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o Giacomo Alberione

Opera Om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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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카리스마의 원천

더 밝은 빛… ‘꿈’

특별히 어려운 시기에 그는 자기 편에서 은총의 활동을 방해하지 않았는지 자신의 행동을 재검토했다. 천상 스승께서 몇 년 전에 시작한 수도회를 보장해 주고자 하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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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그는 꿈1에서 대답을 얻은 것 같았다. 사실 스승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 너희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말라. 나 여기서 비추리라. 너희 죄를 뉘우치라.”2(직역하면 “두려워하지 마라, 나 너희와 함께 있다. 나는 여기서 비추기를 원한다. 너희 죄를 아파하여라.” 이다-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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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라는 말이 감실에서 힘있게 울려 나왔다. 마치 스승-그분에게서 모든 빛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깨우쳐주시려는 것 같았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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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모습이 어떤 빛에 감싸여 있었는지 설명하면서 영적 지도 신부와 이 꿈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안심하십시오. 꿈이든 다른 것이든 들은 말씀은 거룩합니다. 그 말씀을 당신과 모든 회원을 위한 빛과 삶의 실천 계획으로 삼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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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더욱 더 그 방향으로 나아갔고, 모든 것을 감실에서 길어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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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하여 그가 어떻게 이해했는지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가) 사회주의자들도, 파시스트들도, 세상도, 순식간에 공황에 빠진 채권자의 다급함도, 조난도, 사탄도, 정욕도, 너희의 온갖 부당함도 … [너희를 방해할 수 없을 것이다.] 오직 내가 너희와 함께 머물도록 죄를 지어 나를 내쫓지 마라. “나 너희와 함께 있노라”, 곧 내가 원했고, 나의 것이며, 내가 양육하고, 가장으로서 나 자신도 가족의 일원으로 너희 가족과 함께 있다. 동요하지 마라! 많은 어려움이 있더라도, 오직 내가 항상 너희와 함께 머물도록 하라! 죄를 짓지 마라!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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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나 여기서 비추리라.” 곧 나는 너희의 빛이요 비추기 위해 너희를 도구로 이용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 사명을 주니 이를 완수하기 바란다.
천상 스승을 감쌌던 광채, ‘원한다’ 와 ‘여기서’라고 하실 때의 힘있는 음성, 오랫동안 감실을 가리키던 손은 감실 안에 머무시는 천상 스승에게서 모든 것을 길어내야 한다는 초대로서 이것은 당신의 뜻이요, 당시 위기에 처해 있던 가족에게서 거대한 빛 … 이 퍼져나가야 한다는 것으로 알아들었다. 그러므로 그는 ‘Ab hinc’6이라고 쓰면서 의미 전달을 위해 문법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각자는 빛의 전달자, 예수님의 스피커, 복음사가, 성 바오로, 성베드로 …의 비서요, 펜으로 글을 쓰는 것이나 인쇄를 하는 것7은 동일한 사명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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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너희 죄를 뉘우치라.”는 우리의 죄, 결점, 부족을 끊임없이 인정함을 의미한다. 하느님의 것과 우리 것을 구별하여 하느님께는 모든 영예를, 우리에게는 멸시를 돌려야 한다.8 따라서 ‘계약 또는 성공의 비결’9이라는 신앙의 기도가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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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 예수께 대한 통합적 영성10

다양한 영성, 곧 베네딕토회, 프란치스코회, 예수회, 가르멜회, 살레시오회, 도미니코회, 아우구스티노회 영성을 연구하던 중 각기 좋은 면을 가지고 있지만, 그 바탕에는 늘 천상 스승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며, 각 영성은 특별히 그분의 한 측면을 중요시하고 있음을 더 분명히 알게 되었다. 어떤 이(성 도미니코와 제자들)는 진리를 더 강조하고, 어떤 이(성 프란치스코와 제자들)는 사랑을 더 강조하며, 어떤 이(성 베네딕토와 제자들)는 삶을 더 강조하고, 어떤 이는 두 가지 측면을 중요시하는 등. 그러나 성 바오로에 대한 연구로 넘어가면 천상 스승을 완전히 알고 있는 제자를 발견하게 된다. 그는 천상 스승을 온전히 산다. 그는 그분의 가르침, 마음, 성성, 인성과 신성의 심오한 신비를 탐구하고 그분을 치유자(의사), 성체, 사제로 봄으로써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이미 길 진리 생명이라고 정의하신 그리스도 전체를 제시한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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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관점에는 종교, 교의, 윤리, 경신례가 내포되어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온전히 계시啓示되어 있다. 이 신심을 통해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께 완전히 사로잡히고 정복된다. 신심은 충만해지고 수도자는 사제처럼 되어 지혜(면학과 천상의 지혜), 나이(어른스러움12과 덕) 그리고 은총(거룩함)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과 완전한 나이에 이르기까지,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13라고 했듯이, 곧 그리스도가 인간 안에 또는 인간을 대신하기까지 성장한다. 이 신심은 인간-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모든 신심을 수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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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도움

