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o Giacomo Alberione

Opera Om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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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위대한 보물
입문

“그리스도의 수난은 저를 위로하소서.”1 우리는 결심한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으로 잘 지킬 수 있는 힘을 청해야 합니다.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2라고 성 바오로는 십자가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우리 자신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에 이르고, 하느님과 참된 일치를 이루며, 아름다운 천국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세 가지 점으로 묵상을 나누겠습니다. 1) 우리는 그토록 아름다운 천국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합니다. 2) 수도생활은 세상을 포기하며 규칙을 잘 지키면서 잘 살고 성인이 되게 합니다. 3) 수도생활에는 현명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이 있습니다.

1. 천국은 우리가 무엇을 포기하든 가치롭게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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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이 되고 세상에 굴복하며 쾌락을 즐기며 살고, 자신의 순수한 보물을 망치며 세상을 위해 젊음의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이 아름답습니까? 지상에서 우리가 추구할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쾌락이나 소유, 영광, 혹은 하느님과 천국을 찾습니다. 쾌락과 부유, 존경을 찾는 사람들을 헛된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헛된 것과 죽음을 좋아하여 남는 것이 없는 사람은 헛된 사람입니다. 호색적인 사람은 육신이 부패할 것이며, 부자는 한 뼘의 땅을 차지할 것이고, 자기의 영광에 허영심이 있는 사람은 아무것도 지니지 못한 채 그의 몸은 땅속에 묻혀 썩고 말 것입니다. 그 대신 주님을 섬기고, 주님의 빛을 기다리며, 주님의 상을 받기 위해 인내하며 사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이들은 죽음으로 인해 다른 많은 것에서 해방되고, 하늘을 향해 나를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는 어떤 사람에 비유합니다. 보물의 가치를 알아보고는 가진 것을 다 팔아 땅을 사서 보물을 자기 것으로 합니다.3 보물은 하늘의 왕국, 천국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보물은 우리의 것이며,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쾌락, 영예, 부유,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 천국을 얻을 수 없습니다. 천국을 사랑하고 원합니까? 마음속의 사랑을 진단해 봅시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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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음은 무엇을 원하고 있습니까? 우리 영혼 깊은 데서 무엇을 갈망합니까? 무엇을 찾고 있습니까? 하느님과 그분의 뜻, 그분의 취향을 찾는지, 혹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편하게 살고, 어떤 즐거움과 만족을 찾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마음 안에 나와 하느님 두 존재가 공존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마음 안에 함께 있을 수 없는 대상입니다. 어두움이 있다면 빛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마음에 어둠이 있습니까, 혹은 거룩한 빛이 있습니까?
진정 하느님과 천국을 원합니까? 이것에 대해 모두가 아직 진보해야 합니다. 하느님과 천국을 원하는 것은 우리가 원하고 갈망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숭고한 것으로 아무리 해도 충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2. 하느님 나라는 가장 귀한 진주에 비유됩니다. 하늘나라는 어떤 사람이 좋은 진주를 찾아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아름답고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사서 부자가 되었습니다.5
수도생활에서 어떤 사람은 하느님 은총에 전적으로 응답하고, 어떤 사람은 응답하지 않으며 다른 진주로 만족해합니다. 우리는 그게 아니라 값진 진주, 곧 완덕을 추구해야 합니다.
종교생활에는 열심한 사람, 미지근한 사람, 나쁜 사람이 있습니다. 수도회에서 나쁜 사람을 찾아볼 수 있습니까? 불행히도 그렇습니다. 그것은 때로 악마가 속이고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 온갖 것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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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에 살고 있지만 어떤 때는 마음이 멀리 떠나있어 다른 것을 갈망하며 위선자가 될 수 있습니다. 자기 마음이 하느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양심의 가책을 억누르면서 앞으로 나아갑니다.
모든 것을 습관적으로 하는 미지근한 사람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대피정을 해도 큰 느낌이 없고,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해도 미지근합니다. 그들은 작은 잘못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하느님의 은총과 초대의 응답에 게으르고 습관적입니다. 그리고 기도, 성찰, 죄의 통회, 완덕의 갈망에서 게으릅니다.
그런데 두 가지 목적을 위해 끊임없이 일하는 열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1) 부족함이나 악을 행하는 횟수를 줄이기 위해, 모든 불완전함을 제거하기 위해. 2) 규칙을 더 잘 지키기 위해, 곧 회헌을 살고 시간표를 따르는 데 있어서 주님과 수도회에 헌신하는 것, 매일 영적 일과 사도직에서 더 잘 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가면서 사는 사람은 열렬한 사람입니다.
수도생활에서 값진 진주는 열성과 결점을 제거하며 항상 완전한 것을 행하고 맡은 것을 더 잘 하고 부족한 것이 있는지 살피는 임무입니다.
우리는 어느 상태에 있습니까? 악하거나 미지근함, 아니면 열심한 상태입니까?

