “Sine fide impossibile est placere Deo.”(히브 11,6)

88  1957년판 성바오로수도회 기도서에 나오는 ‘선종을 위한 기도’(초판) 참조. 알베리오네 신부는 ‘올바른 지향’으로 모든 일을 하도록 초대하기 위해 이러한 표현을 자주 반복했다.

89 “Tu septiformis munere.”(성령강림 대축일 찬가)

90 “Lumen cordium”(성령강림 대축일 부속가).

91 “Veni… mentes tuorum visita….”(성령강림 대축일 찬가)

92 ‘걸맞는Condegna’라는 표현은 ‘합당한adeguata’이라는 말 대신 사용했다.

93 ‘sacrificium laudis’, 시편 50(49), 14 참조.

94 미켈란젤로의 모세와 연관된 전설이다. 모세상은 율리우스 2세의 무덤 기념건조물로 조각되었으며, 현재 산 피에트로 인 빈콜리 로마 성당에 보관되어 있다.

95 “Auferte malum cogitationum vestrarum ab oculis meis.”(이사 1,16)

96 원문에는: 외경 전통에 따라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Q uis ut Deus?”

97   “Sermo tuus veritas est.”(요한 17,17)

98 원문에는: “Tu (Christe) vera lux Coelestium, vultu sereno illumina, mentisque somnum discute.”

99 “Mentis reatus corruat”

100 “Eminentia libera mentis”.

101 “Da nobis, Domine, sanitatem mentis….”(복되신 동정마리아 공통축일 본기도) 

102 “mens sana in corpore sano”.(Giovenale, 「풍자Satire」, X, 356)

103 “Per evangelium ego vos genui.”(1코린 4,15)

104 “Est veritas christi in me.”(2코린 11,10)

105 “Columna et firmamentum veritatis.”(1티모 3,15)

106 원문에는 “opus fac evangelstæ.” 

107 ‘Servi veritatis’. 

108 여기서부터 ‘Verba mea non transibunt’라는 제목에 이르기까지, 잡지 「성바오로」와 연이은 출판물에 실렸던 이름, 저자, 표제의 차례는 주로 당대 바오로인의 참고서와 도서목록에서 다룬 것이다. 오늘의 독자들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 내용을 무시하기로 했지만, 창립자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일부 저자의 사항과 평가는 그대로 실어둔다.

109 “Verba mea non transibunt.”(마르 13,31)

110 원문에는: “Veritas Domini manet in æternum.”(시편 117[116], 2)

111 “Purifica, domine, mentes benignus et renova.”(전례 본기도)

112 “Mens impletur gratia”(따름 노래 ‘오 거룩한 잔치여O sacrum convivium’).

113 원문에는: “Mentes nostras et corpora nostra possideat, Domine, doni cælestis operatio.”(영성체 후 기도)

114 샤를르-루이 가이Charles-Louis Gay(파리, 1815-1892), 저명한 설교가요, 제1차 바티칸공의회의 신학자로서 수덕신학과 교의신학을 다수 집필한 저술가.

115 성 아우구스티노, 「고백록」, 7권, 10장 이하 참조.

116 영성체를 준비하면서 바치는 사제의 기도 참조(역주: “그리스도의 몸은 나를 지키시어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소서.”)

117 문장의 주어에 해당하는 이 단어는 분명히 실수로 이전 편집본에서 빠졌다. 그러나 앞 단락의 결론에 의해 삽입해야 한다고 본다.

118 「자기 죄를 활용하는 기술L’arte di utilizzare le proprie colpe」(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에 따른, di G. Tissot, EP, Alba 19652 참조.

119 “Spes ultima dea”, Publio Aurelio Stazio의 표현.

120 “Mens jam resurgat, torpida non jacens humi.”

121 알다시피, 만초니의 소설에 등장하는 이 두 인물은 1600년대 롬바르디아 지방의 개종사건으로 유명한 역사적 인물을 상기시킨다.

122 원문에는: “In quo est salus, vita, resurrectio nostra.”(성목요일 입당송)

123 “유일한 빛 그리스도 불안한 맘 비추시면 Lux una, Christe, mentibus”, 스승 예수께 바치는 찬미가, ‘나는 진리다Ego sum Veritas’.

124 ‘Incipienti’는 ‘principianti초보자들’의 고어古語.

125 1530년경 오트란토Otranto에서 태어나 1610년 나폴리에서 사망한 테아티노 수도회 회원인 로렌초 스쿠폴리P. Lorenzo Scupoli 신부의 작품. 

126 “묵상은 지성, 마음과 신심, 의지의 훈련으로 이루어진다. ” 「성 바오로」 

127 “Mentibus nostris…Spiritum Sanctum benignus infunde: cuius Sapientia conditi sumus et Providentia gubernamur.”

128 “…Deus, universa nobis adversantia propitiatus exclude; ut, mente et corpore partier expediti, quæ tua sunt liberis mentibus exsequamur.”(성령강림대축일 후 제19주일 본기도)

129 “Una sit fides mentium et pietas actionum.”(전례)

130 “Instaurare omnia in Christo”(에페 1,10) 성 비오 10세가 교황재위 기간 동안 간직했던 좌우명.

131 ‘Solitudo mentis’ 성 대 그레고리오에게서 영감을 받아 중세 영성에 많이 등장되던 표현.(「욥기 해설」 1,30, c.12)

132 “Munda cor meum ab omnibus vanis, perversis et alienis cogitationibus.”(과거에 성무일도를 바치기 직전에 드리던 기도)

133 “Sollicite cura teipsum. ”(2티모 2,15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