수도회가 좋은 열매를 맺도록 자신을 희생제물로 봉헌한 사람이 여럿 있었다. 그중 몇 사람의 봉헌을 주님이 받아들이셨다. 알바 신학교의 신학생들은 그 의미를 명확하게 알지 못하면서도 1910년 부터 매일 그들의 영적 지도신부의 지향을 봉헌했다.14 1915년 전쟁이 발발한 후 그들은 전쟁터에서 봉헌을 새롭게 했으며, 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자기네 생명까지도 봉헌하였다. 몇 사람은 전쟁터에서 죽음을 맞았고, 또는 병을 얻어 죽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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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으로 판단해 보면 주님이 생명의 봉헌을 받아들이신 이들 가운데는 신학생 보렐로, 판테구치, 사제 사피리오, 데스테파니스, 빌라리15 등이 있다. 마조리노 비고룽고16와 성바오로수도회의 몇몇 회원이 있다. 카바차-비탈리17와 후에 칼리아노18를 위시한 성바오로딸수도회의 한 그룹을 상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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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가족은 여러 해에 걸쳐 바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희생, 기도, 봉헌의 결실이다.
그가 온전히 헤아리지 못하는 이러한 도움과 더불어 기도 중에 바치는 ‘하느님과의 계약’과 네 개의 가지[枝]를 통해 이루어지는19 활동, 모든 면에서 하느님의 끊임없는 축복20의 결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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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주변에 성체조배를 통해 끊임없이 기도하는 덕망 있고 경건한 사람들의 그룹을 만들었는데 그들의 지도자는 참사위원 키에사였다.
인신상의 문제, 경제 문제, 서신과 구두를 통한 고소 등 갖가지 위험을 겪었다. 매일매일 위태롭게 살았으나 성 바오로는 언제나 구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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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출을 할 때에도 조언을 청하며 다음과 같은 성찰을 했다. 이것은 필요한 것인가? 지향은 올바른가? 임종의 순간에도 이를21 행할 것인가? 대답이 긍정적일 경우에는 하느님께 의탁하며 실행에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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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시급하고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있었고, 모든 방책과 인간적 희망이 닫혔던 때도 있었다. 그는 기도했고, 죄를 멀리하며 청빈에 어긋나는 온갖 결함을 물리치도록 노력했다. 그러자 예기치 않은 해결책,22 익명의 사람들이 보낸 돈, 융자 제공, 새로운 은인들과 그가 결코 설명할 수 없는 다른 일들 … 이 일어났다. 해가 지나면서 분명히 파산할 것이라는 많은 사람의 예견, 미쳤다는 비난 … 등이 사라졌고, 비록 힘은 들었지만 모든 것이 평화롭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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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자 중 어느 누구도 한 푼도 잃지 않았다 … . 그리고 납품업자들, 건축업자들, 사업체들은 계속 믿어주었다. 은인들의 애덕은 세배의 열매를 맺었으며, 그러한 은인이 많았다. 그렇지만 정반대의 사건도 수없이 일어났다. 마에스트로 자카르도는 이렇게 말했다. “비록 깊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임에도 우리를 반대하는 어떤 사람들은 참으로 저를 안타깝게 합니다. 그들 중 몇몇은 이미 벌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저는 성바오로수도회에 성소자를 보내주고 은덕을 베풀어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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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의 호의와 동조는 끊임없이 이어졌으며, 교구 내의 저명한 성직자들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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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은인들 가운데에는 참사위원 키에사, 몬시뇰 레 주교, 카바차-비탈리, 친척 아저씨 한 분23, 교구의 거의 모든 지구장, 무수한 협력자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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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피Maffi 추기경, 리셸미Richelmy 추기경, 교구 참사위원 알마노Allamano의 조언은 그에게 매우 유익했다. 교구 참사위원 프리에로 Priero, 몬시뇰 시보나Sibona, 몬시뇰 달오르토Dallorto, 수석사제 브로비아Brovia에게서 경제 분야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교구 참사위원 노보Novo, 몬시뇰 파시노Fassino, 로시Rossi 신부, 몬시뇰 몰리노Molino, 교구 참사위원 다누소Danusso, 교구 참사위원 바랄디Varaldi에게서 영적 도움을 많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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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구입한 기계 대금은 야고보 삼촌이 지불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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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에는 알바의 사회주의자들이 여러 차례 인쇄기, 수도원과 신문을 불사르겠다고 협박했다. 만일의 경우 소년들이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또는 너무 놀라지 않도록 깨어 지키는 일이 허다했으므로 잠을 자지 않고 밤을 새우는 일이 많았다. 파시즘의 조직이 처음으로 결성되었을 때에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결국 그들의 협박이 현실이 되자 건축 융자를 해주던 협력자들의 신뢰도 흔들렸다. 당혹스러웠고 심한 걱정에 휩싸였지만 아무도 신뢰를 잃지 않았다.24