3 예수님은 하늘나라의 비유를 다섯 명의 슬기로운 처녀들과 다섯 명의 어리석은 처녀들과 같다고 하십니다.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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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처녀들은 하느님께 봉헌된 이들입니다. 그들은 잔치에 참여하기 위해 신랑이 오기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신랑의 영예를 위해 연주를 해야 했습니다. 신랑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처녀들은 천국에서 그분께 큰 잔치를 벌이며 그분 가까이 머무는 이들입니다.
열 명의 처녀들은 좋은 의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중 다섯 명은 슬기로웠고 다섯 명은 어리석었습니다. 하느님께 봉헌된 사람이 모두가 슬기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랑이 늦어지자 다섯 명은 졸기 시작합니다. 이런 사람은 열정으로 수도생활을 시작하지만 앞으로 가면서 의지가 약해져 하느님과 이루는 통교의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 공로를 잃거나 아주 조금만 얻는, 자기 자신에 대해 만족하지 못한 수도자들입니다. 그러나 다섯 명은 슬기로웠습니다. 신랑이 늦어지자 그들은 깨어 어떤 일을 하면서 기다렸습니다. 등불을 켜들고 서서 신랑을 기다렸습니다. 이 처녀들은 매일의 임무와 열성에서 계속 진보하는 수도자들입니다.
주 예수님은 이 비유를 틀림없이 수도자에게 적용하고자 하셨을 겁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어리석은 처녀들을 바라보지 않기를 바랍니다. 세상은 어리석은 이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어리석은 이들을 헤아릴 수 없다.”7고 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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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사람은 공로를 쌓을 생각을 않고, 완덕에 나아가지 않으며, 깨어있지 않고, 자기 의무를 잘 수행하지 않습니다. 슬기로운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어리석은 사람들이 슬기로운 사람을 본받아 잘 하기를 바랍니다.
때로 지적 수준은 낮지만 온 마음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슬기로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말을 골라 하며, 겉모양은 좋아 보이고 지혜롭게 보이지만 마음은 전혀 하느님의 것이 아니며, 비천한 일만 바라고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처럼 겸손하지 않습니다.
결론으로, 슬기로운 사람에게 말하는데, 어리석은 사람을 쳐다보지 말고, 현명하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처녀들처럼 깨어있으십시오. 어리석은 사람은 슬기로운 사람의 모범을 취하십시오. 어리석은 사람들이 문 밖에 있을 때 슬기로운 이들은 신랑의 잔치에 들어갔습니다.
죽음에 임할 때 일을 잘 한 사람은 영원한 삶에 들어가고, 일을 잘 하지 못한 사람은 하느님에게서 멀리 쫓겨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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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리스도의 영혼은…” 기도문에서. 

2 필리 4,13 라틴어 원문: “Omnia possum in eo qui me confortat.”

3 마태 13,44 참조.

4 마태 6,21.

5 마태 13,45-46 참조.

6 마태 25,1-13 참조.

7 코헬 1,15(불가타본) 참조.