172

언제나 묵주기도를 바쳤고, 성 바오로께 기도했으며, 프리모 마에스트로의 지향에 따라 성체조배25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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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실천

그는 알바 신학교에서 깊고 단순하며 활발한 영성의 분위기를 발견했다.
토리노 대교구26 신학교에 그의 아저씨 한 분이 사제 지망자인 친척에게 할당하거나 그런 사람이 없으면 대주교의 판단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거액의 기금을 내놓았다.27 그러나 그는 건전한 정신을 발견했기 때문에 기숙사비를 내더라도 알바 신학교에 남기로 했다. 거기에는 덕망이 높고 열의가 있으며 경험이 풍부한 장상들, 고해신부, 영적 지도신부가 있었고 가족적 분위기, 최고 수준은 아니지만 진지한 학업, 모범적인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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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는 매우 풍요로웠다. 묵상, 영적 독서, 현대 성인들의 삶, 이 모든 것은 「준주성범」과 성 프란치스코 드 살, 성 알폰소 데 리구오리, 성 요한 보스코, 성 코토렌고28에게서 영감을 받은 것이었다.
몇 년 동안 매주일, 다양한 측면에서 가장 많이 논의된 주제로 교의의 순수성 그리고 교회 권위에 대한 순명의 의무에 관해 수준 높은 강좌가 열렸다. 언제나 주교가 주관했는데 그는 신학, 철학, 교회법 또는 사회학 중 어떤 분야에 더 깊은 지식을 갖고 있는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박식했다.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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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영성체를 막 도입했는데, 당시 많은 신학교에서는 이를 시행하지 않았었다.
규율은 그리 엄격하지 않았지만 깊은 확신을 길러주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성바오로수도회와는 아주 달랐다.
그는 그곳에서 배운 유용한 것들로 바오로가족을 풍요롭게 만들고자 했고, 한층 더 쇄신하려 노력했으며 ‘모퉁잇 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30(에페 2,20 참조) 위에 삶을 확립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을 추가했다.

176

신심

알바의 주교 몬시뇰 갈레티Galletti31는 교구, 특히 신학교에 영적 유산으로 ‘성체신심’을 남겼다.

177

 그는32 훌륭한 사제들과 협력하여 복자 비오 10세가 반포한 잦은 영성체, 어린이들의 영성체, 병자들의 영성체에 관한 교령을 교구에서 시행하도록 힘썼고, 특히 노자성체를 제때에 영해줄 것을 강조했다.33

178

거의 10년 간 신학교(소신학교와 대신학교)34에서 영적 지도35를 맡고 있었으므로 묵상지도와 평일 설교를 주관해야 했다. 그의 전임자는 매월 첫 주간을 수호천사, 연옥영혼, 성 요셉, 성체성사, 예수 성심, 성 마리아, 성삼위 등의 신심에 바쳤다. 그는 그것이 매우 유익하다는 것을 알고 신학교 장상의 원의에 따라 동일한 관습을 계속 유지했다.

179

그리고 바오로가족이 발족했을 때 이를 도입했다. 다만 그것을 특정한 필요에 맞추어 결합시켰고 천상 스승께 대한 신심과 성 바오로 사도께 대한 신심을 중심에 두었다. 천상 스승께 대한 신심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모든 신심을 요약한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유에서는 아기로, 나자렛에서는 노동자로, 공생활에서는 스승(박사)으로, 구원을 위해서는 십자가에 달린 분으로, 감실 안에서는 성체로, 인류에게 아낌없이 베푸신 은총을 통해서는 사랑 가득한 성심으로 고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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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의 모후께 대한 신심도 먼저 신학교에서 마음에 새긴 것이다. 사목강연(1912-1915)도 마리아의 보호 아래서 행했고, 사회학 수업도, 새 사제들의 성무의 첫걸음도 마리아의 보호에 맡겼다. 마리아는 공동 사도, 곧 공동 구속자시다.

181

마리아는 이중의 예고를 받으셨다. 천사 가브리엘이 알려준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신적 모성에 대한 예고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가 알려준 교회라는 그리스도의 신비체와 관련된 보편적 모성에 대한 예고다.
그 어느 것도 이 보잘것없고 교만에 찬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위대한 부富를 줄 수 없다.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에 은총을 주셨다. 세기를 통하여 그분을 끊임없이 주고 계시다. 은총의 보편적 중개자시고, 이러한 직무 안에서 우리의 어머니시다.
세상은 길 진리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필요로 한다. [마리아는] 사도들과 사도직을 통하여 그분을 주신다. 그분은 그들을 북돋아주고 양성시키며 도와주고 그들에게 좋은 결실을 안겨주며 하늘 나라에서 영광의 화관을 씌워주신다.

182

주일에 모든 것은 삶의 계획과 사도직, 예수님의 구원 계획인 대영광송, 곧 천사들이 노래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Gloria in excelsis Deo et in terra pax hominibus”36로 마무리지어야 한다. 이는 성삼위께 영광을 드리기 위함이다. 바오로인은 그리스도 안에 산다.37

183

그는 주교의 동의를 얻어 신학교에 매일의 영성체, 월피정, 매월 첫 금요일의 성체조배, 주일에는 두 번 미사참례하는 관습을 도입했다. 좋은 결과가 보였으므로 그는 바오로가족도 이러한 것으로 풍요롭게 했다.

184

1 여기에서 이야기한 ‘꿈’은 1923년, 프리모 마에스트로가 중병을 앓던 시기였다. 당신 스스로 AD 64에서 암시한 것처럼 기적 같이 (중병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동일한 꿈에 대한 다른 언급은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Mihi vivere Christus est」(MV, 1938) 139에 나온다. AD 158의 각주8 참조.

2 그는 이 말씀을 라틴어로 들은 것 같다. “Nolite timere, Ego vobiscum sum. Ab hinc illuminare volo. Cor pænitens tenete.”

3 이 항목은 자필원고에 있는 것으로, 모든 출판본에 나오지만 이상하게도 타자원고에서는 사라졌다. 아마 저자가 교정 중에 부주의로 타이프를 치지 않고 넘어간 것 같다.

4 이 항목도 자필원고에서만 볼 수 있다.

5 자필원고에서 저자는 이상하게도 여기에 많은 여백을 남겨두었는데 아마도 불충분하게 여겨 무엇인가를 첨가하고 싶었던 것 같다.

6 ‘Ab hinc’는 라틴어 부사다. 본래 의미는 장소부사로 ‘여기서’, ‘이 장소에서’라는 의미로, 고전문학에서는 이동의 의미로 자주 사용했는데, ‘시간적’ 의미로, 과거 또는 미래를 언급했다. 알베리오네 신부가 왜 “그는 의미 전달을 위해 문법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라고 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아마도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문법’에 따르면, 단순한 형태인 ‘hinc’(‘여기서’라는 의미만을 가리키는 표현)를 활용하는 것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의미’를 분명히 할 목적으로, ‘ab hinc’(분리된 두 단어)라는 복합어를 선호했으니, 이는 천상 스승의 오랫동안 ‘감실을 가리키던 손’을 부각시키기 위함이었다. ‘ab hinc’, ‘여기서’, 곧 감실에서라는 의미다.

7 ‘인쇄…’라는 이 마지막 표현은 자필원고와 모든 출판본에 나오지만, 타자원고에는 펜에 대한 단순한 언급만 나오고 삭제되었다. 여기서는 동일한 표현을 옮겨두는 것이 좋을 듯하다.

8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과 함께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위하여 모든 것을 하기를 원합니다. 하느님께는 영예를, 저에게는 멸시를.” 이라는 전통적인 기도 참조. 이 겸손한 표현을 여기서 꿈에 대한 첫 언급과 대조하면 더 잘 이해할 수 있는데, 알베리오네 신부가 1938년에 언급한 것이며, Mihi vivere Christus est에 게재되었다. “천상 스승께서 거니시다가 여러분 중 몇 명에게 다가오셔서 말씀을 건네셨다. 두려워마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다. 나 여기서 비추기를 원한다. 다만 ‘겸손을 유지하라.’… 그리고 너희 죄를 뉘우치라고 말씀하신 것 같다.”(MV 139)

9 이 기도는 다양한 편집을 거친 것으로서, Don A. Colacrai가 해설했다. Segreto di riuscita, Ed. Archivio Storico Generale della F.P., Roma 19854 참조.

10 이어지는 두 항목(159-160)은 자필원고에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실수로) 꿈에 대해 설명하기 전인 154항 다음에 타자원고 본문에 첨가되어있다. 1971년도 판과 1985년도 판에서 채택한 위치와 번호에 상응하기에 우리는 이를 여기에 배치했다.

11 요한 14,6 참조.

12 이 단어의 의미는 분명히 ‘어른의 나이’, ‘성숙’을 나타낸다.

13  “Vivo ego, iam non ego; vivit vero in me Christus.”(갈라 2,20) 본문의 표현은 다음과 같다. “Vivo autem iam non ego, vivit vero in me Christus.”

14 이 구절은 아마도 다음과 같이 읽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영적 지도신부의 지향에 따라 기도와 희생’을 봉헌했다 …. ”

15 Agostino Borello(1883-1902), Angelo Fanteguzzi(1893-1917), Enrico Saffirio(1884-1918), Giacomo Destefanis(1887-1917), Ermenegildo Villari(1884-1921).

16 Maggiorino Vigolungo(1904년 5월 6일-1918년 7월 27일)는 1916년 10월 15일부터 죽는 날까지 작은 노동자 인쇄학교(Scuola Tipografica Piccolo Operaio) 학생이었다. 그의 영웅적인 덕성이 인정되어 1988년 3월 28일 가경자로 선포되었다.

17 Amalia Cavazza-Vitali(1866-1921)는 Barbaresco(Cuneo) 출신의 부인.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의 창설 초기 수도회 모든 면에 도움을 주었다. 기도와 헌금과 물자 지원 그리고 저술가로서 지적 협력으로 은덕을 베풀었다.
매년 여섯 대의 미사를 드릴 수 있는 기금을 지불함으로써 성바오로수도회 산하 ‘Opera delle Sante Messe Perpetue’를 만들었다. 저작으로는 I doveri delle Spose e delle Madri(Alba, Scuola Tipografica, 1918)이 있다.

18 Clelia Calliano(1892-1918)는 당시 Alba, Via Accademia n. 5에 있던 성바오로딸수도회가 Susa(Torino)로 이전할 즈음 선종. 수도회 창립을 위해 삶을 봉헌한 다른 사람들 가운데 알베리오네 신부가 기억해야 할 사람으로는 Angela Maria Boffi(1886-1926)가 있다. 그는 1915년부터 1922년까지 성바오로딸수도회 원장이었다. 그 다음에 초창기 수도회의 통솔은 현재 가경자인 데레사 메를로, 곧 마리아 테클라 수녀(1894-1964)에게 넘어갔다.

19 네 개의 ‘가지’는 앞에서 언급한“바오로가족”이다. 곧 당시에 현존하던 네 개의 수도회다.(AD 33-35 참조) 이와 같은 해석은 네 ‘바퀴’를 암시한다는 해석보다 더 타당하게 여겨진다.(AD 100 참조)

20 이 구절은 매우 집약되어 있지만 문장상 구조가 엉성하다. 아마도 생략된 단어 때문인 듯하다. 납득할 만한 문장으로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희생 등]의 기여로’ ‘하느님과의 계약에 대한 신앙, 끊임없는 축복’ 등과 같은 [최상의] 도움이 ‘주어졌는데’, 이에 대해 그는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다.”

21 출판본에는 여기에 관사 lo(앞에 나오는 대명사 ‘이것’을 받는 남성 관사)가 있는 반면, 타자원고에는 la가 있는데 이는 아마도 지출(spesa)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22 ‘생겼다’(intervenivano)라는 동사가 암시되어 있다.

23 이분은 알베리오네 신부의 삼촌 Giacomo Alberione(1838-1914)이다. AD 171 참조.

24 이 마지막 표현 “그러나 아무도 신뢰를 잃지 않았다.”는 타자원고 위에 자필로 첨가했다. 아마도 저자는 중복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 듯하며, 적어도 어법상, 조금 앞에 쓴 내용과 모순된다.

25 알베리오네의 전통에 따른 성체방문 또는 성체흠숭을 가리킨다.

26 토리노 대교구에는 여러 개의 소신학교와 대신학교가 있었다. Torino, Chieri, Bra, Giaveno, Rivoli의 신학교를 떠올릴 수 있다. Bra 신학교의 역사에 대해서는 G. Barbero, “I bei Seminari d’Italia: Il seminario arcivescovile di Bra”, in Palestra del Clero, 43(1964) 192-204 참조.

27  이 기금(연금: pensione)에 대한 다른 특별 사항은 알 수 없다. Bra에 있던 Giacomo Alberione는 기금의 혜택을 한 푼도 받지 못한 것이 확실하다. 여기에 사용한 용어로 미루어보아 조카가 이미 Alba 교구 신학교에 입학한 다음 삼촌이 기금을 위탁한 듯하다.

28 이 저자들에 이어서 알베리오네의 신부가 읽고 심화시켰으며 본받았다고 다른 곳에서 표현한 Pier Giuliano Eymard를 추가할 필요가 있다. A.F. da Silva, Il cammino degli Esercizi … , cit., p. 36 그리고 다른 곳에도 나옴.

29 교황청 입장을 옹호하기 위해 근대주의자들과 맞선 유명한 저작 「피에몬테 주교단 서한 Lettera dell’Episcopato Piemontese」은 아마도 Mons. F. Re 주교가 쓴 것으로 보인다. 바오로가족의 출범에 대한 승인에 관하여 로마의 답변에서, Enrico Rosa s.j. 신부가 그에게 표현한 공식 인정을 볼 것. “ … 저는 언제나 근대주의 시대에 귀하의 타당한 개입을 기뻐하는 바입니다. 근대주의에 대해서는 피에몬테 주교단의 서한으로써 이제 많은 반향을 일으켰고 그리고 … 오류에 대항하여, 특히 이탈리아 북부에서 큰 효력을 가져왔다고 봅니다 … .”(G. Rocca, cit., doc. 87 참조)

30 “ipso angulari lapide Christo Iesu”.(에페 2,20)

31 Mons. Eugenio Galletti(1816-1879)는 1867년에 Alba의 주교로 선임되었고, 14년 뒤에는 공석이 되었다.

32 이제 주어는 알베리오네 신부다.

33 Pio X, Sacra Tridentina Synodus, 1905년 12월 20일자 교령 참조. 알베리오네 신부가 이 글을 쓸 당시에는 비오 10세가 복자였으며, 몇 달 후인 1954년 5월 29일에 성인품에 올랐다.

34 한 건물이지만 신학생들은 두 그룹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35 알베리오네 신부는 1908년부터 1920년까지 거의 계속하여 Alba 신학교에서 영적 지도신부의 임무를 맡았다.

36 Missale Romanum, ‘Gloria’참조; 루카 2,14도 참조.

37 이 마지막 표현은 자필원고와 타자원고에서 언급된 표현이 달라 해석상의 문제가 있다. 자필원고에 나오는 첫 표현은 다음과 같다. “바오로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것’(vivere)”이다. 반면에 타자원고에는 “바오로인은 그리스도 안에 ‘산다’(vive)”이다. 첫 표현은 “위에서 설명한 것은 성 바오로에 따라 ‘그리스도 안에 사는 것’에 부합한다.” ‘바오로인’이라는 어휘는 이 경우 사도를 언급하는 형용사인 듯하다. 두 번째 표현은 명사로서, ‘그리스도 안에 사는’(2티모 3,12 참조) ‘바오로가족의 수도자’를 지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